소설리스트

86화 (86/137)

그 날은 아침부터 꽤나 분주했다. 명목상으로 그들은 그간의 피로를 풀기 위해 가볍 

게 여행을 가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상은 살령대의 살수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유설린의 얼굴엔 미소가 걷힐 줄 몰랐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옆에서 연신 웃는 유설린을 보며 우문학이 짖궃게 물었다. 유설린과 마찬가지로 그 

의 입에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예. 오랜만에 나가보는 것도 그렇고 휘랑 같이 이렇게 어딘가를 가는 것도 오랜만이 

라서요." 

"위험하신 일인데도 걱정도 안 되십니까?" 

"휘가 있잖아요. 휘가 있는 한 저는 안전할 텐데 걱정할 게 뭐가 있어요." 

"하하!" 

우문학은 신나게 웃어 젖힐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믿음이다. 이토록 상대를 완전하게 믿는 다는 게 어떠한 것인지 우문학은 알 

고 있다. 세상에 다른 사람을 이토록 믿을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다. 더군다나 동성 

도 아닌 이성에랴…… 

"어찌했든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소가주님은 유가의 기둥이십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조심해서 잘 다녀올게요." 

옆에서 묵묵히 서 있기만 하던 여운휘와 유설린을 향해 우문학은 포권을 취해 보였 

다. 그리고 그런 우문학을 향해 유설린은 웃는 얼굴로 가벼이 목례를 하고 그를 스쳐 

지나갔다. 

이미 밖에는 한 대의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부석에는 마부로 변장한 암 

황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타시지요." 

목소리까지 바꾼 그가 말하자 유설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 뒤를 여운휘가 따라서 올라탔다. 암황은 약간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출발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말은 마친 유설린은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몇명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녀가 크게 상기 되어있다는 것을 알 정도였다. 

마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마차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원 

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우문학이 떠나자 그 자리에는 능려운만이 남았다. 

현재 그는 악양유가에 고용된 무사들을 통솔하고 있으며 우문학의 제자로 있다. 처 

음 악양유가에 왔을 때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고수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능려운의 눈에는 쓸쓸함만이 가득했다. 

멀어져 가는 소가주의 모습처럼 그의 마음 속에서의 그녀도 점점 멀어져 갔다. 

유설린의 행복한 모습. 여운휘가 옆에 없을 때는 그 어떠한 일에도 저처럼 웃지 않았 

다. 단순히 옆에 있어준다는 것 하나만으로 저런 미소를 짓다니…… 

"하아……" 

다잡으려고 해도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빌어먹게도 유설린을 향하는 마음은 언제나 한결 같다. 

마차는 화려하지 않다. 말 두 마리가 이끌고 있고 깔끔한 검은 색이다. 

마부석에 앉은 중년인은 미친 듯 말을 몰았다. 중년인으로 변장하고 있는 암황이다. 

당연히 마차에 타고 있는 것은 여운휘와 유설린이었다. 

광해성. 

호북과는 어깨를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그다지 멀지 않고 교통 또한 크게 불편하지 

않은 편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주변 경관이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유설린은 눈을 때지 못했다. 

이곳까지 오는 오 일 동안 계속해서 보아 왔을 터인데 아직도 흥미를 잃지 않은 모양 

이다. 

"그런데 정말 의외야." 

덜컹거리는 마차에 몸을 맡긴 채로 목석처럼 앉아 있던 여운휘가 고개를 돌렸다. 유 

설린이 부가적으로 말했다. 

"유성각 독고유 말이야." 

"나도 다소 의외더군." 

마차로 이동을 하면서 우문학에게 여러가지 정보를 전해 들었다. 대부분이 이번 여정 

에 관한 것이었고 그 중에서 유설린이 의외라고 말한 게 있는 것이다. 

"그만한 무인이 왜 객잔의 주방에서 일하는 걸까?"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무림애세더 유명한 유성각 독고유가 객잔의 요리사로 일한다는 것은 우스웠다. 

하지만 그만한 무인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습게 넘길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람을 죽이던 손으로 이제는 요리를 만든다. 

무림이라는 곳은 마약이다.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만약 몸을 뺀다 해 

도 은원이라는 것이 발길을 붙잡는다. 

몸에 벤 습관과 생각…… 그 탓에 무림에 몸 닮은 무인은 결국 돌아가게 되는 것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성각은 벌써 5년 이상을 무림과는 발을 끊고 있었다. 

단단한 각오와 이유가 없다면…… 어렵다. 

오랫동안 검을 놓았으니 감각이 죽었을 건 분명하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됐다. 

유성각의 주변에서 적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어떻게 감시할까 고민했거늘 그 문제 

가 싹 해결 됐다. 

객잔이라면 그 누가 있다 해도 의심 받지 않을 테니까. 

계획은 모두 정해졌다. 일단 손님으로 변장해 객잔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서 유성각 독고유의 안위를 살피면 된다. 

그에게 찾아온 이유를 말해서는 안 된다. 

살령대의 움직임을 어떻게 그리 빨리 알아냈느냐가 첫번째 문제다. 

그렇게 된다면 유가의 정보망 중 일부를 드러내야 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둘째로 유성각을 죽이려 하는 이유를 모르는 탓이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생각해 봤을 때 다소 지키는 건 힘들지 몰라도 정체를 밝히지 

말자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말의 다리가 천천히 멈출 때 쯤 그들은 마을에 도착했다. 

암황은 고개를 뒤로 돌려 외쳤다. 

"다 왔습니다. 객잔에 도착해서 멈출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어요. 그리 하세요." 

보는 눈이 있는 이상 암황은 마부다. 

사람이 많은 대로 위를 암황은 조심스럽게 말을 몰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유성각 독 

고유가 있는 객잔에 대해 연신 물었다. 

수차례 물었거늘 전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처음엔 마을이 큰 탓이려니 했지 

만 그렇다고 봐도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물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르는 것은 의 

문 투성이다. 

막 누군가에데 또 물었다가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해 입맛을 다시던 암황을 향해 누 

군가가 다가왔다. 

체구는 작고 얼굴은 꾀죄죄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거지에 불과했다. 

암황은 거지가 구걸이라도 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퉁명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냐." 

"헤헤, 아저씨 월향객잔(月香客棧)을 찾고 있죠?" 

"혹, 네가 아느냐?" 

"물론이죠! 그곳은 저로서는 중요한 곳 중 하나거든요. 히히." 

암황은 마부석에서 뛰어 내려 거지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소년이 갑작스럽게 손을 내 

밀었다. 

얼굴과 마찬가지로 원래 색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손이 검다. 손톱 사이에도 검 

은 때가 가득하다. 

"줘요." 

거지 소년의 한 마디. 

암황은 무엇을 달라는 건지 묻지도 않고 돈을 꺼내서 소년에게 쥐어주었다. 그리고 

소년의 입이 귀까지 걸렸다. 

원하는 것이기도 했고 금액도 예상보다 훨씬 많았던 탓이다. 

"절 따라오세요. 데려다 줄게요." 

원래는 간단히 위치만 가리켜 줄 생각이었지만 금액이 컸던 탓에 선심을 쓴 것이다. 

소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암황 옆에 있는 마부석에 올라탔다. 악취가 진동했 

다. 그렇지만 암황은 묵묵히 소년을 힐끔 쳐다 보고는 목청을 높혔다. 

"이랴!" 

말은 소년의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암황은 처음에는 소년의 말대로 움직였지만 점점 좁은 길로 들어서자 의문이 생겼다. 

"정녕 이 길이 맞느냐?" 

"에이씨. 거의 매일 가는 곳이라구요. 틀림없으니까 어서 가기나 해요. 어! 아저씨 

왼쪽이요!" 

암황은 말 고삐를 돌리면서 혹 이 아이가 거짓말을 한 거라면 호되게 나무라 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게다. 

거짓말이었다면 안내까지 해 주겠다고 선뜻 나섰을 리가 없다. 

거지 소년은 연신 마차 뒤를 돌아보다가 물었다. 

"안에는 누가 타고 있어요?" 

"내가 모시는 분이 계신다." 

"그 모시는 분이 누군데요. 마차를 보아하니 그다지……" 

"조용히 하고 어서 길 안내나 하거라. 저곳에서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소년은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키면서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쪽으로 꺾이면 바로 보여요." 

암황은 곧 보인다는 말에 힘이 나는 듯 했다. 더불어 유설린에게 다 도착했다는 전음 

을 보냈다. 

마차는 꺾인 후부터 천천히 움직였고 어느 건물 앞에 이르자 거지 소년은 아래로 뛰 

어내렸다. 

"여기에요." 

"이곳이…… 월향객잔이라고?" 

"아저씨, 글씨 읽을 줄 알아요?" 

암황은 소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아해했다. 글자를 아는 것과 지금 이 상 

황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전 글씨를 몰라서 모르지만 안다면 저 현판을 읽으면 되잖아요." 

그제야 암황은 건물에 현판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색이 바라고 건물의 색이 

너무 검었기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월향객잔이라고 적혀 있었다. 

"…… 맞는 것 같구나." 

너무나 볼품없다. 이층짜리 건물이긴 하지만 크기도 작은 편이고 부실해 보인다. 더 

불어 위치도 이러니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모르는 이유도 알만하다. 

"이곳 아저씨가 인심이 후해서 거의 매일 밥을 얻어 먹는다구요. 뭐…… 건물은 볼 

품 없지만 아저씨의 음식 솜씨 하나만은 이 근방에서 최고라고 제가 자부할 수 있 

죠. 이래뵈도 미식가거든요." 

거지가 무슨 미식가냐며 암황은 웃음을 터트릴 뻔 했지만 곧 안에서 들려오는 발자 

국 소리에 눈을 돌렸다. 

볼품 없어 보이는 문이 열리며 건장해 보이는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놈아! 이곳에서 떠들지 말라고 했잖느냐!" 

"헤헤. 손님을 모셔왔다구요. 그래도 구박 하실 건가요?" 

"손님이라고?" 

중년인은 마차의 모습과 암황을 차례 차례 살폈다. 손님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마 

차를 몰 정도의 자들이 이곳에 묵으려고 한다는 것이 이상했던 탓이다. 

"하루 쉬어가려고 하는데 방이 있소?" 

"물론 있습니다만……" 

"그럼 방 좀 주십시오." 

"아, 예. 방이야 많으니 들어오셔서 마음에 드시는 곳을 고르시지요." 

암황은 마차 문을 열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 묵지요." 

"예, 그리 하죠."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여인이 마차에서 내려섰다. 내심 궁금한 눈으로 마 

차를 바라보던 거지 소년은 떡하니 굳어 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사내 하나가 

내려섰다. 여인처럼 어딜 가도 결코 빠지지 않을 외모의 소유자다. 

중년인은 한 쌍의 아름다운 남녀를 보며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허허, 저만한 인물들은 내 무림에서 활동했을 때도 보지 못했거늘……' 

그 중년인은 바로 유성각 독고유였다. 그리고 그의 눈이 여운휘의 허리에 있는 검으 

로 향했다. 

'무림인인가? 아니, 호위무사인 모양이군.'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보아 분명 무인이긴 한데 무림에서 활동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 

는 않았다. 허례허식에 가득찬 무림에서 저런 볼품 없는 검을 차고 있는 자들은 실 

력 없는 낭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인의 미모나 이래저래 보아서는 꽤나 부유한 집 

의 자식 같다. 그렇다면 사내의 정체는 호위무사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안 들어가십니까?" 

암황의 말에 독고유는 화들짝 놀라 손까지 흔들며 말했다. 

"이런 실례를 범했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고개를 꾸벅한 그는 낯선 세 명의 손님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혼자 남 

은 거지 소년은 잊혀지지 않는 다는 듯 멍한 눈으로 유설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서, 선녀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그는 슬그머니 객잔 안을 향해 자신도 발걸음을 옮겼다. 

단출해 보였던 겉모습만큼 내부 또한 크게 상상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방도 몇 개 

없어 보였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 또한 협소했다. 유설린은 고개를 두리번거리 

면서 내부의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 여운휘 또한 객잔 구석구석을 잊지 않겠다는 듯 각인 시켰다. 만약에 있을지 

도 모르는 일 탓이다. 손님은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객잔에는 유성각과 유설 

린의 일행, 그리고 나이 어린 거지 하나가 다였다. 

암황이 말했다. 

"마차를 좀 두려고 하는데 장소는 있습니까?" 

"아, 뒤쪽에 말을 대 놓을 곳이 있습니다. 작긴 하지만 그래도 어렵지는 않을 겁니 

다." 

"그럼 전 말을 놓고 오겠습니다." 

고개를 꾸벅한 암황은 유성각 독고유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밖으로 나섰다. 점소 

이가 없는 월향객잔이기에 그런 일은 주인인 그가 알아서 해야 했다. 그 탓에 독고 

유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앉아 계시지요. 식사도 주문하시고요. 다른 건 몰라도 요리 하나는 자신 있 

습니다." 

"호호. 음식 맛이 기가 막히다고 저도 마차 안에서 들었어요." 

유설린은 거지 소년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유설린을 쳐다보고 있던 거지 소년은 

화들짝 놀랐다. 목소리를 들은 탓이기도 하지만 유설린이 쳐다보면서 지어 보였던 

미소 때문이다. 

미소를 보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거지 소년은 유설린을 선녀라는 말을 제하고는 

아무런 것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저, 저는 유삼이라고 해요!" 

거지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유삼이라고 밝혔고 고함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유설 

린은 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래. 만나서 반가워." 

"히히, 저두요." 

천성이 낙천적인 탓일까 유삼은 방금 전 긴장은 온데 간데 없이 바로 실없이 웃어버 

렸다. 그때 뒤에 서 있던 독고유가 유삼에게 꼴밤을 놓았다. 

"이 녀석! 네 놈 때문에 음식도 시키지 못하시고 계시잖느냐. 잠시 조용히 좀 하거 

라." 

"아씨! 고만 좀 때려요!" 

바락 소리를 질렀던 유삼이지만 다시금 독고유가 꿀밤을 놓을 듯 손을 들어올리자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유설린은 다시금 웃었다. 이러한 정겨운 모습이 너무나 재 

미있던 것이다. 

유설린이 여운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 먹을래?"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던 여운휘는 유설린의 질문에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아무거나." 

"알았어. 그럼 내 맘대로 시킬게." 

말을 마친 유설린은 자리에 앉아서 무슨 음식을 시킬까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독고유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느꼈다. 호위무사였다면 무엇을 먹을 거냐 

고 묻지도 않았을 테고, 설령 그 정도로 친근하다고 해도 저러한 태도를 보였을 리 

가 없다. 

'단순히 돈 많은 집 여식의 여행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이 꼬리를 물려는 순간 독고유는 생각을 접었다. 절로 탄식이 새어 나온다. 

'이런. 아직도 이 버릇은 고치지 못했군. 무림에서의 버릇을 모두 버리려 했거늘.' 

상대를 보면 그자가 어떠한 자인지 알려고 한다. 무림에서 활동하면서 생겼던 버릇 

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독고유는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산다. 그들에게 일 

어나는 일은 천차만별이고 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중에서 저들이 어떠 

한 상황인지 독고유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유설린은 음식 몇 가지를 주문했고 독고유는 그것을 적고는 주방으로 움직였다. 

독고유가 사라지자 마자 어린 거지 유삼이 유설린의 곁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하고 누나하고 친해요?" 

"응? 갑자기 그건 왜?" 

유삼은 급히 손가락을 세워 입술 앞에 가져다 댔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라는 것이 

다. 유설린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작게 말한다 한들 여운휘가 이들의 대화 

를 듣지 못할 리가 없는 탓이다. 

그 증거로 이층을 둘러보려던 그의 발이 멈칫하지 않았는가. 

유설린은 애써 유삼에게 맞춰줬다. 

"알았어. 그래 말해보렴. 그걸 왜 묻는 거야?" 

"되게 무서워 보여서요. 둘이 왜 같이 다니는 줄 모르겠어요." 

"그래서? 우리 둘이 안 어울린다고?" 

유설린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녀 같은 여인과 

잘 갈린 칼 같이 날카로운 사내는 어울리지 않았다. 

"유삼이라고 했지?" 

"예." 

유삼은 유설린이 이름을 기억하자 신이 난 듯 다시금 히죽 웃었다. 그녀는 손을 들 

어 유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씻지 않은 탓에 더러웠지만 그래도 그녀는 자신보다 

한참을 어린 유삼이 귀여워 보였다. 

"저 사람은 항상 저렇단다." 

"엑? 맨날 저렇게 말해요?" 

"응." 

"저라면 저 옆에서 하루도 같이 못 살 것 같아요. 저런 사람 옆에서는 숨도 못 쉴 

걸요?" 

유삼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흉내를 내며 컥컥 대자 유설린은 크게 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하지만 그가 급히 손을 들어서 조용히 하라는 듯 휘두르자 그녀는 고개를 끄 

덕였다. 

"정말 재미있는 애구나."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히히." 

유설린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사람이 무섭다고 했지?" 

"누나는 안 무서워요?" 

"무서울 리가 없잖아. 비록 말은 저렇게 해도 세상에서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 

람이라는 걸 아는데 뭐가 무섭겠어?" 

"마음이 따뜻하다니 말도 안 되요. 척 봐도 무섭게 생겼는데……" 

유설린은 여운휘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이층으로 올라간 탓에 확인 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그녀는 유삼의 말에 답해줬다. 

"살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돼. 그들은 전부 다르지.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유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유설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또한 나이는 어리지만 결코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부모도 모르고, 어렸 

을 적부터 구걸을 하면서 지냈다. 두드려 맞기도 일쑤였고, 세상의 추잡한 것이란 

추잡한 것은 수도 없이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웃고 다니는 것은 유삼의 천성이리라. 

"저 사람이 무섭다고 했지? 어떻게 보면 그럴지도 몰라. 말을 무척이나 아끼니까." 

유설린은 말을 잠시 멈추며 회상에 젖었다. 여운휘를 처음 만난 그 날이 떠올랐다. 

그녀는 여운휘를 보자마자 돌멩이를 집어 던졌었다. 그리고 부탁을 했었다. 

친구가 되어 달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여운휘가 그녀에게 이렇게 소중한 존재가 될 줄은 몰랐다. 옆에 없 

으면 보고 싶고, 있어도 더욱 가까이 가고 싶다. 

말수는 없지만 유설린은 여운휘를 믿는다. 말은 없지만 그는 다른 것으로 보여주니 

까.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유설린은 여운휘만 보면 진정이 됐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 

도 그의 눈동자를 보며 언제나 진정이 됐다. 여운휘의 눈은 진정하라고, 너라면 할 

수 있다고 말을 했다. 

상념에 잠겼던 유설린은 곧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유삼을 생각해내며 말을 이었다. 

"무뚝뚝한 남자지만 그래도 난 세상에서 저 사람을 가장 믿어. 말수는 없지만 대신 

그는 행동으로 보여주거든. 다른 자들처럼 입으로만 떠드는 게 아니고 직접 날 위 

해 싸워주니까. 만약 저 사람이 내 가슴에 칼을 박아 넣으면서 믿으라고 한다 

면…… 믿을 거야.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가슴을 내주지 뭐." 

유설린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난 후 유삼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나 

확고한 믿음을 가진 유설린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멋있다고 느낀 탓이다. 하지만 사 

내도 아닌 여인에게 멋있다고 느낀 자신을 인정 못하겠다는 듯 유삼은 입을 삐죽거 

렸다. 

"정말이야. 난 저 사람이라면 목숨도 내어 줄 수 있어. 물론 그건 저 사람도 마찬가 

지일 걸?" 

"둘이 연인(戀人)이라도 되요?" 

"뭐? 연인? 호호! 아니야. 우리는 그런 사이가." 

"치. 그게 뭐예요. 서로 목숨도 내어 줄 정도로 생각하는 사이라면 연인이죠. 그것 

도 아니면 둘은 무슨 사이인데요?" 

그 말에 유설린은 뭔가에 맞은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여태까지 진지하게 생 

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혹 상처 

를 입을까 두려워 계속해서 피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토록 감싸뒀던 생각을 유삼이라는 거지 소년이 단 한 마디로 깨어 버린 것 

이다. 

'나와 휘…… 무슨 사이인 거지?' 

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동파육(東坡肉). 

송나라의 시인인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 해서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음식이다. 

초반(炒飯). 

볶음밥의 총칭이며 재료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지금 상 위에 올라 있는 것은 개중에 

서도 달걀을 넣은 단화초반이다. 

조주만두(潮州娩頭). 

광동성의 해안지방인 조주는 예로부터 해산물이 유명하다. 그 탓에 조주만두는 돼지 

고기 뿐만이 아니라 새우 같은 해산물도 포함된다. 

유설린이 주문한 세 가지 음식이었고 그 맛은 빼어났다.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여운휘외 유설린, 그리고 덤으로 끼어든 거지 소년이었다. 

암황은 옆에서 홀로 가벼운 음식을 시켜서 먹고 있었다. 유설린으로서는 내심 마음 

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다. 마부가 그의 주인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는 다는 건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ㅓ. 

이곳에서 만난 거지 소년인 유삼이야 신분의 차이는 크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 

이이기도 하고 유설린이 허락했으니 합석을 한다 하지만 마부로 나타난 암황으로서 

는…… 

불편한 마음이지만 걸신 들린 듯 음식을 퍼먹는 유삼을 보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 

렸다. 

그토록 말이 많던 아이였는데 음식을 먹을 때는 마치 꿀 먹은 벙어리마냥 침묵하고 

있다. 

유삼이 젓가락을 내려 놓고 나서 산처럼 부풀어 오른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평소였다면 한참 구걸을 할 시간이다. 그렇게 해봤자 따뜻한 

밥 한 덩이 얻기 힘들었을 게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편히 앉아서 아무런 눈치 없이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었 

다. 절로 기분이 좋을 만 하다. 

독고유가 손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다가왔다. 

"어떻게 입맛에 맞으셨는지 모르겠군요." 

"좋았어요. 맛도 그렇고 재료도 신선한 것 같았구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묶고 갈 것인지요. 그러실 거라면 방을 정리 좀 해야 

해서……" 

"며칠 묶을 생각이에요. 방 2개만 준비해주세요." 

그때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암황이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전 마굿간에서 말과 함께 지낼테니 하나만 잡으십시오." 

"가을이라고 하지만 밤에는 날씨가 찹니다. 제가 말의 상황은 종종 살필터이니……" 

암황이 손사래를 쳤다. 독고유는 암황이 혹 말을 도둑 맞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살령대. 그들이 독고유에게 어떠한 짓을 하려한다면 그에게 우선 접근 해야한다. 그 

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객잔에 다가와야 한다. 

모든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는 밖이 낫다. 안에는 여운휘가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 

도 없다. 살수들이 근방에 나타난다면…… 암황이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말과 함께가 좋습니다. 거기다가 왠지 모르게 말들이 긴장하는 것이 같이 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대신 덮고 잘 수 있게 깨끗한 짚단이나 준비해 주십시오." 

"생각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군요. 짚단이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암황은 유설린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는 마굿간으로 갔다. 가볍게 목계로 화답했든 그 

녀는 독고유에게 말햇다. 

"그럼 방 하나만 준비해주세요." 

"아, 예. 그리 하지요." 

사내와 여인이 합방을 한다는 것에 내심 놀라긴 했지만 아무런 내색 하지 않았다. 특 

별히 어떠한 사이라 정의 내리지는 힘들었지만 잘 어울리는 한 쌍인건 분명하다. 

반면 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반쯤 누워있던 유삼은 고개를 확 젖혔다. 

'하, 합방?' 

내심 맘에 들었던 유설린이었기에 유삼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유삼은 매서운 눈으 

로 여운휘를 쏘아보았지만 그는 그저 힐끔 바라볼 뿐 관심 밖이라는 듯 고개를 돌렸 

다. 

유삼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할 때 객잔 아래층에 있던 문이 열리며 여인 하나가 모 

습을 드러냈다. 

배가 불쑥 솟아 오른 것이 아이를 가진 듯 했다. 

"편히 쉬라니까 무엇때문에 나왔소." 

"오랜만에 시끌벅쩍해서요. 마을 사람이 아닌 외지 분이 오신 건 오랜만이네요. 안녕 

하세요, 이 사람 안사람이에요." 

어느정도 예상했지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유성각 독고유의 아내였다. 우습게도 둘은 

부부 사이라기 보다는 아비와 딸 같아 보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둘의 나이 차이는 

상당했다. 

"상당히 젊으시네요. 산달이 언제죠?" 

"다음 달이에요." 

"한창 몸 조심하셔야 할 때군요." 

유설린의 말에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칠년 전 쯤에 만나서 결혼한지는 오 년이 조금 더 

지났습니다." 

나이차가 상당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럼 서둘러 방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독고유는 위층으로 올라갔고 아래층에는 그를 제외한 몇 명이 남았다. 

유설린은 독고유의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동안 여운휘는 침묵했 

다. 거지 소년인 유삼 또한 여운휘를 바라만 볼 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위층으로 올라갔던 독고유가 아래로 내려섰다. 

"방 정리가 끝났습니다." 

독고유의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유설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어났다. 

"그럼 전 올라가 볼게요. 편히 쉬세요." 

독고유의 아내는 웃으면서 유설린의 말을 대신했다. 

여운휘는 유설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따라서 움직였다. 

유설린과 여운휘가 올라가자 유삼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저씨 저도 여기서 머물래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뭐가 말이 안 되요? 돈이 있으면 묶을 수 있는 곳이 객잔 아니에요?" 

"그건 맞는 말이다만 네 놈에게 돈이나……" 

유삼은 품에서 돈을 꺼냈다. 암황에게 이곳을 안내해 주면서 받은 돈이다. 

"이 정도면 되겠죠?" 

"되긴 된다만…… 이 만한 돈이 어디서 났느냐." 

"그것 까지는 말할 필요 없구요. 어쨌든 그럼 저 사람들 바로 옆방이나 줘요.' 

"끄응……" 

유삼의 행동이 내심 걸렸지만 그의 말대로 돈을 낸 이상 그는 손님인 것이다. 독고유 

는 경고하듯 말했다. 

"좋아. 대신 저 손님에게 실례되는 행동을 취해서는 안 된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어서 방이나 달라구요." 

내심 아까웠지만 유설린을 생각하니 이 정도야 하는 마음이 물씬 풍겼다. 

돈을 낸 유삼은 여운휘와 유설린이 묶는 옆방으로 올라섰다. 

유성각 독고유의 객잔에 머문지도 오일이 지났다. 그 동안 일행들은 밖으로 거의 나 

가지 않았다. 애초의 목적이 독고유의 주변에서 머물며 살령대의 살수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고요하다. 아무런 자도 다가오지 않았고 특별한 낌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객잔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 독고유와 그의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끔 됐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독고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꺼려했 

다. 그토록 이야기를 나눴지만 정작 그는 무림과 관련 된 그 어떠한 것도 꺼내지 않 

았다. 

숨기려 하는 게다. 무림과 자신의 관계를…… 

알면서도 그 사실에 대해 안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독고유가 말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그것을 아는 척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굳이 말을 해야 하는 게 아니다. 

그 예로 독고유의 아내 여숙화가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인이 아니다. 큰 나 

이차이에도 불구하고 혼인을 할 정도로 둘은 서로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여숙화의 

몸에서는 알 수 없는 기품이 베어 나온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몸에 베어 버린 듯한 진중한 

기품이다. 

이러한 경우 답은 뻔하다. 

명문가의 자식. 말투나 기품으로 추측컨대 확실하다. 그리고 발걸음에서도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해 낼 수가 있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 발걸음 하나 하나에는 규칙 

이 있다. 

그것은 여숙화가 무공까지 익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유삼은 아직도 이곳에 묶고 있다. 돈은 넉넉하다. 애초에 객잔의 가격도 쌀뿐더러 

암황에게 건네 받았던 돈은 이곳에서 열흘 이상 묶기에도 충분한 돈이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여운휘는 전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긴장은 더해졌다. 살령대의 살수가 움직인 것을 생각해보면 주변에 

도착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 시간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곧 일은 벌어질 것 

이다. 

독고유가 진정한 자신들에 대해 드러내지 않았던 것처럼 유설린 또한 그러했다. 그 

녀는 그저 어느 돈 좀 있는 상가의 자식이었고, 여운휘는 오래 전부터 알던 무인의 

제자라고 자신을 밝혔다. 

대충 둘러댔기에 뭔가 구멍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그 구멍이 있다 

해도 독고유는 아무런 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 굳이 그가 알아야 할 이 

유가 없는 탓이다. 

이곳에서 며칠 머무르면서 몇 가지를 알아냈다. 이 객잔은 처음 봤던 것처럼 손님 

이 거의 오지 않았다. 그저 독고유를 아는 몇 몇이 식사를 하려고 오는 정도가 객잔 

의 일과의 전부였다. 

이런 상태로 객잔이 어떻게 운영이 되느냐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독고유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벌면서도 독고유는 

행복해했다. 그 이유도 이 객잔에서 며칠 머물면서 알았다. 

그의 아내인 여숙화 때문이다. 독고유가 무림을 떠난 이유가 여숙화와 모종의 관계 

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는 쉬웠다. 그녀는 누군가와 다투는 것을 싫어하는 여인이 

었다. 아마도 무림을 떠나라는 아내의 만류가 있었으리라. 

유설린과 여숙화는 마음이 잘 맞았다. 둘 다 여인인 탓이기도 했지만 사근사근한 성 

격이 무척이나 비슷했다. 더군다나 두 여인 모두 차를 좋아했던 탓에 공통적인 흥 

미 요소를 찾는 것도 쉬웠다. 

가을이지만 왠지 모르게 나른한 날씨 탓에 유삼은 꾸벅꾸벅 졸았다. 식사 때를 제하 

고는 객잔 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암황은 물론 자리에 없었다. 

유설린과 여숙화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독고유와 여운휘는 마주 앉아 있었다. 

독고유와 여운휘는 장기(將棋)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독고유는 장기를 좋아한다. 

그저 작은 판 위에서 몇 개의 말을 움직이는 게 다지만 그 하나 하나는 실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한참 무공을 익히던 예전에도 한계에 부닥치게 되면 며칠 동안 장기만 두곤 했 

다. 장기판 위에서 무공의 묘리를 찾은 것이다. 

그만큼 장기에 대한 애착이 깊고 실력 또한 빼어난 그이지만 지금 표정은 꽤나 볼만 

하다. 살짝 일그러진 얼굴을 보아하니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끄응……" 

상황이 좋지 않다. 청색과 홍색이 정확히 이등분했을 법한 장기판이 지금은 한쪽의 

힘이 일방적이다. 청색이 어느새 홍색을 잡아 삼킨 것이다. 

그제인가 시간을 죽이기 위해 독고유는 여운휘에게 장기 한 판을 신청했다. 둘 줄 

안다면 한 판 두자면서. 여운휘는 장기를 둘 줄은 알았지만 어렸을 적에 조금 손대 

본 것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유와 자연스레 가까이 있을 수도 있고 시간을 보내 

는 것에도 제격인 탓이다. 당연스럽게도 여운휘의 패배였다. 폭풍처럼 장기의 말들 

이 움직였고, 하나 하나가 여운휘의 숨통을 조였다. 

독고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문제는 그 후였다. 몇 판을 두면서 독고유는 

상대의 실력이 점점 는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두지 않았다가 감이 살아난 것이라 

고 생각했다. 그런 경우는 있을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휴우, 졌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머리를 굴려봤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고 마침내 그는 

두 손을 들어버렸다. 

장기로는 이 근방에 아무런 적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이거늘 오랜만에 맛보는 패배 

다. 실로 오랫동안 장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솜씨다. 

꾸벅 꾸벅 졸던 유삼은 독고유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그는 멍한 눈으로 잠시 주변 

을 두리번거리다가 눈을 비볐다. 

"아우!" 

몸을 이리저리 비튼 유삼은 자리에서 일어나 객잔 문을 열었다. 상당히 어둑어둑하 

다. 벌써 또 하루가 지나간 것이다. 그런데 유삼의 눈은 방금 전까지 잠을 자던 아 

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줌마! 나갈 거죠?" 

"그래." 

유삼의 갑작스러운 말에도 여숙화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웃었다. 그러자 유설린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갑자기 어딜 나가신다는 거예요?" 

"아, 아까 전에 말했지요? 오늘은 마을에서 행사를 하는 날이거든요. 수확을 한 후 

에 하늘에 감사를 하는 날이죠." 

"호오, 그럼 축제라도 있는 모양이네요?" 

"축제라고 한다면 그렇겠죠. 마을에서 가장 큰 행사니까요." 

그 탓이었던가? 어제부터 마을이 소란스러웠기에 내심 주의를 기울였던 여운휘였 

다. 그런데 그게 전부 오늘 있을 축제 탓이었다니. 

유설린은 말을 끝내고 여운휘를 돌아봤다. 축제라는 것은 분위기가 뜨게 되는 날이 

다. 아무래도 흥분 되게 되고 주변에 신경을 쓰는 것도 허술해진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는…… 최고의 날이다. 

"마침 유삼이가 있어서 잘 되었구나. 나는 내일 단체로 손님이 오시는 탓에 요리를 

준비해야 해서 같이 가지 못해서 걱정했거늘 네가 수고 좀 해줘야겠다." 

"걱정 말라구요! 히히! 아, 그럼 누나도 같이 가실 거죠?" 

유설린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독고유가 축제에 갔다면 따라갔겠지만 그 반대인 이상 객잔에 남아야 한다. 그 

녀가 움직이면 여운휘도 움직여야 하고 그럼 독고유의 곁에 있게 되는 건 단순히 암 

황 뿐이다. 

"에? 왜요. 오늘 같은 날 나가서 놀아야죠." 

"아니, 괜찮단다. 이 마을 사람도 아니거니와 날씨가 쌀쌀해진 탓에 지금 감기 기운 

이 돌아서. 푹 좀 쉬려고 그래." 

"칫, 뭐 어쩔 수 없죠." 

내심 유설린과 함께 가기를 바랬던 유삼이었지만 몸까지 운운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섰다. 

독고유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아내를 바라봤다. 부풀어 오른 배 때문에 그러 

는 것이다. 홀몸도 아닌데 그런 축제에 나가 괜찮을지…… 

다행인 건 비록 아이이기는 하나 유삼이 같이 가 준다는 거다. 거지지만 영특하고 

상황 판단이 빠른 아이다. 무슨 일이 있다면 재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을 녀석이라 

는 거다. 

"그럼 다녀올게요." 

"몸 조심해서 다녀오고." 

독고유는 여숙화의 손을 꼭 잡고는 못내 걱정스럽다는 듯 손을 놓았다. 그리고 그러 

한 자신의 남편을 보면서 그녀는 미소지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유삼과 여숙화가 밖으로 나가자 유설린은 독고유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말한 바대로 감기 기운이 있어서 먼저 올라가서 쉴게요." 

"이런 날씨가 차니 몸조심하십시오. 약이라도 지어다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가벼우니까 내일 아침이 되면 나을 것 같아요. 푹 잠이나 자야 

죠." 

유설린과 여운휘는 독고유를 아래에 놔두고 방을 향해 걸었다. 그녀는 방에 들어가 

자마자 침상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일 것 같아." 

"동감이다." 

"마을 전체가 시끄러워. 외지인들도 마음놓고 활보할 수 있고." 

"그래. 내가 살수라고 해도 오늘을 택할 거다." 

유설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살령대의 살수들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 정 

도 되는 자들이야 여운휘의 상대가 되지 않는 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 

녀가 걱정하는 건 혹시나 그들의 등장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한 가정을 무너트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걱정을 해 봤자 지금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대신 유설린은 여운휘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숙화라는 여자 어떠한 가문의 후손일까? 기품도 그렇지만 발걸음을 보아하니 무 

공을 익힌 것 같던데……" 

"지금은 알 수가 없지. 유가로 돌아가면 우문학에게 부탁해봐. 그라면 쉽게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여숙화라는 여인은 신비 투성이다. 유성각 독고유야 모르는 척 하는 것이지 그에 대 

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에 반해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 어떠한 

것에 관해서도 듣지 못했고 또 모습만을 보고 어떠한 것도 유추해 낼 수가 없는 상 

황이다. 

그저 무공을 익혔다는 정도의 단편적인 것들 몇 개만이 알아낼 수 있는 전부였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무슨 일이 벌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탓인지 오늘은 왠지 

모르게 시간이 더욱 더디게 가는 듯 했다. 

긴장을 하고 있는데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으니 오히려 피곤이 몰려온다. 

침상에 누운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유설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휘. 있잖아 독고유를 죽일 이유가 있을까?" 

"…… 갑자기 무슨 말이지?" 

"아니. 그는 조용히 지내고 있잖아. 무림에 관해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데. 그리고 그건 우문학도 그리 말했고. 그런 그를 굳이 죽일 이유가…… 있을까?" 

"그렇지만 이쪽으로 온 건 분명하잖아. 독고유가 아니고 이 근방에서 죽일 자가 있 

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유설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뭔가 상념에 잠긴 듯 했다. 무엇인가를 골몰 

히 생각하던 유설린의 얼굴이 일순 하얗게 변했다. 

"휘!" 

"?" 

"잊고 있었어. 여가! 광서성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세가의 이름이 여가야!" 

"여숙화?" 

그제야 여운휘 또한 무엇인가를 생각해 낸 듯 했다. 여숙화의 성이 광서성의 패자 

중 하나인 여가의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제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