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화 (85/137)

약 두 시진 정도 더 움직인 후에 척마 수호대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을지 

는 마을을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서 쉴까요? 아니면……” 

누남천의 눈에 잠시 고민하는 듯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렇지만 주변을 둘러본 그 

는 결정을 내렸다. 부상을 입은 채로 허덕이는 그들을 찬바람을 맞으며 자게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감시를 단단히 하면서 마을에서 쉬도록 하지.”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 탓에 척마 수호대가 마을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두려 

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만한 인원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도 드문 일인데 그들의 모습 

은 결코 평범한 사람으로 보기 힘들었다. 

피에 젖은 옷, 제 상태가 아닌 자들. 마을 사람들은 두려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 

고 있었다. 누남천은 그러한 눈빛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움직였다.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탓이다. 

그는 객잔에 들어가서 말했다. 

“이곳에 남은 방을 통째로 빌리려고 하는데……” 

“어, 없습니다요.” 

객잔의 주인은 방이 없다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누남천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객잔 

은 한산했다.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자들이 없다. 그건 

이 객잔의 손님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후우, 우리는 나쁜 자가 아니네. 돈은 후하게 줄 테니 방을 좀 빌려줬으면 하 

네.” 

객잔 주인은 그 말에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하는 모 

양인 듯 했다. 아마도 혹시나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여 방이 없다고 거짓을 

말한 것 같았다. 

누남천은 품안에 있는 돈을 던졌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객잔 주인은 숨 

길 수 없을 정도로 입이 벌어졌다. 

이만한 객잔은 두어 개를 차리고도 남을 돈을 던져 준 것이다. 

“부탁하네.” 

“아, 알겠습니다요. 어르신.” 

주인은 급히 점소이들을 불러 척마 수호대를 방으로 이동하게끔 했다. 점소이들은 

부상자들을 이동시키는 것도 도와주며 분주히 움직였다. 

누남천이 주인에게 말했다. 

“간단한 요깃거리들도 준비해주게.” 

“물론입니까요. 그런 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요.” 

말을 마친 그는 재빠르게 주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들었냐! 냉큼 준비들 해라!” 

조용했던 주방에서 음식을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누남천은 잠시 객잔 안을 

살피고는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천객과 지객들도 움직였다. 

여운휘 또한 아무런 말도 없이 계단을 오르려고 했는데 뒤쪽으로 다가온 누군가가 

옷소매를 잡았다. 

여운휘는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봤다. 열 다섯이 갓 넘은 듯한 점소이였다. 

“우와, 이 검 진짠가요?” 

그는 놀랍다는 듯 여운휘가 차고 있는 검을 바라봤다. 

점소이를 힐끔 바라본 여운휘는 몸을 돌리려다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소년은 신기하다는 듯 검을 만지면서 그의 소매 사이로 종이 하나를 찔러 넣었다. 

여운휘는 종이에 적혀 있는 밀마를 본 것이다. 

‘유가의 밀마……’ 

유가에서 보냈다기 보다는 유설린이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곳을 이토 

록 쉽게 찾아낸 유가의 정보망에 여운휘는 다시금 감탄했다. 

“석팔아! 네 놈 거기서 뭐 하는 게냐! 냉큼 와서 일 해!” 

점소이는 신기하다는 듯 검을 쳐다보다가 주인 어른의 호통을 듣고는 혀를 살짝 내 

밀고는 몸을 돌렸다. 아무도 그 어린 점소이가 여운휘에게 무엇을 건네는 것을 본 

자는 없었다. 

“무슨 일이에요?” 

여운휘의 옆에 있던 하을지가 물었다. 

고개를 돌린 여운휘는 그녀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여운휘의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지만 그 속은 그렇지 않았다. 바삐 여운휘의 머 

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여운휘는 위에 올라서자마자 아무런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자들은 몇 명 

씩 해서 방을 잡았지만 여운휘는 백산과 한 방이었다. 그렇지만 백산은 누남천과 

할 말이 있는 탓에 방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틈을 이용해 여운휘는 품안에서 병을 

하나 꺼냈다. 

붓이 없는 탓에 여운휘는 천을 찢어서 묻히고는 종이를 문질렀다. 그러자 종이에는 

숨겨져 있던 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찬찬히 내용을 읽던 여운휘의 표정이 굳었다. 

예상대로 서신은 유설린에게서 날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서신에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 있었다. 

‘일마……’ 

일마가 누구인지 여운휘가 모를 리가 없다. 그리고 그는 몸으로 녹포괴존의 실력을 

실감했다. 그러한 그녀가 쌍존에 불과하거늘 일마라면…… 

서신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긴박함이 묻어 있었다. 

서신을 보기 전까지 여운휘는 다음 행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대로 누남천을 

따라 움직여야 하나 아니면 유설린에게 돌아가야 하나. 

그렇지만 이 서신 하나를 보는 순간 결정이 내려졌다. 

‘기다려. 곧 갈테니까.’ 

복병(伏兵) 

악양의 밤거리. 

야시장(夜市場)이 들썩거린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떠드는 장사꾼의 모습도 보이고 

돈이 걸린 주사위 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리슬쩍 눈치를 보는 것이 분명 속임 

수를 쓰고 있는 모양이다. 

사람이 북적거리니 남의 호주머니에 든 돈을 훔치는 배수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 

들은 먹이 감을 찾으려고 하는지 눈알을 데구룩 데구룩 굴려댔다. 

양지, 음지 모두 바삐 움직이고 있다. 사람이 많은 틈을 이용해서 돈을 벌기 위해 

길에는 길게 간이 음식점들이 늘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사내가 약간은 서늘한 

밤 바람을 피하면서 국수를 먹고 있었다. 

후루룩, 후루룩! 

한 사내가 시원하게 국수를 들이켰다. 물건을 팔러 먼 곳에서 왔는데 예상보다 빨 

리 다 나가자 썩 기분이 좋은 그였다.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는 그를 보며 옆에 있는 비쩍 마른 사내가 말했다. 

"자네 기분이 좋은 모양이야." 

"당연하지 않은가! 예상보다 며칠은 더 일찍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그나저나 

참 평화롭구먼. 사람도 많고. 악양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온 것은 처음 아 

닌가." 

"그래. 나도 악양이 처음인 건 마찬가질세. 다른 건 몰라도 정말 사람 향기가 물씬 

나는 곳인 건 확실하네." 

사내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그나저나 이곳의 상권을 쥐고 있는 세력이 어딘가. 이 정도라면 정말 알부자일텐 

데." 

"유가라는 세가가 잡고 있지." 

"유가? 그런 곳도 있었나?" 

"허어, 이 사람. 정말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군. 요즘 유가를 모르고도 장사를 한 

단 말인가?" 

비쩍 마른 사내의 핀잔에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마을 밖으로 물건을 팔러 나온 적 

이 거의 없는 그로서는 유가라는 이름이 생소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원래는 주주에 터를 두고 있었는데 확장을 한다고 악양으로 뻗쳐 나온 세가일세. 

그러고 나서 몇 년 지나지 않아 주주에 있을 때의 몇 갑절은 되는 성세를 이루게 됐 

지." 

"호! 가주가 능력이 뛰어난 모양이로군!" 

그는 무릎을 탁 치면서 외쳤다. 그만큼 엄청난 속도로 세가를 발전시키는 게 아무 

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탓이다. 그렇지만 마른 사내는 머리를 긁적였다. 

"가주는 특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모양이야. 자세한 속사정이야 알 수는 없지 

만 악양에 있는 유가를 관리하는 것은 소가주라고 하더군. 그것도 약관 밖에 되지 

않은 여자라네." 

"계집이 이곳이 관리한단 말인가?" 

"쉿! 말조심하게." 

"젠장. 내 입으로 할 말도 못한단 말인가." 

그는 투덜거렸지만 천천히 입을 닫았다. 잠시간 정적이 흐르다가 마른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자지만 대단한 수완가(手腕家)인 모양이야. 더군다나 얼굴 또한 절색이라 보는 

사내마다 혼을 빼앗긴다고 하더군." 

"요녀(妖女)로군." 

"이 근방에서는 소문이 자자한 여인이야. 수시로 돈을 풀어서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 

는 난민들도 돕는 탓에 오히려 성녀라고까지 불릴 정도라네." 

"제길, 나도 그만큼 돈이 있다면 그 갑절 이상은 베풀 걸세." 

말은 그리했지만 위에 있는 입장에서 아래를 굽어살핀다는 게 어렵다는 것을 잘 아 

는 사내였다. 그는 내심 유가의 소가주라는 여인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또 유가에 

대해 궁금증도 치밀었다. 

그때 비쩍 마른 사내가 남은 국수를 먹다가 무엇인가 생각났는지 접시를 내려놓고 

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가 하니까 생각난 게 하나 더 있네." 

"뭔데?" 

사내는 눈을 빛내면서 이야기를 기다렸다. 

"유가 하면 떠오르는 것이 두 개네. 절색으로 알려진 유가의 소가주. 그리고 진군 

휘." 

"진군휘라면 며칠 전에 들은 그……" 

"그래. 자네도 기억하는 군. 그 진군휘가 바로 유가의 소가주와 긴밀한 관계가 있 

네. 세간에는 사랑하는 사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지." 

유가라는 이름도 모르는 그가 진군휘에 대해 아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얼마 전 물 

건을 팔러 움직이는 도중에 만난 상인들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무림맹과 마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장사를 하다가 돌아가는 중이라고 그들은 말 

했다. 그리고 얼마 전 흑색기마대와 척마수호대의 이야기도 덩달아. 

쉬쉬했지만 퍼지는 것이 소문이라 그 둘의 이야기도 무림에 재빠르게 퍼져 나갔다. 

척마수호대가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흑색기마대의 기습으로 인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는 것과 함께 퍼진 것이 바로 진군휘의 이름이었다. 

그가 단신으로 흑색기마대 사이에서 다른 동료들을 도망치게 하기 위해 단신으로 싸 

웠다는 이야기가 퍼진 것이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 흑색기마대의 대주와도 비등 

한 대결을 벌였고.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지만 무림맹이 손을 쓰지 않았다면 이토록 퍼질 소문이 

아니었다. 

무림맹 쪽에서 어떻게든 척마수호대의 이름을 살리기 위해 여운휘에 대해서 더욱 소 

문이 퍼지게 손을 쓴 것이다. 

그 탓에 가뜩이나 요즘 이름이 알려지던 여운휘로서는 더욱더 빠르게 입지를 굳혀가 

고 있는 상황이었다. 

"음 그 자가 유가의 무인이라는 말인가?" 

"그건 아닌 모양이더군." 

비쩍 마른 자가 입을 닫자 사내는 입맛을 다셨다. 

그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다. 벌어들이는 돈도 그렇고 사 

는 방식 또한 너무나 다르다. 

평생을 산다 한들 그런 자들을 볼 수 있을까? 

무엇인가 이야기를 더 꺼내려는 순간 옆에 있던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 

내의 눈이 그에게로 향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는 품안에서 동전 몇 푼을 꺼내 주인에게 쥐어 주고는 몸을 돌 

렸다. 

바로 옆에 앉아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국수를 먹고 

나가는 사내의 허리에 차여져 있는 검을 보고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행색도 초라했고, 허리에 차인 검도 무인의 것이라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했다. 그런 

데 그런 볼품 없는 모습과는 달리 얼굴은 흠잡을 데 하나 없다. 

너무나 극명한 차이였기에 둘은 그 자에게 관심이 생겼다. 

"뭐 하는 자일까?" 

"허리에 검을 찬 것을 보면 무인인데." 

"행색이 너무 초라한데." 

"떠돌이 무사인가 보지. 얼굴에 상처 하나 없고 젊어 보이는 것을 보면 검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인데…… 쯧쯧. 저런 검을 들고 뭘 하겠다는 건지." 

"클클, 겉멋이 들은 모양이지. 무인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멋은 나지 않는가." 

"젊은 청년 하나 죽게 생겼군. 하여간 시끄럽다 보니 별의별 것들이 다 무인이랍시 

고 검을 들고 다니……" 

말을 하던 사내는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걸어가고 있던 사내가 고개를 돌려 자신 

을 돌아다 본 탓이다. 잠시 고개를 돌렸던 젊은 사내는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비쩍 마른 사내가 갑자기 입을 다물자 옆에 있던 동료가 말했다. 

"왜 그러는 가?" 

"저 자가 지금 고개를 돌려서 날 봤는데…… 혹시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겠 

지?" 

"거리가 얼마나 떨어졌는데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단 말인가. 자네도 참 우스운 소리 

나 하는 구만." 

핀잔에 비쩍 마른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크지 않은 소리로 이야기했고 또 

한 그 목소리도 야시장의 북적거림과 함께 사라졌다. 

'들었을 리가 없지. 이것 참 나도 신경이 예민해진 모양이야.' 

그는 단순히 젊은 사내가 자신을 바라본 것을 우연으로 치부했다. 

여운휘는 코끝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가을이군.' 

빨리 돌아오려고 했는데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흑색기마대와 조우 이후 여운 

휘는 무림맹을 향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악양유가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뒤처리가 남아 있었다. 

그 탓에 무림맹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악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악양은 변하지 않았다. 야시장은 오히려 예전보다 활기가 띤다. 

방금 전 가벼이 요기를 하면서도 유가에 대해 들었다. 이제는 무인이 아닌 상인들 

중에서도 유가에 대해서는 널리 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척마수호대는 재정비를 하고 있다. 그 기세도 꺾였을 뿐더러 너무나 많은 피해 

를 입었다. 

무림맹에서는 여운휘의 이름을 쓰려고 했고 그는 그것을 오히려 이용했다. 

여운휘의 발이 향하는 곳은 유가의 건물이었다. 그 동안 검문과의 거래도 더욱 두텁 

게 했을 것이고, 새로운 거래도 많이 텄다는 사실도 들어 알고 있다. 

유가는 강해지고 있다. 재력이 늘면서 저절로 입지도 굳어지고 있는 상태다. 

여운휘가 문에 다다르자 문을 지키고 있던 무인이 급히 문을 열었다. 문이나 지키 

고 있는 그로서 여운휘라는 존재는 마치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도 같은 경외의 존재 

였던 것이다. 

악양유가 안으로 들어선 그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밤바람이 시원하게 온 몸을 감 

싸 안았다. 

유설린의 거처에 와서도 아무런 방해 없이 안으로 들어간 여운휘는 우문학을 만났 

다. 그는 유설린의 방 바로 앞에 서서 여운휘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후, 돌아왔군." 

"설린이는?" 

"안에 계신다. 자네가 왔으니 난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 

문 앞에서 발을 옮기던 우문학이 여운휘를 스쳐 지나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자넬 많이 그리워하셨네." 

"……" 

여운휘는 별 대꾸 없이 침묵했다. 잠시간 문을 바라보던 여운휘는 손을 뻗어 문고리 

를 잡았다. 문이 열리며 여운휘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것은 등을 돌리고 있는 유설린이었다. 그녀는 찬찬히 고개를 

돌렸다. 

유설린은 여운휘의 얼굴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서 와." 

여운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유설린의 말에 답했다. 

"…… 다녀왔다." 

쑥스러운 듯 여운휘는 볼을 긁적거렸다. 

여운휘의 등장 후 유설린의 거처에는 몇 사람이 모였다. 

유설린과 여운휘, 그리고 사라졌던 우문학이 암황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풍운조 

또한 능력으로 본다면 충분히 이 자리에 있고도 남을 자였지만 그는 마교와 유설린 

의 관계를 몰랐기에 제외됐다. 

모두가 의자에 앉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서찰을 받았을 게다." 

암황의 말에 여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서찰을 받아 든 후에 얼마나 

악양유가로 돌아오려고 했던가. 

"일마가 개입되었더군. 나라면…… 물러서겠네." 

"그럴 수는 없소."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여운휘가 대답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런 여운휘의 모습에 암황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굳 

은 심지에 칭찬을 하고 싶으면서도 또 그렇기에 있을 일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대단한 결의. 무인이라면 가져야 하는 덕목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짐이야.' 

암황이었다면 물러섰다. 아니, 물러서지 않는다 해도 거사를 치를 날을 늦추면서 보 

다 더 세력을 모을 것이다. 물론 그리 하면 십 년 이십 년은 우습게 흘러갈 게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그 정도지 평생 꿈으로만 끝날 확률이 오히려 압도적이다. 

그래도…… 암황은 그리 할 게다. 일마가 상대라면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나을 거라 

고 말까지 해 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다. 

"일마를 이길 자신이 있는가? 자네와 나, 녹포괴존이 합공을 한다고 해도 승리를 장 

담할 수 없네. 귀면신황 풍운조가 낀다 해도 그건 변함이 없어. 그에게…… 숫자란 

이미 무의미한 것이야." 

강호십일객이라는 위명(威名)이 생기기 전부터 일마는 존재했다. 암황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을 떨쳤으니 그의 나이가 백세를 넘은 것은 분명하다. 그만한 경륜에 고 

강한 무공이 하나가 됐다. 

최악의 적이다. 

다른 강호십일객 모두가 덤빈다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그런데…… 그런 자와 

싸워야 한다. 더군다나 상대는 마교라는 힘까지 등에 업고 있다. 

"싸운다면 필패(必敗)야." 

타오르는 불꽃에 물을 뿌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암황으로서는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운휘가 입을 열었다. 

"알고 있소. 일마라는 이름 자체도 그렇지만 그가 마교의 힘까지 업고 있는 이 

상…… 이길 수 없다는 건 잘 아오." 

"잘 아는 군. 하지만…… 물러설 것 같지는 않군." 

안다고 말은 한다. 그런데 그런 여운휘의 눈에서는 한치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는 

다. 말은 그리 했지만 결코 물러설 자의 눈이 아니다. 

"그렇소. 알지만 물러서지는 않겠소." 

"어리석은! 왜 사서 죽음을 향해 달려들려는 게냐!" 

"…… 약속했으니까. 마교를 반드시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러니 물러설 수 

없소. 상대가 그 누구든 간에 어떻게 서든 이기고 넘어갈 거요. 그 넘어야 할 상대 

가 일마가 되었을 뿐, 변한 건 없소." 

암황은 더 이상 말이 쓸데없음을 느꼈다. 여운휘가 유설린과 관련 된 이야기를 한 

이상 한치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아는 탓이다. 그는 결코 유설린 

과 관련 된 일에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래. 네가 한다면 그리 하겠지. 그렇지만 지금으로는 무리야. 힘을 더 키워야 

해." 

"나는 무림맹 쪽으로 파고 들 생각이오. 그렇게 해서 보다 더 마교의 힘을 줄일 생 

각이오." 

"그래. 우리의 손도 아닌 다른 자들의 힘으로 마교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면 좋은 일 

이지. 그럼 네가 그쪽에 신경을 쏟도록 하고 난 이래저래 힘들을 끌어 모으지. 그리 

고 조만간 풍운조에게 우리의 일에 대해서 알리고 싶군." 

"풍 노야에게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유설린이 나섰다. 그 전까지는 이미 암황과 이야기를 해봤던 

부분이라 조용히 있었지만 지금 이 말은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암황은 고개를 끄덕임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했다. 

유설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다소 위험 부담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리 쉽게 등을 돌릴 자는 아니더구나. 

더군다나 지금 우리에게는 절정고수가 하나라도 더 필요한 실정이란다. 풍운조 만 

한 고수가 어디 땅에 굴러다니는 돌처럼 흔하더냐. 그는 반드시 이용해야 할 자야." 

확실히 그는 버리가 아까운 자다. 지금은 악양유가 내에서도 여러 가지 일을 맡고 

는 있으나 정작 중요한 일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다. 그에게 유가와 유 

설린에 대해 이야기 해 주지 않은 탓이다. 그 사실을 말하기 전에 그 같은 일을 풍 

운조에게 맡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암황은 이제 후퇴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여운휘뿐만이 아니었다. 유설린도 여운 

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둘의 의견이 그런데 암황이 우길 수는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후후, 말년에 고생복 하나 터졌구나.' 

암황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지금 두려움도 있지만 왠지 모 

를 떨림이 온 몸을 엄습한다. 

무림에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게다. 그리고…… 만약에, 만약에 그 재미있는 일 

이 성공한다면 무림의 이야기는 다시 쓰여질 것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막 진정시킨 암황의 눈이 공중으로 향했다. 그리고 때를 맞추 

어 누군가가 떨어져 내렸다. 

"소가주를 뵙사옵니다!" 

부복한 자는 유설린에게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자의 모습을 확인한 우문학이 눈을 

찡그렸다. 

"내가 회의를 할 때는 이 같은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을 터인데?" 

"명하신 것 중 알아낸 것이 있어 이토록 무례를 범하면서까지 모습을 드러냈습니 

다." 

"우선 이야기를 들어보지." 

팔 호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주께서 명하신 대로 마교 쪽으로 감시망을 넓히자마자 포착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마교에서는 지금 자신들의 힘이 아닌 다른 3세력의 힘으로 정파 무림을 혼란스럽 

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게 실질적인 마교의 권세라는 일마의 명인지는 확실히 밝 

혀진 바는 없지만…… 조사해 볼 가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유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물었다. 

"확실히 조사는 해 봐야 할 것 같군요. 그리고 혹시 그 마교의 명대로 움직이는 자 

들의 정체도 알아내셨나요?" 

"예." 

팔 호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지금 이곳에 온 것도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우문 

학이 채근하듯이 말했다. 

"어서 말해 보거라." 

"현재 알아낸 단체는 세 개입니다. 두 곳은 나름대로 관련이 있는 듯 하지만 아직 

확실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이 지금 무림의 유명 

한 무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습니다. 정보망이 맞다면 이들은 분명 마교의 세력이 

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그들은 일전에 유가와 다툼이 있었던 살령대(殺靈隊)입니 

다." 

"살령대라면 혈리추검 공청이 이끄는 살수 집단이거늘 그들이 움직인단 말이냐?" 

"예, 확실합니다. 최근 정파 무림 쪽에서 알아내려고 했던 살인 사건들은 그들의 손 

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문학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말했다. 

"그럼 그 정보를 무림맹 쪽에 들어가기 쉽게 길을 만들어라." 

"알겠습니다." 

막 몸을 날리려는 팔 호를 향해 여운휘가 멈추라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팔 호는 

멈칫 하며 그를 바라봤다. 

"살령대의 행보에 대해서도 알아봐라. 그들이 어디로 향하는 지 그리고 또 어디로 

움직일 것인지도." 

"어렵지만 해 보겠습니다. 그럼." 

말을 마친 팔 호의 몸이 사라졌다. 다시금 건물 밖으로 나간 것이다. 

암황은 팔 호가 나간 후에야 입을 열었다. 

"잘한 것인지 모르겠군." 

"어차피 저희가 그러지 않아도 알아냈을 겁니다. 다만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진 것 

뿐이겠지요." 

"점점 일이 커지는 듯 하군. 마교와 일마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혈리추검 공청이라 

니……" 

암황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여운휘는 그렇지 않았다. 

혈리추검 공청과는 약조 한 바가 있다. 

'내 앞을 막겠다는 건가.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죽인다고 했던 말을 잊은 모 

양이군.' 

이 상태로 간다면 혈리추검 공청과는 반드시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는 예전에 

했던 말을 지킬 것이다. 

하지만 여운휘도 걱정이 되지 않을 수는 없다. 

엄백린의 마교만 해도 그들에게 버거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그것의 실체 

를 들어내니 상상했던 것 보다 갑절 이상의 힘이다. 

그래도 변함 없다. 마교를 반드시 유설린에게 돌려주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마음만큼은. 

'…… 지지 않아.' 

악양유가에서 세워졌던 계획들이 하나씩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요즘 무림에서 벌어지는 쟁쟁한 무인들의 죽음의 범인이 누구인지도 밝혀졌다. 전부 

악양유가에서 손을 쓴 탓에 벌써 알아내게 된 것이다. 무림맹 쪽에서는 혈리추검 공 

청이 이끄는 살령대를 무림공적으로 선언했다. 

그와 더불어 무림맹과 마교의 싸움도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대로 있다가는 무 

림맹 쪽은 전력이 약화 될 것이고 마교는 그 반대로 한층 위세를 떨치게 될 것이다. 

다소 무리수가 있기는 하지만 무림맹 쪽에서는 결전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이었다. 

그리고 날아든 서찰. 

우문학은 여운휘에게 서찰을 건넸다. 

"뭐지?" 

"팔 호에게 일전에 부탁한 거네." 

그제야 여운휘는 그 서찰이 어떠한 것인지 알아차렸다. 옆에 있던 유설린은 잠시 그 

게 뭔가 하다가 곧 알아차리고는 손바닥을 마주쳤다. 

"아! 혹시 혈리추검의 위치와 행보에 대해서……" 

"예, 소가주. 팔 호가 그것에 대해 오늘 서찰을 보내왔습니다." 

여운휘는 서찰의 적힌 내용을 읽었다. 

간단하지만 그가 궁금해하던 모든 사항이 적혀 있다. 종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여운 

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 누구를 노리는 거지?" 

"위치를 본다면 가능성이 있는 건 셋. 화산검협(華山劍俠) 유학춘, 유성각(流星脚) 

독고유, 혈혈이마(血血二魔)." 

"가능성이 있는 자를 물은 게 아니다." 

여운휘는 종이에서 고개를 때더니 우문학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는 다시금 되씹듯 

말했다. 

"누구냐고 물었다." 

"후, 후후. 역시 자네 답단 말이야. 우리도 나름대로 생각을 한 바는 있지. 우리가 

보기에는 유성각 독고유가 목표일세." 

"움직이는 인원은?" 

"유성각 독고유는 혈리추검 공청도 쉽사리 승부를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 

네. 아마도 살령대 내에서도 빼어난 자들로 열 명 이상이 움직일 듯 하더군." 

유성각 독고유는 광서성 부근에서 유명한 자다.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유성처럼 쏟 

아지는 발은 그의 자랑이다. 각법에 능한 자로 분명 대단한 고수이기는 하지만 무림 

맹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자다. 그런데 그런 그가 목표라…… 

"그가 목표라는 건 확실한가." 

"뭐, 내가 혈리추검 공청이 아닌 이상 알 수 없지. 그렇지만 우리의 답은 바로 그것 

이네. 믿고 안 믿고는 자네의 마음이지." 

여운휘는 침묵했다. 

유가의 정보망도 그렇지만 우문학의 정보망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일개 개인이 지니 

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정보력이다. 그의 아래에 있는 수하들이 그 모든 정보를 사방 

에서 물어 오는 것이다. 대단한 능력들이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유설린과 여운휘 

가 더욱 힘들어졌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나저나 어찌할 생각인가?" 

"…… 그놈 멋대로 설치게 놔둘 수가 없어서 말이지." 

"살령대를 없애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여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유가의 힘의 절반만, 아니 그 절반의 반 정도만 쏟아 부 

어도 살령대 정도는 무림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없다. 그들을 멸문 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명분이 없다. 살수 집단이라 해 

서 그들을 죽였다는 건 어떻게는 이해가 갈 수도 있지만, 글쎄…… 

"그런 일을 벌였다는 눈에 띌 걸세. 비록 무림의 공적이 되었다 한들 우리가 힘을 모 

아 갑작스럽게 그들을 멸문 시키려고 한다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걸세." 

"내 생각도 비슷해. 휘, 그건 오히려 무리수 같은데?" 

"아니. 눈에 띈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조용히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아무도 모 

르게 죽인다면?" 

"일리는 있네만 무엇보다 혈리추검이 그리 멍청한 위인은 아니니……" 

우문학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운휘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 또한 무림 공적이 된 터, 모습을 드러내기는 원치 않을 게 분명하지. 그리고 우 

리 또한 소수 정예로 나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되는데." 

"적어도 우스이 넘길 계획은 아니로군." 

말은 가볍지만 이 일의 중요성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마교와의 결전 이전에 최대한 그들의 힘을 줄일려고 하는 거다. 만약에 있을 기습도 

대비하고. 

살수 집단을 적으로 두고 싸우기에는 뭔가 뒤가 석연치 않기도 하다. 

"혈리추검 공청을 죽이는 일은 뒤로 한다 해도 우선 지금 유성각 독고유를 죽이려고 

움직이는 자들은 어찌 할 생각인가?" 

"막아야지. 적어도 그들이 죽이고 있다는 건 마교 쪽에서도 뭔가 이유가 있을 테니 

까. 무림 공적이 된 지금도 그토록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분명 독고유가 죽여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 탓이겠지." 

우문학은 상념에 잠겼다. 그의 머리는 여운휘의 계획들을 연결 시키기 위해 바삐 움 

직였다. 

눈을 감고 있던 그는 눈을 뜨고는 물었다. 

"그래 이번 일에는 누구누구를 데려가면 되겠는가?" 

"설린이와 나, 그리고 암황." 

"셋이면 되겠는가? 상대는 살령대의 고급 살수들인데 조금 더 데리고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아니. 그거면 돼. 암황까지 넣은 것도 설린이를 지키기 위해서이지 혼자서 그들을 

이길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야." 

엄청난 자신감. 

우문학은 자신도 모르게 슬쩍 웃어 버렸다. 이토록 거만한 자라면 밉살스럽기라도 하 

련만 왜 이 사내에게는 이토록 정이 가는지…… 

"그래. 그럼 나가는 목적은 가벼이 여행 정도로 하면 되겠군. 암황이라면 마부 정도 

로 변장하면 될 테고 자네와 소가주님은 마차에 타면 될 테니까." 

"보름. 그 안에 모두 해결하고 돌아오지. 그 동안 세가를 맡기지." 

"알겠네. 보름 정도라면 아무런 문제 없을 걸세. 소가주님을 잘 보필하게." 

옆에서 또 혼자 남는 건가 하고 뾰루퉁 하게 앉아 있던 유설린은 자신도 데리고 가겠 

다는 말에 활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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