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2/137)

조우(遭遇) 

자달목(紫達木). 

남산(南山) 산맥의 남쪽, 성숙해(星宿海)의 북쪽에 위치한 청해성의 중부에서 서부 

까지 걸친 대 분지다. 고대의 호수가 마른 탓에 생겨난 저지대로 늪과 습지가 많다. 

기후 또한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겨울에는 온 몸을 베어 낼 것 같은 추위가 몰아 

닥치고 여름에는 온 몸을 적실만큼의 땀이 날 정도로 덥다. 

인가 또한 드물다. 그 이유는 물과 땅에 소금기가 베어 있는 탓이다. 그 탓에 자달 

목에는 관목과 잡초가 고작이다. 

인가가 드문 자달목에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의 대 인원이 비밀스럽게 세어 들어 

왔다. 

그 수는 무려 백에 달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무리에 불과했다. 세상을 즐기는 화화공자 같은 자들도 있었고, 

무거운 짐을 옮기는 장사꾼들도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유람을 떠난 한 쌍의 아름 

다운 짝도 있었다. 

그렇지만 결코 그들은 화화공자들도, 장사꾼도, 사랑하는 한 쌍의 짝도 아니다. 보 

이는 것과는 달리 그들은 무인들이었다. 

무기 따위는 보이지 않았지만 터져 나오는 안광까지 완벽하게 갈무리되지는 못했 

다. 

그들은 척마수호대였다. 사천에서 청해에 있는 자달목까지 오면서 미리 준비되었던 

인원들이 합류했다. 그들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산을 오르고 있었지만 같은 곳을 향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기 다른 곳으로 움직이던 척마수호대는 약조되었던 장소에 집결했다. 

"우선은 이곳에서 쉰다. 다음 이동은 조금 있다 이야기하지." 

누남천의 말에 많은 인원이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쉬지도 못하고 급히 자달목까지 

달려 온 탓이다. 

사천성에서 녹림도로 가장하고 있던 마교의 인물들과 싸운 날 도망쳤던 한 명을 잡 

지 못했던 탓이다. 도망친 자가 어디로 향할지는 뻔했다. 마교에 알려지기 전에 최 

대한 빨리 자달목으로 가야 한다. 그 탓에 거의 쉬지도 못하고 이곳까지 달려왔다. 

아무리 빼어난 자들이라고 해도 지치는 것은 당연하다. 

누남천은 터벅 터벅 걸어가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자기의 몸까지 터트리면서 우리를 막을 줄이야……' 

누남천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그 날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까지 

도 잠이 오질 않는다. 그만한 일도 아니었거늘 너무나 많은 인물들이 목숨을 잃었 

다. 

설마 자신의 몸을 터트리면서 까지 공격을 할 줄이야 누가 생각했겠는가. 생각도 하 

지 못한 탓인지 멀쩡했던 인원 중 절반 가량이 죽거나 큰 부상으로 인해 무림맹으 

로 돌아갔다. 

누남천은 마치 자는 것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여운휘를 바라봤다. 그는 눈을 감 

고 나무에 등을 기댄 채로 앉아 있었다. 

운빈, 하을지의 밑에 있던 수하들은 절반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그런데…… 저 사 

내의 밑에 있던 수하들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단 하나의 사상자도 없다. 

우연일까? 누남천은 우연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는 여운휘의 밑에 있던 자를 불 

러 그때의 상황에 대해 물었고 놀라운 대답을 들었다. 

고개를 바짝 숙이라고 한 후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눈을 떠보니 앞에 그가 있었 

다고 한다. 

누남천은 여운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자신의 밑에 있는 자들을 구해냈다는 

것을 전혀 생색도 내지 않는 여운휘의 모습은 누남천에게는 너무나 믿음직했다. 

그렇지만 소문이란 나기 마련. 여운휘의 밑에 있던 모두가 살았다는 사실과 과장이 

곁들여지면서 척마수호대 내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누남천은 알면서도 그 소문을 잠잠하게 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소문은 돌 

면 돌수록 좋다. 사기 진전에 그만한 효과가 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상황도 바뀌었다. 새로이 조를 편성하는데 있어 여운휘의 밑으로 들어가겠다는 자들 

의 수가 압도적이었다. 물론 세 개의 조의 인원의 수가 비슷해야 해서 다시 나누긴 

했지만 그의 이름이 얼마나 알려졌는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적어도 진군휘의 옆에 있으면 죽지는 않는다. 

이것이 척마수호대 내에서 은연중에 떠도는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누남천은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천객과 지객들을 불렀다. 그들은 쉬던 와중에 누남 

천의 부름을 받고 급히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조금 있다가 다시 움직여야 할 게야." 

"많이 지쳤습니다. 과연 제 구실을 할 수나 있을지……" 

"물론 힘들겠지. 하지만 말이야 적들 또한 그리 강한 세력은 아니네. 며칠 전 그들 

보다는 훨씬 능력이 있는 자들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적수는 아닐세. 오히 

려 어기적거리다가 마교의 다른 세력이 가세하면 더욱 힘들어 질 뿐이야. 이번 일 

만 끝내면 푹 쉬게 해 줄 테니 오늘하고 내일만 고생하게." 

운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그리 좋게 흐르지만은 않다. 다 

행히 지금까지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지만 그 도망친 자를 잡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전서구를 이용했다면 마교쪽에 연락이 가도 한참은 전에 갔을 것이다. 

'쉴 시간이 없다.' 

누남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시 움직일 테니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조장을 따르게." 

모두의 눈에서는 짜증이 맴돌았다. 잠을 자는 시간과 식사를 제하고는 거의 쉰 시간 

이 없다. 척마수호대라는 영광스러운 단체에 뽑혔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지 그것 

도 아니었다면 버티지도 못했을 정도다. 

"이제부터는 늪지대가 많을 테니 주의를 기울여서 움직이게. 최대한 흔적을 줄이 

고." 

나무도 적은 자달목이기에 몸을 숨기는 것이 용이치 않다. 

"헉헉." 

수많은 무인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힘도 들거니와 습한 공기 탓에 숨을 들이마시 

는 것 또한 평소와 다르다. 

그렇지만 그들은 꿋꿋이 걸었다. 힘들지만 자부심만은 그들의 가슴에 가득했기 때문 

이다. 

정파에서 선택 된 무인들. 그들을 움직이게끔 하는 원동력은 바로 그것이다. 

자달목은 전에 갔던 사천에 있는 몽산(蒙山)과는 차이가 크다. 그 넓이도 그렇거니 

와 환경 또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밤이 되어서야 잠을 청하기 위해 행군을 멈춘 그들은 꽤나 분주했다. 먹을 것을 준 

비하랴, 짧은 시간도 아까운지 잠을 청하는 자들도 있었다. 

모두가 피곤한 얼굴이었다. 누남천은 피로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들을 한 번씩 바라 

본 후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게야." 

"작전은요?" 

하을지의 물음에 누남천은 품에서 지도 하나를 꺼냈다. 자달목에 대해 아주 자세하 

게 그려진 지도다. 누남천은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들고 천천히 지도 위를 따라 움 

직였다. 

"이렇게 우리가 올라와서 지금 여기." 

누남천의 손이 멈춘 곳은 지금 척마수호대가 쉬고 있는 장소다. 그리고 누남천의 손 

이 다른 곳을 향했다. 

"이곳. 이곳이 바로 적의 기점이다. 원래 같았다면 늪을 지나 이렇게 빙 돌아서 갔 

겠지만…… 알다시피 그러면 반나절 이상은 더 소모가 될 게야. 지형도 복잡해서 조 

금만 길이 틀어져도 하루 이상은 더 날아갈 테고. 우리는 내일 이 늪을 지나 바로 

진격할 걸세. 그리고 이 부근에 와서 양쪽으로 퍼지는 거지." 

모두의 눈이 누남천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따라 지도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누남천은 나뭇가지를 든 채로 팔짱을 꼈다. 

"적들이 알고 있을지도 몰라. 몽산에서 한 놈을 놓쳤으니 아무래도 알려졌을 거라 

고 봐야 좋겠지. 하지만 저들 또한 우리가 늪을 건너서 올 거라고는 크게 생각 안 

하고 있을 거야. 난 오히려 기회라고 보고 있네. 우리는 이곳에서 양쪽으로 퍼지면 

서 바로 공격할 게야. 질문이라도 있는가?" 

누남천은 백산부터 해서 모두를 한 번씩 훑어봤다. 그때 하을지가 다시금 말했다. 

"혹시 원군이라도 있다면 어쩌죠?"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만…… 우리가 공격할 곳이 반드시 자달목이라는 보 

장은 없으니까. 그리고 몽산 때와는 달리 지금은 인원도 다섯 배 이상으로 불었네. 

그 어떠한 자들이 와 있다 해도이기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네." 

하을지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남천은 다른 질문이 있냐는 듯 모두 

를 쳐다봤지만 말을 꺼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이제 자네들도 편히 쉬게. 내일은 정말 힘든 하루가 될 테니까." 

누남천이 등을 돌리자 백산과 여운휘, 하을지, 운빈 또한 자리를 떴다. 

"헉헉!" 

벌써 두 시진이 넘게 흘렀다. 이 긴 늪지대는 도대체 언제쯤이나 끝날는지 감도 잡 

히지 않는다. 앞에서 독려하는 누남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곧 벗어날 수 있으니 힘들 내게!" 

애써 움직이고는 있지만 저하된 체력과 너무나 다른 주변 환경은 그들을 힘들게끔 

했다. 실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척마수호대는 가까스로 늪을 벗어났다. 

누남천의 옆에 서 있던 사내는 이 근방 토박이다. 늪지대 때문에 누남천이 특별히 

무공을 배운 사내 중 한 명을 불렀던 것이다. 그는 누남천을 보면서 말했다. 

"늪지대는 대충 지났습니다. 이제부터는 지도에 그려지신 대로 이동만 하시면 됩니 

다." 

"그런가? 수고했네. 사례금은 약조 한 대로 갔을 걸세. 그럼 자네는 이만 돌아가 보 

게." 

"예, 그럼." 

고개를 꾸벅 숙인 그는 다시금 온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땀을 훔치며 다가온 운빈이 멀어지는 사내를 보면서 물었다. 

"이왕 이곳까지 온 것 그들이 있는 장소까지 동행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아니야. 괜한 사람을 죽을지도 모르는 장소까지 끌고 갈 수는 없지. 저 사내의 말 

대로라면 이대로 쭉 가면 된다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걸세.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바로 움직일 테니 부하들을 잘 정비하게." 

"그리하죠." 

누남천이 서 있던 높은 돌 위로 올랐던 운빈이 아래로 내려서고는 자신의 수하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누남천의 눈이 먼 허공을 응시했다. 

'날씨 한 번 좋군.' 

격전이 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자연은 너무나 평화롭다. 

곧 피로 물들어 버린 장소인데 불구하고 지금만큼은 초록빛 새싹이 돋아난다. 누남 

천은 자신의 검을 쓰다듬었다. 사람을 베는 것이 마음 편할 리가 없다. 마교인들이 

라 해도 슬퍼 해 줄 가족이 있고 무덤에 술을 따라줄 지기도 있다. 

누남천은 마음을 다잡았다.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것은 사적인 것이고 지금은 

공적인 일을 따라야 한다. 지금 누남천은 이 무리를 이끌고 자달목에 있는 마교의 

세력을 없애야 한다. 

숨이나 좀 가다듬었을까 싶자 누남천이 목청을 높였다. 

"다시 움직인다!" 

척마수호대의 대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온 몸에 힘이 없어 보였다. 들고 있는 

병기조차도 가까스로 드는 것 마냥 그들은 맥이 빠져 있었다. 

누남천은 측은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백 명이 넘는 대 인원이 움직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척마수호대의 대원들은 땅에 바짝 엎드려 상황을 살폈다. 이곳 또한 사천의 몽산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거처는 마치 마을처럼 형성 된 상태였다. 문제는 그 크기도 월등 

하거니와 근방의 지리도 상당히 험해 섣불리 움직일 수 없게끔 만들었다. 

백 여명의 무인들은 땅에 몸을 바짝 붙인 채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다. 원래 

대로라면 조금 휴식을 취하다가 눈치 채기 전에 기습을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누남 

천이 망설이는 것은 이유가 있다. 

보초가 없다. 

누가 듣는다면 보초가 없다면 오히려 기회가 아니겠냐고 말하겠지만 그게 그리 생각 

할 수가 없다. 일전에 갔던 몽산은 이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삼엄한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몽산보다 더욱 전략적 요충지인 자달목이 이 

토록 허술하다는 게 누남천의 다리를 붙잡았다. 

건물 근처에서 움직이는 몇 명의 모습이 보였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누남천의 온 

몸을 엄습했다. 무림의 칼밥을 먹은 게 이제는 살아온 인생의 반을 넘어선지도 오래 

다. 그러한 누남천이기에 감이라는 것을 쉬이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언제 움직일 겁니까?" 

백산의 물음에 누남천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건 아는 

데…… 

"움직여야지. 정확하게 일각 후에 거사를 진행하게." 

누남천은 마음을 정했다. 이곳까지 온 것 물러설 수도 없는 싸움이다. 

백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객들에게 일각 후에 거사를 진행한다는 것을 알렸다. 

지쳐 있던 척마수호대 무인들의 눈빛이 변했다. 그들은 제각기 병기를 꺼내 들고는 

바짝 옆에 다가 붙었다. 그리고 옆쪽으로 살짝 빠진 몇 명의 인물들은 품속에서 비 

수를 꺼냈다. 이들은 사전에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을 자들을 위해 준비 된 자들이 

다. 

누남천은 돌 뒤에 몸을 감추고 있다가 그들이 제 자리를 잡자 검을 들어올렸다. 

슉슉! 

날아드는 비수들은 보이던 적들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누남천은 날 

아올랐다. 그 뒤를 척마수호대의 대원들이 빠르게 쫓았다. 

그들은 단숨에 비수가 빗나간 자들과 비수의 간격 밖에 있던 자들의 목을 쳐냈다. 

마치 짜여져 있는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 하나하나가 딱딱 맞아떨어졌 

다. 

비록 은밀히 처리했다고는 하나 비명소리 하나 없이 처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 

데 여전히 이곳은 고요했다. 

누남천이 손짓하자 옆에 있던 사내 하나가 조심스럽게 집 하나에 다가갔다. 

벽에 등을 바짝 붙인 채로 그는 문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었다. 문고리에 슬며시 손 

을 가져다 댄 그는 확 젖히면서 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은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그는 건물로 뛰어들어가 재빨리 살피다가 밖으로 나왔다. 

"저, 저기 아무도 없습니다." 

"뭐? 아무도 없다고?" 

누남천은 혹시나 하는 일이 그대로 맞아떨어지자 허탈하다는 듯 검을 늘어트렸다. 

백산을 문 앞에 서 있는 사내를 젖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벽을 두드려 보거나 땅을 밟아 보면서 혹시나 있을 비밀통로를 찾았다. 그렇지 

만 백산은 전혀 의심이 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뒤늦게 주변에 있는 다른 건물 

을 살피고 온 자들이 각기 보고했다.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 또한 사람은커녕 쥐새끼의 흔적도……" 

각기 발이 빠르고 은신술에 능한 자들이다. 그들이 찾지 못했다면 방 안에 숨어 있 

다는 것도 아니다. 

백산은 우두머리가 머물었을 듯한 가장 큰 건물을 뒤지고 나왔다. 누남천의 눈빛을 

받은 그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누남천이 허망한 듯한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이미 모두 도망친 모양입니다." 

운빈은 주변을 재빠르게 살피고 돌아와 말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누남천은 고개를 

돌렸다. 

"이곳엔 아무도 없네. 우리가 올 것을 알고 도망을 쳤거나, 아니면 녹림도처럼 보이 

기 위해 산적 질을 하러 간 거겠지." 

"후자일지도 모르니까 다시 몸을 숨길까요?" 

"그래야겠지. 우선 몸을 숨기고 그들의 행적을 찾다가……" 

누남천은 갑작스럽게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치켜 든 여운휘를 보고 천천히 말을 멈 

췄다. 여운휘의 눈이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게 변해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녹림도들의 거처는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협곡(峽谷)으로 양쪽에는 높은 구릉 

이 위치해 있다. 그런데 여운휘의 눈이 그 구릉을 향했다. 

누남천 또한 왜 여운휘의 눈이 구릉을 향했는지 알아 차렸다. 누남천은 슬며시 손 

을 들어올렸다. 

'녹림도들인가?' 

그리 생각했다. 아니, 그러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토록 은밀하게 접근했다는 것을 

보아 상대의 실력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게 분명하다. 몇몇은 알아차렸지만 그 외의 

백 명이 넘는 무인들은 갑작스럽게 누남천이 손을 들어 올리고 뒤로 물러서자 의아 

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토록 손을 들면 퇴각을 하라는 신호라는 언급을 미리 들었던 탓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퇴각을 해야 한다. 척마수호대는 천천히 뒤로 빠 

지기 시작했다. 

협곡인 탓에 나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그때였다. 

"으악!" 

척마수호대의 일원 중 하나의 비명이 울렸다. 

구릉(丘陵) 위에서 화살이 쏘아져 내린 것이다. 천천히 움직이려던 누남천은 급히 

외쳤다. 

"전군 퇴각하라!" 

그리고 때를 맞추어 하늘에서는 화살의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척마수호대의 대원 

들은 급히 자신의 병기를 꺼내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느랴 도 

망을 치느랴 그들로서는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긴박했다. 

"크억!" 

방향을 급회전 한 채로 도망친 탓에 맨 뒤에 있던 자들이 선봉으로 바뀌었는데 그곳 

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리고 눈에 보일 정도로 그들은 양쪽으로 갈라졌 

다. 맨 후미에 있던 누남천으로서는 앞에서 터져 나온 비명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 

다. 

'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냐!' 

누남천은 갈리지는 인파 사이에서 적의 모습을 발견했다. 

단숨에 뚫고 도망치라는 명령을 내리려던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버렸다. 

'흐, 흑색 기마대!' 

어느새 협곡의 유일한 길은 흑색 기마대에게 막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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