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1/137)

출전(出戰) 

따각 따각. 

말이 터벅터벅 걸었다. 말발굽 소리가 마른 땅을 울린다. 아주 간소해 보이는 마차 

다. 말 두 마리가 끌고 있고, 온통 검은 색인 전혀 특별난 곳이 없는 마차가 대로 

를 걸었다. 

마차 안에서 밖을 살피고 있던 여운휘가 손을 밖으로 내밀었다. 

흔들거리는 바람, 코끝을 중독 시키는 듯한 풀 내음이 가득하다. 마차 안에는 누남 

천, 백산, 운빈, 하을지가 앉아 있었다. 

누남천은 창 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고 백산은 눈을 감고는 있었지만 잠에 빠진 

것 같지는 않았다. 운빈은 푹 잠에 빠져 든 모양이다. 완전히 풀어진 상태로 그는 

잠에 빠져 있었다. 하을지는 무슨 생각은 하는지 자신의 손톱을 뚫어져라 바라만 보 

고 있었다. 

이렇게 개개인 모두가 달랐지만 향하는 곳은 하나다. 

몽산(蒙山). 

사천성 서부에 있는 산으로 동쪽으로는 청의강(靑衣江)이 흐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몽산은 명다(名茶)를 산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차들은 성내에서 거래된 

다고 한다. 

좋은 차를 생산하다 보니 외부와의 거래가 많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녹림도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무림맹 쪽에서 알아낸 바로는 바로 그들이 마교의 끄나풀이라는 

것이다. 

뭉산의 아래에 있는 객잔에는 이미 이십 여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너무 많은 인원이 움직이면 오히려 눈에 띄는 법, 특히 몽산은 사람의 인적 

이 드문 곳이 아니다. 

차라리 소수정예로 처리하자는 누남천의 의견은 받아들여졌다. 

"이길 수 있겠소?" 

잠이라도 자는 듯 눈을 감고 있던 백산이 말했다. 달리는 마차에서 밖을 살피던 누 

남천이 고개를 돌렸다. 누남천은 백산의 눈을 응시했다. 

"걱정할 필요 없네. 보통의 녹림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긴 하겠지 

만 이쪽은 그보다 더한 정예들이야. 그 숫자도 조사된 바로는 그리 많지도 않고." 

말을 마친 누남천은 앞 자리에 앉아 있는 백산의 어깨를 잡았다. 

"자네들은 귀한 인재들이야.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도록 내가 놔둘 것 같은가?" 

"혹시나 해서 물은 거요." 

말을 끊은 백산은 다시금 눈을 감았다. 마차는 또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따각 따각. 

들리는 것은 말발굽 소리 뿐 아무것도 없다. 

몽산은 지척이다. 그리고 몽산과 다른 무인들이 기다리는 객잔 또한 무척이나 가깝 

다. 상념에 잠겨 있던 여운휘는 마부의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어이~ 어이!" 

말이 앞다리를 치켜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누남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착한 모양이군. 모두들 내리게." 

누남천의 목소리를 듣고 운빈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뭐야? 벌써 도착이야?" 

그는 힘껏 기지개를 피더니 마차에서 내려왔다. 가장 마지막으로 운빈까지 일어나 

자 누남천은 객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다섯 명의 인원이 객잔 안으로 들어서자 점소이가 재빠르게 달려왔다. 

"저 쪽으로……" 

"아니, 미리 와 있는 일행이 있네." 

누남천은 무엇인가 더 말하려는 점소이를 젖히고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객잔 안은 

꽤나 분주했지만 누남천은 찾으려고 했던 사람을 단숨에 찾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 

쪽도 이들을 발견한 건 마찬가지였다. 

마주 앉아 음식을 먹고 있던 두 사람의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포권을 취해 

보이려는 둘에게 누남천이 가벼이 손짓했다. 

그것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신호라는 것을 알아차린 둘은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누남천은 태연히 그곳으로 걸어가 한 쪽에 걸터앉았다. 

"오느라 수고들 했네." 

"아닙니다. 누 대협." 

"다른 인원들은?" 

"모두가 객잔에 와 있으면 눈에 띌 거라고 생각해 다른 곳에서 대기하라고 명령했습 

니다." 

"잘했어. 우리의 모습이 드러난다면 오히려 화가 될 터이니. 그럼 우선 나가세." 

두 명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둘은 스물 중반 정도 되어 보였다. 그렇지만 절도 있는 태도와 날카로운 모습으 

로 보건데 명문대파의 제자임이 분명하다. 

방금 먹은 음식에 대한 돈을 지불한 둘은 밖으로 걸어 나온 후 누남천에게 말했다. 

"따라오십시오." 

그들은 몽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마도 다른 인원들은 몽산 부근에 있는 모양이다. 누남천이 걸어가면서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상한 점은?"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마을에 흐르는 분위기도 평상시와 마찬가지입니다." 

"잘 되었으면 좋겠군." 

"잘 될 겁니다! 지금 광한검 어르신을 비롯해서 뒤에 계신 네 분 모두 위명이 쟁쟁 

한 분이 아니십니까!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그 패기 하나는 마음에 드는 군. 그렇지만 목소리를 낮추는 걸 잊어서는 안 되지. 

귀머거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해서야……" 

호탕하게 외쳤던 사내는 얼굴을 붉히며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 모습에 목소리를 

낮추라고 말했던 누남천 또한 기분 좋은 미소를 흘렸다. 

누남천 또한 조심하라는 의미로 말을 한 것이지 굳이 나무랄 생각은 없었던 탓이 

다. 

그들은 걸으면서도 주의를 살폈다. 혹시나 하는 생각 탓이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렇게 주의를 살폈지만 몽산에서 기다리는 다른 일행을 만날 때까지 특별나 

게 이상한 자는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몽산을 올라선 지 반 시진. 그곳에서 나머지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말 

없이 포권만 취해 보였다. 

누남천이 가장 앞쪽으로 가자 모두가 그를 향해 시선을 움직였다. 누남천은 뒤에 

서 있는 네 명에게 이리 오라는 듯 손짓했다. 백산은 뒤를 힐끔 보고는 앞으로 걸 

어 나갔다. 

"난 누남천일세. 무림에서는 광한검이라고 알려져 있지. 그리고 이 사내가 천객인 

좌리검 백산, 그리고 나머지 셋이 지객인 표향천투 운빈, 진군휘, 그리고 적미쌍검 

하을지네. 앞으로 자네들을 이끌어 줄 인물들이니 잘 따랐으면 하네." 

누남천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좌중을 한 번 훑어봤다. 그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었 

지만 그 눈빛만은 백가지 이상의 대답을 내포하고 있었다. 

"대충 이 일에 대해서는 알 게야. 우리가 상대해야 할 자들은 녹림도. 하지만 만만 

하게 봐서는 안 돼. 그들은 단순한 녹림도가 아닌 마교의 인물들이니까. 우리는 소 

수일세. 그렇지만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질 거라고 생각했다면 이 인원으로 오 

지도 않았을 걸세. 자네들은 정도 무림의 중요한 재목들이야. 개죽음을 당하게 하지 

는 않을 걸세. 그러니 날 믿고 열심히 싸워 주길 바라네." 

누남천의 말에 평소라면 환호라도 할 그들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침묵으로 

그 모든 대답을 대신했다. 

"기습은 밤일세. 그들이 잠든 틈을 이용해 습격해 들어갈 테니 지금들 푹 쉬어 놓으 

라고. 해가 사라질 때쯤 횡군을 시작하면 축시(丑時:1~3시)쯤에 녹림도들의 거처 근 

방에 도달 할 수 있어. 잠시 정열을 가다듬고 바로 기습할 생각이야. 혹 질문이라 

도 있는가?" 

아무도 질문 있느냐는 누남천의 말에 손을 들지 않았다. 누남천은 잠시 더 기다려 

보다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했다. 

"그럼 건투를 빌지. 우선들 푹 쉬게. 그리고 대충 짝을 맞춰서 지객들 밑으로 들어 

가게. 그리고 그런 지객은 천객 백산이 통솔하고." 

누남천은 말을 마치고는 근처에 있는 나무 근처로 가 주저앉았다. 그간 쌓였던 피로 

를 풀기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백산이 말했다. 

"이 세 명 밑으로 알아서들 조를 짜시오. 인원이 스물 두 명이니 일곱, 일곱, 여덟 

으로 나눠져야 하오." 

잠시 서로의 얼굴을 살피던 그들은 천천히 지객의 앞으로 다가왔다. 

운빈의 앞으로 여덟, 여운휘와 하을지의 앞으로 일곱씩 왔다. 백산은 인원수를 맞췄 

다고 생각하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번 임무가 끝날 때까지 지금 짠 조는 임시 조요. 서로 같이 행동하고 지객의 명 

령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시오. 그럼 가볍게 통성명을 한 후에 편히 쉬시오." 

말을 마친 백산은 누남천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무슨 할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 

다. 

여운휘는 앞에 있는 자들을 바라봤다. 남자 다섯에 여자가 둘이다. 옆에 있는 운빈 

과 하을지는 이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지만 여운휘는 그저 뚫어져라 모두를 바라 

봤다. 

"저 자기 소개를……" 

여운휘가 침묵하자 조원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생긴 것이 희끔하고 여성스 

럽게 생긴 것이 꽤나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다. 

"잘 들어라." 

여운휘는 대뜸 반말을 내뱉었다. 불만이 있을 만도 하지만 아무도 그런 내색을 하지 

는 않았다. 지금 여운휘는 그들의 상관인 지객이라는 위치에 있으니까. 

여운휘가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진군휘. 아는 사람도 있을 거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다. 상관없다. 

날 알던 모르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내가 할 말은 간단하다." 

모두가 여운휘를 바라봤다. 여운휘는 천천히 내뱉었다. 

"죽고 싶지 않다면…… 내 옆에 바짝 붙어. 적어도 죽지는 않게 해 줄 테니까. 이야 

기는 끝났다." 

말을 마친 여운휘는 누남천과 백산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 

다. 그는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털썩 앉았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에 조원들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여운휘를 살폈지만 그는 시선 

도 돌리지 않았다. 

철컥! 

검을 가슴에 끌어안은 여운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늘밤은 꽤나 바쁠 게다.

스슥! 

옷깃과 나무가 부딪히며 낮은 울음소리를 토했다. 달은 하늘 중천에 걸렸다. 여인의 

눈썹과도 같은 초월(初月:초승달)이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며 차가운 빛을 뿜어댔다. 

맨 앞에 서 움직이던 누남천은 수풀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는 다시금 뒤로 손짓했다. 

날아드는 신형들은 어느새 누남천의 뒤로 바짝 다가와 붙었다. 호흡은 짧고 은밀하 

다. 움직임은 군더더기가 없고, 훈련이 잘 된 사냥개 마냥 날렵하다. 

커다란 나무 기둥에 바짝 몸을 기댄 누남천은 주변을 살폈다. 멀리에서 왔다 갔다 하 

는 횃불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상당히 거리가 멀었지만 주변이 온통 어둡다 보니 그 불빛은 확연히 알아볼 수 있었 

다. 

누남천의 옆으로 다가온 백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신 대로 저 횃불 든 자들을 처리하라고 몇 명을 보냈소.” 

“내가 말한 대로 했겠지?” 

“물론이오. 전부 경공과 은신에 능한 자들로만 보냈소.” 

“그렇다면 횃불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달릴 것이니 모두들 준비하라고 전하 

게.” 

백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몸을 날렸다. 굳이 모두에게 그 말을 전할 필요는 없 

다. 천객인 백산은 지객들에게만 알리면 된다. 그 이후로는 지객들의 일. 

이처럼 조직으로 움직이니 편한 것은 그것이다. 

지객들이 그 밑에 있는 자들에게 말을 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중에 떠서 돌아다 

니던 횃불들이 떨어졌다. 그건 곧 그 횃불을 들고 있던 자들에게 변괴가 생겼다는 말 

이다. 

“달려!” 

맨 앞에 있는 누남천이 작지만 강하게 외치고는 앞으로 치달렸다. 

순식간에 주변은 어둠에 휩싸였지만,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탓에 그것은 아무런 장해 

도 되지 못했다. 스무 명 이상의 무인들이 약속 된 장소를 향해 달렸다. 그들의 손에 

는 각각의 무기들이 들렸다. 

보초들을 제거하고 들어선 초입에서 본 그들의 거처는 작은 마을과도 같았다. 오십 

여 채에 달하는 집들과 그 외에 커다란 창고들 몇 개, 그리고 우물 등. 결코 녹림도 

무리들의 거처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들이 녹림도라는 정보는 확실했다. 그리고 마교의 무리들이라는 사실 또 

한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겉모습은 어떨지 몰라도 이들은 마교인들이다. 

“엇!” 

누군가가 마을을 향해 달려드는 무인을 발견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잠결에 볼일 

이라도 보러 나왔는지 순간 멍한 얼굴이었지만 곧 날카로운 표정으로 변했다. 

“적이다! 적들이 쳐들어온다!” 

누남천은 소리를 지른 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사내는 재빠르게 허리춤으로 손을 내 

렸지만 무기가 있을 턱이 없다. 아차 하는 사이 사내의 목이 날아올랐다. 

그렇지만 사내가 죽었다 하여 그가 외쳤던 말들 또한 사라지는 건 아니다. 곳곳의 집 

에서 문이 열리며 사내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 대부분은 잠이 덜 깬 표정이었지만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쳐라!” 

누남천은 검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도 닦지 않고 다시금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뒤 

를 다른 무인들 또한 따랐다. 

녹림도들은 당황하면서도 급히 뒤로 물러나며 진을 짰다. 만약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 

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할지 방안이라도 짜 둔 모양이다. 

챙챙! 

채 피하지 못한 자들은 이빨을 들이밀며 정파 무림인들에게 검을 들이댔다. 

하지만 수나, 실력에서나 월등히 밀리는 상대이다 보니 그들은 개죽음을 면할 수 없 

었다. 

두 패는 서로를 마주보며 서게 됐다. 

살기가 감돈다. 이미 피를 흘리고 죽은 자의 수도 열 이상이다. 진을 짜고는 있지만 

그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적들이 공격해 온 것도 그렇지 

만 이들 개개인이 엄청난 고수들이라는 게 더 문제다. 

검을 들고는 있지만 휘두르지 못하고, 발을 있지만 도망치지 못한다. 

이들은 그러한 자들이다. 

맨 앞에 선 자가 사시나무 떨 듯이 떨면서 말했다. 

“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마교의 조무래기들에게 가르쳐 줄 이름이 아니다.” 

누남천의 말이 끝나자 벌벌 떨면서 서 있던 사내의 몸이 천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두렵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던 다른 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녹림도로 생각해서 온 자들이라면 어떻게든 이야기라도 해볼만 하다. 물론 그 

들의 실력을 보아서 결코 녹림도들이나 처리하고 다닐 무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설 

마 했던 문제다. 

마교라는 것이 밝혀졌다면 둘 중 하나다. 

죽이거나, 아니면 죽임을 당하거나. 

아무래도 이번은 후자일 듯 하다. 

“크크, 더러운 정파의 개들이 어떻게 냄새를 맡고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썩 꺼 

져라.” 

누군가가 그리 말하자 진을 짜고 있던 그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갈라진 

길을 통해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사십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로 수염이 가득하고 덩치가 크다. 그리고 그런 그와 너무 

나 어울리는 거도(巨刀)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네 놈이 이 무리의 수장이냐?” 

“그러는 노인네야 말로 개들의 우두머린가?” 

“입버릇이 고약한 놈이군.” 

“개 주제에 존대라도 바란다는 건가?” 

쿠웅! 

사내가 발을 들었다가 지면을 향해 내려치는 순간 들려온 소리다. 일순 주변의 온 땅 

이 흔들린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 소리는 엄청나게 컸다. 

그는 땅속까지 틀어박힌 발을 천천히 꺼내며 말했다. 

“오너라. 내 죽어주지. 하지만 결코 쉬이 죽지는 않을 게야. 네 놈들 중 몇 놈을 지 

옥으로 보낸 후에나 죽어야겠다.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 놈과 같이 지옥을 가는 것 

이 개운치 않기는 하나, 개고기가 맛 하나는 일품이니까! 크하하!” 

즐겁다는 듯 웃는 사내, 문제는 그 사내의 모습에 모두가 위축 되었다는 사실이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에서 풍기는 기세 하나만은 칭찬해 줄 만 하다. 그리고 저 

거도를 들고 있는 걸 봐서는 타고난 신력의 소유자임은 분명하다. 

누남천은 힐끔 뒤를 바라봤다. 비록 이들이 고수라고는 하지만 실전 경험은 적은 편 

에 속한다. 그리고 앞에 서 있는 저 사내 또한 이러한 곳을 맡고 있는 이상 결코 녹 

록한 자는 아닐 것이다. 

무모한 싸움으로 피해를 낼 필요는 없다. 

묵묵히 서서 곧 벌어질 전장을 준비하던 여운휘의 귓가로 누남천의 전음이 흘러들었 

다. 

[싸움이 시작하면 바로 저 자를 치게. 네가 저 놈을 제압해야 할 게야. 괜한 피해가 

나지 않도록 부탁하이. 난 뒤에 있는 자들을 끌고 단숨에 두 쪽으로 나눠서 저들을 

궤멸시키겠네.] 

여운휘가 아무런 대답도 없었지만 누남천은 그가 어떻게 하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 

었다. 

누남천은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리고 단숨에 앞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누남천이 다가오는 순간 사내는 거도를 들어 올렸다. 그는 누남천이 자신을 상대하려 

고 들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누남천은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었고 그 

뒤에 바로 따라 오고 있던 여운휘가 검을 휘둘렀다. 

“엇!” 

사내는 급히 도로 여운휘의 검을 막아냈지만 검에 실린 묵중한 힘에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채 몸의 균형을 잡기도 전에 그의 복부를 향해 여운휘는 발 

을 내질렀다. 

쾅! 

덩치가 커다란 그가 넘어지니 소리도 꽤나 크다. 그는 땅을 향해 꼽히는 여운휘의 검 

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재빠르게 땅을 굴렀다. 그가 방금까지 누워 있던 자리에 여 

운휘의 검이 박혔다. 

재차 공격할 수도 있었지만 여운휘는 검을 천천히 뽑았다. 

반면 간신히 몸을 일으킨 사내는 온 몸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땅에 박힌 검을 뽑으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 그의 눈빛에서 

사내는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싸움을 임했을 때의 긴장감, 혹시나 다치지 않을까 하 

는 은연중의 두려움. 

아무것도 없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검을 휘두르겠다는 일념.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섰다. 여운휘가 한 발 앞으로 내딛자 다시금 사 

내는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물러만 서던 사내는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입술 

을 꽉 깨물었다. 

뒤에서 보고 있는 수하들이 있다. 

“다가오지 마!” 

비명처럼 소리를 지른 그는 여운휘를 향해 자신의 거도를 휘둘렀다. 

벽운일섬(劈雲一閃). 지금까지의 그가 있게 한 초식이다. 이 초식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강맹하면서도 빠르고, 빈틈 또한 없다. 

거한의 도가 여운휘의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거대한 도를 향해 여운휘는 묵묵히 검을 뻗었다. 너무나 극명해 보인다. 여운휘 

와 사내의 차이, 그리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청강검과 엄청난 크기의 도. 

아무리 봐도 여운휘가 밀릴 것만 같은 상황이다. 그렇지만 막상 검을 맞댄 상대로서 

는 그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외관(外觀)으로 보건데 결코 신력이 엄청난 것은 아니 

다. 여운휘의 몸은 근력이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호리호리하게 보인다. 

팔꿈치부터 위쪽으로 아련한 떨림이 느껴진다. 동시에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튀어 나 

왔다. 

"제길!" 

힘이라면 그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팔목이 기이하게 꺾인 바람에 거도를 들고 있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는 서둘러 자 

신의 도를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비록 몸집이 거대하기는 하나 그 움직임까지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거대 

한 몸집과는 달리 그는 비호(飛虎)처럼 움직였다. 

"크아악!" 

챙챙! 우두둑! 

사내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에 슬쩍 눈을 돌렸다가 

다시금 앞을 바라봤다. 사방에서 그의 수하들은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돕 

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그 또한 상황이 여의치 않다. 

사내는 여운휘에게 위축되었던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으며 오히려 태연히 물었다. 

"이름이 뭐냐." 

"진군휘." 

"난 철웅(鐵熊)이다." 

여운휘는 검을 들어 올렸다. 굳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 무리의 수장은 철웅이라고 자신을 밝힌 이 사내. 수장이 쓰러진다면 그 밑에 있 

는 자들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흔들리게 되기 마련이다. 

여운휘는 길게 숨을 들이키고는 몸을 날렸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검에는 엄청난 무게가 실린 듯 했다. 철웅은 자신 

의 거도를 들어올려 여운휘의 검을 막아냈다. 

차앙! 

검과 도가 맞닿는 순간 여운휘의 발이 철웅의 턱을 노렸다. 

부웅! 

예상외로 철웅은 급히 고개를 젖히며 발을 피해냈다. 턱을 스쳤을 뿐인데 뇌까지 울 

린 기분이다. 

철웅의 두터운 손이 여운휘의 안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의 손은 마치 커다란 돌 

덩이 같았다. 투박해 보였고, 또한 단단해 보였다. 

아쉽게도 철웅의 주먹은 간발의 차이로 허공을 갈랐다. 이어지는 철웅의 육중한 발 

차기는 대지를 울렸다. 

철웅으로서는 지금의 순간 순간이 모두 아쉽기만 했다. 조금만 더, 한치만 더 다가 

가기만 했다면 커다란 내상을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그의 머리를 가득 메 

웠다. 

'아니야! 뭔가 이상해!' 

철웅은 기습적으로 내지른 발이 허공을 가르는 것을 보며 지금 자신이 우를 점하고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생각해야 했다. 분명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지만 상 

대는? 상대까지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 

공격은 하고 있지만 여운휘의 몸에 스친 것 하나 조차 없다. 

그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오냐, 팔 하나라도 내어 주마.' 

오른손에 거도를 움켜 쥔 철웅은 강하게 여운휘를 향해 내리쳤다. 

콰앙! 

거대한 소리와 함께 도는 땅에 틀어 박혔다. 그 소리가 너무나 거대했기에 일순 주 

변에서 싸우던 모두의 시선이 이곳으로 쏠렸다. 

채 도를 뽑아내기도 전에 철웅의 옆구리로 검이 박혀 들어왔다. 

그렇지만 이미 예상했던 바 철웅은 온 몸에 강하게 힘을 주고는 몸을 비틀었다. 

"잡았다 쥐새끼!" 

도를 들었던 손이 아닌 왼손이 여운휘의 안면으로 다가갔다. 그의 솥뚜껑 마냥 큰손 

에 얼굴이 잡힌다면 당장이라도 으깨져도 이상할 게 없다. 

검을 박느라 너무 가까웠던 탓에 여운휘는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철웅 

의 손 또한 너무 빨랐기에 여운휘의 얼굴이 마치 끌려가는 듯 할 정도였다. 

그런데 여운휘의 얼굴에 채 닿기도 전에 철웅의 손이 멈추어 버렸다. 

"크윽……" 

그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옆구리를 파고 든 검 때문에 많은 피를 흘려서는 아니 

다. 물론 그 것도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는 지금 호흡조차 하기 힘든 

고통을 경험하고 있었다. 

뻗어진 손이 여운휘에게 잡혀 버린 것이다. 

손목조차 다 두르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손. 그렇지만 그 손에서 나오는 악력에 철웅 

은 땀을 삐질 삐질 쏟아냈다. 

'큭! 거리가 너무……' 

오른손에는 거도가 들린 탓에 움직일 수가 없었고, 발 또한 너무 거리가 가까웠다. 

무슨 수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검을 놓은 여운휘의 손이 철웅의 가슴을 향 

해 움직였다. 

퍼엉! 

"컥, 컥!" 

그의 거대한 몸이 일장 이상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떨어져 내렸다. 

쿵! 

공중으로 붕 떴다가 거대한 소리와 함께 떨어진 철웅은 땅에 엎어진 채로 잔 경련 

을 일으켰다. 몇 번 그렇게 부들부들 떨던 철웅의 손이 도에서 천천히 미끄러져 내 

렸다. 

입가로는 피와 함께 부서진 내장 조각들이 쏟아져 나온 상태였다. 

여운휘는 철웅의 옆구리에 박힌 검을 뽑아냈다. 몸에 박혔던 검을 빼내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여운휘는 전혀 표정의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검을 뽑아 들고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수많은 자들의 눈이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너무나 큰 소리였던 탓도 있고, 자신들 

의 우두머리가 그토록 쉽게 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와아!"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을 지으며 정파의 무인들은 남아 있는 마교도를 향해 검을 휘 

둘렀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마교도들로서는 힘이 빠지는 순간일 수밖에 없다. 이길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호탕하게 외쳤던 철웅의 말대로 몇 놈과 같이 저승길을 가려 

고 했다. 

그토록 자신을 내보이던 철웅이었거늘 실상은 몇 합 되지도 않아 싸늘한 시체가 되 

어 땅을 뒹굴고 있다. 

맨 뒤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녹림도 중 하나가 목청을 높였다. 

"후퇴다! 전원 퇴각해라!" 

그렇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 온통 정파의 고수들 

뿐,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실상 이곳에서 누군가가 살아나가길 바라는 것이 요행일지도 모른다. 

"산까지만 도망쳐! 그렇다면 살아 날 길이 있다!" 

다시금 그 녹림도가 외쳤다. 이곳이라면 전혀 가망이 없지만 산이라면…… 

나무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이용해 몸을 숨길 수라도 있다. 이들이 일년 내내 이곳 

을 지키지 않는 한 분명히 빠져나갈 수는 있다. 

아직까지는 녹림도의 수가 정파 쪽보다 많았으나 이미 승세는 기운 후다. 

압도적으로 밀리는 와중 한 사내의 눈이 번뜩였다. 

철웅의 부하로 이곳의 서열 2위인 그는 아까 전에 후퇴 명령을 내렸던 자다. 다소 

키가 작고 몸 또한 볼품 없어 철웅과는 극히 반대의 느낌을 풍기는 그이지만 실력만 

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작은 몸을 이용한 빠른 공격과 번뜩이는 재치. 마치 화가 난 개처럼 달라붙는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작은 개, 즉 소견(小犬)이라고 불렀다. 

무력이 철웅이라면 지략은 소견이다. 철웅이 죽은 지금 이 곳을 지탱하던 나머지 기 

둥인 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산으로 도망치라고 명령을 내린 그이지만 실상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명. 한 명이라도 살려야 해.' 

소견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살릴만한 자를 뽑으려는 것이다. 

우선 발이 빨라야 한다. 이토록 강한 무인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머리도 좋아야 하고, 결단력도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어영부영 하다가는 결코 도망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숨겨 둔 물건들의 위치까지 아는 놈이라면…… 역시 저 놈이 적격이야.' 

소견의 눈이 누군가에게 가서 박혔다. 살살 눈치를 보면서 빠질 기회를 노리는 자 

다. 솔직히 말해 그가 좋아하는 부류는 결코 아니다. 무인이라기 보다는 간신배 같 

은 느낌이 오히려 강하다. 

위험한 일에서는 빠지길 원하고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용기 따위 없는 위인이 

다. 

그렇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저만한 자가 없다. 그나마 살 확률이 있는 것이 그 뿐이 

거늘 어쩌겠는가. 소견은 입술을 깨물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호달평! 이리 와!" 

주변에서 피할 곳을 찾고 있던 사내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소견 

이 급하다는 얼굴로 급히 손짓했다. 

"무, 무슨……" 

"이 새끼야! 잘 들어! 넌 지금부터 임무가 있어!" 

"임무라니 도대체 그게……" 

"닥치고 들어! 한 번만 더 입을 열면 네 놈의 혓바닥을 뽑아버릴 테니까!" 

창창! 

사방에서 병장기 부닥치는 소리가 가득했다. 겁에 질린 호달평은 말 없이 고개를 끄 

덕였다. 

"넌 도망쳐서 마교로 향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잡히지 마. 그리고 물건들이 어디 

에 있는 지 알려. 할 수 있겠어?" 

"그, 그게……" 

"할 수 있겠어 없겠어! 그것만 말해!" 

"하, 하겠습니다!" 

"네 놈을 위해 다른 모두가 죽어 줄 거다. 솔직히 말해 너 같은 새끼에게 내 목숨 

을 건다는 것 자체가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너 밖에 보낼 놈이 없다. 어쨌 

든…… 살아. 살아서 내가 말한 대로 전해." 

호달평은 제대로 듣고 있는 지도 분간이 되기 힘들 정도로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소견은 그의 뺨을 올려치며 호통을 쳤다. 

"새끼야! 달리지 않고 뭐해! 어서 달려!" 

호달평은 정신을 차리고는 산을 향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서 소견이 소 

리를 질렀다. 

"막아! 절대 뚫려선 안 돼! 우린 이곳에서 뼈를 묻는다! 

후퇴를 하기 위해 뒤로 물러서던 그들은 독하게 마음을 먹고는 그곳에서 버티기 시 

작했다. 소견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밤이지만 그의 눈은 활짝 개인 하늘을 보는 듯 하다. 올려다 본 하늘이 여태까지 

본 그 어떠한 모습보다도 아름답다. 

'후후, 오늘은 날씨가 좋겠어.' 

살살 불어오는 바람을 보아하니 그렇다. 길지 않았던 인생, 그리고 이렇게 끝나게 

될 삶. 

'이왕 죽을 거라면……' 

멋지게 죽으리라. 장렬하게, 그리고 무인답게. 

"비망십이진(緋網十二陣)!" 

소견의 입에서 비망십이진이라는 말이 터지는 순간 그들은 옆에 있는 동료의 얼굴을 

살폈다. 끄덕여지는 고개, 그리고 몇 명의 무인들은 뒤로 급히 빠졌다. 

정파 무림인과 검을 맞대고 있던 자들의 공세가 변했다. 한 놈이라도 더 잡겠다는 듯 

이 발악을 하며 무기를 휘두르던 그들이 지금은 수비에만 열중한다. 

그것을 보고 있던 누남천은 뭔가 모를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저것은 누가 봐도 시간을 끌려는 게야. 뭔가 위험해!' 

궁쥐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지금 딱 마교의 인물들이 그러한 상황이었 

다. 한 명이 산을 향해 도망치는 것을 확인 한 지금 누남천으로서는 한 시가 급한 때 

였다. 

물러서라고 명을 내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뭔가 모를 위험이 있을 지금 무모하게 뚫 

고 지나갈 수도 없다. 

그렇게 잠시 망설이는 동안 뒤에 있던 큰 항아리를 들고 온 몇몇의 사내들은 그것을 

싸움에 임하고 있는 자신들의 동료를 향해 뿌렸다. 붉은 액체가 하늘을 잠시 물들이 

더니 곧 검을 휘두르던 그들의 온 몸을 적셨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이상도 없는 지 여전히 수비에만 의존 한 채 검을 휘둘렀다. 

항아리를 가지고 온 자들은 눈을 감고 자신의 머리 위로 그것을 들어 올렸다. 붉은 

물이 그들의 온 몸을 붉게 물들였다. 

전장이라도 헤집고 나온 병사들의 모습 같다. 

소견은 옆에 있는 수하에게 항아리를 건네 받아 자신의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외 

쳤다. 

"시작한다!" 

검을 맞대고 있던 모두가 어떻게든 뒤로 물러섰다. 그 와중에 목숨을 잃은 자도 있었 

지만 순식간에 소견의 곁에는 열 명 정도의 무인이 달라붙었다. 

그들이 갑작스레 그렇게 뭉치자 검을 들고 있는 정파 무림인들 또한 어떻게 대처해 

야 할지 몰라 잠시 상황은 소각 상태에 접어들었다. 

소견의 눈이 자신의 옆에 있는 하나 하나를 훑었다. 

정확하게 열 셋. 원래의 인원의 오분지 일도 되지 못하는 숫자다. 소견은 결단을 내 

리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마교의 무리들이 뭉치는 것을 본 누남천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각자 자신의 상관의 뒤로 움직여라!" 

누남천으로서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명령이었다. 저들의 몸에서 풍기는 알 수 없는 

비장감 탓이다. 

명령을 들은 정파의 무인들이 움직이고 있을 때 소견의 입에서 결의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개(開)!" 

바짝 붙어 있던 그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렸다. 소견은 옆에 놓아두었던 항아리를 

들어 올려 자신의 몸에 그 붉은 액체를 뿌렸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는 소견의 뜨겁게 달아올랐던 마음을 식혀 주었다. 

그는 항아리를 들어 있는 힘껏 정파 무인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양옆에 있 

는 수하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붉게 물든다 싶더니 뜨거운 양강의 장력이 뻗어 나왔다. 

"진(陣)!" 

양옆에 있던 자들의 몸에 일순 불이 붙었다. 그리고 그 불은 순식간에 주변에 있는 

모두의 몸으로 옮겨 붙었다. 

검을 들고 상황을 관전만 하던 여운휘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비망십이진이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싶었거늘 기억이 났던 것이다. 유 

설린의 거처에서 봤던 서책 중에 비망십이진에 관해 적혀 있었던 것이 있었다. 

기억하지 못했는데 온 몸에 붙는 불을 보는 순간 머리 저편에 있던 비망십이진에 대 

해서 떠오른 것이다. 

'제길!' 

그는 급하게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외쳤다. 

"내 뒤에 붙어!" 

여운휘의 밑으로 들어왔던 일곱 명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린 여운휘가 소리를 질렀 

다. 분명 그가 기억하는 비망십이진이라는 것은…… 자신의 몸을 버려 적의 목숨을 

취하는 수법이다. 

한 마디로 동귀어진이라는 것인데 비망십이진은 단순히 그리 판단할 수도 없다. 

죽음을 각오했다. 아니, 필시 저들은 죽게 될 것이다. 

자신의 몸을 화하여 주변에 있는 적들을 죽이는 마교 내에서도 금지 된 비법 중 하 

나. 

'비망십이진!' 

여운휘가 앞에 서는 순간 소견의 주변에 있는 모두에 이어 마침내 그의 몸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정파 무림인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자 아무런 대처 

도 없이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여운휘는 소견의 몸에 불이 붙는 것과 동시에 뽑아든 검을 움직였다. 

퍼엉! 

온 몸이 불에 휩싸인 열 네 명의 마교인들의 몸이 그 순간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살 

점들이 앞뒤좌우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갔다. 

"피해!" 

누남천의 뒤늦은 고함소리. 그리고 때맞추어 여운휘는 검막을 펼쳐내며 검을 휘둘렀 

다. 

"내 뒤에서 떨어지지 마!" 

여운휘의 말에 뒤로 몸을 날리려던 일곱 명은 멈칫 해 버렸다. 

"아악!" 

살점에 적중 당한 무인 하나가 땅을 뒹굴었다. 살점이 닿은 부분이 완전히 썩어 들어 

가고 있다. 그건 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셀 수도 없이 쏟아지는 살점들은 마 

치 하늘을 덮은 것만 같았다. 

퍽퍽! 

일곱 명은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어쩌다 보니 움직이지 못했고 그 탓에 지금 전장 

의 중심에 있다. 무섭도록 날아드는 살점을 보고 있노라니 정신까지 혼미해진다. 

그 살점에 맞으면 어떻게 되는 지는 주변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벌써 땅을 나뒹구 

는 자들의 수가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은 입에 게거품까지 문 채로 쓰러져 있었고, 그 

런 자들은 반드시 몸 어딘가가 썩어 있었다. 

"고개 바짝 숙여라! 죽고 싶지들 않으면!" 

미친 듯 검을 휘두르던 여운휘의 일갈에 그들은 엉겹결에 그대로 행동해 버렸다. 

미칠 듯한 폭음은 서서히 잦아 들었다. 

주변은 신음소리와 함께 지독한 냄새로 가득했다.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 피 냄 

새…… 

구역질이 솟구친다. 사람의 몸이 썩는 냄새는 썩 좋지 않다. 

여운휘의 뒤에서 온 몸을 웅크리고 있던 사내 하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는 입을 떡 벌린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아수라장(阿修羅場)! 

그 말이 그토록 잘 어울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마교도들은 모두 죽었다. 문제는 그 

에 못지 않게 이쪽의 피해 또한 만만치 않다는 거다. 지금 살아서 땅을 뒹구는 수많 

은 무인들은 전부 정파의 후기지수들이다. 

문득 그는 이토록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것을 알 

아차렸다. 

그리고 그건 그의 주변에 있는 다른 모두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이 근처만은 아무런 

일도 없었기라도 한 먀냥. 

그제야 사내는 자신의 앞을 누군가가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운휘다. 이 근방에서 유일하게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있는 것은 그가 유일하다. 

얼마나 미칠 듯이 움직였는지 머리를 묶고 있는 끈 마저 끊어져 버렸다. 

사내는 반쯤 몸을 일으킨 상태에서 여운휘를 올려다 봤다. 그의 마음 속에서 경외감 

이 일기 시작했다. 바람에 흔들 거리는 머리 카락 속에서 드러난 눈빛은 결코 죽지 

않았다. 

이 근방에 있던 모두가 멀쩡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모를리가 없다. 그 터져 나오는 모 

습만으로도 몸이 굳어버린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리고 그렇게 몸이 굳었 

던 건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무, 무신(武神)이다.' 

꼿꼿하게 서서 앞을 응시하던 여운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러한 그를 사내는 멍 

하니 바라만 봤다. 

흑색 갑주를 입은 자가 허겁지겁 누군가의 앞으로 다가가 부복했다. 

눈을 감고 있던 사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나무에 몸을 기대어 잠시 잠을 취하고 있 

던 백무량이다. 

"무슨 일이냐." 

"마교에서 서찰이 날아 왔습니다." 

"마교에서? 진린 어르신이?" 

"아닙니다. 정보를 담당하시는 좌운님께서……" 

"그가? 무슨 일인데 서찰까지 날린 거냐." 

무릎을 꿇고 있는 자가 대답했다. 

"급한 전갈이라는 것만 알 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 그럼 서찰을 두고 나가거라." 

흑색 갑주의 무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백무량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은 이 사내 뿐만이 아니다. 흑색 기마대 내에서 백무량 앞에서 

빳빳히 서 있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가 나가고 나서야 백무량은 천천히 서찰을 뜯었다. 

좌운이 날렸다는 서찰을 전부 읽은 백무량은 실소를 흘렸다. 

"큭큭. 조무라기들을 상대하라?" 

와락! 

그는 서찰을 단숨에 구겨 버렸다. 

임무가 내려진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하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임무다!" 

각자의 자리에서 쉬고 있던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숲은 온통 거멓다. 바로 흑 

색 기마대의 창과, 갑주, 그리고 흑마들이 그토록 보이게 만들었다. 

말들 마저도 백무량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침묵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자달목으로 향한다. 그곳으로 무림맹의 떨거지들이 움직이는 모양 

이다. 이번은 여태까지 싸워온 자들 보다는 강할 테니 주의하라." 

그때 백무량의 옆으로 다가왔던 백부장 중 하나가 물었다. 

"만만한 자들이 아니라 하면 누구인지……" 

"척마 수호대. 우리 흑색 기마대에 견주기 위한 단체다." 

온통 투구를 쓰고 있는 탓에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웃는 듯 했다. 아무도 상 

대에게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듯 했다. 그리고 이토록 무서운 부대 

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백무량이다. 

백무량은 날 듯이 말 위로 뛰어 올랐다. 그는 자신이 탄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외 

쳤다. 

"출전한다!" 

백무량은 창을 높이 들면서 외쳤다. 

"목표는 척마 수호대의 전멸이다!" 

와아아! 

조용했던 숲이 흑색 기마대의 행보 하나 하나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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