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137)

결단(決斷) 

내일이면 악양유가로 돌아가야 한다. 검문을 거처 남궁세가에 이르기까지 두 달 가 

까이를 보낸 셈이다. 

악양유가는 잘 돌아가고 있다. 풍운조가 있고, 은연중에 도와주는 유가가 있다. 특 

별한 일이 없이 흘러가고는 있지만 악양유가를 책임지고 있는 유설린이 이토록 오 

래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남궁세가 쪽에는 이미 간략하게 인사를 마친 상태다. 내일 아침이 되면 미리 싸둔 

짐과 함께 남궁세가를 벗어나면 되는 일이다. 

우문학은 방금 전 들은 정보를 가지고 유설린의 거처로 찾아왔다. 

"유가 쪽에서 마교에 뿌려 놓은 정보망을 슬슬 가동시킨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허기야 그 일이 일어난 지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요." 

"아마 두 달 정도면 마교 내에 있는 대소사들의 대부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겠죠." 

진자자는 이미 악양유가로 먼저 떠났다. 남궁세가 내에서 다시 기습을 있을지도 모 

르는 탓이다. 

마교와 무림맹의 싸움에 서서히 불이 붙으며 유가에서는 정보망을 가동시켰다. 그동 

안 잠잠하게 잠들어 있던 마교에 있는 정보망들이 하나둘씩 꿈틀거리며 정보를 물어 

다 줄 게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정보를 물어 온다는 건 자칫 잘못하면 되려 이 

쪽의 정체를 알려 주게 되는 일이다. 

유설린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 지금에 결코 정체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여운휘는 침묵했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어딘 

가 모르게 고민이 있는 듯해 보였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유설린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유설린에게는 여운휘의 속내 

가 보였다. 여운휘는 특별한 대꾸 없이 계속해서 창 밖을 바라봤다. 

한참 후에야 여운휘는 유설린의 질문에 답했다. 

"남궁진에게 말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중이다." 

"왜? 그냥 말해주면 되잖아. 어차피 알려주려고 했던 일이고." 

"…… 단순하지 않아서 그래." 

남궁진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또한 분노를 할 것이다. 어떻게든 흉수를 잡으 

려고 할 테고 그러다가 마교의 인물들에게 암습을 당할지도 모른다. 남궁진이 아무 

리 빼어나다 해도 마교 쪽에서 작정을 하고 움직인다면 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남궁진이 다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알려야 할 사실이지만 모르는 것이 오히려 약이 되는 경우가 있다. 

여운휘는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 혹시 그러한 상황이 아닐지. 

답은 정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것은 여운휘다. 

"말해 줘." 

"하지만……" 

"모르면서 당한 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을 거야. 차라리 안다면 복수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 남궁 가주가 죽고 나서는 늦을지도 몰라." 

유설린의 얼굴을 바라보던 여운휘가 고개를 돌렸다. 

문득 그녀가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울기만 하고 언제나 뒤를 졸졸 쫓아다녔는 

데…… 이제는 정말 한 무리의 수장다운 모습이다. 

"나도 아버지가 죽기 전에 엄백린이 그러한 계책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지금 같이 되지는 않았을 거야. 선택은 남궁진이 하도록 하고 휘는 그냥 진실만을 

말해 줘. 그게 나을 거야." 

"그래…… 그게 낫겠다." 

여운휘는 유설린의 아픈 마음을 읽었다. 얼마나 슬픈지 안다는 말은 거짓일 것이 

다. 본인이 아닌 이상 그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해 

할 수는 있다. 

여운휘는 자신도 모르게 뻗은 손을 유설린의 머리에 얹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여 

운휘를 올려다봤다. 

"왜?" 

"…… 많이 컸구나 싶어서." 

"흐음 그런가? 별로 큰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말이 아니라…… 아니, 됐다." 

여운휘는 말을 마치고 침상 옆에 걸터앉았다. 

유설린의 말대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남궁진의 몫이다. 아버지를 죽인 엄백린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선택한 것이 유설린이듯이 남궁진에게도 그러할 권리가 있다. 

'알려주마, 진실을. 그 후에 길을 정하는 것은…… 네 몫이다 남궁진.' 

유설린은 여운휘와 우문학과 함께 마차에 올라섰다. 마차가 천천히 남궁세가의 입구 

를 향해 움직였다. 그곳에는 몇몇의 낯익은 자들이 있었다. 

남궁벽과 남궁진, 남궁려희와 남궁리가 그들이었다. 

"조심해서 가세요." 

"뵙게 되어서 반가웠습니다." 

유설린은 남궁려희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그 옆에 서서 머뭇거리고 있는 남궁리 

에게 말했다. 

"남궁리 소저도 잘 지내세요." 

"아! 예, 소가주님도요." 

남궁리에게 웃음을 보였던 유설린은 남궁진을 바라봤다. 저 사내에게 인사를 건넬 

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볍게 남궁벽과 남궁진에게 목례를 하고 고개를 집어 

넣었다. 유설린이 물러서자 여운휘가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려섰다. 

그는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궁진에게 손짓했다. 

남궁진은 의아해 하면서도 여운휘에게 다가왔다. 여운휘가 남궁진의 귓가로 입을 가 

져다 댔다. 순간 화들짝 한 남궁진이었지만 그가 뭔가 이야기 할 것이 있다고 생각 

한 탓인지 주의를 기울였다.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댄 여운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독이다." 

그 말에 남궁진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독이라 

고 말을 하니 이해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운휘가 재차 말했다. 

"가주의 몸이 그러한 것은 독에 당해서다." 

남궁진은 그 말에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반문을 표하려고 했다. 하지만 움직이기도 

전에 그의 어깨를 여운휘가 붙잡았다. 

"조용히 들어. 남만 오지에 청혈사(靑血蛇)라는 뱀이 있다. 그 뱀독에 당한 거다." 

남궁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가주가 독에 당했다는 여운휘의 말에 묻고 싶은 

게 산더미 같다. 하지만 여운휘는 그에게 물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남궁진은 그렇게 여운휘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흉수는 우리도 잘 모르겠지만 진자자의 말로 이 독을 자주 접하는 자는 손가락 끝 

이 약간 거멓게 물든다고 하더군. 내가 듣기로 죽은 남궁풍이라는 자의 손가락 끝 

이 알 수 없게 변색되어 있었다고 하던데……" 

여운휘는 남궁진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진은 움직일 생 

각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여운휘에게 들은 말이 충격적이었던 탓이다. 어깨를 한 

번 툭 친 여운휘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남궁풍은 남궁혁련의 밑에 있는 자였지? 남궁혁련의 밑에 있는 자들을 조심해. 이 

독은 마교의 일부가 쓴다고 하더군.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거다." 

말을 마친 여운휘는 남궁벽을 향해 유설린과 마찬가지로 가볍게 목례를 취하고는 마 

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열려 있는 문을 통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마차는 보이 

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버렸다. 

남궁진은 멍하니 멀어져 가는 마차를 바라봤다. 

'정말…… 일까?' 

그가 아는 한 여운휘는 결코 거짓을 만들어 낼 만한 자가 아니다. 그리고 여운휘의 

말 따라 남궁풍의 손가락 끝이 이상할 정도로 거무튀튀했기에 뭔가 독에 당한 것이 

아닌 가 하는 소문이 돌았던 적도 있다. 

남궁벽은 멍하니 서 있는 남궁진에게 다가왔다. 

"왜 그러느냐. 진군휘라는 사내에게 무슨 말을 들었기에 그리 하는 게냐." 

"그게……" 

남궁진은 여운휘가 왜 굳이 전음을 쓰지 않고 번거로이 이렇게 말을 했는지 알아버 

렸다. 이런 중대한 일이라면 오히려 전음이 안전하다. 하지만 번거로운 행동을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선택을 하라는 것이군.' 

만약 말이 아닌 전음으로 했다면 남궁벽은 저리 질문하지 않았을 게다. 여운휘가 남 

궁진에게 어떠한 말을 전했다는 것도 전혀 몰랐을 테니까. 

전음으로 전해줬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며 남궁진은 넘겼을 것이다. 

우선 생각을 해 보고 나서 남궁벽에게 말하려 했을 거다. 그러다가 시기를 놓치면 

어쩔 수 없이 묻어버렸을 테고. 확증이 없다면 움직이지 않는 남궁진의 성격을 여운 

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여운휘가 직접 말을 한 탓에 그것을 본 남궁벽이 물었다. 

결론은 두 개다. 진실을 말하느냐 아니면 은폐하느냐. 

그것은 어떠한 의미로는 다른 것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가주가 되기 위한 싸움 

에 끼어 들겠느냐 아니면 완전하게 빠지겠느냐. 

여운휘는 남궁진에게 확실한 자신의 소관을 내비치라고 은연중에 말을 한 셈이다. 

'이 친구……' 

처음엔 무공에 반했고, 후에는 사람 됨됨이에 반했다. 

남궁진의 우유부단한 행동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운데서 힘겹게 당하고만 있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여운휘에게 들은 일을 말하느냐, 말하지 않느냐를 떠나 남궁세 

가의 가주에 대한 일도. 

가주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남궁혁련 쪽에서 마교와 손을 잡은 자들이 있 

다면 쉬이 넘어갈 수 없다. 

남궁진은 남궁혁련의 인간됨됨이를 잘 알고 있다. 남궁혁련이라면 능히 마교와도 손 

을 잡을 만한 자다. 남궁혁련이 마교와 손을 잡았던, 아니면 그의 수하 중 일부가 

그랬던 상관없다. 마교와 무림맹은 일촉즉발의 상태다. 

불만 붙는다면 당장은 터지고 말 것이다. 

수뇌부들 중 일부가 마교의 간자들이라면, 심하게는 남궁혁련이 마교와 손을 잡았다 

면 남궁세가는 정파의 기둥이라는 이름과 자랑스러운 오대세가라는 명칭을 내버려 

야 할 것이다. 

그것만큼은 원치 않는다. 남궁세가라는 이름을 빛내기 위해 남궁철이 얼마나 고생 

을 했던가. 그 옆에서 보던 남궁진이 안쓰러울 정도로 그는 고생을 했다. 

그렇게 힘겹게 쌓아온 남궁세가를 무너지게 할 수는 없다. 

남궁진은 남궁벽을 보면서 웃었다. 

마음은 정해졌다. 무림을 떠돌며 바람과도 같은 삶을 사는 것이 꿈이었지만 남궁철 

을 위해서라면 그 꿈을 조금은 늦추리라. 

"남궁벽 어르신……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게 갑자기 무슨……" 

"이제부터는 제가 나서겠다는 말입니다. 남궁세가의 가주, 부끄러울 정도로 미흡하 

지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남궁벽은 가슴이 벅찼는지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남궁진을 바라봤다. 그는 남궁 

진이 가주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더불어 그의 꿈이 

아무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떠도는 것이라는 것도. 

그런 모든 것을 버리면서 남궁진은 가주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마음을 먹었 

다고 가주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결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는 

가. 

"…… 고맙구나." 

남궁벽은 힘겹게 한 마디를 내뱉으며 남궁진을 와락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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