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137)

자기 자신을 알아라. 

쉬운 듯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를 과신하다가 일을 망치는 경우가 있고, 스스 

로를 폄하하다 오히려 그게 화가 되는 경우도 있다. 

전자든 후자든 다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탓이다. 사무린의 무공은 깊이를 

더했다.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버렸다. 더욱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눈 

을 가지게 됐다. 

사무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여산에 가야 한다. 

도황과 싸워야 하는 것이 더욱 가까워 졌는데 마음은 오히려 편안하다. 마교를 떠났 

을 때와 지금이 너무나 다르다. 사무린은 허리에 검을 찼다. 

그녀는 당당하게 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갔다. 문 근처에서 서성이는 점소이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무린을 발견한 점소이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가시는 겁니까?" 

"예. 일이 있으니까요." 

"저기……"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아, 아닙니다." 

사무린은 고개를 숙인 점소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이 점소이의 소매를 잡았 

다. 사무린의 손이 소매에 닿자 점소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잠시 따라 오실래요?" 

그의 얼굴에 생기가 일었다. 사무린은 가볍게 여산쪽을 향해 움직였다. 말 없이 걷 

는 그녀의 뒤를 점소이가 조심스럽게 따라 붙어 있었다. 

사무린은 마을 밖으로 벗어난 지 이 다경 정도가 지나자 몸을 돌렸다. 

"미안해요." 

"…… 뭐가 말입니까?" 

사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무린은 검을 꺼냈다. 딱딱하게 굳었던 점소이의 

표정이 급기야는 새파랗게 변해 버렸다. 

"무, 무슨……" 

쉐엑! 

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점소이의 가슴이 열리며 피가 쏟아져 내렸다. 사무린은 조 

용히 시체를 내려다 봤다. 그녀의 눈에서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따위는 전혀 보 

이지 않았다. 

너무나 고요했기에 오히려 더 섬뜩하다. 

더욱 깊어진 심계는 그녀를 더욱 더 냉정하게 만들었다. 

사무린은 시체를 처리하고는 여산을 향해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혈루검법의 중반 부분을 익히기 시작했다. 분명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면서 사무린은 

강해졌다. 하지만 목개안(目開眼)의 묘리를 깨우친 탓에 사무린은 도황과 섣부른 일 

전을 할 생각을 완전히 버렸다.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계획의 변화는 없다. 

'암습을 해야 해.' 

분명 사무린은 강해졌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승산은 도황이 한 수 위다. 

예전이라면 섣불리 덤벼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사무린은 자신했다. 

'도황, 당신은 죽을 거야.' 

도황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에 앉아 있는 상대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인물이다. 승복을 입고 있는 사내는 

도황과 비슷한 연배의 노인으로 보였다. 

온수사(溫水寺)의 주지인 적불(赤佛) 윤개다. 붉은 얼굴은 비단 술을 마셔서가 아니 

다. 원래 다른 사람보다 훨씬 얼굴이 붉은 그는 다혈질 적으로 보인다. 허나, 윤개 

를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성격 급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는 부처라고 까지 불릴 정도로 인자하다. 

윤개의 눈이 일어선 도황에게로 박혔다. 

"가려고?" 

"그래.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어." 

"허어, 이 친구 한 잔만 더 하고 가게." 

"미안하지만 오늘은 됐네. 뭔가 마음이 찜찜해서 말이야. 대신 내일도 오지." 

도황의 허리에는 커다란 도가 하나 달려 있었다. 

그의 얼굴은 칠십을 넘어선 나이와는 다르게 젊어 보였다. 도황은 윤개에게 어서 자 

라는 말을 전하고 온수사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윤개와의 인연은 꽤 오래 됐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언뜻 십 년 정도가 된 듯하다. 살아온 환경은 완전히 달랐지만 왠지 모르게 그와는 

마음이 맞는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한 지기처럼 친근한 느낌에 윤개와 도황은 금방 

친밀한 사이로 변했다. 

일부의 사람들은 윤개를 파계승이라 한다. 

술을 마신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지만 도황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가 아는 중 중에서 가장 부처에 가까운 사람은 윤개다. 

그토록 술을 많이 마셔도 결코 아침 불공을 거른 적이 없다. 불공을 드릴 때의 윤개 

의 모습은 단정하다. 방금 전까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변해 버린다. 

도황은 왠지 모르게 어깨가 결렸다. 

'무슨 일인가.' 

나이를 먹으면 비가 올 때쯤 되면 어깨가 결린다고 하던데 벌써 그 나이가 된 모양이 

다. 

'허허, 내일은 비라도 오는 모양인가?' 

시기가 시기이니 그럴 만도 하다. 

도황은 마음을 편히 먹으며 고개를 들었다. 지금의 생활에 도황은 만족하고 있다. 그 

때는 보지 못했던 밤하늘의 별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피의 냄새가 짙은 밤이다. 이런 밤은 언제나 살육이 벌어지곤 했는데 지금 왜 이런 

기분이 드는 지 모르겠다. 

'그와의 일 때문인가.' 

얼마 전 도황은 누군가의 청을 거절 한 적이 있다. 아니, 청이라기 보다는 명령이라 

해야 정확할 것이다. 도황은 그 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두려워 할 필요 없지. 만약 그가 온다면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만약 도황이 상상하던 그가 이곳에 와서 목숨을 가져가려 한다면 내줄 수밖에 없다. 

비록 강호십일객의 하나인 도황이지만 상대가 그라면 승산은 없다. 

하늘을 치켜보다가 실없이 웃으며 고개를 떨구던 도황의 몸이 움찔했다. 

무엇인가 빠르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늦었다!' 

도황은 급히 몸을 비틀었다. 다소 늦게 알아차리긴 했지만 이 정도면 피하는 데 무리 

는 없을 게다. 

"크윽!" 

도황은 오른손의 화끈거림을 느끼며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당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도황은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가 급소를 노린다고 생각하고 움직였다. 급소를 피하는 

데 급급해서 상대가 다른 곳을 공격할 거라고는 판단하지 못했다. 

오른손은 감각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 상태라면 도를 드는 것조차도 무리 

다. 

그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누구냐!" 

"당신의 수급을 가져가야겠어요." 

도황은 젊은 여인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쉬었다. 너무나 젊다. 

무림에 젊은 여인이야 많지만 자신을 죽이러 온 자 치고는 너무나 어리다. 

"아이야. 비키거라. 물러선다면 내 이번에는 용서해 주마."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군요. 당신을 죽이지 않으면 제가 죽거든요." 

여인이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 당당했기에 도황은 순간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저 

처럼 웃을 수 있다는 건 지금 이곳에서 자신과 싸우고 살아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 

는 탓일 게다. 

"네가 내 손에 상처를 낸 것은 어쩌다가 벌어진 우연이다. 자랑은 아니다만 노부는 

강호십일객의 하나인 도황이다. 물론 알고 있겠다만."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시군요. 전 처음부터 당신의 오른손을 노렸어요. 급소를 노린다 

면 피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성공할 확률이 있기도 했지만 실패할 지도 몰라서 확 

실히 성공할 수 있는 손을 노린 거죠. 당신이 손을 다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제가 더 강해요." 

도황은 허리춤에 매여져 있는 도를 힐끔 바라봤다. 

여인에게 검에 베인 건 우연이라 생각했다. 급소를 노리고 공격해 들어왔지만 자신 

의 움직임 탓에 검이 손을 베고 끝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손을 노렸 

던 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패 할 확률이 있어 확실한 손을 공격했다라…… 쉽지 않겠군.'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여 급소가 아닌 손을 노린 여인이다. 자신을 이길 승산이 없었 

다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을 터다. 

도황은 왼손으로 도를 꺼내들었다. 

우수도(右手刀)를 익힌 그이지만 오른손을 못 쓰는 지금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 할 

시간 따위는 없다. 

"자비를 베풀었거늘 받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내 오른손을 너에게 당해 사용할 

수 없지만 노부는 도황이다. 좌수도(左手刀)로도 너를 상대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게 

야." 

여인은 검을 치켜들었다. 

도황의 도는 거대했다. 

여산을 당장이라도 두 동강 낼 정도로 위력적으로 보였다. 도황의 도에서 도기가 피 

어올랐다. 처음부터 본연의 실력을 다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의 온 몸에서 압도적인 기세가 뿜어졌다. 

그 기운은 호랑이마저도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헌데 여인이 움직였다. 마치 고양이처럼 여인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움직이다니……' 

자신을 죽이러 왔으니 고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너무나 겉모습이 연약해 보이는 여 

인이기에 어느 정도 의심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자신의 간격이라고 생각 

했던 공간에서 여인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움직였다. 

도황은 슬쩍 오른손을 내려다 봤다. 길게 생긴 상처에서 쉬지 않고 피가 흘러 내렸 

다.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하겠군. 그렇다면……' 

오른손이 멀쩡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한 상황이다. 

도황은 도를 치켜들었다. 그의 몸에서 폭풍과도 같은 기세가 일었다. 

'속전속결이다!' 

도황의 다리가 땅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도황의 몸이 솟구치는 순간 사무린 또한 움직였다. 

사무린이 있었던 자리를 도황의 도가 스치고 지나갔다. 사무린은 비어 있는 도황의 

옆구리를 향해 검을 내뻗었다. 

카앙! 

사무린이 있었던 자리를 향해 움직이던 도가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며 검을 막아냈 

다. 

'역시 도황이라는 건가. 하지만……' 

그녀의 검이 도황의 어깻죽지를 노리고 날았다. 도황의 도가 서둘러 사무린의 검을 

쳐냈다. 사무린의 얼굴에 알게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승산이 있어.' 

분명 도황은 강했다. 혈루검법을 제대로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아내고 있다. 

도를 절정으로 익힌 자 답께 우수도가 아닌 좌수도를 사용하는데도 결코 약하지 않 

다. 

그렇지만 허점이 보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약간 느리게 반응하며 한 번 움직인 후 원래대로 움직이는 속도 

가 느리다. 

오른손을 노리고 달려들었던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거다. 

도황 또한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의 얼굴에 노기가 치솟았다. 강호십일객이라 

고 불리는 그가 이름도 모르는 여인의 술책에 놀아난 것이 아니던가. 

그와 더불어 검에 드리워진 도기가 맹렬하게 타올랐다. 

도가 바람개비처럼 돌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도에 맺혀 있는 하얀 도기 또한 춤 

을 췄다. 사무린도 검에 내공을 주입했다. 검기를 덧씌운 도와 검이 부닥쳤다. 

충격파가 밀려왔다. 사무린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공의 기본은 호흡,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 또한 호흡이다. 초식을 펼치기 전 호흡을 가다듬는 것은 시작이자 끝인 셈 

이다. 

도황의 얼굴에 땀이 흘러 내렸다. 

'허허.' 

태어나서 이처럼 긴장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오랫동안 무림에서 몸을 뺀 탓인 

가? 

감각이 죽어 버렸다. 더불어 우수도가 아닌 좌수도인지라 반응이 너무 느리다. 

도의 극의를 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도황을 보며 도의 극을 본 자라고 칭하지 

만 정작 그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도황이 여산에 들어온 것은 그 때문이다. 도의 극의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여산 

에 들어오고 나서 오랫동안 무림과 단절하고 지냈다. 보려고 했지만 아직 보지 못했 

다. 

'아직은…… 아직은 죽을 수 없다!'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도의 극의를 보기 전까지는 결코 죽을 

수 없다. 

도황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쳐냈다. 

그는 사무린이 떨어지자 도를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겼다. 

도황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깊은 상처 탓에 이 거대한 도를 드는 것조차도 무리다. 

하지만 도황은 그 거도(巨刀)를 들었다. 상처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벌어진 상처가 

흉물스러워 보였고, 도황의 얼굴은 땀으로 가득했다. 

그래도 버텼다. 온 몸에서 비처럼 땀이 쏟아졌지만 악으로 버텼다. 

그의 도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빛이 뿜어졌다. 새하얗게 뻗어진 기운이 무려 삼 장 

에 달할 정도로 길어졌다. 

사무린의 차분했던 얼굴에 놀람이 스쳐지나갔다. 

'도…… 강(刀 ).'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강함이 도황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하얗게 타오르는 검강과 대조적으로 도황의 오른손은 붉은 피로 물들어 버렸다. 붉 

은 피에 하얀빛은 너무도 어울렸다. 

주르륵. 

입가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도황은 도를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가마. 파천도법(破天刀法) 제 삼초(第 三招), 일기파천황(一氣破天皇)이다." 

도강이 하늘을 찢을 듯이 다가섰다. 도황의 절기인 파천도법. 삼초식으로 이루어 졌 

으며 그 삼초는 그를 천하 제일의 도객으로 만들었다. 그의 최고의 절기가 이런 산중 

에서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여인에게 펼쳐졌다. 

콰앙! 

대기를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도황의 거도가 움직였다. 사무린은 옆으로 몸을 피했 

다. 우습지만 맞받아 칠 자신이 없다. 저 정도의 도강을 그대로 받는다면 검이 당장 

에 두 동강이 나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시간을 끌어야 해.' 

도강이나 검강은 위력적인 반면 내공의 소모가 극심하다. 가뜩이나 심한 상처를 입 

어 도를 지탱하는 것조차 힘든 도황이라면 더욱 문제가 크다. 사무린은 그가 제풀에 

지쳐 쓰러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쉽지만은 않다는 거다. 과연 도황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는다. 강 

호십일객의 위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피부로 절감했다. 

호랑이는 약해져도 호랑이다. 제 상태가 아닌 상태에서 펼치는 도황의 일기파천황이 

라는 무공은 섬뜩하다. 조금만 방심한다면 당장에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다. 

사무린은 도황의 도를 피하면서도 가끔씩 검을 찔러 넣었다. 도황을 주춤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공격을 당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방어에도 신경을 써 

야 한다. 신경이 분산된다면 더욱 더 집중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피로는 더욱 깊어진 

다. 

그리고 사무린의 계책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도황의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많아졌다. 호흡도 길어졌고 점점 움직임도 더디게 변하 

고 있다. 

'벨까?'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만 같다. 

그 순간 도황의 도가 사무린의 앞머리를 쓸고 지나갔다. 반걸음만 더 내딛었다면…… 

'아냐, 지금은 다가가면 위험해.' 

그 일격에 사무린은 마음을 바꾸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도황을 벨 확률은 더욱 높 

아진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차피 길어진다 해서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는 상황이 

다. 

여산을 날려 버릴 것처럼 미친 듯 도를 휘두르던 도황의 도가 마침내 멈추어 섰다. 

그의 도를 우렁차게 울부짖게 하던 도강이 천천히 사라졌다. 

"대단하구나." 

도황의 입에서 진심 어린 경탄이 터져 나왔다. 

앞에 있는 여인에 대한 놀라움이다. 이제는 도를 든 오른손에서 아무런 감각도 일지 

않는다. 지금 도를 들고 있는지조차 의아함이 들 정도다. 

사무린은 말 없이 검을 치켜세웠다. 도황은 침묵한 채로 도를 들어올렸다. 

'도의 끝을 보기 전까지는 죽고 싶지 않았거늘 하늘이 날 버리는 구나.' 

하늘에 대한 원망까지도 생긴다. 도황이 피식 웃었다. 하늘에게 원망이나 하고 있고 

참 많이도 약해졌다. 

도황은 다시금 일기파천황의 자세를 취했다. 

도에서 도강이 일었지만 그 기세가 아까만 못하다는 게 확연하게 드러났다. 

허나 도황은 지금 온 몸에 있는 힘을 쥐어짜 낸 것이다. 은연중에 곧 승부가 날 것 

을 짐작한 탓이다. 

사무린이 움직였다. 천천하지만 확실하게. 

'점점 내 간격이 먹혀 들어가는 군.' 

도황이 자신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영역들이 천천히 사무린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했 

다. 승세가 사무린을 향해 기울었다. 

카카캉! 

수차례 검과 도가 부닥쳤다. 도황은 밀리지 않겠다는 듯이 안간힘을 썼지만 감각이 

없어져 버린 오른손은 그를 배신했다. 

도황은 뒤로 물러서는 순간 느껴버렸다. 

'…… 허, 허허! 끝이로구나!' 

오른손이 떨어져 버렸다. 도를 쥐고는 있지만 땅을 향해 내려진 오른손은 더 이상 움 

직이지 않았다. 

사무린의 몸이 앞을 향해 번개처럼 쏘아졌다. 지금 이 기회를 사무린이 그냥 놓칠 리 

가 없다. 

다가오는 검을 바라보는 도황의 눈에 수많은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몸 아래에서부터 

무엇인가가 끓어오른다. 

'아직 죽을 수는 없다!' 

뭔가 끓어오르며 단전을 감싸안는 순간 도황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한 오른손이 움직이자 사무린은 고개를 비틀었다. 하지만 결코 멈추지는 않았다. 

푸욱! 

사무린의 검이 도황의 가슴에 박혔다. 

도황의 도는 사무린의 얼굴 옆을 지나갔다. 

그렇게 잠시간 둘은 그 상태로 멈추어 섰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광경이다. 

"으, 으하하!" 

도황이 웃음을 터트렸다. 웃느라 벌려진 입 사이에서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 

도로 많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옷을 적셨고, 얼굴을 피로 물들였다. 

그런데 웃었다. 마음에 얹혔던 것을 풀기라도 한 것처럼 미친 듯이 웃었다. 

사무린은 침묵했다. 그녀의 뒤에 있던 나무들이 마치 태풍에 휩쓸리기라도 한 것처 

럼 모두 꺾여 버렸다. 

도황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사무린은 도황의 가슴에서 검을 뽑았다. 쉬지 않고 흘러 

내리는 피. 화타가 온다 해도 소생을 불가능하다. 

도황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우스운 일이다. 검에 찔리기 바로 직전에 그토록 보 

고 싶었던 도의 끝을 보았다. 아니…… 착각일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욱 높은 단계 

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족했다. 

지금 펼쳤던 그 일수는 도황이 살아오면서 펼쳤던 그 어떠한 무공보다도 위력적이었 

으니까. 

'보고야 말았다. 보고야 말았어! 비록 이렇게 죽지만 내 인생은 헛되지 않은 게 

야……' 

도황은 웃으며 눈을 감았다. 수많은 인연을 맺어왔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 

다. 

적불 윤개의 모습이 떠오른다. 

'미안하이. 내일도 가겠다는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군……' 

도황은 눈을 감은 그대로 천천히 잠이 들었다. 

침묵하고 있던 사무린은 검에 뭍은 피를 비단으로 닦아냈다. 

따끔. 

사무린은 손을 들어 볼가를 만졌다. 얇은 상처가 얼굴에 생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 

가 흘러나온 것이고. 손에 뭍은 피를 보며 사무린은 다시금 도황을 바라봤다. 

만약 이 경지에 도황이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섰다면…… 

'죽은 건 그가 아니라 내가 되었을 테지.' 

사무린은 도황의 시체를 두고 몸을 돌렸다. 도황의 내지른 일격에 쓰러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사무린은 놀란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그때 고개를 피하지 않았더라면 사무린의 검은 채 닿지도 못하고 끝났을 게다. 

다시금 얼굴이 따끔거린다. 작고 얇은 상처이거늘 왠지 모르게 너무나 쓰라리다. 

'하지만 내가 이겼어. 당신이 강하다 해도 승자는 나야.' 

사무린은 산 아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이유야 어쨌든 그녀는 살았고 도황은 죽었다. 임무는 완수한 셈이다. 

'그가 내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본다면 어떠한 표정을 지을까?' 

사무린은 진린이 지어 보일 표정을 생각하며 자조에 가까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살았어.' 

이제야 살았다는 실감이 온몸을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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