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137)

장국광(張國光)은 푸들푸들 떨었다. 

평소 성격이 급한 그로서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급한 성격은 나이를 먹은 지금에도 전혀 변함이 없었 

다. 

"자, 장강의 조무래기들이 무림맹과 손을 잡았다고!" 

콰앙! 

결국 장국광은 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상을 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온통 붉게 변해 극도로 화가 치밀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의 강하게 

쥐인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빨까지 가는 장국광의 모습은 실로 사람을 오싹하게 만 

드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예전 장국광이 무림에서 활동을 할 때는 그의 얼굴이 붉어지면 모두가 도망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무인이었다. 동시에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고수 

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그가 이토록 분노를 토해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에 있는 그를 제 

한 다섯의 사람 중 그 누구도 그 모습에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만 앉아." 

"좌운(左雲)! 네 놈은 분하지도 않단 말이냐! 수적나부랭이가 감히 우리 마교를 배 

신하고 무림맹에……" 

"장국광! 거사(擧事)를 그르칠 셈이냐! 당장 자리에 앉아!" 

좌운이라고 칭해진 노인의 서릿발같은 호통에 장국광은 움찔했다. 비록 연배는 같으 

나 장국광은 좌운의 하수였다. 뭔가 있어 보이며 덩치 또한 거대한 장국광과는 다르 

게 좌운은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노인이다. 

하지만 그 작은 덩치의 노인의 손에 죽은 자의 수만 해도 수백을 넘어선다. 더군다 

나 지금은 개방과 맞먹을 정도의 정보망을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노인…… 

좌운은 고개를 돌려 한 사내를 바라봤다. 

겉보기에는 좌운보다 훨씬 어려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의자에 깊게 몸을 묻고 장국광을 바라보는 자는 진린이었다. 그는 아이들이나 가지 

고 놀만한 구슬 두 개를 들고 손바닥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진린은 여전히 구슬을 굴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다 떠들었느냐?" 

"죄, 죄송합니다!" 

"넌 말이야 항상 그게 문제란 말이야. 그 함부로 나불거리는 입……"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진린은 두 개의 구슬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공력을 실은 탓인지 구슬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 장국광 

의 복부를 가격했다. 

"크윽!" 

복부를 가격하고도 계속해서 돌던 구슬이 마침내 떨어지는 순간 장국광은 숨을 몰아 

쉬었다. 

"헉헉!" 

"앞으로 또 그 입을 함부로 놀릴 때는 지금처럼 끝나지 않을 게야."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장국광의 입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진린은 구슬 하나로도 

장국광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지금도 공력을 적당하게 실었기 때문에 

이 정도였지 마음만 먹었다면 지금 이 일수로 장국광은 죽었을 지도 모른다. 

장국광이 침묵하자 진린이 입을 열었다. 

"장강수로십팔채 따위야 어떻게 하던 큰 상관은 없지. 그 놈들이 낀다 해서 우리가 

무림맹 따위에게 밀릴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냥 놔 둘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좌운, 자네의 말대로야.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지만 추후의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 

는 본때를 보여줘야지. 감히 우리에게 등을 돌리면 어떻게 되는 지를 뼛속 깊숙이 

까지 각인시켜 주겠다." 

"누굴 보내면 좋겠는가? 장강수로십팔채 중에서 하나를 쓸어버리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신경을 써야 할 터인데." 

"큭큭. 이미 생각해뒀지." 

진린은 웃음을 흘렸다. 

장강수로십팔채, 분명 버리기에는 아쉽지만 그렇다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도 아니 

다. 이왕 무림맹과 손을 잡았다고 하면 그 힘을 약하게끔 만들 필요가 있다. 더불 

어 배신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지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혹시……" 

좌운은 진린이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듯이 말꼬리를 끌었다. 그리고 

진린은 좌운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의 생각대로야." 

"허! 그럼 이 일은 이미 끝난 것과 진배없구먼. 백무량이 이끄는 흑색 기마대 

라…… 오랜만에 무림이 시끌벅적해지겠어." 

아직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거늘 좌운은 마음을 놓아 버렸다. 임무를 수행할 자 

들이 흑색 기마대라면 이미 있을 일이 그림처럼 머리에 그려진다. 

피에 젖은 수채 하나가 당장이라도 눈앞에 펼쳐 질 듯이 선명하다. 

더군다나 백무량까지 나선다면 패배할 이유 따위는 전혀 없다. 

"교주의 직인은 내가 받겠다. 좌운 자네가 백무량에게 연락을 취하도록 하게." 

"흐흐, 그 놈의 교주는 아직도 그 모양인가?" 

"그래. 비록 폐인(廢人)이라고 해도 그의 직인은 받아야 하니까." 

"하는 일마다 일일이 술에 찌들어 버린 교주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 우습군." 

"기다려. 쓸모가 사라질 때쯤이면 더 이상 그 놈은 숨을 쉬고 있지 않을 테니까. 그 

리고 곧…… 그리 될 게야." 

진린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조만간 무림에는 하나의 소식이 진동할 것이다. 흑색 기마대에게 장강수로십팔채의 

하나가 완전하게 몰살되어 버렸다고. 

그 사실은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다. 

남궁풍의 죽음으로 인해 남궁세가는 꽤나 시끌벅적했다. 이 일을 남궁진이 일으켰던 

일으키지 않았던 그건 남궁혁련 쪽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남궁풍이 죽은 건 그들에게 오히려 기회였다. 남궁혁련 쪽은 어떻게든 남궁풍의 죽음 

을 남궁진과 연관시키기 위해 무던 애를 썼다. 조금이라도 무슨 단서가 나온다면 당 

장에 남궁진은 남궁세가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단서가 없다는 거다. 있는 단서라고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비수 

한 자루 뿐. 그것을 가지고 남궁진과 어떻게든 연관을 시켜보려 해도 그건 힘든 일이 

었다. 

남궁세가 내에 있는 감찰대(監察隊)가 바쁘게 움직였지만 결국 아무런 단서도 물지 

못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이 일은 그리 쉬이 덮어질 문제는 아닌 듯 싶다. 남궁세가 

의 장로에 해당되는 남궁풍이 다른 곳도 아닌 세가 내에서 이토록 죽음을 맞이한 것 

은 결코 경시할 수 없다. 

감찰대의 수장인 남궁표는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눈을 번뜩였다. 

아무런 단서도 없고, 범인으로 짐작되는 용의자도 없다. 

'오리무중(五里霧中)……' 

그는 이렇게 단서가 없는 일을 맡게 됐을 때 홀로 방안에 앉아 사색에 잠겼다. 이토 

록 조용한 곳에서 골몰히 생각하다 보면 무엇인가 놓쳤던 것을 생각케 되기도 하는 

탓이다. 

숨소리 마저 죽은 듯이 고요하다. 

'반드시 잡고야 만다. 감히 나 남궁표가 있는 남궁세가 내에서 버젓이 살인을 저지 

른 놈의 면상을 반드시 보고야 말 것이다!’ 

우선은 단서를 찾아야 한다. 뭔가 놓쳤을 만한 것도 있을 듯도 한데…… 

남궁표의 머리에서 상황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 남궁풍이 죽어 있던 모습과 그 

때 주변의 풍경 또한 뇌리에 각인 된지 오래다. 

남궁표는 신기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기억력은 한 번 본 것을 결코 잊게 만 

들지 않는다. 그 탓에 그는 사건 현장을 한 번만 둘러본다면 그때의 상황을 그대로 

머릿속에 기억해 놓을 수 있다. 

이번 사건 또한 마찬가지다. 남궁표의 머릿속으로 주변의 풍경들이 스쳐지나갔다. 혹 

여 이상한 것이 없나 하던 남궁표가 갑자기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찾았다!” 

식기(食器)들의 모습이 생각난 것이다. 주방에 식기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기에 남궁표 또한 지금까지 전혀 그걸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 

했다. 하지만 식기들의 위치가 뭔가 어설펐다. 

식기의 위치 하니 떠오르는 것이 주방을 담당하는 시녀들이다. 

그곳은 분명 주방이었고, 남궁풍이 죽은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면 시녀가 있었을 시 

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뭔가 단서가 잡힐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궁표는 자리를 박차고 건물 밖으로 달려 

나왔다. 건물 주변을 호위하고 있던 감찰대원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남궁표의 뒤를 

따랐다.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저 어두운 공간 속에서 사색에 잠겼던 남궁표가 무엇인가 

를 깨닫고 달려가는 일은. 이럴 때 말을 걸어봤자 제대로 된 대꾸도 듣지 못한다는 

건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대원들은 그저 묵묵히 남궁표를 따를 뿐이었다. 

시녀장은 부들부들 떨면서 남궁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는 오십 줄에 들어섰고, 그녀의 밑에 있는 시녀의 수가 백 명 이상이라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것이 전혀 쓸모가 없었다. 

남궁세가 내에서 감찰대는 꽤나 두려운 자들이다. 그들이 움직였다는 것은 무슨 문제 

와 결부된다는 말이었고, 그것이 좋은 것과 연결되는 경우가 극히 드문 건 당연하다. 

시녀장은 당장이라도 죽일 것 같이 노려보는 남궁표의 모습에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러니까 그 날 저녁에 주방을 정리하던 것은 옥년이라는 시녀였고, 지금은 갑자 

기 종적을 감췄다는 거냐?” 

“예, 나으리.” 

“왜 보고를 하지 않았느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그녀는 더욱 고개를 수그렸다. 아무리 남궁세가의 시녀들 

을 통솔하는 그녀라고는 하나 남궁표의 앞에서는 다른 시녀와 전혀 다를 게 없는 입 

장이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겨, 겨우 시녀 한 명 사라진 것을 보고까지 해야 한다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 

저 전 남궁풍 어르신이 주방에서 죽자 그 계집애도 겁에 질려 도망쳤다고 만 생각했 

습니다.” 

“네 년의 안일한 생각이 중요한 단서 하나를 놓치게 했다! 이 것을 어떻게 사죄 할 

것이냐!” 

“주, 죽여주십시오 나으리!” 

남궁표는 오십이 넘은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리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그 옥년이라는 여인이 이번 일에 관련되지만 않았더라면 아무 문 

제도 없었을 일이다. 

남궁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일은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지. 하지만 추후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 

면 너의 목을 치겠다. 앞으로는 어떠한 보고라도 올려라. 이번 일의 범인이 잡힐 때 

까지는 사소한 것도 결코 흘려 버리지 마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녀장은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렸다. 

물러서라는 남궁표의 손짓에 시녀장은 급히 건물에서 벗어났다. 마지막 단서라고 생 

각했던 시녀가 모습을 감추니 맥이 탁 풀린다. 

남궁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시 아무런 단서도 없다는 건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나마 잡았던 단서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이 아닌가. 

밖으로 그 옥년이라는 시녀를 찾기 위해 사람들을 풀 것이다. 하지만 무엇인가 정확 

한 단서가 없는 지금 모든 힘을 그 시녀를 찾기 위해 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옥년이라는 여인을 찾기 위해서 투입되는 인원을 그다지 많지 않을 거다. 

찾을 확률은 거의 영에 가깝다. 

‘귀신이 아니라면 단서가 있을 것이다. 단서를 찾자. 단서를 찾지 못한다면 남궁세 

가는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른다.’ 

남궁표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반드시…… 반드시 잡고야 말 것이다. 

우문학이 떠난 지 보름 째 되는 날 그토록 기다렸던 사람이 도착했다. 

남궁진 덕분에 어렵지 않게 세가 내로 들어온 진자자는 유설린을 보며 고개를 숙였 

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진 노야도 건강해 보이시네요.” 

“허허, 이 늙은이야 죽지 않고 사는 것만 해도 복이지요.” 

“우문학에게 이야기 들으셨나요?”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뭐 때문이냐고 물었거늘 입을 봉한 것처럼 꼭 다물더군 

요.” 

유설린은 고개를 돌려 우문학을 바라봤고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일언반구도 하 

지 않았다는 표시다. 

그녀는 우선 주변을 살폈다. 이 이야기는 결코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런 유설린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여운휘 또한 주변에 누군가가 있는지 신경 

을 쏟았다. 

[진자자가 나타나자 따라 붙은 놈들이 다섯 정도. 남궁세가 쪽의 놈들로 보이는 

군.] 

[그럼……] 

[만약을 위해 진자자에게 전음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지.] 

유설린은 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진자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남궁세가의 가주이신 남궁철 어르신이 무슨 병인가에 걸리신 모양이에요.” 

[제 말에 대꾸를 하면서 전음에 주의하세요. 주변에 살피는 자들이 있어서 이렇게 부 

득이하게 전음으로 말을 하게 되는 군요.] 

입과 속이 따로 논다. 겉으로는 남궁철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본론은 결국 전음으로 

하고 있다. 진자자는 움찔 하는 듯 했지만 곧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대답했다. 

“허어, 남궁세가의 가주님이 몸이 편찮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토록 심하십니까?” 

“예. 근처에 있는 의원들 모두 손을 저은 상태인가 봐요.” 

[뭔가 단서를 구했어요. 독인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언제 까지 알아봐 주실 수 

있나요?] 

진자자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턱으로 손을 올렸다. 하지만 손가락 세 개가 펴져 있다 

는 것을 놓칠 정도로 유설린은 아둔하지 않다. 그녀는 그것이 삼일이라는 것을 의미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혹시나 진 노야가 아시지 않을까 해서 부르셨어요. 진 노야는 생소한 병들 

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시니까요. 한 번 진맥 정도 해 보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 

니시죠?” 

“허! 저에겐 영광인 일이지요. 언제쯤 하면 되겠습니까?” 

“빠르면 빠를 수록 좋지요. 제가 남궁진 소협에게 말을 전해 드리면 쾌히 승낙하실 

겁니다.” 

“그렇게 하지요.” 

고개를 다시금 조아리는 진자자를 향해 유설린의 전음이 다시금 흘러들었다. 

[부탁해요. 진자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진자자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 

였다. 유설린은 여운휘를 불렀다. 

“휘, 나랑 같이 남궁진 소협을 뵈러 갔다 오자.” 

“그러지.” 

여운휘는 검을 집어 들면서 유설린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진자자의 옆을 지나 

치는 순간 그의 소매 속으로 병 하나를 넣었다. 진자자는 아무런 것도 모른다는 듯 

이 계속해서 고개를 조아리고만 있었다. 

이 병에 든 것이 무엇인지 소가주는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일일 거다. 

‘독이라……’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지만 독이라고 짐작되는 것을 알아봐 달라고 했을 때 

부터 어느 정도 상황에 대해 판단하고 있었다. 

남궁세가 내에서 발견한 독과 가주의 건강…… 

분명 무엇인가가 있다. 

결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지금 진자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를 알아 버렸다. 그는 소가주가 나간 후에 조심히 탁자 위에 앉았다. 

소매 속에 들어온 병의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진자자는 소매에서 묵직 

한 무게감을 느꼈다. 

남궁진은 눈을 휘둥그래 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유설린과 여운휘가 세가에서 의원 

을 데려왔다고 한 탓이다. 

"실력도 빼어나시지만 무엇보다 희귀한 병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 분이지요. 도움 

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시면 한 번 진찰을 맡겨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어야 의당 제가 청해야 할 일이지요. 그것보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조금 당 

황했을 뿐입니다." 

남궁진은 남궁철이 훌훌 자리에서 일어나길 바라고 있다. 그가 일어난다면 이 지루 

한 싸움이 끝날 것이다. 물론 후에 다시 이런 날이 오면 다시금 발발되겠지만 그래 

도 우선은 싸움이 소강상태에 접어 들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궁진에게 남궁철은 아버지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남궁진은 그런 

그가 이토록 일찍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혹 제가 소개 시켜 드린 의원이 병에 대해 알지 못해 상처를 더욱 깊게 할까 걱정 

이 드는군요." 

"아닙니다. 이토록 신경을 써주신다고 생각하니 고마움만 앞섭니다." 

"언제쯤이면 시간이 나시겠는지요?" 

"지금 바로도 해도 문제없습니다. 오셨다는 의원 분은 소가주님의 거처에 계십니 

까?" 

"예." 

남궁진은 거처 바로 밖에 있는 하인을 유설린의 거처로 보냈다. 하인이 움직인 후 

약 이 각 정도가 흐르자 문을 열고 진자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궁진과 진자자는 서로 포권을 취해 보였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남궁진이라 합니다." 

"진자자라고 불리는 노인입니다. 지금 악양유가에 신세를 지고 있지요." 

"먼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 백부께서 누워 계신 곳으로 가시도록 하 

지요." 

남궁진은 꽤나 급하게 움직였다. 남궁철의 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조급하게끔 만들었다. 그는 문을 지키고 있던 수문위사들에게 간단하 

게 온 목적을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가주 남궁철의 거처는 무거운 기운이 가득했다. 오늘 가주의 근처를 지키고 

있는 것은 시녀 둘 뿐이었다. 

진자자는 누워있는 남궁철을 보자마자 안타깝다는 듯이 탄성을 토해냈다. 

"허, 안색이 보통이 아니십니다." 

"몸이 안 좋아지신 지 그리 오래 된 건 아니지만 하루가 다르게 점차 악화가 되어 

지금은 손도 쓸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습니다." 

처음엔 그저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감기 정도로 생각했다. 

무인의 몸에는 병이 잘 스며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남궁철 정도 되는 무인에게라면 

말해서 무엇하랴. 그저 피로와 감기가 겹치면서 조금 몸이 안 좋으려니 하고 넘어갔 

던 것이다. 하루 이틀만 누워 있으면 나을 줄 알았던 병……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토록 가벼이 생각했던 병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하며 지금 

에 이르러서는 가주가 일어서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가주의 몸을 진찰했던 의원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종래(從來)에 이런 병에 대해 

서는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의원들의 말이 반복되며 그때부터 남궁세가에는 먹구름 

이 끼기 시작했다. 

그 탓인지 남궁진은 진지한 눈으로 진자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자자는 조용히 남궁철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맥을 집었고, 심장의 박동 수를 쟀 

다. 

눈동자를 한참을 살피던 진자자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병인지 아시겠습니까?" 

"확답은 드리지 못하겠지만 뭔가 생각이 나는 게 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아아, 정확하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하겠군요. 그러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고 기다 

려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저만 알고 있도록 하지요. 만약 진 의원님 덕분에 백부님의 병세(病 

勢)가 호전된다면 크게 보답하겠습니다." 

남궁진은 실로 기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다 해도 뭔가 알아낸 것이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여태까지 그저 고개만 흔들었던 의원과는 달리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고 한다. 

"근시일 내에 알아보고 말씀드릴 테니 그동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 하도록 하지요." 

진찰이 끝나자 남궁진을 제한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운휘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는 남궁진에게 물었다. 

"가지 않을 생각이냐." 

"그래. 지금 백부님의 옆을 지키는 친족이 아무도 없지 않나. 나라도 지켜드려야 

지." 

"마음대로." 

여운휘는 몸을 돌려 미리 나가서 기다리는 유설린과 진자자를 향해 다가갔다. 뒤에 

서 남궁철을 바라보던 남궁진이 말했다. 

"고맙네. 이토록 신경을 써줘서." 

"…… 그다지." 

남궁진은 틱틱 거리면서 말을 내뱉고 사라지는 여운휘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겉 

보기엔 차갑고, 주변에 전혀 무신경한 사내로 보이지만 그 속내는 결코 그렇지 않 

다. 

겉은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도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쏟는다. 그저 그걸 아무 

도 모르는 것뿐이다. 

남궁진은 조용히 남궁철을 바라봤다. 

어렸을 적 일찍 부모님을 여윈 그에게 백부인 남궁철은 아비이자 어미였다. 남궁철 

또한 남궁진을 자식처럼 여기며 잘 대해주었었다. 그런데…… 

'두려우십니까?' 

남궁철이 이제는 남궁진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다. 아니, 바라보지 못한다. 남궁진 

의 남궁철에 대한 마음은 전혀 변함이 없는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을 게다. 안다, 남궁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제가 변했다고 생각하시고 그토록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게 두려우신 겁니까?' 

잠들어 있는 남궁철이 대답을 할 턱이 없다. 

남궁철을 바라보는 남궁진의 눈이 흔들렸다. 그에겐 남궁세가의 가주 따위는 어쨌 

든 좋았다. 애초부터 가주가 되고 안 되고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그가 아니던가. 

'남궁세가의 가주라는 것은 저에게 아무런 필요도 없거늘…… 모르시는 겁니까? 저 

에게 백부님은 아버지라는 그 사실을…… 어찌 아버지가 아들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 

시는 겁니까.' 

본인 스스로는 손조차 들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진 남궁철을 바라보던 남궁진의 눈에 

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진자자는 침묵했다. 또한 유설린과 여운휘 또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가 입을 

닿고 있는 이상 물어서는 안 된다. 

진자자가 입을 연 것은 거처에 돌아온 후였다. 

아무가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 또한 정확한 병명은 모르겠으나……" 

"독인가요?" 

"그런 듯 싶습니다." 

"하아……" 

유설린은 침상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자자도 도대체 무슨 독에 중독이 된 건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손 

에 들어온 이 독이 남궁철을 그리 만들었을 거라고 추리할 수 있을 뿐이다. 독의 수 

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그 기본이 되는 것들도 너무 많아 아무리 독에 대해 정통한 의원이라 해도 모든 것 

을 알 수가 없다. 

진자자는 독에 대해서 능통하다. 다른 의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독 

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완벽한 독은 처음이다. 

전혀 독에 당했다는 티가 나지 않는다. 남궁철의 모습을 본 의원들의 대부분은 독 

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토록 완벽하다. 겉보기엔 독에 중독되었다는 

생각보다는 역병(疫病)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모두가 역병 쪽으로 골머리를 썩히다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만약 진자자 또한 독에 대한 언급을 듣지 못했다면…… 

'훗, 나도 몰랐을지도 모르겠군.' 

진자자는 자신 또한 다른 의원들처럼 멍청한 짓을 할 뻔했다고 생각하며 실소를 흘 

렸다. 틀에 박힌 생각이 남궁철의 몸을 더욱 악화되게끔 했다. 만약 독에 당하고 있 

다는 걸 미리만 알았다면 이토록 중한 상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독에 당했다는 건 알겠는데 문제는 치료법이다. 

독의 정체를 모르니 치료법도 전혀 알 수가 없다. 

우선 해야 할 일이 정해졌다. 여운휘에게 받았던 독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 정체 

를 알아내기만 한다면 해약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럼 소가주님 저는 제 방에 돌아가서 조금 쉬도록 하겠습니다." 

진자자의 말을 듣고 유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숙인 진자자는 슬그머니 유설린을 바라봤다. 모르는 척 하고 있지만 유설린 

또한 그 눈빛을 받았다. 겉으로 말은 안 했지만 진자자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정도는 안다. 

지금 돌아가서 아까 여운휘에게 받았던 독에 대해 살펴보려는 것이다. 

"네. 뭔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요." 

"그러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세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유설린은 알고 있다. 진자자는 결코 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진자자 또한 마찬가지의 생각이었다. 

고개를 들은 진자자는 자신의 방으로 움직였다. 

그는 방안에 들어선 후에 요대(腰帶)에 단단히 고정 시켜 두었던 병을 꺼냈다. 양 

이 그리 많지 않다. 시험을 하기 위해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다. 

'우선은 무엇부터 해야 하나……' 

진자자는 방구석을 바라봤다. 우문학에게 미리 말해 놓아서 준비가 된 토끼들 몇 마 

리가 그곳에서 눈을 뜨고 진자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엽게 생긴 눈을 굴리는 토끼를 진자자는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는 토끼 하나의 귀 

를 잡고는 밖으로 꺼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구나.' 

진자자는 병의 마개를 열었다. 

가장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이 액체가 과연 진짜 독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이 

다. 그리고 그것을 시험하기 위해 있는 것이 바로 저 토끼인 셈이다. 

진자자는 냉정하게 토끼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두 시진, 아니 세 시진 정도? 

진자자는 고개를 들었다. 준비되어 있던 토끼들은 모두 죽어 버렸다. 십여 마리나 

준비했거늘 세 시진이라는 시간은 그 토끼들이 모두 죽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듯 

싶다. 

진자자는 소매로 땀을 닦아냈다. 

쌀쌀하거늘 너무나 집중한 탓에 땀이 흐른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라도 된 냥 옷까지 축축하다. 세 시진 동안 알아낸 것은 이 

건 분명한 독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여태까지 보거나 들어 본 적이 없는 독. 

처음 토끼는 독을 주입 당하고도 멀쩡했다. 진자자는 독을 가공해야 한다고 판단하 

고 고민을 했다. 그렇게 한 시진 동안 많은 것들을 생각해 내던 와중 갑작스러운 토 

끼의 비명에 그는 급히 고개를 돌렸었다. 

토끼가 쓰러져서 푸들푸들 떨었다. 

약효는 늦지만 확실한 독이다. 

진자자는 의자에 몸을 싣고 멍하니 위를 올려다봤다. 그가 알고 있는 내에서 이런 

독은 없다. 그리고 시간 또한 넉넉한 것도 아니다. 

'뒷골이 땅기는 군.' 

너무나 집중한 탓에 벌써 밤이 됐는지도 몰랐다. 유등마저 키지 않고 있어 방안은 

꽤나 어두웠다. 여태까지 달빛에 의존하여 실험을 했던 것이다. 

진자자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진자자는 고개를 돌렸다. 버릇처럼 문을 바라봤지만 그곳은 전 

혀 변함이 없이 굳게 닫혀 있었다. 진자자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혹여나 바 

람 때문에 열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었다. 

바람이 아니다. 검은 옷을 입은 누군가가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진자자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죽어줘야겠다." 

꿀꺽. 

진자자는 침을 삼켰다. 웬만한 상대라면 어떻게든 대처를 하겠지만……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몰랐다는 건 상대의 실 

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르쳐 주었다. 

베려고만 했다면 벌써 베였을 거다. 

진자자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죽어서는 안 된다. 맡은 일이 있다. 적어 

도 이 일을 끝내기 전까지는 결코 죽을 수 없는 목숨인 것이다. 

"원한이 있는 건 아니니 단칼에 보내주마." 

진자자는 문을 힐끔 쳐다봤다. 몸을 날려 문 밖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살 희망도 있 

다. 

흑의인은 검을 치켜들었다. 

흑의인의 모습을 본 진자자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옆으로 몸 

을 날린다면 허리부터 두 동강이 나게 될 것이다. 알 수 없는 괴인(怪人)은 그런 행 

동으로 따돌릴 수 있을 정도로 녹록한 자가 아니었다. 

'제길, 내 인생의 최악의 날이군.' 

진자자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절망감을 느꼈다. 그때였다. 

"검을 내려. 그렇지 않으면 그 검을 든 손을 날려주지." 

흑의인이 몸이 멈칫했다. 반면 진자자의 표정은 급격하게 바뀌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인가. 진자자뿐만이 아니라 흑의인 또한 누군가가 안으 

로 들어왔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흑의인은 치켜들었던 검을 슬며시 땅으로 내려트렸다. 누군 지는 몰라도 이토록 은 

밀하게 뒤를 잡은 자다. 앞에 있는 의원을 향해 검을 내려칠 수는 있지만 그게 성공 

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는 뒤를 잡은 자의 정체를 알기 위해 몸을 돌렸다. 손을 위로 든 흑의인은 싸울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사내였다. 그것도 꽤나 젊어 보이는. 

'기분 나쁘군.' 

상대의 눈에는 싸우기 전의 긴장감이나, 흥분됨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그 눈은 언제든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듯 했다. 

저런 눈을 본 적이 있다. 흑의인의 머리에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가 스쳐지나갔 

다. 짜증이 치솟는다. 

흑의인의 뒤를 잡은 여운휘가 말했다.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진자자의 눈에 그의 모습이 들어왔다. 여운휘를 확인했지만 진자자는 섣불리 움직이 

지 않았다. 지금 안으로 들어온 자가 검을 휘두른다면 베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진자자는 별 내색을 하지 않았다. 

베려고 했다면 아까 검을 치켜들었을 때 베었을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검을 

내렸을 테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일 게다. 괜한 움직임은 오히려 화(禍)를 부르게 

된다. 

잘 벼른 칼날 위에 서 있는 기분. 

진자자는 뚫어져라 흑의인을 바라봤다.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안 거지?" 

흑의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걸걸했다. 듣기로는 분명 남자의 목소리였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목소리야 바꾸면 그만이다. 하지만 검은 옷 위로 드러난 굴곡은 흑 

의인을 남자라고 짐작케끔 했다. 

"남궁세가 가주의 거처에 있었던 시녀 둘. 남궁철의 가장 가까이에 있어도 전혀 의 

심을 받지 않는 자들이지. 나라면 우선 그 둘 중 하나를 내 측근으로 만들 거다." 

흠칫. 

흑의인은 기회를 틈타 진자자를 죽인 후에 도주를 하려던 마음을 바꾸었다. 여운휘 

의 말에서 뭔가를 알아차린 탓이다. 

'세가 내에서 가주의 상태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 

다!' 

그걸 몰랐다면 저런 말이 나왔을 리가 없다. 그건 곧 가주의 음식에 독이 타졌다는 

걸 안다는 말이 된다. 

선(先) 공격(攻擊)에, 후(後) 도주(逃走). 

이제는 생각이 바뀌어 버렸다. 무조건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진자자의 일은 지금 

안 이 사실에 비한다면 결코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제길,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데 상대가 녹록치 않아.' 

그의 눈에 비친 여운휘의 얼굴이 다른 누군가와 겹쳐 보인다. 건방진 듯 하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실력을 지닌 자. 일전에 나이가 자신보다 어린다는 이유로 처음 그 

가 상관이 되었을 때 함부로 그 앞에서 무위를 뽐냈던 적이 있다. 

그때 막 상관이 되었던 나이 어린 사내가 말했었다. 

"덤벼 볼 거냐?"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상관으로 임명된 이 젊은 놈을 이긴다면 자신이 이 무리의 대 

장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척 보기에도 젊은 사내는 무공이 빼어나 보 

이지 않았다.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 

가장 자신 있었던 무공을 펼쳤다. 

곧추 세웠던 창대가 번개처럼 휘몰아쳤다. 

흑화개천창법(黑花開天槍法). 대대로 내려오는 창법으로 그 위력은 가히 하늘마저 

도 울게끔 만든다. 

십 이 초식으로 이루어진 흑화개천창법을 그는 팔 초식까지 익혔다. 그거로도 충분 

해 보였다. 팔 초식만으로도 무림에서 웬만한 자들은 나가떨어질 만한 위력을 지니 

고 있으니 앞에 있는 나약해 보이는 사내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자신 있게 펼쳤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사내의 꿈틀거리던 창대가 하늘로 솟구쳤다. 눈으로 확인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였지 

만 몸으로는 느꼈다. 그리고 느끼는 순간 그는 영영 한쪽 눈을 잃고야 말았다. 

무릎을 꿇은 채로 피가 흘러내리는 눈을 감싸 안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며 사내가 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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