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137)

주방에서 사라진 여운휘는 그로부터 약 반각 정도 후에 거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 

방에 숨은 자들이 건물 주변을 살피고 있다.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창문 

이나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는 건 힘들다. 

지금 이대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걸리게 될 게 분명하다. 

여운휘는 돌을 들어 양옆으로 던졌다. 부스럭 하는 소리가 났고 그 근방에 있던 자 

들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후에서야 여운휘는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열려 있 

던 창문을 향해 쏜살 같이 솟구친 그의 몸이 마치 흡수라도 되는 냥 안으로 빨려 들 

어갔다. 

여운휘가 방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문학은 급히 창문가로 다가가 안을 살피지 못하 

게끔 막았다. 그는 태연하게 창문을 걸어 잠갔다. 창문을 걸어 잠근 후에서야 우문 

학이 입을 열었다. 

"후우, 그래 수확은 있는가?" 

여운휘는 말 대신 품안에서 병을 꺼내 흔들었다. 우문학은 그것을 보고 희미하게 웃 

었다. 

유설린은 급히 옆에 있는 짐에서 옷을 꺼내서 여운휘에게 건넸다. 완벽하게 이기긴 

했지만 이런 밀폐 된 공간에 있다보니 피 냄새가 난다. 

여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알고 있다. 자신의 몸에서 은연히 풍기는 피의 

냄새를. 

옷을 갈아입고 나온 여운휘에게 유설린이 물었다. 

"피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사람을 죽인 것 같은데. 맞아?" 

"다섯." 

"남궁풍도?" 

"그 다섯 안에 한 명이 남궁풍이다." 

"왜 죽인 건데?" 

"뒤가 잡혔다. 그리고 그냥 두기에 뭔가 석연치 않았다." 

유설린은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관심은 여운휘가 들 

고 있던 병으로 향했다. 

"그건 뭐야?" 

"잘은 모르겠다만 독이 아닌가 싶다." 

"독이라고?" 

"확답은 못하지만."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이것이 독인지 아닌지 판별해낼 능력이 여운휘 

에게는 없다. 이 독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의원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독에 대해 어 

느 정도 정통해 있으며 이 일에 대해 함구할 만한 의원이. 

그런 의원이라면 단 한 명이 있다. 

"진자자를 불러들여야겠어." 

"악양유가에 계신 그 분을?" 

"그래." 

진자자라면 그 모든 조건에 적합하다. 독에 대해서도 빼어나고 소문이 퍼질 위험도 

없다. 문제는 지금 계속해서 남궁세가에 있는 게 무리라는 거다. 검문과의 약속 또 

한 지켜야 한다. 말의 사육, 그것 또한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우문학. 당신이 악양유가에 갔다 와야겠군." 

"악양유가에 말인가? 나 혼자?" 

"그래. 네가 암황과 함께 먼저 세가로 돌아가. 그리고 진자자와 함께 남궁세가로 돌 

아와라. 마구간을 만들고 하는 건 전부 풍운조에게 위임하고." 

"급한 일이겠군." 

"그래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좋아, 그럼 지금 당장 움직이지." 

우문학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이 깊은 밤이기는 하지만 이 일은 그런 것 

을 따질 정도로 가볍지 않다. 막 밖으로 나가려는 그에게 여운휘가 말했다. 

"풍운조에게 암황의 전체에 대해 말하지 마라. 대신 뭔가 신비한 자라고만 귀띔해. 

아무리 풍운조라 해도 암황의 정체는 알아낼 수 없을 거다. 조심만 하게, 하지만 

그 이상 깊이는 알 수 없게 해." 

"그리 하지. 그럼 내가 오기 전까지 소가주님도 조심하십시오." 

"예.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럼 전 이만." 

우문학은 가슴을 쫙 펴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건물을 살피던 몇몇이 우문학의 뒤 

로 바짝 달라붙을 거다. 아무도 오늘 남궁풍의 죽음에 대해 여운휘와 연관시키지 않 

을 게다. 

그만큼 여운휘의 움직임은 은밀했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밤에 있었던 일을…… 

그리고 이 일이 얼마만큼 무림에 풍파(風波)를 일으킬 중대한 일인지를.  

쾅쾅! 

누군가의 거침없는 발소리가 거처를 울렸다. 언제나 조용한 근방과는 전혀 어울리 

지 않는다. 방안에 앉아 난(蘭)을 그리고 있던 여인이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그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지 살짝 웃으며 그리고 있던 그림을 옆으 

로 밀었다. 곧 문이 열리는 순간 여인은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알았다. 

"언니!" 

"무슨 일인데 그리 급한 거니?" 

급하게 이곳을 찾아온 곳은 일전에 남궁혁련과 함께 악양유가에 찾아왔던 남궁리였 

다. 그리고 그녀가 찾아온 사람은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철의 큰딸인 남궁려희다. 

남궁려희는 천하삼절의 하나로 독지화 당산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풍기는 여인이 

다. 차가운 느낌을 풍기는 당산희와는 달리 그녀는 봄바람 같은 따뜻한 미소가 매력 

적이다. 적당한 키에 훌륭한 가문에서 학문을 익힌 학사(學士)의 느낌마저 풍긴다. 

남궁려희는 수수하면서도 뭔가 특출나 보이며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반해 수많은 남자들이 구애(求愛)를 했지만 그중 그 누구도 남 

궁려희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다. 남궁려희가 거절을 해서가 아니다. 

사향화(死香花)! 

죽음의 향기를 풍기는 꽃.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답고 선한 인상을 지니고 있는 남궁려희에게 저런 별호를 붙 

인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다. 그건 바로 그 구애를 한 남자들에 관련 된 일이다. 

구애를 한 남자의 대부분이 실종이 되거나 죽었다. 죽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길거 

리를 지나다 말에 치여 죽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루에서 술에 취해 해롱거리다 

가 기녀의 칼에 찔려 죽은 자도 있다. 

실종 된 자도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다 남궁려희에게 관심을 표 

했던 것 밖에 없다. 

수많은 호사가(好事家)들의 입을 따라 퍼진 소문이 결국 남궁려희에게 사향화라는 

무서운 별호를 달게끔 만들어 버렸다. 

구애를 했던 자들이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남궁려희에게 관심을 보였던 자들 

은 모두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자신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들의 시선 

을 돌리게끔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탓에 그녀는 남궁세가 내부에서 조용히 세월을 보내며 지냈다. 

조용히 앉아 웃고 있는 남궁려희와는 달리 남궁리는 꽤나 숨이 찬 모양이다. 그녀 

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오기라도 한 모양이다. 

"저기 언니 있잖아 시간 좀…… 있어?" 

"무슨 일인데 그래." 

남궁려희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평소 거침없던 여동생이 이처럼 망설이며 부탁 

을 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남궁리는 고개를 푹 수 

그렸다. 

"이, 있잖아 그 사람이 왔데." 

"그 사람?" 

"어. 일전에 내가 말한 악양유가의 그 사람 있잖아……" 

"아!" 

남궁려희의 머리에 진군휘라는 이름이 스쳐지나갔다. 악양유가에 갔다 온 이후 달라 

진 동생의 모습에 남궁려희는 그 사실을 물었었고, 그때 나온 이름이 진군휘였다. 

천방지축인 동생이 처음으로 반했다던 남자…… 

"진군휘라는 사람이 세가에 있다고?" 

"응, 며칠 전에 왔었다는 데 지금에야 알아버렸어." 

남궁세가에는 수도 없이 많은 손님들이 찾아온다. 세가에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해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남궁리로서는 누가 왔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남궁벽 

이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몰랐으리라. 

"그런데 그 진군휘라는 분이 찾아오신 거랑 나한테 시간이 있고 없는 게 무슨 상관 

이지?" 

"그게…… 혼자가면 너무 쑥스러워서……" 

"같이 가 달라고?" 

"으응." 

남궁려희는 얼굴을 붉히는 동생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픽 웃어 버렸다. 남궁리 또 

한 멋진 사내를 보며 얼굴을 붉힐 정도로 커 버린 것이다. 남궁리의 갓난아기 때의 

모습부터 봐왔던 남궁려희는 뭔가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같이 가자." 

"정말? 고마워 언니!" 

남궁려희는 품안에 와락 안긴 그녀의 머리를 몇 번 더 쓰다듬었다. 남궁리의 부탁 

도 있지만 일전부터 한번쯤은 만나보고 싶었던 사내였다. 

하하! 누님 생전 처음으로 지기라 부를 수 있는 녀석을 만났습니다! 

그 녀석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토록 즐겁게 웃던 남궁진의 모습을 본 게 얼마 만이던가. 항상 남궁혁련과 비교되 

며 힘들어하던 남궁진이 그렇게 즐거워 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때뿐만이 아니다. 진군휘라는 사내에 대해 이야기 할 때의 남궁진의 눈은 항상 빛 

났다. 남궁진은 쉽게 마음을 열어주는 위인이 아니다. 남궁세가 내에서도 남궁려희 

를 제하고는 대부분의 사람과 담을 쌓고 있을 정도다. 

그런 남궁진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내에 대해 말할 때 그토록 즐겁게 웃다 

니…… 

반드시 보고 싶다. 

남궁려희는 열려 있는 문을 통해 밖을 내다봤다. 거처에서 나가는 것은 실로 오랜만 

인 듯 싶다. 

유설린과 여운휘는 거처 밖에 있었다. 우문학이 떠난 지 팔일. 지금쯤이면 악양유가 

에 도착했을 거다. 돌아오는 것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릴 테니 그때까지는 여유 시간 

이 많다. 

"에휴." 

유설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세가에서의 생활은 아무런 일도 없는 평범한 날의 반복이었다. 종종 남궁진이 

나 남궁벽이 찾아오는 것을 제한다면 매번 거처에서 시간만 죽였다. 

남궁진에게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도 긁어모았다. 

남궁풍의 죽음, 남궁세가 쪽에서는 그것을 누군가의 청부라고 추측하고 있다 했다. 

다행인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쉽게만 생각할 수 없다. 

남궁풍이 남궁혁련을 밀고 있었던 이상 누군가의 청부로 살수가 움직였다면 아무래 

도 반대편인 남궁진을 미는 자들 중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되기 마련이다. 남궁진의 

얼굴이 은연중에 어두운 것은 그 탓이리라. 

여운휘는 옆에 서서 유설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지루해한다는 것 정도는 이 

미 알고 있다. 

마교에 있을 때는 늘 혼자였던 그녀여서 외로움과 지루함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다 

면 오산이다. 외로움과 지루함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건 익숙해 질 수가 없다. 

그만큼 마음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 또한 많지 않다. 

여운휘는 물끄러미 유설린을 계속해서 물끄러미 바라봤다. 

유설린의 옆으로 예전의 그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때는 애라는 느낌이 풍겼는 

데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어엿한 여인으로 변해 버렸다. 예전에는 씻을 때도 가까 

이서 지켰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게 됐다. 

그렇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던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작년 이맘때쯤이었 

던 것 같다. 

애처럼 보이게 했던 젖살이 빠진 것도 이미 오래 전이다. 약간 동그랬던 유설린의 

얼굴이 지금은 상당히 갸름하다. 이제는 아무도 그녀를 보며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 

을 거다. 아름답다면 모를까 더 이상 유설린에게 귀엽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때 멍하니 멀리를 바라보던 유설린이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 저기 좀 봐." 

유설린을 바라보던 여운휘는 그녀가 바라보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 

치 무엇인가 봐서는 안 될 것을 훔쳐보다가 걸린 어린아이처럼 순간 당황해 버렸던 

것이다. 

고개를 돌린 여운휘는 유설린이 바라보던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디선가 봤던 

여인이 누군가와 함께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궁리라고 했던가?' 

그다지 인연이 있지는 않지만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었기에 여운휘는 그녀의 이름 

을 기억해 냈다. 

여운휘는 오히려 남궁리보다 그녀의 옆에 있는 여인에게 더 눈이 갔다. 얼굴이 빼어 

나서가 아니라 뭔가 정의 내리기 힘든 미묘한 분위기 탓이다. 

그 둘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는지 다른 곳을 향해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쭉 다 

가왔다. 유설린은 여운휘를 한 번 바라보고는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남궁리는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가까워지는 여운휘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그녀의 바램 

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처까지 다가간 남궁리의 얼굴은 확연하게 붉었다.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남궁리 소저군요. 그때 이후로는 오랜만인 것 같아요. 그런데 혹시 감기라도 걸리 

셨어요?" 

"아, 아니요!" 

소스라치게 놀란 남궁리는 본인도 모르게 소리를 쳐버리고 말았다. 깜짝 놀란 듯한 

유설린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의 입을 감쌌다. 막 당황해서 어떻게 해 

야 하나 하던 남궁리의 손에 누군가의 손이 닿았다. 

고개를 숙인 남궁리는 그 손의 주인이 남궁려희라는 것을 알았다. 

남궁리는 당황했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지금 뿐만이 아니다. 그녀가 곁 

에 있어주면 마음이 진정 됐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막 마음을 가라앉힌 남궁리의 옆에 있던 남궁려희가 앞으로 나섰다. 

"소개가 늦었군요. 남궁려희라고 해요." 

"소문대로 정말 미인이시네요." 

"고마워요. 하지만 소가주님이 원체 아름다우시니 마치 놀리는 것 같네요." 

"아, 그런 게 아닌데……" 

남궁려희는 남궁리와 마찬가지로 여운휘를 바라봤다. 남궁진과 남궁리가 그토록 말 

하던 그 사내다. 

'차가운 얼굴.' 

표정이 없는 조각품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표정뿐만이 아니라 외모 또한 조각 

품 같다. 아무리 봐도 흠잡을 곳이 없는 듯한 얼굴이다. 얼굴 중에서 뭔가 모난 부 

분이 있어야 정상이거늘 마치 누군가 임의로 만든 것처럼 전혀 부자연스러운 부분 

이 없다. 

더군다나 너무나 깊은 눈동자는 상대의 생각을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사내 

의 어떠한 것에 남궁진과 남궁리가 반했는지는 아직도 할 수가 없다.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남궁진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런가?" 

반말을 사용했지만 남궁려희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반말이 너 

무나 자연스럽다. 

그녀는 재빠르게 여운휘의 온 몸을 살폈다. 남궁려희 또한 무골(武骨)은 아니지만 

남궁세가 가주의 여식이다. 어느 정도의 무공을 익혔고, 상대를 보는 눈 정도는 가 

지고 있다. 

'빈틈이 없어……' 

가만히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격할 틈이 없다. 

살수였다면 최악의 상대다.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공격할 기회를 준다 해도 벨 자신이 없다. 

남궁려희는 살짝 웃었다. 남자로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흥미가 인다. 

"오셨다고 해서 인사나 한 번 드리려고 했어요. 오늘 저녁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남 

궁진까지 넣어 다섯이서 식사나 한끼 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예, 저희야 그러면 감사하죠." 

남궁려희의 말에 유설린은 웃으면서 답했다. 

"그래요? 그럼 저녁때 식솔(食率)을 하나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따가 뵙지요." 

말을 마친 그녀는 남궁리의 손을 잡고 왔던 길로 성큼성큼 돌아가기 시작했다. 남궁 

리는 자신의 손을 잡고 걷는 남궁려희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녀 탓에 예정에도 없 

던 식사까지 하게 됐다. 

남궁리를 보며 남궁려희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멀어지는 둘의 모습을 보던 유설린이 탄성 같은 말을 내뱉었다. 

"헤에……" 

그녀의 눈이 멀어지는 남궁려희를 쫓고 있었다. 유설린은 고개를 돌려 여운휘를 바 

라봤다. 

"저 여자 예쁘다. 그렇지만…… 사향화라고 불리고 안 됐네." 

여운휘가 말이 없자 유설린은 더욱 다가왔다. 여운휘의 눈이 멀어져 가는 남궁려희 

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유설린은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왜 말이 없어. 저 여자한테 반하기라도 한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유설린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퉁명스러운 어조로 유설린이 여운휘에게 말했다. 

"허기야 저 여자는 어른 같고 예쁘니까 반할 만도 하겠지. 아직도 애 같은 난 잠이 

나 자야겠다." 

유설린은 몸을 돌리고 거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여운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 

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유설린의 뒤를 따르던 여운휘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속 

으로 중얼거렸다. 

'너는 더 이상 애로 보이지 않아……' 

겨울을 방불케 하는 밤이다. 봄이 다가오면서 약해졌던 겨울바람이 아직 죽지 않았 

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매섭게 휘몰아쳤다. 

오기다. 아직 죽지 않았다고, 살아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하 

지만 이 겨울바람도 열흘 정도가 지난다면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물러서야 할 것 

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봄의 선들선들한 바람이 그 힘을 더했고, 겨울바람은 주춤하 

며 뒤로 물러섰다. 강한 자가 나타나면 물러서야 하는…… 

자연은 무림이다. 결국 강한 자가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림인들은 천 

하제일인(天下第一人)을 꿈꾼다. 그렇지만 천하제일인이란 하나 일 수밖에 없다. 그 

렇기에 그것이 천하제일인이라고 칭해지는 것이다. 

벼랑 끝에 몰린 무인처럼 겨울의 마지막 발악은 왠지 모르게 처량하게 까지 보인다. 

마지막 추위가 몰아치는 밤, 유설린과 여운휘는 한 여인을 따라 어딘 가로 향했다. 

여인은 남궁려희가 보낸 남궁세가의 식솔로 유설린과 여운휘를 데리러 온 시녀였다. 

시녀를 따라 움직인 둘은 어떤 건물 앞에서 멈췄다. 

고개를 조아리며 시녀가 말했다. 

"이 안에 계십니다." 

"그래요? 그럼 저희는 들어갈 테니 수고하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성큼 계단을 밟으며 위로 올라섰다. 아까 전 여운휘에게 투정을 

부리는 듯 했던 모습은 사리진 지 오래였다. 발걸음 하나 하나에 왠지 모를 기품이 

넘친다. 또한 강한 힘까지 느껴진다. 

문을 연 유설린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동그란 식탁에 세 명이 삥 둘러앉아 있었다. 왼쪽으로부터 남궁진, 남궁려희, 남궁 

리의 순서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남궁진이었다. 

"오셨군요. 어서 앉으시지요." 

"이틀 못 뵌 것뿐인데 상당히 초췌해 보이시네요." 

자리에 앉으면서 내뱉은 유설린의 말에 남궁진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 

다. 남궁풍이 죽은 이후로 주변에서 그를 보는 눈빛이 곱지 않다. 아무런 범행 증거 

도 밝혀진 것은 없지만 아무래도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군요." 

"아직도 범인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나요?" 

"네, 증거도 없고 그렇다 해서 증인이 있는 것도 아니니……" 

증거가 아무것도 없다. 시중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비수가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런 비수야 동전 몇 푼만 있다면 어디서나 쉽사리 구할 수 있는 물건이다. 

시체의 상태는 그럭저럭 양호한 편이다. 

얼굴에 긴 검상과, 이마에 박힌 비수로 인해 생긴 상처, 그리고 뭉그러진 오른손.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상한 점이요?" 

"예. 사인은 이 미간(眉間)에 박힌 비수입니다." 

남궁진은 손으로 머리 중앙을 톡톡 쳤다. 남궁풍의 몸에는 몇 개의 큰 상처가 있었 

지만 숨통을 끊은 것은 분명 머리 정 중앙에 박힌 비수다. 

"그런데 그 외에 두 개의 큰 상처가 있습니다. 비수로 당한 상처만 있다면 암습을 

당했구나 할 수 있을 테지만 얼굴에 생긴 검상과, 뭉그러진 손을 보니 뭔가 이상하 

더군요. 그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면 의당 소리를 내었어야 옳습니다. 그렇다면 주변 

에서 다른 무인들이 도우러 왔을 테니까요. 하지만 정작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 

게 물으니 저녁에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왜 인지 모르지만 남궁 

풍 어르신은 아무런……" 

"그만 하렴." 

남궁풍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입을 다물었다. 유설린은 고개를 돌려 건너편 

에 앉아 있는 남궁려희를 바라봤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남궁진이 입을 닫은 것이 

다. 

"이 자리는 즐겁게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자리란다.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분위 

기를 가라앉힐 필요는 없잖니." 

"누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소가주님에게도 죄송합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유설린은 괜찮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까지 쳤다. 

남궁려희는 유설린의 미소짓는 모습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번에 

는 자신의 여동생인 남궁리를 바라봤다. 여전히 남궁리는 아무런 말도 못하면서 곁 

눈질로 여운휘를 훔쳐보고 있었다. 

손가락까지 꼼지락거리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궁리의 모습은 평소 그녀와는 너 

무나 달라 보였다. 

'예쁘네.' 

남궁려희의 유설린에 대한 생각이었다. 유설린은 여자인 그녀가 봐도 충분히 매력적 

이었다. 아침에도 만나 봤지만 자세히 바라보니 느낌이 다르다. 미소가 걸리는 순 

간 약간 작아지는 눈은 남자들의 심금(心琴)을 울리기 충분했다. 

남궁리가 미녀이긴 하지만 저 여인에 비한다면 한참을 부족하다. 

남궁려희는 유설린의 눈과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 

다. 일각 동안 남궁려희는 적절하게 대화에 끼여들면서 계속해서 유설린을 살폈다. 

'아름답긴 하지만…… 나라면 저런 여인을 사랑하지 않아.' 

분명 아름답다. 어떠한 남자라 해도 당장에 마음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대단한 미모 

다. 하지만 뭔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풍긴다. 마치 하나의 벽을 앞에 두고 상대 

를 대하는 느낌이다. 

한(恨)이 있는 것이다. 가슴에 얹힌 무엇인가가 있는 사람만이 저러한 모습을 보인 

다. 

남궁려희는 남궁리에게 한 가닥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남궁리가 유설린이라는 존 

재 탓에 망설이고 있다는 사실을 남궁려희는 알고 있다. 누가 봐도 여운휘와 유설린 

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더군다나 무림에 알려진 바로는 항상 같이 다니며 지켜준다 하지 않았던가. 

돈에 움직이던 사이였다면 유명해지는 순간 둘의 사이는 끝났을 것이다. 여인 한 명 

을 지키는 것보다 오히려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보다 많은 재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 

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사람들은 그 둘이 연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인이라면 그 모든 것이 수긍이 된다. 그토록 목숨을 걸고 지켜주는 것이 모든 게 

이해가 되는 것이다. 

"저 이런 말이 실례일지는 모르겠지만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죠?" 

남궁려희는 남궁리를 힐끔 바라본 후에 물었다. 남궁리가 하지 못하는 질문을 그녀 

가 대신 한 것이었다. 

유설린은 속으로 움찔하긴 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했다. 그녀는 여운휘를 바라봤다. 

유설린은 언제나처럼 퉁명스럽게 앉아 있는 여운휘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 

어버렸다. 

"만난 지 몇 년 정도 되었군요. 어렸을 때 기인이사이신 저의 사부님을 따라가 학문 

을 익혔지요. 그러다가 만났어요. 그때 제가 친구가 되어 달라고 했었죠. 그렇게 해 

서 지금까지 왔네요." 

남궁려희는 생각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한이 있는 여인이기에, 다른 사람에 

게 한 겹의 벽을 앞에 두고 대했기에 남궁리에게 어느 정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 

다. 

그런데…… 

'변했어. 진군휘를 바라보는 순간 그토록 굳건해 보이던 벽이 무너져 버렸어. 도대 

체 무슨 사이이기에 그게 가능한 거지?' 

결코 쉽게 무너질 벽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백 번, 수천 번 두드려도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벽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여운휘를 바라보며 미소짓던 유설린의 눈에 

는 일말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남궁려희는 안타까운 눈으로 남궁리를 바라봤다. 

힘들 것이다. 둘이 어떠한 사이인지는 몰라도 그토록 서로를 위해 사는 자들이라면 

쉽게 그 사이를 파고 들 수가 없다. 

남궁려희가 남궁리를 보며 한숨짓는 동안 여운휘는 평소와는 약간 다른 표정을 짓 

고 있었다. 뭔가 미묘하게 신경을 건드린다. 

'짜증나는 군.' 

그냥 있자니 뭔가가 석연치 않다. 한참동안 침묵하고 있던 여운휘는 마침내 기분을 

석연치 않게 만들었던 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저거였던가?' 

여운휘는 손가락을 움직이려다가 멈췄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것이다. 지붕 위에 누군가가 있다. 그 

렇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상대는 실력이 있는 

자였다. 

남궁세가의 인물이라고 생각해도 되지만…… 마교의 잔재가 남궁세가에 있는 이상 

그렇게만 생각할 수가 없다. 혹 마교의 인물이라면 지금 당장 죽여서는 안 된다. 

'남궁풍을 죽였을 때 덜미를 잡힌 건가? 아니, 그건 아니야.' 

마교의 인물이 이 지붕 위에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알아차리는 것은 조 

금 늦었지만 적어도 여운휘가 이곳에 온 이후에 움직인 것은 아니다. 미리 이곳에 

와서 기다렸다는 말인데…… 자신들이 이곳으로 온다는 것을 미리 알 리가 없다. 

평소에 이곳을 자주 왔던 것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약속이 잡혀서 움직였던 것인 

데…… 

여운휘는 생각을 넓혔다. 자신들을 쫓아왔을 거라는 생각에서 남궁세가의 인물 셋까 

지 집어넣었다. 

여운휘가 오기 전에 이 셋은 먼저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지붕에 있는 자 정도의 실 

력자라면 여기 있는 셋이 알아차리기는 분명 힘들었을 거다. 

아무래도 여운휘와 유설린을 쫓아온 것 같지는 않다. 

여운휘는 앞에 있는 세 명 중 남궁진과 남궁려희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가 보기에 

남궁리는 남궁세가 내에서 결코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다. 이 위에 있는 자가 이 

셋 중 하나를 찾아온 거라면 그건 남궁진이나 아니면 남궁려희일 것이다. 

그때 막 문이 열리며 음식을 들고 시녀 몇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곧 상 위에는 음 

식들로 가득 차게 됐고 각자의 술잔에는 술이 채워졌다. 

"그럼 한 잔씩 들이키도록 할까요?" 

남궁려희는 웃으면서 한 마디 하면서 술잔을 들이켰다. 모두가 그녀를 따라 술을 들 

이켰다. 여운휘는 잔을 꺾으며 고개를 위로 들었다. 저 지붕 건너에 숨어서 이 안 

을 살피고 있을 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여기서 손가락 하나만 움직인다면 죽일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운이 좋군. 정체가 뻔했다면…… 죽었을 테니까.' 

깊은 침묵이 흘렀다. 

지붕 위에 납작 엎드려 있는 무인의 입에서는 평생 동안 몇 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 

을 것만 같다. 아니, 그런 분위기가 풍긴다. 무인은 검은 색 옷으로 온 몸을 가리 

고 있었다. 하지만 복면은 하지 않은 탓에 그의 얼굴은 드러난 상태였다. 

사내다. 납작 엎드려서 지붕에 만들어 놓은 구멍으로 건물 안을 살피고 있는 것은 

분명히 건장한 사내였다. 사내의 덩치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외모 또한 평범했 

지만 왠지 만만치 않게 보인다. 굳게 다물어진 턱이 그의 성격을 짐작케 했다. 

사내는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머리에 각인 

이라도 시키려는 듯이 그는 뚫어져라 다섯의 모습을 살폈다. 

셋은 아는 자들이다. 남궁진과 남궁리, 그리고 그가 살피고 있는 남궁려희. 그런데 

나머지 둘은 처음 보는 인물들이다. 전혀 안면이 없다. 

사내는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그는 남궁진의 말을 들었다. 

"…… 소가주님에게도 죄송합니다." 

'소가주?' 

그는 소가주라는 말을 놓치지 않았다. 소가주라 함은 한 세가의 대를 이을 사람을 

칭한다. 대체적으로 그 탓에 남자들이 소가주라고 불리게 되기 마련이다. 여자이면 

서 소가주라고 칭해지는 자라면 누군지 대충 감이 잡힌다. 더군다나 지금 남궁세가 

에 있는 사람으로 국한된다면 답은 이미 내려진 것이다. 

'유가의 소가주.' 

사내의 눈이 정체를 알지 못하는 남녀 중 남자에게로 향했다. 여자의 정체가 유가 

의 소가주라면 저 사내는…… 

'진군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설 뻔했다. 만약 일어섰다면 당장이라도 정체가 탄로 

나고야 말았을 터. 사내는 슬그머니 자신의 손을 바라다 봤다. 이대로 떨어져 내려 

일장을 내려친다면…… 

모르고 있다면 분명 절호의 기회다. 운이 좋다면…… 성공할지도 모른다. 

'할까?' 

순간 아래를 향해 움직이려던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토록 쉽게 생각할 상대가 아 

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상관이 인정했다. 

그냥 무림에서 알려진 이름 따위야 아무 것도 아니다. 

소문이야 지나가면서 점점 커지는 것이고, 결국 그러다 보면 사실보다도 몇 십 배 

불려지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더군다나 지금은 남궁려희까지 있다. 임무를 어기면 

서까지 여운휘를 향해 일장을 휘두를 이유가 사내에게는 없었다. 

문득 사내의 눈에 여운휘의 왼손에 잡힌 검이 들어왔다. 식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손에서 검을 놓지 않는다. 종종 놓을 때도 잡기 편하게 발에 기대게끔 한다. 약 반 

각동안 그 모습만을 바라보던 사내는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사실 

을 알았다. 

빈틈이 없다. 그럴 리는 없었겠지만 만약 아까 전에 섣불리 움직였다면 백(百)에 백 

(百) 죽었을 게 분명하다. 

'어떻게 한다?' 

사내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남궁려희에게 접근하는 사내를 죽여야만 한다. 그게 사 

내에게 내려진 임무이고, 이미 그러기를 오 년 가까이 됐다.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행한 임무다 보니 이제는 거의 몸에 배여 버릴 정도로 익숙해지긴 했지만 이번만큼 

은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냥 둔다 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내키지가 않는다. 

저 사내에 대해서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많이 오간다. 자신의 상관이 사내 

를 보며 웃었다는 말에 얼마나 놀랐던가. 그것도 그냥 미소가 아닌 앙천대소(仰天大 

笑)를…… 

평소 전혀 웃지 않았던 자다. 항시 차가운 눈빛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 앞에서는 

고개를 치켜들고 있기조차 두려웠었다. 그런 상관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뭔가 그냥 두고 보기만 할 수가 없다. 

'서찰을 날려야겠어. 우선 서찰을 날린 후에 그 후의 일은 생각해 보자.' 

사내는 실로 오랜만에 남궁려희의 곁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는 서찰을 보내기 위해 

밖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남궁세가 안에서 서찰을 보낸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서찰은 늦어도 칠일 안에는 그의 손에 갈 것이다. 그때 그는 어떠한 표정을 지을 

까. 전처럼 앙천대소를 터트릴 것인가 아니면……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수많 

은 사람들을 무릎꿇게 만드는 그 싸늘한 눈빛으로 서찰을 응시할까? 

곧 천하는 뒤흔들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신의 상관 또한 있다. 

무관심한 듯 하지만 모든 것을 아는 자, 일마(一魔)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내. 

'그 분은 무적(無敵)이다.' 

맹목적인 믿음.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만은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사내 

의 상관이자 맹목적인 믿음의 주인공은 흑색 기마대의 대주인 백무량(白無亮)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