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137)

누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말에 남궁려희는 그저 웃었다. 그저…… 웃기만 했다. 자신을 위해 그토 

록 마음을 써주는 그녀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다. 

훨훨 벗어 던지고 싶다. 온 몸을 붙들어 묶은 쇠사슬들을 모두 잘라버리고 

만 싶다. 남궁세가의 차기 가주 후보면 무엇하냔 말이다. 하고 싶은 것 하 

나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남궁진은 못내 한심해 보였다. 

밖을 바라보던 남궁진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마를 찌푸렸다. 그토록 오 

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말자 했거늘…… 

"무슨 일인가." 

"저기 뵙자고 찾아오신 분들이 계셔서……" 

"내가 오늘은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 했을 텐데?" 

"아니 그게 멀리서 오신 손님인지라." 

남궁진은 몸을 돌렸다. 먼 곳에서 온 손님이라는 말에 무작정 거절만 하기 

도 뭐했던 것이다. 그는 의자에 주저앉으며 밖에 서 있는 나이 어린 하인에 

게 물었다. 

"그래 뉘시라고 하는가." 

"지, 진군휘라는 분이……" 

"뭐?" 

하인의 목소리는 작아지는 반면 남궁진의 반문에는 오히려 생기가 넘쳤다.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맞으려 나가려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지금 자신 

의 행동은 남궁혁련 쪽에서 모두 감시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괜한 섣 

부른 행동은 그들을 자극할 뿐이다. 

"안으로 모셔오너라." 

"아, 예!" 

전혀 무공을 익히지 못한 아이답게 하인은 커다란 발소리를 내면서 달려가 

기 시작했다. 남궁진의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꽃이 폈다. 남궁세가 

에 온 이후로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사방에서 자신을 두고 싸 

우고 있는데 마음이 편할 턱이 없다. 

잠시 동안 웃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진군휘라는 말에 남궁진 본인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가 이렇게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남궁진은 자신의 거처로 향하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 

다. 

문 밖에 선 자신의 하인이 입을 열었다. 

"안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그래." 

문을 살며시 연 하인은 자신의 옆에 있는 세 명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으로 드시지요." 

말을 마친 하인은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문을 닫고 총총걸음으로 사라 

졌다. 남궁진이 먼저 포권을 취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다, 유 소가주님." 

"예. 저번에 휘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드린 후에 인사도 못 드려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리 보게 되는군요." 

"하하! 뭐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나저나 이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남 

궁세가를 찾아오신 건 무슨 이유라도 있으신 지?" 

"아니요. 검문에 일이 있어서 잠시 다녀오는 길에 남궁세가에 들렸지요. 가 

주님께서 몸이 편치 않다고 하셔서 한 번 찾아뵙는 것이 예의라고도 생각했 

고요." 

가주의 이야기가 나오자 남궁진은 본인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건강했는데 급작스럽게 건강이 나빠졌다. 

가주인 남궁철은 큰 검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무거운 검을 마치 장난감 

처럼 휘두르는 모습이 나찰과도 비교가 될 정도로 매서웠던 인물이다. 그러 

던 그가 지금은 자기 손으로는 수저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다. 

"무슨 병인지 들어보셨나요?" 

"아니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는 의원들마다 족족 고개를 젓고 

돌아가더군요. 도대체 무슨 일인지……" 

그토록 건장했던 남궁철이 갑자기 그리 변한 것도 답답한데 의원들마저도 

고개를 저으니 미칠 지경이다. 남궁진은 유설린과 말을 마치며 여운휘를 바 

라봤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는 방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뭘 그리 두리번거리는 가.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나?" 

"…… 별로. 그나저나 참 재미있게 사는 군. 사방에 적이라." 

"역시 자네는 못 속이겠군." 

"안으로 들어오는 내내 주변에서 부엉이들이 우리를 관찰하더군." 

"하하! 그래, 밤에는 부엉이가 되고 낮에는 쥐새끼가 되는 신기한 자들이 

지." 

부엉이와 쥐는 감시자를 칭하는 말이다. 여운휘는 남궁진의 거처로 오는 내 

내 사방에서 쏟아지던 눈빛을 알고 있었다. 그토록 많은 수가 감시를 하는 

데 모를 리가 없다. 감시하는 자들의 실력 또한 대단치 않아 모른 척 하고 

걷기가 오히려 힘들 정도였다. 

그들 딴에는 실력자들을 내세운 것이겠지만 여운휘와 우문학의 눈을 속일 

정도의 자는 결단코 없었다. 

"흠, 소협 저의 이름은 우문학이라 하오. 실례지만 한 말씀드리려고 하는 

데 괜찮겠소?" 

"무슨 말이신 지는 모르겠지만 경청하도록 하지요." 

"오다가 남궁세가 내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다고 들었소. 그리고 그 일 

에……" 

"제가 개입되어 있다? 이 말씀이시지요?" 

"그렇소." 

남궁진은 애매한 미소를 흘렸다. 이들이 왜 왔는지 대충 알 듯 하다. 세가 

내에서도 쉬쉬하는 일이라 밖으로 그리 퍼지지도 않았을 터인데 어찌 알았 

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전 원하지 않지만 어쩌다 보니 일이 이렇게 되어 가는군요. 전 전혀 가주 

가 되고 싶다 이런 마음은 없는데 말입니다." 

말을 마친 남궁진은 환하게 웃었다. 그는 사라진 하인을 부른 후에 일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내일 하도록 하지요. 밤이 늦으셨는데 이토록 오시느라 힘드셨 

을 터이니 우선 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불청객인데도 이토록 맞이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누가 감히 유가의 소가주님을 그리 대하겠습니까." 

유설린은 문 앞까지 온 하인을 보고는 남궁진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몸 

을 돌렸다. 그렇게 떠나려고 하던 중 여운휘가 갑자기 남궁진을 향해 다가 

왔다. 

"응? 무슨 일인가?" 

"한 가지만 말하지. 네 의사를 분명히 정해. 우선 해 줄말은 이것뿐이다." 

말을 마친 여운휘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유설린의 뒤를 쫓아 걷기 시 

작했다. 여운휘가 사라지고 나서 한참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던 남궁진은 실 

소를 흘렸다. 

'알고 있었군.' 

남궁진은 마음 또한 정하지 못한 상태다. 자신을 가주로 임명하려고 밀어주 

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작 본인인 남궁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그 탓에 그들의 요구도 대충대충 넘기며 시간을 벌고만 있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 그건 지금 남궁진이 가야 할 길을 정해야 한다는 거다. 

"큭큭, 저 친구는 기껏 와서 문제만 던져버리고 가는 군." 

남궁진은 마치 모자란 사람처럼 허공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낮은 웃음을 흘 

렸다. 

"누가 왔다고!" 

남궁혁련이 목소리를 높이자 보고를 하러 왔던 전령은 더욱더 고개를 숙 

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 진군휘와 유가의 소가주, 그리고 그 외에 한 사내가……" 

"멍청한 놈!" 

남궁혁련은 거칠게 말을 툭 내뱉은 후 침묵했다. 그의 일갈(一喝)은 어 

떠한 때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다지 큰 문제로는 느껴지지 않는데 왜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냐." 

옆에 있던 외숙의 말에도 남궁혁련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외숙인 남궁석영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에 일일이 호통을 친다면 네 기력도 모자랄 게 

다. 그러니 그런 일 정도는……" 

남궁석영의 이어지는 말은 이미 남궁혁련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는 말 없이 남궁석영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대수롭지 않다고? 그래, 대수롭지 않은 문제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불안하다. 그냥 보고 있기에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유가가 비록 남궁세가에 비해 훨씬 모자라다 고는 하나 그들 또한 얕볼 

수 없는 세력이다. 최근 무림에서 수없이 이름이 거론되는 유가를 그리 

쉽게 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들이 남궁진의 편이 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일이 훨씬 어려워 질 

거다. 왜 하필 지금, 지금 그들이 나타난 것인가. 

지금 상황으로 볼 때 그들이 온 것을 단순히 친목을 위한 방문으로 보기 

는 어렵다. 남궁혁련의 부릅떠진 눈에서 새파란 안광이 터져 나왔다. 

'사사건건 나를 화나게 하는 군. 네 놈을 반드시 깔아 뭉개버리고 말 테 

다. 지금 당장은 그러지 못하지만 내가 가주가 된 그 후…… 너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굴욕을 주마. 기다려라, 내가 가주가 되는 그 날 

을…… 진군휘!'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철의 거처의 분위기는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의 거처를 향해 다가온 유설린을 향해 무인은 검을 위까지 끌어올렸 

다. 

"뉘신 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저입니다." 

"아!" 

무사는 뒤쪽에서 나타난 남궁진의 모습을 보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무사의 옆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무사는 서둘러 앞 

을 막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 분들의 신분에 대해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지금 워낙 안 

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터라 아무나 들여보내기가 조금 그렇습니다." 

"이 분은 유가의 소가주님이십니다. 가주님이 편찮다는 말을 듣고 여까 

지 오신 손님이지요.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제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습 

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옆으로 비켜섰다. 남궁진은 가주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자다. 그런 자가 책임을 지겠다니 끝까지 물고늘어질 수도 없 

는 문제다. 무사는 네 명이 안으로 들어서자 문을 다시금 걸어 잠갔다. 

가주의 거처로 걸어가던 유설린이 입을 열었다. 

"꽤 삼엄하네요." 

"가주님이 그리 되셨으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침체되더군요." 

유설린은 남궁진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남궁철의 방까지 올 수 있었 

다. 남궁진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누구냐." 

방안에서는 노인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유설린은 남궁세가에 처음 방 

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인의 목소리는 낯이 익었다. 

"접니다. 남궁진." 

"아, 어서 들어오너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남궁진은 포권을 취했다. 그는 뒤따라 들어온 

다른 일행을 바라보며 앞에 있는 노인에게 말했다. 

"손님이십니다." 

"호오, 이거 오랜만이오." 

"오랜만이네요." 

일행을 바라보며 놀랍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노인은 천뢰삼검(天雷三 

劍) 남궁벽이었다. 일전에 운문세가와의 결전 때 만난 이후 오랜만에 그 

를 보는 것이다. 그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순간 당혹하는 듯 싶더니 

곧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쁘실 터인데 이 먼 곳을 와 주니 감사하구려." 

"아닙니다. 이 근처에 일이 있어 들리는 터에 남궁세가의 이야기를 들었 

습니다." 

"허어, 역시 비밀이란 것은 감추기 어려운 듯 하오. 그토록 감추려 했는 

데 소가주의 귀에까지 들어가다니……" 

"운이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상심이 크시겠군요." 

유설린은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다가가 남궁철을 바라봤다. 처음 봤지만 

인상이 푸근해 왠지 모르게 오래 알고 지낸 사이 같다. 꽤나 강인해 보 

이는 외향이긴 하지만 제대로 먹지 못해서인지 얼굴이 핼쑥하다는 느낌 

을 강하게 풍겼다. 

유설린이 남궁철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남궁벽은 여운휘를 향해 입을 열었 

다. 

"오랜만이로군." 

"오랜만이오." 

"그래 자네의 이야기는 요즘 잘 듣고 있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귀 

가 따가울 정도로 들려오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겠더군." 

남궁벽은 여운휘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남궁리를 떠올렸다. 남궁리는 여 

운휘를 보고 싶어했다.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는 했지만 남궁벽까지 속 

일 정도로 그녀는 능청스럽지 못했다. 

지금 여운휘가 남궁세가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남궁리는 당장이라 

도 달려 올 거다. 남궁벽이 여운휘를 보며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누워 

있던 남궁철의 입이 열렸다. 

"누, 누군가." 

남궁철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그는 간신히 눈을 

뜨고 유설린을 바라봤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유가의 소가주인 유소화라고 해요." 

"아……" 

남궁철은 일어나기 위해 침상을 짚었지만 후들거리던 팔은 마침내 떨어 

져 버렸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고 남궁벽은 그의 몸을 부축하고 

침상에 기대게끔 해 주었다. 

유설린은 그런 남궁철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마치 힘줄이 끊긴 것 같다. 온 몸에 있는 힘줄이 끊겨 누군가가 도와주 

지 않는다면 전혀 미동도 할 수 없는 환자와도 같아 보인다. 

인형 같다. 사람의 손이 없다면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인형. 

그런 인형이 억지로 움직이려고 한다. 당연히 될 턱이 없다. 그렇지만 

남궁철은 인형이 아니다. 그래서…… 그 모습이 그토록 슬퍼 보이나 보 

다. 

"손님이 오셨는데 몸이 이러해서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구려." 

"아닙니다. 그토록 건강하셨으니 곧 나아지실 겁니다. 쾌차(快差)하셔야 

지요." 

"허허, 유가의 소가주가 아름답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소문보다 더 

욱 빼어나구려. 소문이 원래 진실보다 과한 법이거늘 이건 오히려 반대 

요." 

유설린과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철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 아무도 입을 열 

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문을 열며 시녀 한 명이 식사를 가지고 들어왔 

다. 식사라고 해 봤자 쌀을 물에 풀은 죽(粥)에 불과했지만.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요." 

"아아, 그냥 가면 너무 아쉬우니 며칠만 묵다가 가게." 

"일이 있어서 오래는 머물지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돌아가기 전에 찾 

아뵙도록 하지요." 

"그래, 그리하게." 

유설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덩달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어섰다. 모두 

가 나가고 나서 맨 후미에 있던 남궁진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남궁철을 

바라보다가 밖으로 사라졌다. 

가주는 모른 척 하고 있었지만 남궁진의 슬픈 눈을 애써 무시했다. 대 

신 그는 남궁벽에게 물었다. 

"저 사내가 그 진군휘라는 잔가?" 

"그렇소이다." 

"젊어 보이는 데 대단하군. 약관 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혈리추검 공청 

을 꺾을 정도라니…… 내가 저 나이 때는 무엇을 했더라?" 

"무상검제의 후손이라는 위명이 결코 아깝지 않은 청년이었소. 그나저 

나 식사를 해야 하지 않겠소 가주." 

"아아, 그래. 그래야겠지." 

남궁벽은 시녀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고개를 조아린 시녀는 조심스 

럽게 죽을 퍼서 남궁철의 입가에 가져다댔다. 힘겹게 입을 연 남궁철은 

죽을 삼켰다. 재차 죽을 먹기 위해 입을 열리던 남궁철은 기침을 터트렸 

다. 

"쿨럭, 쿨럭!" 

"가주!"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와버렸다. 시녀는 놀란 나머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 

지 못했고 남궁벽이 급히 남궁철의 입가에서 피를 닦아냈다. 남궁벽은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 시녀에게 말했다. 

"됐다. 너는 그 음식을 놓고 이만 나가거라." 

"아, 알겠습니다." 

귀신이라도 쫓아오는 것처럼 시녀는 방을 벗어나가 버렸다. 남궁철은 누 

운 채로 위를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죽나보이……" 

"가주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죽는다는 말씀이시오. 곧 나아질 

터이니 마음을 독하게 먹으란 말이오." 

"미안하이." 

"또 뭐가 미안하다는 말이요?" 

"자네가 내 아들인 혁련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 

네. 그리고 남궁진 그 녀석이 가주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 정도는 예전부 

터 알았네." 

남궁벽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남궁철의 말대로 남궁벽 

은 남궁진이 가주가 되었으면 한다. 남궁벽 또한 은연중에 남궁진을 돕 

고 있는 형편이다. 

가주의 얼굴에 쓸쓸해 보이는 미소가 걸렸다. 

"나 또한 알고 있네. 내 바보 같은 아들녀석 보다 남궁진이 더 가주의 

자리에 어울리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리 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 가주 자리를 남궁혁련이 아 

닌 남궁진에게 넘기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렵다고……" 

"자넨 자식이 없지?" 

"아시지 않소." 

"자네에게 자식이 있었다면 내 마음을 이해했을 걸세. 비록 철이 없고, 

대단치 않은 자식놈이지만…… 그래도 자식이네. 자신의 자식에게 모든 

걸 주고 싶은 것, 그게 바로 부모라는 것일세." 

남궁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 

다.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할 일이다. 남궁세가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남궁진이 가주가 되어야 한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는 남궁벽을 향해 남궁철이 중얼거리 

듯이 말했다. 

"미안하이…… 날 용서하게." 

남궁벽은 듣지 못한 것처럼 문을 닫고는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의 눈이 

하늘로 향했다. 마음 속에서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격한 감정이 꿈 

틀거렸다. 

도대체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인가. 무엇을 용서해 달라는 말인가! 남궁 

벽이 왜 그따위 멍청한 자식 하나 때문에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가. 천하 

의 남궁세가의 가주가 자식 하나 때문에 미안하다며 용서해 달라고? 

"허허." 

공허한 웃음만 나온다. 자신의 아비가 이토록 힘겨운데도 불구하고 남궁 

혁련은 단 한 번만 찾아 온 이후로는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다. 우스운 

건 그런 후레자식도 자식은 자식인 모양이다. 

부모란 건 그런 거다. 한없이 주면서도 남은 그 모든 것을 주고자 하 

는…… 

'하지만 가주 당신의 선택은 틀렸소. 그 놈은 결코…… 가주의 재목(材 

木)이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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