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137)

재회(再會) 

"그 말 들었는가?" 

"뭐? 밑도 끝도 없이 그 말이라니." 

"아, 요즘 무림맹 내에서 소문이 자자한 그거 말일세!" 

"혹시…… 진군휘라는 사내에 대한 이야기 말인가?" 

사내의 말에 처음 말을 꺼냈던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무림맹에서 단 

연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라 하면 바로 그 사내에 대한 이야기다. 

진군휘라는 혜성 같이 등장한 사내. 

더군다나 이번 만금산장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면서 그 이름은 사람들의 입 

에 더욱 오르내리곤 했다. 

단신으로 흑색 기마대를 막으며 모두를 도망치게 했다는 이야기는 협과 의 

를 중히 여기는 정도인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소문은 소문을 낳았다. 여운휘에 대한 무수한 추측들이 난무했고, 점점 그 

것은 불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타고 진군휘라는 이름이 천 

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주변에도 불구하고 여운휘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연무장으로 향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여운휘는 검을 움직였다. 예전에 비해 주변에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눈 

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연무장에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자신을 보고 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 지 모를 정도로 여운휘는 둔감하지 않다. 

처음 무림맹에 왔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했다 봐도 좋을 것이다. 무림에 

이름을 날리고 무림맹 내에서도 중요한 고수로 부각되는 일은 어느 정도 성 

공한 셈이다. 

일은 잘 풀려나가고 있지만 여운휘의 기분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수황과의 일전,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싸움이지만 패했다. 오행검법 

을 쓰지 않아서 졌다. 

그거다. 바로 그게 문제라는 거다. 

오행검법을 쓰지 못해서 졌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오행검법을 쓰지 못한 

다 해도 이겼어야 한다. 썼다면 이길 수 있었을 텐데는 중요하지 않다. 쓰 

지 않고도 이겨야 하는 거다. 

수황과의 일전 이후 여운휘는 많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더욱 강해져야 한 

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지금 이대로 만족할 수는 없다. 

더욱더 강해지지 않는다면…… 그녀를 지킬 수가 없다. 

오행검법을 쓰지 않고서도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실력이 되야 한다. 

여운휘는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자들 중 그의 검을 볼 수 있 

는 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가 내린 해답은 바로 이것이다. 

쾌검. 

무상검제 진군악의 쾌검이 여운휘의 손에서 펼쳐졌다. 그 누구도 쉬이 보 

지 못할 속도로. 

여운휘는 긴 검무를 추고 검을 내려트렸다. 주변에 있는 자들이 대단하다 

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고 있었다. 

검이 뭔가 허공을 베는 느낌이다. 예전에 비해서 오히려 약해진 기분까지 

들 정도다. 

검은 움직이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 이유가 왜인지 아는 탓에 여운휘는 더욱 답답했다. 

'잘 지내고 있는 지 모르겠군.' 

몸을 혹사하면서 이런 저런 잡념을 버리려고 하고 있지만 그게 되지 않는 

다. 검을 휘두르면서도 유설린의 생각이 난다.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는다. 

보지 못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걱정도 된다. 아무런 일도 없으니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돌지 않는 것이겠 

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변함이 없다. 

무공을 익힐 때는 유설린에 대한 생각을 접으려 마음먹었거늘, 여운휘는 자 

신도 모르게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여전히 굉장하군!" 

검을 검집에 넣으며 숨을 몰아쉬던 여운휘에게 다가온 건 제갈군이었다. 그 

는 여운휘에게 다가와 재차 입을 열었다. 

"오늘 약속을 잊은 건 아니겠지?" 

"……?" 

"광한검 어르신이 오늘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는가." 

"벌써 시간이 그리 됐군." 

약속을 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그리 지났다는 걸 모르고 있었을 뿐 

이다. 벌써 겨울도 다 가고 있다. 쌀쌀했던 날씨도 천천히 그 위세가 죽어가 

고 있다. 

여운휘는 제갈군과 함께 누남천이 있는 거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봄이 오는 군……' 다 가고 있다. 쌀쌀했던 날씨도 천천히 그 위세가 죽어가 

고 있다. 

여운휘는 제갈군과 함께 누남천이 있는 거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봄이 오는 군……' 

쌀쌀하면서도 어딘가가 훈훈한 바람이 여운휘를 스쳐 지나갔다. 왠지 모르 

게 반가운 손님이라도 올 것 같은 기분이다. 

누남천의 거처에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눈 후 일행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여운휘 또한 다른 곳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 

다. 요즘엔 이래저래 아는 척 하는 사람이 많아서 귀찮다. 

그 탓에 여운휘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더욱 사람이 없는 곳에서 쉬곤 했다. 

지금 가는 곳은 사람이 없는 곳을 찾던 와중에 발견한 곳이다. 정확하게 말 

해서 발견했다기 보다는 남궁진이 가르쳐 주었다고 해야 옳을 게다. 

그는 무림맹 내에서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을 여운휘에게 가르쳐 줬다. 그 

리고 여운휘는 쉴 때는 빼놓지 않고 그곳에 찾아가곤 했다. 

나무에 몸을 기댄 여운휘는 멀리 하늘을 올려다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을 머금은 퀴퀴한 회색의 구름들이 하늘을 덮고 있었는데, 지금의 하늘 

은 새파랗다. 

여운휘는 눈을 감았다. 

한동안 눈을 감고 있던 여운휘는 누군가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옷 

자락 소리와 함께 들리는 발걸음 소리. 

'셋.' 

적의가 있는 건 분명 아니다. 저들은 숨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걸 

어오고 있었다. 여운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괜히 눈을 떴다가 아는 척이라 

도 하면 귀찮기만 하다. 

남궁진이라면 자신에게 다가와 말이라도 걸 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세 명 중 두 명이 방향을 틀고 돌아가기 시작 

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여운휘의 옆에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운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마치 잠이라도 든 것처럼 

여전히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렸다. 먼저 일어서서 가기를 기다린 거다. 그런데 한 시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옆에 앉은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지?' 

옷자락 스치는 소리로 추측컨대 옆에 있는 자는 여인이다. 더불어 코로 스 

며드는 냄새는 여인이 바르는 분 냄새가 분명하다. 여인인 건 확실하다. 

아무리 날씨가 선선해졌다고는 하지만 밤이 되면서 점점 날씨가 추워지는 

데도 불구하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여운휘는 머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다지 상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여인은 자신이 눈을 뜨기 전에는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다.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선 여운휘는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린 그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잘 잤어?" 

"……" 

"안 자고 있었지? 휘가 사람이 다가왔는데도 모르고 있었을 리는 없잖아?" 

여운휘는 앞에 이 여인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 버렸다. 너무나 보고 싶었던 

여인, 차가운 바람 탓인지 얼굴이 붉어진 유설린이 자신의 앞에 있다. 여운 

휘는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곧 입을 열었다. 

"잘 지냈나?" 

"응." 

만나면 할 말이 그렇게 많을 것 같았는데 막상 입을 여니 나오는 게 없다. 

잘 지낸 거냐는 한 마디에 여운휘는 모든 걸 담았다. 그리고 유설린은 간단 

한 대답과 함께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나서야 여운휘는 현실이 느 

껴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신의 앞에 있는 건 유설린이다. 

"이곳은 어떻게 알고 온 건가?" 

"무림맹에 풍 노야랑 도착해서 네 거처로 찾아갔는데 없더라고. 그러다가 

운 좋게 남궁 소협을 만났어." 

"남궁진이 가르쳐 준 모양이군." 

이해가 간다. 아까 온 세 명 중 하나는 남궁진이었던 모양이다. 그라면 자신 

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아니까 유설린이 이곳을 찾아온 것도 이해가 간다. 

"추운데 말이라도 하지." 

"난 휘가 먼저 눈이라도 뜰 줄 알았지. 언제 뜨나 보려고 아무 말도 안 하 

고 있으니까 죽은 듯이 버티데." 

말을 하면서 유설린은 다시 웃었다. 

저 웃음에 마음을 줘버렸다. 굳게 닫혔던 자신의 마음을 녹였던 유설린의 

미소다. 여운휘는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푸근한 감정을 느꼈다. 

그 후로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운휘는 조용히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다 봤고, 유설린 또한 그의 시선을 쫓고 있었다. 

여운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운휘는 유설린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으 

켜 세웠다. 밤이 되면서 날씨가 심하게 추워졌다. 

"춥다. 들어가자." 

오랜만에 여운휘는 유설린의 옆에 섰다. 항시 함께 있었는데 한동안 떨어 

져 있었다. 두어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치 십 년은 지난 듯한 기분 

이다.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이 밤도 부족할 거다. 할 말이 아 

주 많다. 하지만 그 모든 지 않았지만 마치 십 년은 지난 듯한 기분 

이다.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이 밤도 부족할 거다. 할 말이 아 

주 많다. 하지만 그 모든 말을 여운휘는 단 한 마디로 일축했다. 

"…… 보고 싶었다." 

"응, 나도." 

그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 한 마디면, 모든 게 다 표현되는 것을. 

밤이 깊다. 

선선하게 변했던 바람마저 밤은 예외였던 듯 하다. 한 겨울을 연상케 할 정 

도로 혹하게 몰아치는 바람은 자연을 움츠리게끔 했다. 

방안은 어두웠다. 유등이 없었다면 주변의 사물을 분간하는 게 쉽지 않을 

정도다. 

노인이 사내에게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로군." 

"오랜만이오." 

"그래, 네 이야기는 요즘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고 있지." 

풍운조는 앞에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그리 오랫동안 못 본 것도 아닌데 왠 

지 모르게 예전과는 다르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더욱 커져 버린 기분이다. 

그토록 강했었는데, 그 시간 동안 더욱 강해진 것일까? 

"악양유가에 특별한 일은?" 

"네가 간 후 그리 특별한 일은 없었다. 운문세가를 흡수했고, 그들이 지니 

고 있던 상권의 팔 할 가량을 손에 넣었지." 

악양유가는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다. 운문세가의 세력을 별 문제 없 

이 흡수했고, 뒤처리도 깔끔했다. 더불어 운문세가와의 일전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난 후, 일거리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황과 싸웠다고 하던데……" 

"싸웠소. 그리고 졌지." 

"아쉽게 됐군. 물 위만 아니었다면 네가 이겼을 지도 모르는……" 

"그렇다 해도 진 건 변하지 않소." 

풍운조는 묵묵히 여운휘를 바라봤다. 이런 점은 변한 게 전혀 없다. 이 사내 

는 만약이라는 것을 가정에 넣지 않는다. 이겼을 지도 모른다는 가정 따위 

는 전혀 쓰잘데기 없는 말이다. 

'만족하지 못하고 있군.' 

알고 있다. 이 사내가 어떠한 자인지. 

"그래 싸워보니 어떻던가?" 

"강하더군." 

여운휘는 손을 내려 검을 만졌다. 수황과의 일전 또한 여운휘의 머릿속에 

각인 된 대결 중 하나다. 지고 이기고를 떠나서 배울 것도 상당히 많았던 대 

결이었다. 

그런 수법을 쓸 수가 있다는 것도 알았고, 풍운조를 제외한 강호십일객과 

처음 겨루어 본 것이다. 

"그래, 수황 그 자는 분명 강하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너라면 그보다 분명 

강해질 수 있을 게야. 지금이야 힘들겠지만 몇 년 정도가 지나면 아무리 수 

황이라도……" 

"잊은 게요? 난 아무에게도 지지 않소.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요." 

풍운조는 하던 말을 멈추고 여운휘를 바라봤다. 

지금 당장 수황이랑 겨루어도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얼마 

전에는 졌지만 지금 겨룬다면 이길 수 있다는 거다. 

풍운조는 보았다. 

비록 어두운 방안이었지만 똑똑히 보였다. 어둠을 오히려 잠식하는 듯한 여 

운휘의 눈빛을. 

"그보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지?" 

"흑색 기마대의 대주에 대해 아는 게 있소?" 

"흑색 기마대라…… 이번에 만금산장을 갔다가 부닥쳤다는 말은 들었지. 대 

주를 본 모양이로군." 

"보지는 못했지. 온통 갑옷으로 몸을 가리고 있었으니까. 거기다가 거리도 

삼십 여 장 정도 멀어져 있었고. 하지만 하나는 분명 하더군. 내가 여태까 

지 본 자 중에선 최고라는 건." 

"음!" 

풍운조는 놀라고야 말았다. 

여운휘의 말은 결코 가벼이 들을 수가 없었다. 흑색 기마대의 대한 이야기 

는 풍운조 또한 잘 안다. 그들만큼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면서 정체가 드러 

나지 않은 자들도 없다. 

마교의 수뇌부 중에서도 아는 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라니 말해 무엇하랴. 

그런 세력의 우두머리라면 대단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하지 

만 여태까지 만나본 자 중에서 최고라니…… 

그건 곧 흑색 기마대의 대주가 수황보다도 강하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수황은 강호십일객의 하나잖아. 그보다 강하다는 건 조금 이해가 

안 가는데……" 

긴 침묵을 유지한 채 자리만 지키고 있던 유설린이 입을 열었다. 그녀로서 

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던 거다. 

현 강호의 최고 고수는 강호십일객이다. 그런데 수황보다 강하다는 건 곧, 

흑색 기마대의 대주가 다른 강호십일객 중 하나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럼 그 흑색 기마대의 대주가 다른 강호십일객의 하나라는 말이야?" 

"굳이 그렇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지. 무림은 넓으니까. 숨겨진 고수가 없으 

리라는 보장은 없지." 

여운휘는 풍운조를 바라봤다. 뛰어난 정보력을 지니고 있는 풍운조라면 무 

엇 하나 더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탓에 물은 것이다. 

풍운조 또한 자신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여운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 

지 그 또한 잘 아는 탓이다. 

'흑색 기마대의 대주……' 

세간에 알려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갑옷 위에 새겨진 무늬가 흑 

(黑)이라는 글자를 제한다면. 

나이도 모른다. 심지어 상대의 정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도 모른다. 

온통 베일에 쌓여 있는 문제다. 흑이라는 표시를 제한다면 단 하나, 단 하 

나 아는 게 있다. 결코 패배한 적이 없다는 것. 

그다지 모습을 자주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흑색 기마대의 대주가 나서서 패 

한 적이 없다. 

"모르겠군. 전혀." 

"역시…… 그런가?" 

여운휘 또한 크게 기대한 바는 아니었는지 실망하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 

다. 대신 그는 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디 있느냐?'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니 설령 길을 걷다 마주친다 해도 알 수 없다. 

이 무림맹에서 다른 정체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무 

슨 상관인가. 상대가 어디에 있던, 어떻게 정체를 숨기고 있던 문제 될 것 

은 없다. 결코 이대로 끝날 상대는 아니다. 

다시 만날 거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때 베면 된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자는 분명 자신들의 길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마교를 수 

복하기 위해서나, 무림맹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나 반드시 상대하게 될 적수 

임이 분명하다. 여운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녀의 길을 막는 자라면…… 

'베어주마. 네 녀석이 설령 하늘이라 할 지라도……' 

가볍게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능려운은 잡생각에 잠겼다. 

'지금쯤 만났으려나?' 

빠르다면 어제, 늦어도 오늘쯤에는 만날 게다. 능려운은 더욱 빠르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서 땀이 쏟아져 내렸다. 제대로 호흡조차 

들이키지 않으며 무작정 검을 휘두르고 있는 탓이다. 

초식도 없고, 호흡도 엉망이다. 무공을 연마한 다기 보다는 그저 칼부림에 

가깝다.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다리도 꼬였지만 능려운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그 

의 무작정 휘둘러대는 검이 멈춘 것은 우문학이 나타난 후였다. 

멀리서 다가오던 우문학은 능려운의 모습이 이상하게 비췄다. 움직임이 자 

신에게 무공을 배우기 전보다 오히려 엉터리다. 더군다나 비틀거리는 다리 

를 본 우문학은 경공을 펼쳤다. 

그 먼 거리가 발을 몇 번 구르자 순식간에 좁혀졌다. 

우문학의 손이 급하게 능려운의 좌수를 낚아챘다. 

그때까지 모르고 검을 휘두르던 능려운은 우문학의 모습을 보고서야 정신 

을 차렸다. 

"헉헉, 오셨습니까?" 

"이게 무슨 멍청한 짓이오!" 

"하하, 땀 좀 빼려고 무턱대고 휘둘렀는데 그게 좀 과했던 모양입니다." 

"무인은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거요?"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피가 머리로 쏠렸 

다. 당장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머리가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멍청한 욕심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올려다 볼 수도 없는 여인이라 

는 것을 모를 리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 자 

신이 연정을 품은 여인이 다른 사내를 찾아갔다. 

상대 할 수 있는 사내라면 이토록 억울하지는 않을 게다. 

능려운은 강해졌다. 1조 조장인 우문학에게서 그의 독문무공인 혈풍구룡검 

법(血風九龍劍法)을 배웠다. 비록 아직 이성도 채 터득하지 못하고 있지만 

삼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다면 분명 대성할 수 있을 게다. 

대단한 무공을 대성할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능려운의 표정은 어두웠다. 

능려운은 우문학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우문학, 혈풍구룡검법을 대성한다면 그 사내와 겨루어 어느 정도의 승산이

 있겠습니까?" 

"그 사내라? 그 사내라 함은……" 

"가주님의 곁에 있는 그 사내 말입니다." 

"아아, 진군휘?" 

능려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학은 자신을 바라보는 능려운을 바라보다 조심

스럽게 입을 열었다. 

"흐음, 그건 대충 나와 그자가 싸웠을 때의 승산을 묻는 것과 비슷하겠군." 

그냥 물었던 건데 어찌 보니 질문이 그리 되어 버렸다. 능려운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우문학은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대답을 회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서 수십 번 여운휘와 싸우고 있는 것

이다. 마침내 우문학이 눈을 떴다. 

"일 할." 

"겨우…… 일 할 이란 말입니까?" 

승산이 십 분지 일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에 능려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최소

한 이 할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우문학을 기준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가. 자신으로 계산한다면 저 확률

은 더욱 낮아지게 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십 년이 지난다면. 십 년이 지난다면 제가 이길 승률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일 할." 

대답이 변함이 없다. 

능려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턱대고 자신의 목표라고 잡았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면 익힐수록 그 사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된다. 자신 따위

가 쉬이 목표로 잡을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때 잠시 머뭇거리던 우문학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것도 진군휘가 지금 상태에서 전혀 강해지지 않는다는 가정으로 두고……"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사내가 지금에 만족하고 그대로 멈춰 서서 자

신을 기다려 줄 리가 없다. 

우문학의 말을 능려운을 이해하고 말았다. 

우문학은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거다. 평생동안 그를 이길 수 없을 거

라고…… 

우문학은 숨을 몰아쉬고 있는 능려운을 바라봤다. 며칠 전 소가주가 떠난 

이후로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정말 자네 아무런 일도 없는 건가?" 

"괜찮습니다. 정말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능려운은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결코 즐거운 사람의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우문학이 그것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뭔가 속에 얹힌 게 있는 거다. 막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우 대협!" 

문을 열고 한 사내가 달려 들어왔다. 그는 우문학의 앞에서 부복했다. 

"문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범상치 않은 여인 하나가 능 소협을 찾는다고 합 

니다!" 

"능 소협을?" 

우문학은 범상치 않은 여인이라는 말에 능려운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찾아 

올 사람이 있냐는 눈빛에 능려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을 찾아올 사람 

이 없다. 하물며 여인이라면 더더욱. 

"무슨 용건이냐고 물었느냐?" 

"저기 그게 전혀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용건이 있다고 능 소협을 

모셔 오랍니다. 그 전에는 결코 움직이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가 봐야 될 것 같군."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우문학."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문학과 능려운은 세가의 정문으로 향했다. 중요 

한 용건이 있다고 하니 만나볼 이유는 충분하다.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대비하고자 둘 모두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다. 

문 앞에 도착한 능려운은 자신을 보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능려운은 순간 움찔했다. 

빼어난 미인이다. 사람의 혼을 몽땅 빼앗아 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가 몸에 

서 풍겨 나왔다. 어떠한 사내라도 당장에 품안으로 안고 싶은 욕망에 젖어 

버리게 만들 정도의 색기다. 

능려운이 놀란 건 단순히 그 여인이 미녀였기 때문이 아니다. 

능려운을 바라보며 미녀가 웃음 지었다. 

"오랜만인데? 나 기억해?" 

잊을 리가 있겠는가. 빼어난 미모도 미모지만 그 이름 또한 널리 알려진 여 

인이다. 

"물론 기억하고 있소." 

일전에 운문세가와 소금을 거래할 때 봤던 여인이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 

았지만 가만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았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압감을 주었 

던 여인. 

"내가 어찌 색미호(色尾狐) 도미진을 잊겠소." 

도미진의 등장과 함께 악양유가는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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