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137)

하지만 살았다. 건곤대의 대원 중에서 생존자였던 몇은 죽었지만 그 외에 

같이 왔던 일행은 단 하나도 죽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누구 때문인지 제갈 

군은 너무도 잘 알았다. 

'진군휘……' 

재미있는 자라고만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대단한 기재라는 칭찬을 받고 

자란 자신들과는 다르게 갑작스럽게 등장한 사내. 

대단한 무위를 지녔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냥 그렇구나 하는 선에서 끝났 

다. 하지만 눈으로 실감한 지금 제갈군은 여태와는 다른 눈으로 여운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 까 생각하니 몸이 떨릴 정도다. 제갈군 

의 시선에서는 어느새 경탄(驚歎)이 가득 담겨 버렸다. 

그때 여운휘는 바위 위에 앉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일행 중 제갈군과 모용취의 부상이 상당했다. 제갈군은 다리를, 모용취는 

어깨를 다쳤다. 그리고 건곤대의 생존자 중 하나는 오는 도중에 목숨을 잃 

고야 말았다. 

지금 이곳에 멈춘 것은 제갈군과 모용취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함이다. 완벽 

한 치료는 무리지만 그래도 우선 지혈이라도 해야 한다. 이 상태로 그냥 산 

을 내려간다면 중간에 목숨을 잃은 건곤대의 무인과도 같은 처지가 될 게 

분명하다. 

모용취는 윗옷을 벗고 백서립의 손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백서립은 어느 

정도 의술 쪽에 지식이 있었기에 지혈 같은 것은 무리 없이 해냈다. 모용취 

는 이마를 찌푸렸다. 창이 쑤시고 지나갔던 어깨가 상당히 아프다. 운이 좋 

게 그때 뒤로 움직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팔이 떨어져 나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픈가?" 

"아프니 이런 표정을 짓는 거 아니요." 

모용취는 투덜거리면서 백서립에게 대꾸했다. 상처가 남을 거라는 백서립 

의 말을 들은 후부터 그의 기분은 계속 좋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 징그러운 

상처가 남는다는 건 모용취에게는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망할 그 따위 마교의 무리들에게……' 

여운휘와 마찬가지로 주변을 살피고 있던 누남천이 백서립에게 다가왔다. 

"그래 상처 지혈을 대충 끝났는가?" 

"예. 지금 출발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럼 서둘러 출발하지. 서두르지 않는다면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 

르니 말일세." 

말을 마친 누남천은 앉아 있는 일행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일행들은 모 

두 일어나서 다시 산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서립은 제갈군을 업었다. 모용취야 부상을 당한 곳이 어깨인지라 움직임 

에 별반 무리가 없지만 제갈군은 아니다. 걸을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상처가 더 벌어질 위험이 있다. 

여덟으로 줄어 버린 인원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은 그들의 움직임을 더디게만 했다. 힘들만도 하련만 

아무도 쉬자는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멈춘다면 바로 뒤에서 흑 

색 기마대가 새카만 창을 들고 달려들 것만 같은 기분 탓이다. 

그들의 머리 속에서 흑색 기마대는 그토록 강하게 각인되어 버렸다. 

그때 맨 앞에 서 있던 누남천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는지 일행들을 멈추게 했 

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갔던 누남천이 목소리를 높혔다. 

"마을, 마을이다!" 

마을은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산 바로 밑에 있는 마을 치고는 꽤나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듯 했다.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켜져 있는 붉은 등들이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목소리와 더불어 싸우는 소리마저 들린다. 누남천은 먼저 약방 

을 찾았다. 하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열려 있는 약방은 단 하나도 찾을 수 

가 없었다. 

"객잔을 잡고 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혈을 했으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상처가 심해 질 리도 없고요." 

"힘들겠지만 둘 다 조금만 참게. 날이 밝는 데로 내 약방에 데려가 줄 테 

니." 

제갈군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모용취는 별반 말을 하지 않았 

다. 아직까지도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객잔은 꽤나 컸다. 

환자가 많았던 탓에 근방에 있는 아무 곳이나 찾아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좋은 객잔이었다. 이런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손님들도 북적거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점소이 하나가 다가왔다. 

"무엇을 시키실 겁니까?" 

"우선은 방 세개를 줄 수 있겠나?" 

"세개는 없고 두개 밖에 없는데……" 

"그런가? 그럼 두개라도 부탁하지." 

점소이는 고개를 조아리고는 다른 점소이를 시켜 방으로 안내하게 했다. 모 

용취는 끝끝내 부축을 해 주려는 손을 뿌리치고는 혼자서 올라섰고, 제갈군 

은 여전히 백서립의 등에 업혀 방으로 이동 됐다. 

나머지 일행들은 모두 의자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누남천은 막 지나가는 점소이를 불렀다. 

"이보게." 

"왜 부르셨는지?" 

"이곳은 왜 이리 손님이 많은가."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이곳 뿐만이 아니라 이 마을에 있는 객잔은 지금 

손님들로 가득합니다요." 

"흐음?" 

누남천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점소이를 쳐다봤고 그런 의도를 알았는 

지 그가 입을 열었다. 

"산에 눈이 많이 온 탓인지 사람들이 저 위로 올라가지 못해서죠. 그 탓에 

저희 주인 어르신 께서는 신이 나셨습니다." 

"매년 그러는가?" 

"아닙니다요. 매년 그렇다면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객잔을 하게요? 오히 

려 눈은 작년이 더 심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년은 왜 이리 손님이 몰리는 

지 원." 

그때 막 뒤에 있던 나이 많아 보이는 점소이가 누남천의 앞에 있는 사내에 

게 외쳤다. 

"이 자식아! 또 시끄럽게 떠들고 있어? 어여 가서 일 못하겠어!" 

"알았다구요! 하면 되잖아요 하면! 에이, 제길." 

점소이는 욕을 내뱉으면서 자리를 떴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여운휘는 누남천을 보고 있었다. 누남천은 무슨 고 

민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운휘의 예상대로 누남천은 뭔가를 생각하던 중이었다. 뭔가가 이상하다. 

특별히 뭐라고 꼬집을 것은 없지만 분명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변함 

없다. 

뭐가? 

모르겠다. 뭐가 이상한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가슴 한켠이 너 

무나 찜찜하다. 

이런 곳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자꾸 마음을 불안케 한다. 특별 

히 이 산을 건넌다고 돈이 될만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데 이토록 많 

은 사람들이 왜 이 산을 넘으려고 하는 것인가. 

고민을 하던 누남천의 앞에 음식이 놓여졌다. 음식을 본 그는 우선 생각을 

접었다. 지금은 쉴 때다. 우선 식사를 하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는 않을 거 

다. 

'후우, 과민반응인가?' 

하룻동안 너무나 심하게 고생을 한 탓인지 신경이 예민해진 모양이다. 

'아무 일도 아니겠지.' 

누남천은 애써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신경을 날 

카롭게 분산 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위로 올라갈 때 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제야 

누남천은 천천히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역시나 신경이 예민해졌던 듯 싶 

다. 그때부터 누남천은 평소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올라가자 그토록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자들이 하나 둘 

씩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나서 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구석에서 술잔을 홀작이던 사내. 평범한 키에 흰 피부를 가진 사내가 그곳 

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꽤나 젊어 보였다. 그리고 얼굴 또한 곱살하게 생긴 것이 부잣집 자식 

같아 보인다. 태어나 고생은 하나도 하지 않은 부모의 품안에서 자란 철부 

지만 같다. 강한 바람만 불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꺾일 것만 같은 그러한 사 

내였다. 

그 사내의 손에서 잔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나이는 갓 스무 살이나 됐을 

까 의심이 들 정도였지만 실제 그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예 

상과 달랐던 것처럼 그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편안하게 자라왔을 거라고만 생각되는 외모는 그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착각을 주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내는 부모가 누군 지 

도 모른다. 그리고 고생 하나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손에서 무기가 떨어진 날 

은 단언컨대 단 하루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무기를 잡은 이후로 결코 쉰 적이 없다. 하루의 잠은 많아야 두 시진이 

다. 그 이상의 수면은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내였기 때문이다. 

객잔은 그를 바라보는 사람과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분위기에 의아해하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정말로 이 산을 넘으려는 장사꾼들로 나뉘었다. 

시끌벅적했던 객잔의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가라앉자 마을 사람들과 장사꾼 

들은 일순 당황했다. 칼날 위를 걷는 듯이 등에서 식은땀이 쏟아지기 시작 

했다. 사내는 자신을 바라보는 자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객잔은 다시 웃음이 넘치기 시작했다. 

"하하! 갑자기 왜들 분위기가 그런가! 자자, 다들 마시자고!" 

어떤 덩치가 우람한 사내가 일어나 분위기를 띄우기라도 할 요량으로 신나 

게 웃음을 터트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는 웃음을 터트렸고, 그렇 

게 순간 경직했던 객잔의 분위기는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자신이 느꼈던 섬뜩했던 감정을 잊었다. 아니, 잊으려고 했다. 

사내는 술잔을 들고 입안으로 쏟아 부어 버렸다. 그토록 독한 화주인데도 

불구하고 사내는 결코 미동하지 않았다. 

그에겐 이 독한 화주도 아무렇지도 않게만 느껴졌다. 그건 그가 술이 강해 

서가 아니다. 독한 화주를 물 같이 들이킬 수 있는 건 사내가 감각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고통? 그런 건 모른다. 아파 본 적이 언제였던가. 어렸을 적 크게 다쳤던 

그 날 이후로 고통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던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어렸을 

때 느꼈던 고통도 이제는 시간이 지나 퇴색되어 버렸다. 

고통을 모르기에 그는 두려움도 모른다. 

그에게 술은 물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저 조금 더 톡 쏘는 듯한 물이 

라는 것 뿐…… 

하지만 그는 술을 좋아했다. 이런 작은 감각조차도 잊는다면 무인으로 살 

수가 없다. 

조용히 술을 바라보던 사내는 다시금 술잔을 들어 올렸다. 

방은 두 개로 나뉘었다. 환자인 모용취와 제갈군, 그리고 그 둘을 보살 펴 

줄 백서립과 건곤대의 나머지 생존자가 한 방에 모였고 그 외에 나머지 인 

원은 모두 다른 방에 배정 됐다. 

침상은 여자들의 차지였다. 같은 방을 씀에도 불구하고 당산희와 설혜주는 

아무런 불만도 토로(吐露)하지 않았다. 

"불편하겠지만 하루만 참거라. 내일 약방이 열리면 상태를 살피고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떠날 테니 말이다." 

"크게 불편하지는 않으니까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설혜주는 환하게 웃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피곤했지만 우선은 씻 

고 싶다. 피에 젖어 버린 옷은 잠시 쉬는 틈에 갈아입어 객잔에 들어왔을 때 

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몸 군데군데에 묻은 피는 굳어 있는 상태였다. 

설혜주는 대충 몸을 씻고 나서 침상에 몸을 실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나니 더 이상 눈꺼풀이 버텨 내지를 못했다. 그녀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여운휘는 방구석으로 다가가 몸을 기댔다. 누남천은 여운휘가 벽에 몸을 기 

대고 눈을 감자 그에게 다가왔다. 

"편하게 누워서 자지 왜 앉아서 자는 게냐. 특별한 일은 없을 게야. 긴장 풀 

고 편하게 자도록 하게." 

"난 잠을 잘 때는 항시 이렇게 자오. 이게 편해서 이리 하는 것이니 괜한 오 

해하지 마시오." 

누남천은 여운휘가 만약에 있을 일에 대비해 이렇게 잠을 청하려는 것이라 

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운휘가 땅에 몸을 대고 누워서 잔 적이 얼마나 있을 

까. 

아무런 일도 없이 지냈던 마교에서도 여운휘가 땅에 등을 대고 잔 적은 손 

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다. 누남천은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 

다. 

"넌 참 신기하단 말이야?" 

말을 마친 누남천은 구석자리에 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불이 꺼진 방에 

서는 숨소리만 고르게 들리고 있었다. 여운휘의 눈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빛났다. 

편히 자려고 해도 잘 수가 없다. 자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신은 멀쩡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이 여운휘의 감각을 일깨웠다. 그 또한 누남천과 마 

찬가지로 아까 아래층에서 있었던 일이 석연치 않았다. 

더군다나 방에 들어서고 나서 여운휘는 문 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 탓 

에 똑똑하게 들었다. 잠시간 있었던 고요를 그는 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금 

방 다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긴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길 여운휘 

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탓인지 여운휘는 잠을 자지 않았다. 그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객잔에 도착한 시간이 인시(寅時) 정도였기에 두 시진 정도가 지나자 천천 

히 밖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여운휘가 창 밖에서 빛이 들어온다고 생각하 

는 순간 문을 열며 백서립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르신, 아침입니다." 

누남천은 문이 열렸을 때 이미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 

나 길게 기지개를 폈다. 

"꽤나 부지런하군 자네. 잠을 자기나 한 건가?" 

"제 동료와 번갈아 가면서 한 시진 가량씩 잠을 청했습니다." 

"그럼 모용취와 제갈군을 약방으로 데려가도록 하지." 

여운휘는 애초에 잠을 자지도 않았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누남 

천이 손을 들어 그를 저지했다. 

"됐어, 잠이나 자고 있게." 

여운휘는 잠을 잘 생각은 없었지만 그냥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굳이 약 

방을 따라갈 마음이 없었던 탓이다. 여운휘가 자리에 앉자 누남천은 백서립 

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방에 있던 모두는 잠시 눈을 떴지만 곧 다시 골아 

떨어졌다. 

한동안 앉아 있던 여운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객잔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어제 저녁까지 술판이 벌어졌는지 꽤나 어지러 

웠다. 여운휘는 그것을 치우고 있는 점소이를 보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식사는 되나?" 

"아,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드실 것을 말씀하시고 씻고 오시면 

서둘러 말을 해 놓도록 하지요." 

"간단한 거 두어가지 주문하지." 

말을 마친 여운휘는 벌떡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여운휘가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문이 열리며 반대편에서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여운 

휘를 힐끔 쳐다본 사내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아무런 생각도 없었던 여운휘는 움찔했다. 

'문을 열 때까지 저 자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긴장을 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에서야 누군 

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사내에게서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여운휘는 뒤를 돌아봤다. 자신을 놀라게 했던 그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위층 

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저 자는…… 누구지?' 

여운휘는 처음 보는 사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위층으로 올라선 사내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몇몇의 무인들 

이 부복했다. 그리고 개중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치려고 한다면 지금이 좋을 것 같습니다. 광한 

검 또한 밖으로 나갔으니 지금 만한 기회는 없을 겁니다." 

"아니, 됐다." 

사내는 손을 흔들며 수하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죽여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지만 '그'의 입장도 생각해 

야지. 아직 저들은 죽을 때가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면 왜 이곳까지……" 

왜 자신들을 이곳까지 오게 하는 헛고생을 시켰냐고 물으려던 그는 말을 속 

으로 삼켰다. 자신의 앞에 있는 사내가 누구인지 잠시 잊어버렸다. 곱살한 

외모에 잠시 정신이 나갔나 보다. 헌데 사내는 자신의 수하가 하려고 했던 

말을 자신의 입으로 되뇌었다. 

"왜 너희들을 이곳까지 오게 하는 멍청한 짓을 저질렀느냐?" 

"주, 죽여주십시오!" 

그는 자신의 머리를 땅에 박았다. 몇 번이나 쾅쾅거리면서 박은 탓에 그자 

의 머리가 터지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왜냐고? 궁금한 것이 있었다. 보고 싶은 것이 있었지." 

"……?" 

"그리고 봤다. 보고 싶은 걸 확인했지." 

아까 문을 열면서 두 사내가 마주쳤을 때 놀란 건 여운휘뿐만이 아니었다. 

그 또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놀라버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오면서 눈앞에 사내가 있음에 당황해 버렸다. 자신이 문을 열 때까지 그는 

아무런 기척도 듣지 못했던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피가 머리끝까지 치솟을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는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강하게 휘몰아치면서 그의 머리를 헝클어트렸 

다. 

"후후, 재미있어." 

사내의 말에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자가 급하게 고개 

를 들었다. 그로서는 상관의 저런 말이 놀랍게 들렸던 것이다. 감각이 없었 

던 탓에 매사를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사내였다. 

창문을 열고 멀리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웃음으로 가득했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듯한 그의 눈빛을 확인한 수하들은 모두 고개를 들 수 

가 없었다. 

두렵다. 자신들의 상관이기는 하지만 고개도 들 수 없을 정도로 무섭다. 그 

의 몸에서 뿜어지는 무형의 기운들이 자신들을 옥죄고 있다. 

그 누가 그의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을 수 있을까. 

흑색 기마대의 대주인 백무량(白無亮)의 앞에서! 

사무린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방은 한치 앞도 분간하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의자 

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던 사내는 태산 같이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무엇을 하러 나가겠다는 거냐." 

사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술에 찌든 그의 얼굴은 피로로 가득해 보 

였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낮게 중얼거렸다.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눈빛이 무척이나 초조해 보인다.   

                             

더불어 핏발이 선 붉은 눈동자는 괴기스럽게 까지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린은 태연하게 그의 말에 답했다. 

"이번이 어머니의 기일(忌日)인지라 무덤을 한 번 찾아가 보려고요. 저도 

제 입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드러날 일은 결코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기일이라   네깟 년에게 그런 것이 있었던가." 

"그것도 있고, 실전을 겪어 보고 싶달 까요? 교주님 정도 되시면 잘 아실 텐 

데요? 실전의 중요성을 말이에요." 

교주의 붉어진 눈이 사무린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마치 오장육부를 파헤칠 듯한 차가운 눈빛이다. 눈빛이 매서운 겨울바람처 

럼 사무린의 몸을 한 바퀴 휩쓸고 지나갔다. 교주는 세상 일을 모두 달관한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음대로 해라. 단 이거 하나는 명심해라. 넌 나의 비장의 한 수다. 결코 

네 정체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번 여행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정 

체가 드러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그 정도도 해내지 못한다면 그 

만한 그릇이려니 해야겠지." 

"결단코 교주님의 심기를 건드릴 일은 없을 거예요. 그건 믿어도 좋아요." 

"가라." 

가라는 말을 내뱉은 이후 교주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마교를 잡은 후 그의 세월에서 기쁨이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 동 

안 고민했던 흔적들이 엄백린의 몸을 망쳐 놓기만 했다. 손에 박힌 굳은살 

도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유설린을 찾지 못했다는 현실에 망연자실해 했다. 마교를 손 

에 넣었다고는 하지만 그녀를 찾지 못한다면 그건 반쪽 자리 밖에 되지 못 

하는 거다. 

완전치 못한 반쪽이라는 것은 그저 병신에 불과하다. 

사무린은 더 이상 교주의 입이 열리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교주 

의 거처의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거처를 나서는 순간 사무린은 길 

게 숨을 내쉬었다. 안과 밖이 전혀 다른 공간 같다. 

안에서 무릎을 꿇고 있을 때는 꽤나 답답했다. 방 안을 무겁게 내리누르던 

공기 탓이다. 사무린은 바람에 흔들리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렸 

다. 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가 비단처럼 부드러운 윤기를 비 

추며 흩어져 버렸다. 

만만하게만 생각했는데 그건 오판이었던 듯싶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건가?' 

이름만 남은 맹수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맹수는 맹수인 모양이다. 아직 

도 죽지 않은 자신의 이를 드러내는 것을 보니. 

'그래도 이미 이가 빠진 맹수라는 건 변함 없지.' 

술에 쪄들어 주변이 돌아가는 것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자다. 더 이상 그 

는 사무린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의 발이 어둠을 밟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낳아 주었던 어머니의 기일 탓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챙길 정도로 어머니를 사랑하지도 않았다. 

사무린이 자신의 고향이 있는 쪽으로 어머니의 기일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찾아가는 것은 명령 때문이었다. 

귀검사영 진린이라는 자의 명령. 그 자는 자신의 고향 근방에 있는 사람에 

게 찾아가 자신이 맡겼던 것을 찾아오라고 했다. 

사무린은 그 명을 받들어야 한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진린 그의 정체를 알게 하는데 작은 단서라도 줄 거 

야.' 

단순하게 임무를 받고 수행하는 수하가 아니다. 언제라도 뒤통수를 쳐야 

할 적에 대해 알기 위한 그녀만의 삶의 방식인 셈이다. 

밤거리를 밟으며 걷는 그녀의 발이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사무린은 교주를 찾아가기 바로 하루 전에 진린의 부름을 받았다. 그녀는 

진린을 만날 때 항시 비밀리에 찾아가곤 했다. 그건 진린이 명했던 것이기 

도 했지만, 사무린 또한 그것을 대놓고 보일 정도의 바보도 아니었다. 

무슨 일일까 의문이 가지고 찾아든 그녀에게 진린은 예상치도 못한 말을 전 

했다. 예전 사무린이 어렸을 때 산 마을 부근에 자신이 무엇을 맡겨 놨다 

고. 그러니 그것을 찾으러 갔다 오라는 명령이었다. 

그 탓에 그녀는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머니라는 말을 들먹거려야 했 

다. 

사무린은 마교 밖으로 벗어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사곡에 잡혀 

들어온 이후, 마교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거의 이십 여 

년 만에 밖으로 나온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떨림이나, 두근거 

림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당연하다는 느낌만 들뿐이다. 

마교 안에도 땅이 있고, 하늘이 보이며 나무가 있다. 이곳과 특별히 다를 바 

가 전혀 없다는 소리다. 

사무린은 쉬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공을 펼쳐서 달리다가 조금 숨 

이 가빠오면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다리를 놀리지 않고 움직이니 

해가 질 때쯤 꽤나 많은 거리를 와 버렸다. 

겨울에 밖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린은 전혀 거리낌 없 

이 움직였다. 불을 지폈고 음식을 했다. 준비해 온 모포를 늘여 놓은 그녀 

는 간단하게 식사를 마쳤다. 사무린 또한 사곡에서 살아남은 여인이다. 

한 겨울에 노숙은 셀 수도 없이 해온 경험이 있다. 그녀에게 이런 날에 노숙 

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사무린은 잠을 청하기 위해 모포 안으로 몸을 묻었다. 불가 근처에 누운 그 

녀의 눈이 잠겼다. 하지만 모포 속에서 조용히 잠겨 있는 손에 잡힌 검은 강 

하게 쥐여 있었다.   

사무린은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자신이 태어났던 마을에 도착 

했다. 

그녀는 마을 안에서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살폈다. 마을은 예전과 전혀 변함 

이 없어 보였다. 큰 마을답게 커다란 기루도 있다. 사무린의 시선이 기루를 

향했다. 

마을 정 중앙에 있는 기루는 사무린과 꽤나 인연이 있다. 아니, 악연이라고 

해야 옳을까? 

사무린의 어머니는 창기였다. 처음부터 그녀가 거적때기 하나 들고 몸을 파 

는 창기는 아니었다. 사무린의 어머니는 저 기루에서 가장 유명했던 기녀였 

다. 

그녀를 보기 위해 사방에서 사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정도니 그 외모란 이 

루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라 해도 애를 배게 된 후에는 이야 

기가 달라진다. 기녀는 기본 적으로 애를 낳지 않는다. 

애를 배게 되면…… 기루에서 쫓겨나기 부지기수다. 

그렇기에 창기들은 애를 배게 되면 아이를 지우기 위해 약을 먹는다. 그래 

야 자신들이 살 수 있으니까. 애를 지워야 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 

지만은 않다. 

지워야 하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한다. 지독한 모정(母情)이다. 

누구 씨인지도 모르는 애다. 하루에 몇 번이나 몸을 굴리는 창기들은 더더 

욱 그렇다. 비록 유명한 창기라고는 하나 그녀 또한 무수히 많은 남자들과 

몸을 섞은 터다. 설사 아비를 안다 해도 이 아이가 당신 아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싼 기루이니 만큼 찾아오는 손님들도 돈이 많은 자들에 속한다. 하물며 

가장 유명했던 기녀인 그녀로서야. 

사무린의 어미 또한 모정에 져버리고 말았다. 

또한 정에도 져버렸다. 

창기라는 건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고급 창기라고는 하나 

매한가지인 건 마찬가지다. 사무린의 어미는 정에 굶주려 있었다. 그저 스 

쳐 지나가는 하룻밤의 정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랬기에 애를 배고도 지우지 않았다. 그 탓에 그녀는 기루에서 다른 사람 

에게 팔려 버리고야 말았다. 한동안 그 사내의 옆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듯 

싶었지만 그러한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사내에게서도 쫓겨났고, 그 때부터 사무린의 어미는 거적때기 

를 들고 몸을 팔았다. 기루에서는 그럭저럭 편하게 지냈지만, 푼돈에 몸을 

파는 창기가 되니 몸이 망가지는 것도 금방 이더라. 

결국 그렇게 지내다가 사무린이 어렸을 때 눈을 감았지만 말이다. 

사무린은 시선을 돌렸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신과 자신의 어미 

와는 다르다. 바보처럼 살다가 죽은 등신 같은 그 여인과 자신은 다르단 말 

이다. 한평생 눈물만 흘리면서 산 어미가 어떠한 인생을 살았는지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던가! 

이제는 퇴색되어 버린 기억 속에서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어 

미…… 

화가 날 리가 없다. 뭐 때문에 화가 나겠는가. 그런 바보 같은 인생을 살아 

온 여인에게 무엇 때문에…… 

뿌드득. 

사무린의 이가 갈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고든 손톱 탓에 손바닥에서 

는 피가 흘러 내렸다. 

'등신 같이……' 

사무린은 속으로 뇌까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할 일이 있어서 이곳에 

온 것이다. 개인 적인 감정에 휩싸일 정도로 연약한 그녀가 아니다.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뿌연 기억을 더듬으며 사무린은 걸었다. 오랜 시간 

이 지난 탓인지 기억도 바랬지만, 마을 또한 변해 버렸다. 예전에 없던 집 

이 생겼는가 하면 이상한 길도 생겼다. 

어두워진 마을에 하나 둘씩 등이 내 걸리기 시작했다. 

사무린이 진린이 말해주었던 자를 찾아가던 와중 그녀의 옆으로 사내 하나 

가 달라붙었다.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위로 올린 사내는 느글거리는 웃음 

을 흘렸다. 

"어이, 예쁜데? 어느 집 기녀냐?" 

사무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그러자 그 사내 또한 그녀 

의 어깨에 손을 걸치고 따라 걷기 시작했다. 

"계집이 꼴에 반반하다고 튕기는 것하고는. 얼마냐? 얼마 정도 주면 되겠 

어?" 

사무린의 다리가 우뚝 멈췄다. 사내는 그 순간 능글맞게 웃으며 어깨에 걸 

쳤던 손을 그녀의 앞섶 사이로 집어넣었다. 

사무린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댄 채로 사내가 중얼거렸다. 

"몸 좋은데? 아주 물건이야." 

"…… 얼마든지 준다고 했죠?" 

가만히 서 있던 사무린의 입이 열렸다. 가슴에 온 신경을 쓰고 있던 사내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뭐든지 준다니까. 그러니까 어디 좀 가서……" 

사내는 일순 숨이 턱 막혔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 더불어 가슴을 어루만지 

던 손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아혈(啞穴)과 마혈(麻穴) 

이 제압 당한 것이다. 

"그럼 준다고 한 것을 받으러 갈까요? 받을 것은…… 당신의 목숨으로 정했 

어요." 

사무린은 사내를 보면서 이가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방금 까지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던 사내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어떻 

게 된 상황인지 알아버린 것이다. 목소리라도 나온다면 살려달라고 고함이 

라도 지르련만, 이 놈의 목구멍에서는 작은 소리 하나도 새어 나가지 않았 

다. 

사무린은 자신의 몸에 쓰러지듯이 늘어져 버린 사내를 부축하고 골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내의 눈이 밖으로 쏟아져 버릴 것 같이 붉어지기 시 

작했다. 

'사, 살려……' 

푸욱! 

앞가슴을 열어 버리며 틀어박힌 검은 사내를 쓰러지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다지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검이 완벽하게 사내의 가슴에 박혀 

버렸다. 그것은 뒤에 있는 벽을 파고들었다. 

사내는 쓰러지지도 못했다. 가슴에 박힌 검이 벽을 파고들면서 사내는 쓰러 

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목숨이 끊어지고 고개도 떨어졌거늘, 

편안히 쉴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사무린은 몸을 돌렸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 볼 여유 따위는 없다. 언제나 앞 

을 보며 걷기만 한다. 그게 바로 사무린이다. 

임무(任務) 

진린이 말했던 자가 사는 곳은 사무린이 살았던 마을에서 약 하루 정도 거

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농사를 짓고 사는지 집에는 여러 가지 농기구 

가 늘어져 있었다. 사무린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근처에 있는 것이

이 집 뿐인 걸 확인했다. 그녀는 문 앞에서 입을 열었다. 

"계세요?"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사무린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 

고 조심스럽게 대했다. 이 안에 있는 자가 누구일지는 모르나 진린과 관계 

된 자다. 쉬이 대할 수 없는 상대라는 건 분명하다. 안에서 잠시 부스럭거리

는 소리가 나더니 곧 깔린 듯한 낮은 목소리가 난다.

누구일지는 모르나 진린과 관계 된 자다. 쉬이 대할 수 없는 상대라는 건 분

명하다. 안에서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곧 깔린 듯한 낮은 목소리

가 새어 나왔다. 

"누구냐." 

초면에 반말이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방안에 있는 사내는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진린이라는 분이 당신께 가서 무엇인가를 받아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찾아

왔죠." 

"진린? 그게 누구냐? 그런 놈 모르니까 썩 꺼져." 

사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진린이라는 자를 모르겠다는 말에 사 

무린은 전혀 놀라거나 당황해 하지 않았다. 이미 이럴 거라는 말을 듣고 왔 

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언급을 들었다. 

"문이하사서벽산(問爾何事棲碧山: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소이부답심자현(笑而不答心自閑: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산중문답이라는 시가 끝나자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한겨울인데 

도 불구하고 소매가 없는 웃옷을 입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나이는 대략 사 

십 대 정도로 보였고, 드러난 팔뚝은 완연한 굴곡을 드러냈다. 

짧지만 바늘처럼 날카로울 것만 같은 턱 수염은 그의 인물됨을 짐작케 했 

다. 사내는 사무린을 보면서 웃음을 흘렸다. 

"크크, 언제 찾아가시나 했지. 슬슬 때가 된 모양이로군." 

사무린은 아무런 말도 없이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것 같지 

는 않다. 강인해 보이는 근육은 외공을 익혔다기 보다는 평생 바다와 함께 

산 뱃사람의 것 같은 느낌이다. 매끄럽고 단단해 보이기는 하지만 외공의 

근육이라고 보기는 뭐한…… 

"그럼 그 분이 맡기신 물건을 보러 갈까? 꽤나 오랫동안 묵혀 두었기에 다 

시 손질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군." 

'손질?' 

사무린은 사내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무슨 중요한 서류를 받아와 

야 할 일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닌 듯 싶다. 서류라면 손질이 

라는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테니까.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이런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춥 

지도 않은지 사내는 거침없이 집 뒷켠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사무린 또한 

그의 뒤를 따랐다. 

사내는 주변을 슬쩍 살핀 후 창고의 빗장을 치웠다. 사무린은 사내의 태도 

에 이 안에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탓에 주의를 기 

울이고 안으로 들어섰건만, 있는 건 겨울을 지낼 식량들과 농기구들뿐이었 

다. 허나 사무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내는 갑자기 땅에 주저앉았

다. 그는 앞에 있는 농기구들을 치우고는 아래쪽에 있는 판자를 때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뜯겨져 나간 판자 아래에서 흰 천에 쌓인 물건이 나왔다. 

꽤나 긴 길이의 물건이 사내의 손에 들렸다. 

"이건……" 

참으려 했는데 물어 버리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말을 꺼내고 나서 사무 

린은 아차 했다. 몰라야 할 것은 너무 파고들면 위험해 진다. 그런 자라면 

깨끗이 죽여버리는 게 나은 법이다. 더군다나 진린이라면 능히 그럴 사람이

기도 했다. 하지만 사내는 이외로 순순하게 대답해 주었다. 

"자네가 만져보면 충분히 알 게야."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물건을 사무린에게 건넸다. 하얀 천에 쌓인 알 수 없 

는 물건을 받는 순간 사무린의 미간이 꿈틀했다. 

몇 겹을 쌌는지 원래 굴곡을 잃어버릴 정도다. 그냥 봤을 때는 무엇인지 전 

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만져 보니까 알겠다. 열 살 이후로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는 물건이다. 

'검…… 이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다.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는 물건이다. 모 

른다면 그건 무인도 아니다. 

"검이군요." 

"흐흐, 잘 아는 군." 

"그렇다면 당신은 대장장이?" 

"그것도 모르면서 왔단 말인가? 어쨌든 잠시 이리 줘 보게." 

대장장이인 사내는 빼앗듯이 사무린의 손에서 다시 천에 쌓인 검을 가져갔 

다. 그는 조심스럽게 천을 풀기 시작했다. 한 겹, 두 겹, 세 겹…… 마치 누에 

에게서 실을 뽑아 내듯이 천이 떨어져 내렸다. 

한참을 풀어 헤친 후에 드러난 검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사무린의 표정이 

변한 것은 검집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사내의 손이 검집을 벗겨내는 순간 은빛이 터져 나왔다. 사무린은 넋을 잃 

고야 말았다. 쉽게 볼 수 있는 검이 아니다. 아니, 천하에 저런 검이 또 있을 

까 의심이 들 정도의 검이다. 

사무린은 자신의 마음이 저 검에 끌려 들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사내는 연신 검을 뒤집어 보면서 상태를 살폈다. 그러던 그의 입에 곧 흡족 

한 미소가 걸렸다. 

"좋아. 삼 년 간 꺼내 본 적도 없는데 아직도 완벽하군." 

삼 년 동안 저런 창고에, 그것도 지하라는 곳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검이 

저런 빛을 내다니…… 

사무린은 놀라 버리고야 말았다. 삼 년이라면 녹이 슬어도 이상할 것이 없 

는 긴 시간이다. 아무런 손질도 하지 않았는데도 저 같은 상태를 유지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사내는 다시 검을 집어넣고 천으로 말기 시작했다. 그 긴 천을 다시 감싼 후 

에 그것을 사무린에게 넘겼다. 

"받아. 그리고 이걸 받은 후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이 일이 끝난 지금 

너와 난 모르는 사이다. 길을 걷다 누군가가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거든 

절대 나에 대해 거론하지 마라." 

사무린은 아무런 말도 없이 사내에게서 검을 돌려 받았다. 

사내는 몸을 돌렸다. 일반적으로 만나게 되면 자신의 이름을 말하곤 하는 

법이다. 그렇지만 사내는 끝까지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더불어 말 

했던 것처럼 사무린에게 검을 넘긴 후에는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문 

을 걸어 잠갔다. 저 문은 아무도 열 수 없다. 

사무린은 천에 쌓인 검을 어깨에 메고는 걷기 시작했다. 이제 마을로 돌아 

가야 한다. 비록 이 물건을 받으러 온 거라고는 하지만 마교 교주에게는 어 

미의 기일이라고 했던 탓이다. 

마교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고,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마교의 숨은 간자 

들의 눈을 피하려면 한 번쯤은 찾아가 봐야 한다. 그다지 가고 싶지는 않았 

지만 사무린은 마을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사무린은 술 한 병을 사서 바로 옆에 있는 산으로 향했다. 

가난했던 시절이기에 특별히 묘 자리를 본 것도 아니다. 그저 산 구석에 시 

신을 묻었을 뿐이다. 그녀는 산을 올라 나무를 찾았다. 

어렸을 적 항시 이 근방에서 놀곤 했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다 사무 

린은 자신이 찾던 나무를 발견했다. 그때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에 묻었는데…… 

'왼 쪽으로 열 다섯 걸음.' 

사무린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무를 기준으로 하고 그녀는 왼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열 걸음도 채 걷지 않아 사무린은 다리를 멈췄다. 

'여기군.' 

잠시 깜빡하고 있었는데 열 다섯 걸음은 그녀의 나이가 어렸을 때였다. 지 

금과 그때의 보폭이 다른 건 당연하다. 

사무린은 그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도 찾지 앉았을 거다. 하찮은 창기 

하나가 죽은 것 가지고 그 누가 찾아왔겠는가. 살아 생전에는 그토록 달콤 

한 말로 속삭이던 자들도, 죽은 후에는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사무린은 준비해 온 술병의 열었다. 

콸콸. 

병에서 빠져 나온 술이 무덤을 적셨다. 사무린은 술이 다 떨어지자 병을 멀 

리 집어 던져 버렸다. 

"나…… 왔어." 

할 말이 없다. 뭔가 할 말도 없고, 굳이 그럴 생각도 없다. 바보처럼 무덤에 

대고 신세나 한탄하고 있을 그녀도 아니다. 사무린은 조용히 무덤을 응시했 

다. 

무덤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 

이 허전하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마음이 사라졌다. 

사무린은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다 

면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다. 어느새 해가 졌는지 사방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사무린은 쿵쾅거리면서 뛰는 가슴을 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감정을 보일 이유가 없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미가 그리울 리가 없 

다. 

그렇지만 사무린은 피를 보길 원하는 자신의 마음을 억제하기가 너무 힘들 

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아무나 벨 수도 없는 일이다. 관이 관여하게 해서 

는 안 된다. 진린에게도, 교주인 엄백린에게도 조용히 갔다 온다 하지 않았 

던가. 

마을에 도착했을 무렵 사무린은 간신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데 성공했 

다. 피를 보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앞에 보이는 사람을 무턱대고 

벨 정도는 아니다. 

사무린은 하루를 쉬기 위해 객잔을 향해 움직였다. 막 객잔 안으로 들어서 

려던 그녀의 귓가에 한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악! 놔, 놔 이 새끼야!" 

"이년이 어디서 발악이야!" 

짜악!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로 끌려가던 여인이 발악하자 사내는 그 우악스러운 

손으로 뺨을 후려쳤다. 여인의 고개가 돌아갔고 피가 터졌다. 여인의 눈에 

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난 널 돈주고 샀어. 그러니 따라오라고!" 

"미친 놈! 내 남편을 죽인 새끼랑 몸을 섞으라고? 못해! 죽여도 못해 이 미 

친놈아!" 

다시 사내의 손이 좌

"난 널 돈주고 샀어. 그러니 따라오라고!" 

"미친 놈! 내 남편을 죽인 새끼랑 몸을 섞으라고? 못해! 죽여도 못해 이 미 

친놈아!" 

다시 사내의 손이 좌우로 움직였고, 마침내 여인은 실신해 버렸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사내는 여인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은 채 어딘 가로 향하고 있었 

다. 

사무린은 피를 봐서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그 여인에게서 과거의 어미 

를 본 탓인지 그 뒤를 쫓았다. 막 골목 안으로 들어간 사내는 여인을 구석 

에 놓고 바지춤을 풀려고 했다. 

그 순간 사무린의 검이 사내의 목에 닿았다. 

"헉!" 

"조용히, 조용히 돌아요.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당장이라 

도 벨 테니까요." 

"아, 알겠으니 이 검은 좀……" 

사내는 조심스럽게 돌았다. 사내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돈이 많 

은 집 자손인지 사내의 옷은 꽤나 화려했다. 

아까는 그토록 여인을 우악스럽게 패던 자가 지금은 오히려 사무린에게 살 

려달라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지금 이 여인이 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신이 남편을 죽였다면서요?" 

"아, 아닙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고 하면……" 

"죽였나요? 아니면…… 죽이지 않았나요." 

사무린은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사내의 말을 끊어 버렸다. 사무린의 눈빛 

은 거짓을 말하면 죽여버릴 거라는 경고가 심어져 있는 듯 했다. 그 탓에 사 

내는 진실을 말해버렸다. 

"주, 죽였습니다." 

"그래 놓고 몸을 섞으려고 했다고요?" 

"차, 창기 아닙니까! 그런 년에게 정조(貞操)가 어디 있고 지조(志操)가 어 

디 있다고……" 

사내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사무린은 간신히 눌러 놓은 피 

가 끓기 시작했다. 

참으려 했던 욕망이 솟구쳐 오르면서 사무린의 검이 사내의 목을 날려 버렸 

다. 말을 하던 채로 사내의 목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주변에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죽음이었다. 사무린은 사내의 몸을 

들어 올려 골목길 구석에 쳐 박아 버렸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대로 놓아둔다면 발각되는 대 적어도 한 시진 이상 

은 걸릴 거다. 사람의 인적이 드문 장소니까 이토록 여인을 끌고 왔을 터다. 

사내를 베고 나서 막 움직이려던 사무린은 여인이 눈을 뜨는 것을 보았다. 

시체를 발견하게 되면 안 되기에 사무린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손이 검 손잡이에 닿았다. 

불쌍한 인생을 살았던, 봉양해야 할 가족이 여러 명 있다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사무린은 그 창기를 베려고 했다. 

"그, 그 남자는?" 

일어나자마자 여인은 아까 일이 상기 됐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 

다. 

"제가 쫓아냈죠." 

사무린은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이제 두어 걸음만 더 다가가면 소리도 나지 

않게 목숨을 끊어 버릴 수 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여인은 마침 고개까지 숙였다. 사무린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라 

면 고개를 쳐들기 전에 베면 끝날 일이다. 사무린은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당장이라도 부술 수 있는 머리가 눈 안으로 빨려 들 듯이 다가왔다. 사무린 

이 검을 뽑으려는 순간 여인의 입이 다시 열렸다. 

"비록 월하루의 하찮은 창기이나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사무린의 뽑히려던 검이 일순 멈췄다. 

월하루라는 이름 탓이다. 

"월하루의 창기인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사내를 벰으로써 식었다고 생각했던 피가 다시금 끓어오른다. 

그곳은 사무린의 어미가 기녀 생활을 했던 이 마을 최고의 기루였다. 사무 

린은 잠시 고개를 돌려 그 기루를 바라봤다. 너무나 높은 탓에 어디서 봐도 

기루의 모습은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사무린은 자신의 앞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오늘은 돌아가서 푹 쉬세요. 전 이만 가 볼 곳이 있어서 이만." 

사무린은 기루에서 시선도 때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등뒤에 

서 여인이 목청을 높였다. 

"서, 성함이라도 가르쳐 주시고 가셔야……!" 

사무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그녀는 지금 월하루라는 기루를 찾아가고 있었다. 

'착각하지 마. 이건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야.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당신을 

위해서 내가 그곳을 갈 일은 없지. 단지 나,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기 때문 

이야.' 

사무린은 검을 강하게 쥐었다. 

'한 가지만 약속해 줄게. 아무도, 아무도 살아서 저곳에서 나올 수 없어. 사 

내건 계집이건, 신분고하(身分高下)를 막론하고 모두 죽여버릴 거야. 이거 

하나만은 약속 할 게.' 

사무린은 기루에 다가가면서 천천히 품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항시 만약 

을 위해 준비 해 둔 복면을 꺼내 든 그녀는 기루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것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막 사무린을 향해 다가오는 사내를 향해 그녀의 검이 출수 됐다. 

사내의 머리는 수박이라도 된 양 간단하게 으깨져 버렸다. 사무린은 검을 

회수하기 전에 재차 휘둘렀다. 이번엔 여인의 목 하나가 땅을 뒹굴었다. 

'난 강해졌어. 보여? 보이냐고! 항상 당하던 당신과는 달리 난 강해졌단 말 

이야!' 

보여? 지금 나의 이 모습이? 

어머……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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