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137)

누남천은 종리회연이 여운휘를 물리는 순간부터 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 

려는 것이라고 알아챘다. 그 탓인지 어느 정도 장난기 있던 표정을 짓고 있 

던 누남천의 얼굴은 더 없이 진지해졌다. 

"아무래도 전멸한 것 같습니다." 

"허……" 

누남천은 탄성을 내질렀다. 

무림맹은 마교의 힘이 어느 정도로 약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건곤대를 만 

금산장에 투입했다. 그런데 만금산장을 공격하러 들어갔던 무인 중 단 하나 

도 돌아오는 이가 없다. 

지금이라면 일이 끝나고 돌아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최소한 보름 전에 

는 연락이 왔어야 한다. 

연락이 없다는 건 궤멸했다는 걸 의미한다. 

"숨겨둔 간자에게서는 연락이 없는가?" 

"만금산장에 심어 두었던 간자들에게서 연락이 끊긴 건 더 오래 되었습니 

다." 

누남천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만금산장과의 거리가 무림맹에 비해 마교가 

가깝다고는 하나, 이 일은 정말 극비리에 준비 된 일이다. 마교가 뒤늦게 알 

아차렸다 해도 무림맹의 건곤대보다 빨리 도착할 수는 없다. 

헌데 패했다. 그것도 그저 패한 것뿐만이 아니라 단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 

다. 그건 곧 아무도 그곳에서 도망치지 못했다는 거다. 건곤대 모두를 완벽 

하게 죽일 정도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세력들이 투입되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장명은, 장명은 죽은 겐가?" 

"건곤대를 이끌고 만금산장으로 가신 분이니 아무래도…… 살아 계시기는 

힘들 듯 합니다." 

"허! 아까운 사람." 

누남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탈백검 장명은 그와 오 

래 된 지기다. 비록 종종 의견이 맞지 않아 비무를 벌였던 적도 허다하지만 

항상 웃으면서 끝맺곤 했다. 탈백검 장명은 누남천이 인정한 몇 안 되는 인 

물이다. 

그 의기와 패기, 정도를 걷는 모습에 누남천은 흠뻑 빠져들었었다. 그랬던 

그가 죽었다. 오랜 지기인 누남천으로서는 가슴 한편이 턱 막혀왔다. 당장 

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아 누남천은 먼 하늘을 바라봤다. 

"누 대협, 마음이 아프신 건 알겠지만 맡아 주셔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종리회연은 잠시 꺼려 하다가 입을 열었다. 

"만금산장으로 떠났던 자들이 어떻게 해서 죽었는지, 누구에게 죽었는지 

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걸 내가 알아봐 달라는 소리인가?" 

"예. 이번에는 적은 인원으로 움직이셔야 할겁니다. 아무래도 사람 수가 많 

으면 그들에게 들킬 위험이 많으니까요. 이번 일은 맹주님과 저를 제하고 

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밖에서는 이 일에 대해서 함구하여 주십 

시오." 

"그 말은…… 내부에 간자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수뇌부에?" 

종리회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누남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정도를 걷는 그로서는 사도의 길을 걷는 무인들 

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물며 간자에야. 

"조만간 내 몇 명을 데리고 만금산장으로 떠나기로 하지. 그동안 군사께서 

는 그 간자의 정체를 밝혀내 주시게." 

"알겠습니다, 누 대협. 그리고 이번 일은 젊은 무인들을 통솔하셔서 해 주 

셨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덜 알려졌으니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리 하지." 

누남천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문을 열어제치고 밖으로 나갔다. 

누남천이 나가자 종리회연은 머리를 감싸 쥐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일이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되어 가지 않는다. 

"탈백검은 죽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거늘……" 

종리회연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을 열고 나온 누남천은 천천히 걸었다. 그는 중간에 주루에서 술 댓병 정 

도를 사서 걷고 있었다. 

탈백검 장명과 알고 지낸 지 벌써 삼십 오 년 가량의 세월이 지났다. 보낸 

시간이 많으니 추억도 많다. 조금만 의견이 틀어지면 검을 빼들고 칼부림 

을 한 적도 허다하다. 그만큼 많이 싸운 인물도 없지만, 또 그만큼 마음이 

맞았던 자도 없다. 

'지기(知己)여……'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당장이라도 왜 부르냐면서 대뜸 나올 것만 같 

은데 이제는 볼 수가 없다. 무림에서 살면서 이런 경우는 허다했다. 어제 옆 

에서 같이 웃고 있던 동료가 다음날은 싸늘한 시신으로 변하는 것은 셀 수 

도 없이 경험했다. 

하지만 이번만큼 충격으로 다가온 경우는 없었다. 

누남천은 술을 마셨다. 취하지 않는다는 건 알았지만 마시지 않고는 도저 

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술을 마시며 누남천은 탈백검 장명과 추억의 장 

소들을 걷기 시작했다. 

그와 처음 만났던 장소, 툭하면 만나서 싸우던 장소……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누남천은 해가 저물고 날이 어둑해지자 그곳으로 발 

걸음을 돌렸다. 지금 누남천이 가려고 하는 곳은 장명과 가장 추억이 깊었 

던 곳이다. 심하게 싸우고 나면 누남천과 장명은 그곳에서 만나 화해를 하 

며 술을 한잔씩 기울이곤 했다. 

그곳의 밤의 전경(全景)은 가히 일품이다. 

누남천은 별을 안주 삼아 술을 들이켰다. 그러면서도 그는 발걸음을 멈추 

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추억의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 누남천은 그곳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음?' 

이곳은 무림맹 내에서 그다지 알려진 곳이 아니다. 이른 시간에는 배를 띄 

워 술을 마시는 자들도 있긴 하지만 밤에는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는다. 그 

런 곳인지라 평소에 이곳에 온다면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곳에 있는 모양이다. 

누남천은 걸어가면서 그 정자 위에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보기 위해 안력 

을 높였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 앉아 있는 사내 둘의 모습을 발견했다. 둘 

다 그가 아는 자들이다. 

'허, 진군휘와 남궁진이 아닌가.' 

일전에 수황의 앞에서 여운휘가 남궁진의 이름을 거론했던 것을 누남천은 

기억해 냈다. 

'둘이 아는 사이였단 말인가?'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었는데 지금 둘의 모습은 보니 확실한 모양이다. 둘 

은 오래 된 지기라도 된 냥 친근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물론 여운휘는 평 

소처럼 묵묵히 앉아서 술잔을 받고 있었지만 분명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 

다. 

누남천이 다가오는 것을 여운휘는 이미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술만 들이키고 있었다. 누남천이 조금 더 다가오자 그제야 남 

궁진은 그가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앗, 어르신." 

막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해 보이는 남궁진을 보며 누남천은 됐다는 듯 

이 손을 흔들었다. 

"됐으니 앉거라." 

말은 마친 누남천 또한 정자 위로 올라왔다. 

"둘이 아는 사이인 모양이군." 

"예, 딱 한 번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남궁진은 누남천을 안다. 하지만 그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어 보는 건 생전 

처음이다. 둘은 그저 가볍게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평소에 존경하던 무인 중 한 명이었기에 남궁진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 

러자 누남천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뭘 그리 굳어 있는 게냐. 사내라면 당당할 줄도 알아야지." 

"평소에 흠모하던 분인지라……" 

"진군휘 저 친구를 봐라. 날 봐도 인사 하나 제대로 안 하지 않느냐." 

"저 친구야 원래 낯가림이 심하지 않습니까." 

낯가림이 심하다는 말에 여운휘는 순간 꿈틀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 

다. 

그런 여운휘의 모습을 본 누남천은 재미있다는 듯이 다시 웃었다. 그렇게 

웃던 누남천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곳은 밤에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곳인데 왜 너희들이 있는 게 

냐?" 

"제게 무림맹 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꼽으라면 전 이곳을 꼽을 것입 

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전경이 가히 일품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것 

을 아셨으니 광한검 어르신도 이곳을 찾으신 것일 테고 말입니다." 

"허허, 자네 뭘 아는 구만." 

누남천은 남궁진의 말에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여태까지 누남천은 남궁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 또한 남궁진과 이토 

록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십대후기지수 중 무공이 빼어나다 

는 것만 알았지 그의 성품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대화를 나누어 보니 알 것 같다. 

눈이 맑다. 무공에 대해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눈 하나만은 정말 맑다. 

누남천은 여운휘를 안다. 그가 어떤 성격인지는 얼마간 여행을 하면서 잘 

알고 있다. 결코 쉽게 마음을 트는 사내는 아니다. 그런 사내가 인정했다. 

"왜 자네를 진군휘가 높게 평가했는지 알겠군." 

"저 친구가 저를 말입니까? 하하!" 

남궁진은 재미있다는 듯이 여운휘를 바라봤다. 대답을 구하는 듯한 남궁진 

의 말에 여운휘는 귀찮다는 듯이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남궁진은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지 연신 웃음을 흘렸다. 호적수라고 생각했 

던 상대가 자신을 인정했다는데 기분이 나쁠 턱이 없다. 

누남천은 남궁진을 보며 한 사내를 떠올렸다. 탈백검 장명 또한 지금 눈앞 

에 있는 남궁진 같은 사내였다. 장명과의 추억에 장소에서 그와 비슷한 남 

궁진을 보니 그에 대해 호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어르신 한 잔 받으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난 남궁진이 양손으로 술잔을 들었다. 누남천은 피식 웃었 

다. 장명을 생각하며 온 곳에서 그와 비슷한 사내를 만나서 술을 받았다. 

웃기지 않은가? 

웃으면서 술을 들이키던 누남천의 머리 속으로 아까 종리회연과의 대화가 

스쳐지나갔다. 

그것이 떠오르는 순간 그는 여운휘와 남궁진을 바라봤다. 젊은 자들 중에 

서 데려가라면 저 둘만큼 적합한 자도 없다. 심지어 여운휘는 무림에서 이 

름만 알려지고 있을 뿐 외모를 아는 자는 극히 드물다. 

"자네 둘 말이야 며칠 후에 날 따라와 줬으면 하는데 시간은 괜찮은가?" 

"예?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만. 무슨 일로……" 

"아주 중요한 일이 있거든. 무림의 안위와도 직결될지도 모르는." 

"그런 일이라면 의당(宜當) 따라야지요." 

만금산장을 갈 인원을 누남천은 자신을 포함해 여섯 정도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자리 중에 두 개는 저들의 몫이 될 거다. 

"삼일 후, 해가 지고 나서 두 시진 후 둘 다 내 거처로 오도록 하게. 그때가 

되면 내 자세히 이야기 해 줄 테니." 

누남천은 술병을 기울이며 밤하늘을 바라봤다. 

'자네의 원을 내가 갚아주지. 편히 가게……' 

겨울을 녹이던 해가 천천히 서산으로 몸을 감추었을 때, 하늘에는 커다란 

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침상에 누워서 창 밖을 바라보던 여운휘는 자리 

에서 일어났다. 

해가 진지 약 두 시진이 흘렀다. 오늘은 며칠 전 누남천과 약속했던 날이 

다. 여운휘는 검을 허리에 차고 문을 열었다. 

달빛이 여운휘가 가는 길을 비추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알 수가 없다. 누남천이 자신을 부른 것에 대해 여운휘는 아무 것도 모른 

다. 왜 불렀으며, 어째서 자신이 선택되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일이라는 

말만 없었다면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여운휘는 지금 무림맹에서 이름을 알려야 한다. 최대한 인정을 받아야 하 

고, 무림맹의 비밀들을 최대한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여운휘는 가타부 

타 말 없이 누남천의 거처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누남천의 거처의 위치는 그 정자에서 만난 날 알아뒀다. 그 탓에 처음 가는 

거라고는 하지만 여운휘는 어렵지 않게 누남천의 거처에 도달했다. 

'넷.' 

방안에 있는 자들의 숫자다. 방안에는 현재 네 명의 사람들이 있다. 남궁진 

이 벌써 왔다고 가정을 해도 두 명이 더 있는 거다. 여운휘는 궁금증을 뒤로 

하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방안의 전경이 여운휘의 눈에 들어왔다. 누남천을 제하고 나머 

지 셋은 모두 여운휘가 처음 보는 자들이었다. 남궁진은 아직 오지 않은 모 

양이다. 

"왔군." 

여운휘는 포권을 취하고 걸어와 의자에 걸터앉았다. 모두의 시선이 여운휘 

에게 쏠렸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누남천을 바라봤다. 

방안에 있던 자들은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이 대청을 누르는 

듯한 무거운 공기 탓이기도 했다. 여운휘가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남궁진이 안으로 들어섰다. 

"늦었습니다." 

방안에 있던 자들은 모두 남궁진을 아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서로 상대방을 알고 있었다. 남궁진은 여운휘의 옆자리에 앉자 누남 

천이 입을 열었다. 

"원래는 다섯 명 정도를 뽑으려 했는데 뽑다 보니 한 명이 더 늘어 버렸어. 

마지막 그 한 명만 더 오면 이야기를 시작하지. 아, 막 도착한 모양이야." 

누남천의 말이 끝나자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남궁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며칠 전 객잔에서 시비를 걸었던 모용취다. 

"하하! 이거야 원 쟁쟁한 분들이 잔뜩 계시는 군요." 

"왔으면 어서 앉도록 해라. 이야기를 시작할 테니까." 

어깨를 으쓱한 모용취는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까지 자리에 앉자 모 

두를 한 번 훑어 본 누남천이 입을 열었다. 

"서로 알고는 있겠지만 그래도 간단히 통성명들 하도록 하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용취가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유운검객(流雲劍客) 모용취요." 

흰옷을 입은 사내가 일어섰다. 

"백의서생(白衣書生) 제갈군(諸葛君)이라고 합니다." 

두 명의 여인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얀 피부에 흑단 같이 긴 머 

리, 입술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점이 그녀를 한층 더 매력 있게 보이게 했다. 

그녀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쟁쟁한 후기지수분들을 만나 뵙게 돼서 반가워요. 설중매(雪中梅) 설혜주 

(雪慧珠)라고 해요." 

순서대로 돌아가자면 이번엔 다른 한 명의 여인이 입을 열 차례다. 그 여인 

은 앞에 자신을 설명한 설혜주보다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허나 한 가 

지 흠이라면 감정이 없는 듯한 그녀의 표정이었다. 

"독지화(毒持花) 당산희라고 부르더군요." 

짧게 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온 몸을 온통 검은 색 일색으로 옷 

을 입은 그녀는 꽤나 날카로운 보검 같은 느낌을 풍겼다. 가까이 다가가면 

상처를 입을 것 같은 그러한 느낌. 

'사천당문(四川唐門)이군.' 

여인의 이름에서나 그녀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로 봤을 때 그녀는 사천당문 

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여운휘는 이 안에서 자신을 설명한 자들 모두의 이 

름을 들어 본 적 있다. 당산희는 사천당가의 인물이며 천하삼절의 하나다. 

무림에서 사람들은 그녀를 가시를 가진 꽃이라고 칭했다. 

당산희가 자리에 앉자 남궁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과분하게 남궁비룡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는 남궁진이라고 합니다. 뵙 

게 돼서 반갑습니다." 

남궁진까지 자신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모두의 눈이 여운휘에게 향했다. 지 

금 만큼은 당산희마저도 관심을 가지고 여운휘를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이미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굳이 통성명을 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였기에 관심이 갈 턱이 없다. 그런데 전혀 본 적이 없는 사 

내가 앉아 있다. 아무래도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하다. 

여운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군휘." 

"아!" 

"호오……" 

설혜주와 제갈군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당산희 또한 놀라긴 했지만 그녀 

의 성격답게 조용히 침묵하고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창 무림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진군휘라는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다. 젊다고는 들었지만 혈리추검 공청을 꺾을 정도라면 어느 정 

도 나이 차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다지 차이가 나 보이지 않는다. 

제갈군이 입을 열었다. 

"소협이 그 혈리추검 공청을 꺾었다는 진군휘요?" 

여운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눈빛이 변했다. 여태까지 웬 이름도 모르는 무명소졸이 앉아 있나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진군휘라는 이름은 결코 자신들에 비해 가볍지 않 

다. 얼마 전까지는 무명소졸이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무림맹에 오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설혜주는 눈을 빛냈다. 평소 들어온 풍문으로 관심을 가지던 사내다. 그토 

록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한 여인을 지켜주던 사내이니 궁금한 것은 당연 

한 거다. 

"서로에 대한 통성명은 이만큼 이면 됐다고 생각하는데. 틀렸는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자 누남천이 나섰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설혜주는 

재차 물으려던 질문들을 속으로 삭힐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조용해지자 누남천이 말했다. 

"우리는 중대한 일로 모였네.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지. 만약 빠지고 싶 

은 사람이 있으면 지금 빠지게. 나중에 가서 빠진다고 하지말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단 한 명도 빠질 마음이 없다는 거다. 잠시 뜸을 

들이던 누남천은 모두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신이 엄선하여 젊은 쪽에서 유 

능한 자들을 뽑은 거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걸 확인한 누남천은 내심 기 

분이 좋았다. 

"좋아.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지. 우리는 만금산장으로 갈 거야." 

"만금산장에 말입니까? 혹시……" 

"그래, 아마 제갈군 자네 생각 대로일 게다. 만금산장으로 향했던 건곤대 

가 단 하나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궤멸됐네.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 조사 

를 해야해.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까지 알 

게 되면 더 좋겠지." 

누남천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건곤대가 모두 궤멸 된 일이야. 위험한 일인 건 분명하지." 

"상관없습니다. 정파의 안위가 걸린 일인데 몸을 사릴 수야 없지요." 

남궁진이 누남천에게 말했다. 

그건 다른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였는지, 일의 위험성을 알았음에도 불구하 

고 아무도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여운휘는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마교와 관련 된 일일 것이다. 위 

험 부담도 있긴 하지만 그건 아주 드문 확률이다. 자신의 얼굴을 아는 자가 

그곳에 올 리가 없다. 

"그럼 언제쯤 떠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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