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의 남궁진을 이야기하는 건가? 그 사내는 분명 대단한 무골이지.
만나 본 적이 있는 모양이군?"
여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십대후기지수라고 불리는 자를 몇 만나봤다. 그러나 개중에 남궁
진 만한 자는 없었다.
실력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눈빛이 다르다. 후기지수라는 이름에 취
해 해롱거리던 다른 자들과는 다르게 눈빛이 살아 있다.
남궁진이 자신에게 대연십구식(大衍十九式)에 이어 날렸던 천뢰삼장(天雷
三掌)은 내색은 안 했지만 상당한 내상을 줬다. 그리 큰 부상은 아니었지
만 내공이 심후(深厚)했다면 분명 낭패를 봤을 거다.
"이봐. 저 쪽으로 배를 틀어."
수황이 청삼을 향해 말했다. 배를 처음 저어보는 청삼은 갑작스럽게 방향
을 틀라는 말에 허둥지둥 댔다. 그 모습을 본 수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청삼을 밀치고는 노를 건네 받았다.
"이거야 원 사내새끼가 영 시원치 않아……"
수황은 익숙하게 노를 저어 옆에 있는 땅으로 배를 가져다 댔다.
"내리게."
노를 배 위에 던져 놓은 후 수황이 밖으로 몸을 날렸다. 수황이 발을 딛기
가 무섭게 주변에서 수많은 사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을 향해 수황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들은 수황의 정체를 알았는지 순식간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수황은 고개를 돌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후는 나도 책임을 지지 않을 거다. 한 마디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 거
지."
"이곳으로 데려와 준 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하오."
누남천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넌 두렵지 않나? 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으로 오는 것도 몰랐다고 하
던데."
"두렵지 않소."
"죽을지도 몰라."
"난 죽지 않소. 아니, 죽을 수 없소. 지켜야 할 사람이 있거든."
수황은 피식 웃었다. 이 사내가 말하는 그녀가 누군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
도 알 수 있다. 이 사내가 지킨다는 악양유가의 가주다. 어떻게 이런 사내
를 얻었을까?
이런 사내는 쉽게 만날 수 없다. 입에 발린 사탕발림이 아니다. 마음 속에
서 우러 나오는 진심이다. 거짓으로는 너를 위해 얼마든지 죽어 줄 수 있다
고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리 하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여운휘는 이미 멀리 떨어져 버린 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다려. 곧 돌아갈테니까.'
시선을 돌린 여운휘는 천천히 누남천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수황은 조용히 걸었다. 그의 뒤를 따라 걸으니 수적으로 보이는 사내들도
다가서지 않았다.
수적들의 눈이 누남천과 여운휘, 그리고 청삼에게 박혔다. 다가오지는 않지
만 분명 그 셋을 경계하고 있는 거다.
여차하면 당장이라도 옆에 있는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들고 달려들리라.
수황이 멈춘 곳은 동굴의 입구 앞에서였다. 막 앞에 있던 두 명의 수적들이
자신들의 검을 들어 올렸지만 수황이 손을 들어올리자 그들은 다시 무기를
내렸다.
그 둘 중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내가 다가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
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둘이 총채주를 만나야 한다는 군."
"…… 전혀 본 적이 없는 자들입니다."
"당연하지. 이 둘은 외부인이니까."
"예? 하지만……"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수황이 그 둘을 제치고는 안으로 들어가
라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누남천은 전혀 거리낄 게 없다는 듯이 앞으로 걸었다. 그에게는 주저할 이
유가 없었다. 어차피 하고자 했던 바다.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다.
동굴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 셋은 들어서서 얼마 가지 않아 한 사내의 모습
을 발견했다. 호피(虎皮)를 덮은 의자에 앉아 앞을 쏘아보고 있는 사내의
눈이 여운휘와 마주쳤다.
"오지 말라 했을 터인데."
막 잠에서 깬 듯한 갈라진 음성이 사내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라기에 꽤나 우락부락한 사내
일 줄 알았거늘 실제로 보니 상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얼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긴 검상만 없다면 그 누가 봐도 무인으로 보이
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유약하게 생긴 자가 현재 장강수로십팔채
의 총채주인 혁련우라는 사실을 이 안에 들어온 셋 모두 알고 있다.
의자에서 일어나 어느 정도 다가온 혁련우를 향해 누남천이 입을 열었다.
"누남천이오."
"광한검이 무슨 일로 온 거지? 난 당신과 전혀 인연이 없는데."
"아아,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공적인 일로 왔소."
"난 분명 만나기 싫다는 내 뜻을 보였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당장 꺼
져. 죽고 싶지 않다면."
혁련우는 대단한 자다.
그는 삼십 정도 되는 나이에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로 올라섰다. 그리고
이십 여 년 동안 그 누구도 그에게 반기를 들지 못했다. 초반에는 그의 유약
한 외모 탓에 많은 자들이 반발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무공과 수완으로 인해 이년 안에 장강수로십팔채는 완벽하게
혁련우의 손에 들어와 버렸다.
무공뿐만이 아니다. 머리도 있는 자다.
무공만 뛰어나다고 능사(能事)는 아니다. 아무리 대단한 무공을 지닌 자라
도 머리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상대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머리까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출중한 무공 실력에 빼어난 머리.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추는 것은 쉽지 않
다. 그렇지만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사내가 지금 앞에 있다.
"그 일 때문에 그러는 모양이군."
누남천의 말에 혁련우의 눈이 꿈틀했다.
혁련우가 누남천의 방문을 거절한 것은 예전 일 때문이다.
일전에 그는 장강수로십팔채에 모욕을 준 일이 있다.
누남천이 장강수로십팔채 중 하나를 찾아가 그곳의 채주의 손 하나를 잘라
낸 일이 바로 그것이다. 잘못이 이쪽에 있었기에 혁련우는 끓어오르는 화
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자가 찾아와서 할 이야기가 있다는 데 반갑게 받아들일 리가 없다.
"그건 분명 그 자의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지 않소."
"알고 있다. 그래서 널 살려두고 있는 것이고. 하지만 내 마음은 변한 게 없
다. 너와 할 이야기는 없다."
"들으시오."
"들을 마음이 없다고 했다!"
콰앙!
그의 장포가 펄럭이는 순간 옆면의 동굴에 움푹한 자국이 생기며 돌가루 떨
어져 내렸다. 혁련우의 일장에 의해 생긴 구멍은 어른의 머리통 하나 만했
다. 그 모습에 청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토록 단단한 바위를 저렇게 만들 정도라면 사람이라면 물어 보나마나다.
평범한 자라면 저 일장에 온 몸이 터져 버릴 게다.
놀라버린 청삼과는 다르게 누남천은 오히려 목청을 높였다.
"들으시오!"
"듣지 않는다 하지……"
"수천, 아니 수만의 목숨이 달린 일이오!"
"……"
누남천을 향해 소리를 지르려던 혁련우는 그의 마지막 말에 입을 다물었
다. 수천 수만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는 말에 혁련우조차 순간 할 말을 찾지
못한 거다.
"이제 들을 마음이 생기셨소?"
"수천 수만의 목숨?"
"그렇소. 그리고 그 안에는 장강수로십팔채의 피도 있을 게요."
듣지 않으려 했다.
장강수로십팔채에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준 자와는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듣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많은 목숨이 달린 일이라
는 데, 그것도 자신의 수하들의 목숨도 달려 있다는 일인데 그냥 넘길 수가
없다.
"…… 무슨 말이냐."
"마교가 움직일 거요."
"마교가?"
그 말에 놀란 건 혁련우뿐만이 아니었다.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여운휘도
그 말에 순간 움찔했다.
'마교가…… 움직였다고?'
마교가 요즘 조금씩 꿈틀거린다는 사실은 여운휘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누남천이 이곳에 온 것이 마교와 관련 된 일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마교의 힘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거라 믿소."
"…… 알지 아주 지독하게."
장강수로십팔채는 분명 수적들의 모임이다. 정파가 아닌 사파라고 봐야 옳
다.
그렇지만 그들은 마교와는 그 길을 달리한다. 그 탓에 잦은 충돌이 있고, 웬
만한 일이면 장강수로십팔채 쪽이 한 걸음 물러서야 했다.
마교와 정면격돌은 미친 짓이다. 장강수로십팔채의 힘은 마교의 이 할도 되
지 못한다.
그나마 마교와 일전을 겨룰 수 있는 세력은 무림맹뿐이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군. 마교가 움직였다고 날 찾아온 이유는 뭐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정과 사의 싸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거요. 무
림맹 대 마교로도 충분히 힘든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 거요."
잘 알고 있다. 마교의 힘이 분산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아직까지 마교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싸움에 마교뿐만이 아니라 녹림까지 끼어 든다
면 무림맹으로서는 버틸 힘을 잃게 될 거다.
"지금 내게 마교와 손을 잡지 말라고 부탁하러 온 건가?"
"그렇소. 그런 이유로 내가 무림맹을 대표하여 온 것이오."
혁련우 또한 마교와 손을 잡을 마음이 없다. 그렇지만 단번에 그렇게 하겠
다고 약조도 할 수 없다. 마교 쪽에서 힘을 합치자는 전령이 온다면 쉽게 뿌
리칠 수 없다.
단순히 세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는 것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말은 부탁
으로 보이는 명령이다. 명령 불복종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장강수로십팔채
의 힘이 다 모이기도 전에 마교의 세력 일부가 득달 같이 밀려오리라.
막을 수는 있을 거다. 그렇지만 그 피해는 녹록치 않으리라.
"…… 대답을 당장 주지 못하겠군."
"그렇소?"
그리고 그런 혁련우의 마음을 누남천 또한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한 무리를 대표하는 자는 쉽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
가 수하들의 목숨에 귀결된다. 결코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지금 같은 상황에 쉽게 대답하는 자는 믿을 수 없는 자다.
"언제쯤 대답을 줄 수 있소?"
"언제일지는 나도 모르겠군."
"최대한 빨리 의사를 말해줬으면 하오. 지금 무림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라
서둘러 무림맹으로 돌아가야 하는 터라……"
그 말에 혁련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누남천
이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답을 듣고 갔으면 하는데."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해. 밖에 있는 사내 둘 중 하나에게 말한다면 임시로
머물 거처로 데려가 줄 거다."
혁련우는 그 말을 마치고 의자로 돌아가 다시 주저앉았다.
머리가 복잡하다. 무림에 이상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
지만 여유를 가지고 전망을 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일이 돌아간다
면 멍하니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때 혁련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를 봤다. 자신을 바라보던 그 사내는
몸을 돌리더니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 눈빛은 왠지 모르게 혁련우에게 싸한 전율을 전해 주었다.
마치 심장까지 파고드는 느낌이다.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 혁련우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모두 밖으로 나간 후였다.
'저 사내는…… 누구지?'
본 적이 없는 자다. 누남천과 다닐 정도라면 어느 정도 무림에 알려진 자일
텐데 저런 사내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없다.
궁금증이 치밀었지만 뛰어 나가서 묻기는 너무 늦어버렸다.
'이,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청삼은 마주 잡은 두 손을 자신도 모르게 비비고 있었다. 몸 속 가득히 긴장
이 묻어 난다. 창문을 통해 본 풍경은 그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험상 굳게 생긴 자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그들의 손에 들린 병장기(兵仗器)
들은 당장이라도 육신을 갈가리 찢어버릴 듯만 하다. 험상 굳은 거라면 청
삼 또한 부족한 편은 아니다.
외모에서는 밀리지 않지만 실력은 그렇지 않다. 자신과 저자들은 다르다.
거기다가 이곳은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자
들 하나 하나가 자신과 비슷하거나 높은 실력자들일 거다.
도망을 치고 싶어도 도망을 갈 수가 없다.
어제 이야기를 들어 보니 결과는 두 개 중 하나다. 저들과 손을 잡게 되거
나, 아니면 적이 될 거다. 적이 된다면 이번은 절호의 기회가 된다. 광한검
누남천을 이토록 쉽게 죽일 기회는 다시없을 거다.
청삼이 불안한 눈으로 창가를 바라보고 있을 때 누남천이 침상에 몸을 기대
고 앉아 있는 여운휘에게 물었다.
"혁련우가 어떤 대답을 할 것 같으냐."
"…… 내가 그가 아닌 이상 확답은 드릴 수 없는 것 아니겠소. 다만 내가 그
라면 싸우겠다고 말할 거요."
"큭큭, 네 대답을 그 사내에게서도 들었으면 하는 군. 그렇지 않으면……"
누남천의 눈이 창 밖으로 향했다.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중(鎭重)해 보였
다. 그로서는 혁련우의 말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으면 하고 있
다.
목숨이 두려운 건 아니다. 단순히 이곳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그렇게 간절
한 마음을 가질 리는 없다. 이번 일은 누남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수천,
수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경시 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다.
"저, 저기 그런데 어르신의 뜻과 총채주의 뜻이 다르다면 위험하겠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삼은 누남천에게 물었다.
당장 목숨이 위급한 마당에 무림의 안전이고 뭐고 귀에 들어올 턱이 없다.
그의 머릿속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할 게 많다. 살아서 나가 자신을 버리고 간 수하들에게 벌을 내려 줘야 하
고, 술도 마시고 싶다. 그렇지만 지금 이곳에서 죽게 된다면 모든 게 끝이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함부로 죽일 수는 없겠지. 하지만 뜻이 달라진다면 쉽게 나
가지도 못할 게야."
분명 지금은 누남천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거다. 사방이 적이고 도
망칠 곳도 변변치 않다. 죽이려 든다면 지금 만한 기회는 흔치 않을 거다.
그렇지만 그냥 죽일 수도 없을 거다. 그는 무림맹을 대표해서 온 자다. 그
를 감금한다고 해도 문제가 될 터인데 죽이지는 않을 거다. 만약 죽이게 된
다면 마교가 아닌 무림맹과 정면 격돌을 벌려야 할 테니까.
방안에 있는 삼 인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 셋은 모두 다른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다.
살고자 하는 청삼, 무림의 앞날을 위해 걱정하는 누남천, 그리고 움직이는
마교에 대해 고민하는 여운휘.
여운휘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마교의 움직임이다. 다른 쪽의 움직임
은 풍운조와 유가의 힘으로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마교에 대해
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가의 정보망은 마교에도 뻗쳐 있다.
근본적인 뿌리가 마교이니 당연한 거다. 그렇지만 아직 여운휘는 그 정보망
을 가동시키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 탓이다. 지금은 마교 교
주인 엄백린이 내부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덜미를 잡힐 지도 모른다.
마교는 곧 밖으로 힘을 뻗기 시작할 거다. 외부에 신경을 쓰게 되면 그만큼
내부에 관해서는 빈틈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유가는 마교에 심
어 놓은 정보망을 이용해 활발하게 정보를 물어다 줄 거다.
덜컹.
"식사요."
문이 열리더니 식사를 가져다 주는 사내가 간단하게 먹을 것을 던져 놓고
밖으로 나갔다. 자잘한 것들 몇 개에 물이 식단의 전부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것을 가지고 분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청삼은 불안한 눈으로 음식을 입안에 넣었고, 여운휘는 여전히 침상에 기
댄 채로 밖을 응시했다.
날씨가 무척이나 쌀쌀해 보인다.
달이 중천에 걸렸다.
하늘 중천에 걸린 달은 약하지만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 밑에 한 사
내가 서 있었다. 기다란 장검을 하나 들고 있던 사내의 몸이 천천히 움직이
기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천천히 그 움직임은 거세졌다.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처
럼, 강인한 폭풍의 울부짖음처럼 사내의 몸은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내의 요동치던 검이 나무를 향했다. 그리고 그 검은 나무에 박혀 잠시 부
르르 떨었다. 그는 검을 뽑지 않고 이번에는 맨 손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까보다 사뭇 움직임이 부드럽다. 더군다나 그의 양손에서 터져 나
오는 장력이 주변에 있는 나무와 바위들을 박살냈다.
퍼억!
바위에 놀랍게도 사람의 육장의 생김새가 그대로 찍혀 버렸다.
힘겹게 춤사위를 맞춘 사내는 호흡을 길게 늘어트렸다.
"후우……"
그토록 격하게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땀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다. 사내
는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바탕 움직이면 개운할 거라 생각했거늘 착각이었나 보다. 계속 이어지는
고민이 지금도 머릿속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위에 몸을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내는 혁련우였다.
'마교, 그리고 무림맹.'
양쪽 중 어느 쪽과 손을 잡느냐는 혁련우가 정할 문제다. 기본 적으로 장강
수로십팔채는 사파에 가까운 단체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러한 이유 때문에
마교와 손을 잡을 수는 없다.
현 마교 교주인 추혼객 엄백린은 영특한 자다. 그리고 간악한 자이기도 하
다.
그는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도를 시도할 자
다. 그 안에 자신의 세력인 장강수로십팔채가 없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
다.
하늘로 향했던 눈이 이제는 혁련우 자신의 손으로 내려왔다. 이 손, 자신의
손 하나에 수천의 목숨이 오고갈 거다. 겨우 이 작은 손 하나가 그토록 큰
일을 만들고, 방지하게 할거다.
'하늘은 움직일 수 없지. 하지만 내 손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나다.'
결국 답을 내려야 할 것은 자신이라는 소리다.
머리는 잘 알고 있다. 답은 결국 자신이 내야 할거라는 것을.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달리 쉽게 정할 수는 없다. 답을 내리는 것도 자신이지만 그 뒤에
올 일을 책임져야 하는 것 또한 그다.
'내 손이 이토록 커다랬단 말인가. 수천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수라혈수(修羅血手) 혁련우.
무림에서 그를 칭하는 이름이다. 그토록 장법이 빼어난 그이지만 오늘처럼
자신의 손이 커다랗게 보이기는 처음이다.
막 한숨을 몰아쉬던 그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혁련
우는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한 사내를 발견했다.
'저자는……'
며칠 전 누남천과 함께 온 사내다. 그 당시에는 누구인지 몰랐지만 추후에
알아보니 현재 무림에 신성처럼 등장한 진군휘라는 자다. 그 날의 대면 후
만난 적이 없는 사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런 늦은 밤 이런 곳에서 만나
버렸다.
"진군휘. 맞지?"
"그렇소."
"대단한 우연이군. 이 늦은 밤에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미안하지만 우연은 아닐 거요. 당신이 동굴에서 나온 뒤부터 계속 쫓았으
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혁련우의 입 꼬리가 꿈틀했다. 여태까지 누군가가 자신
의 뒤를 쫓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다.
동굴에서 나와 이곳까지 와 무공을 펼쳤다. 그것은 반 시진 정도 동안 벌어
진 일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몰랐다. 자신의 뒤에 누군가가 붙어 있다는 사
실을.
"조용히 내 뒤를 쫓았다? 건방진 놈! 내가 누구로 보이느냐. 나 장강수로십
팔채의 총채주인 수라혈수 혁련우를 네가 아주 개차반으로 본 모양이구
나."
혁련우의 양손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의 독문 무공인 수라장(修羅掌)이 막 펼쳐지려는 순간이었다.
"나와 싸우겠다면 언제라도 상관없소. 하지만 지금 총채주는 나와 싸울 때
가 아닐 텐데."
"……"
여운휘의 말에 혁련우는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렸다. 그의 말대로 지금 싸워
서 무엇하겠는가. 혁련우가 손을 내리자 여운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난 총채주가 우리의 부탁을 들어줬으면 해서
온 거요."
"…… 그리 쉽게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나도 알고 있는 문제요. 당신의 손에 달린 목숨을 생각하면 쉽게 대답을
내릴 수 없겠지. 하지만 나 또한 지키는 사람이 있소. 당신의 떠 안고 있는
수천의 목숨에 비하면 우스울지 몰라도 나에겐 그 수천의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오."
혁련우 또한 알고 있다.
이 사내가 대단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한 여인을 지켜주는 자라는 것을.
"너에게 묻겠다. 내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
"무림맹의 말을 듣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오."
"어째서?"
"싸움에 낀다면 장강수로십팔채는 피해를 면하기 힘들 거요."
"끼지 않는다 해도 피해를 보는 건 변함이 없을 거다."
싸움에 낀다면 무림맹에게 타격을 받게 될 테고, 그렇지 않으면 마교로부
터 압력을 받게 될 거다.
"마교가 무림맹과 붙게 된다면 제대로 장강수로십팔채 쪽으로 손을 뻗지
는 못할 거요. 싸움이 붙기 전까지는 힘들긴 하겠지만 그 후로는 안전할 거
요."
"좋아, 그건 그렇다고 치지.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내게 돌아오는 건 뭐지?
나보고 손해만 보고 물러서라는 건가?"
"모르는 군. 가장 큰 것이 돌아오지 않소."
"…… 큰 것?"
혁련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나는 게 없다. 이번
싸움에서 무림맹의 말처럼 마교와 붙지 않아서 그들에게 돌아올 이득이 무
엇이 있단 말인가.
"당신 수하들의 목숨."
순간 혁련우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한 무리의 대장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바로 수하들의 목숨이다. 여태까지 어떻게 하면 최대한으
로 피해를 줄일까 생각했다.
알고 있었다. 수하들의 목숨을 위해서는 무림맹의 말을 듣는 편이 나을 거
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의 자존심과, 장강수로십팔채라는 명예가 그에게 쉽
사리 답을 내리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서 있던 혁련우가 입을 열었다.
"넌 왜 싸우는 거지?"
"한 여인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거요."
"겨우 그게 다인 건가?"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여인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하찮게 보일지
라도 그게 나에겐 전부요."
혁련우는 피식 웃으며 돌 위에 다시 몸을 걸쳐 앉았다. 그리고는 반대편 돌
을 가리켰다. 여운휘는 그가 가리킨 돌 위로 천천히 앉았다.
"아쉽게 술이 없군. 술이라도 한 잔 있다면 참으로 멋진 밤일 터인데."
혁련우는 술을 좋아하는 사내다. 그렇지만 누남천과 만난 이후로는 단 한
잔의 술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다.
"한 여인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라……"
무림인들은 바보 같다 손짓할지 모르겠지만 혁련우는 오히려 여운휘의 그
런 모습이 사내다워 보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자신은 저 사내가 쫓아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저 사내가 어느 정도 되는 인물인지는 알 수 있다. 그 여
인에게 얽매이지 않고 움직인다면 현 무림에서 가장 각광(脚光) 받는 후기
지수가 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거다.
저 사내는 모든 걸 버린 거다. 부, 명예, 그 외에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것도 단 한 명의 여인을 위해서.
"자네가 나였다면 지금 내게 해 준 말처럼 했겠나?"
"말할 필요도 없소. 난 상황이 바뀐다 해도 그리 생각했을 거요."
"…… 대단한 사내구나."
쉬운 듯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모
든 걸 버릴 수 있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혁련우는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도 마음을 정해야겠구나.'
혁련우는 다음날 자신의 거처에 있는 채주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 안에는
혁련우의 스승이자 장강수로십팔채의 최고고수인 수황도 있었다. 그 수는
채주 넷과 수황, 이렇게 해서 총 다섯이다.
모두가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동굴 안으로 혁련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안에 있던 모두가 기립(起立)했다.
맨 앞으로 간 혁련우가 자리에 앉았다.
"모두 앉으시오."
혁련우의 말이 끝난 후에야 그 다섯은 자리에 앉았다. 그건 수황에게도 예
외는 아니었다.
"오늘은 중대한 일이 있소. 그래서 내 모두를 부른 것이고. 비록 이곳에 있
던 채주들 밖에 부르지 못했으나 이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한 문제요. 시
간이 없어 다른 채주들을 소집하지 못한 거지 결코 이 일이 가벼워서가 아
니란 말이오."
수황뿐만이 아니라 채주들 또한 현재 상황에 대해 전해들은 상태다.
총채주의 말대로 결코 경시할 수 없는 문제다. 크게는 장강수로십팔채의 사
활(死活)이 걸릴 정도로.
"뜻을 정한 듯 하군."
"물론입니다."
수황은 혁련우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정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수황
의 예상은 적중했다. 혁련우는 살짝 미소짓더니 채주들의 얼굴을 하나씩 바
라보았다. 하나 하나를 모두 머리 속에 박아 넣으려는 듯이 뚫어지게 바라
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내 오늘 도박을 해야겠네. 상당히 큰 도박일 게야. 목숨이 걸린……"
혁련우는 회의를 할 때는 항상 반 정도 경어를 사용하는 자다. 그런 그가 술
자리에서처럼 편안하게 말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주들은 흐트러
짐이 없이 혁련우의 입을 응시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따라 목숨이 오고 갈 거다. 자신들은 채주다. 그리
고 저 앞에 있는 혁련우는 총채주다. 자신들이 믿었기에 총채주를 맡겼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화가 없다.
"총채주! 어서 말하십시오! 저희는 총채주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평소에 호탕하기로 유명한 혁산(赫山)이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그의 모습
을 보며 다시 한 번 웃음을 지은 혁련우가 입을 열었다.
"난, 무림맹의 말을 따르려 한다."
"무림맹?"
그의 말에 수황은 다소 이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림맹과 장강수로십팔채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랬기에 수황은 혁련
우가 마교와 손을 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쪽이 천하를 도모하는
데에도 나을 거라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혁련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신
의 추측과 어긋나버렸다.
그러한 생각을 한 것은 수황뿐만이 아니었다.
혁련우의 말이 끝나자 아무도 무슨 말을 꺼내지 못했다. 순식간에 분위기
가 가라앉자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혁산이 가슴을 쾅쾅 치며 말했다.
"무엇들 하는 가! 총채주님께서 정하셨다지 않은가. 누가 죽었는가! 그리
도 표정들이……"
그때 수황이 입을 열었다.
"총채주."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혁산마저도 그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조용히 자리
에 앉았다. 혁련우의 눈이 수황에게로 향했다. 말해보라는 듯한 그의 눈빛
에 수황은 천천히 일어났다.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군."
"그러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거다. 장강수로십팔채는 그 누가 봐도 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
고 가장 중요한 이유로 무림맹과 손을 잡아서 볼 수 있는 이득이 보이지 않
는다. 이득도 없는 싸움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하물며 그게 장강수로십팔채라는 거대한 세력을 이끄는 우두머리라면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무림맹의 말대로 마교에게 힘을 빌려주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이
득도 없을 거다. 오히려 마교의 공격에 인해 많은 피해를 보겠지. 영특한 네
가 이것도 생각하지 않았을 리는 없을 테고…… 이유가 뭐냐?"
"한 무인에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가 말했지요. 자신은 한 여인을 지키
기 위해 싸운다고."
"그자로구나."
수황은 혁련우의 말에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무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렸
다. 한 여인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하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무인은 단 하
나밖에 없었다.
'진군휘, 그 자로군.'
혁련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그리고 답이 나왔습니
다."
"답? 그래 네가 얻은 답이 무엇이냐."
"전 장강수로십팔채를 위해 싸웁니다."
"좋은 답이군. 한데 그것이 무림맹과 손을 잡는 것과 어떠한 관계가 있다
는 거냐."
동굴 안에 있던 모두가 혁련우를 바라봤다. 수황 또한 대답을 원하는 얼굴
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혁련우가 입을
열었다.
"장강수로십팔채를 지킨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
고 장강수로십팔채를 지킨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도. 그리고 전 제가 지켜
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건 제 수하들의 목숨입니다."
"허어!"
"제 수하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마교가 아닌 무림맹의 의견을
따라야 합니다. 마교는 우리를 선봉으로 내세울 것이 분명합니다. 분명 많
은 피해가 있겠지요. 전 그래서 무림맹과 손을 잡으려고 합니다."
수황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수황이 비록 강호십일객의 일인이고, 혁련우의 스승이긴 하나 그게 다다.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총채주인 혁련우의 몫이다. 그것
에 관해 수황은 왈가왈부 할 수 없다.
장강수로십팔채를 책임지는 건 수황이 아닌 혁련우다.
"그래, 네가 결정한 문제다. 이 결정이 네가 원했던 대로 좋게 돌아갔으면
하는 구나."
"감사합니다."
모두가 아무런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혁련우는 자리에서 일어났
다.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결정은 났다.
'장강수로십팔채는 무림맹을 따른다.'
더 할 말이 없다. 이미 답은 내려졌다.
누남천은 한 장의 종이를 받아 들고 웃음을 흘렸다.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한 발걸음이었다. 그런데 좋은 결과를 건네 받았다.
"찾아오지는 마시랍니다. 보고 싶지 않다고."
종이를 건네 준 사내가 누남천에게 말했다. 비록 좋은 결과는 줬지만 그와
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남천은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연신 웃음만 흘렸다.
"알겠네. 좋은 답변 고맙다고 전해드리고 우린 이만 가겠다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진 소협에게 다시 만날 날을 고대
하겠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말을 마친 사내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청삼은 그 사내가 나가기가 무섭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좋게 해결 된 모양이다. 이곳에 있는 칠일은 정
말 사람의 피를 말리는 나날들이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탓에 더욱 두려웠다. 폭풍이 일기 전에
그 조용함을 연상케 할 정도로 분위기는 냉랭했다.
당장이라도 목이 떨어져 나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두려움
에 떨고 있었는데 이 한 장의 종이로 인해 모든 긴장이 풀려버렸다.
'제길, 드디어 산채로 돌아가게 되었구나.'
산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청삼은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 쥐새끼
같은 관지가 떠오르니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만나게 되면 당장 머리통을
부숴 놓으리라.
"다시 만날 날은 고대하겠다니? 특별히 그와 만난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일전에 밤에 만난 적이 있소. 그리고 대화를 조금 나누었었소."
"그런가? 어쨌든 재미있는 인연이었던 듯 싶군."
누남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