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137)

                       장강수로십팔채(長江水路十八寨)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춥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 길게 나열되어 있는 구름은 마치 동물들의 장난처럼 보인다. 

앙상하지만 나무가 가득한 대지로 젊은 사내와 노인 하나가 걷고 있다. 

그 둘은 쉬지도 않고 움직였거늘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 따르며 노인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이 곱지 않다. 침묵을 유지 한 채 

로 묵묵히 걷던 사내가 마침내 속에 든 마음을 털어놓았다. 

"이쪽은 무림맹을 향하는 곳이 아닌 듯 하오만." 

"그래, 우린 지금 무림맹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지." 

"설마 날 속인 거요?" 

"아니. 무림맹을 나왔을 때는 다 이유가 있어 서지. 할 일이 하나 있어." 

"간다는 것이 어디요?" 

"장강수로십팔채(長江水路十八寨)의 수적 놈들을 만나보러 가는 게야." 

장강수로십팔채라 함은 수적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은 양자강을 무대로 노 

략질을 하던 수적들로 열 여덟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이들 

이 모여서 연합하여 만든 거대 방파를 장강수로십팔채라 칭한다. 

이들은 어떻게 보자면 녹림에 속하는 자들이다. 

누남천은 정파인이다. 그것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을 지 

닌 노인이다. 그런 그가 장강수로십팔채를 찾아가고 있다. 정(正)보다는 사 

(邪)에 가까운 그들에게 무엇 때문에?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누남천 정도 되는 자가 괜한 걸음을 했을 리가 없 

다. 

여운휘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곧 알게 될 일일 테니까. 

겨울에 노숙을 한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몸이 굳고 정신까지 혼미해진다. 아무리 건강한 장정이라 해도 한겨울에 한 

풍(寒風)을 맞으며 잠일 잔다면 다음날 동사하기 십상이다. 차라리 밤을 새 

면서 걸으면 걸었지 그건 미친 짓이다. 

그런데 그런 상식을 무시하면서 한 사내와 노인은 불을 피우고 있었다. 노 

숙을 하려는 모양이다. 

여운휘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앞에 앉아서 막 목을 축이던 

누남천이 전낭 안에서 건포를 꺼내 던졌다. 

"곧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게야."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를 찾아가는 거요?" 

"그래." 

입을 다문 누남천이 건포를 입에 물었다. 나이가 많은 만큼 그는 왜소한 몸 

의 노인이다.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옆집 할아버지 같은 외모다. 이 추 

운 겨울에 이런 곳에서 자고 어떻게 할까하는 걱정이 자연스럽게 일 정도 

다. 

그렇지만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 할 수는 없다. 비록 왜소한 체구에 그다 

지 눈에 뜨이는 외모는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누남천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는 추운 바닥에 아무것도 깔지 않은 채 벌렁 몸을 뉘였다. 양팔로 머리를 

받치고 누워 있는 모습이 마치 유람이라도 온 듯 하다. 

여운휘는 건포를 다 먹고 조용히 나무에 몸을 기대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 

다. 많은 생각이 머리 속을 교차한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이건 반드시 

잡아야 할 기회다. 

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던 여운휘의 양미간이 갑자기 꿈틀거렸다. 그리고 손 

은 아래로 눕혀져 있는 검으로 향했다. 

검 손잡이를 움켜 쥔 여운휘는 조용히 전방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기척 

이 들린다. 누남천 또한 언제 잠들었냐는 듯이 순간 눈을 번쩍 떴다. 허나 

그건 한 순간이었고 곧 피식 웃음을 흘린 그는 눈을 감았다. 

여운휘 또한 검을 쥐고는 있지만 전방을 향하고 있는 눈은 짜증난 듯 해 보 

였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이십여 명에 달하는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중 맨 앞에 있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안녕들 하신가!" 

"……" 

노인은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 사내는 자신을 바라보는 여운휘를 보면 

서 소리쳤다. 그런데 반응이 없다. 자신이 온 것을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된 

다.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사내를 보며 그는 순간 움찔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지는 않다. 

말을 못하는 것과 하지 않는 건 다르다. 표정을 보아서는…… 후자다. 

"이 새끼가 우리 대장님이 말씀하시는 거 안 들려?" 

키는 작고 약삭빠르게 생긴 것이 꼭 쥐를 빼다 박은 관지가 나섰다. 그는 겁 

이 많은 자다.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조금만 위험해지면 내빼는 것으로 유 

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행세를 할 수 있는 건 단지 글을 아 

는 탓이다. 

녹림도의 대부분은 글도 제대로 모른다. 그런 녹림도에서 관지 정도 되는 

자는 환영할 만한 자다. 

이 무리를 이끄는 두목인 청삼이 헛기침을 하더니 나섰다. 

"이 근방에 사는 자라면 청삼이라는 이름을 잘 알겠지? 내 성격에 대해서 

도……" 

"몰라." 

청삼은 순간 여운휘가 말을 끊어버리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단순 무식 

한 성격답게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뭐라고 말을 내뱉으려는 순 

간 여운휘가 나무에서 등을 때고 일어났다. 

"그리고…… 알 생각도 없다." 

이십 명에 달하는 흉악하게 생긴 사내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데도 불구 

하고 여운휘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들은 무공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자들이다. 돈 벌기가 힘들어 산에 모여 

서 규합된 녹림도에 불과하다. 

"이, 이 놈이!" 

청삼의 강인해 보이는 턱이 부르르 떨렸다. 

누남천은 아직도 일어날 생각을 보이지 않는다. 그 또한 이들이 별 볼일 없 

는 녹림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탓이다. 

여운휘가 몇 발자국 더 다가가자 청삼의 뒤에서 갑작스럽게 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덮으면서 여운휘를 향해 날아드는 그물은 끝 부분이 날카 

롭게 되어 있어 한 번 얽히게 되면 빠져 나오기 힘들다. 더군다나 그물 사이 

사이에 달려 있는 날카로운 갈고리는 사람의 피부를 찢어 놓기 충분했다. 

하늘을 덮는 그물이 여운휘를 덮었다. 

"킬킬! 이 멍청한 놈아, 검 좀 배웠다고 설치려다가 거 죽는 꼴을 봐라." 

관지가 웃었다. 뭐가 그리 웃긴지 배까지 잡고 웃던 그의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그는 사래에 들린 것처럼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켁켁! 뭐, 뭐야 저 놈 멀쩡하잖아?" 

그물은 어느새 잘려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저 놈이 한가락하는 모양인데요?" 

관지는 서둘러 뒤쪽으로 움직이면서 청삼에게 말했다. 

청삼이 뼈마디를 우드득 꺾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한가락하는 모양인데 어디 한 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삼의 목이 뚜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비명을 채 지르기도 전에 복부에 발이 틀어 박혔다. 

순간 숨이 턱 막힌다. 하늘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분명 밤인데 그에게만 

은 하늘이 새하얗다. 굽혀진 턱을 향해 여운휘의 무릎이 움직였다. 

입안에서 하얀 색 물체가 몇 개 터져 나왔다. 

이빨이 몇 개쯤 박살이 난 모양이다. 

털썩 쓰러진 청삼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순간 침묵이 일던 녹림도 

의 무리는 곧 소란스럽게 변했다. 도망가야 할지 아니면 두목의 복수를 하 

기 위해 달려들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탓이다. 

그렇게 망설이고 있을 때 관지가 답을 내렸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던 그가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기 시작한 거다. 그의 

행동은 녹림도 무리에게 불을 붙였다. 머뭇거리던 녹림도들도 모두 관지의 

뒤를 따라 도망가기 시작한 거다. 

그들이 도망을 치자 그제야 누남천이 몸을 일으켰다. 

"허어, 아무리 녹림도라 하지만 자신의 동료를 버리고 도망가다니…… 그나 

저나 저 자는 어찌 해야 하려나." 

누남천의 눈이 이빨 몇 개가 박살 난 채로 쓰러져 있는 청삼에게로 향했다. 

그냥 두기에는 찜찜하고 그렇다고 죽일 이유도 없다. 

"이 근방의 길 안내가 필요했던 참인데 잘 됐군. 저 자에게 길 안내나 시키 

도록 하지." 

여운휘는 누남천의 말을 듣고 쓰러져 있는 청삼에게 다가갔다. 혈도 몇 군 

데를 쳐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여운휘는 다시 아까 쉬던 나무로 

다가가 몸을 기댔다. 

그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누워서 여운휘를 바라보던 누남천이 입을 열었 

다. 

"대단한 공격이었어. 검법뿐만이 아니라 박투에도 능한 모양이야." 

"검법이 가장 자신 있기는 하지만 다른 것도 어느 정도는 익혔소." 

"허허, 자네가 오면 무림맹에서 반가워 할 자들이 많겠어." 

여운휘는 특별한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가 침묵하자 누남천은 아까처럼 다 

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여운휘는 조용히 앞에 있는 불을 응시했다.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움직여서 피곤하기도 하련만 잠이 오지 않는다. 

자연을 벗삼아 떠돌고 있는데 마음은 오히려 답답하다. 가슴에 매인 게 있 

는 탓이다. 나무를 태우고 있는 불을 바라보고 있거늘 그의 눈에 비치는 건 

현실이 아니다. 한 여인의 모습이 자꾸 눈에서 어른거린다. 

여운휘는 자신의 모습에 순간 피식 웃음을 흘릴 뻔했다. 언제부터 자신이 

이렇게 감상적으로 변했는가. 

언제나 혼자였던 자신이었다. 만난 지 이년도 되지 않은 여인 탓에 흔들리 

는 자신을 여운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마음 한편에서 자꾸 이 

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다. 

헤어진 지 오일도 되지 않았는데 미치도록 걱정된다. 

그리고…… 미치도록 보고 싶다. 

'아무 일…… 없는 거냐.' 

하늘을 바라보며 여운휘가 작게 중얼거렸다. 

청삼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건 다 지금 청삼의 뒤를 따르는 호리호리한 사내 탓이다. 녹림도가 된지 

어언 이십 여 년 정도가 흘렀다. 그 동안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박살 

을 내며 거침 없이 살아왔다. 

참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이곳의 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화를 내고 싶은 데 그럴 수가 없다. 어느 정도 접 

전을 벌이다가 깨졌다면 할 말이라도 있다. 그런데 그 날 일이 제대로 기억 

도 나지 않는다. 

몇 방 맞지도 않아서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지금 이 신세다. 

그리고 자신을 무엇보다 화나게 하는 건 저 사내가 아니었다. 

"이 놈아 왜 이렇게 걸음이 느린 게냐." 

막 자신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노인을 청삼은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눈빛 

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저 노인은 죽었을 게다. 매서운 눈 

으로 노려봤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피식 웃으며 머리통을 때리는 노인의 

행동에 청삼은 다시 한 번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아냈다. 

저 사내가 있는 이상 함부로 행동 할 수가 없다. 청삼은 이를 갈면서도 묵묵 

히 걷기만 했다. 

이러한 일은 며칠 전 저 사내에게 깨진 이후부터 계속 되어왔다. 

눈이 상당히 무겁다. 차가운 겨울 바람 탓에 정신을 차린 청삼은 팔로 땅을 

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그게 되지 않는다. 그것 뿐만이 아 

니라 손가락 하나 조차 까딱할 수가 없다. 

"으으……" 

신음소리가 귓가로 들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입 안이 엉망진창이다. 그리 

고 목과 복부도 마치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간신히 청명은 눈을 떴고, 그런 그의 앞에 한 사내와 노인의 모습이 드러났 

다. 건포를 먹으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두 남자를 발견한 청삼은 어제 일이 

불연 듯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어제 일이 모두 기억이 나버렸다. 

청삼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때 노인이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도망을 치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제야 청삼은 자신이 혈도를 제압당했다 

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살고 싶냐?" 

당연하다. 

고개만 움직일 수 있다면 몇 백 번, 아니 몇 천 번이라도 흔들었을 게다. 그 

런 청삼의 마음을 알았는지 노인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너 우리 길 안내 좀 해라." 

청삼은 그토록 그 노인의 미소가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 후에 사내가 제압되었던 혈도를 풀어 주었고, 그제야 청삼은 제대로 움 

직일 수 없었다. 도망이라도 칠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 

만 불가능했다. 저 사내의 눈을 피해 도망 칠 수 없다면 애초에 그런 생각 

은 버리는 게 낫다. 

앞장 서서 길을 안내하던 청삼은 또 이를 갈았다. 

'관지 이 개새끼…… 감히 날 버리고 도망을 가?' 

자신이 당했다면 으레 덤벼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관지가 비겁한 놈이라 

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대장인 자신까지 버리고 도망갈 거라고는 생각지 

도 않았다. 

이 일행을 안내 해 주고 녹림으로 돌아간다면 당장에 그 놈부터 때려죽이리 

라. 

'쥐새끼 같은 놈, 네 놈은 곧 제삿날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문제는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거다. 살려주겠다고는 했지 

만 그 말은 모두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이들이 향하는 곳은 평범 

한 곳이 아니다.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 이 같은 자들이 그곳 

으로 가는 이유라면 수적들과 관계되었다는 건 확실하다. 

만약 이들이 수적과 친분 관계를 지닌 자들이라면 근처에서 도적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자존심상 자신을 죽일지 

도 모른다. 

하지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만약 이들이 그들과 적대 관계라면 더 큰 문제다. 단 둘이서 가고 있으니 공 

격해도 찍 소리 못할 거다. 그렇게 되면 자신 또한 같이 죽게 되는 건 뻔하 

다. 

도대체 저 둘이 누구기에 이토록 당당하게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를 찾 

아가는 것일까? 

막 저녁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은 그 둘에게 청삼은 용기를 내서 물었다. 

"저기…… 왜 그곳을 가시는 겁니까?" 

"궁금해? 혹시 죽을까봐 걱정이라도 되는 게냐?" 

"네. 목숨은 살려주신다고 했으니 전 그곳까지 안내만 하고 돌아갔으면 하 

는데요." 

"무슨 소리야. 돌아갈 때 길 안내도 해줘야지." 

애초부터 예상했던 답변이 나오자 청삼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장강수로십 

팔채에 가서 죽을 바엔 차라리 이들에게 죽는 게 나을 거다. 이들은 최소한 

깔끔하게라도 목숨을 끊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약속은 지켜줄 테니까. 네가 죽는 일은 없을 거다." 

여운휘의 말에 청삼은 그냥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무 자신도 없이 가는 건 

아닐 거다. 약속을 지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순간이다. 

'제길 요즘 운세가 왜 이렇게 더러운 거야!' 

단순히 재수가 없다고 탓하기에는 요즘 너무 악운이 겹친다. 아무래도 액땜 

이라도 해야 될 모양이다. 

막 건포를 먹고 있던 누남천이 입을 열었다. 

"어이, 마을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느냐." 

"한 시진 정도 걸으면 도착할 겁니다." 

건포를 모두 입안으로 집어넣은 누남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여운휘는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청삼은 내심 투덜거렸다. 이 둘은 움 

직이기 시작하면 결코 쉬지 않는다. 저 젊은 사내는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 

만 저 노인 또한 만만치 않다. 

툭 치면 쓰러질 것만 같은 노인이다. 그렇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체력이 보 

통이 넘는 모양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은 본 청삼은 투덜거리면서 걷기 시작했다. 오 

늘밤도 객잔을 잡지 못한다면 또 노숙을 해야 할 게다. 그건 무공을 익힌 청 

삼이라 해도 거절하고 싶은 일이다. 

청삼은 입술을 꽉 깨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 시진 가량을 달리자 숨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다. 간신히 마을에 도착 

했지만 사방을 둘러 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그는 땅을 바라보며 거친 숨 

을 몰아쉬었다. 

누남천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한 사내에게 말을 붙였다. 

"이보게." 

"무슨 일이시오?" 

바쁘게 걸어가던 사내는 다소 짜증스러운 어조로 답했다. 

"운석객잔이 어디 있는지 아는가?" 

"저쪽으로 쭉 가다가 두 번째 골목에서 꺾이면 있수." 

뭐가 바쁜지 사내는 간단히 답하고는 가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사내가 

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누남천이 뒤에 있는 여운휘와 청삼을 향해 말 

을 걸었다. 

"운석객잔으로 가지." 

"누구와 만날 약속이라도 있는 거요?" 

여운휘의 말에 누남천은 씨익 웃었다. 웃음으로 모든 걸 대신한 누남천은 

아까 그 사내가 가르쳐 주었던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약속이 있는 모양이군.' 

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린 여운휘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고 청삼만 어기적거 

리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자 앞장서서 걷던 누 

남천이 고개를 돌렸다. 

"뭐 하는 거냐. 어서 와라." 

'제길 망할 영감쟁이!' 

고이 보내주면 어떻다는 말인가. 그냥 자신을 보내줘도 될 터인데 도대체 

놓아주지를 않는다.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해댔지만 겉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예, 예. 갑니다요." 

청삼은 어쩔 수 없이 그 둘의 뒤를 따랐다. 

객잔은 상당히 컸다. 

누남천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구석진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자리를 잡은 그 

가 점소이를 손짓해서 불렀다. 

"이리 오게!"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던 점소이는 손님이 오자 짜증이 이는 모양이다. 불 

만스러운 얼굴로 누남천에게 다가온 점소이는 퉁명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뭘 드실 거요?" 

"그 놈을 데리고 와." 

"그 놈이라니 갑자기 무슨 말이오?" 

누남천이 씨익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점소이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작은 

덩치에서 놀라운 괴력이다. 자신보다 세 배는 더 무거움 직한 점소이를 누 

남천은 단 한 손으로 들어올린 것이다. 

내심 늙은이 주제에 하고 얕보고 있던 청삼은 놀라고 말았다. 

"켁켁! 이, 이게 무슨……" 

"이곳은 매번 올 때마다 짜증나게 한단 말이야. 꼭 두 번 이야기해야 쓰겠 

나? 그 놈이라고 하면 또 누가 있느냐!" 

점소이의 눈이 갑자기 변해버렸다. 숨을 못 쉬어 허덕이던 그가 갑작스럽 

게 공중에서 몸을 틀며 누남천의 머리를 발로 찍어내렸다. 

그 순간 누남천은 다른 손 하나를 들어 그의 발뒤꿈치를 막아냈다. 그리고 

발을 막기가 무섭게 점소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악!" 

"그러기에 말을 했을 때 들어야지. 아마 발뒤꿈치가 박살이 났을 게다." 

점소이는 축 늘어진 채로 누남천을 노려보았다. 그때 누군가가 나타나며 목 

청을 높였다. 

"그만하시오! 누 대협!" 

"호오,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군. 이번에는 주방장인가?" 

주방장의 옷을 입고 있는 뚱뚱한 사내를 보면서 누남천이 웃음을 지었다. 

이 자는 누남천이 객잔에서 만나려고 했던 사내다. 

사내는 심할 정도로 비대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다른 사람에 비해 두 배는 커다란 몸집에 축 쳐진 턱살은 그를 인자하게 보 

이도록 만들었다. 웃음을 짓는다면 그 누구보다도 선해 보일 것 같은 사내 

이거늘 찌푸려진 그의 얼굴은 마치 나찰(羅刹)과도 같아 보였다. 

"이번엔 또 무슨 일 때문에 찾아왔소?" 

"왜? 내가 찾아온 것이 반갑지 아니한가?" 

"몰라서 묻는 거요?" 

말할 필요가 무엇이 있으랴. 

사내는 누남천을 꺼려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증오한다고 해야 옳 

다. 그가 오면 항시 귀찮은 일이 벌어졌고, 부탁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일전에 자신을 두들겨 팬 적도 있으니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만나기 싫은 상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자신의 앞 

에 있는 이 노인을 꼽으리라. 

"내가 자네를 찾아왔다면 뻔하지 않은가." 

"제길……" 

짜증이 치민다. 해 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면서 받아 갈 것만 많다. 자신 

은 부탁을 하러 온 것이라 말하지만 이건 엄연한 협박이다. 매번 그랬던 것 

처럼 이번에도 누남천이 물어보려고 하는 것을 대답해 줄 수밖에 없을 거 

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게 하며 점소이에게 차를 가져 

오라고 명했다. 점소이가 주방 안으로 사라지자 누남천은 입을 열었다. 

"아, 다른 자들을 소개시켜 주지. 이 자는 진군휘라고 하고, 저기 있는 저 

놈은……" 

잠시 청삼을 바라보던 누남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더라?" 

"청삼입니다!" 

여태까지 같이 한 날이 몇 일인데 아직도 자신의 이름을 외우지 못했냐는 

듯이 청삼은 목청을 높였다. 

사내는 진군휘라는 말에 흠칫했다.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무림에 모 

습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사내로 그 실력은 십대후지기수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자. 

신성처럼 떠올라 현재 정파무림에서 주시하는 진군휘라는 사내가 저자임 

이 분명했다. 

"내 이름은 왕풍묵이라 하오. 만나게 되어 반갑소 진 소협." 

"저 또한." 

왕풍묵이 포권을 취하자 여운휘 또한 그리 답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왕풍묵이 입을 열었다. 

"그래 이번엔 또 무슨 부탁을 하러 여기까지 온 거요?" 

"그다지 어려운 부탁은 아니야. 한 사람을 만나야겠는데 네가 좀 힘 좀 써 

줘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상당히 귀찮아 질 것 같아서 말이야." 

"도대체 누구기에 그런 부탁을 하려는 거요?" 

"아아, 대단한 자는 아니야." 

막 날아온 차를 입가에 가져다 댄 누남천은 말을 끊고 맛을 음미했다. 꽤나 

순한 맛의 차가 입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그 향기 또한 절색이다. 마 

치 난(蘭) 꽃을 코앞에 대고 있는 것과 같은 향이다.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들이켰던 누남천으로서는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 

었다. 

"좋은 차군." 

"용정차요." 

"호오, 이것이 용정차로군." 

이름은 들어봤지만 직접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신기하다는 듯이 몇 모 

금 더 맛을 음미하던 누남천이 마침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은 혁련우(赫連宇)네." 

"이이……!" 

순간 입에서 썅이라는 소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감정을 간신히 억제한 왕풍묵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옆에서 용 

정차를 신기하다는 듯이 마시고 있던 청삼은 그대로 입으로 뿜어낼 뻔했다. 

장강수로십팔채를 찾아간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그 

일 줄은 몰랐다. 

"…… 지금 제 정신으로 묻는 게요?" 

"물론. 언제 내가 허언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별 볼일 없는 자라…… 하지 않았소!" 

콰앙! 

왕풍묵은 주먹으로 상을 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날카롭게 변한 눈 

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그를 향해 누남천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앉아." 

"……" 

왕풍묵은 부들부들 떨다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가뜩이나 몸이 무거운 사람 

이거늘 그토록 움직이자 의자가 삐걱 하는 소리를 뱉어냈다. 

"너라면 길을 만들어 줄 수 있을 텐데?" 

"그 자는…… 장강수로십팔채의 채주요." 

"알고 있어. 설마 모르고 왔을까." 

"그럼 그 자의 뒤에 수황(水皇)이 있다는 것도 모르지는 않을 테고." 

수황이라는 말에 여운휘는 움찔했다. 

수황이라는 자는 여운휘 또한 잘 아는 자다. 

백면귀황 풍운조에게 현 무림의 최고 고수인 강호십일객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수황에 대한 이야기 또한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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