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137)

                            도약(跳躍) 

혼전이 있었다.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운문세가의 일선이 악양유가의 삼 

류무사들에게 처참하게 무너졌다. 아니, 정확하게 하면 

백중세를 유지했다고 봐도 좋다. 밀리지도, 그렇다고 밀 

지도 못했으니까. 

그런데 싸움 후 결과는 극을 달리했다. 

이런 결과가 있을 거라고 예상한 운문세가의 무인은 아 

무도 없었다. 그들은 분명 비슷한 힘으로 격돌했다. 이쪽 

에 피해가 많다면 분명 저쪽도 그래야만 한다. 

운문세가 쪽에서 죽은 무인의 수는 모두 합하여 백 명에 

달한다. 그런데 악양유가에서 죽은 무인의 수는 고작 스 

물 셋이다. 

갑절도 넘어서는 차이다. 솔직히 말이 되지 않는 수치 

다. 이 정도라면 밀렸어야 옳다. 처음부터 끝까지 엇비슷 

했다. 

사람들은 악양유가의 저력에 놀랐다. 수많은 고수를 영 

입한 운문세가를 큰 차이로 눌러 버렸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일을 가지고 내기를 한 사람도 많다. 승률 

은 이대 팔. 

물론 이 할로 점쳐지던 세력은 악양유가다. 

이번 싸움으로 인해 어느 정도 악양유가를 얕보고 있던 

주변의 세가들도 모두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호남의 힘 

은 운문세가에서 자연스럽게 악양유가로 넘어온 것이다. 

싸움이 끝나고 한 달간 악양유가 내부는 상당히 바빴다. 

풍운조는 정말 쉴 새도 없이 움직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실감했다. 

바쁘기는 했지만 그래도 평화로웠다. 한동안 드리워졌 

던 먹구름이 걷히자 세가 내에서도 웃음이 많아졌다. 그 

렇게 조용한 시간들이 흘렀다. 

능려운은 악양유가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침상 신세를 져 

야 했다.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무리한 움직임으로 인 

해 상처가 덧나 버린 것이다. 약 보름 간 침상에 누워 있 

던 그가 일어나자 우문학이 그를 찾아왔다. 

막 침상에서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던 능려운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문학을 발견했다. 

"이제 몸은 괜찮은가?" 

"아, 우문학. 이제는 아주 멀쩡합니다." 

"자네도 뼈가 꽤 단단한 모양이야." 

피식 웃으며 장난처럼 가슴으로 주먹을 두드린 우문학 

이 입을 열었다. 

"술 한잔 어떤가?" 

"진자자가 아시면 경치실 소리를 하시는군요." 

몸이 성치 않은 사람에게 술은 좋지 않다. 그 탓에 진자 

자는 능려운에게 약 한달 간 술을 먹지 말라고 말했던 것 

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우문학은 진자자가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말했다. 

"그는 여기 없지 않은가." 

"하하, 그건 그렇군요. 그럼 갈까요?" 

"역시 자네는 화통하단 말이야." 

우문학은 능려운을 데리고 세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근처에 자신이 자주 가던 객잔을 찾아 안으로 들어섰다. 

점소이는 우문학을 익히 아는 지 고개를 숙였다. 

주당으로 유명한 우문학이 단골인 집이다. 점소이가 그 

를 모를 턱이 없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은 우문학과 능려운은 간단한 요 

깃거리와 술을 주문했다. 그렇게 둘은 주거니 받거니 하 

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문학과 능려운 모두 적당히 취기가 올랐다. 그때 우문 

학이 본격적인 속내를 털어놓았다. 

"능 소협." 

"음? 왜 그러십니까 우문학." 

갑작스럽게 변한 그의 진지한 모습에 시종일관 웃고 있 

던 능려운은 웃음을 거두었다. 그의 눈빛이 운문세가와 

일전을 겨루기 바로 전처럼 진지하게 변해 버린 것이다. 

"능 소협은 내 실력을 어찌 생각하시오?" 

"실력을 말입니까?" 

말할 필요가 무엇인가. 자신보다 강한 고수를 단 일검에 

베어버린 실력이다. 자신이 평가 할 수준이 아니라는 거 

다. 자신을 아무리 높게 쳐도 우문학과 겨루게 된다면 

몇 초 버티지 못할 게 분명하다. 

"제가 뭐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 실력이 부럽습니다." 

"그런가?" 

우문학은 자신의 잔에 담겨 있던 술을 목구멍 안으로 쏟 

아 부었다. 주변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들어오지 않는 

다. 우문학의 눈에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내의 

모습만 가득 들어왔다. 

"난 자네가 맘에 들어." 

막 우문학의 잔을 채우고 있는 능려운에게 그가 말했다. 

그저 호의라고 생각하며 웃고 있는 능려운은 이어지는 

우문학의 말에 술병을 떨어트릴 뻔했다. 

"내가 자네에게 무공을 가르쳐줬으면 하는데 어떠한가?" 

"…… 그 말이 정녕 진실이십니까?" 

여운휘에게 받은 비급으로 무공을 익힐 수는 있다. 그리 

고 종종 그와의 비무로 실전 경험도 쌓을 수 있다. 그렇 

지만 사부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 

다. 사부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내 독문무공의 이름은 혈풍구룡검법(血風九龍劍法)이 

라고 하지. 배울 맘이…… 있소?"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강해지고 싶은 이 마당에 무엇을 

망설이랴. 

"물론입니다." 

"무공을 가르칠 때 엄할 거요. 그래도 괜찮겠소?" 

능려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한 것이 무슨 상관인가.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길에 

한 걸음 더 나가갈 수 있을 터인데. 우문학은 능려운의 

결의에 찬 눈빛을 보고 피식 웃으며 다시 한 번 술잔을 

기울였다. 

내일부터는 바빠질 거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으로 제자 

를 받아들여야 할 테니까. 

그러니까 오늘만은…… 취해보련다. 

늦은 밤이다.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차가운 바람이 방 안을 밝 

히고 있던 유등(油燈)을 흔들었다. 불빛이 흔들리니 당 

연히 그림자마저 춤을 춘다. 그렇게 적막했던 방문을 누 

군가가 두드렸다. 

"가주님." 

"무슨 일이죠?"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유설린을 밖을 향해 물었다. 당일 

이 다시 안을 닫힌 문 건너에 있는 유설린에게 말했다. 

"객(客)이 찾아오셨습니다." 

"객이요? 이 늦은 밤에 누가 오셨다는 거죠?" 

벌써 시각은 축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 누가 이런 

늦은 밤에 세가를 찾아와 가주를 찾는단 말인가. 

여운휘가 문을 열자 당영이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오며 

고개를 숙였다. 

"이 늦은 밤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저에게 말해주는 것 

을 보니 보통 객은 아닌 듯 한데 맞나요?" 

"예. 문을 지키던 무사가 처음엔 그 분을 막았습니다만 

정체를 듣고 제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런 늦은 밤에 세가에 찾아온 사람을 쉽게 안으로 들였 

을 리가 없다. 문을 지키던 무사 또한 이 밤에 찾아온 자 

가 가주를 만나자고 하자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 

다. 그렇지만 그 무사 또한 그 객의 정체를 아는 순간 그 

리 쉽게 행동 할 수가 없었다. 

"찾아온 자가 광한검(光寒劍)입니다." 

"광한검 누남천?" 

"예. 그 분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당영의 얼굴에 어느 정도 흥분이 보인 것 그 때문이다. 

광한검 누남천은 무림맹의 수뇌부 중 하나로 쾌검의 고 

수다. 그런 그가 직접 이곳까지 찾아왔다. 

"어서 그 분을 운곡당(雲谷堂)으로 모시세요." 

유설린이 말하자 당영이 그 말을 알리기 위해 직접 달려 

갔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자 유설린은 여운휘를 바라봤 

다. 

"시작인 것 같군." 

"응. 누남천 정도 되는 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찾아올 리 

는 없잖아." 

"기회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돼." 

"알고 있어. 그럼 우리도 가자." 

고개를 끄덕인 여운휘는 검을 허리에 차고 밤을 가르며 

걷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몸을 드러냈다. 중년을 넘어서 거 

의 노년에 가까워지는 듯한 사내는 방 안에 있던 유설린 

과 여운휘를 바라봤다. 그 둘은 서서 그 사내를 받아들였 

다. 

"누 대협이신가요? 처음 뵙겠습니다. 악양유가의 가주 

유소화라고 해요." 

"진군휘요." 

유설린과 여운휘는 정파 쪽에서 활동하기 위해 만든 이 

름을 내뱉었다. 누남천이 여운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 

다. 

"한 번 보고 싶었지. 자네가 무상검제님의 검을 이어 받 

았다고 하더군. 뭐, 내가 온 것 무림맹과는 그다지 관계 

가 있지는 않아. 남궁벽이 자네의 검을 보고 난 후 소감 

을 말해줬거든. 그 소리를 들으니 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달려왔네. 그 탓에 이런 늦은 밤에 방문하는 결례 

를 범하게 됐지."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번 운문세가와의 결전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네. 그 

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차에 악양유가가 이겼다고 하 

니 기분이 좋더군." 

"먼 길을 오셨는데 차라도 한 잔 하시지요." 

유설린이 하녀를 부르려고 하자 누남천은 손을 들어 제 

지했다. 

"됐네." 

차나 마시러 이리 먼 거리를 달려 온 것이 아니다. 누남 

천은 보고 싶었다. 무상검제의 검을. 쾌검의 극을 보았다 

고 알려진 무상검제의 검을 그는 동경해 왔으며, 항시 어 

떨지 고민해 왔다. 

누남천 또한 쾌검의 고수였으니 당연한 거다. 

그의 눈이 여운휘에게 박혔다. 

"자네의 검을 보고 싶군. 정확히 말하자면 무상검제님에 

게서 물려받은 그 쾌검을 보고 싶네." 

"그럼 밖으로……" 

"밖으로 나갈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누남천은 품안에서 작은 침 하나를 꺼내 손을 들었다. 

그 침은 무척이나 얇아 눈으로 확인하기도 힘들 정도였 

다. 누남천은 여운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침을 베어 봐." 

침을 베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록 얇은 침이라고 하나 숙련된 무인에 

게는 그다지 힘들지 않다. 그렇지만 베는 게 전부는 아닐 게다. 겨우 그거 

하나를 보려고 누남천 정도 되는 인물이 이런 먼 거리를 발걸음 했을 리가 

없다. 

눈가 근처로 들어올린 침. 검을 확인하려는 거다. 

여운휘가 검을 빼들고 누남천에게 다가왔다. 거세게 부는 겨울 바람이 운곡 

당의 문을 흔들었다. 

덜커덩~ 

문이 덜컹거리는 순간 여운휘의 검이 출수 됐다. 

쉬익! 

누남천은 조용히 침을 바라봤다. 길이가 아까에 비해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는 태연하게 침을 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저 정 

도 나이에 이 정도 쾌검을 구사할 수 있는 자는 현 무림에 없다. 

그렇지만 누남천은 크게 만족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제자였다 

면 모를까 이 앞에 있는 남자는 무상검제 진군악의 후손이다. 자신이 동경 

하던 인물이었던 탓인지 누남천은 왠지 모를 부족함을 느꼈다. 

'음!' 

만족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던 누남천은 어떠한 사실 

을 깨닫고 급히 고개를 들었다. 

소리, 소리를 듣지 못했다. 

'…… 침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분명 그 크기가 작았다지만 그 정도도 듣지 못할 누남천이 아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그가 작다고는 하나 침 같이 쇠로 된 것이 떨 

어지는 소리를 놓쳤을 리가 없다. 

누남천은 침묵했다. 그때 여운휘가 갑작스럽게 검을 들이밀었다. 분명 그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목을 향해 검을 들이밀었다는 것은 상대 

를 도발하는 거나 다름없다. 처음엔 흠칫 했던 누남천은 곧 놀라고야 말았 

다. 

검날의 위에 작은 침이 올려져 있었다. 

"흐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자 그는 침묵했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듯이 가만히 

앉아 있는 그는 돌부처였다. 억겁의 시간도 그대로 흘려 보낼 것 같던 누남 

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탄(驚歎) 할 수밖에 없군." 

쾌검으로는 현 무림에 자신 보다 뛰어난 자는 다섯도 되지 않을 거라는 자 

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쾌검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과연 무상검제님의 검이야. 빠르기만 할 뿐만 아니라 변화가 있어." 

누남천은 진정으로 놀랐다. 겉모습은 태연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심장 

이 두근거리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나가 비무를 해보자고 하 

고 싶다. 그렇지만 이렇게 찾아와 무턱대고 비무를 하자고 하는 것도 우스 

운 게다. 

배분의 문제다. 자신이 한참은 어린 사내에게 비무를 신청 할 수는 없는 일 

이다. 누남천은 근질거리는 입을 참아내며 슬며시 웃음을 흘렸다. 

"무림에 또 하나의 신성(晨星)이 모습을 드러냈군." 

누남천은 진실로 흡족했다. 현재 무림맹과 마교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태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벌어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 

다. 이런 시기에 이 정도 되는 고수의 등장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문제다. 

여운휘를 보면서 웃음을 흘리고 있던 누남천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와 함께 무림맹에 가지 않겠느냐?" 

"지금 말이오?" 

"지금 당장은 무리고, 날이 밝은 후의 이야기겠지. 어떤가? 무림맹에 나와 

같이 갈 마음이 있는가?" 

누남천의 말은 여운휘도 예상치 못했던 말이다. 무림맹에서 어느 정도 관심 

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토록 자신을 초청할 거라고는 생각한 적 없 

다. 

솔직히 말해 당장은…… 무리다. 

여운휘가 막 거절의 의사를 표명하려는 순간 유설린이 말을 가로챘다. 

"내일, 내일 아침에 말씀드릴게요.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조금 있어서요." 

"그러겠는가?" 

"예, 그러니 다른 곳에서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 계시지요." 

"알았네. 그럼 난 먼저 일어나지." 

누남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당영의 안내를 받아 새벽을 보낼 거처로 향했 

다. 그들이 나가고 얼마간 유설린과 여운휘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침묵이 흐른 후에 여운휘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무리다." 

"왜?" 

"지금 당장은 네가 할 일이 너무 많아." 

"초청을 받은 건 내가 아니고 휘야." 

"하지만……" 

분명 여운휘가 지금 이곳에서 할 것은 없다. 솔직히 말해 지금은 분명 호기 

다. 무림맹의 수뇌 중 하나인 누남천이다. 그런 그가 찾아와 같이 무림맹에 

들어갔다면 여운휘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 거론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회라 해도 여운휘는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난 갈 수 없지만 넌 갈 수 있잖아." 

"널 혼자 두고 간다는 게 내키지 않아." 

"걱정 마. 모든 일이 끝나면 그때는 내가 무림맹에 찾아갈게. 특별한 일도 

없으니까 내 주위를 지키는 건 유가에서 온 무인들과 풍 노야로 충분해. 

가, 지금은 기회야. 나 혼자로는 복수를 할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언제나 둘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세가뿐만이 아니라 무림맹에서 

알아주는 고수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몫을 해야 하는 건 여운휘다. 

해야 할 일이건만 여운휘는 내키지 않았다. 언제나 함께 하는 그림자처럼 

지켜준다고 했거늘 이제는 떨어져야 한다. 그것이 여운휘는 내키지 않았던 

거다. 

그런 여운휘의 마음을 알아차린 유설린이 작지만 또렷한 어투로 말했다. 

"내 모든 것을 지켜준다고 했잖아. 지금 휘가 가는 건 나에게서 멀어지는 

게 아니야. 나의 꿈을 지키기 위해 가는 거지. 수호령이란 건 그런 게 아닐 

까? 그 사람의 꿈까지 지켜주는 그러한 것. 단순히 목숨을 지켜주는 건 호 

위무사일 뿐이야." 

유설린의 단호한 말을 들은 여운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유설 

린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여운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 몸조심해." 

"걱정하지 마. 내 몸 하나는 간수 할 수 있는 여자라는 걸 잘 알잖아." 

어른인 양 의젓한 모습을 보이는 유설린을 보며 여운휘는 눈을 감았다. 유 

설린을 만난 이후로 그녀로부터 떨어져 본 적이 없다. 항시 같이 했으며 이 

제는 둘이 하나라고까지 느껴질 정도다. 

여운휘는 쓸쓸함을 모른다. 항시 혼자 지내왔고, 그것이 당연스럽다고 생각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운휘는 아직 헤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꼈다. 

"절대 다치지 마. 만약 네가 다친다면 상대가 설령 현 무림 최고 고수인 강 

호십일객의 일마라 할 지라도 편하게 죽지 못하게 해 줄 테니." 

여운휘의 말에 유설린이 웃었다. 세상 그 누가 저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있겠 

는가. 

술자리에서 장난으로라도 저런 말을 내뱉지 않는다. 그 정도로 일마라는 이 

름은 무림에서 지고한 지존(至尊)의 위치에 있다. 

하지만 여운휘는 그렇지 않다. 그는 말을 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사내다. 설 

령 일마에 의해 유설린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는 싸울 거다. 그리고 자신 

이 말한 바대로 결코 편하게 죽지 못하게 만들 거다. 

그는, 그런 사내다. 

"금방 갈게. 휘도 몸조심해." 

그런 그를 알기에 유설린은 모든 걸 맡길 수 있다. 

다음날 동이 틀 무렵 여운휘는 유설린과 함께 우문학을 찾아갔다. 우문학 

은 잠에 빠져 그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쓰러져 있었다. 몸에서 풍기는 

술냄새를 보니 어제 과음을 한 듯 하다. 

누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코를 골면서까지 자는 그를 보면서 여운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자가 저랬다면 속으로라도 혀를 찼을 게다. 

문제는 지금 코를 골고 있는 사내가 우문학이라는 거다. 

결코 방심하지 않는 자다. 

"우문학." 

유설린의 목소리가 들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코고는 소리가 사라졌다. 우 

문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이른 아침에 무슨 일이십니까?" 

"오늘 당신에게 용무가 있는 건 나다." 

여운휘의 말에 우문학은 고개를 돌렸다. 여태까지 특별히 말도 나눠 본 적 

이 없는 사내다. 그런 사내가 자신에게 용무가 있다 하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흐음, 자네가 무슨 일이지?" 

"오늘 난 무림맹으로 갈 거다." 

"무림맹?" 

갑작스러운 여운휘의 말에 우문학은 반문하듯이 물었다. 우문학을 내려다 

보던 여운휘가 입을 열었다. 

"내가 이곳에 온 용건은 가주의 안위를 위해서다. 내가 없는 동안 일조가 

가주를 보살피라는 말을 하려고 왔다." 

"그거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럴 텐데 뭐하러 이른 아침에 사람 잠을 깨우 

는 건가?" 

"경고를 하러 왔다." 

"경고?" 

"가주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첫째로 그 문제를 일으킨 자를 죽일 거다. 

그리고 둘째로 가주를 지키지 못한 너희를 죽일 거다." 

우문학이 말 없이 여운휘를 노려봤다. 한동안 여운휘를 계속해서 노려보던 

우문학이 피식 웃었다. 

"알았다. 알았어. 네게 뿐만이 아니라 가주는 내게도 중요한 사람이다. 나 

또한 목숨을 걸고 지키지." 

우문학의 말을 들은 여운휘는 몸을 돌려 그의 방에서 나가버렸다. 용무는 

이제 끝났다는 듯한 그의 태도에 우문학은 둘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웃음 

을 터트렸다. 

우문학의 방을 나선 유설린과 여운휘는 누남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미 모든 준비를 끝마친 누남천이 여운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누남천이 입을 열었다. 

"가겠는가?" 

여운휘는 뒤에 서 있는 유설린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 

는 순간 여운휘는 고개를 돌렸다. 

"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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