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문철이 죽기 전부터 양무유는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는 현실이 믿기 힘들었다. 현문철이 지고 있
다. 그것도 그다지 나이도 되어 보이지 않고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
은 젊은 남자에게.
다른 자도 아니다. 낙성검(落星劍) 현문철이다. 구파일방과 오대 세가에
서조차도 한 걸음 물러나는 인물이다. 그 정도로 이름이 있는 자이거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마치 가지고 노는 듯이 상대는 태연하게 검을 휘둘
렀다.
양무유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아는 순간 당장 도망을
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하다. 지금 낙성검 현문철과 싸우고 있
는 젊은 남자는 자신이 도망친다고 해도 쫓을 수 없을 거다. 그렇지만
진자자의 옆에 있는 노인이 문제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순간부터 그 노인은 자신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았
다.
멍청이처럼 서 있는 것보다는 잡힐지는 모르지만 도망가는 게 낫다는
건 안다. 머리로는 생각이 되지만 몸이 따르지 않는다. 노인의 시선이
마치 자신을 옥죄는 느낌이다.
노인의 눈빛이 마치 칼바람 같다. 도망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단연컨대 지금 움직인다면…… 죽는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이제는 왜
이 일에 끼여들었는가 하는 후회까지 인다. 이 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니 현문철이 이리 밀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몽환약을
사용할 기회를 준 운문세가 가주에게 감사해 하고 있었다.
그랬거늘 이제는 원망이 치민다.
'움직이면 죽어. 하지만…… 움직이지 않아도 죽을 게야.'
마지막으로 현문철을 바라봤지만 이제는 아까보다 더 꼴사납게 밀리고
있다. 그리고 뒤로 물러난 젊은 남자의 검이 움직이는 순간 현문철의 가
슴이 갈렸다.
'끝…… 이다.'
양무유는 현문철의 열린 가슴에서 피와 함께 쏟아지는 내장을 보면서 중
얼거렸다.
두말 할 것도 없다. 저건 즉사다.
"영 안색이 안 좋네 그려."
"…… 진자자."
"왜? 살려달라고? 미안하지만 그건 내 소관이 아니라서 말이야."
양무유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나머지 한 명 또한 싸우려는 모습을 보
이지 않았다. 어차피 덤벼 봤자 질게 뻔한데 뭐 하러 명을 단축하겠는
가. 그 둘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양무유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나?"
"뭐냐?"
"죽일 때는 내 검으로 죽여줬으면 하는 군. 내 아내가 준 검이라서 말이
야. 오래 전에 죽긴 했지만 정말 사랑했지. 마지막 가는 길 아내가 준
검으로 죽여주게."
진자자는 유설린을 바라봤다.
유설린은 잠시 양무유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해 주세요. 그 정도 소원은 들어줄 수 있죠."
유설린에게 허락을 받은 진자자는 양무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주님께서 된다고 하셨으니 그렇게 해 주지. 그렇지만 그 방안에 네
놈 혼자는 못 들어가. 우리 모두가 따라간다. 네 놈은 약은 놈이라서 비
밀 통로를 만들어 뒀을지도 모르거든."
"…… 알았네. 모두 방으로 들어와 내 바로 옆에서 지키면 되겠군. 그러
면 내가 도망가지 못할 테니까."
진자자는 혹시 모를 변수 탓에 양무유에게 동행을 요청했고 그는 그것
을 승낙했다. 양무유와 나머지 한 명을 앞에 세우고 그 뒤로 각각 풍운
조와 여운휘가 달라붙었다. 방으로 들어온 양무유는 벽 한쪽에 걸려 있
는 검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약간 오래 된 듯한 검 한 자루가 있었다. 그 검을 양무유
는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그는 그 낡은 검을 쓰다듬었다.
진자자에게 다가간 양무유는 그 검을 잡은 손을 내뻗었다. 순간 풍운조
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지만 진자자가 검을 잡자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런데 진자자가 검을 잡는 순간 양무유가 입을 열었다.
"진자자, 여전히 넌 너무 어수룩해."
채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진자자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가 무너
지는 순간 양무유의 손이 다시 한 번 펄럭였다. 소매 속에서 가루가 뿜
어져 나왔다. 그 하독 솜씨가 얼마나 절묘한지 채 반응도 하기 전에 일
행들은 모두 가루를 뒤집어썼다.
"하하!"
양무유는 웃었다. 애초에 사랑하던 여인도 없었고, 그런 여인에게 받은
검도 없었다. 애초부터 이런 계획을 가지고 취한 행동이다.
양무유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만든 몽환약은 최고다. 그건 이번 악양유가에 침입했을 때 직접
사람을 가지고 실험해 보았다.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목이 베이는데도
그들은 신음소리 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 정도의 몽환약은 천하무
림에 없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그렇게 웃어야 했다. 모두가 쓰러진 사람들 속에서
연신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는 더 이상 웃지 못했다.
한 남자가 잠들어 버린 여인을 부축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
이 얼마나 매섭던지 양무유는 당장이라도 바지에 실례를 할 것만 같았
다.
"…… 무슨 독이냐."
여운휘의 말에 양무유는 찔끔하면서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서
있는 것은 그 젊은 남자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에 키 작은 남자를 부축
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도 보였다.
어떻게……
"뭐냐고 물었다!"
여운휘가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간신히 버티고 서 있던 양무유가 철퍼
덕 쓰러져 버렸다. 놀란 건 양무유뿐만이 아니다. 풍운조 또한 여운휘
의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살기 때문이 아니다. 항시 냉정하고 감정을 내 비추지 않는 그가 화를
냈다.
"모, 몽환……"
"그냥 몽환약이냐?"
양무유는 여운휘가 뿜어내는 살기 탓에 숨을 쉴 수가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그 순간 여운휘의 검이 검집에서 뽑혔
다가 다시 들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양무유는 검이 지나간 자신의 팔을 내려다 봤다.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인
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감각이 없다. 양무유는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
다.
손을 들어올리던 양무유는 비명을 내질렀다.
"아, 아악!"
손목부터 아래와 위가 분리되어 버렸다. 팔목은 올라오는데 손은 그대
로 땅에 있다.
믿을 수가 없다. 이토록 손목이 잘릴 정도의 강렬한 느낌이 아니었다.
그냥 무엇인가가 스쳐 갔다고 만 느꼈다. 그렇지만 자신의 눈이 보는 것
이 결코 거짓은 아닐 게다.
"다시는 몽환약을 뿌리지 못할 거다. 그리고……"
쒜엑!
날아 든 검이 고통스러워하는 양무유의 목을 벴다.
"다시는 숨을 쉴 수도 없을 거다."
머리가 목에서부터 데구루루 굴러 떨어져 내렸다.
여운휘는 검집에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잠에 빠진 유설린을 등
에 업고는 풍운조를 바라봤다.
"뒤처리는 당신 몫이야."
"저 자는 어떻게 할까?"
풍운조는 몽환약에 당해 쓰러져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잠시 그
남자를 바라보던 여운휘가 입을 열었다.
"살려서 운문세가에 보내는 게 좋겠군."
"경고의 의미로 보내기에 좋겠지. 그런데 가주를 제하고 다른 두 명도
있는데 같이 옮겨 줄 생각은 없나?"
"난 이 여자만을 지켜. 위험한 것도 아니니까 당신이 일 처리하고 데리
고 와."
여운휘는 몸을 돌려서 걷기 시작했다. 풍운조는 가주를 업은 채로 천천
히 걷고 있는 여운휘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자신을 건드리는 자도 무심하게 넘기는 자가 가주를 건드렸다는 이유
로 저토록 화를 내다니……'
감정이 없는 인형이라 생각했다. 왜 가주를 따르는지도 모른다. 저런 실
력자가 따르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해봤지만 그게 뭔
지는 도통 모르겠다.
돈은 아닐 거다. 저런 남자가 돈에 움직이지는 않을 게다.
그리고 계약에 얽매인 관계도 아닐 것이다. 계약 같은 것에 얽매인 사이
였다면 아까 그처럼 불같이 화를 낼 턱이 없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다. 그런데 또 충성심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직 정확하게 둘의 관계를 알 수는 없지만 예전보다는 한 발 가깝게 다
가간 기분이다. 그리고 여운휘라는 인간에 대한 느낌도 한결 좋아졌다.
'이제 보니 화도 낼 줄 아는 군.'
풍운조는 왠지 모르게 유쾌했다.
혈전(血戰)
조용히 문이 열리며 한 노인의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군요, 남궁벽 어르신."
"허허, 요즘 세가 내가 상당히 시끄럽던데 잘 해결되신 모양이오."
"예, 그건 잘 해결되었어요.
남궁벽은 조용히 자리에 걸터앉았다. 지금 그는 악양유가의 가주인 유설
린에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것이다. 남궁벽은 조용히 유설린을 응시했
다.
할 말이 없었다면 부를 리가 없다. 분명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
"운문세가에서 연락이 왔어요."
"허? 드디어 연락이 온 모양이구려. 뭐라고 온 게요?"
"날짜와 장소만 적어서 보냈어요. 종(終) 이라는 글자와 함께."
"종이라……"
모든 걸 끝내자는 거다. 종이라는 글자는 그것을 의미한다.
남궁벽은 눈을 감고 조용히 상념에 잠겼다. 모든 걸 끝내자는 말은 곧
전력을 다해 부닥치자는 이야기다. 둘 중 하나가 멸망의 길을 걸어야 한
다. 그리고 남궁세가는 그 둘 중 악양유가라는 세가를 돕기로 했다.
"그냥 부닥칠 생각이오?"
"아뇨, 아무리 남궁세가 분들이 도와주러 오셨어도 정면대결을 하면 피
해가 막심할 거예요. 뒤를 칠 거예요."
"뒤를 치겠다 라…… 조용히 움직이려면 소수로 움직여야 할 테니 고수
여야 할 텐데…… 고수들을 전부 외곽으로 돌리면 정면으로 들어오는 적
들에게 많은 자가 죽을 것이오."
"그건 걱정 마세요. 다 방법이 있으니까요. 남궁세가 분들은 외곽으로
도는데 참여하셔야 할 거예요."
남궁벽은 유설린을 응시했다.
방법이 있다고 했다. 정면으로 들어오는 적을 막을 묘수가 있다는데 그
게 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결코 아무것도 없이 자신감을 보이는 건 아
닐 거다. 많은 수의 사람이 죽게 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남궁세가가 아
니라 악양유가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큰 소리 쳤을 리는 없다.
"외곽이라……"
"내일 중에 떠나야 할겁니다. 서둘러 준비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군요."
"알겠네, 내 지금 가서 당장 준비를 하도록 하지."
"감사해요."
"의당 해야 할 일인 것을 감사는 무슨."
남궁벽은 들어왔을 때처럼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유설린이 옆에 있는 여운휘에게 말했다.
"때가 온 것 같아."
"그래. 그들을 써야겠어."
남궁벽을 비롯해 고수들이 뒤로 돈다면 앞이 비게 된다. 삼류무인들이
많아 봤자 고수 하나 나타나면 그대로 무너질 거다. 그리고 운문세가에
서 고수가 없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설린이 무공이 뛰어난 자들을 뒤로 빼는 것은 믿
을 게 있어서다.
주주유가에서 보내 준 자들이 있다. 낭인이나 삼류무사들로 위장하고 있
지만 그들은 고수다. 그들만으로도 운문세가를 망하게 하는 것이 가능
할 정도의 고수들이다.
그들이 앞을 막을 거다. 너무 강하지 않게 적당히 시간을 벌면서 적들
을 숨돌릴 틈도 없게 만들어 줄 거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선발된 인원이
뒤를 칠 계획이다. 아무도 모르게 완벽하게 상대들을 제압하면 된다.
그동안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비치지 않은 전력이다. 그렇지만 이제 그
힘을 보여야 할 때가 왔다.
여운휘는 문을 열고 밖에 있는 당영에게 말했다.
"1조 조장인 우문학(于門鶴)을 불러와."
"우문학을 말씀이십니까?"
당영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악양유가의 무인들은 열 한 개의 조로
나뉘어져 있다. 각 조는 삼십 명에서 오십 명 정도의 인원이 들어가는
데 1조의 수는 유독 스무 명 밖에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1조 조장인 우문학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남자다. 사십대 정도
로 보이는 남자로 특별히 대단해 보이는 것이 없는 자이거늘, 가주는 그
를 1조 조장으로 임명했다.
마찬가지로 1조의 인물들은 낭인들의 세계에서도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자들이다. 주주 쪽에서 보내온 무인이라는 것만 밝혀졌을 뿐, 그다
지 대단한 것 같지도 않다. 항시 늘어진 모습으로 훈련도 게을리 하는
모습이 파락호와 다를 바가 없다.
가주 또한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 버려진 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
데……
"어서 가."
"아, 예 알겠습니다."
당영은 여운휘의 이어지는 말에 황급히 다리를 움직였다.
1조 조장 우문학이 어디 있는지는 뻔하다. 악양유가 내에서 찾기 제일
쉬운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도 서슴지 않고 그를 꼽을 게다.
악양유가 뒤쪽에는 나무가 무성한 곳이 있다. 그리고 그 곳 중에서도 가
장 끝 부분에 도착한 당영은 너무나 쉽게 우문학을 발견했다.
술병을 손에 들고 고개를 떨어트리고 있는 그는 취해 잠이 든 것 같았
다.
"우문학!"
우문학은 미동도 없이 코를 골고 앉아 있었다.
"우문학 일어나게!"
이 정도 목소리라면 일어날 만도 하건만 그는 여전히 미세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한 번 술에 취해 잠이 들면 두들겨 패도 일어나지 않는
그라는 것을 알기에 당영은 몸을 돌렸다. 물이라도 퍼서 한 바가지 뿌려
주면 일어날까 해서였다.
"제길, 가주님이 찾는데 잠이나 자고 있……"
당영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화들짝 놀
란 당영은 급히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우문학이 서 있었다.
"가주님이 찾으신다고?"
"그, 그렇네."
우문학은 더 이상 묻지도 않고 경공을 펼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당영은 멍한 눈으로 그런 그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했다. 두들겨 패도 일
어나지 않는다던 자가 갑자기 일어났다. 큰 소리로 소리를 친 그때도 아
무렇지 않게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가주라는 이름을 입에 담자마자
언제 잤냐는 듯이 일어났다.
아주 작은 중얼거림일 뿐이었다. 자신 귀에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
의……
'저 자는 어떻게 내 말을 들었지? 그것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을 텐
데……'
가주의 주위엔 알 수 없는 자들 투성이다.
"우 대협, 움직여야 할 때 같아요."
유설린의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있는 우문학은 더 이상 술만 먹는 낭인
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에 우문학이 답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미리 애들도 준비 시켜 놓았지요."
"이번에 앞으로 쳐들어 올 그들을 막아야 해요. 대신 그들을 모두 죽이
면 안 되요. 아시겠지만 아직은 완전히 힘을 보여 줄 때가 아니죠. 남궁
세가 쪽과 저희 쪽 몇 명의 배후를 칠 거예요. 그 동안만 피해를 최소화
시키면서 버텨 주세요."
"물론. 그럼 우리 쪽의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이면서 약간 밀어붙이는 정
도로 하겠습니다.
누가 본다면 광오하다 할 게다. 봐주면서 버티라는 소리를, 그것도 오히
려 힘이 약할 거라고 추측되는 세가에서 그런 말을 하니 아니 그렇겠는
가. 하지만 우문학은 자신이 있다.
우문학에게 운문세가 정도는 우스운 상대일 뿐이었다.
1조의 조원들만 모두 몰려가도 두 시진 안에 박살을 낼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아직은 힘을 숨겨야 할 때다. 가주의 의견처럼 그 또한 그리
생각했다.
잡을 수 있지만 잡아서는 안 되는 상대.
우문학이 웃었다.
"차라리 전멸을 시키는 게 쉬울 것 같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밀리라는
명령은 여태까지 내려 본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일인 이상 확실
히 처리하겠습니다.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게 아주 깔끔하게 말입니
다."
"고마워요. 이번 일의 승패는 우 대협에게 달렸어요."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보다 오히려 가주님이 위험하지 않으실 지 걱정
이 되는군요. 저희 1조의 대원 몇 명을 붙여 드릴까요?"
"아니요. 전 이 남자 하나면 충분해요."
유설린은 여운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문학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여운휘의 실력
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우문학은 여운휘가 만만치 않은 자라
는 것을 알고 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여태까지 그가 했던 모든 일을 이미 들었다. 더군
다나 단신으로 금천멸문대의 대원 열 셋을 죽인 것은 이미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회자되는 일이다. 우문학은 강한 자다. 그렇지만 그
또한 여운휘에겐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뭐, 저자 하나면 충분하기야 하겠지요."
저 남자의 가치는 무엇으로 잴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음 날부터 악양유가에서는 사람들이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약
이삼 십 명 단위로 빠져나가더니 급기야 세가는 하인들과 몇몇 사람을
빼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서운철, 당영, 삼일도 남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
특히 삼일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막중하다. 운문세가의 움직임을 시시
각각 알려야 한다. 그들의 움직임을 놓친다면 기습을 받게 될지도 모르
는 일이다. 그리고 만약에 있을 기습을 대비해 악양유가에는 주주유가에
서 온 이십 여 명의 무인들이 하인으로 분장시켜 놨다.
오히려 세력을 분산 시켜서 악양유가를 친다면 괴멸되는 것은 그쪽이리
라.
유설린과 여운휘, 풍운조는 남궁세가의 인물들과 함께 움직였다. 그리
고 그 안에는 간신히 운신을 할 수 있는 능려운과 진자자도 껴 있었다.
"쉬라는데 왜 이렇게 말썽인지 모르겠군."
"아닙니다 진 노야. 저 또한 몸을 다쳐 큰 도움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래
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쯧쯧, 젊다고 그리 몸을 함부로 굴리다가는 큰 낭패를 볼 게야."
능려운은 웃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남궁세가의 무리 속에 섞
여 있는 남궁혁련이 있었다. 그를 보니 마음 한편에서 화가 치솟았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여운휘가 나중에 쌍도쌍검을 꺾었다는 것은 들었다.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지만…… 씁쓸함이 앞선다. 자신이 그토록 허덕이던 일인데 그에겐 너
무나 손쉬운 일이다.
남궁혁련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 그렇지만 힘이 없기에 그런 마음을 속
으로 삭일 수밖에 없다.
'내가 저자만큼 힘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기에 능려운은 더 이상 그것에 얽매이지 않았다.
뒤에서 따르고 있던 남궁리는 연신 여운휘를 보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제대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일전에 능려운의
말을 듣고 한 번쯤 제대로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앞서
가자니 같이 움직이는 남궁세가의 사람들 때문에 그렇고, 그렇다고 안
에 섞여 가자니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식사 할 때면 볼 수 있겠지.'
그녀는 식사를 할 때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포기했다. 그렇지
만 정작 점심 시간이 되었을 때 남궁세가와 그들은 거리를 두고 앉았
다. 더군다나 그 남자는 남궁리의 반대편에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버렸다.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달려가서 앞에 간다면 볼 수야 있겠지만 그
건 실례되는 일이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여운휘가 있는 쪽을 힐끔거리던 남궁리는 결국은
일어나자는 남궁벽의 말에 눈을 돌려야 했다.
이 정도 속도로 간다면 삼일 정도 후에는 목적지에 발을 디딜 수 있다.
지금 움직임으로 추측컨대 악양유가가 운문세가 보다 이틀 정도 일찍 도
착할 게다. 그리고 그때부터 삼일의 정보가 쉬지도 않고 날아들 거다.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에 신경을 쏟아야 한다.
남궁리가 여운휘를 보기 위해 애쓸 때 남궁혁련은 다른 의미로 그를 바
라봤다.
일전에 자신에게 부러진 두 자루의 검과 도를 보낸 자는 가주가 아니면
저자다. 그는 기회를 보고 있었다. 가주와 저 남자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지 않는다면 분이 풀리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가서 화를 풀고 싶은 게 솔직함 심정이다. 그러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러지 못하는 것은 남궁벽 때문이다.
그는 악양유가의 인물들을 견제하면서도 어느 정도 호감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망할 영감탱이."
남궁혁련은 남궁벽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일행은 발걸음을 멈췄다. 남궁리는 다가가고 싶었기
에 남궁벽에게 말했다.
"사숙조 어르신, 저도 따라가면 안 되요?"
"허, 미안하구나. 잠시 가주와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해서 말이다. 널
데리고 가면 내 입장이 조금 그렇구나."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는데 어쩔 것인가. 남궁리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남궁벽은 그녀에게 미안한 표정을 잠시 지어 보이더니 교주가 있는 쪽으
로 다가갔다. 남궁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
지만 역시 그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쳇, 안 보면 될 거 아냐.'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보겠지 하면서 남궁리는 더 이상 그쪽으
로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후에 잠
이 들었다.
꼼지락거리던 남궁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참으려 했는데 소피가 너무나 마렵다. 그 탓에 그녀는 떠지지 않는 눈
을 억지로 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각이 많이 늦었는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다.
혹시나 소리가 날까 해서 남궁리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어디 가느냐."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역시 남궁벽에게까지는 무리였나 보다. 고개를
돌린 남궁리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남궁벽을 바라봤다. 아무리 사숙조라
고 해도 어떻게 여인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붉어진 얼굴을 본 남궁벽은 말을 듣지 않고도 그녀가 일어난 이유를 알
아버렸다.
"흠흠,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그 말을 마치고 남궁벽은 몸을 돌려버렸다.
남궁리는 창피하기도 하고 급하기도 해서 서둘러 달렸다. 그녀는 모두
가 자고 있는 곳에서 꽤나 먼 곳까지 와버렸다. 여인이다 보니 일행과
가까운 곳에서 소피를 본다는 게 너무나 부끄러웠던 거다.
수풀 속에 들어간 남궁리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재빨리 소피를 해결했다.
막 하의를 올리고 움직이려던 그녀는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에 재빠르게
검을 빼내며 휘둘렀다.
챙!
육장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손바닥으로 갑작스럽게 엄청난 충격이 쏟아
지며 남궁리는 검을 놓쳐버렸다. 그렇지만 떨어진 검을 보고 있을 수만
은 없다. 어두운 공간을 가르고 검 하나가 자신의 목젖 바로 앞에서 멈
춰 있었다.
꿀꺽……
자신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무슨 연유인지 갑자기 하늘에서
한 송이 한 송이씩 눈이 떨어져 내렸다.
그토록 내리지 않던 첫눈이 지금 같은 상황에 내렸다. 눈송이가 검날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검이 뒤로 물러났다.
마음에서는 검을 들고 견제를 하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 막상 몸은 그
렇지 않다.
오금이 저린다. 방금 전에 소피를 봤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하의가 축축
해져도 이상할 게 없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남궁리가 땅에 주저앉았
다.
주저앉은 남궁리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한 사내
가 들어왔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보는 사내.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이 밤에 무슨 일로 여기 있는 거냐."
"그, 그게……"
여운휘는 힐끔 뒤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소피를 본 모양이군."
그 말에 남궁리는 아까 남궁벽에게 걸렸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
도로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너무나 덥다. 겨울인데 덥다니 우스울 수
도 있지만 지금 남궁리는 너무나 덥게만 느껴졌다.
그때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해!"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다. 그리고 자신에게 검을 들었던 남자의 옆에
나타난 여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버렸다.
'악양유가의 가주!'
그렇다면 저 남자가 누구인지는 뻔했다. 그토록 보고자 했던 그 사내
다. 가주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그 무인이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단순히 방금 그 검 때문만은 아닐 거다.
"남궁 소저시군요. 이런 야밤에 여인 혼자서 다니면 위험하답니다."
"아, 예……"
대충 대답은 하고 있는데 눈은 여운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때 유설린이 작은 웃음을 흘렸다.
"풋."
그 웃음소리에 남궁리는 정신을 차리고 의아하다는 듯이 유설린을 바라
봤다.
"이런, 죄송해요. 계속 주저앉으신 채로 멍하니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게 웃겨서요. 어서 일어나셔야죠. 밤이슬에 옷 다 젖으시겠어요."
"아!"
남궁리는 그제야 자신이 여태까지 일어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우습기라도 한 듯이 유설린은 계
속해서 웃고 있었다.
"그럼 이번엔 저희와 같이 가실래요? 갑자기 이기는 하지만 첫눈도 오
고 하니 주변을 더 둘러 볼 생각이거든요."
"아, 아니요. 괜찮아요 전. 저, 저 먼저 갈게요!"
얼굴이 붉어져서 더 이상 같이 있을 수가 없다. 남궁리는 황급히 경공
을 펼치면서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이제는 진정 될 만도 하련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남궁리는 재빨리 자신의 모포 안으로 들어갔
다. 서두르지 않는다면 붉어진 얼굴이 당장이라도 들킬 것 같다.
눈을 감으니 심장의 두근거림이 들린다.
우수에 찬 듯한 그 눈빛에 남궁리의 마음이 흔들렸다. 뚜렷하면서도 섬
세한 이목구비도 마음에 든다. 그녀는 항시 자신의 누이인 남궁려희에
게 말했다.
자신의 배필(配匹)은 운명처럼 다가올 거라고……
아무래도 오늘은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유설린과 여운휘, 그리고 남궁벽 이렇게 셋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으
로 움직였다. 산이라기 보다는 작은 언덕이라 불러야 할 정도의 크기
다. 그곳에 서서 셋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저기요. 내 생각으론 저 무렵에서 격돌하게 될 듯 하구려."
"그럴 것 같네요."
"그렇다면 본진은……"
"저곳일 것 같은데요."
남궁벽은 유설린이 가르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장과는 꽤나 먼
거리에 있고 위치도 높아서 사방을 감시하기에 적합하다. 남궁벽이 보기
에도 이 근방에서 저곳만큼 적합한 곳은 없어 보인다.
"가주의 말대로 될 듯 하구려."
"그렇다면 저곳까지 가면서 걸리지 않는 게 관건이겠군요."
"우리가 간다 해도 막는 쪽이 뚫리면 이미 그 싸움은 진 것이오."
"그 걱정은 안 하셔도 되요. 분명히 막을 수 있으니까요. 밀어붙이지는
못하겠지만 막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아무것도 준비 한 게 없다. 무엇인가를 이용해서 시간을 벌려는 계책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 놓고도 보이
는 저 자신감은 무엇인가.
운문세가에서 결코 호락호락하게 자신들의 힘만을 끌고 올 리가 없다.
근방에서 이름을 날리는 자들도 수두룩하게 올 거다. 최소한 그들은 악
양유가의 무인들과는 그 궤를 달리 할 게다.
그런 자들이 열 명 정도 된다면 악양유가의 무인들은 전멸이다. 악양유
가 무인의 대부분은 낭인이나 갓 삼류무사를 벗어난 자들이 대부분이
다. 고수와 붙게 된다면 그들은 손도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쓰러질 거
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조금 크게 원을 도는 게 낫긴 하겠지만……"
남궁벽은 아직 유설린의 말이 미덥지 못하다. 거짓말을 해서 손해를 보
는 것이 악양유가 쪽이라는 것은 알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다른 무
슨 수가 안 떠오르니 믿음도 가지 않는다.
"그럼 좀 크게 한 번 원을 그리면서 달려보죠. 얼마나 걸리는지."
"그렇게 하세."
믿음은 가지 않지만 남궁벽은 유설린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맨 앞에 서
서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셋은 아까 전 그녀가 가리켰던 곳을 향해 치달렸다. 여운휘와 남궁벽은
유설린에게 맞추어 달렸다.
남궁벽은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입을 열었다.
"일각(一刻)정도 걸리네."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여운휘를 바라보던 유설린이 고개를 끄덕이
고는 말했다.
"그 정도면 할 만 하군요."
"정말 괜찮겠는가.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일을 성공적으로 끝낸다 해도
한 식경(食頃)은 걸릴 걸세."
"문제없어요."
"그렇다면 돌아가도록 하는 게 좋겠구려.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어."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삼 인은 다른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분위기는 냉랭하다. 남궁세가와 악양유가 쪽은 상대방에게 한 마
디 말도 던지지 않았다. 남궁혁련과 악양유가의 사람들 사이에서 흐르
는 미묘한 분위기 탓이다.
현재 남궁세가와 섞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남궁혁련이 했던 행동을 안
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곱게 바라볼 턱이 없다.
"사숙조 어르신 오셨어요?"
그간 답답했는지 남궁리는 남궁벽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녀
는 그 옆에 있는 여운휘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남궁리와 마찬가지로 풍운조 또한 그들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삼일한테서 연락이 왔소이다."
"무슨 중요한 정보라도 들어왔나요?"
"그런 건 없고, 그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없어서 내일 모래 오전 중에 도
착할 것 같다고 하더구려."
"그럼 뒤따라 도착하는 사람들을 모두 푹 쉬게 해요. 될 수 있는 한 지
금은 많이 쉬어야 해요."
"걱정 마시오 가주. 이미 그렇게 조치를 취해놨으니 말이요."
유설린과 남궁벽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숙인 후에 자신의 일행이 있는
불가로 떨어졌다. 그리고 못내 아쉬운 눈으로 남궁리는 여운휘의 뒷모습
을 쫓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남궁벽이 인자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하느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화들짝 놀란 남궁리는 남궁벽을 뒤로하고 먼저 불가로 돌아갔다. 아무것
도 아니라고 했지만 남궁벽 정도 되는 연륜을 지닌 자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허허……'
남궁리는 비록 장난기는 많지만 사내들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한 외모
의 소유자다. 더불어 쾌활한 성격은 또한 그녀만의 매력이기도 했다.
남궁벽은 웃고는 있었지만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았다. 남궁리의
신분으로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저런 사내와의 혼인은 결코 쉬운 일
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사내의 옆에는 남궁리의 외모를 부끄럽게 할 정
도의 미녀가 한 명 있다.
'계절은 겨울이거늘, 저 녀석의 마음은 봄이 온 건가?'
나중이 어떻게 되던 남궁벽은 한 사내를 흠모할 정도로 커져버린 남궁리
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조용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