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代價)
주변이 어둑해졌다.
그런 늦은 저녁에 악양유가에서 일련의 무리들이 빠져 나왔다. 능려운
때문이다. 그가 당하고 있다는 말을 남궁세가의 여인에게 들었다. 그 소
리를 들은 풍운조는 서둘러 사람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남궁리에게 들었던 장소 근처에 이르러서 풍운조는 능려운을 발견했다.
벽에 몸을 기댄 채로 그는 한 걸음 한 걸음씩 힘겹게 걷고 있었다. 얼굴
은 몰라볼 정도로 망가진 그가 고개를 들었다.
"노야……"
쓰러질 듯이 무너지는 능려운을 풍운조는 급히 부축했다. 어깨로 부축
을 한 채로 풍운조는 능려운의 맥을 집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
데 능려운은 주먹을 꽉 쥔 채로 정신을 잃고 있었다. 손을 풀려고 했지
만 능려운의 꽉 쥐어진 주먹은 풀리지 않았다.
강제로 풀려고 한다면 풀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그 손을 강
제로 핀다고 나아질 것은 없다.
풍운조는 꽉 쥐어진 주먹에서 관심을 때고 능려운의 맥을 집었다. 약간
느리긴 하지만 크게 위독한 상태는 아니다. 다만 부서진 갈비뼈가 문제
다.
잘못해서 폐를 찌르게 된다면 즉사다.
풍운조는 따라온 수하들을 시켜 들것을 만들어 그 위에 능려운을 눕혔
다.
아직 몸 상태를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한 상태다. 풍운조는 의원이 아니
다. 자잘한 상처라면 모를까 이 정도의 중상이라면 함부로 건드릴 수 없
다.
풍운조는 황급히 움직이라고 명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들것 위에 누워
있는 능려운을 바라봤다. 아직까지도 꽉 쥐인 손은 풀릴 생각을 하지 않
았다.
능려운은 악양유가에 도착하자마자 의원이 있는 곳으로 이송됐다.
악양유가에는 몇 명의 의원이 머문다. 개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
는 진자자(振自自)다. 형산에서 작은 의방을 열었던 의원으로 결코 이름
을 날리던 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실력만은 가히 이 근방에서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를 풍운조가 데리고 왔다. 일전부터 아는 사이였던 탓에 진자자는 두
말 없이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지금 그런 그가 능려운을 내려다보고 있
었다.
진자자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능려운의 맥을 집는가 하면 눈동자를
살핀다. 잠시 동안 급하게 움직이던 진자자가 마침내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어떤가?"
"풍형, 걱정 할 필요는 없을 듯 싶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냐?"
"많이 맞기는 했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어. 갈비뼈도 몇 개는
나갔을 줄 알았는데 두 개가 조금 금이 간 정도고. 몸이 선천적으로 좋
아. 아마 몸이 약한 자였다면 당장이라도 죽었을 걸. 그런데……"
진자자는 능려운의 손을 바라봤다. 손을 풀지 않는다. 억지로 피려고도
해봤지만 얼마나 강하게 쥐었는지 펴지지가 않는다.
그때 문을 열고 유설린과 여운휘가 나타났다. 가주를 본 진자자와 풍운
조는 고개를 숙였다. 유설린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능려운을 바라봤다.
훤칠했던 그의 얼굴이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부어 버렸다.
진자자는 걱정스럽게 능려운을 바라보는 가주를 향해 말문을 텄다.
"외상은 좀 있지만 그리 큰 상처는 입지 않았습니다."
잠시 능려운을 바라보던 유설린이 고개를 들어 풍운조를 바라보며 물었
다.
"도대체 무슨 일이죠?"
"밖에 나갔다가 당한 모양이오."
"왜 그렇게 된 건데요?"
"남궁세가의 젊은 남녀를 데리고 악양루를 갔다가 오는 길에 네 명과 싸
웠다고 들었는데 그들에게 당한 모양이오."
유설린의 옆에서 능려운의 모습을 바라보던 여운휘가 손을 뻗었다. 그
는 능려운의 손을 잡아 이리저리 돌리다가 작게 말했다.
"뭔가를 쥐고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손을 풀지 않더군."
여운휘가 몇 개의 혈도를 점하자 능려운의 손가락이 풀렸다. 능려운의
손이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것들이 떨어져 내렸다. 여운휘가 몸을 숙
여 그것들을 집었다.
"그건 이빨이잖아?"
옆에서 바라보던 유설린은 여운휘의 손에 들린 것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
이 말했다. 여운휘의 손에는 네 개의 이빨이 들려 있었다. 여운휘는 손
으로 능려운의 입을 열었다.
'이빨은 멀쩡해. 그렇다면……'
어떻게 된 일인지 상상이 간다. 능려운이 이겼는지, 졌는지는 모르겠
다. 그렇지만 이 이빨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훈련의 강도를 높이려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군."
"뭔가 아는 것 같은데 말 좀 해줘. 이 이빨은 뭐야? 응? 말 좀 해 주
라."
여운휘는 아기처럼 달라붙는 유설린에게서 떨어지면서 이빨을 살폈다.
능려운은 재미있는 짓을 했다. 이 네 개, 분명 능려운과 싸웠던 자들의
이빨일 게다.
'오랜만에 맘에 드는 짓을 했어.'
여운휘는 그 이를 다시 능려운의 손에 올려 주었다. 그리고 자꾸 달라붙
는 유설린을 데리고 거처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여운휘에게 삼일이 찾아왔다.
"부탁 한 것은."
"알아 봤습니다. 쌍도쌍검이라는 자들입니다."
"어디 있지."
"지금 월향루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월향루에 가고 싶지만 유설린이 아직 잠에 빠져 있다.
그녀가 일어난 후에 여운휘는 월향루에 찾아갈 거다.
"또 다른 정보도 있습니다만."
"다른 정보?"
"쌍도쌍검이 비록 유명한 자들은 아니지만 건달들도 아닙니다. 건달이었
다면 능 소협을 이기지도 못했을 겁니다."
"본론이 뭐냐."
여운휘는 이야기를 질질 끄는 것을 싫어한다. 누군가와 오래 대화를 나
누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이다.
"전 쌍도쌍검 정도 되는 자들이 도둑처럼 행동했다는 것에 이상함을 느
꼈습니다. 그리고 그때 악양루에 있던 자들에게 물었죠. 그때 좋은 정보
를 들었습니다. 중간에 소란이 있었다더군요. 쌍도쌍검과 젊은 남자 한
명의. 그 남자가 쌍도쌍검에게 무슨 말을 하고는 돈 같은 것을 던져주
고 올라갔답니다."
여운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삼일의 눈빛을 보니 이미 그 자의
정체에 대해 알고 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처럼 말도 하지 않았을 게
다. 삼일은 완벽한 것을 좋아하는 자다. 자신의 섣부른 추측 따위를 이
런 보고에 끼워 넣을 자가 아니다.
"이걸 받으시지요."
삼일은 옷 속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여운휘가 종이를 펼쳐드니 그 안
에는 한 남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검은 색으로 대충 그린 그림이었
지만 여운휘는 그 얼굴의 주인을 알았다.
"그때 있었던 자들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했죠. 하루밤새에 하느라 상당
히 힘들었습니다."
여운휘는 삼일을 바라봤다. 이러한 그림까지 그리려면 밤을 샜을 거다.
악양루에 있던 사람 중 그림을 그리는 자가 있었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몇 십 가지의 그림들을 대조하면서 이 그림을 완성했을 게다.
"가서 쉬도록 해. 뒷일은 내가 한다."
"눈이 무거워서 혼나는 줄 알았는데 쉬라니 기뻐서 춤이 다 나오려고 합
니다요. 흐흐. 전 그럼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삼일은 문 밖으로 나갔다. 조용히 앉아 그림을 계속 주시하
던 여운휘는 종이를 접어 품안으로 집어넣었다.
'우선은 쌍도쌍검이다. 그리고 넌 그 후다. …… 남궁혁련.'
악양유가의 정보력은 대단하다. 개방이나 하오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적어도 악양 부근의 일은 그 누구보다도 자세히 안다. 그리고 그 정보
는 모두 삼일이 관리한다.
삼일이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유설린이 눈을 떴다.
"졸려……"
일어나자마자 던진 그녀의 말에 여운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잤으면서 뭐가 졸려."
"자도 자도 또 자고 싶은 날이 있잖아. 지금이 그래."
"미안하지만 일어나 줘야겠어. 오늘은 할 일이 있거든. 어제 부탁한 대
답이 왔다."
그 말에 유설린은 부리나케 일어났다. 그녀는 물을 가져오게 시킨 후에
서둘러 씻기 시작했다.
"그래, 누구의 소행이래?"
"쌍도쌍검."
"이름도 모르는 놈들인데 그렇게 강한가? 왜 능 소협이 졌지?"
"일대일이었다면 능려운이 이겼을 거다."
"헤, 그럼 능 소협이 이긴 거야?"
"아니, 상대가 몇이었든 간에 이겼어야 해. 상대가 많아서 졌다는 것은
핑계거리 밖에 안 돼."
죽은 다음에 뭐라고 떠들어 봐라. 그걸 누가 들어 줄 것인가.
여운휘는 유설린이 준비를 마치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 밖으로
나온 유설린을 허리춤에 검을 차면서 여운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쌍도쌍검이 머문다는 월향루."
유설린과 여운휘는 아무런 소란도 일지 않게 악양유가를 나갔다. 월향루
는 악양루의 반대쪽에 위치한 곳이다. 악양루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잠
을 잘 공간이 있고 가격도 싼 편이라 많은 자들이 애용한다.
월향루가 눈에 들어오자 여운휘가 빠르게 걸었다. 그 탓에 옆에 있던 유
설린 또한 여운휘에게 맞추어야 했다.
월향루는 오층으로 된 전각이다. 여운휘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호호, 잘생긴 손님 오셨네."
한 여인이 여운휘에게 팔짱을 끼며 달라붙었다. 몸을 파는 기녀다. 그녀
는 달라붙고 나서야 그 옆에 있는 유설린을 발견했다.
"어머? 혹시……"
유설린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뒤로 밀쳤다. 자신도 모르게 유설린
은 그렇게 행동해 버렸다. 쌔게 민 것이 아니라 떨어지는 것으로 그쳤지
만 유설린은 자기 스스로가 그렇게 행동한 것에 놀라버렸다.
순간적으로 욱 하는 감정이 일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힘을 써 버리
고 말았다.
"젊은 아가씨가 손이 맵네. 그런데 여자도 있으면서 이런 곳엔 왜 온 거
죠?"
"쌍도쌍검, 어디에 있지?"
"쌍도쌍검이요? 그런 사람이 누군 지도 모르는데요."
여운휘가 갑자기 비단 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어디 있지?"
주머니를 열어 본 여인은 놀란 입으로 잠시 여운휘를 바라봤다. 그녀는
쌍도쌍검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주루에 소란이 이는 것을 원
치 않았기에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운휘가 던진 돈은 그
녀로서는 일년을 일해야 벌 돈이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 했지만 곧 입을 열었다.
"오층. 오층 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 방이요. 그곳에서 지금 기녀들과 있
을 거예요."
유설린과 여운휘가 계단 쪽으로 가는 데 뒤에서 그 여인이 외쳤다.
"제 이름은 소향이에요! 잘해 드릴 테니까 언제라도 오세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여운휘는 유설린과 함께 계단으로 올라가
기 시작했다.
꽤나 소란스럽다. 채 점심 시간도 되지 않는데 기녀들과 술을 마시러
온 자들이 허다하다. 여운휘는 주변에 아무런 눈도 주지 않고 오층으로
올라섰다. 그는 서둘러 움직이면서도 뒤에 따라오고 있는 유설린을 살폈
다.
오층은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사 층까지만 해도 노랫소리에
고함소리 등 시끄러웠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방에서 마다
세어 나오는 소리는 격렬했다.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나누는 소리다. 기녀와 손님이 몸을 섞고 있다.
월향루의 오층은 그런 곳이었다.
"귀 막아."
"됐어, 애도 아니고."
여운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이 성큼성큼 오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방 앞에 선 여운휘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후끈한 열기가 밀려 올라왔다. 세 명은 술을 마시고 있고, 나머
지 하나는 여인과 뒹굴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술을 마시던 삼 인이 고
개를 돌렸다. 쌍도쌍검 중 막내인 태태우가 입을 열었다.
"뭐야?"
여전히 여인과 몸을 섞는 용유관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나머지 삼 인
도 우습다는 얼굴로 술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막 술잔은 비운 셋째인 청
삼이 일어났다.
"이 새끼야 뭐냐고 물었잖아."
가까이 다가온 청삼이 여운휘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면서 뒤로
밀었다. 가만히 서서 청삼을 바라보던 여운휘가 말했다.
"쌍도쌍검이냐?"
"뭐 하는 놈인데 우리의 이름을……"
앉아 있던 오문적이 입을 여는 순간 여운휘의 주먹이 청삼의 얼굴을 때
렸다. 오문적의 벌려진 입에서 이빨 몇 개가 비는 것을 보는 순간 주저
없이 주먹을 날린 거다.
"이 새끼가!"
고개가 돌아갔던 청삼이 몸을 돌리면서 발로 여운휘를 걷어찼다. 아니,
차려고 했다.
"어?"
다리가 무엇인가에 막히자 청삼은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청삼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콰당!
뒤로 자빠진 청삼이 일어났다. 입안에서 피가 세어 나오는 것을 보니 상
처를 입은 모양이다. 간신히 일어선 그는 여운휘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앉아 있던 나머지 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냐."
오문적이 물었다. 이 근방에 이런 자가 있다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없
다. 하지만 방금 그 한 수는 결코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 자신의 아우
인 청삼이 발을 뻗는 순간 미리 무릎을 발로 밟고 그대로 턱을 올려 찼
다.
"대가를 받으러 왔다."
"대가를 받으러 왔다고?"
용유관이 바지를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인과 몸을 섞던 와중
에 자신의 아우가 얻어맞자 흥이 깨져버렸다.
"제길, 뭔 대가 이 새끼야. 가뜩이나 이빨이 두 개 나가서 짜증나는 판
에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아! 그때 능 소협이 가져온 게 당신 이빨이군요."
여운휘의 뒤쪽에 있던 유설린이 용유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설린의 말을 듣고서야 오문적은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눈치챘다. 어
제 싸웠던 그 남자다. 얻어맞으면서도 결국은 자신과 용유관의 이빨을
두 개씩 부셔버린 그 자. 그 탓에 어제부터 용유관은 기분이 좋지 않았
다.
용유관은 미남이다. 삼십을 넘어선 나이의 남자지만 겉보기엔 이십대 중
반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그는 유생(儒生) 같이 피부가 하얗
고 입술도 붉다. 그런 그가 이빨이 두 개가 나가 버렸다. 웃음이 일품이
라고 일컬어지던 그가 이제는 웃으면 우습게 변해버렸다.
어제도 그 남자를 죽이려는 것을 간신히 말렸다. 그런데 지금 그와 관련
된 자가 나타나자 용유관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어제 그 놈과 관련 된 놈인가 보군."
용유관은 기습적으로 손을 뻗었다. 여운휘가 피해내자 그 틈을 이용해
품안에서 부채 하나를 꺼냈다. 용유관의 무기는 검이지만 이런 협소한
공간에서 싸울 때는 부채를 이용한다.
"혈살선풍십사선법(血撒扇風十四扇法)!"
용유관의 선법은 십 사초로 이루어 진 무공이다. 사방을 점하여 피할 곳
을 없게 만드는 공격 위주의 무공, 그렇지만 용유관은 채 십 사수를 펼
치지도 못했다.
부채의 틈 사이로 여운휘의 지법이 쏘아진 것이다. 용유관은 부채로 그
지법을 쳐냈다. 비록 공격 위주의 무공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수비를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정확하게 쳐냈는데 부챗살을 찢으며 파고든 지법
이 결국 가슴을 쳤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용유관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서다가 주저앉고
야 말았다. 용유관의 모습을 보고 태태우와 청삼이 움직였다.
검을 든 태태우와 도를 든 청삼이 합공을 가했다. 여운휘는 검을 뽑아
들었다.
태태우의 검이 쏜살같이 움직였다. 미간을 노리는 듯 하더니 어느새 단
전으로 진로를 바꿨다.
여운휘는 움직이지 않고 검을 받아냈다. 이어지는 청삼의 도는 상체를
노렸다.
뻐억!
공중으로 몸을 날리면서 도를 내리치던 청삼의 몸이 팽이처럼 돌았다.
검을 막고 있으면서 들어 올린 여운휘의 발이 정확하게 다리를 찼다. 얼
마나 그 순간이 절묘했는지 공중에 떠 있던 청삼은 그대로 얼굴을 땅에
처박았다.
"혀, 형님!"
다급한 어조로 태태우가 외쳤지만 그 순간 그의 얼굴에도 여운휘의 주먹
이 날아들었다. 뒤로 물러나면서 태태우는 검을 들어올렸다. 검에 주먹
이 닿았다.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안도를 하려는 순간 그는 갑작스럽게
손에 느껴지는 충격 탓에 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 짧은 시간에 여운휘가 검을 휘두른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에 생각도 못한 수법이다. 뒤로 물러서는 시간에 주먹을 회수하면서 검
을 휘두른다는 건 그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놀라는 바람에 다음 행동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다.
'이런!'
뒤늦게 깨달으면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여운휘의 주먹이 코앞에
다다른 후였다. 눈앞이 하얘지면서 태태우는 더 이상 정신을 붙잡고 있
을 수가 없었다.
오문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순식간에 셋이 쓰러졌다. 청삼은 얼굴이 바로 땅으로 떨어지면서 머리
가 터진 모양이다. 죽지는 않겠지만 최소 두어 달은 제대로 운신도 못
할 게다. 간단히 손을 섞은 것 같은데 결과는 참혹하다. 만약 이 자가
죽이려 했다면…… 모두 죽었다.
어제 상대한 자도 예상외로 만만치 않은 자였다. 자신과 용유관의 이빨
이 몇 개 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이겼다.
어제 그 자와는 다르다. 힘들어도 이길 수는 있었지만 지금 이 앞에 있
는 남자는 그렇지 않다. 설령 넷이 협공을 했다 해도 이길 수 없다. 심
지어 손끝하나 대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한 남자의 주먹질 몇 번과 발길질 몇 번에 모든 게 끝났다. 자신을 제하
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방금 까지 용유관과 정사를 나누던 여인만이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며 눈
치를 볼뿐이었다.
여운휘가 종이를 꺼내서 오문적에게 던졌다. 다음은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로서는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건 뭐지?"
"펴봐."
여운휘를 잠시 바라보던 오문적은 종이를 줍더니 그것을 펼쳤다. 안에
는 한 남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
오문적은 말이 없다. 분명 종이에 그려진 자가 어제 자신들에게 한 남자
를 손 좀 봐주라고 했던 그자가 맞다. 그렇지만 선뜻 대답하기가 뭐하
다. 알지만 말하기가 두렵다.
"이미 다 알아본 후다. 마지막 절차 같이 물어보는 거지. 그 자가 맞
나?"
"…… 맞다."
여운휘가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꼽으며 말했다.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제안?"
"난 너희들 모두를 죽일 수 있다."
대답은 안 했지만 오문적은 인정하고 있었다. 이 남자라면 능히 그러고
도 남는다. 넷이 합공을 해도 상대도 안 될 처지이거늘, 자신 혼자서는
결코 감당할 상대가 아니다.
"살려주마. 단, 한가지씩 내놔야 할 게 있다."
오문적은 살려준다는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