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이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이겼다, 이제 이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검에 느낌은 있는데 무엇인가에 막
힌 기분이다. 검이 무엇인가에 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좌청의 아랫배
를 검이 관통했다.
'이건……'
사람을 많이 죽여 본 좌청이기에 자신의 검을 막은 것이 무엇인지 직감
했다. 뼈다, 인간의 뼈. 좌청의 눈이 자신의 검 끝으로 갔다. 심장을 관
통했어야 한다. 그런데 왜……
좌청의 검은 심장 쪽에 박혀 있지 않았다. 어처구니없게도 그의 검은 능
려운의 어깨에 박혀 있었다.
좌청의 마음을 알았던 탓에 능려운은 어깨에서 검을 뽑아내며 말했다.
"당신이 본 빈틈은 내가 일부로 만든 거요."
좌청은 능려운의 말을 채듣기도 전에 고개를 숙였다. 능려운은 검을 뽑
아낸 곳에서 흐르는 피를 막기 위해 상의를 벗기 시작했다.
"크윽!"
어깨 부분이 옷과 닿는 순간 능려운이 약하게 신음을 토했다. 능려운은
입술을 깨물고 상의를 완전히 벗었다. 검이 침입했던 자리에서 피가 멈
추지 않을 것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능려운은 옷을 찢어 어깨에 동여맸다.
큰 상처가 났다. 그 상처는 무척이나 쑤셨다. 그런데 능려운은 웃었다.
"그 남자…… 정말 괴물이야."
삼일과 이곳으로 떠나기 전에 능려운은 여운휘를 만난 적 있다. 훈련을
마친 후 여운휘가 능려운에게 이야기 한 것이 있다.
"네가 상대하기 힘든 고수가 나타나면 어쩔 거냐."
"나보다 강하다면 내가 죽겠지. 나보다 약하면 내가 죽이고."
"아니, 그러면 안 돼. 상대는 반드시 죽여.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상대만 죽였다면 그건 패한 게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오?"
"빈틈을 보여. 그럼 상대는 달려들게 될 거야 그때……"
그 남자는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던 걸까? 아니면 단순한 우
연일까. 어찌 되었든 능려운은 자신의 실력으로서는 이기기 힘든 상대
를 이겼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자신 보다 혈산랑 좌청은 한 수 위였다.
들었던 대로 빈틈을 보이는 척 해서 유인하고 어깨를 줬다. 대신 목숨
을 취했으니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운문세가와 악양유가가 부닥치게 될 거라는 것은 능려운도 알고 있다.
운문세가에서는 그들이 아는 무림의 고수들을 불러들일 게 분명하다. 능
려운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악양유가가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번 싸움은 이길 수밖에 없어.'
그 남자가 죽기 전까지 악양유가는 무너지지 않을 거다. 단 한 사람 탓
에 이런 생각까지 한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안다면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
만 그 남자를 알게 된 후에도 웃음이 나올 수 있을까?
'설마 그 남자 강호십일객 중 하나는 아니겠지? 아니, 이 정도로 대단
한 남자라면……'
능려운은 혹시나 하는 착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