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137)

능려운은 뒤에 여운휘와 유설린이 따라 붙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섭 

섭하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나았다. 꼴사납게 지는 모습을 가주 

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네 동료들은 겁이 나서 꼬리를 감춘 모양이구나. 그 계집, 얼굴 한 번 

반반했는데 말이야." 

"닥쳐라!" 

능려운은 가주에 대한 모독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러한 그의 반응을 보며 염포는 미소를 흘렸다. 

"네가 그럴 말 할 처지는 아닐 텐데? 너 같은 낭인 따위가 내 손가락을 

자른 사실이 실력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나?" 

능려운도 안다. 본 실력으로 싸웠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다대다의 

싸움이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혼전 속에서 날린 일격이 운 좋게 염포의 

손가락을 잘랐다. 만약 일대일이었다면 잘리는 것은 염포의 손가락이 아 

니라 자신의 머리였을 것이다. 

"다행히 왼손이라서 망정이지, 오른손이었으면 검도 제대로 들지 못할 

뻔했다고!" 

외침과 동시에 염포의 몸이 능려운에게 바짝 다가왔다. 능려운은 움찔해 

서 뒤로 두 걸음 움직였다. 자신도 모르게 한 판단 탓에 능려운은 목숨 

은 건졌다. 

"엇?" 

염포 또한 놀란 표정이다. 제대로 무공을 배운 적도 없는 낭인이 자신 

의 검을 피했다. 그것도 기습적인 일격이었기에 그 놀람은 더했다. 

"낭인이라고 얕봤는데 이름 값은 하는 구나! 감히 나의 일검을 피해내다 

니!" 

기습적인 일격을 피해낸 사실에 마음이 들떴던 능려운은 염포의 말에 차 

갑게 가라앉았다. 그랬다, 이게 차이다. 고작 일검을 피해낸 것으로 놀 

란 거다. 그게 바로 낭인과 무인의 차이다. 그리고 그 정도로 자신은 얕 

보인 것이고. 

능려운은 화도 나면서도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항상 그래왔으니 

까. 자신 또한 대단치는 않지만 무공을 익힌 탓에 낭인 중에서 강자의 

위치에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은 별 볼일 없는 낭인에 불과했을 것 

이다. 

"멍청하게 뭐 하는 거냐." 

여운휘의 목소리가 들리자 능려운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따라 나오지 

않은 줄 알았는데 멀리 나마에서 따라온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구석진 곳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바로 찾지는 못했을 거다. 그의 옆에 

는 가주도 있었다. 

"능려운, 가슴을 펴라. 저 놈은 네 상대가 못된다." 

"하지만 저 자는 제대로 된 무공을……" 

능려운은 말을 하다가 '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자신이 여운휘에게 

서 받은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 

에 있는 염포는 항상 비무를 하는 여운휘에 비해 아래여도 한참은 아래 

라는 사실도. 

"넌 내가 가리켰다." 

여운휘가 한 말의 의미를 능려운은 알아차렸다. 지지 않는 남자가 가르 

쳤으니 너도 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능려운은 그제야 긴장이 가시는 

듯 했다. 

"내가 이 놈 상대가 안 된다고? 고작 낭인의?" 

염포는 반면 어처구니없게 말하고 있었다. 아까 능려운과 같이 앉아 있 

던 한 쌍의 남녀다. 본 적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 

다. 

"이 개 잡종 같은 놈들이 날 우롱해?"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염포는 부르르 떨었다. 그의 손이 앞에 있는 능 

려운에게 출수했다. 

'우선 이 놈을 손 봐 주고 그 후에 저……' 

공격에 모든 것을 쏟지 않았다. 그 후를 생각한 것뿐만 아니라 앞에 있 

는 상대를 너무 얕봤다. 

능려운은 너무도 쉽게 피했다. 염포의 손을 피하면서 능려운은 알았다. 

아까 첫 일격을 피한 것은 단순한 운이 아니었음을. 자신도 모르게 몸 

이 반응한 것이다. 

'이길 수 있다!' 

예전까지만 해도 자신 보다 훨씬 위의 고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 

다. 

뒤로 물러선 능려운은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며 팔꿈치로 염포의 명치를 

쳤다. 

"켁!" 

능려운의 발이 명치를 맞은 탓에 괴로워하는 염포를 향해 소나기처럼 쏟 

아졌다. 간단한 보법을 응용한 것뿐인데 염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염포가 쓰러지자 능려운의 심장을 빠르게 뛰었다. 상대할 수 없던 강자 

였는데 너무나 쉽게 이겨버렸다. 마치 애와 어른의 싸움이라고 치부 될 

정도로 말이다. 

"좋아하긴 아직 이르다. 낭인." 

염포와 함께 동행하고 있던 다섯 명의 남자들이 나섰다. 능려운은 그래 

도 자신이 있었다. 방금 전의 움직임이라면 세상에 상대 못할 자가 없 

을 듯 했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인 이상 원한은 갚아줘야겠다." 

다섯 명은 모두 무인이다. 검을 잡는 기수식만 봐도 알 수 있다. 능려운 

은 천천히 숨을 몰아쉬면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섯 명 중 가장 키가 커다란 자가 검을 휘둘렀다. 능려운은 서둘러 검 

을 빼내 그것을 막아냈다. 막아내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검이 쏟아져 내 

렸다.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자신 있어 했던 능려운의 표정이 순간 

적으로 하얗게 변했다. 능려운은 앞에 검을 맞대고 있는 자를 밀치면서 

옆으로 움직였다. 

검은 눈이 없다. 허나,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에 따라 검의 위력은 변하 

게 된다. 능려운은 지금 그 말을 실감하고 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 

처럼 검이 꿈틀거리며 방향을 바꿨다. 

'이런!'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능려운은 뒤로 물러나려 했다. 

"좌삼보(左三步)!" 

여운휘의 목소리다. 능려운은 자신도 모르게 왼쪽으로 세 걸음 움직였 

다. 

'이, 이럴 수가……'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다섯 명의 무인의 등이 모두 보인다. 지금이라면 

한 명쯤은 죽일 수 있다. 능려운은 놀라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 

다. 기회를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능려운은 그것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그는 여운휘에 대해 한층 더 놀랐다. 

그의 말대로 왼쪽으로 세 걸음 옮겼다. 공격을 피해낸 게 다가 아니다. 

무인들의 뒤까지 잡았다. 

능려운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위험에 빠졌던 

그 다섯이 재차 검을 휘두른 것이다. 다시 능려운은 기회를 잡지 못하 

고 이리저리 밀려다니고 있었다. 

'벽에 밀렸다!' 

한 명이 검을 쳐내자 몸으로 들이박았다. 뒤로 밀린 탓에 능려운은 구석 

에 몰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떨어지는 검을 막기 위해 능 

려운도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구석에 밀린 데다가 검까지 봉쇄 당했 

다. 뭔가가 올 거라는 것은 당연한 판단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나머지 넷이 빈 공간을 통해 능려운에게 검을 날렸다.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도 하기 전에 능려운의 앞에 검은 색 물체가 

아른거렸다. 

펑! 

그리고 그 물체가 나타나는 순간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다섯 명의 무인 

이 나가떨어졌다. 

"몇 번이냐." 

여운휘의 뜬금 없는 말에 능려운은 답했다. 

"일곱, 아니 여덟 번." 

"틀렸다. 총 열 네 번이다." 

그건 여운휘가 내지른 장력의 횟수다. 소리는 분명 하나였다. 아니, 하 

나로 들렸다. 그렇지만 그걸 잘 들었다면 그 소리가 조금씩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능려운이 들은 건 여덟 개였다. 그렇지만 여운휘가 내지른 

것은 열 네 번이었다. 

반 정도는 알아차렸다. 

"많이 늘었군." 

그건 능려운 스스로도 인정한다. 예전엔 자신이 상대도 못할 고수를 너 

무나 손쉽게 이겼다. 분명 자신은 예전보다 강해졌다. 그것도 아주 많 

이. 

'난 강해졌다. 그렇지만……"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능려운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앞에 있는 

저 여운휘라는 존재의 능력을. 

                         기습(奇襲) 

"아이쿠!" 

거의 팔십에 접어들었음직한 노인이 세가로 돌아가던 삼 인의 앞에서 쓰 

러졌다. 노인은 무거운 짐을 들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괘, 괜찮네. 끄응……" 

노인은 무척이나 힘겹게 일어났다. 일어나기가 무섭게 노인의 몸이 다 

시 한 번 무너졌다. 

"이런!" 

능려운이 재빨리 노인의 팔을 잡으며 어깨로 부축했다. 몸도 바짝 마르 

고 눈에 생기도 없는 것이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이런 유 

약해 보이는 노인이 들 정도로 짐은 가볍지 않았다. 

"몸이 좋지 않으신 것 같은데……" 

"그, 그래도 난 지금 가야 하네. 몸이 안 좋은 아내가 집에서 내가 오기 

를 기다리고…… 쿨럭!" 

기침 속에 피가 섞여서 터져 나온다. 능려운은 급히 노인의 손목을 잡 

아 보았다. 맥은 뛰는 데 그것이 너무나 미약하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금방 죽고 말거라 생각한 능려운은 유설린과 여운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데려다 드리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그렇게 하죠. 몸도 좋지 않으신 것 같은데." 

유설린의 허락이 떨어지자 능려운은 한 손으로 짐을 들고 다른 한 손으 

로 노인의 몸을 부축했다. 

"고마우이. 내 몸이 성치 않아 괜히 자네에게 피해를…… 쿨럭, 쿨럭!" 

"어르신, 괜찮습니다. 괜히 그런 말 마시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말 

씀 좀 해 주십시오." 

노인은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훔쳐냈다. 그리고는 한 방향을 향해 손 

가락을 내밀었다. 

"저쪽으로 가면 되네." 

노인이 가리킨 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외곽을 넘어서 악양을 벗어날 

정도로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아무 말도 없었다. 

"아직도 입니까?" 

"몸이 안 좋아서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 

네." 

"아, 그렇군요. 마을에 한 번 오가는 것이 상당히 힘드시겠습니다." 

"그 탓에 거의 나오지 않았지. 그렇지만 이번엔 약재와 몇 가지 물품이 

꼭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나온 거라네." 

말을 마친 노인은 바로 기침을 해댔다. 

"노인장." 

여운휘가 처음으로 노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기침을 해대던 노인은 고 

개를 돌려 여운휘를 바라봤다. 

"몸을 보아하니 오랫동안 일도 못한 것 같은데 먹고살기는 힘들지 않 

소?" 

"예전에 번 돈이 있어 그리 어렵지는 않게 살아가네." 

"그런가?" 

능려운은 여운휘가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한 것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그냥 넘길 수 있다. 그렇지만 저 남자는 

무척이나 말수가 적다. 여운휘가 쓸데없는 말을 한 것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여운휘는 그 후로 입을 닫았지만 능려운은 왠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뭔가가 꺼림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쿨럭, 쿨럭. 저기가 내 집이네." 

사방이 나무가 뒤덮여 있어 잘 보이지도 않은 위치에 작지만 초라해 보 

이지 않는 한 채의 집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악양에서 빠져 나 

온 지 벌써 두 시진이 지났다. 악양루에서 나온 것이 저녁 무렵이었는 

데 이제는 완연한 새벽이다. 

'뭔가…… 이상해.' 

여운휘가 말을 걸었을 때부터 무엇인가 이상하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 

겠지만 분명 무엇인가가 있다. 

능려운은 주변을 살피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문 앞에 이르자 노 

인이 입을 열었다. 

"나왔소." 

안에서는 대답이 아닌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들렸다. 능려운이 문을 

열자 안 쪽에선 이불을 뒤집어 쓴 한 늙은 여자가 기침을 내뱉고 있었 

다.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러네. 잠시들 안에 들 들게." 

노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온 능려운은 주변을 둘러봤다. 단출하면서도 손 

때가 탄 것들이 꽤나 오래 쓴 모양이다. 

"이곳에서 오래 사셨습니까?" 

"한 이십 년 되었지. 그때는 우리 둘 모두 건강했는데 말이야." 

노인은 회상이라도 하는 듯이 문을 열고 숲 한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노인의 눈에선 과거가 스쳐 지나가는 듯 했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던 

노인이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노인장에게 물을게 있군." 

"음? 뭔가?" 

"들어올 때 봤는데, 쓰지 않는다 했던 농기구가 잘 손질되어 있더군." 

"허허, 아무리 일을 안 한다 해도 평생 밥을 먹여 살게 해 준 것이니 손 

질은 가끔 하는 편이네. 왜 그런가?" 

"밥을 먹여 살려서라…… 이보시오, 노인장. 노인장을 먹여 살린 건 저 

농기구가 아니지 않소." 

"그, 그게 무슨……" 

여운휘가 움찔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노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움 

직이지 말라는 신호다. 

"살수가 농기구로 먹고살았다고 하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아. 알겠나?" 

"…… 어떻게 안 거냐." 

목소리가 변했다. 능려운은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능려운은 자리에 앉 

아 있던 상태였다. 그 상태로 노인에게 공격을 당했다면 그는 피할 수 

없었을 거다. 

목숨을 건졌다. 

"피 냄새가 나더군." 

거짓말이다. 피 냄새를 맡은 게 아니다. 

"지금 이 근처에 숨어 있는 놈들의 기척도 지금 막 알았다. 너희들은 완 

벽했어. 하지만 넌 완벽하지 않았어." 

"내가 말인가?" 

"굳은 살. 농기구를 놓은 지 오래 됐다고 하지만 않았다면 지금처럼 빨 

리 알아채지는 못했을 거다. 물론 늦더라도 알아는 차렸겠지만." 

여운휘는 노인이 악양의 밖으로 나가 외곽으로 갈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 

각했다. 그리고 넌지시 말을 건넸고, 노인은 쉽게 넘어왔다. 나머지는 

완벽했다. 시간까지도 정확하게 맞춘 것 같다. 

살수들에게 몸을 숨기게 해 주는 것은 여러 가지다. 지형(地形)도 큰 도 

움이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둠이다. 이들은 어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상태다. 

더군다나 사방이 나무로 가득하니 지형마저도 이들의 편이다.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모습이 태연한 건 그 때문이다. 어둠과 지 

형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었다. 더군다나 숫자도 이들에 비해 월등하 

다. 

'필승(必勝)이다!' 

이길 수밖에 없다. 이건 완전히 먹으라고 차려진 밥상이다. 실패 할 리 

가 없다. 노인은 허리를 폈다. 여태까지 꾸부렁하게 굽힌 상태로 걸었 

다. 그렇지만 이제 숨길 이유가 없어진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대단한 놈이군." 

"우릴 속이다니……" 

"당한 놈이 바보지." 

능려운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 노인의 말 대로였다. 죽은 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으흠, 모두 죽일 거야?" 

"아마도." 

이를 갈던 능려운은 유설린의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운휘의 답변에 놀라고 말았다. 그건 능려운의 앞에 있던 노인이 더했 

다. 

'질 거라는 생각을 안하고 있어.' 

노인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자는 위험한 자라고. 

그제야 노인은 이 젊은 남자가 알면서도 따라왔다는 것을 알았다. 몰랐 

다면 이곳까지 따라온 게 말이 된다. 하지만 남자는 악양을 막 벗어났 

을 때부터 자신의 정체를 알았다. 돌아가려 했다면 충분히 자신을 죽이 

고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가지 않은 것과 못한 것은 다르다. 오랜 시간 동안 갈고 닦아진 살 

수의 감각이 위험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애써 그 감정을 

무시했다. 

앞에 있는 상대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모두를 이길 수는 없다. 

'괜찮아, 이길 수 있어.' 

문을 연 것은 신호였다. 문이 열리며 잠시 세어 나온 빛은 근처에 숨어 

있던 모두의 눈에 들어갔다. 살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계 

획된 일이다. 

누군가에게 청부를 받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일은 하지 않을 수도 없 

는 일이었다. 그들은 전에 죽은 자를 위해 복수를 하러 온 것이다. 살수 

가 죽는 건 당연한 거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 게 살수다. 그런 것을 가 

지고 일일이 복수를 하는 게 더 우스운 행동이다. 

원래 같았다면 그냥 끝났을 일이다. 하지만 단비쌍조(短飛雙 ) 여험이 

죽었다. 그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살령대 안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 

는 고수라는 것을 제하고, 그는 중요한 자였다. 

여험은 살령대 대주의 양아들이었다. 

'재수가 없던 거다.' 

그때 여험이 아닌 다른 자가 나갔다가 죽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겠지만 

그가 죽은 이상 이야기를 달라진다. 부대주 냉추는 손을 들어 올렸다. 

멀리 있는 자들은 이것을 보지 못하겠지만 바로 뒤에 붙어 있는 수하들 

에겐 보일 것이다. 

이미 사방으로 접근하는 살령대는 다섯 부대로 나뉘어 각 부대를 한 명 

씩이 지위하고 있었다. 이 일에 지원된 살수의 수는 무려 오십이다. 살 

령대의 반 이상의 힘이다. 

'단 한 명도 살지 못한다.' 

냉추는 자신했다. 

문 가까이로 다가간 냉추는 손을 들어 올렸다. 안에 있는 자들이 살령대 

의 이 많은 인물이 다가온 것을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막 손을 내 

리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 안에서 젊은 남자 둘과 한 여인 

이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냉추는 놀라고 말았다. 문을 열고 나온 남자 중 하나 

가 입을 열었다. 

"많이도 모였군." 

남자의 표정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는다. 

'이 놈은…… 위험하다.' 

이들을 방까지 유인한 노인인 진고산과 마찬가지로 여운휘를 보는 순간 

냉추는 위험을 깨달았다. 

"진고산은?" 

"죽었어." 

냉추는 피비린내를 맡았다. 거짓말이 아니다. 진고산은 문을 열며 신호 

를 보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신호를 보고 다가온 것이다. 그 사이에 

죽었다. 진고산이 그 사이에 정체를 말해줬을 리가 없다. 그건 곧 이 자 

들이 자신들이 살수라는 것을 알아차렸었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따라왔다. 무턱대고 공격하면…… 죽는다. 

"어떻게 안 거지?" 

"그 놈이 실수를 했더군." 

진고산은 뛰어난 살수다. 살수로 산지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았 

다. 약했다면 그러지 못했으리라.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저 중에 눈썰 

미가 대단한 자가 있다는 것. 

냉추는 앞에 있는 남자를 점찍었다. 저자일 거다. 저자가 분명하다. 

오십 명이다. 무려 오십 명.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운휘는 한치의 망설임 

이 없다. 

이미 대다수의 살수들이 뒤로 물러난 상태다. 나무에 몸을 감춘 것이 

다. 살령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살수들의 단체가 아니다. 그들은 살 

수에게 중요한 것이 뭔지 아는 자들이다. 그들은 초목을 이용해 몸을 감 

췄다. 

"모두 나와. 이미 걸렸어." 

살수는 숨어서 싸운다. 하지만 냉추는 오히려 지금은 나와야 할 때라 생 

각했다. 분명 숨어서 싸운다면 피해를 줄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만 안전 

한 것이 아니다. 발각되지 않았다면 모를까, 발각 된 지금에 숨어서만 

싸운다는 건 상대방에게도 숨통을 트여 준 것이다. 

먼 거리에서 던지는 암기를 피해 숲 속으로 사라진다면 찾기 힘들다. 그 

럴 바엔 다소 위험 부담이 늘더라도 확실한 포위망을 형성하는 게 낫 

다. 

"포위해. 개미 새끼 하나도 빠져나갈 틈이 없을 정도로." 

말은 수하들에게 하면서 눈은 여운휘를 쫓았다. 

여운휘가 검을 빼들었다. 

검을 빼어 드는 게 신호인 듯 양 살수들이 움직였다. 살수들의 움직임 

은 은밀하고 빨랐다. 순식간에 몇 명이 여운휘에게 달라붙으며 검을 휘 

둘렀다. 여운휘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향하며 검들을 쳐냈다. 

그때를 맞추어 사방에서 비수를 비롯한 각종 암기들이 쏟아졌다. 뒤에 

서 보고 있던 자들이 손을 쓴 것이다.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듯 셀 수도 

없을 정도의 비수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여운휘는 뒤로 물러나며 

유설린의 곁에 붙었다. 

여운휘가 검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떨어져 내리던 암기들이……' 

무엇에 막히기라도 한 듯이 떨어져 내리던 비수가 옆쪽으로 튕겼다. 여 

운휘가 소매를 펄럭였다. 그 순간 양쪽에 있던 살수들이 쓰러졌다. 

'비, 비수!' 

날이 무척이나 얇은 것이 손수 제작한 게 분명하다. 그리고 비수의 모습 

을 떠나 그 사용 방법이 대단했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그 

건 곧 암기를 출수 했다는 것을 상대방이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십 여 명 정도가 던진 비수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그런데 한 남자 

가 던진 비수에 여섯 명이 쓰러졌다. 그것도 정확하게 사혈에 맞췄다. 

여섯 모두 보나마나 즉사다. 

사령단 내에서 비수 던지기라면 으뜸이라고 꼽히는 냉추 자신조차도 낼 

수 없는 속도다. 

여운휘가 다시 움직였다. 검이 요동치며 앞쪽을 향해 뻗어 나왔다. 방 

금 전의 모습에 놀라 있던 살수들이 급히 움직였다. 태산이라도 무너트 

릴 것 같은 압력이 여운휘의 검에서 쏟아져 나왔다. 

피하긴 했지만 그 위력이 상당했다. 채 피하지 못한 살수들이 튕겨 나가 

며 나무에 처박혔다. 저 중에서 몇 명은 목이 꺾여 죽었을 것이다. 냉추 

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죽는다. 겨우 몇 번 움직였을 뿐인데 열 명에 달 

하는 인원이 죽었다. 사기도 문제다. 살수들이 겁에 질렸다. 다른 사람 

이 아닌 살수가 겁을 집어먹었다는 건 드문 일이다. 압도적인 차이를 보 

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그런 모습을 지금 이 앞에 있는 남자가 보이고 있다. 

'안 돼, 이렇게 되어선 안 돼.' 

사기가 떨어져서는 안 된다. 냉추가 움직였다. 

파팡! 

칼을 쳐내는 순간 비수가 날았다. 여운휘는 옆쪽으로 반걸음쯤 몸을 틀 

었다. 암기까지 피해낸 여운휘가 자신에게 비수를 날린 상대를 바라봤 

다.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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