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137)

여운휘의 실력을 아는 탓인지 능려운은 살수를 펼쳤다. 살수를 펼친다 

하여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 그랬기에 더 분 

했다. 

거의 닿을 뻔했는데 여운휘의 상체가 급격히 뒤로 굽혀지며 검을 피해냈 

다. 상체는 위치가 바뀌었지만 하체는 그대로다. 능려운은 생각할 겨를 

도 없이 여운휘의 다리를 향해 발을 뻗었다. 균형을 무너트리기만 한다 

면 좋은 일격이 나옴직도 하다. 

그런데 여운휘의 몸이 동그랗게 말렸다. 뒤로 젖혔던 상체의 손이 땅을 

짚고 다리는 공중으로 떴다. 물구나무를 선 그 모습으로 여운휘는 발을 

휘둘렀다. 

마침 검을 밀어 넣던 능려운은 급히 검을 뒤로 뺐다. 

재빠르게 댓 걸음 뒤로 물러난 능려운은 숨을 몰아쉬었다. 땀이 흥건하 

게 나고 있다. 분명 오랫동안 검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위험 

했던 것도 아니다. 

'짜릿하군.' 

온 몸의 털이 곤두선다. 역시 이 자는 대단한 자다. 인정하기 싫다고 해 

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능려운은 살아 생전 이 같은 남자를 본 적이 없 

다. 

능려운은 손에 벤 땀을 옷에 쓱쓱 문질렀다. 단순히 앞에 있는 것만으로 

도 위압감을 주는 자다. 

"이게 단가." 

"그럴 리가!" 

아직 반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길 수는 없지만, 보여주리라. 얼마나 강 

해졌는지를! 

"낙뢰파암(落雷破巖)!" 

여운휘는 이 초식이 뭔지 안다. 번개같은 내려치기다. 문제는 그것뿐만 

이 아니라 바위도 박살 낼 정도로 힘이 실려 있다. 어설프게 받았다가 

는 검과 함께 이등분되기 십상이다. 

능려운은 여운휘가 어떻게 이 초식을 받아낼지 예전부터 상상해 왔다. 

피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가장 안전한 수법이니까. 

그런데 여운휘가 그 공격을 막아낸 수법은 그게 아니었다. 

챙! 

여운휘의 손바닥이 검 옆면을 후려쳤다. 

검은 옆으로 튕겨 나갔고, 능려운은 잠시 넋을 잃고야 말았다. 이런 방 

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엄청난 속도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어야만 가능한 수법이다. 

"넋을 잃고 있으면 죽는다." 

여운휘의 몸이 어느새 능려운의 바로 앞까지 파고들었다. 

'아차!' 

재빠르게 검을 앞가슴 쪽으로 치켜올리며 공격을 막았지만 능려운은 공 

중으로 뜬 채 뒤로 몇 발자국 날아가고 말았다. 검을 쥐고 있던 손이 얼 

얼하다. 

"지금 머리를 당했다면 죽었다." 

"……" 

능려운은 여운휘가 일부로 검이 있는 부분을 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운휘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이 검을 치켜들기 전에 가슴을 쳤으리라. 

어느 정도 차이가 줄었을 거라고 생각했거늘, 착각이었다. 오히려 예전 

보다 실력이 더 벌어진 기분이다. 물론 그럴 리는 없다. 분명 자신의 실 

력은 늘었다. 그 말은 곧 예전에 여운휘는 본 실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리고 지금도 본 실력을 다했다는 보장이 없다. 

'괴물이다……' 

예전에 자신의 사부가 온다 해도 이 자에겐 오 초를 버티지 못할 것이 

다. 

"쉬는 것을 보니 그만할 생각인가 보군." 

"아니! 아직이오!" 

"진짜 싸움에서는 이토록 쉴 수 없다. 명심해라." 

이번엔 여운휘가 먼저 다가왔다. 여태까지 공격이 들어오면 넘기다가 약 

하게 반격을 하던 터라 방심하고 있었다. 

여운휘의 왼손이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성급히 왼쪽으로 몸을 숙였다. 그 

런데 고개를 숙인 능려운의 눈에 여운휘의 주먹이 들어왔다. 능려운은 

피하기 위해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여운휘의 왼손이었다. 

'체엣!' 

여운휘는 이번에도 봐주었다. 능려운은 뒤로 다시 한 번 물러섰다. 

"여태까지 네가 몇 번 죽었다고 생각하나." 

"두 번이오." 

"아니, 네 번이다." 

자신이 공격당한 횟수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여태까지 한 공 

격이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을 죽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코웃음을 쳤을 거다. 그렇지만 이 남자가 했으니 그건 거짓이 

아닐 것이다. 

"넌 지금 쓸데없이 몸이 굳어 있다." 

움찔. 

여운휘가 말하지 않아도 능려운은 알고 있었다. 여운휘의 앞에 서니 몸 

이 위축(萎縮)된다. 평소보다 더 나은 실력을 보여야 하는 지금에 오히 

려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운휘가 검을 꺼냈다. 검을 꺼내드니 중압감은 더해졌다. 

"근육을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팔 하나 날아갈지도 몰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운휘의 검이 앞으로 움직였다. 서둘러 피했지 

만 피가 솟구쳐 올랐다. 어깨가 베였다. 

"말했을 텐데. 제대로 못 움직이면 다칠 거야." 

어깨를 부여잡고 능려운은 여운휘를 올려다봤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여운휘는 마치 산(山)과 같았다. 

능려운은 문득 여운휘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람인 지 궁금증이 치밀었 

다. 어떻게 같은 인간이 이리도 다를 수 있을까. 

두려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운중행은 여운휘가 검을 다시 들어 올리 

자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맞추어 여운휘의 검이 미간을 향해 날 

아들었다. 

미간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보는 순간 운중행의 머리에 스치듯 한 가지 

초식이 지나갔다. 미간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살짝 친 운중행은 다시 몸 

을 굽히며 뒤로 돌았다. 그리고 허리 쪽을 향해 강하게 자신의 검을 휘 

둘렀다. 

번룡유미(藩龍有尾)! 

여운휘가 주었던 책에서 나오던 초식의 하나다. 회전력까지 가미(加味) 

해 그 빠르기란 일반적인 베기보다 높다. 

성공할 거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랬다. 자신의 검은 여운휘 

의 옆구리에서 막혔다. 

"너무 빨랐다. 그 상태였다면 검의 방향이 바뀌어 네 머리통을 부숴 버 

리고도 남았을 거다." 

검을 옆으로 밀어낸다 하여도 앉고 나서 돌려 베기인데 당연하다. 이건 

기회를 잘못 잡는다면 오히려 죽으려고 펼치는 초식과 다름없다. 

여운휘의 성격상 이렇게 일일이 말을 해 준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 

다. 그렇지만 그는 능려운에게 자신이 느낀 점을 그대로 말했다. 여운휘 

는 능려운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풍운조와 자신이 있다고는 하 

나, 수하들을 가르칠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그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그 사람으로 능려운을 점지했다. 

능려운이 강해진다는 것은 곧, 그가 가르치는 수하들이 강해진다는 거 

다. 그리고 곧 그것은 악양유가가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회라고 생각하고 펼친 초식이었거늘 역시 실수를 한 모양이다. 능려운 

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도 여태 까지 중에선 가장 괜찮은 공격이었다." 

"진심이오?" 

여운휘는 말 없이 뒤로 물러나더니 다시 검을 들었다. 

능려운은 다시 일어났다. 지금은 기회다. 아마 이런 기회는 결코 흔치 

않을 거다. 이렇게 강한 자와 싸운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것 

을 배우게 해 준다. 이번을 놓친다면 두고두고 후회하리라. 

"가겠소." 

능려운의 검이 휘어지며 여운휘에게 날아들었다. 

유설린은 깊은 잠에 빠졌다. 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여운휘는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밤이 길어졌다. 약간 열어둔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온 

다. 겨울이 다가왔다. 

'슬슬 때가 되었군……' 

풍운조로부터 소금을 사들였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곳까지 오려면 

약 열흘 정도 걸리기야 하겠지만 급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일을 벌 

이기엔 조금 이르다. 여운휘가 판단하기에 이제 곧 운문세가에서 연락 

이 올 때가 되었다. 

그것이 평화로운 모습일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일지는 몰라도 여운휘는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이 덜커덩거린다. 왠지 모르게 스산한 밤이다.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앉아 있던 여운휘의 눈이 갑자기 뜨였다. 

'아무래도 좋은 쪽은 아닌 것 같군.' 

이런 늦은 밤 아무런 말도 없이 찾아 든 손님들, 결코 좋은 목적을 지니 

지는 않았을 거다. 꽤나 훈련 된 듯 하다.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약간씩 지면과 스치는 소리가 전부다. 만약 창문을 열어 놓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은밀한 움직임이다. 

아직 건물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근방에 있다. 이 정도라면 마음만 먹 

는다면 당장이라도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전문적인 움직임이다. 어둠에 동화되어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여운휘 

는 이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 정도의 움직임이라면 뻔하다. 

'살수로군.' 

어디서 보냈는지는 뻔하다. 운문세가 쪽에서 손을 쓴 것일 게다. 가주 

가 죽는다면 아직 제 틀도 잡지 않은 악양유가는 무너질 것이다. 그렇 

게 된다면 그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운중행을 꺼내갈 수 있을 테 

고. 

정면으로는 다가 올 수 없으니 살수를 쓴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이렇 

게 된다면 뒤탈이 없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뒤에서 수근덕 거릴 거다. 

하지만 증거를 남길 정도로 운문세가는 어수룩하지 않다. 뒷소리는 조 

금 듣겠지만 완벽하게 이 일은 끝날 테니 그들에게도 남는 장사가 될 거 

다. 

성공만 한다면 완벽한 작전이다. 성공만 한다면…… 

여운휘는 검을 빼들고 유설린이 자고 있는 침대 근처로 향했다. 

살령단(殺靈團)은 건물 안에 있는 자 하나가 자신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움직임은 은밀했다. 

그리고 가라앉아 있는 바다처럼 고요했다. 걸린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하물며 저기에 있는 건 가주라는 계집 하나와 젊은 무사 하나 

다. 

들은 바로는 젊은 놈이 검 꽤나 다루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게 다다. 

검을 꽤 다룬다 해도 살령단이다. 그들은 호남에서 가장 강한 살수집단 

이다. 뿐만 아니라 전 무림을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 

로 뛰어나다. 

실패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이 일을 위해 움직인 살수는 무 

려 열 명이다. 운문세가 쪽에서 많은 돈을 주면서 부탁을 한 탓이다. 그 

렇지만 않으면 한 명에서 많아 봤자 둘만 보내면 될 일이었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까지 다가오는 중에 

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이제 저 안에 있는 두 명만 죽인다면 

이 일은 완벽하게 끝나게 된다. 

성공이 코앞에 다가온 것과 다름없다. 

동(東)쪽에 두 명, 서(西)쪽에 두 명, 남(南)쪽에 두 명, 북(北)쪽에 

두 명이 섰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벽에 바짝 다가갔다. 안의 불이 모 

두 꺼져서 안이 확실히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두 개의 인영(人影)을 발 

견했다. 

벽에 바짝 다가선 둘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카로운 송곳에 내공을 실어 벽을 향해 찌르니 작은 구멍이 생겼다. 

그 둘은 구멍에 얇은 대롱을 박았다. 그 대롱 안에는 작은 바늘이 있 

고, 그 바늘에는 학정홍(鶴頂紅)의 독이 묻어 있다. 일단 맞기만 한다 

면 바로 즉사다. 

입가를 대롱에 가져다 댄 둘은 바람으로 침을 밀어냈다. 

훅! 

날아간 두 개의 침은 누워 있는 두 개의 몸에 정확히 들어박혔다. 

성공을 했는데 조금 이상하다. 신음소리가 나지 않은 탓이 아니다. 학정 

홍은 극독이다. 신음소리도 채 내기 전에 죽는 경우가 허다하니 그건 이 

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하다. 성공했는데 

이 찜찜한 기분은 뭐란 말인가. 

육살(六殺)은 직감을 믿었어야 했다. 

그 순간 육살의 배 쪽에서 짜릿한 통증이 밀고 올라왔다. 그는 고개를 

내렸다. 벽 반대편에서 뚫고 나온 검이 자신의 배를 뚫은 상태다. 

'이, 이런 일이……' 

안쪽에 있는 자들은 분명 독침에 맞았다. 움직이는 건 고사하고 죽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검은 무엇이란 말인가. 독침에 맞은 건 아닌 게 분 

명하다. 

그렇다면…… 이미 자신들이 오는 걸 알고 무엇인가를 침대에 대신 올려 

둔 것이다.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은밀했는데……' 

육살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검이 올라오면서 그의 가슴까지 이는 긴 검 

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육살은 그대로 땅에 쓰러진 채 다시는 일어서 

지 못했다. 

이들을 움직이던 육살이 죽었지만 나머지 구인은 당황하지 않고 재빠르 

게 무기를 꺼내들었다. 목표했던 자가 죽지 않은 이상 그들이 해야 할 

행동은 하나다. 

살(殺)! 

상대를 죽이는 것 외에 그들이 할 일은 없다. 

문이 열리며 한 쌍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수들은 그 둘의 정체 

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둘은 자신들이 죽여야 할 상대다. 

죽이라는 명을 받은 순간부터 살수와 살수가 죽여야 하는 자는 이미 같 

은 하늘에서 살 수 없는 사이가 된다. 그렇다. 그들은 앞에 있는 이 한 

쌍의 남녀와는 결코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다. 죽이거나, 아니면 죽 

는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살령단의 살수들은 일류들이다. 일류라는 말은 곧 죽 

이거나, 죽는 시험에서 항상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 앞 

에 있는 한 쌍의 남녀도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운휘와 가장 가까이 있던 살수가 짧은 검을 휘둘렀다. 

여운휘는 살수의 손목을 잡아서 비틀었다. 

"큭!" 

여운휘의 손이 하나가 묶였다고 생각했는지 네 명의 살수가 더 달려들었 

다. 맨 먼저 다가온 살수의 다리를 여운휘가 걷어찼다. 검을 들고 내려 

찍던 그는 여운휘의 발 재간(才幹)에 그대로 한 바퀴 공중에서 돌면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던 자가 채 땅과 닿기도 전에, 또 다른 한 명이 여 

운휘의 옆구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여운휘는 남은 한 손으로 그자의 

손목을 잡더니 날아드는 또 다를 자를 향해 밀었다. 

그렇게 되자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꼴이 되고야 마 

는 것이 아닌가. 둘 다 서둘러 검을 회수했기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 

만 그 둘이 아닌 다른 사람은 그 순간 곤경에 빠졌다. 

여운휘는 손목을 잡고 있던 자를 밀치며 달려 든 넷 중 마지막으로 도달 

한 한 자를 향해 검을 날렸다. 

검을 빼는 것부터가 공격인 전살세의 발검이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든 

검은 마지막 살수의 옆구리를 스쳤다. 몸에 있는 피가 몽땅 쏟아진 것처 

럼 그 살수의 몸에선 엄청난 양의 피가 터져 나왔다. 

여운휘는 공중으로 뜨더니 옆구리를 베이며 떨어져 내리는 살수의 머리 

통을 밟았다. 

그 상태로 몸을 튼 여운휘의 검에서 수많은 강기가 쏟아져 내렸다. 

"피해라!" 

누군가의 외침에 강기를 받으려 하던 살수들이 사방으로 비산(飛散)했 

다. 여운휘의 검에서 뻗어 나온 강기가 부닥친 곳이 터져 나갔다. 

살수들은 감정을 철저하게 죽인다. 그런 그들이거늘 몸이 굳어버렸다. 

이게 강기인가. 지금 이것을 보지 못하고 그냥 싸움터의 흔적만 본다면 

아무도 이것을 강기로 만든 흔적이라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강기의 위력은 엄청났다. 

여운휘의 강기를 보며 소리를 지른 것은 단비쌍조(短飛雙 ) 여험이다. 

실력 면으로는 이곳에 온 열 중 독보적이다. 이 무리에서 은연중에 대장 

으로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살령대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 

에 꼽히는 고수다. 

짧은 두 개의 조를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악귀와도 같다고 알려졌다. 그 

는 살수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호남에서 알아주는 자다. 그런 그 조차 

도 여운휘의 강기에 놀라 버리고 말았다. 이 정도라면 이미 강기라 부르 

기도 뭐하다. 

피하라고 소리는 질렀지만, 세 명은 피하지 못하고 강기의 파도 속에 휘 

말렸다. 그 안에서 채 빠져 나오지 못한 자는 이미 죽어 널브러져 버렸 

다. 

열 명이 왔거늘 벌써 반수인 다섯이 죽었다. 

문제는 다섯의 희생이 있었거늘 상대에게는 상처 하나 주지 못했다는 거 

다. 자신들에게 강기를 뿌린 남자는 어느새 여자의 옆에 가서 서 있었 

다. 애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남자의 모습은 흐트러짐이 없다. 

마치 방금 전의 일이 꿈이었다 해도 믿을 정도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 

습이 오히려 두렵게 느껴졌다. 

단비쌍조 여험은 자신의 양손에 있는 조를 바라봤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날카롭게 갈아 두었다. 그렇지만 그는 의문이 들었다. 

'이 날이 아무리 날카롭다 해도 과연 저 자를 벨 수 있을까?' 

호남에서 알아주는 고수지만, 앞에 있는 남자와 비교하자 왠지 모르게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 

다른 건 몰라도 일대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여험은 양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미리 약속 된 수신호가 그의 손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해졌다. 여험의 손을 예의주시 하던 그들은 양쪽 

으로 갈라졌다. 한꺼번에 모여 있다가는 당한다. 방금 같은 공격이 몇 

차례 더 쏟아진다면 아마 이곳엔 아무도 서 있을 수 없을 게다. 

여험은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젊은 무인 하나가 단 일 

수에 살령단 일급 살수 셋의 목숨을 가져갔다. 우연은 결코 아니다. 우 

연으로 이렇게 쓰러질 정도로 살령단 살수들은 약하지 않다. 그들은 일 

급 살수다. 

살행(殺行)에 나서서는 결코 방심하지 않는다. 

'운 좋다면 한 명.' 

여험의 판단은 그랬다. 다섯이 남았지만 과연 이 살행을 끝내고 살수 있 

는 사람은 몇일까. 많아 봤자 하나다. 그나마 재수가 좋으면 동귀어진 

(同歸於盡)이고, 그렇지도 못하면 몰살이다. 

"네가 단비쌍조(短飛雙 ) 여험이냐." 

여험은 여운휘의 말에 흠칫 놀랐다. 상대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 

이다. 얼굴을 가리고 있긴 하지만 분명 자신의 손에는 짧은 조 두 개가 

걸려 있는 상태다. 그러니 그것으로 알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허나, 이 넓은 무림에서 짧은 두 개의 조를 쓰는 건 비단 그 뿐만이 아 

니다. 셀 수도 없는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여운휘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 

차렸다. 무공이라도 보였다면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만 아직 자신은 제 

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어떻게! 

자신이라는 것을 딱 맞춘 것을 보면 한 가지 밖에 없다. 자신이 올 거라 

는 것을 사전에 알았던 것이다. 

무림에는 짧은 두 개의 조를 쓰는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살령단 내로 

국한한다면 자신뿐이다. 그건 곧 살령단이 이곳에 올 거라는 것을 알았 

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걸 안다면 살령단을 움직인 배후(背後)도 알 

고 있는 건 당연하다. 

운문세가와 살령단은 오래 전부터 계약(契約)을 해오던 사이다. 그 사실 

에 대해선 무림에 있는 그 누구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 

니었다. 최근에야 생긴 세가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운문세가와 살령단을 연계(連繫) 시켜 생각했을 리가 없다. 

"어떻게……" 

"온다면 살령단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 그 쪽은 화평(和平)이 내키 

지 않는 모양이야." 

여험은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다시 한 번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이 놈은 위험하다.' 

직감적으로 여험은 느꼈다. 앞에 있는 이 남자는 결코 살려 둬서는 안 

되는 자다. 설령 자신들이 죽는다 해도 반드시 죽여야 할 상대다. 살려 

둔다면 운문세가 뿐만이 아니라 살령단에도 큰 걸림돌이 될게 분명하다. 

"합일(合一)!" 

사방에 퍼져 있던 자들이 한꺼번에 여운휘에게 달려들었다. 여운휘는 살 

짝 뒤로 물러서며 유설린과의 거리를 가까이 했다. 그러는 것과 동시에 

손에 있던 검이 움직였다. 

파파팍! 

땅을 긁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검은 여험의 코앞 

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여기서 쳐내고……' 

양손에 껴져 있는 조로 여운휘의 검을 밀어내려고 했다. 밀어만 낸다면 

가슴이 빌 테고, 그렇다면 공격을 할 기회가 생긴다. 그런데 밀어내려 

고 내공을 사용한 여험이 오히려 뒤로 튕겨 올랐다. 

옆으로 튕겨 나가는 여험을 향해 여운휘의 검이 움직였다. 

옷자락이 베였다. 반동으로 빠르게 뒤로 물러난 탓에 옷자락만 베였지, 

그렇지 않았다면 허리가 베였을 거다. 뒤로 물러났다는 것을 안심하는 

사이, 여운휘의 검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적당한 시간차가 있기에 자신의 공격이 실패는 했지만 다음 공격은 이어 

진다. 여험은 다시 여운휘를 향해 달려들기 위해 움직였다. 그가 채 발 

을 때기도 전에 한 명의 목이 날아갔다. 

'벌써!' 

예상치도 못할 정도로 빨리 한 명이 나가 떨어졌다. 

'넷!' 

멈칫했지만 말 그대로 순간이었다. 더 망설였다가는 또 한 명이 나가 떨 

어질지도 모른다. 양손에 끼어져 있는 조가 지(之)자를 그리며 날아들었 

다. 세 차례의 연속 공격이었거늘 여운휘는 손쉽게 검을 세움으로 모든 

것을 무산시켰다. 

여운휘의 다른 한 손이 뒤쪽을 향해 움직였다. 

퍼엉! 

유설린이라도 죽이려 했는지 그쪽으로 다가가던 자가 여운휘의 장에 맞 

고 그대로 가슴이 터져 버렸다. 이제는 유설린도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앞쪽에서 날아든 비수를 쳐냈다. 

"미안하지만 죽어 줄 수는 없어." 

유설린은 말을 마치며 앞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뻗어져 나온 강기를 

피하려던 한 살수의 가슴에 여운휘의 검이 박혔다. 

살수의 검보다 빠르고, 더 정확하다. 

셋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머지 둘도 목숨을 잃었다. 이젠 완벽한 

혼자다. 

"네 놈은 도대체 누구냐." 

여험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낮았다. 그렇지만 그 소리는 여운휘와 유설린 

의 귀에 들어가는 데 무리가 없었다. 

"너 같은 자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하북팽가의 팽산위를 가 

볍게 꺾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너에 대한 것을 모른다. 도대체 

넌…… 누구냐?" 

"한 여자를 지키는 호위무사." 

"너 같은 자가 겨우 호위무사라니……" 

여험은 양손을 가슴 근처로 치켜들었다. 상대가 놀랍도록 강한 건 사실 

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물러설 수 없는 것이 현실인 셈이다. 

명을 받은 이상 상대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 어떤 암수를 쓰던 중요하 

지 않다. 더러운 수법을 썼다고 누가 손가락질해도 상관없다. 그게 무 

슨 상관이랴. 살수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한 자의 죽음뿐이다. 

여험은 살며시 왼쪽 손에 걸려 있는 조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약간 튀 

어나온 부분을 확인했다. 이 부분만 누른다면 보이지 않는 작은 침이 앞 

으로 쏘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침 끝에는 아까 썼던 학정홍의 독이 묻 

어 있다. 실패 할 확률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를 휘두르다가 기회를 발견하는 순간 여험은 독침을 쏠 것이다. 만약 

베일 위기에 처한다면? 그래도 여운휘를 향해 그 독침을 발사할거다. 

저 자만 죽는다면 임무는 분명 실패다. 하지만 저 자가 있다면 다음에 

다시 이 임무에 들어왔을 때도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 자를 죽여야 한다. 그리고 저 여자는 그 

후다. 

여험이 몸을 낮추고 여운휘에게 달려들었다. 여운휘가 검을 높게 쳐들 

고 아래를 향해 빠르게 내긋는 순간 여험의 눈이 일순 빛났다. 

'지금이다!' 

여험의 손이 왼쪽에 걸려 있는 조의 튀어나온 부분을 눌렀다. 

핏! 

빛살처럼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얇은 쇠침 하나가 여운휘의 목덜미를 노 

리며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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