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137)

           안하무인(眼下無人) 운중행(雲衆幸) 

                             

"넌 말버릇을 고쳐야 돼." 

풍운조가 이곳에서 지낸 지 거의 한달 여가 지난 후에 한 말이었다. 그 

는 여운휘의 말투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놈이 나한테 반말을 한다는 건, 네 녀석이 원래부터 싹수없는 놈이 

었다 생각하면 돼. 그렇지만 말이다, 항상 그래서야 쓰겠냐." 

"나에게서 존대를 듣고 싶은 건가." 

"난 말이다, 적어도 네가 반 존대는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이 

곳은 자존심을 중히 여기는 세계다. 너의 말투는 친구를 오히려 적으로 

만드는 변수(變數)가 될지도 몰라." 

여운휘는 특별한 대꾸를 하지 않았다. 풍운조의 말 대로다. 여운휘도 이 

미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십 년 정도 길들여진 버릇이 쉽사 

리 고쳐 질리는 만무(萬無)한 일 아닌가. 

"얼마 전에 너와 가주께서 무림맹에 갔었다고 들었다." 

풍운조는 유독 유설린에게만은 존칭을 사용했다. 한 세가의 가주로서 위 

엄(威嚴)을 살리기 위함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할지라도 풍운조에 

게 유설린은 상관이었다. 

풍운조가 말을 이었다. 

"그때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난 게 신기할 지경이군. 그 고리타분한 영감 

쟁이들이 네 말을 듣고 어떻게 참았을꼬?" 

그렇다. 여운휘가 무림맹에서 별다른 사건 없이 나오게 된 것은 국한(局 

限)된 만남 탓이다. 여운휘가 만난 사람이라고는 종리회연을 빼고는 없 

다 봐도 무방하다. 물론 하북팽가의 팽산위라는 자도 만나긴 했지만, 어 

차피 동년배인데 다가 이미 쓰러트려 버렸다. 

결과적으로 종리회연이라는 남자가 너그러운 탓에 아무 일 없이 마무리 

된 게다. 만약 종리회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림맹 안에서 큰 싸 

움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잘 들어라. 네 놈이 반말을 해서 누구한테 끌려가 죽던 말던 솔직히 

내 상관은 아니야. 하지만 말이다, 네 놈의 그 행동이 이 악양유가에 누 

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네 놈이 그토록 따르는 가주께도 그건 결 

코 좋은 일이 아닐 거다." 

풍운조가 하는 말은 이미 여운휘로서도 충분히 생각한 것이다. 마음은 

다잡았지만 막상 존대를 하려고 하면 나오지 않는다. 마음은 해야 한다 

고 느끼고 있지만 몸이 따르지 않으니 될 리가 없다. 

"알고 있다. 그리고…… 노력중이다." 

"오호, 그래? 그럼 나를 상대로 연습을 하자. 자 어서 나에게 존대를 

해 봐라!" 

풍운조는 양팔을 쫙 벌리고 여운휘를 바라보았다. 마치 여인이 안기기 

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풍운조는 여운휘를 바라봤지만, 여운휘는 묵 

묵히 자기가 할 것만 하고 있었다. 

그냥 있었어도 부끄러워 뒤지겠는데 여운휘는 그런 자신을 힐끔 쳐다보 

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끄응!" 

무안했는지 풍운조는 양손을 제자리로 돌려 놨다. 

"이놈이 감히 어른이 이야기하시는데 무시를 해?" 

이번에도 무시를 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여운휘라는 이 남자는 오로지 가주의 말만 듣는다. 분명 총관은 자신이 

다. 악양유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사여탈(生死與奪) 권을 지니고 있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권력은 지니고 있으면서도 여운휘에게 

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악양유가에서 여운휘의 지위는 애매했다. 어디에 소속된 것도 아니고, 

오로지 가주만을 지키는 호위무사다. 당연히 아무리 풍운조가 총관이라 

해도 이래저래 벌을 내릴 수도 없는 형편이다. 

'끙, 애물단지 녀석.' 

생각은 그랬지만 과연 그럴까? 

아니다. 여운휘가 없었다면 오늘의 가주도 없었을 거다. 풍운조도 그 사 

실은 잘 알고 있다. 어떻게 된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한 놈이다. 검 

뿐만이 아니라 머리도 쓸 줄 안다. 상황 상황을 분석하고 앞날을 내다보 

는 능력은 자신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겉으로는 티격태격 하지만 풍운조 또한 여운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은 아니다. 

풍운조는 여운휘가 마음에 든다. 

열 마디 말보다는 한 가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남자다. 어느 상황에서라 

도 뒤를 맡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진정한 무인이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건 당연한 거다. 오히 

려 죽음을 무덤덤 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신기한 거지 살려 달라고 비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여운휘는 한 여자를 위해서라면 분명히 목숨을 바칠 남자다. 둘이 정확 

히 무슨 사이인지는 풍운조는 모른다. 어떻게 만났으며, 왜 따르는지에 

관해서 그 둘은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둘 만의 비밀인 거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따르기로 한 이상 그런 것을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다. 

"슬슬 시간이 되었군." 

풍운조가 들어온 후부터 아침은 연무장에서 보냈다. 여운휘는 유설린을 

깨우기 위해 침상(枕上)으로 다가갔다. 

유설린의 검이 공중에 흩날렸다. 화려한 검법이다. 일초를 펼친 것뿐인 

데 검날이 세 개로 나뉘어져 보인다. 대성하면 검날의 수가 일곱 개로 

보이게 될 거다. 꽤나 실용적이지만 마교 내에선 거의 아는 자가 드문 

검법이다. 

여운휘는 특별한 검법을 연습하는 것 같지 않았다. 천천히 숨을 쉬며 간 

간이 내지르는 것을 반복하는 여운휘였지만, 풍운조의 눈은 여운휘에게 

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간단히 몸을 푸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최단 거리다. 

여운휘 앞에 한 사람을 그려 놓았다. 허공에 임의로 사람을 그려보니 결 

코 웃을 수가 없다. 허상을 만들어 내고 홀로 검을 찌르는 것이 분명하 

다. 여운휘가 찌르는 곳이 사람의 사혈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풍운조는 여운휘의 검을 받아 본 적이 있다. 그건 극쾌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비록 자신을 패하게 한 것은 변검이긴 하지 

만 결론적으로 궁지로 몰아 넣은 것은 쾌검이었다. 

풍운조조차 궁지로 몰게 한 움직임이다. 거기다가 사혈을 찌르는 최단거 

리까지 만들어 내려고 한다. 만약 여운휘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무림 역 

사상 가장 빠른 검을 자랑하게 될 거다.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완벽한 남자다. 

외모도 빼어나고 무공도 뛰어나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머리도 있고, 결 

코 자만을 하지 않는다. 저 정도 실력이라면 콧대가 높아질 만도 한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다. 

'말만 함부로 하는 버릇만 고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옥의 티다. 상대에게 무조건 하대를 하는 것은 좋은 행 

동이 아니다. 적이라면 하대를 하던 말던 큰 문젯거리는 되지 않는다. 

어차피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그깟 말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물론 뒤에서 예의가 없다는 소리를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나마 나 

은 거다. 

지금 여운휘는 도움을 청해야 할 사람들에게조차 함부로 대할 게 분명하 

다. 그건 결코 안 되는 일이다. 그 누가 자신의 손자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자에게 반말을 듣고 참겠는가. 하물며 명예를 목숨처럼 중히 여기 

는 정도 인에게서. 

무작정 휘두르는 듯 하던 여운휘의 검이 천천히 검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운휘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볼 때마다 비무를 하고 싶은 마 

음이 인다. 하지만 자제해야 한다. 이제 풍운조는 개인이 아니니까. 

연무장에 당영이 나타났다. 그는 우선 총관으로 임명된 풍운조에게 다가 

갔다. 

"운문세가에서 이쪽으로 오던 운중행이 금방 도착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 

당영이 나타난 순간 검을 휘두르던 유설린과 여운휘는 풍운조의 옆으로 

다가왔다. 오늘 정도 도착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풍운조가 총관이 되면서 그는 자신의 재력을 쏟아 부었다.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해도 세력이 커지는 것을 운문세가가 모를 리가 없다. 슬슬 눌 

러 줘야 할 때라 그들은 판단했을 게다. 그 때문에 운문세가에서는 며 

칠 전 한 남자를 내보냈다. 

안하무인(眼下無人) 운중행(雲衆幸)이라 불리는 남자다. 물론 안하무인 

이라는 별호는 다른 사람들이 그를 칭하는 말이다. 운중행의 별호는 따 

로 있다. 하지만 원래 별호인 검건혈검 보다 안하무인이라는 우습지 않 

은 별호가 더 유명한 자다. 

괜히 안하무인이라는 말이 붙은 것이 아니다. 교만(驕慢)이 넘치다 못 

해 바다를 이룬다. 자신보다 아랫사람은 마치 짐승 보듯이 하고, 야망 

도 너무 과해서 문제다. 

성격은 아주 급한 편이다. 조금만 자신의 생각과 틀어지면 바로 싸우려 

고 한다. 

결코 효웅(梟雄)이 될 수 없는 자다. 

"손님 받아들일 준비는?" 

"예, 말씀하셨던 대로 모두 준비했습니다." 

비록 좋은 일로 온 자는 아니지만 손님이다. 그것도 이 부근에서 가장 

세력이 있는 운문세가 가주의 명으로 온 손님. 함부로 대했다가는 다른 

쪽에도 안 좋게 비추리라. 어느 정도 해 줘야 할 것은 해 주면서 싸워 

도 싸워야 한다. 

"반갑지는 않은 놈이지만, 그래도 받아는 들여야겠지? 서둘러들 움직여 

라! 결코 얕보여서는 안 된다!" 

풍운조는 서둘러 당영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다. 

엉망인 모습을 보였다가는 두고두고 얕보게 된다. 물론 상대의 힘을 얕 

보게 하는 것도 좋은 전력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른 세가를 속이는 

것 보다 일이 먼저다. 

내부가 엉망이라고 소문이 난다면 누가 일을 맡길 것인가. 

당장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지속 될 이익을 버릴 정도로 풍운조는 바보 

가 아니다. 

손님으로 받아는 들인다. 하지만 곱게 보내 줄 마음은 없다. 

슬슬 운문세가라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려야 할 때다. 이미 다른 사업 

도 준비 됐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선 운문세가와의 마찰은 결코 피할 수 

없다. 

"도착했습니다!" 

허겁지겁 돌아온 당영이 외쳤다. 

"그럼 가죠." 

유설린이 앞에 서고 그 뒤로 여운휘와 풍운조가 섰다. 

문 앞에 약 이십 여 명의 무리가 있었다. 그 중 가장 앞에 선 남자, 푸 

른빛이 도는 옷을 빼 입고 고개를 약간 비스듬히 올린 것이 건방져 보였 

다. 

"저 남자가 바로 운중행이오." 

풍운조는 유설린에게 미리 말했다. 예상보다 젊은 남자다. 풍운조의 인 

간됨됨이에 대해서는 들었지만 저렇게 젊은 남자인줄은 몰랐다. 

운중행은 현 운문세가의 가주인 거력참산(巨力斬山) 운마연의 막내아들 

로 그다지 빼어난 것은 없는 인물이다. 무공도 기재(奇才)라고는 하나 

어디 대단하게 내놓을 정도는 아니다. 

운중행은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악양유가라고 이름 붙여 

진 이곳이 어떤 곳인지 훑어보는 것이다. 운중행은 피식 코웃음을 쳤 

다. 운문세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아 보인다. 

'그럼 그렇지……' 

이곳까지 온 건 괜한 헛수고다. 이들이 점점 크고 있다는 아버지의 말 

도 믿을 수가 없다. 대단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대단한 

것이 하나 있었다. 

'호오, 저 계집……' 

운중행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유설린이었다. 운중행 

이 본 유설린은 말 그대로 순백(純白)이다. 꽤나 색(色)을 탐하는 그였 

으니 유설린을 보며 마음이 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셨소이까?" 

유설린을 보며 넋을 잃고 있던 터라 운중행은 인사를 듣고서야 퍼뜩 정 

신을 차렸다. 한 노인이 자신에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인 것이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안하무인이라는 별호가 생긴 이유를 보여 

주던 운중행의 눈이 유설린과 여운휘에게 박혔다. 

건방지게 둘 다 자신에게 아무런 예(禮)도 차리지 않는 것 아닌가. 

"네 놈 둘은 뭐기에 이리도 뻣뻣한가!" 

풍운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곤죽이 될 정도로 쌍 

장을 날리고 싶었으나 그는 가까스로 참아냈다. 

"저 여자 분이 악양유가의 가주이십니다." 

"그래?" 

풍운조는 다시 한 번 떨리는 손을 감춰야만 했다. 어린놈이 자신은 존대 

를 하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대를 한다. 그것도 마치 비웃는 듯해 보 

이는 하대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자신이 새파란 애송이에게 이런 대접 

을 받으니 참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참아야 한다. 자신이 악양유가의 일에 지장을 줄 수는 없으니 

까. 

풍운조가 가까스로 참고 있을 때 운중행은 달랐다. 

가주가 젊은 여자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토록 미녀일 줄은 몰랐다. 재미 

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망할 가문, 그런 곳에서 여자 하나 취하 

는 것이 어찌 잘못이랴. 

그렇게 넘어가려던 운중행의 눈에 여운휘가 비췄다. 저 여자는 가주라 

서 그렇다 치지만 저 남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이, 이 여자는 가주니 그렇다 쳐도 넌 뭐냐?" 

한 가문의 가주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예의라고는 눈 씻고 찾아 

봐도 없는 말투에 풍운조는 당장이라도 뒤통수에 일격을 가해버리고 싶 

었다.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도가 넘어섰다. 

"호위무사다." 

여운휘는 짧게 대답했다. 여운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운중행은 마 

치 주먹이라도 휘두를 듯이 소매를 걷어 붙였다. 

"이 건방진 새끼, 감히 호위무사 주제에 그리 건방졌나. 그리고 방금 

네 놈 나한테 반말을 지껄인 거냐?" 

검을 뽑기라도 할 듯이 운중행은 허리춤으로 손을 내렸다. 그런 운중행 

을 저지 한 것은 유설린이었다. 

"그만!" 

운중행은 순간 찔끔해 버렸다. 

"그만하시지요. 그는 제 수하입니다." 

"아, 알겠소." 

유설린의 어투가 부드럽게 바뀌었지만 운중행을 얼떨결에 반 존대를 써 

버렸다. 일문(一門)의 문주(門主) 다운 호통이었다. 그 순간적인 기세 

에 그는 눌려 버리고 만 것이다. 

반 존대를 하고 나서야 운중행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아 차렸 

다.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뒤에서 자신을 보고 있던 수하들이 어떻 

게 생각할 것인가. 겨우 계집 하나의 호통에 놀라 버렸다고 뒤에서 수 

근 될게 분명하다. 

자존심에 금이 가버렸다. 

사람들이 자신을 안하무인이라고 부른다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 

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에게 붙여진 안하무인이라는 별호를 그다지 나쁘 

게 생각지 않는다. 운중행은 자신이 그러한 행동을 취할 만한 충분한 자 

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비록 운문세가를 잇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직계 자손이다. 어딜 가 

도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자신 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굽실 

거리는 건 당연하다. 

운중행은 자신이 그들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러한 대 

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란 자다. 그런 그가 모욕을 받았 

으니 참기 힘든 건 당연하다. 

'괘씸한……' 

화가 나지만 뭐라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비록 운문세가에서 왔다 

고는 하나, 저 여자는 한 가문의 가주였다. 그리고 분명 지금 자신이 

한 행동은 그녀를 욕되게 하는 행동이었다. 가주의 직속 수하다. 그런 

자를 자신이 처단하려고 했으니 가주로서는 화를 내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렇게 포용(包容)했다면 운중행이 안하무인이라고 불렸을까? 

'나중에 두고 보자.' 

겉으로는 내색 안 했지만 마음은 독심(毒心)으로 가득 찼다. 매서운 눈 

으로 여운휘를 노려보던 그가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가자!" 

유설린이 옆에 붙여 준 하인 하나가 그와 그의 수하들을 머물 곳으로 인 

도할 뿐이었다. 

'나를 이리 박대(薄待)하다니. 이건 곧 우리 가문을 무시하는 것이렷 

다? 감히 우리 운문세가를!' 

운중행은 자신이 오면 당장 호화로운 잔치와, 술들로 자신에게서 환심 

을 사려고 할거라 생각했다. 

그건 당연하다. 악양유가로서는 이 부근에서 가장 힘이 강한 운문세가에 

게 함부로 할 수 없어야 정석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전혀 아니다. 가주라는 자도 얼굴이나 내 비추고 자신의 수하들 

과 사라졌다. 이건 자신들이 안내 해 준 곳에서 처 박혀 있다가 돌아가 

라는 것으로 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마음이 좁은 운중행은 

더욱 화가 솟구쳤다. 

"빌어먹을!" 

그의 발이 방을 장식하고 있던 자기(瓷器) 하나를 박살내 버렸다. 손님 

으로 온 사람이 취할 행동은 분명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미 운중행에게 

그런 생각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당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화가 났다 

는 사실이다. 

운중행의 머리에 유설린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그러졌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 미소는 결코 좋게 보이 

지 않았다. 

"킥킥, 날 화나게 했단 말이지? 네 년은 평생 내 발바닥이나 닦으며 살 

게 해 주마." 

운중행은 자신의 말에 자신이 있었다.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리라. 겨 

우 이런 작은 세가 하나 손보는 건 일도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은 후에 품에서 연초(煙草) 하나를 꺼내 입 

에 물었다.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한 여자의 인생을 망칠 생각을 하니 

온 몸이 잔 경련이 인다. 

"큭큭……" 

웃음이 방을 가득 채웠다. 

"내가 살다 살다 그리 건방진 놈은 처음이오!" 

풍운조는 심하게 흥분한 상태였다. 옛날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모욕을 받 

은 탓이다. 예상외로 유설린과 여운휘는 담담한 상태였다. 

"오늘 저녁에 대면을 해야 할 듯 하네요."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온 게 분명하다. 듣지 않아도 대충 무슨 말을 할지 

는 예상하고 있다. 요즘 들어 악양유가가 뛰어 든 사업 탓이다. 건방지 

게 악양유가는 운문세가의 밥그릇을 노렸다. 

겉으로는 평화적으로 대화를 하자는 것 같지만, 내면(內面)은 결코 아니 

다. 조금이라도 말을 안 듣는다 싶으면 운문세가는 무력을 쓸게다. 그 

건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가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선 굽히고 들어가실 겁니까?" 

"지금 굽히면 세력이 축소될게 분명해요. 그리고 그 약해진 힘은 다시 

강해지기 힘들 겁니다." 

지금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것도 좋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하지만 지금의 일 보 후퇴는 영 

원히 돌아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일이라 유설린은 생각했다. 

운문세가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다면 감시 세력이 붙을 거다. 아마 자신 

이 지닌 실권을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유 

설린은 생각했다. 그리고 여운휘와 풍운조 또한 그건 마찬가지였다. 

아직 운문세가의 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무력에선 자신이 있다. 그들 

에 비해 무인의 수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이 쪽에는 절정고 

수 둘이 있다. 

쉽게 밀리지 않을 게 분명하다. 

유설린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 말을 이었다. 

"그는 결코 좋은 대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갈 거예요. 그건 제가 장담하 

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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