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137)

                 나를 무엇으로 사겠소? 

주주(株州). 

호남성 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철의 산출이 많은 곳이다. 

당영과 삼일이 주주에서 약 한 달 정도 그곳을 알아보고 나서야 유설린 

과 여운휘가 도착했다. 

"종이에 적혀 있던 것을 알아봤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저희가 알아 본 바로는 철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는데…… 그것을 

가공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 철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비록 주주에서 철을 구하는 세 

가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살 곳이 몇 곳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철을 가공(加工)할 사람이다. 

여운휘와 유설린은 철의 가공에 대해 모른다. 그건 전문적인 일이니까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에겐 오랫동안 철을 가공해 온 사 

람이 필요하다. 그것도 이 일대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으로.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부근의 철을 잡고 있는 세가에게 밀릴 것이다. 

"이 부근엔 철의 생간이 많아서 이쪽 방면으로 뛰어난 사람이 많을 텐 

데 이상하군요." 

"유명한 사람이 있긴 한데 도통(都統) 넘어오지를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이유를 아세요?" 

대답 대신 당영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그것을 알기 위해 노력을 하 

지 않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알아보려 해도 무슨 연줄이 있어야 소식 

을 얻을 것이 아닌가. 이리저리 손은 써 봤지만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계라고 느꼈을 이 마당에 여운휘와 유설린이 이곳으로 온 것이다. 

"어디 사는 자인가." 

"사는 곳은 멀지 않아 금방 안내해 드릴 수 있지만 가 봤자 별 신통한 

대답을 듣지는 못할 겁니다." 

"안내 해." 

안 될 거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여운휘는 당영에게 말했다. 표정이 약간 

일그러지긴 했지만 상관이다 보니 당영은 묵묵히 여운휘와 유설린을 안 

내했다. 

볼품 없는 건물, 그 앞에 이르러 당영이 멈추었다. 

"이곳인가." 

"예." 

주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것과 어울리지 않게 그 자가 사는 곳은 허름 

하기 그지없었다. 

"누구요." 

밖에서 들리는 소리 탓인지 안에 있던 자가 문을 열었다. 노인이다. 육 

십 줄 정도에는 들어선 노인. 나이가 조금 들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예상보다도 나이가 많다. 

"자네는 며칠 전에 이곳에 왔던 자가 아닌가." 

노인은 당영을 알아봤다. 잠시 그들을 주시하던 노인은 문을 닫으려 했 

다. 

"잠시만요!" 

"뭐요." 

"이 근방에서 가장 철을 잘 다루신다고 하던데요." 

"그렇게들 말하더군." 

노인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가 이번에 철을 가공할 사람이 필요해서 그런데 도움을 주실 수 없 

으신가요? 대가는 후하게 쳐드릴게요." 

"대가라…… 그럼 물어보겠소. 나를 무엇으로 사겠소?" 

"예? 무엇으로 사다니요? 당연히 돈을……" 

"가시오." 

문이 닫혔다. 

당장이라도 열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선 돌아가지." 

멍하니 문을 바라보는 유설린의 어깨를 툭툭 치고 여운휘가 말했다. 이 

곳에 있어 봤자 좋은 수가 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운휘 덕 

에 제 정신을 차린 유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할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여운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노인은 무턱대고 가라고 하지 않았다. 무엇 

으로 자신을 사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대답을 듣고 나서야 문을 닫았 

다. 일을 할 마음이 없었다면 바로 쫓아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답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말도 안 된다 할지 모르지만, 세상엔 기인이 많다. 원하 

는 대답을 알기 위해선 노인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 같다. 

"저 노인에 대해서 알아 본 것 있나." 

"알아보려고 백방으로 손을 써 봤습니다만…… 알아 낼 방도(方道)가 없 

더군요." 

"넌 돌아가라. 내가 알아보도록 하지." 

당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유설린에게 말했다. 

"가주님께서는 저와 같이 가시죠." 

"그녀는 나와 함께 간다." 

"예? 하지만 같이 가신다면……" 

"나와 가주는 언제나 같이 한다. 알아들었으면 어서 가라." 

유설린은 아무 말 없이 움직였고, 여운휘가 그 뒤를 따랐다. 얼떨결에 

혼자 남게 된 당영은 멍하니 그들이 사라지는 쪽을 바라봤다. 

여운휘도 당영처럼 정보를 얻을 연줄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운휘는 당영과는 다르다. 연줄은 없어도 여운휘는 다른 수가 있다. 

유설린과 여운휘는 으슥한 뒷골목을 전전했다. 양(陽)이 있다면 언제나 

음(陰)이 존재하는 법이다. 뒷골목에는 거지들과 술에 취해 쓰러져 있 

는 사람 등 세상과는 단절(斷絶) 된 것 같은 자들이 나뒹굴었다. 

구석에서 연초(煙草)를 들이마시며 어떤 남자가 음산한 눈으로 유설린 

을 바라봤다. 거지도, 그렇다고 술에 절은 자도 아니다. 그는 들고 있 

던 연초를 땅에 던졌다. 

일을 시작하려는 거다. 

건들거리면서 유설린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의 이름은 백산이었다. 풍겨 

나오는 분위기에서처럼 백산은 건달이다. 그런 백산의 눈에 유설린이 들 

어왔다. 대단한 미모다. 자신이 빨아들이는 연초의 맛을 순간 잊게 할 

정도로 매혹적인 여인이다. 

백산은 그 여인의 뒤에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기생오라비 같은 것이 맘 

에 들지 않는다. 

'얼래? 재수 없게 날 꼴아 보기까지 해?' 

노려보던 남자의 눈이 자신에게 박혔다. 백산은 순간 기분이 나빴다. 

'팔을 보니 힘 좀 쓰는 모양인데 오늘 임자 만났다.' 

백산은 잘 만났다는 듯이 여운휘와 유설린에게로 걸어갔다. 우연찮게 여 

운휘 또한 백산과 마찬가지였다. 여운휘는 건달을 찾고 있었다. 분명 돌 

아다니다 보면 건달이 들러붙을 거라 예상했는데 예상이 맞았다. 

"어이, 너……" 

백산이 손을 드는 순간 앞으로 나온 여운휘가 그의 손을 비틀었다. 

"아악!" 

손을 아예 뒤로 돌려버린 여운휘는 한 손으로 목을 감싸안고 다른 손으 

로 백산의 팔을 뒤로 고정시켰다. 팔이 돌아간 충격에 백산은 신음을 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뼈가 어긋나 버렸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백산은 비명을 질렀다. 

"그, 그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소, 손 좀 놓고…… 제, 제발……" 

백산은 이제 목구멍으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프다 못해 이젠 

혼절이라도 할 것 같이 정신이 없다. 상대를 잘못 만났다는 생각이 문 

득 머리를 스쳤다. 어느 유명한 무인인 것이 분명하다. 

"이 근방에서 철을 가공하는 데 가장 유명한 노인을 아나." 

"소, 손뼈가 박살이 나겠소!" 

"닥치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여운휘는 발로 백산의 오금을 걷어찼다. 뒷무릎인 오금이 걷어차이자 백 

산은 순간 균형을 잃었다. 여운휘가 목을 감고 있는 탓에 쓰러지지는 않 

았지만 고통은 더했다. 

"고, 고 노인을 이야기하는 거요?" 

"고 노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노인에 대해서 물을게 있 

다." 

"무엇이라도 말해주겠소! 그러니 제발 좀……" 

백산의 말이 빨라졌다. 고통을 견디기가 힘든 탓이다. 여운휘는 놓아달 

라는 백산의 말을 깨끗이 무시하고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물었다. 

"그 노인에게 가서 같이 일 좀 하자고 했는데 무엇으로 자신을 사겠냐 

고 묻더군." 

"고, 고 노인은 예부터 그랬소." 

"그러니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거야." 

백산은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밀어 닥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설린이 여운휘에게 말했다. 

"그만 놓아줘. 표정을 보니 잘못하면 죽을 것 같아." 

"쳇." 

여운휘는 그를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온 몸에 힘이 쫙 빠진 탓에 백산 

은 그대로 땅에 쳐 박혔다. 잠시 신음을 뱉어내던 백산은 힘겹게 자리에 

서 일어났다. 

"질문에 대답을 하지 그래." 

"나도 정확한 것은 모르오. 하지만 추측이 가는 이유가 하나 있소." 

백산은 당장이라도 앞에 있는 이 놈을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행 

동 할 수가 없었다. 항상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백산이지만, 그도 목숨 

의 귀함은 알았다. 앞에 있는 이 자는 자신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죽 

일 수 있는 자다. 

백산은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고 노인에겐 자식이 있었소. 범의 자식 중 결코 개는 없다는 말처럼 

고 노인의 자식 또한 뛰어난 실력으로 철을 다뤘소. 문제는 그 능력 탓 

에 고 노인의 자식이 죽고야 말았지." 

"자식이 죽었다라?" 

"운문세가에서 그 아들을 데려가려 했지만 그는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한 

다고 그들의 청을 거절했소. 하지만 그의 능력이 필요했던 운문세가에서 

는 음부쌍살(陰斧雙殺)을 시켜 강제로 고 노인의 아들을 끌고 오려 했 

소. 아들은 반항을 했고, 그 와중에 그만 죽고 말았지. 그 후부터 고 노 

인은 일을 접었소." 

보다 자세히 설명하면 복잡한 일이지만 백산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잠시 아무 말도 없던 여운휘가 입을 열었다. 

"음부쌍살이 어디 있는지 알겠지?" 

"그 자들을 모르는 자는 이 마을에 없소." 

"어디 있는지 말해라." 

백산은 잠시 여운휘를 쳐다봤다. 꼴을 보아하니 그 둘에게 가기라도 할 

모양이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그들의 도끼는 자비가 없다. 비록 이 

남자가 강하다고는 해도 그 둘에 비하면 어림없을 거라 백산은 생각했 

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놈, 죽으며 어떠 

랴. 

백산은 순순히 음부쌍살이 있는 곳을 말했다. 

음부쌍살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이미 달이 하늘 중천에 걸렸다. 은은한 

달빛 아래에 한 쌍의 남녀가 거닐고 있다. 마치 유람(遊覽)이라도 온 듯 

한 모습, 그렇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밤이 늦었던 탓일까? 거리를 거니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종종 

보이는 사람들도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반 적인 밤의 거리다. 술 취한 자들이 나뒹굴고, 고고한 달빛이 의연 

한 자태를 뽐낸다. 

음부쌍살, 그들은 신기한 자들이다. 사람을 죽이면서 커다란 자택에서 

생활한다. 그것은 곧 자기들은 여기 있으니 올 테면 오라는 무언의 말 

이 아닌가. 물론 유명한 무인들은 음부쌍살 같은 이름 없는 조무래기의 

존재 자체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부근에서만큼은, 그들이 왕이다. 

원래 멀리 있는 나라님보다 가까이 있는 현령(縣令)이 더 무서운 법이 

다. 그거야 당연하다. 비록 나라님의 힘이 더 강하다고는 하나 이런 구 

석에 있는 곳에서 그 힘을 알겠는가? 아니, 안다고 해도 그 힘이 그들에 

게는 직접적으로 미치지 않을 게다. 곧 그들에게 가장 두려운 곳은 그곳 

을 다스리는 현령이다. 

마찬가지다. 

음부쌍살은 이 근방에서만 이름을 날리는 무인이지만 이 근방에서는 적 

수가 없다. 아무도 그들에게 덤비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여운휘는 문 앞에 이르러 다리를 멈췄다. 문을 조용히 응시하던 여운휘 

의 주먹이 뒤로 빠졌다가 앞으로 퉁겨져 나왔다. 

쾅! 

문이 뒤로 뜯겨져 나가며 집 안을 울리는 거대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 소리에 잠에 빠져 있던 자들이 깨어났다. 음부쌍살이 나타나기도 

전, 그 집에서 일을 하는 하인들이 나타났다. 

"뭐, 뭐냐!" 

용기 있게 말은 뱉었다. 하지만 무시하고 걸어가는 여운휘와 유설린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저 두꺼운 문을 부순 자다. 무공을 익힌 자를 

그들이 상대할 수가 있을 턱이 없다. 수는 많았지만 결국 아무도 여운휘 

와 유설린에게 덤비지 못했다. 

하인들이 깨어났는데 음부쌍살이 깨지 못했을 리가 없다. 거하게 술을 

마시긴 했지만 무공을 익힌 자들 답게 순간적인 소리에 둘 모두 잠에서 

일어났다. 엊저녁 과하게 술을 마신 탓에 머리가 아프다. 

윙윙거리며 모기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머리 속에서 울린다. 그래도 그 

둘은 도끼를 들고 일어섰다. 어떤 잡놈인지 모르겠지만 가뜩이나 아픈 

머리를 더 아프게 하다니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다. 

"어떤 잡놈이냐!" 

음부쌍살 중 거대한 도끼를 사용하여 대부(大斧)라 불리는 자가 문을 박 

차며 소리를 질렀다. 그의 도끼는 보통 사람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오 

금이 저릴 정도로 스산한 빛을 내비쳤다. 대부의 도끼와는 대조적으로 

소부(小斧)의 도끼는 작은 편이다. 하지만 그 속도가 대단해, 오히려 대 

부보다도 한 수 위라는 소문도 있다. 

대부는 눈앞에 있는 일남 일녀를 봤다. 

'굉장한…… 미녀군.' 

대부의 눈에는 여자 먼저 들어왔다. 평소에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 

다. 당연히 유설린을 보니 가지고 싶다는 욕정(欲情)이 고개를 들었다. 

옆에 있는 남자 놈 따위야 한 주먹거리라 대부는 생각했다. 

소부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자가 검을 차고는 있었지만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검이다. 아마 어디서 검술 조금 주워 배운 수준 

일 것이다. 소부는 이길 자신이 있었다. 언제나 생사를 넘나드는 승부 

를 해온 자신들이 아닌가. 

소부는 지금 나타난 미녀가 예전에 자신이 죽인 사람 중 누군가와 관련 

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떠돌이 낭인으로 보이는 저 남자한테 돈을 

주고 부탁했을 거고. 

용기는 가상(嘉尙)하나, 생각 자체가 틀렸다. 저런 낭인이 자신들을 이 

길 리가 있겠는가. 

대부는 겁이라도 주려는 듯이 도끼를 높이 들어 올렸다. 

"야, 이 개 같은 잡놈아! 여기가 어딘지 알고 소란이냐!" 

"개가 짖는 것을 보면 개집이 분명한데 네 놈을 보니 곰 우리 같군." 

"이럴 육시랄 놈! 감히 내 앞에서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여운휘는 유설린의 앞에 서며 검을 뽑았다. 저런 자들과 길게 이야기를 

나눌 생각은 없다. 어차피 죽여야 할 자들, 속전속결로 끝내는 것이 편 

하다. 

"네 이놈, 내게 자비를 바라지 마라!" 

대부의 도끼가 손살같이 여운휘를 이등분이라도 낼 듯이 떨어져 내렸 

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도끼가 떨어져 내리면서 내는 소리에 쭈뼛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거대한 도끼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대단했다. 

카앙! 

"이, 이런……" 

자신의 도끼에 검을 가져다 대는 여운휘의 모습에 대부는 비웃음을 날렸 

다. 막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건지 우습기까지 했다. 정작 그렇게 

비웃음을 날렸는데 자신의 도끼가 막혔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애초에 막힐 거라는 가정을 하지도 않았다. 반으로 갈라져 있어야 정상 

인데, 남자는 두 발을 땅에 대고 서 있다. 순간 대부의 등으로 번개처 

럼 전율이 흘렀다. 

'죽을지도 모른다!' 

대부는 서둘러 뒤로 튀어 올랐다. 우선은 저 자의 거리에서 벗어나 

야…… 

소부는 놀라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부가 뒤로 뛰어 올랐다. 문제는 

뛰어 오른 건 그의 몸뿐이라는 거다. 목은 잘려 이미 땅에 떨어졌고, 뒤 

늦게 뒤로 뛴 몸은 착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얼마나 빠르기에 뒤로 뛰려는 찰나에 목만 잘라 버린단 말인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지 잘려 버린 대부의 얼굴은 피하 

기 바로 그 순간의 감정이었던 난처함만으로 가득했다. 소부는 도끼를 

들어 올리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빠른 도끼로 이 일대에선 쾌(快)에 관해서는 일인자라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그것도 아니다. 이 남자가 누군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소부는 그 

의 검의 잔영(殘影)만을 간신히 봤다는 거다. 

이길 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하다. 무인의 감이 자신에게 말해주고 있다. 

자신은 이 남자를 이길 수 없다고. 

"제길!" 

그렇다면 숨겨 둔 비장의 한 수를 쓰는 수밖에 없다. 

소부는 등뒤에 있는 작은 도끼 하나를 더 꺼냈다. 덤빌 듯이 여운휘를 

노려보던 소부가 갑작스럽게 도끼를 던졌다. 

"이야압!" 

두 개의 도끼를 재빠르게 던진 소부는 재빠르게 뒤로 몸을 날렸다. 저 

정도 되는 자라면 경공에도 일가견이 있겠지만 이 수밖에 없다. 정면격 

돌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우선은 몸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훗날을 

도모(圖謀)해야 한다. 아니, 하려고 했다. 

등으로 갑작스럽게 싸한 느낌이 들었다. 무시하고 달리려 했지만 다리 

에 힘이 풀려 소부는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힘겹게 등뒤로 손을 뻗었 

다. 꽤나 익숙한 감촉이다. 

'이건……' 

자신이 던졌던 도끼다. 

'이 도끼를 받아서 던졌단 말인가? 말도 안 돼……'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온 것을 느꼈다. 소부의 목이 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고 노인의 집에 다시 한 번 손님이 찾아 들었다. 어제 저 

녁에 약주를 한 탓에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고 노인은 누군가의 기척에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검은머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 노인은 나이를 먹었다. 

눈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나서 고 노인은 문을 열었다. 어 

제 찾아온 젊은 자들이다. 오늘도 설득을 하려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 

다. 돈이라는 것은 오래 전에 관심을 잃지 않았는가. 

젊은 남자가 들고 있던 보따리를 갑자기 던졌다. 

고 노인의 앞에 떨어진 보따리는 미리 풀어 논 탓인지 안에 있는 내용물 

을 뱉어냈다. 

"이, 이건!" 

익숙한 얼굴이다. 항시 이를 갈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던 자들, 자신의 

아들을 직접적으로 죽인 음부쌍살이다. 고 노인의 눈에 갑작스럽게 눈물 

이 맺혔다. 

"선수금(先受金)이라 해 두지. 나머지는 훗날 주겠다." 

훗날 주겠다는 것이 돈이 아님을 고 노인은 안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하지만 음부쌍살을 선수금이라 말한 것을 보아 나머지 돈이라는 것은 분 

명 운문세가일 것이다. 자신이 직접 떠들고 다닐 수는 없었기에 누군가 

가 이렇게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운문세가가 오대세가에는 끼지 못한다고 하나 근방에선 이 만 

한 세가가 없다. 당연히 고 노인의 사정을 안다 하여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자들은 없었으리라. 그런데 그토록 바랬던 일이 고 노인에게 이루 

어지고 있었다. 

상대가 너무 강해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아들의 복수, 포기했던 꿈을 이 

룰 수 있다. 

고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와 같이 가지. 하지만 훗날 남은 돈은 분명히 줘야 하네." 

"계산은 확실하게 해 주지." 

고 노인은 오 년 정도 잡지 않았던 망치를 잡기로 마음먹었다. 

                     악양유가(岳陽柳家) 

별 다른 소문도 없이 악양에 세가(世家)가 하나 세워졌다. 악양에 그다 

지 커다랗지도 않은 세가 하나 정도 생긴 일은 별다른 사건이 아니었 

다. 그저 술자리에서 '그런 것이 만들어 졌다며?' 정도로 간단히 끝날 

정도로 이야기 거리에 불과했다. 

호남에는 예부터 내려온 몇 개의 세가가 있다. 

개중에서 가장 강한 세가로 운문세가를 꼽는데 사람들은 아무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남궁세가를 비롯한 여타 오대세가와는 달리 그들은 뛰어 

난 무력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장사 중에서도 가장 이문이 남는 것 중 

인 하나인 소금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물론 그것은 호남에 국한(局 

限) 된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만해도 어디인가. 

운문세가는 소금과 철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렇지만 운문세가 

는 다른 세가들에게서 은근히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제대로 된 

무인이 없는 탓도 있다. 허나, 가장 중대한 이유는 그들이 좋지 않은 일 

을 하는 탓이다. 

사람들이 쉬쉬하고는 있으나, 이미 그건 다 아는 비밀이다. 운문세가는 

정(正)도, 그렇다고 사(邪)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런 일을 왈가왈부하여 운문세가와 충돌을 하려 하 

지는 않는다. 그 정도로 운문세가는 호남에서 힘을 가지고 있는 세가다. 

악양유가라 적힌 현판은 막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번들 번들거렸다. 꽤나 거대한 장원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있었다. 

"자네 들었는가? 이 세가의 가주가 엄청난 미인이라네." 

창고에 쌓이는 물건의 양을 적는 와중에 나타난 담진은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조문산은 그런 담진의 말을 흘려들으며 연신 손을 바쁘게 움직 

였다. 

"진짜라네. 확실한 정보통으로부터 들은 소식이야." 

"아아, 그런가." 

귀찮다는 듯이 조문산이 답했다. 척 봐도 한 귀로 흘린다는 사실을 알겠 

건만, 담진은 쉬지 않고 떠들었다. 조문산은 대충 대꾸를 해주면서 눈으 

로는 짐을 쫓고, 손은 종이 위를 빠르게 미끄러졌다. 

"거참, 한 번 보고 싶은데 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지 모르겠단 말이 

야." 

"제발 닥치고 가서 일이나 하게!" 

참다 못한 조문산이 폭발했다. 

유설린과 여운휘는 세가 안에서 특별히 모습을 비춘 적이 없다. 마교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비록 그들의 모습을 본 사람의 수는 적다고 하지 

만 그렇다고 세가에서 활보를 하고 다닐 수는 없는 법이다. 아직은 꼬리 

가 잡혀서는 안 된다. 

"말하셨던 것은 어제로 모두 준비가 끝났습니다." 

서운철은 유설린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직 제대로 된 수입은 없 

지만, 당영과 삼일의 말을 들어보니 꽤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세가에는 많지는 않지만 무인들이 모였다. 

물론 그다지 많지도 않은 돈에 움직일 만큼 빼어난 자들은 아니다. 그렇 

지만 세가에 사람이 넘치니 왠지 모르게 든든하다. 서운철은 살아오면 

서 많은 일을 했지만 이 같은 일은 처음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죠?" 

"예, 별반 일은 없습니다만…… 한 가지 문제되는 것이 있습니다." 

"뭐죠?" 

"이곳에 오게 된 무인들에 관해서 인데 그들이 조금 멋대로 행동합니 

다." 

나름대로 이 일대에선 힘 꽤나 쓴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만났다. 누가 

더 위인지 겨루기 위해 싸움이 잦았고, 개중에는 하인들에게 행패를 부 

리는 자도 있었다. 확실한 대장이 없는 지금 그들은 통제(統制)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서운철의 선에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라면 여기까지 올라오지도 않았 

을 게다. 하지만 서운철은 무공이 뛰어난 편이 아니다. 서운철로서는 지 

금 이 세가 안에 있는 무인들을 통솔 할 수가 없다. 

"행패(行悖)라……" 

당영에게서 여운휘에 대해 들은 말이 있다. 주주 근방에서 유명하다는 

음부쌍살을 상처 하나 없이 목을 베고 돌아온 남자. 젊은 나이에 어울리 

지 않는 고수인 것 같다고 서운철은 들었다. 

"운휘, 어떻게 할래?" 

"소란을 피게는 할 수 없지. 오늘 저녁에 이곳에 온 무인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라." 

썩은 부분은 서둘러 치료를 해야 한다. 그대로 뒀다가는 더욱 깊게 썩 

어 들어가게 된다. 그때는 치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리를 잘라야 하고, 손을 잘라야 한다. 지금 같이 힘이 부족한 마당에 

손 다리가 잘린다면 앞날은 불 보듯 뻔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그들에게 알려 놓도록 하지요." 

서운철이 나가고 여운휘는 옆에 있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모든 일을 총괄(總括) 할 총관(總管)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 적합한 

자를 만나지 못했다. 지금 나간 서운철을 쓸 까도 생각해 봤지만 무공 

이 너무 약하다. 

머리는 어느 정도 있는 듯 하지만 야망이 없다. 아니, 야망이 없다고 하 

기보다는 어떤 일에 한해서 조금만 힘들 것 같으면 불가능하다고 여긴 

다. 

덕분에 쉽게 포기하고, 안 되는 일은 우선 넘기려고 하는 성격이다. 

서운철은 모든 일을 책임지고 관리 할 총관으로는 적합한 자가 아니다. 

이미 무림맹 같은 곳에선 악양유가의 가주가 누군지 안다. 굳이 얼굴을 

들어 낼 필요가 없으면 최대한 얼굴을 밖으로 노출시키는 것을 자제할 

생각이다. 그렇기에 유설린과 여운휘를 대신해 일을 할 총관이 절실히 

필요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해?" 

"아아……" 

요즘 들어 여운휘의 머리는 쉴새 없이 움직인다. 물론 머릿속을 채우는 

모든 것은 악양유가에 관한 일들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부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지금이야 별 문제가 없지만 곧 주변 세가에서 천천 

히 압력을 가해 올 거다. 

개도 자신의 밥그릇을 건드리면 물려도 달려든다. 하물며 사람이랴…… 

악양유가는 지금 세가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세가들 사이에도 어 

느 정도 구역이라는 것이 있다. 이건 이 쪽 세가가, 저건 저 쪽 세가가 

맡으며 서로 공존(共存)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런 세가의 세계에서 악 

양유가는 남의 밥그릇을 노렸다. 

약할 때는 오히려 상관을 않는다. 하지만 악양유가의 힘이 점점 커지면 

그 때는 목덜미를 물려고 달려 들 것이다. 쓰러지면 그걸로 끝이다. 

진검승부(眞劍勝負)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싸움, 그곳에서 패자가 되어 죽을 수는 없 

다. 

죽을 바엔, 죽이는 자가 되리라. 

지금 가장 먼저 정비해야 할 것은 무력(武力)이다. 

악양유가에 몰려 든 사람의 대부분은 낭인(浪人)이다. 무공을 배운 자들 

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내공을 익힌 자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이 삼류 외 

공 하나 배워서 힘 꽤나 쓴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자들이다. 

항상 다툼 속에서 지냈으니 성격이 거친 것도 당연하다. 

"오랜만에 바깥 구경 좀 하겠네." 

유설린이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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