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137)

"허어, 소협 같은 분은 뵌 적이 없소이다. 도대체 어디 소속이오?" 

삼십 대 중반에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남자가 여운휘에게 말을 걸었 

다. 평소였다면 무시하고도 남았을 그지만 여운휘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 

이 목소리를 높여 답했다. 

"내 이름은 여운휘, 악양에 있는 악양유가 가주의 호위무사다. 그리고 

지금 이 앞에 계시는 분이 악양유가의 가주시다." 

저 정도 되는 실력자가 겨우 호위무사라니…… 사람들은 놀랐다. 악양유 

가는 분명히 처음 듣는 이름이다. 하지만 저런 고수를 겨우 호위무사로 

둔다는 것은 결코 흘려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악양유가라는 이름, 아직까지는 무림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 이 자리 

에 있는 자들의 뇌리 속에는 분명히 박힐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따라 또 다시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질 것이다. 

악양유가라는 이름이 천천히 퍼지기 시작했다. 

무림맹 내에 있던 원로 고수들과 장문인 및 세가의 가주들이 모였다. 

한 쌍의 남녀가 가져 온 서찰 때문이다. 

"이게 정말인가 종리회연?" 

탈백검(奪魄劍) 장명이다. 이미 백세에 들어섰다고 알려진 노고수로, 그 

의 검은 붉은 색으로 요사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요검이다. 혼을 빼앗 

는다고 알려진 그의 검, 그 탓에 그의 별호는 탈백검이다. 

"분명합니다. 이 필체와 이 낙인은 사살 중 삼살의 것이 분명합니다." 

"교주가 죽었다기에 기뻐했거늘, 그게 아니었소이다. 범 대신 호랑이가 

들어온 것 같구려." 

청성파(靑城派)의 장문인은 현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마교 교주였던 

유백명이 요즘 들어 날뛰어 걱정이 많았던 찰나에 그가 죽었다는 연락 

을 받았다. 

모든 일을 해결되었다고 생각했거늘, 오히려 들어선 자는 더 위험 인물 

이다. 

"그나저나 이 종이를 가져 온 그 남녀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던데……" 

이미 그 소문은 무림맹 안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이다. 이들 정도 되는 

자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 말이 나옴에 따라 하북팽가의 현 가주인 팽 

산후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래도 꽤나 기대 하던 자식 중 하나였 

는데 이름도 없는 호위무사의 일장에 나가떨어졌다니 이건 파문 감이다. 

"이런 말하기 뭐 하긴 한데…… 그 자들을 여기서 살려 보내야 하겠소?" 

"파 대협, 그게 무슨 소리요?" 

파엄백은 장명과 마찬가지로 꽤나 나이를 먹은 고수다. 그의 말에 대꾸 

한 것은 종리회연이다. 

"그 남녀가 이 서찰을 받았다는 사실이 의심스럽소. 사살이 있던 곳은 

마교 근천데 왜 저런 남녀가 그곳에 있었단 말이오?" 

파엄백의 나이가 종리회연에 비해 상당히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이 자리에 

서만큼은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종리회연은 무림맹의 머리다. 함부 

로 할 수는 없는 자다. 

"그 자들은 내 생각으로 마교의 간자요! 본론으로 들어서서…… 난 그들 

을 살인멸구(殺人滅口) 하기를 청하오!" 

파엄백의 발언은 이 안에서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특별한 반대를 하지 않았다. 특별한 신분도 없는 자 

들이라 내심 파엄백 같은 생각을 안 했던 것도 아니다. 

"안 됩니다!" 

종리회연이 소리쳤다. 

"왜 안 된다는 말인가? 그들이 마교의 간자라면 어떻게 하려는 건가." 

"그들은 이미 신분을 밝혔습니다." 

"악양유가라 했지. 하지만 난 들어 본 적 없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지금 가는 길에 그 남녀를 죽인다 

면 그 오해가 누구에게 갈거라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파엄백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만약 그 둘이 죽는다면 오해는 분명 하북팽가에게 쏠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하북팽가의 위신은 땅으로 떨어진다. 더군다나 알려지지는 않지 

만 신분이 있는 이상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분명히 소문이 날 것이 

다. 

어제 그 사건이 있기 전이었다면 죽여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지 

금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적어도 그들은 우리에게 

이 종이를 건네 주러 먼 곳에서 온 손님 아닙니까." 

"끄응……" 

파엄백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신음성을 토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끝내기로 하죠." 

종리회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운휘와 유설린은 어제 종리회연과 이야기를 나눴던 곳에서 차를 마시 

고 있었다. 물론 차를 마시는 것은 유설린뿐이고 여운휘는 뒤에 서 있다 

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문이 열리며 종리회연이 들어왔다. 

"이거야 원, 이제야 끝났네." 

"잘 끝나셨나요?" 

"아아 덕분에. 이제 가려고 하는 건가?" 

"예. 회의가 끝났으니 저희는 가려고 합니다." 

"잘 대접해 주지도 못했는데 미안하네. 내 나중에 찾아오면 후히 대접 

해 주겠네." 

유설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무림맹이라는 곳에도 와 보고 분에 넘치는 영광이었 

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훗날 뵙도록 하죠." 

아무 말도 없이 유설린의 뒤를 따르던 여운휘가 고개를 돌렸다. 

종리회연은 여운휘가 자기를 바라보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운휘가 

마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때듯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살아서 돌아가는 군." 

여운휘는 그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 일상적인 말이었지만 종리회연 

은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한 순간에 전기가 관통 

한 느낌이다. 

저 자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운휘라는 

자는 분명 회의에서 자신들을 살인멸구 하자는 말이 나왔을 거라는 것 

을 알았다. 

분명 기척도 없었다. 그리고 그 장소를 아는 사람은 그 안에 모인 사람 

빼고는 없다. 그러니 엿들은 건 확실히 아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단 하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믿고 싶지 않다.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문득 어제 있었던 하북팽가와의 일이 어쩌다가 일어난 것이 아닐 거라 

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계획된 것이라 생각하니 방금 지나간 남자 

에 대한 공포감이 일순 밀어 닥쳤다. 

'저 자는…… 우리의 머리 위에 있었단 말인가?' 

종리회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귀신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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