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137)

세가를 만드는데 필요한 것들이 대충 생겼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것들 몇 가지는 손에 넣지 못한 상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인의 절대적 부족이다. 지금부터 어린애들을 모아 

놓고 차근차근 가르쳐 줄 형편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힘 꽤나 쓰는 

자들을 섭외 해야 한다는 건데, 그런 자들만을 가지고는 오대세가와 어 

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힘 꽤나 쓴다고 찾아오는 자들의 대부분은 평범한 떠돌이일 것이다. 물 

론 그 중에 고수가 있을지도 모르나, 그건 정말 드문 경우고 대부분이 

삼류무사나 간신히 이류무사 정도 되는 실력자들일 것이다. 그런 자들 

을 데리고 다른 세력들과 싸워나가기는 힘들다. 

이번 여정이 끝나면 서둘러 사람을 모아야 한다. 

주주 쪽에서 철을 생산하는 세가가 분명 있을 것이다. 처음엔 주위의 이 

목도 있고 이름도 없는 세가니 내버려두겠지만 커진다 싶으면 뿌리부터 

뽑아내려 할 것이다. 그 전에 힘을 만들어야 한다. 

무림맹은 사천 땅에 위치하고 있다.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긴 하지만 사천성과 호남성은 그럭저럭 가까운 

편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한 달 정도면 왕복도 할 수 있을 거리다. 

여운휘와 유설린은 다른 일은 젖혀두고 우선 무림맹으로 향했다. 오는 

내내 별다른 일 없이 그 둘은 무림맹에 도달했다. 

악양유가를 만들기 위해 산 건물도 꽤나 크다고 생각했지만 무림맹 건물 

에 비하니 작다 못해 허름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허기야, 사파에 마교가 있다면 정파에는 무림맹이니 그 크기가 모두가 

모여 사는 마교에 비해서는 작지만 커다란 것은 당연했다. 

정파인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건물 하나에서라도 사파의 거두인 마교에 

비해 부족하다면 당장이라도 돈을 바쳐서 건물을 늘릴 것이다.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허영(虛榮)에 불과하다. 커 봤자 무엇하겠는가. 실속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우스운 일 아닌가. 

"누구십니까." 

앞에 서서 아무 말도 없이 무림맹을 바라보는 여운휘와 유설린을 보고 

이곳의 문을 지키고 있던 각환이 나섰다. 

"종리회연이라는 자를 만나러 왔다. 안내해라." 

"뭐요?" 

전혀 안면도 없는 자다. 그런 자가 종리회연을 만나러 왔다며 안내하란 

다. 반문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말투로 봐서 이 남자는 종리회연 

을 아는 것 같지도 않다. 

"그 분을 만나려면 며칠 기다리시오. 그리고 신원도 확실치 않으니 아 

마 만나 뵐 수 없을게요!" 

"만나고 안 만나고를 판단하는 건 네가 아니라 그자다. 당장 종리회연에 

게 가서 사살 중 삼살의 부탁을 받은 자가 왔다고 말해라." 

"사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무림맹 쪽에서 비밀로 돌리는 인원이 

라는 이야긴데…… 잠시 망설이던 각환은 나중에 징계를 먹을까 두려워 

우선은 종리회연에게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보시오. 그 분께 말씀드리고 올 테니." 

각환은 옆에 있는 다른 동료들에게 눈짓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이들이 

허튼 짓을 하는지 잘 감시하라는 신호다. 

신호를 보낸 각환은 무림맹의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종리회연은 무림맹 내에서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자다. 책사 

인 그는 머리가 비상하기로 이미 무림맹 내에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종리회연을 유명하게 만든 건 비상한 학식(學識)이 아니라 그의 무공이 

다. 

평소엔 인자하기 그지없는 종리회연이지만 손을 쓰게 되면 그 모습이 마 

치 악귀와도 같다고 칭해질 정도다. 

각환은 종리회연의 거처에 도착해서 조심히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가 찾아오셨습니다." 

"누가 온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문 안쪽에서 어느 정도 연륜이 느껴지는 어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처음 보는 분들인데 사살 중 삼살의 부탁을 받은 분이라고 하셨습 

니다." 

"삼살!" 

차분하게 앉아 차를 음미하던 종리회연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섰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각환은 일순 당황했다. 당연하다. 이런 모습은 본 적 

이 없으니까. 

"문 쪽에 있다고 했느냐?" 

"아, 예. 동쪽 문 쪽에 계십니다." 

빠른 걸음으로 종리회연은 동쪽 문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연락이 끊긴지 꽤 돼서 근심이 심했는데 삼살과 관련된 누가 왔다니 반 

갑기 그지없었다. 사살은 기본 적으로 며칠에 한번씩은 연락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 항상 오던 연락이 끊긴 채로 소식이 없었다. 

도대체 마교에 무슨 일이 있기에…… 

누군가가 왔다니 며칠 동안 머리를 복잡하게 하던 고민이 풀릴 것이다. 

동쪽 문 밖으로 나간 종리회연의 눈으로 낯선 한 쌍의 남녀가 보였다. 

저 둘일 것이다. 

"자네들인가?" 

"종리회연이세요?" 

"그렇다네. 내 이름이 종리회연이지.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함세." 

종리회연은 그 둘을 안으로 이끌었다. 밖에서 나눌 이야기가 아니다. 마 

교에 심어 둔 사살의 존재를 아는 사람조차 무림맹 내에도 별로 없는 형 

편이다. 

한편 여운휘는 종리회연의 뒤를 따르면서도 주변의 모습을 면밀(綿密) 

히 살폈다. 정파 무림인들의 자존심 무림맹이다. 책사 분위기가 나는 종 

리회연을 보는 순간 여운휘는 상대가 고수라는 것을 느꼈다. 

무림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변에 지나가는 자들이 하나 같이 실력들 

이 대단해 보인다. 

흥미가 인다. 

'너희들에게 악양유가의 이름을 심어주지.' 

그것이 여운휘와 유설린이 이곳에 온 목적이다. 

                     무림맹(武林盟) 

무림맹은 정파의 자존심이라 봐도 손색(遜色)이 없다. 그 정도로 정파인 

들의 무림맹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한때 무림맹은 사파의 무리들이 이상한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정파의 무 

림인들끼리 잠시동안 힘을 모으기 위해 만든 단체다. 그런 집단이 지금 

은 아예 관습처럼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자네도 앉지 그러나." 

종리회연은 차를 가져온 시녀를 물리며 말했다. 

여운휘가 자리에 앉지 않는 탓이다. 방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운휘 

는 자리에 앉지 않고 유설린의 뒤에 서 있었다. 

"됐다." 

여운휘의 반말에 종리회연의 아미가 순간 일그러졌다. 동생뻘 밖에 되 

지 않은 자가 반말을 하니 좋게 보일 리가 있겠는가. 

"난 아무에게도 존대를 하지 않는다. 성격이 이러니 이해해 줬으면 하 

는 군." 

"아아, 그런가?" 

일그러졌던 표정이 그나마 나아졌다. 

"자네의 개성이니 뭐라 말은 않겠네. 그래 그보다 삼살이 시켜서 왔다 

고 하던데." 

"시켜서 온 게 아니라, 임종(臨終)을 지켜보고 부탁을 들어주러 왔다고 

해야 정확하겠지." 

"말이 그리 들렸다면 내 사과함세." 

여운휘가 품안에 넣어 두었던 종이를 꺼냈다. 여운휘는 그 종이를 앞에 

앉아 있는 유설린에게 전했고, 유설린은 그것을 종리회연에게 건넸다. 

서둘러 받아 든 종리회연은 서찰(書札)을 펼쳤다. 분명 이 필체(筆體) 

는 많이 보아 온 삼살의 것이다. 

서찰의 내용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보 자체는 무척이나 중요 

한 것이었다. 

마교 교주가 죽고, 부교주 엄백린이 교주로 등극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 

이다. 더군다나 서찰 밑 부분에 적힌 엄백린에 대한 설명을 보니 결코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임종이라 했으니…… 역시 이 서찰을 건넨 자는 죽은 건가?" 

"내게 서찰을 주고 죽었다." 

"허어…… 아까운 녀석을 잃었어." 

그나마 삼살의 서찰은 무림맹에 오기라도 했다. 나머지 일살, 이살, 사 

살은 소문도 없다. 아마 마교에서 죽은 모양이다. 보통 마교를 뒤엎었다 

면 바로 소문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사살 전원이 죽었다는 것은 사전 

에 그들을 알아두었다는 의미다. 

두려운 자다. 정체를 숨기고 있는 사살을 모두 발견할 정도로 능력도 있 

는 자다. 정파 쪽에 자신의 등극을 굳이 알리려 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 

니 분명 뭔가 계략이 있을 게다. 쉽게 끝날 일 같지는 않다. 

분명 피를 봐야 한다. 

기분이 씁쓸하니 마시는 차조차도 평소에 마시던 그 맛이 아닌 것 같 

다. 

"며칠 좀 머물다가 가게나. 이 일을 상부에도 알려야 하고, 자네들에게 

물어봐야 할 게 있을지도 모르니." 

"저희들은 이틀 정도 밖에 시간이 없어요. 늦어도 내일 모래 아침 즈음 

에는 가야 해요." 

"그런가? 알겠네, 내 급히 회의를 열어보도록 하지." 

종리회연은 시비를 불러 여운휘와 유설린을 맡겼다. 그리고 황급히 맹주 

가 있는 곳으로 가려던 종리회연이 고개를 돌렸다. 

"아참, 자네들 이름이 뭔가?" 

"제 이름은 유설린, 이 남자의 이름은 여운휘라고 해요." 

"알겠네. 그럼 편히 쉬고 있게나." 

종리회연이 사라지고 여운휘와 유설린은 시비를 따라갔다. 

과연 무림맹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을 정도다. 겨우 일개 식객(食 

客)이 머무는 곳 일 텐데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화려하다. 아마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이 이곳에 온다면 욕지기부터 치밀어 오를 것이다. 

"히야……" 

유설린이 침대로 쓰러졌다. 묵묵히 짐을 옆에 내려놓은 여운휘는 창문 

을 통해 주변을 살폈다. 마치 주변의 풍경을 음미하듯이 쳐다보고는 있 

었지만 여운휘의 눈은 주변 곳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향했다. 

"감시자가 붙었다." 

"응? 감시자라니?" 

"정체도 모르는 자들이 무림맹에 들어왔으니 당연한 결과지. 비록 그들 

에게 도움을 주려 온 거라지만 어떻게 보면 정보를 주는 척 하면서 들어 

온 밀정(密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 

여운휘는 자신들에게 따라 붙은 자의 숫자도 정확하게 안다. 

두 명이다. 

'그렇게 내가 얕보였단 말이냐. 고작 두 명을 붙일 정도로 이 여운휘 

가……' 

일을 벌여야 하니 적은 숫자의 사람이 감시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 

만 여운휘는 자신에 대한 평가에 못내 기분이 안 좋았다. 두 명이라는 

것은 한 사람 당 한 명, 즉 최소한의 인원을 보냈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가 상당히 얕보인 모양이야. 별로 대단치도 않은 놈 둘을 붙인 것 

을 보니." 

별 상관은 없다. 어차피 지금은 힘이 없으니 당연한 처사다. 하지만 훗 

날, 훗날엔 어떨까? 이 두 명을 스무 명 이상으로 만들 정도의 힘을 가 

질 자신이 있다. 

슬슬 일을 시작해야 한다. 애초부터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갈 마음은 없었 

다. 

"나가자." 

"응. 시작하는 거야?" 

여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이야기 한 바가 있어서 잔 설명은 필 

요 없었다. 둘은 간편하게 검 하나만을 달랑 들고 걷기 시작했다. 

여운휘는 걸으면서 뒤쪽에 신경을 썼다. 역시나 두 명이 따라 붙어서 오 

고 있다. 멍청한 놈들이다. 저렇게 행동해서는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다. 

사곡에서는 살기 위해 모두가 기척을 죽였다. 그리고 기회만 난다면 기 

습을 하고. 그런 곳에서 십 년 이상을 있던 여운휘에게 이들의 행동은 

보지 않아도 알 정도로 뻔했다. 

여운휘와 유설린은 사람이 많은 곳으로 움직였다. 마교 교주였던 유백명 

이 한동안 미쳐 날뛰는 바람에 무림맹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무 

림맹 내부에 있는 주루(酒樓)로 여운휘와 유설린이 들어섰다. 

"저쪽으로 가지." 

여운휘는 사람들의 눈에 띠는 장소를 가리켰다. 평소였다면 가장 구석자 

리를 택했겠지만 지금은 모두의 눈에 들어와야 한다. 이미 몇몇은 유설 

린을 보고 넋이 나갔다. 무림에 몸을 담고 있다면 미녀는 꽤나 수두룩하 

다. 그 중에는 절색(絶色)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여자도 많다. 하지 

만 그런 그들도 유설린만한 미인은 본 적이 없다. 

유설린의 어머니였던 엄여홍도 한때 천하제일미라고 칭해졌다. 그런 엄 

여홍보다 한층 더 젊고 아름다운 것이 유설린이니 시선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왜 이곳에 왔느냐 하면 싸움을 하기 위해서다. 그것도 사람이 적은 곳 

도 아닌 많은 곳으로 온 것도 그 때문이다. 

이름 없는 사람은 필요 없다. 내일 회의에 참석 할 정도의 수준이 되는 

자와 관련이 있는 자여야 한다. 넓은 곳으로 찾아 온 이유는 이 때문도 

있다. 이런 큰 주루라면 분명 자신을 뽐내고 괜히 여자들에게 찝쩍거리 

기 좋아하는 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나설 수 있는 자라면 분명 

힘이 있는 곳의 후손일 것이다. 

유설린을 앉히고 여운휘는 조용히 그 뒤에 서서 주변을 슬쩍 훑어 봤 

다. 이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남자가 많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설린은 가볍게 먹을 것을 시켰다. 

유설린은 뒤쪽으로 고개를 들어 여운휘를 보며 말을 걸었다. 물론 말은 

유설린이 하고 여운휘는 가볍게 대꾸나 해 주는 정도였지만. 

"안녕하십니까." 

누군가가 다가와 유설린의 빈 앞자리에 앉았다. 여운휘와 이야기하는 것 

을 방해를 받아 내심 기분이 나빴지만 계획이 있기에 유설린은 웃었다. 

"안녕하세요." 

"이거야 원, 미모뿐만이 아니라 목소리까지 이러시니 남자 분들의 혼을 

쏙 빼오시겠습니다." 

"그 정도는 아닌데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이런 미인 분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이름이 

어찌 되시는지……" 

"유설린이라 해요. 들어보신 적 없으실 거예요." 

유설린이라, 분명히 처음 듣는 이름이다. 하지만 순순하게 처음 듣는 이 

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점수를 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정도로 그는 바 

보가 아니다. 

"유 소저라…… 어디선가 들어본 듯도 합니다." 

"아, 제 이름만 밝힌 것 같군요. 대협의 존함(尊銜)은 어찌 되시는지 

요?" 

"하북의 자랑스러운 도(刀). 하북팽가(河北彭家) 의 팽산위라 합니다." 

은연중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말투였다. 하북팽가라는 이름은 무림에 

서 결코 그 무게가 가볍다 하지는 못하는 가문이다. 자신의 가문을 들썩 

임으로 인해 상대방의 호감을 얻으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는 팽산위가 자신의 가문을 밝히기만 해도 호감을 가졌 

다. 당연하다. 무림에서 이름을 날리는 오대세가 중에 하나니까. 

"하북팽가의 분이셨군요." 

"그런데 어찌 하여 소저 같이 아름다운 분이 여태까지 소문이 나지 않았 

을지 궁금하군요." 

"제가 집 밖의 출입을 거의 안 해서요……" 

유설린의 말에 팽산위는 심장이 벌렁거림을 느꼈다. 얼굴만이 예쁜 것 

이 아니라 성격 또한 괜찮은 것 같다. 미인들 중에서 성격이 날카로워 

꽤나 상대하기 힘들었던 상대가 많은데 이 여자는 그렇지 않다. 더군다 

나 집 밖에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고 하니 세상 물정도 잘 모를 것이다.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조금만 수를 쓴다면 금방 넘어 올 것이다. 

'흐흐, 그 년 참 귀엽다.' 

속으로 음탕(淫蕩)한 생각을 하는 것과는 달리 겉으로 팽산위는 선비 같 

이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팽산위는 약간 커다란 몸집에 얼굴도 곰보가 

있어 잘 생긴 것과는 거리가 먼 외모다. 하지만 그러한 약점을 없애주 

는 것의 하북팽가라는 그의 가문과 팽산위의 도법 탓이었다. 

후지기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를 무시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사람은 

무림맹 안에 없을 것이다. 

웃으면서 유설린을 바라보던 팽산위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마음에 안 든다. 유설린의 뒤에 서 있는 남자가 팽산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 큰 편의 키에 군살 하나 없는 몸, 더군다나 얼굴은 옥을 

깎아 놓은 것 같은 미남이다. 

"자네도 자리에 앉지 그래." 

하대도 존대도 아닌 애매한 말투로 팽산위는 여운휘에게 말했다. 

팽산위가 유설린과 대화를 하는 동안 여운휘는 상대를 파악했다. 이 정 

도면 쓸만한 물건이다. 하북팽가라 하니 도법에 일가견(一家見)이 있을 

테고, 몸을 보아하니 신력에 꽤나 자신이 있는 자일 것이다. 

"어이, 내 말이 들리지 않아?" 

"네가 꺼지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멍청아." 

"무, 뭐라고 했냐 지금?" 

여운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쾅! 

팽산위의 손이 앞에 있던 탁자를 부쉈다. 태어나서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들어본 것은 처음이다. 물론 팽산위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뒤의 

하북팽가라는 이름 탓에 기분이 나빠도 속으로만 삭혔다. 그랬기에 평 

생 쓴 소리 한 번 제대로 들어 본 적 없는 팽산위로서는 화가 솟구쳤다. 

"당장이라도 용서를 빈다면 내 너그러이 용서해 주지." 

"당장이라도 네가 미남이 된다면 생각해 보지." 

"이 새끼가!" 

자신의 말투를 따라하며 놀리는 여운휘에게 팽산위는 주먹을 휘둘렀다. 

여운휘는 피할 수도 있었지만 앞에 앉아 있는 유설린이 다칠지도 모르기 

에 그냥 그 손을 잡아 버렸다. 

바위도 부수는 팽산위의 주먹이다. 이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것을 알았기에 눈을 찔끔 감아 버렸다. 근데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 

자 눈을 감았던 자들은 모두 눈을 뜨고 그쪽을 바라봤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먹을 휘두른 팽산위의 주먹을 잡은 그 남자가 

오히려 손을 비틀어 버린 것이다. 

"아, 아악! 당장 안 놔!" 

"생긴 건 곰 같은 게 손은 아이의 고사리 주먹 같군." 

여운휘의 악력에 팽산위는 주먹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핏줄이 툭툭 붉 

어지며 얼굴을 비롯한 몸 모든 곳에서 솟구쳤다. 

얼굴은 새빨개지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여운휘가 손을 놨다. 

팽산위는 다시 여운휘가 손을 잡기라도 할 줄 알았는지 오른손을 재빠르 

게 왼손으로 감싸 쥐고 신음성을 내뱉었다. 

"으으……" 

보는 것과는 달리 굉장한 실력을 지닌 것 같지만 물러설 수는 없다. 가 

문의 이름이 걸린 일이다. 지금 물러난다면 두고두고 이 일이 회자(膾 

炙)되리라. 

"당장 나와!"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순 없다. 

"마음대로." 

그리고 여운휘는 그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자 한다. 

여운휘의 계획이 착착 맞아 떨어졌다. 

나오라고 호기롭게 외치기는 했지만 팽산위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당연 

하다. 방금 전의 악력은 신력이 좋다고 소문 난 자신조차도 견디기 힘 

든 수준이었으니까. 

누굴까? 저런 외모의 남자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없다. 유설린이라는 

여자도, 자신의 주먹을 잡은 이 남자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자들이다. 이 

정도의 외모라면 소문이 나고도 남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 

는 게 없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팽산위가 도를 뽑았다. 상대방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공포가 몸을 엄 

습한다. 팽산위는 차라리 속전속결이 나을 거라 판단했다. 겉보기와 다 

르게 힘은 강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진다는 보장은 없다. 

유설린과 함께 나온 그 남자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풀었다. 

"이름이 뭐냐." 

"여운휘." 

역시 들어 본 적이 없다. 차라리 어느 정도 들어 본 이름이라면 어떻게 

대처(對處)라도 할 텐데 너무나 생소(生疎)하다. 

더 묻지도 않고 팽산위는 기습적으로 도를 휘둘렀다. 도가 지척(咫尺)까 

지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운휘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거 애송이잖아!' 

팽산위는 휘두르던 도를 멈추려 했다. 이건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싸움 

이 아닌 비무인 탓이다. 막 멈추려는 순간 여운휘의 옆구리 쪽에서 솟 

아 오른 검이 팽산위의 도를 막았다. 

카앙! 

강하게 휘둘렀다고는 하지만 힘이 빠지는 찰나에 부닥치니 당연히 팽산 

위의 도가 쉽게 뒤로 밀려났다. 팽산위의 얼굴이 순간 붉은 색으로 변했 

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속수무책으로 밀린 것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그의 예상대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자들의 대부분은 저런 각도로 검 

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팽산위의 도가 밀려나자 놀람을 금치 못했다. 

팽산위의 힘을 익히 안다면 저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이 놈이!" 

팽산위는 발끈했다. 팽산위의 도가 여운휘의 가슴을 박살이라도 낼 듯 

이 다가갔다. 

여운휘가 움직였다. 팽산위의 도는 애꿎은 허공을 벴다. 그리고 도를 가 

볍게 흘린 여운휘는 팽산위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쳐냈다. 

퍼엉! 

몸의 어느 부분이 터져 나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팽산위가 뒤로 날아갔 

다. 수면(水面) 위에 돌을 던져 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팽산위가 

딱 그때의 돌 같은 처지였다. 몇 차례 땅과 부닥치며 퉁기던 팽산위는 

뒤에 있던 건물과 부닥치며 간신히 멈췄다. 

"크르륵……" 

맹수의 낮은 울부짖음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팽산위 

는 게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은 채로 하늘을 보는 듯이 누워 있었다. 

주변은 오히려 조용했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이 구경 

꾼 중에서 과연 몇이나 될까? 여운휘가 주루 안에서 팽산위의 손을 꺾 

은 것이 놀랍긴 했지만 그게 끝일 거라 생각했다. 도를 든다면 상황이 

바뀌리라 그들은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 

다. 

진 것만 해도 놀라운데 지는 과정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간단하게 

도를 쳐낸 것에 대한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단 일장에 팽산위를 날 

려 버렸다. 

저 커다란 거구가 수면에서 퉁겨 오르는 돌처럼 날아가는 모습은 가히 

가관(可觀)이라 부르기 충분했다. 

"이, 이야!" 

누군가가 조용했던 수면에 파문을 일으켰다. 한 남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적막했던 그곳은 금방 소란스럽게 변했다. 

당연하다. 힘 꽤나 쓴다고 알려진 팽산위를 이름조차 없는 남자가 단 일 

장에 날려 버렸으니 흥분이 일 수밖에 없다. 여운휘는 담담하게 검을 검 

집에 집어넣고 다시 여인의 뒤로 가서 섰다. 

"안으로 들어가자." 

"어." 

여운휘가 검을 검집에 넣자 눈치를 보고 있던 두 명의 남자가 서둘러 팽 

산위를 부축하고 주루의 반대쪽으로 사라졌다. 

막 싸움을 마쳤건만, 여운휘는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너무나 쉬 

운 상대였다. 중간에 도에서 힘을 뺀 후 너무 무턱대고 달려들었다. 하 

북팽가의 도법을 쓰면서 시간을 벌었다면 조금 더 버텼을 거다. 그런데 

흥분이 팽산위의 판단력을 잃게 만들었다. 

여운휘와 팽산위의 싸움을 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주루 안으로 들어 

가던 그 둘의 뒤를 따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친해지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자라면 훗날 이름을 날 

릴 게 분명하다. 지금 친해 둔다면 나중에 큰소리 한 번 칠 수 있을 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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