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37)

                         이변(異變) 

교주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이 깨진 건 이미 오 

래다.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린린과 진고림은 고양 

이 앞에 쥐 꼴이다. 

무림인이 아닌 린린은 진고림보다 더욱 두려웠다. 교주의 육장이 당장이 

라도 자신의 몸을 터트려 버릴 것 같았다. 린린의 목구멍으로 살려달라 

는 말이 치밀고 올라왔지만 뱉어 낼 수가 없다. 왠지 그 말을 했다가 

는…… 오히려 죽을 것 같다. 

"내 딸이…… 없다고?" 

"넵!" 

"예!" 

진고림과 린린은 시키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대답을 내뱉었다. 

그들은 지금 극도(極度)의 긴장상태였다.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이 마당 

에 당연한 결과다. 손가락 한 번의 움직임, 숨을 들이키는 단 한 번의 

행동으로도 목숨을 잃을 것 같다. 교주는 손속에 사정이 없다. 

예전이었다면 이토록 두렵지는 않았으리라. 

교주는 변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을 방불(彷彿)케 할 정도로 교주는 예 

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 언제 없어졌지." 

"아마 이틀 전쯤에……" 

"그동안 뭘 했나!" 

쾅! 

교주의 손이 옆에 있던 탁자(卓子)를 부쉈다. 린린은 실신(失神)할 것 

만 같았다. 방금 부서진 저 탁자가 자신의 머리로 비춰 보인 것이다. 

교주의 지금 같은 공격이 자신에게 들어온다면? 린린은 당연히 버텨낼 

수 없고, 무공을 익힌 진고림이라 할지라도 피할 수 없다. 

마교 교주는 강하다. 물론 교주가 마교에서 최고의 고수는 아니다. 마교 

에 있는 장로들 중에는 이미 백수(白壽)를 훨씬 넘긴 노인들이 많다. 그 

들은 교주 보다 갑절 이상을 살았다. 당연히 그들의 무공 실력은 교주 

보다 한 발 앞선다.   

하지만 교주와 진고림은 실력이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평생을 메우려 

해 봐도 일부조차 메울 수 없는 도랑…… 

"소, 소교주님께서 식사를 가져오지 말라 하셔서……" 

"그 놈! 호위무사 놈은 뭘 했다는 말이냐!" 

교주의 머리에 여운휘가 떠올랐다. 항상 옆에 있었어야 할 호위무사 놈 

이 도대체 어떻게 빈틈을 보였기에 소교주가 도망간다는 말인가. 더군다 

나 이틀이나 지난 지금에 보고가 올라오는 것은 또 뭐고. 

"그 자도 없었습니다." 

"뭐?" 

호위무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건방졌던 남자, 그 자의 이름 

이…… 

'이름이…… 뭐였더라. 여…… 여운휘!' 

교주 유백명은 여운휘의 이름을 떠올렸다. 교주가 봤을 때 여운휘라는 

자는 대단한 실력자다. 무공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자신의 딸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 놈이!" 

호위무사가 나가는 것을 도와줬다. 아니, 도와주진 않았다 해도 방관(傍 

觀)했을 것이다. 그 호위무사가 자신의 딸을 데리고 나갔다. 

"당장 사람을 풀어 마교를 샅샅이 뒤져라!" 

교주는 뒤에 있는 자신의 수하에게 말했다. 

"저기 어떻게 찾으라는 말이신 지." 

"뭘 어떻게 찾으라니! 마교를 쥐잡듯이 뒤지면 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아무도 소교주님의 얼굴을 모릅니다. 심지어 그 호위무사 

조차." 

그랬다. 마교에서 소교주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교주를 포함해서 몇 되 

지 않는다. 그들이 이 넓은 마교를 전부 뒤질 수는 없는 것이다. 뒤질 

수 있다 하여도 그건 하루 이틀 안에 끝날 일이 아니다. 

특징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이만한 키에 피부는 하얗고 예쁘게 생긴 여자들, 그 중에서 열 댓 살 

이상 스물 이하로 보이는 여자들은 모두 잡아 들여!" 

우선은 마교 안을 찾는다. 교주는 아직 마교 밖까지 나갔을 거라고는 생 

각지 않았다. 교주는 말을 덧붙였다. 

"만약 호위무사로 보이는 자가 심하게 반발하면 죽여도 좋다! 아니, 반 

병신을 만들더라도 살려서 데리고 와라! 내가, 이 내가 손수 죽여줄 테 

니!" 

린린과 진고림은 운이 좋았다. 마교 교주의 분노가 여운휘에게 향하면 

서 그들은 목숨을 부지했다.   

'내 딸의 안위를 떠나 네 놈을 죽여버리고 말 테다!' 

마교에는 일대 난리가 벌어졌다. 웬만한 외모에 스물보다 조금 못 미치 

는 여자들을 무작정 끌고 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일에 대해서 마 

교 내부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그리고 마교 내에서 교주에 대한 원성(怨聲)은 커져만 갔다. 

딸을 빼앗긴 아낙네가 울었다. 갓 결혼한 남편이 아내를 빼앗겼다. 그 

원망은 모두 이 일을 시킨 마교 교주 유백명에게 향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엄백린은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엄백린은 대충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안다. 마교 교주의 행동에 많은 무인들이 실망했 

다. 그들은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까 어쩔 수 없었다. 

엄백린은 기회라 생각했다. 

몇 달에서 반 년 후에나 벌이려던 계획, 그것이 당겨졌다. 당장 일을 벌 

여도 문제는 없지만, 소교주를 찾기 전에는 서둘러 움직일 수 없다. 

계획은 소교주가 돌아온 후에 시작될 것이다. 

"사무린." 

"예." 

"때가 됐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엄백린의 옆에 서 있던 사무린이 화사(華奢)하게 웃었다. 예전보다 더 

욱 성숙해진 외향은 아내가 있는 남자들조차 마음이 흔들리기 만들 정도 

였다. 

외모는 변했지만, 사무린의 내면은 예전과 다름없다. 사갈(蛇蝎) 같은 

여인이 웃는다. 하지만 그 미소만을 본다면 너무나 아름답다. 

"일이 끝나면 침실(寢室)로 와라." 

"예." 

다시 한 번 사무린이 웃었다. 사무린은 남자를 홀리는 요녀(妖女)다. 

여운휘와 유설린은 마교에 도착했다. 이제 저 장원만 넘으면 마교다. 유 

설린은 다시 한 번 장원을 넘으려 했다. 여운휘가 그녀를 막았다. 

"밖에 쪽은 나무 같은 게 근처에 없어서 넘을 수 없을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유설린은 당황하지 않았다. 여운휘라면 이미 방도를 생각했으리라. 그리 

고 그런 유설린의 생각은 정확했다. 

마교에 사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장원을 넘으라고 주변에 나무 같 

은 것을 놔둘 리가 있겠는가. 애초부터 들어올 때는 나갈 때와 같은 방 

법을 쓰고자 하지도 않았다. 

"당당하게 들어간다." 

여운휘는 문으로 들어가려 한다. 문으로 나올 수는 없었겠지만 들어가 

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다. 

물론 보초가 허술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여운휘나 유설린 모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거의 

불가능하다 봐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그 둘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문에는 두 명의 무사가 서 있다. 물론 안으로 들어서면 셀 수도 없을 정 

도의 무수히 많은 무인들이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저 둘 뿐이다. 그 

중 한 명인 묵철은 예전에 여운휘와 만난 적이 있다. 

청송자를 따라 여운휘가 이곳을 왔을 때 묵철은 그 당시에도 이곳을 지 

키고 있었다. 그로부터 거의 이십 년에 달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묵철은 이곳을 지킨다. 

"뭐냐." 

여운휘는 묵철의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반면 묵철은 여운휘의 얼굴 

을 보면서 예전의 그 아이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여운휘는 너무나 많이 변했고, 그 둘이 만난 순간은 정말 찰나라 해도 

될 정도로 짧았다. 기억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마교에 들어가려고 한다. 이 안에서 사는 자다." 

"너희 같은 자들이 나갔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웬 말도 안 되는 

개소리냐." 

"당연하지. 우리는 장원을 넘었으니까. 봤다고 말했다면 그건 거짓말이 

겠지." 

"장원을…… 넘었다고?"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묵철의 검이 뽑히며 여운휘의 목덜미를 향해 날 

아들었다. 여운휘는 검을 피하면서 유설린의 앞에 섰다. 호위무사에게 

첫째 할 것은 지켜야 할 사람의 안전이다. 

"정말 이 안에서 나온 자라면 신분을 밝혀라. 아니면 벤다." 

묵환 정도 되는 자를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운휘 

는 싸울 마음이 없다. 

"우리의 신분은 밝힐 처지가 아니다. 대신 우리를 증명해 줄 사람을 말 

하지." 

"너희를 증명해 줄 사람?" 

웬만한 자로는 불가능하다. 마교에 사는 사람이라고 모두 증명해 줄 사 

람이 될 수 없다. 확실한 신분이 있는 자, 그런 자만이 가능하다. 

"귀도 풍유랑. 그 자를 불러라." 

"…… 네 놈이 미쳤구나."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귀도 풍유랑이 누구인가. 마교 내에서도 그 이름 

을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쟁쟁한 자다. 그런 분을 부르는데 친구처 

럼, 아니 수하를 부르듯이 말한다. 미치지 않고서는 이럴 순 없다. 

"부르면 알 것 아니냐. 불러봐라. 내가 미쳤는지, 아니면 정상인지. 

아, 그 자가 누가 부르냐고 하면 여운휘라고 하면 될 거다." 

"…… 잠시 기다려라." 

너무나 당당하기에 묵철은 우선 돌아가서 보고하기로 했다. 묵철은 살며 

시 손가락 두 개를 폈다. 한시라도 방심을 하지말고 비상 대기하라는 수 

신호다. 

묵철은 꽤나 난감했다. 귀도 풍유랑은 만나기 힘든 자다. 찾아간다 해 

도 만날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역시나 였다. 지금 무공 수련중이라며 이따 저녁까지 기다리라는 전갈 

이 온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저녁이 되려면 멀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묵철은 풍유랑의 수하에게 말했다. 

"여운휘라는 자가 찾는 거라고 다시 한 번 전해 주십시오." 

풍유랑의 수하가 다시 사라졌고, 그 자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하나였던 

사람이 둘로 변해 있었다. 

"여운휘라고!" 

"아, 예. 분명히 제게 그리 말했습니다." 

도대체 그가 누구기에 이런 반응인가. 묵철은 여운휘의 정체가 궁금했 

다. 도대체 누구길래 풍유랑 조차도 이런 반응을 내 비추는 것일까. 

"문에 있다고 했겠다?" 

"예." 

묵철이 뭐라 말을 잇기도 전에 풍유랑은 그의 눈에서 사라졌다. 

'누굴까.' 

묵철은 여운휘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저런 거물조차도 놀라게 만들만한 

자라니…… 

묵철이 멍하니 서 있는 동안 풍유랑은 서둘러 문 쪽으로 달렸다. 절정고 

수답게 풍유랑의 신법은 놀라웠다. 

풍유랑이 나타나자 여운휘와 유설린에게 주목하고 있던 모두가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이군." 

"여운휘…… 그리고……" 

풍유랑은 유설린을 보고 소교주님이라고 말을 하려다 멈췄다. 해서는 

안 된다. 아마 교주도 그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나갔던 거냐." 

"그래." 

"목숨을 부지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가?" 

너무나 태연한 여운휘의 모습에 오히려 풍유랑은 화가 났다.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토록 죽고 싶나? 죽고 싶다면 왜 그곳에 

서 살아 나왔나!" 

그토록 행실을 조심하라 했거늘, 여운휘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풍 

유랑은 소교주가 사라졌다는 것을 안다. 교주는 거의 미치다시피 화를 

냈고, 잡혀 온 여자들은 모두다 손수 검사했다. 

풍유랑은 옆에서 교주의 모습을 봤다. 자비를 기대 할 수는 없다. 

분명히 여운휘를 죽이려 할 것이다. 여운휘의 죽음은 거의 기정사실(旣 

定事實)로 변한 상태였다. 

"예전이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죽을 수 없다. 할 일 

이 있거든." 

"네 맘대로 될 일이 아니다. 내가 한 번 말은 해 보겠지만…… 널 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들어가기나 하지. 지금 이 쪽은 피곤한 상태다." 

여운휘도 풍유랑의 마음을 알기에 소교주라 칭하지 않고 이 쪽이라 칭했 

다. 풍유랑은 한숨을 내쉬고 문을 지키는 무인들에게 물러서라는 신호 

를 보냈다. 

몰래 몸을 숨기고 상황을 주시하던 무인들이 모두가 제자리를 찾기 위 

해 움직였다. 풍유랑은 소교주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기 시작했 

다. 

"어디로 갈 거냐." 

"거처로 돌아간다." 

"교주님께서 찾아가실 거다. 그리고 넌…… 죽을 거다." 

"말했지. 난, 죽지 않을 거다." 

풍유랑은 언제부터 여운휘가 이런 억지나 부리는 남자가 됐나 생각했 

다. 옛날에는 분명히 무모하긴 하지만 계산 하에 움직이던 남자였다. 지 

금도 다른 수가 있다는 건가? 

하지만 마교 교주의 모습을 봤을 때 어떤 계획을 지녔더라도 그것은 통 

하지 않을 것이다. 말도 채 하기 전에 여운휘의 머리는 박살이 날 것이 

다. 사지가 잘릴 것이고, 눈이 뽑힐 지도 모른다. 

그런데…… 방법이 있을까? 

분명 여운휘는 허튼 소리를 하는 남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상황 

에서 빠져나갈 방도가 없다. 교주를 설득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서 쉬고 있어라. 내가 교주님께 말씀드리지." 

"그러던지." 

마치 자신이 여운휘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다. 

유설린과 여운휘는 거처로 향했고, 귀도 풍유랑은 교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풍유랑에 눈에 들어온 교주는 초조해 보인다. 딸이 관 

련된 일인 탓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라도 눈 깜짝하지 않았을 

테고. 

"교주님." 

"뭐냐!" 

날카로운 상태다. 풍유랑은 잠시 여운휘를 떠올렸다. 

'미안하다, 여운휘. 지켜 줄 수 없을 것 같구나.' 

말이 먹혀 들어갈 상태가 아니다. 바보 같은 녀석 그러기에 왜 그런 행 

동을 한다는 말인가. 

풍유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이 돌아오셨습니다." 

거처로 돌아온 여운휘와 유설린은 짐을 내려놓았다. 곧 교주가 들이닥 

칠 텐데 여운휘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오히려 당사자인 여운휘보다 유 

설린의 얼굴에 걱정의 빛이 스쳤다. 

원만히 넘어갈 상대가 아니다. 상대만 안 좋은 것이라면 그나마 낫다. 

상대뿐만이 아니라 상황도 최악이다. 최악의 상대, 그런 상대에게서 절 

대 건드려서는 안 될 부분을 건드렸다. 

여운휘가 고개를 들었다. 

'왔군.' 

아직 장원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살기다. 교주가 자신을 죽이 

려 할거라는 것을 여운휘도 안다. 이미 이곳을 나가기 전부터 예상했던 

일 아니던가. 문제는 예상만큼 자신이 강해졌느냐다. 

이곳은 조용하고 다 좋은데 무공의 성취를 알 수 있는 비무를 할 수 없 

다. 어느 정도 대결 경험이 있다면 이 정도면 누구까지는 무난하겠다는 

것을 알겠지만 그런 잣대를 정할 만큼 싸워 본 적이 없다. 

여운휘는 검을 들었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싸구려 검이다. 무기는 

승부를 결정지을 때 중요한 물건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무기가 다는 아니다. 

삼류무사가 검을, 고수가 나뭇가지를 들었다 해서 삼류무사가 이기지 않 

는다. 

검을 들어 올린 여운휘는 검집을 뽑아서 허리에 찼다. 갑작스럽게 여운 

휘가 검을 뽑자 옆에 있던 유설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갑자기 검을 뽑……"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박살내며 무엇인가가 안쪽을 향해 폭풍같이 밀 

려들었다. 문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상당하건만 도달하는 데는 고작 

숨 한 번 들이 쉴 정도로 찰나였다. 

콰앙! 

폭탄이 터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엄청난 소리 

다. 귓가를 울릴 정도의 소리를 낸 것은 폭탄이 아닌 거대한 도였다. 

"죽여주마, 이 겁도 모르고 날 뛰는 애송아!" 

이토록 거대한 도를 마치 가벼운 목검(木劍)을 든 것처럼 휘둘러대는 자 

는 유백명이었다. 유백명의 도는 엄청났다. 어째서 그의 별호가 냉철거 

도(冷徹巨刀)가 되었는지 알게 만들어 줄 정도의 거대한 대도(大刀)였 

다. 

보통 사람은 들을 수도 없는 무게이거늘, 교주는 땀 조차 흘리지 않았 

다. 

"아버지!" 

자신을 부르는 딸의 목소리에 교주는 잠시 고개를 돌려 유설린을 바라봤 

다. 다행히 다치거나 한 곳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용서 할 생각은 없다. 

태산도 잘라버릴 듯한 힘이 위쪽에서 느껴지기 시작하자 여운휘는 인상 

을 찌푸렸다. 타고난 근력(筋力)이다. 여운휘도 꽤나 힘에 자신 있는 편 

이긴 했지만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니…… 

교주의 검을 옆으로 밀쳐내며 여운휘가 제대로 자세를 잡았다. 

부교주에게도 패했던 자신이다. 이길 방도는 하나밖에 없다. 

'오행검법(五行劍法)이다.' 

교주마저 탐했지만 익히지 못했던 무공이다. 이 무공이라면 상대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운휘는 목(木)의 기운을 일으켜 세웠다. 눈이 맑아지면서 근육들이 움 

직였다. 목의 기운이 가져다 주는 효과다. 

유백명은 쉴 시간도 주지 않고 여운휘에게 자신의 대도를 휘둘렀다. 양 

손으로 휘두르는 대도에서는 악령(惡靈)의 울음소리라고 생각 될 정도 

의 음산(陰散)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람을 베는 소리다. 하지만 그 

소리는 또한 악령의 소리라 해도 무방했다. 

그 소리를 들었던 자의 대부분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이 단 일격을 막 

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거다. 

풍운일섬(風雲一閃)이라는 초식이다. 바람과 구름마저 가른다 하여 붙여 

진 이름답게 일격에는 거력(巨力)이 담겨져 있다. 

풍운일섬은 교주가 즐겨 사용하는 초식이다. 풍운일섬을 펼치면 엄청난 

위력도 위력이거니와,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대도에 놀라 황급하게 막으 

려 한다. 막은 자들이 많았지만, 결과는 모두 팔이 부러지거나 자신의 

무기와 함께 반으로 잘렸다.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없다면 피해야 한다. 교주는 여운휘가 피할 거라 

고 생각했다. 

그런데 달려들었다.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텐데 자신의 검을 들고 

오히려 달려 든 것이다. 

'끝이다!' 

끝난 것과 다름없다. 똑똑한 놈이라 생각했거늘, 착각이었다. 멍청이 

다, 멍청해도 보통 멍청한 놈이 아니다. 분명 처음의 격돌에서 힘의 차 

이를 알았을 텐데 무작정 부닥쳐 오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게다. 

풍운일섬이 속도가 굉장한 편이긴 하지만 방금 전에는 거리도 있었고 자 

세도 갖춘 상태라 분명히 피할 수 있었다. 

멍청한 놈이 아니면 막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거다. 

교주는 전자일 거라 짐작했다. 

교주의 대도를 향해 여운휘가 검을 든 채로 몸 째 밀어 붙였다. 

대도가…… 멈췄다. 멈춘 건 대도뿐만이 아니었다. 교주의 머릿속은 일 

순 텅 비어 버렸다.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모를까 불가능하다 

고 생각한 것을 막아냈다. 기회를 잘 잡은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힘을 

쏟아 부은 일격이다. 

성공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실패했다. 

여운휘를 얕보았던 시각이 싹 걷혔다. 분명 어린놈이긴 하지만 약한 자 

는 아니다. 풍유랑이 자신에게 미래가 기대 된다고 말했던 이유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방금 그 일격을 받아 낼 자는 마교에서 손으로 꼽을 

수 있었다. 피하는 거라면 몰라도 막을 자는 그 정도 뿐이다. 

"네 놈……" 

"아버지 멈추세요!" 

놀란 눈으로 여운휘를 바라보던 유백명의 귀에 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 

다. 자신의 딸을 보자 유백명은 잠시 놀랐던 가슴을 추슬렀다. 딸을 위 

해서 여운휘는 없어져야 할 존재다. 아니, 교주가 보기엔 그랬다. 

여운휘가 자신의 딸에게 어떠한 존재일까라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유 

백명은 무공을 익히느라 혼자인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에겐 

자유가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사람을 만나 봤다. 

유백명은 외로움을 모른다. 그러니 딸의 외로웠던 마음을 그가 알 리가 

없다. 여운휘가 유설린에게 어떠한 존재인지 교주는 모른다. 그저 자신 

의 딸을 위험에 빠트렸던 자라고만 생각 할 뿐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 

도. 

"아버지! 제발 그만 두세요!" 

언제 자신의 딸이 이토록 언성(言聲)을 높였던가. 항상 조용하면서도 상 

냥한 어조로 말을 하던 딸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보지 못했던 딸의 모 

습이다. 느껴 본 적 없는 딸의 기분이다. 항상 웃기만 하는 줄 알았는 

데 화를 낼 줄도 아나 보다. 

교주는 처음 알았다. 

자신의 딸이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한 것인데 교주는 그것을 알 

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네 놈은 내 딸에게서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죽여주마." 

"멍청한 놈. 네 놈이 아버지라면 정신 차려라." 

"뭐야!" 

"가둬 둔다고 행복은 찾아오지 않아." 

싸움에 들어서서 여운휘가 처음 입을 열었다. 여운휘는 유설린의 생각 

을 대신해서 말을 했다. 자신이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유설린 또한 느끼 

고 있다고 생각했다. 

"밖에 나가서 나쁜 일을 당하는 것보다는 갇혀 있는 것이 행복한 거다!" 

"시끄러 이 멍청한 자식아!" 

여운휘가 고함을 쳤다. 여운휘가 이토록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유설린마저도 처음 보았다. 항상 무뚝뚝하고 감정 절제가 철저한 탓이 

다. 

유설린은 여운휘가 감정을 드러내서 놀랐지만 교주는 그렇지 않았다. 

이 심후(深厚)한 내력은 뭐란 말인가. 마치 예전에 겨뤄 본 소림의 고승 

(高僧)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어린 나이에 이 정도로 심후한 내력을 지 

니게 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네가 외로움을 알아? 친구를 가지고 싶은 마음을 네 놈이 알 턱이 없겠 

지." 

반말뿐만이 아니라 하대까지 한다. 교주의 미간에 주름이 접히며 눈이 

매섭게 변했다. 

"감히…… 훈계(訓戒)하는 거냐. 나, 이 마교 교주 유백명에게!" 

"훈계가 아니다. 하도 멍청한 소리만 해 대기에 조롱(嘲弄)하는 거야." 

훈계라 해도 화가 나는 판에 조롱이란다. 일개 호위무사가 마교의 주인 

인 교주를 조롱한다고 말했다. 

"뭐라…… 조, 조롱?" 

이게 꿈이 아닌가 유백명은 생각했다. 자신의 일격을 막아 낸 것부터 해 

서 지금까지 모든 게 현실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유백명은 지 

금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안다. 손끝에 느껴지는 미묘한 감각이 이것이 

꿈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넌 딸에게 사과해야 해. 알겠냐 멍청이?" 

"내가 내 딸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난 내 딸 

에게 잘못한 게 없다! 이토록 사랑해 주었는데 내가 왜……" 

"넌 네 딸의 십 칠 년 인생을 빼앗아 갔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한 이유 

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격하게 일었던 분노가 천천히 식어 가는 느낌이다. 여운휘의 말에 교주 

는 얼이 빠졌다. 자신이, 그토록 딸을 사랑하던 자신이 그 사랑하는 당 

사자의 인생을 빼앗았단다. 십 칠 년이라는 긴 시간을 자신이 빼앗은 거 

란다. 

분한 건…… 반박(反駁)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딸을 위험에서부터 멀리 있게 하려고 한 행동이다. 교주는 그것을 옳다 

고 생각했다. 여운휘의 지금 말도 그냥 넘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교주 

를 괴롭게 한 것은 유설린의 눈빛이었다. 

여운휘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아니었다면 아니었다고 말했으 

리라. 그토록 사랑했는데 오히려 그 사랑이라는 것이 상처를 줬다고 생 

각하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자신의 아내가 죽은 후 미친 듯이 도를 흔들었다. 자신에게 충직(反駁) 

했던 수하도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마치 몇 년간의 세월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교주가 도를 스르륵 내렸 

다. 

"저 놈의 말이 정말이냐?" 

"전…… 친구가 가지고 싶었어요, 아버지." 

"그러냐. 내가…… 몹쓸 아비였던 모양이구나." 

친구가 가지고 싶었다는 말에 교주는 여운휘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 

실을 알았다. 사랑한다고 해 놓고 이게 무슨 짓인가. 

교주는 피식 웃었다. 

"미안하구나. 내가 네 마음을 몰라서. 곧…… 이곳에서 나가게 해 주 

마." 

"아, 아버지!" 

"나가면 안 좋은 일도 많을 거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물론이에요!" 

나가게 해 준다는 말에 유설린은 신이 났다. 이제는 혼날 걱정 없이 밖 

에 나갈 수 있다.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 

다. 

"알겠다. 그럼 난 이만 가도록 하지. 오늘은 편히 쉬거라. 조만간 사람 

을 보내마." 

교주는 휘청거리며 몸을 돌렸다. 몸에 힘은 쭉 빠졌지만 왠지 모르게 마 

음은 개운했다. 교주와 여운휘의 눈이 마주쳤다. 

교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건방진 놈." 

"…… 당신은 멍청이야. 아니 정신을 차렸으니 이제 멍청이는 아닌가." 

교주는 다시 한 번 웃더니 소교주의 거처를 벗어나기 위해 걷기 시작했 

다. 그동안 뭐에 홀렸는지 너무 피를 본 것 같다. 

'내일은 수하들이나 모아서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해야겠군.' 

수하들과 잔을 들어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예전엔 일 

주일이 멀다 하고 수하들과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렀거늘…… 

'재미있는 것들을 잊고 지냈군.' 

오늘은 왠지 모르게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아주 푹…… 

교주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시비가 건네주는 차를 받았다. 

차 맛이 조금 씁쓸한 것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은 교주는 입을 땠다. 평 

소에 마시던 차인 건 분명한데…… 

"왠지 차 맛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예, 예? 그, 그럴 리가. 다, 다시 해 오겠습니다." 

놀랐는지 시비는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그동안 자신의 행실 탓이다. 교 

주는 미간을 손으로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얼 필요 없고, 특별히 다시 해다 줄 필요도 없다. 가서 쉬도록 

해라." 

"가, 감사합니다!" 

마치 자신이 잡아먹기라도 할 줄 알았는지 시비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 

게 사라졌다. 자신이 그토록 심했었나 유백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피곤했다. 그는 이만 잠에 들고 싶었다. 

"누구냐!" 

무인의 감이 누군가가 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 

은 마교 부교주 엄백린이었다. 

"아, 자네였군." 

"소교주님이 돌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맞네. 들어와서 지금쯤 거처에서 쉬고 있지. 내가 그동안 잘못 생 

각 한 것 같아. 설린이를 이만 그 갑갑한 곳에서 빼 줘야겠어." 

"예? 그곳에서 설린이를, 아니 소교주님을 빼자는 말씀이십니까?" 

엄백린은 변해버린 상황에 당황했다. 교주가 딸을 빼 줄 생각까지 하다 

니, 더군다나 교주의 눈에 스며 있던 광기가 보이지 않는다. 제 정신을 

차린 듯 싶다. 

'준비 해 두길 잘했군.' 

교주가 다시 제 정신을 차리게 된다면 일이 틀어진다. 명분이 없어지 

고, 수하들 중에서 고개를 돌리는 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 

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모반 계획에 대해 교주에게 말할 것이다. 

그러면 끝이다. 

부교주는 시비를 불렀다. 시비가 다가오자 부교주는 차를 시키면서 살 

짝 손에다가 종이 하나를 쥐어줬다. 미리 이야기가 끝난 상태다. 침을 

꿀꺽 삼킨 시비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교주는 아직도 아무런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부교주는 교주와 이야기 

하면서 그가 예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고 확신했다. 오늘 죽여 

야 한다. 오늘이 아니면 일이 어려워 질 것이다. 

유백명과 엄백린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시비가 다시 한 번 

차를 들고 왔다. 그건 신호였다. 수하들에게 알렸다는 신호. 

엄백린의 손에 땀이 흥건해 졌다. 이번 일을 성공하면 엄백린은 마교의 

교주가 된다. 실패하면 전면전이 되거나, 아니면 자신이 죽을 것이다. 

또한 이 두 번째 차는 그냥 차가 아니다. 교주는 저녁에 한 잔씩 차를 

마신다. 부교주는 그 차에 일차적으로 어떤 물질을 탔다. 독이라고 보기 

는 어려운 거다. 문제는 지금 마신 두 번째 차다. 

두 번 째 차도 특별히 사람에게 위협적인 독이 아니다. 문제는 그 둘이 

합쳐졌을 때다. 

콰차창! 

창문이 깨지면서 수많은 복면인들이 나타났다. 역시 교주는 이렇게 가까 

이 다가오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들이 고수이기도 하고 은신술을 사 

용하여 알아차리기 어려웠다고는 하지만 교주라면 알아차렸을 거다. 

약의 효과다. 

몸의 감각이 무뎌지고 내공이 제대로 모이지 않는 상황에 처했을 거다. 

'내공이…… 모이지 않아.' 

예상대로 교주는 알 수 없는 자들이 창문을 깨고 나타나자마자 급하게 

내공을 모았다. 아니, 모으려 했다. 그런데 내공이 모이지가 않았다. 아 

까 여운휘와 싸울 때만 해도 움직이던 내공이 지금은 느껴지지 않는다. 

상대의 수는 여섯이다. 자신이 비록 내공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옆에 

는 다행히 부교주가 있다. 

"네 놈들은 뭐냐!" 

"……" 

복면인들은 말이 없다. 아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교주는 그들의 목소 

리를 안다. 이들 여섯은 그런 대로 교주의 측근이었으니까. 목소리를 바 

꾸면서까지 이야기 할 마음은 없다. 괜히 꼬투리 잡혀서 좋을 것도 없 

다. 

침묵만 하고 있으면 된다. 그들도 인간이다 보니 왠지 꺼려지는 것도 사 

실이다. 따랐던 사람을 베야 한다.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교주는 그들이 말이 없자 더 이상 대답을 추궁하지 않았다. 어차피 쓰러 

트리고 나서 심문을 안다면 다 알 일이다. 

"부교주 부탁하네. 이상하게 내공이 모이지 않는 군." 

"걱정 마십시오. 내공이 모이지 않으신다면…… 죽으시겠군요." 

"무슨……" 

교주는 등뒤로 들어가 가슴 앞으로 튀어 나왔다. 교주는 말을 잇지 못하 

고 자신의 뒤를 바라봤다. 부교주다, 자신의 오른팔 같은 부교주. 

"이게…… 뭔가?" 

"아직도 상황 인식이 안 되십니까? 당신이 죽는 겁니다." 

"왜…… 네가……" 

"내가 원한 건 마교 부교주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호위무사가 없다. 예전 자신을 따랐던 사람들이…… 그들이 있었다면 이 

토록 허망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다. 그 호위무사들은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당신이 끝났으니 이제는 소교주군." 

"무, 뭐야!" 

쓰러지려는 몸을 유백명은 간신히 버텼다. 자신의 죽음도 억울한 판에 

딸이라니? 유백명은 노기 서린 눈으로 엄백린을 바라봤다. 빠져나간 검 

이 다시 한 번 그의 오른쪽 다리를 찔렀다. 

간신히 버텼던 몸이 기울었다. 

"걱정 마.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우선은 산다는 말에 유백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부교주가 

말을 이었다. 

"유설린은 내 여자가 될 거다." 

'이 사지를 찢어 죽일 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어떻게 키운 딸인데, 이제야 겨우 십 

칠 년 인생을 보상하려 했는데 지금에 와서 저런 놈에게 딸이 당한다 

니…… 

"편안히 보내 드려." 

옆에 있던 복면인 하나가 유백명을 향해 다가왔다. 검을 빼어 드는 소리 

가 교주의 귓가에 들렸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딸 걱정도 되지 않았다. 십 

칠 년 인생을 보상해 주지 못한 게 미안하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걱정 

은 일지 않는다. 

왜일까? 걱정이 먼저 일어야 정상이거늘 이토록 마음이 훈훈한 것은? 

'그 놈 탓인가.' 

유백명의 눈에 여운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놈이다. 그 놈이라면 자신의 딸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부교주가 움 

직였다면 세력을 확보 해 두었을 테지만 교주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지 

어졌다. 

'내 딸을 지켜 주게. 내 딸을 두고 죽는다면 지옥에서도 편치 않을 게 

야.' 

검광이 일었다. 

"시작 됐겠군." 

소교주 쪽도 일이 시작 됐을 것이다. 교주를 죽였으니 일이 성공한 것 

과 다름없다. 소교주는 무공도 별로니 문제 될 것이 없다. 여운휘라는 

존재가 있긴 하지만 그래서 몇 명을 보냈다. 

엄백린은 고개를 돌려 교주를 바라봤다. 

목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교주의 얼굴은 웃고 있다. 

"재수 없게……" 

부교주는 중얼거렸다.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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