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37)

                    변화의 바람. 

검귀(劍鬼) 천일혼. 

그 이름만큼 무림에서 비중 있는 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사 

파를 떠난 모든 무림인들이 경외(敬畏)시 했던 존재. 그러한 존재였기 

에 검귀에 대한 비화와 야화(野話)들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단 한 자루의 검을 들고 천하를 움직였던 남자. 그 남자는 무림인들의 

전설이다. 

당연히 그런 존재인 천일혼이 죽은 후 그의 무공을 수많은 자들이 노렸 

다. 천일혼의 내공과 검법을 얻는다면 천하제일이 될 수 있을 거라 사람 

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심법이 발견되지 않은 이상 그 

두 개를 모두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던 그 두 가지…… 

검귀의 심법과 검법이 백년이 넘는 긴 시간이 흐른 후 한 남자의 손에 

모두 들리게 된다. 

"이건……" 

여운휘는 낯익은 책의 표지에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예전에 익혔던 무 

상회천진결의 표지와 너무나도 유사한 색의 책. 이 책이 조금 더 색이 

뚜렷하긴 했지만 그 근본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누구라 했더라……" 

유설린은 기억을 더듬으며 아버지의 말을 생각해냈다. 

"검…… 귀라고 했던가. 어쨌든 그 사람이 남긴 검법이라는데." 

"검귀?" 

여운휘는 낯익은 이름이 유설린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반문했다. 그 검귀 

라는 이름은 여운휘는 잘 안다. 자신이 익힌 심법인 무상회천진결을 만 

들었던 자. 무상회천진결에 실려있던 쓸데없는 글귀들 속에서 수천 번 

보아왔던 이름, 검귀 천일혼. 

여운휘는 호기심이 일었다. 자신의 심법을 만들었던 자다보니 신경이 가 

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여운휘는 유설린에게 책을 받고 나서 책장을 넘겼다. 무상회천진결처럼 

난해한 문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까지 그려져 있어 익히는 게 어려 

워 보이지 않았다. 

"이 자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누구? 검귀?" 

여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했다, 이 검귀 천일혼이라는 자의 정체가. 무상회천진결은 대단한 

내공심법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무공을 보는 안목까지 생긴 여운휘에게 

검귀의 검법은 엄청나다는 느낌을 줬다. 왜 이런 책을 이곳에 박아 두었 

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아버지한테 검귀라는 남자에 대해서 많이 들어봤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네. 그냥 최고의 검객이었다 정도?" 

"그런데 왜 이곳에 그런 자의 검법을 놔둔 거지. 그런 것이라면 깊은 곳 

에 숨겨 놓거나 하지 않나." 

"이곳에 저 책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을 걸. 그리고 아버지가 말하 

는데 어차피 익히지도 못한다고 하시더라." 

어차피 익히지도 못한다니? 여운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더불어 아무 

도 익히지 못한 책을 자신에게 준 이유도. 

"어차피 익히지도 못한다고? 그런데 왜 나에게 준거지?" 

"응? 아, 맞다." 

여운휘는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유설린의 어이없는 답변에 기가 찬 것 

이다. 기가 차는 것은 차는 것이고, 여운휘는 그 말에 궁금함을 느꼈다. 

아무도 익힐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게 난해 한 것 같지도 않고 

이토록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어째서. 무공을 제대로 모르는 자라면 모 

르겠지만 마교 교주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터다. 

어째서일까? 이 무공을 익히지 못한다는 이유가. 

"이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이유 아나." 

"아니." 

여운휘는 익히지 못할 책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내려놓지 않았 

다. 자신의 심법의 주인인 검귀라는 자의 검법이다. 난해한 것으로 따지 

자면 이것보다 무상회천진결이 훨씬 더 심했다. 

단 한 문장으로 모든 심법을 표현했던 무상회천진결과는 다르게 이것은 

자세한 설명으로 가득하다. 

아직 해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것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여운휘는 

그 책을 비롯한 몇 개를 품안으로 갈무리했다. 

"이 무공의 이름이 뭐지?" 

겉 표지는 그저 검붉은 색으로 가득 찼을 뿐 아무런 글씨도 없는 책. 여 

운휘는 이 무공의 이름을 알고 싶었다. 

"오행검법(五行劍法) 이라고 하던데." 

오행이란 만물을 조성(組成)하는 다섯 가지의 원기. 즉, 목(木)화(火)토 

(土)금(金)수(水)를 뜻하는 것이다. 

"오행검법……" 

여운휘는 전설이 된 사내의 무공 두 가지를 얻게 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운휘는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충 골랐으면 가자. 앞으로 네가 무공을 익힐 때 나도 옆에서 같이 할 

래." 

유설린은 앞으로 자신도 제대로 무공을 익히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 말을 하고 나서 잠시 머뭇거리던 유설린은 말을 이었다. 

"음…… 오늘부터는 말고 내일부터." 

자신의 거처로 힘겹게 돌아간 엄백린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몸에 힘이 

없으니 만사가 귀찮다. 수하가 넘겨 준 종이를 넘기는 것조차도 지금으 

로서는 힘들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종이를 넘겨보던 엄백린은 앞에 있 

는 자신의 수하에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가져다 줘. 지금은 힘들어서 일 할 기분이 아니군." 

엄백린의 말에 수하는 가져왔던 종이를 품 깊숙이 숨겼다. 중요한 정보 

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꼬리를 밟혀서는 안 되기에, 작은 일 하나 하나 

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다. 

엄백린은 문득 생각이 아는 것이 있는 탓에 나가려는 자신의 수하를 불 

러 세웠다. 

"사무린, 사무린을 좀 데리고 와라." 

"지금 당장 말입니까?" 

"그래. 지금 당장 불러와." 

피곤하긴 했지만 꼭 할 일이 있다. 엄백린은 잠시 눈을 감았다. 자신의 

수하가 가서 사무린에게 이쪽으로 오게 하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테니 그 동안 잠시 잠을 청하는 것이다. 아주 잠시 잠에 빠져 있던 엄백 

린은 눈을 떴다. 

"왔느냐." 

"예." 

사무린은 사곡 밖으로 나와서 한 일이 없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거처 

에서 무공이나 연습하면서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그런 그 

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상관에게 호출이 되어 달려왔다. 

사무린은 은근히 무슨 일거리를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처지였다. 소교주 

를 포기한 이상 부교주에게 붙어 힘을 얻으려는 생각이다. 

"물어 볼 게 있어서 불렀다. 여운휘에 대해서 잘 아느냐." 

부교주 엄백린의 입에서 여운휘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사무린은 짜증 

이 솟구쳤다. 항상 이랬다. 여운휘, 여운휘 주변에서 들리는 것은 그의 

이름뿐이다. 자기 따위는 전혀 관심 밖이라는 듯한 모두의 태도에 사무 

린은 화가 났다. 

"알고 있습니다. 사곡에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한 남자니까요." 

"흐음…… 그래?" 

짜증이 난다고 사무린은 그것을 밖으로 표출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았 

다. 부교주는 자신의 상관이다. 그에게 잘 보여야지 앞으로 출세의 길 

이 펼쳐지게 될 거다. 순간적인 기분 따위는 미래를 위해 얼마든지 억누 

를 수 있다고 사무린은 생각했다. 

"둘이 친한가." 

"저는 꽤 잘해줬지요." 

"잘해줬다 라? 말이 왠지 이상한 것 같군." 

"만나 보셨다면 아실 텐데요. 여운휘의 성격에 대해서 말이죠." 

엄백린은 사무린의 말을 듣고 대충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아마 아무 

관심도 없이 대했을 거라 짐작하며 엄백린은 사무린에게 다시 물었다. 

"그 놈의 실력에 대해서는 아나."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강하죠. 사곡에서도 거의 독 

보적인 존재였으니까요." 

"그 놈을 이길 수 있나." 

"아니요. 이길 수 없습니다." 

사무린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다른 상대라면 모르지만 여운휘는 이길 

수 없다. 

"영원히?" 

"……" 

사무린은 엄백린이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그런 것을 묻는지 알 수 없었 

다. 사무린은 조금 주저하다가 말했다. 

"아뇨, 언젠가는 반드시 이길 겁니다." 

"이기기만 할 테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기기만 하면 다냔 말이다." 

사무린은 부교주 엄백린을 바라보았다. 사무린은 엄백린의 의도를 짐작 

했다. 그리고 자신의 짐작이 맞는지 알기 위해 사무린은 엄백린의 얼굴 

을 봤다. 살짝 올라간 입 꼬리와 흥미 있다는 듯이 쳐다보는 눈에서 사 

무린은 확신을 얻게 됐다. 

'만약 잘못 짐작한 거라면 죽을지도 모른다.' 

사무린은 목숨을 걸고 말했다. 

"아니요. 죽여…… 버릴 겁니다." 

엄백린은 말이 없다. 그는 조용히 사무린을 응시했다. 여운휘보다는 약 

하지만 저 나이 대에서 사무린을 상대할 자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엄백린이 사무린을 오목조목 뜯어보고 있을 때, 사무린은 불안했다. 자 

신이 잘못 짐작한 거라면 목이 날아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인 것이 

다. 다만 몇 번 봐왔던 부교주의 모습에서 탐욕을 느꼈다. 

"너, 쓸모 있는 놈이구나." 

"감사합니다."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생각에 사무린은 살짝 웃었다. 

"네가 맘에 든다. 내 계획에 참여 할 생각은 없느냐." 

엄백린은 사무린에게 자신과 함께 하자는 뜻을 내비쳤다. 물론 거절한다 

면 바로 죽여버려도 상관은 없다. 이 일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해 나가야 

할 일이다. 누가 떠들고 다니게 할 정도로 엄백린은 멍청한 자가 아니 

다. 

그렇지만 사무린 또한 거절할 마음 따위는 없었다. 아니, 이런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야지 옳다. 

"그 계획에 참여하면 뭘 얻을 수 있죠?" 

"권력(權力), 그리고 명성(名聲)." 

"좋아요. 오히려 제가 함께 하겠다고 말하고 싶네요." 

사무린은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지만 기회라는 생각에 부교주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게 됐다. 엄백린은 아직 완벽하게 사무린을 믿지 않는다. 

조그마한 일부터 차근차근 주면서 사무린에 대한 평가를 내릴 생각이 

다. 

이 일은 비밀스럽게 이루어 져야 한다. 

"훗날, 여운휘를 죽이게 해 주마." 

"감사합니다." 

두 악인(惡人)이 만났다. 

유설린은 무공에 재능이 있다. 다만 그 재능이라는 것이 집중력의 부족 

으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여운휘도 재능이 있다. 거기다가 여운 

휘는 유설린과는 다르게 집중력도 뛰어나다. 둘의 차이는 거기에서 비롯 

된다. 

집중력. 

단순한 차이였지만 그것은 메우기 힘든 큰 도랑이다. 원래 무공에 갓 입 

문한 사람들은 무공의 진전이 보이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에 오른 

후부터는 별반 발전이 없다. 한계에 부닥친 것이다. 

그 벽을 넘어서면 고수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영원히 일류무사 

(一流武士)로 그칠 수밖에 없다. 

여운휘는 절정고수는 아니지만 고수의 반열(高手)에 들어설 수 있는 실 

력자다. 일반적으로 문파 하나 정도 세울 능력은 있다는 말이다. 

고수의 반열에 들어섰기 때문에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는 여운휘였지 

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여운휘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심 

지어 유설린보다도 빠르게. 

그것은 다 무상회천진결과 오행검법 탓이다. 

마교 교주 유백명은 오행검법을 익히기 위해 삼 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일 성도 달성하지 못한 채 유백명은 포기했다. 그 

것은 심법이 맞지 않는 탓이었다. 

오행검법은 다섯 가지의 기운을 균형 있게 가진 자만이 사용할 수 있 

다.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모두를 균형 있게 응용하는 심법 

은 어느 곳을 간다 해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백명이 익혔던 심법 

은 구귀심법, 구귀심법은 토(土)쪽에 치우친 심법이다. 

유백명이 검귀의 검법을 익히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균형이 일그러진 

이상 검귀의 오행검법을 익히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무상회천진결은 검귀가 말년에 오행검법과 함께 남긴 자신의 저서다. 오 

행검법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심법이 바로 무상회천진결인 셈이다. 

여운휘는 운이 좋았다. 여운휘가 구귀심법을 잡아서 사곡에서 살아 나왔 

다면 그 또한 검귀의 검법을 익힐 수 없는 처지였다. 그렇지만 여운휘 

는 무상회천진결을 잡았다. 

마교 교주도 삼 년 동안 일 성에 도달하지 못했던 오행검법을, 여운휘 

는 단 몇 달만에 사성에 접어 들 수 있던 것은 다 그 탓이다. 

여운휘는 넓은 비무장 구석에 앉아 유설린은 보고 있었다. 

유설린은 비무장 위에서 며칠 동안 배운 검법을 펼치는 중이다. 초보적 

인 검술이라 변초가 많은 것도, 그렇다고 해서 응용이 심한 것도 아니 

다. 기본부터 배우겠다는 유설린의 말에 여운휘가 정해 준 검법이다.   

칠야검법(漆夜劍法). 

유설린이 지금 익히는 검법이다. 대단한 검법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 

인 검법이라고 해서 무조건 얕볼 수는 없는 일이다. 여운휘가 본 칠야검 

법은 익히기 쉽고, 기본적이긴 하지만 내공의 운용을 비롯한 여러 면에 

서 괜찮은 검법이었다. 

초심자인 유설린에게 이만한 검법은 없다고 여운휘는 판단한 것이다. 

쉬잉~! 

바람 가르는 소리가 맹렬하게 터져 나온다. 여운휘는 손을 마주치며 호 

통을 쳤다. 

"소리가 너무 크다! 칠야검법은 검이 움직이는 소리가 없어." 

물론 지금 유설린에게 전혀 소리를 나지 않게 휘두르라는 것은 무리라 

는 것을 여운휘는 안다. 검을 아무 소리 없이 휘두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것은 무공의 초보인 유설린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거 

다. 

그렇지만 여운휘는 다그쳤다. 여운휘의 성격이 딱딱한 이유도 있지만, 

온실 속의 화초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 탓이 컸다. 

유설린은 팔이 빠질 것 같았다. 검을 들고 휘두르기에 유설린의 근력(筋 

力)이 너무 모자라다. 내공이 꽤 받쳐주기는 하지만 아직 응용이 미숙 

한 편이다. 

"헉헉, 좀 쉬었다가 하자." 

"그렇게 하던지." 

무공을 익힐 때 호통을 치긴 했지만 여운휘는 유설린이 자신의 상관임 

을 잊지 않았다. 쉬겠다고 하면 여운휘는 그냥 받아들인다. 

유설린은 근처에 있는 나무 밑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여운휘는 

그런 유설린의 옆에 다가가 섰다. 여운휘의 귓가로 유설린의 거친 숨소 

리가 들렸다. 

"힘들어 죽겠다. 예전에 무공을 익힐 때는 조금만 힘들면 그만 하곤 해 

서 잘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이렇게 하나 보지?" 

"나름이지." 

"그럼 너는?" 

"십 몇 년 동안 먹고 자는 시간만 제하면 무공만 익혔지." 

"이야…… 지겨워서 어떻게 해?" 

"하지 않으면 죽었으니까." 

웃고 있던 유설린의 얼굴 표정이 일순 굳었다. 여운휘의 과거에 대해 유 

설린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냥 어느 날 문득 자신의 호위무사로 들어온 

남자라는 것을 제하고는 그녀는 여운휘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어느 곳에서 훈련을 받고 자신의 호위무사로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유설 

린으로서는 그 외에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음, 미안. 왠지 물어서는 안 될 것을 물어본 것 같아." 

"그다지." 

여운휘는 아무렇지 않았다. 사곡에서의 생활은 감출 이유가 없다. 그냥 

조금 힘들었던 과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여운휘는 

그 세월에 감사했다. 그 세월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이곳에 없었을 

테니까. 

여운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봐. 칠야검법이다." 

"어?" 

여운휘는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설린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여운휘가 칠야검법을 익히던 것을 본 적이 없던 탓이 

다. 

맞다. 여운휘는 칠야검법을 익힌 적이 없다. 유설린이 펼치는 것을 몇 

십 번 보았고, 책을 두어 번 훑어 본 게 다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여운 

휘는 충분하다. 

검이 이리저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 검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유 

설린은 더 이상 생각을 잇지 못했다. 분명히 같은 검법이다. 여운휘가 

지금 펼치고 있는 것은 그토록 자신이 펼쳤던 칠야검법이 분명했다. 그 

렇지만 다르다. 

같은 검법이지만 이상하게 달랐다.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떠나서 그 무엇인가가. 

넋을 잃고 보고 있던 유설린은 여운휘가 검을 멈추자 그제야 정신을 차 

렸다. 

"우와…… 칠야검법은 맞는 것 같은데 내가 펼친 것과는 사뭇 다르네." 

"다를 수밖에." 

여운휘와 유설린의 내공 안배(按排)가 다른 탓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 거야?" 

여운휘는 재촉하듯이 다가붙는 유설린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기 시작했 

다.   

여운휘가 유설린과 무공을 훈련하는 동안 사무린은 다른 것을 하고 있었 

다. 마교 부교주 엄백린의 수족(手足)으로 그녀는 충실하게 움직였다. 

신뢰(信賴)를 받기 위해서다. 신뢰가 없다면 언젠가 위험한 순간에 버려 

질 패가 될 것이다. 사무린은 그것을 원치 않는다. 버려질 패 따위는 되 

지 않으리라. 곁에 없으면 안 되는 그러한 존재가 되리라 사무린은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사무린은 앞장서서 일을 도맡기 시작했다. 그 

녀는 사곡의 생활을 통해 여러 가지로 뛰어난 인물로 변해 있었다. 살수 

로도 적합하고, 첩자라도 적합하다. 그녀는 기척을 숨길 줄 알고, 무공 

도 뛰어나니까. 

매사에 방심도 하지 않는 것이 여운휘처럼 호위무사를 시켜도 문제가 없 

는 인물이다. 

다재다능(多才多能). 

사무린에게 붙일 수 있는 말이다. 

당연히 사무린은 천천히 엄백린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젊어 

서 발전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더군다나 강하고, 또한 심성은 독하다. 

이런 인물을 찾기 힘들다는 것은 엄백린은 잘 안다. 

사무린을 곁에 두기 시작하면서 엄백린은 차츰차츰 그녀에게 중요한 일 

거리를 맡겼다. 그리고 일거리를 해 나감에 따라 사무린은 엄백린의 의 

도를 대충이나마 파악했다. 

마교를 뒤집으려 한다. 사파의 주인을 바꾸려 한다. 

사무린은 구미가 당겼다. 만약 소교주의 호위무사로 있었다면 분명히 죽 

거나 별 볼일 없는 처지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화가 오히려 복이 됐다. 사무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죽일 듯이 미웠던 여운휘에게마저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뿐이다. 고마울 뿐, 그를 죽이려고 하는 마음은 변치 않는다. 여운휘 

는 인생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숙적이다. 그자라면 가만히 있어도 다 

른 사람의 눈에 들어와 자신의 위에 설 거라 사무린은 생각했다. 

그런 남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모두에게 크게 보이고야 마는. 

부럽지 않다면 그건 거짓이리라. 

사무린은 생각을 접고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 봤다. 마교에 있는 약방 

을 담당하는 당주다. 회유(懷柔)를 시켜야 한다. 시키지 못한다면 죽인 

다. 비밀을 아는 자를 살려 둘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아무에게나 다가가는 건 아니다. 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 

고, 무엇보다 현 교주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지에 대한 사실여부를 알아 

야 한다. 그리고 확실하게 불만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면 부교주는 자 

신의 수하를 보낸다. 

뜻을 같이 하면 살려주지만,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하면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상대가 죽여도 뒤탈이 없는 자라면 바로 죽여버리고 그렇지 

않은 상대라면 어떻게든 입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뒤탈이 있는 자들의 대부분은 이미 마교 부교주의 움직임을 아 

는 상태다. 뒤탈이 있는 자들은 곧 마교에서 세력이 있는 자다. 세력이 

있다는 것은 곧 정보가 있다는 것이고. 그들은 부교주를 따르지는 않지 

만 또한 반발하고 있지도 않았다. 마교 교주의 행실에 불만을 품은 것이 

다. 마교 교주 유백명의 손속이 너무 잔혹하다. 

자신의 수하마저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쳐죽인 교주를 향해 대부분 

의 사람은 등을 돌렸다. 

약방의 당주인 소석은 고민에 빠졌다. 교주에게 불만은 많지만 특별히 

반란을 꿈꿔 본 적은 없다. 막상 욕은 하고 다녔지만 이렇게 제의를 받 

게 되자 소석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었다. 

소석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며칠 시간을 주게. 답변을 주지." 

"그런…… 가요?" 

소석은 몰랐다. 나중이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더군다나 소석은 죽이면 뒤탈이 있는 자가 아니다. 약방을 손에 넣으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하지만 특별하게 소석에게 세력이 있는 것은 아 

니다. 더군다나 소석을 대신 할 사람이 약방에 무수히 많다는 것이 그에 

게 치명적인 일이었다. 

사무린의 뒤에서 흰색 빛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록 대단하지는 않지만 소석도 무림 인이다. 

팟! 

소석이 뒤로 뛰어 오르며 날아오는 흰색 선들을 피해냈다. 

'살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소석은 고개를 떨궜다. 소석의 목에 검 하나가 박 

혀 있었다. 

"임무 완료. 목표, 사(死)." 

소석의 목에 박아 넣은 검을 꺼내며 사무린은 말했다. 

소석의 목에서 피가 새어 나오자 뒤에 몸을 감추고 있던 복면인 중 하나 

가 달려 나와 그의 목을 천으로 감쌌다. 죽인 이상 깔끔하게 처리해야 

한다. 

"가세요." 

"예." 

사무린에 말에 짧게 답한 복면인은 소석을 업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뒤 

쪽에서 나타난 다른 복면인은 그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나 흔적이 될만 

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사무린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흔적을 찾던 복면인이 다가오자 물었 

다. 

"특별한 것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가죠." 

거의 미쳐버리다시피 한 교주에게 이제는 아무런 정보도 올리지 않는 

다. 아마 약방 당주가 죽었다는 사실도 교주는 모를 것이다. 

모든 것은 마교 부교주 엄백린이 처리한다. 약방의 주인은 바뀔 것이 

다. 사전에 마교 부교주가 손을 쓴 인물로. 

마교의 육 할 이상의 힘이 마교 부교주에게 넘어 왔다. 이제 조금만, 아 

주 조금만 지나면 엄백린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던 엄백린은 자신의 수하가 가져온 소식을 듣 

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 년이다. 일 년. 그 후엔 난 모든 것을 얻는다. 마교도, 그리고 사랑 

하는 여인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