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37)

           여운휘, 살아야 할 이유를 찾다. 

유모가 음식을 가져왔기에 소교주는 방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하려는 모 

양이다. 

소교주가 사라지자 풍유랑은 말했다. 

"내가 소교주님에게 말씀 드려 놓을 테니, 너희 둘은 얼마 동안 여기서 

소교주님을 지켜라." 

풍유랑은 문을 두들기더니 안으로 들어섰다. 여운휘와 사무린은 문 앞 

에 서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사무린은 여운휘를 힐끔 바라본다. 도대체 생각을 알 수가 없는 남자 

다. 여자에 현혹(眩惑)되지도 않고, 힘에도 굴하지 않는다. 여운휘는 대 

나무다. 겉은 무척 단단해서 웬만한 충격에는 꿈적도 하지 않지만 너무 

나 뻣뻣해서 결국은 부러지고야 마는. 

아까 소교주에게 그런 것은 그렇다 치고 마교 교주 앞에서도 그렇게 서 

있던 것은 사무린으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는 행동이다. 죽으려 

고 하지 않는 이상 결코 그런 행동은 하지 못한다. 

머리가 좋은 인물이기는 하지만 결코 구부릴 지를 모르는 남자다. 

'그렇게 굴다간 언젠가는 부러지고 말 걸.' 

윗사람에게 밉보여서 좋을 것이 있겠는가. 사무린은 여운휘와는 다르 

다. 높은 사람에겐 비위(脾胃)를 맞춰줘야 한다. 다소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훗날에 갚아주면 되는 거다. 

안으로 들어갔던 풍유랑이 문을 열고 나왔다. 

"대충 이야기 드렸다. 식사를 하고 나오실 테니 이곳에서 기다려라. 앞 

으로의 일은 너희들의 행동에 따라서 결정 될 것이다. 다시 볼 일이 있 

었으면 좋겠군. 그럼 이만 난 가도록 하겠다." 

풍유랑은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서 몸을 돌렸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이곳 

을 들어올 기회는 없을 것이다. 이곳이 마교의 금지 된 지역인 이상에 

는. 

문 바로 앞에서 손을 뻗으려던 풍유랑은 잠시 멈칫 하더니 뒤로 고개를 

돌렸다. 

"여운휘." 

"……" 

"…… 네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너무 대쪽이 되지 마라. 

네 자존심이 강한 건 알지만 그러다가 죽게 될 거다." 

"충고인가." 

풍유랑은 어깨를 으쓱했다. 

여운휘를 향했던 고개를 돌린 풍유랑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여운휘, 당신은 이 일을 하고 싶나요?" 

"뭐가." 

풍유랑이 사라지자 사무린은 본격적으로 생각해 둔 말을 내뱉기 시작했 

다. 사무린은 마교의 세력에 밀접하게 될 소교주를 잡고 싶었다. 

"소교주님을 지키는 일 말이에요. 별로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은 

데……" 

"맞아." 

"전 소교주님이 무척 마음에 드네요. 제가 그 일을 해도 상관은 없겠 

죠?" 

"멋대로 해." 

여운휘는 나이 어린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게 탐탁지 않았다. 여운 

휘의 말을 듣고 나서 사무린은 살짝 미소지었다. 

"그럼 제가 소교주님 옆에서 지킬 테니까 운휘는 그냥 이 근처에서 하 

고 싶은 걸 하세요. 어차피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소교주님 

이 판단하실 테니 제가 잘 보이면 되겠죠." 

"마침 잘 됐군. 그럼 지금부터 너는 소교주라는 작자에게 예쁘게 보이라 

고. 난 좀 쉴 테니까." 

여운휘는 경공을 펼쳐 근처 지붕으로 올라섰다. 건물도 몇 십 개나 되 

는 거대한 곳이다. 한 여자가 살기에는 너무나 큰 장소다. 

지붕에 올라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여운휘는 천천히 지붕에 몸을 가져다 

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로운 기분이다.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은 

채 누워서 하늘을 보는 것…… 정말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혈무린, 당신의 말대로 나는 살아 나왔다. 그렇지만 과연 이곳에서 삶 

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인간미 없는 풍경, 예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자신의 손에 검을 들렸다는 것뿐이다. 예전보다 훨씬 많이 

강해졌다. 그렇지만 그게 삶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여운휘는 단순하게 강함만을 추구하는 남자가 아니다. 

'이제는 강해져서 죽기도 힘들어졌군. 제길……' 

아래쪽에서 문을 열며 소교주는 밖으로 나왔다. 앞에 서 있던 사무린은 

유화린이 나오자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사무린이라고 합니다." 

"아, 만나서 반가워. 대충 이야기를 들었는데 둘 중 한 명을 내 호위무 

사로 쓰라고 하더군. 근데 여운휘라고 한 남자는?" 

"위쪽에 있습니다. 뭐 시키실 일이라도……" 

"지붕 위쪽에 있다는 말이지?" 

팟! 

사무린은 예상치도 못하게 유화린은 공중으로 솟구쳤다. 

지붕에 누워있던 여운휘는 무엇인가가 솟구쳐 오르자 옆으로 고개를 돌 

렸다. 지붕 아래에서 불쑥 나타난 유화린은 무릎을 굽히며 착지했다. 

제대로 된 스승 없이 유화린은 무공을 배웠다. 당연히 독학으로 무공을 

익히다보니 별로 대단한 실력은 아니다. 독학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유화 

린은 제대로 무공을 익힐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왜 무공을 익혀야 하는지도 유화린은 모른다. 그냥 심심할 때나 들쳐보 

는 책이 무공 책이고, 그걸 가지고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 탓에 주변에 있는 무공 책들은 최고라고 손꼽히는 것들임에도 불구하 

고 유화린의 실력은 별로 대단치 않았다. 

"뭐 하는 거야." 

"하늘을 본다." 

"그럼 재미있어?" 

재미가 있을 턱이 있겠는가. 하늘을 보는 게 무슨 놀이도 아닌 바에야 

재밌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여운휘는 하늘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 

다. 그게 하늘을 보는 이유다. 

"재미있으면 나도 할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니 유화린은 재미있다고 지레 짐작하고는 옆에 

누웠다. 

"하아~!" 

작은 탄성을 지르며 하늘을 바라보는 유화린이라는 존재가 여운휘에겐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너무나 순수하다. 어리다고 해도 열 여섯이면 이 

런 저런 생각을 하는 나이다. 

"너, 혹시 바보냐?" 

"……" 

장난이 아니라 여운휘는 진지하게 물었다. 그렇지만 유화린은 그렇게 받 

아들인 것 같지 않다.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변해서 여운휘를 째려보고 

있는 것이다. 

"말 함부로 하지 마!" 

유화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붕 아래로 뛰어 내렸다. 

아직 유화린에 대해 여운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 탓에 여운휘는 이상 

한 질문을 했고, 유화린은 삐진 것이다. 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유 

화린이 이곳을 나가지도 못했고, 만난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란 걸 알았 

다면 여운휘는 묻지 않았을 거다. 

방문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닫고 들어간 유화린은 나오지 않았 

다. 갑자기 삐쳐서 내려가니 여운휘는 할 말을 하지 못했다. 

사무린은 여운휘와 소교주가 떨어진 이 순간을 기회라 생각하고 방안으 

로 따라 들어갔다. 여운휘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지만 지금은 화가 난 상 

태다. 

'어쨌든 기회는 기회란 말이야.' 

사무린은 방안으로 들어갔고, 여운휘는 그대로 집 지붕에 있다. 

여운휘는 현 상황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운휘로서는 드물게 자 

신이 잘못한 것 같다는 꺼림칙한 감정에 휩싸였다. 

"도대체…… 뭐야?" 

그때 아까 전에 소교주가 끼여들면서 멈추었던 풍유랑과 사무린의 대화 

가 여운휘의 머리에 떠올랐다. 

소교주를 만난 사람은 셋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거란 말. 그리고 이 넓 

은 공간에 오직 소교주만이 있는 것도 이상했다. 

'혹시……' 

알아차린 바는 있었지만, 조금 늦은 후였다. 

"제길!" 

마교 소교주 유화린 또한, 자신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인생을 살아 온 

것이다. 

'친구가 필요했던 거였을 텐데……' 

유화린이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는 걸 여운휘는 알아 버렸다. 그게 무 

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공간에서 그녀는 항상 혼자였던 것이 

다. 

'나와 같잖아. 나와……' 

예전의 자신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유화린에게 여운휘는 연민(憐憫)을 

느꼈다. 지금의 그녀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쓸쓸함에 못 이겨 손을 

내밀었는데, 그 손을 잡아 주지 않았을 때의 괴로움을 여운휘는 잘 안 

다. 

"제기랄……" 

감정이 격하게 타올랐다. 사곡에서 죽음을 항상 옆에 두고 싸워왔을 때 

도 전혀 아무 감정도 일지 않았던 그다. 그런 여운휘가 한 여자 탓에 마 

음이 찝찔해졌다. 

미안하다는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한 채 여운휘는 지붕 위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기 시작했다. 

반면 방안으로 들어간 사무린은 화가 잔뜩 난 유화린에게 친근하게 말 

을 건넸다. 

"화가 나셨나 봐요." 

"원래 젊은 남자는 다 저렇게 건방져?" 

"예?" 

여태까지 젊은 남자는 만나 본 적도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소교주를 보 

며 사무린은 순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사무린은 아까 풍유랑 

이 한 말이 떠올랐다. 

"아, 아까 저와 같이 온 분이 소교주님을 뵌 분은 셋 정도 밖에 되지 않 

을 거라고 했는데 혹시 이곳에서 나가시지 못하시는 거예요?" 

"응. 아주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머리 속에 기억이 날 무렵부터 

는 항상 이곳에서 지냈어." 

"그럼 밖으로 나가 보신 적이……" 

"없어." 

사무린은 소교주의 환심을 살만한 방법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에게 환심 

을 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잠 

시 살펴 본 바로 소교주는 꽃을 좋아하는 듯 했다. 

문제는 사무린이 꽃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던 차에 유화린이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사무린은 알아버린 것이다. 

"밖에 쪽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아요?" 

"이곳과 많이 다르다고는 들었는데." 

"달라도 너무 다르죠. 사람이 많은 곳에는 이곳보다 큰데도 불구하고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도 많은데다가, 활기차죠. 길거리에 나열 

(羅列)되어 있는 갖가지 먹거리들은 아이들을 끌어들이고요." 

사무린은 말은 꿀처럼 달았다.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달 

콤함에 충분히 빠트릴 정도로. 

"축제 때 종종 하는 불꽃놀이는 하늘에 여러 가지 색을 수놓았다고 생 

각 될 정도로 아름답답니다. 그곳에는 소교주님처럼 나이가 어린 분들 

도 많이 있지요." 

"나처럼?" 

"예." 

사무린의 말에 소교주는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나도 밖으로 나가 볼 수 있을까?" 

사무린의 머리에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 

확실하게 소교주의 호위무사가 될 수 있게 만들 계획이 사무린의 머리 

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 물론이지요." 

사무린은 살짝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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