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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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회천진결(無常回天眞訣) 

아까 앞에서 여기 있는 심법에 대해서 설명할 때 나오지 않은 책이다. 

혈의심법도, 천왕심법도 아니다. 물론 표지의 색은 비슷했지만 구귀심법 

도 아니었다. 

여운휘는 조용히 책을 펼쳤다. 그가 책장 앞에 서 있는 바람에 그쪽에 

있는 붉은 책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구귀 

심법을 잡지 못한 아이들은 여운휘의 뒤에 서서 그가 비키기만을 기다렸 

다. 

여운휘는 책 첫 구절(句節)을 보는 순간 미련 없이 그 책을 들고 뒤로 

물러섰다. 여운휘가 물러서는 순간 그곳은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었 

다. 

미리 잡았다고 임자가 되는 건 아니다. 잡았다고 해도 빼앗기면 그걸로 

끝이다. 더군다나 아까는 넓은 곳에서 책을 잡기 위해 달려갔지만 이제 

는 그 공간이 너무나 적다. 거기다가 책의 수도 이제는 아까 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당연히 아까보다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수밖에. 

그러한 시끄러움 속에서 여운휘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책장을 넘긴 

다. 책의 첫 구절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용은 하늘로 돌아갈 때 무사함을 생각한다. 

왠지 모르게 이 단 한 구절에 끌려 이 책을 잡은 것이다. 이 심법이 어 

떠한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이 구절을 보는 순간 책을 놓 

을 생각은 사라졌다.   

여운휘의 뒤에서 아이들이 기다리는 모습을 본 시험관은 놀람을 감추기 

힘들었다. 한 아이에게 압도되어 잡아야 한다는 욕망을 가지고도 뒤에 

서 참고 있다니…… 

저절로 시험관은 여운휘의 근처로 다가갔다. 구귀심법을 잡은 게 당연 

할 거라고 생각하며 옆으로 다가갔던 그는 여운휘의 손에 들려 있는 책 

의 표지 색이 붉은 색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검붉은 색이라니? 저기에 꼽아 둔 세 종류의 심법 중에서 검붉은 색 표 

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이 아이의 손에 들린 책은 무엇이 

란 말인가? 

이 일의 최종 책임자이자 시험관으로 활동하는 귀도(鬼刀) 풍유랑은 힐 

끔 아이의 손에 들린 책의 이름을 보았다. 무상회천진결(無常回天眞訣) 

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풍유랑은 그 심법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무상회천진결은 오십 년 전 발견 된 심법으로 당시에는 마교를 들썩이 

게 할 정도로 엄청난 물건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을 유일하게 사용할 자 

격을 지녔던 남자, 검귀(劍鬼) 천일혼의 심법이라고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마교에 있는 장로를 비롯한 무공광들이 모두 이 일에 

매달린 결과 이 심법은 천일혼의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너무 

나 어려워서 도저히 모른다면 차라리 천일혼의 심법이라고 믿을 수 있 

다. 

하지만 너무나 난잡하고, 쓸모 없는 문구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책은 희 

대의 발견이라고 들떴던 마교를 가라앉게 하기 충분했다. 이런 것이 천 

하제일이었던 천일혼이 사용한 무공의 기반이 되는 심법일 리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런 난잡한 심법은 여운휘가 잡은 것이다. 다들 쓸모 없는 문구라고 

본 그 글귀를 여운휘만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가슴에 와 닿는 글귀…… 

"어이." 

마치 사탕을 쥔 아이처럼 무상회천진결을 꼭 잡고 있는 여운휘에게 풍유 

랑은 말을 걸었다. 아이가 죽든 말든 그의 상관은 아니다. 누군가가 책 

장에 책을 옮길 때 검붉은 색을 붉은 색으로 착각하여 저곳에 넣었던 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너무나 아까웠다. 아까 이 아이의 뒤에 다른 애들이 서 

서 기다리는 것만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마음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풍유랑은 이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 책이 실수로 이곳에 온 모양인데, 엉망인 심법이야. 특별히 구귀심 

법으로 바꿔 줄 테니까 그 책은 내게 주거라." 

"난 이게 마음에 들어. 바꿀 생각은 없어." 

여운휘는 바꾸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구귀심법을 잡을 

수 있었다면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상회천진결이 마음에 들었기에 여 

운휘는 이 책을 잡았다. 그뿐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모든 심법 책 

을 잡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여운휘는 그런 아이였다. 

"건방지구나. 반말이라니…… 뭐, 좋아. 네 놈 말투 하나 하나에까지 신 

경 쓸 필요는 없으니까. 잘 들어라. 그 심법은 난잡하기 그지없고, 웬 

말도 안 되는 말들만 잔뜩 써져 있는 책이다. 그건 구귀심법이 아닌 다 

른 두 개의 심법에 비해서도 훨씬 못 미칠 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심법 

인지 조차 의심이 갈 정도로 형편없는 물건이다. 그 책을 주고, 곧 가져 

다 줄 구귀심법을 받아라. 원래 같았으면 아무 상관 안 했겠지만, 특별 

히 네게 해 주는 내 배려(配慮)다." 

"구귀심법이니 뭐니 다 필요 없어. 난 이게 마음에 들었다." 

"그건 엉터리 심법이다. 괜히 그런 걸로 내공을 쌓다가는……" 

귀도 풍유랑은 말을 멈췄다. 생각해보니 자기가 이렇게 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던 것이다. 자신은 분명히 해줄 수 있는 데까지 해주려고 했 

다. 다만 상대가 그 구원의 손을 받지 않은 것뿐. 

"그래, 내가 가타부타 말할 필요는 없겠지. 좋아 심법들은 다 잡았나!" 

아이들의 표정은 두 가지였다. 구귀심법을 잡은 아이들은 웃고 있었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죽상을 짓고 있었다. 풍유랑은 한심스러운 생각 

에 한숨을 내셨다. 

구귀심법이 나은 심법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사 

실은 왜 모르는 것일까? 마치 이미 졌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풍유랑은 나중이 걱정 됐다. 이런 아이들을 키워봤자 무엇 

을 하겠는가. 

풍유랑은 여전히 옆에 앉아서 무상회천진결이라고 써져 있는 책을 조심 

스레 넘기고 있는 여운휘에게 눈이 박혔다. 지금 앞에서 구귀심법을 잡 

지 못했다고 죽상을 하고 있는 놈들보다는 백 배 나았다. 

처음에는 실수로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해 보니 구귀심법이 아 

닌 것을 알고도 잡았다. 이곳이 아닌 밖에서 만났다면 자신이 키워 보 

고 싶을 정도로 흥미가 생기는 아이다. 

하지만 이미 이 안에 들어온 이상 그런 감정은 버려야 한다. 차라리 구 

귀심법이나, 그 외에 다른 심법을 잡았다면 살아서 나가게 될 단 한 명 

이 이 아이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무상회천진결을 잡은 이상 살아 나가기 

는 힘들 것이다. 

내공은 곧 무공의 기반(基盤)이다. 기반이 약하면 그건 바닷가에 쌓는 

모래성과 다를 게 없다. 약한 파도에도 휩쓸려 사라지는 그러한 모래성 

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아까운 놈이라 생각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럼 잘 들어라! 이제부터 너희는 천 오백일 동안 각자의 방에서 생활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방에서 나올 순 없다. 그리고 말할 필요도 없 

겠지만, 그 천 오백일 동안 너희는 내공을 쌓아야 한다. 물론 먹을 건 

제때 우리가 가져다 줄 것이니 또 먹을 것을 안 주는 게 아닐까 따위의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천 오백일, 사 년이 넘는 긴 시간이다. 그 동안 내공을 익혀야 한다. 물 

론 편안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다. 사 년 동안 혼자 싸워야 

하는 것이다. 어둠과, 두려움, 그리고 자기 자신과. 

견디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미쳐서 울부짖는 아이 

도 있을 게 분명하다. 아마 반 이상은 살아서 나오기 힘들 것이다. 

"모두들 저쪽에 일렬로 서서 자신의 앞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라!" 

긴 사 년 동안 함께 할 방을 향해 여운휘는 무상회천진결이라는 심법인 

지 조차 의심스러운 책 한 권을 들고 천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 년 

동안 여운휘는…… 혼자다. 

"멍청한 놈들, 난 언제나 혼자였어." 

여운휘의 독백이 닫히는 문과 함께 어둠에 잠겼다. 

어둠은 사람에게 공포라는 감정을 일게 만든다. 아무리 담이 큰 사람이 

라 할지라도 어두운 곳에서 며칠동안 갇혀 있다면 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다. 물론 무인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그들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니까. 

물론 무인들 중에서도 그 중압감을 버텨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 

만 일반인에 비해 무인들은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 

허나, 이들은 무인들이 아닌 어린아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거늘 대부분의 방은 흐느끼는 아이들의 목소 

리로 가득했다. 하지만 방음이 철저한 탓에 그 울음소리조차 다른 방에 

있는 아이에겐 전달되지 않았다. 혼자의 공간에서 지내야 한다는 생각 

에 공포에 휩싸인 것이다. 

아이들은 울다 울다 지쳤다. 그리고 울음을 멈춘 아이들의 행동은 대충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죽거나, 아니면 심법 책을 펼치는 아이로. 

여운휘는 조그만 구멍으로 전달받은 초에 불을 붙였다. 이게 몇 개째인 

지도 모를 만큼 여운휘는 초에서 불을 끈 적이 거의 없었다. 잘 때를 제 

하고 꺼지지 않는 불빛 아래에서 여운휘는 책장을 넘겼다. 

식사를 한 것이 정확하게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루에 식사 

를 가져 주는 횟수가 세 번이니 그걸로 대충 추리해 보면 이미 백일이 

넘은 지 오래다. 그 동안 정신을 차린 아이들은 내공 심법에 몰두해서 

조금씩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운휘는 그렇지 않았다. 무상회천진결이라는 책에는 심법에 대 

한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시험관의 말처럼 겉멋만 번지르르하게 든 책 

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여운휘는 아무런 진전 없이 하루 하루를 

책과 함께 보냈다. 

비록 진전은 없었지만 여운휘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진전이 없다 

고는 하나, 그래도 책을 손에서 놓고 싶은 마음은 없다. 피 냄새가 맹수 

를 이끌 듯이 이 책은 여운휘를 이끌었다. 

'가관(可觀)이로군……' 

어렸을 때의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자신이 사랑했 

던 여인을 꼬셨던 방법이 적혀 있다. 무공 책이 아니라 마치 한 남자의 

일대기를 적어 놓은 듯하다. 이 책을 만든 남자는 자신을 검귀(劍鬼) 천 

일혼이라고 소개하고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은 멋지다고 자화자찬(自畵自 

讚)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웬 알 수 없는 문구들도 잔뜩 적어 두었는데 그건 도저히 해석 

이 되지 않았다. 

이건 심법 책이라고 보기보다는 자서전(自敍傳)이나, 생각나는 대로 끄 

적거린 낙서라고 보는 게 오히려 정확해 보였다. 

'전에 그자가 말했던 것처럼 이것은 심법 책이 아닌 건가? 하지만 그 문 

구는……' 

여운휘를 이끌었던 그 구절 하나만큼은 분명히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하 

지만 그 외에 다른 부분에서는 그때 느꼈던 머리를 스쳐 가는 짜릿했던 

감정이 일지 않는다. 그 한 구절을 제한다면 이 책은 아무런 가치가 없 

는 느낌이다. 

'그 글귀…… 그 글귀만…… 그 글귀…… 만?' 

그것이다! 

여운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실수로 발로 초를 걷어차 버렸다. 초 

는 그 불을 다했고 여운휘만의 공간은 어둠에 잠겼다. 여운휘는 한 가지 

를 깨달았다. 그 책에 있는 모든 내용이 심법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 

을. 

그리고 자신이 느꼈던 그 하나의 글귀, 그게 이 책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는 사실을 말이다. 

나머지 이런 저런 것들에게선 아무런 느낌도 오지 않는다. 오직 단 하나 

의 문장만이 여운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단 하나의 문장이 무상회 

천진결이라는 심법이 돼서는 안 된다는 규칙도 없다. 

여운휘는 백일이 넘는 긴 시간동안 자신이 멍청한 짓을 했다고 느꼈다. 

정작 중요한 것을 눈앞에 두고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 실망을 하던 차에 떠오른 이 생각은 가뭄 

에 만난 단비와 같았다. 여운휘는 책의 맨 앞으로 넘겨 자신을 이끌었 

던 그 문구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용은 하늘로 돌아갈 때 무사함을 생각한다 라……" 

다시 한 번 그 글귀를 읽은 여운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마치 그 말을 

음미(吟味)라도 하려는 듯이. 천천히 감겼던 그의 눈이 열리며 검은 빛 

을 발했다. 빛조차 없는 이 공간보다 더욱 어두운 그 눈빛이.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이 책을 발견했을 당시 무수히 매달리던 그 많은 사람 중에 단 한 명이 

라도 여운휘가 깨달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오늘인가?" 

"예." 

풍유랑은 말한 오늘이란, 아이들을 가둔지 천 오백 일이 된 시점을 의미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천 오백 번째 날이 바로 오늘이다. 

문득 풍유랑은 여운휘가 떠올랐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막상 아이들 

을 보게 될 생각을 하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가 여운휘였다. 시간 

이 벌써 사 년이나 흘렀다. 아직도 여운휘가 어린애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예전의 그 앳된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 

다.   

그때 그토록 말렸건만 무상회천진결을 들고 들어간 꼬맹이. 

이백 열 한 명의 아이를 저 방들에 넣었다. 과연 몇 명이나 살아있을 

까? 잘해 봤자 오육십 명일 것이다. 

그 안에 과연 그 꼬맹이가 있을까?   

나중에 보면 알 일이다. 하지만 풍유랑은 여운휘가 살아 있지 못할 거라 

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내기를 한다고 쳐도 자기는 분명히 그 아이가 죽 

었다는 쪽에 돈을 걸었을 것이다. 엉터리 심법을 가지고 저 안에서 버틴 

다는 건 무리였다. 

그 별 이상한 말들로 가득 찬 책을 연구하다가 나중에는 할 것이 없어 

서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상황도 배제(排除) 할 수는 없다. 심법 책 

을 들고 들어갔다면 그것을 익히면 된다. 하지만 여운휘는 그렇지 않았 

다. 그 안에서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할게 없으면 그냥 편히 쉬면 되는 게 아니냐고 물을 지도 모른 

다. 그건 모르는 소리다. 사 년 동안 그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 

고 지낼 수 있겠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것은 불가능하다. 

옆에 말벗이 되어줄 친구라도 있다면 버틸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다. 

그 날을 생각하니 여운휘라는 아이가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청한 녀석……" 

"예?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자신의 청을 끝까지 거절했던 여운휘가 떠올라 내뱉은 말인데 정작 그 

말에 찔끔한 것은 옆에 있던 자신의 수하다. 풍유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게 한 말이 아니야. 그럼 가서 모든 문을 열라고 명을 내려라." 

풍유랑은 허리에 찬 자신의 도를 한 번 쓰다듬으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이제 문이 열리며 나오는 아이들을 받아 들여야 한다. 여러 곳에서 막 

아 두었던 쇠를 풀면서 동시다발적으로 그르릉 하는 쇠 긁는 소리가 들 

렸다. 

문이 열리며 한 아이, 한 아이씩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오지 않는 문 

의 아이는 죽은 것이다.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예전에 그 여렸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표정들이 날카로워졌고 또한 많이 야위어 있었다. 

'역시나 없구나.' 

아주 조금이지만 그 아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가졌다. 범 

상치 않은 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인간으로서 역시 사 년이라 

는 시간은 무리였던 듯 했다. 

'그래, 죽은 녀석이야 제 팔자지. 살아 있는 놈들이나 다음 훈련으로 돌 

려야겠군.' 

"이차 관문을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 자, 그럼 다음 삼차 관문에 대해 

서 이야기 해 주……" 

"일 호! 이리 좀 와 보게!" 

귀도 풍유랑은 이 일을 할 때는 일 호라고 불리게 되어 있다. 정체를 숨 

기기 위해서 만든 호칭인 것이다. 풍유랑은 자신의 동료가 있는 곳을 향 

해 고개를 돌렸다. 

놀란 표정으로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자신의 동료. 이 안에서는 이 호라 

고 불리며 실제 이름은 뇌전검(雷電劍) 사혼이라 불리는 쾌검의 고수 

다. 사혼이 급히 자신을 부르는 곳은 한 방의 앞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저리 호들갑인가.' 

아이들의 훈련을 진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런 모습은 보여서는 안 된 

다. 언제나 아이들에게 얕보여서는 안 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 

에 강해지게 된 아이들이 자신들을 향해 이를 들이밀 수도 있는 법이니 

까. 

궁금한 것은 풍유랑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태연한 모습을 보여 

야만 했다. 

천천히 옆으로 다가간 풍유랑을 향해 사혼은 입을 열었다. 

"안을 보게." 

사혼이 옆으로 비켜서자 그 방안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 보인 것은 매일 세 번씩 던져주는 간단한 음식이다. 엄청나게 싸 

여 있는 것을 보니 이 안에 있던 아이가 죽은 지 오래 인 것 같다. 도대 

체 무엇이 놀랍단 말인가? 들어간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죽은 놈도 수두 

룩할 텐데. 

그런 아이에 비해 이 방에 있는 아이는 훨씬 많이 버틴 것 같은데 도대 

체 왜 사혼이 놀란 것일까? 

눈은 자연스레 먹을 것들의 뒤편에 있는 아이에게로 향했다. 

"음!" 

놀라는 이유는 두 가지다. 아이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은 것이 그 첫째 

요, 얼굴에 혈색(血色)이 도는 것이 죽은 사람의 얼굴 같지 않다는 것 

이 그 둘째다. 

'그때 그 아이다.' 

그 말 없이 앉아 있는 아이는 여운휘였다. 죽은 것인지 죽지 않은 것인 

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혈색이 도는 것을 보니 분명 살아 있는 것인 

데 음식이 이토록 남겨진 것을 보니 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사, 산 겐가?" 

"내가 확인해 보지." 

풍유랑은 조심스럽게 여운휘에게 다가갔다. 

"후우……" 

숨을 몰아쉬는 소리에 풍유랑은 여운휘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 말도 안……"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운휘의 눈이 번뜩였다. 부릅떠지는 여운휘의 

눈에 순간 풍유랑은 뒤로 주저앉을 뻔했다. 다행히 주저앉는 것을 면한 

풍유랑은 유령을 보는 기분으로 여운휘를 바라 봤다. 

여운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사 년이라는 시간 

이 지난 탓에 옷이 여운휘의 몸에 맞지 않았다. 

"벌써 천 오백 일이 지났군."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벌써 라는 여운휘의 말에 풍유 

랑은 놀랐다. 그 어둠 속에서의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면 길게 느껴질까 

결코 짧게 느껴지는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 그것이 해당되 

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살아 있다면 어째서 저리도 먹을 것이 남은 건가?" 

사혼은 살아서 일어난 여운휘에게 물었다. 

"하루에 한 끼 정도 밖에 먹지 않고 심법에만 열중했으니까." 

사혼은 아이의 집중력에 감탄했다. 그렇지만 여운휘가 무상회천진결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아는 풍유랑은 그렇지 않았다. 

'무상회천진결을 통해서 내공을 익혔다는 말인가?' 

내공 심법도 아닐 거라 판명 된 책을 통해서 어떠한 것을 얻었단 말인 

가? 검귀의 내공 심법이라고 떠들썩했었지만 결론은 아니었다고 판명된 

책으로 도대체 무엇을…… 

'서, 설마 검귀의 내공 심법을 얻은 것은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분명히 여운휘는 살아 있다. 

그것도 다른 아이들은 예전과 달리 초췌하면서도 날카로워졌지만 여운휘 

는 전혀 그런 변화가 없다. 예전 그 모습에서 그냥 키만 조금 더 크고 

약간 나이만 들어 보이는 것뿐이다. 마치 평화롭게 살아왔던 아이를 보 

는 듯한 모습이랄까? 

풍유랑은 여운휘가 심법을 익혔다는 말에 한 가지 추론을 내렸다. 이곳 

에 오기 전에 무공을 배운 아이였다는 것. 그 외에는 다른 판단이 되지 

않았다. 저 엉망인 책으로 심법을 익혔다면 이미 주화입마(走火入魔)를 

걸리고도 남았을 터였다. 

"운이 좋군." 

풍유랑은 그저 여운휘가 이곳에 오기 전에 무공을 배웠다고 판단했다. 

저 책을 가지고 심법을 익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 탓이다. 

하지만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여운휘의 머리에 남은 단 하나의 구절은, 

'용은 하늘로 돌아갈 때 무사함을 생각한다.' 

여운휘가 익힌 것은 분명 무상회천진결이다. 

                      그녀의 이름은 사무린. 

살아 남은 인원은 여운휘를 포함해서 사십 팔 명이다. 남자가 사십 이 

명, 여자가 여섯 명. 비율(比率)로는 정확하게 칠 대 일이다. 

여섯 명의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 비해 외면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 

었다. 이제는 왠지 모르게 아이가 아닌, 여인이라는 향기를 물씬 풍긴 

다. 개중에 군계일학(群鷄一鶴)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 

하얀 피부에 적당한 키, 오뚝한 코와 갸름한 턱선. 그리고 왠지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살짝 올라간 눈 꼬리와 붉은 입술. 

그 여자아이의 이름은 사무린이다. 

여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던 

몇 안 되는 아이 중 하나. 그런 그녀의 눈에 여운휘가 들어왔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자꾸 눈이 가는 남자였다. 물론 외모도 빼어났지만 

좌중(座中)을 압도하는 듯한 눈빛은 다른 누구도 그 남자에게 접근 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위압감을 풍겼다. 덕분에 사무린은 여운휘를 처음 

본 순간부터 눈여겨보았다. 이 안에 있는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존재 

라는 게 너무나 매력적인 탓이다. 

반한 건 아니다. 사무린에겐 반했다거나 하는 건 없다. 만약 그렇게 무 

른 여인이었다면 그녀는 이미 일차 관문에서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사무 

린은 무공을 익힌 적이 없었다. 살아 남은 여섯 명의 여자 아이 중 네 

명은 이미 무공을 익힌 상태였기에 살았던 것이다. 

나머지 한 여자아이는 운 좋게도 잡혀 올 때 자신의 오빠와 같이 잡혀왔 

다. 그 덕분에 일차 관문을 통과했다. 하지만 자신처럼 아무것도 없던 

여자아이는 모두 죽어 나갔다. 그렇지만 유독 사무린만 살아 남은 이유 

가 있다. 

강하지도 않았고, 든든한 뒷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살아남 

았을까? 

간단했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한다. 사무린은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 그 

당시 최고의 파벌을 구사했던 우상후의 여인이 되었다. 물론 그때는 너 

무 어렸기에 아무 일도 없었다. 다만 어떤 세력의 우두머리에게 당연히 

여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우상후는 흔쾌히 사무린을 받아 들였던 것 

이고.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몸을 맡기면서도 목숨을 부지했다. 

이차관문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기에 사무린은 견뎌내는데 어렵지 않 

았다. 내공심법이라는 것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해 줄 정도로 매력적 

이었다. 더군다나 운 좋게 잡게 된 구귀심법. 

사무린은 내공심법을 연마하면서도 틈틈이 다음 계획을 짰다. 분명히 이 

곳에서 나가게 된다면 또 다른 관문을 넘어야 될 것이다. 그때 만약 자 

신의 힘으로 되지 않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사무린은 미리 생각해 

야 했다. 강한 자의 옆에만 붙으면 된다. 하지만 그 강한 자가 누가 될 

지 모른 다는 것이 문제다. 

여운휘가 있다면, 그의 옆에 붙으면 된다. 하지만 여운휘는 전혀 알 수 

없는 책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감독관마저 혀를 찰 정도면 살아 나 

올 수 없다. 

개인적으로 우상후는 너무 못생겨서 그의 곁에 붙고 싶지는 않았다. 더 

군다나 이제 나이도 먹어서 여자가 뭔지도 아는 나이, 그런 덩치만 큰놈 

에게 몸을 주는 건 별로 석연치 않았다. 

아직은 사무린에겐 강한 남자가 필요했다. 내공심법은 구귀심법을 가지 

고 들어간 아이 중에서도 가장 제대로, 그리고 깊게 익힌 그녀지만 아 

직 심법을 제하고는 아무 무공도 모른다. 그것을 배울 때까지 사무린에 

겐 강한 남자가 필요했다. 

사무린은 차라리 잘생긴 여운휘 쪽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살아서 나올 수 없는 남자라며 사무린은 포기했었다. 

한데,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여운휘가 살아 있다. 

사무린은 살아 있는 여운휘를 보고 우상후에게 붙으려 했던 생각을 잠 

시 미루기로 했다. 

원래 우상후보다는 여운휘의 외모에 끌린 탓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실 

력 면에서 누가 나은지 모르는 이 상황에 사무린은 잠시 두고보기로 마 

음먹은 것이다. 

비록 음식이 남아서이긴 하지만 음식을 내놓으라는 여운휘에게 우상후 

가 꼼짝도 못하고 먹을 것을 내어준 적이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분명 

히 심법을 익혔으니 예전과 다를 것이다. 여운휘가 익힌 것은 엉터리 심 

법이다. 어떻게 살아 나오기는 했지만 이제 우상후에게 밀릴지도 모른 

다. 

확실하지 않으면 걸지 않는다. 인생이 걸린 도박, 결코 흥분하거나 서둘 

러서는 안 된다. 

'살아 나와서 반갑네요. 이름도 모르는 남자.' 

아직 그녀는 여운휘의 이름조차 모른다. 

"지금 남은 인원은 사십 팔 명이다. 우선 삼차 관문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단계를 걸쳐야 한다. 너희들이 심법을 제대로 익혔나 보기 위함 

이니, 제대로만 익혔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풍유랑은 옆에 있는 자신의 수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들은 아 

이들에게 무슨 액체가 담긴 통을 하나씩 넘겨주었다. 

"마셔라." 

말은 간단했다. 하지만 이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탓에 아이들은 망설였 

다. 평범한 물일 리가 없다. 녹색 빛을 띠는 것만 봐도 그건 결코 물이 

아니라는 걸 직감할 수 있다. 

아이들의 예상대로 그건 물이 아닌 독이다. 

여운휘는 잠시 그 액체를 바라보다가 바로 들이켰다. 저들이 말한 대로 

심법만 제대로 익혔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저들도 바보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훈련을 시켜 놓고 엄청난 극독을 줘 

모두를 죽일 리는 없다고 여운휘는 생각했다. 그처럼 바보짓이 어디 있 

겠는가? 힘들게 훈련시킨 아이들을 몰살시킬 정도로 그들은 바보가 아니 

다. 

몸에 섞여서는 안 되는 존재가 몸으로 들어오며 기분이 묘해졌다. 슬슬 

독 기운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여운휘는 눈을 감고 심법을 운용했다. 

맹렬하게 움직이던 독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여운휘가 

이끄는 대로 독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운휘가 눈을 뜨자 그를 보고 있던 모두도 그 액체를 마셨다. 죽이려 

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 탓이다. 

풍유랑은 여운휘를 잠시 바라보았다. 역시나 대단한 아이다. 독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은데도 주저 없이 들이킨다. 열 넷밖에 되지 않은 아 

이로서는 정말로 엄청난 용기를 지녔다고 밖에 표현 할 수가 없다. 

여운휘는 조용히 손을 아래로 떨구었다. 여운휘를 보고 있던 풍유랑으로 

서는 당연히 그러한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여운휘의 손에서 떨 

어지는 액체. 

풍유랑은 말을 잃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신 자체가 혼미해지 

는 것을 느낄 정도로 그는 놀라고 말았다. 독을 몸 안에서 없앤 것이 아 

니라 체외로 배출(排出)을 시킨 것이다. 그건 마교 내에서도 고수인 풍 

유랑조차도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하나씩 독을 이겨내고 눈을 떴지만 풍유랑의 눈은 여운휘에게 

박힌 채 떨어질 줄 몰랐다.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나이가 겨우 열 넷인데 체외로 독을 배출시키다니, 그건 자신 

의 눈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일 호?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풍유랑은 다시 한 번 여운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이 잘못 본 것일지 

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방금 본 것이 진정 체외로 독을 배출시킨 거라 

면…… 

'우리는 괴물(怪物)을 만난 건지도 모르겠군.' 

지금 고민해 봤자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풍유랑은 여운휘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다음 관문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십 팔 명중에서 죽은 건 두 명이군. 저 녀석들 심법을 어떻게 익혔기 

에 겨우 이 정도 독에 당하는 건지 모르겠군. 뭐 죽은 놈이야 죽은 거 

고 너희는 내 말을 들어라. 다음 관문에서는 내공 대결이 있을 것이다. 

마침 수도 맞으니 잘 됐다고 해야 되나? 그 동안 갈고 닦은 내공으로 상 

대방을 죽여야 한다. 이 세 번째 관문은 약 일주일 후에 시작한다. 그 

동안 심법 훈련을 하던 말던 상관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죽은 놈 

은 말이 없겠지?" 

하던 안 하던 그건 자유다. 하지만 안 해서 죽는 것 또한 자유라는 것이 

다. 오히려 열심히 하라는 것보다 더욱 공포라는 감정을 조장(助長)한 

다. 

"드물게 동귀어진(同歸於盡)을 하는 수도 있겠지만, 아마 살아 남은 인 

원은 스물 셋이겠구나. 둘씩 내공 대결을 하면 반드시 하나는 죽어야 

할 테니까." 

삼차 관문에서 살아 남게 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없을 경우엔 스물 셋 

이 된다. 둘이 내공 대결을 해서 지는 쪽은 죽는 것이니까. 정말 재수 

가 없을 경우엔 둘의 실력이 너무나 엇비슷해 동귀어진이 될지도 모르지 

만, 그거야 상관없는 일이다. 

풍유랑을 비롯한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이들을 최대한 많이 살려라가 

아닌 단 한 명만 살리거나,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하게 된 모두를 살리라 

는 거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 한 자가 없는 지금 결론은 단 하나다. 

하나가 살 때까지…… 상황이 이러니 하나가 더 죽는 건 오히려 쌍수(雙 

手)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아이들은 일주일이라는 휴식 시간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이 휴식시간이 

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죽을 사람과 살 사람 

을 바꿀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쉴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각자 자리를 정하고 땅에 앉았다. 몇 년 동안 이야기를 못해 

입이 근질근질 하기도 하련만 삼차 관문 탓에 아이들은 서로를 견제했 

다. 어떤 아이가 적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 자신을 제한 모든 다른 사람 

이 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여운휘는 가져다 준 식사를 하며 오랜만에 있게 된 넓은 공간에서 자유 

라는 기분을 느꼈다. 좁은 독방(獨房) 안에서의 생활이 지루하지는 않았 

지만 답답했던 것은 사실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독방의 공기와는 다르게, 이 곳의 공기는 가벼운 

느낌이 든다. 

이 넓은 공간에 말소리가 없다. 그것도 한두 명이 있는 것도 아닌 수십 

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유일하게 조용히 두런거리고 있는 남자 

와 여자 한 쌍. 그들은 친 남매였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하나둘씩 심법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칠일이라는 

시간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지도 모른다는 생각아래에. 

모두가 칠일이라는 시간을 짜임새 있게 쓰려고 하는데 여운휘는 자리에 

누웠다. 항상 심법에만 빠져 있다보니 잠을 자 본 것이 언제인지도 정확 

히 모를 정도였다. 여운휘는 오랜만에 잠을 자고 싶었던 것이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고 벽 쪽에 머리를 향하게 한 여운휘는 눈을 감았 

다. 모두가 살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하는 이 마당에 여운휘는 잠을 자 

는 것이다. 

그런 여운휘를 사무린은 조용히 바라봤다.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 실력이 있기 때문이길 빌겠어.' 

사무린에겐 여운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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