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일담(後日譚) (26/35)

후일담(後日譚)。

해시가 되어야 은헌은 방문 앞에 설 수 있었다.

얇은 장지문 안으로 들어가면 고윤이 있을 터다.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일이라 그런지 여전히 꿈을 꾸는 듯했다. 그는 숨을 고르곤 문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낮은 목소리에 은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청실홍실 엮어 만든 이부자리 앞에 주안상이 있었고 그 옆에 고윤이 앉아 있었다. 은헌은 성큼 걸어 그 앞에 몸을 내렸다.

“진짜로군.”

그리 말한 은헌은 콧등을 찡그렸다.

“나는 자네가 오지 않을 줄 알았거든.”

고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본래라면 오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리 왕의 명으로 혼례를 치른다고 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마냥 달가운 마음은 아니었다. 강제로 끌려왔다면 진작에 다 팽개치고 도망갔을지도 몰랐다.

고윤의 말에 은헌은 담담히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왔잖은가.”

“산신에게 빌린 장옷을 돌려줄 때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서요.”

은헌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고윤의 목덜미와 귀에 연지를 올린 듯 붉게 열기가 올라 있었다.

“고마웠네.”

고윤은 시선을 위로 올려 은헌과 눈을 마주쳤다.

“무엇이요?”

“귀한 걸음을 해주셔서요.”

고윤의 눈이 커졌다.

“마음먹었다 하나, 지금껏 어느 것 하나 그대에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고맙다 하는 것이고요.”

은헌은 조곤조곤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을 털어놓았다.

“제 마음고생을 알아주셔 감사하긴 하온데…….”

고윤은 떨떠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방금 되게 소름 돋았습니다.”

“하는 저도 그렇습니다.”

은헌은 짓궂은 얼굴로 속삭였다.

“그래도 익숙해지세요, 부인. 앞으로 사십 년은 이리 사셔야 하니 말입니다.”

고윤은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침음을 흘리며 옆으로 쓰러져 누웠다. 은헌이 키득거렸다.

꽃잠 자는 밤이건만, 신방에 장난스러운 웃음만 터져 나오자 밖에서 번을 서기로 했던 임 상궁은 마루 끝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2부 끝, 6권에서 3부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