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
한성부가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고윤은 그가 붙잡아 오라 했던, 경 상궁의 집에서 일하던 드난꾼을 물끄러미 보았다.
경 상궁이 가진 패물 가운데 궐에서 나온 것이 있으니, 귀한 물건이라 제값 쳐 줄 수 있는 곳에 사람을 풀면 금방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은헌의 말대로였다.
드난꾼은 저의 잘못을 아는지 눈을 이리저리 불안하게 굴렸다.
“경 씨 성을 가진 노상궁을 아느냐?”
서리의 물음에 드난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모, 모릅니다.”
“몰라? 모른다면 더 곤란한데.”
고윤은 하인의 말을 비웃었다. 은헌의 도움으로, 대비전에서 하사했다는 패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가 장물아비에게 팔아 치운 청금으로 만든 수경은 지난해, 화국에 다녀온 사신이 궐에 진상한 물건 중 하나다.”
이 땅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귀물이라 유난히도 눈에 튀는 것이었다. 자신이 팔아 치운 것이 진상품이었다는 말에 드난꾼의 얼굴은 핏기가 모조리 사라진 것처럼 하얗게 질렸다가 이내 새카맣게 죽어들어 갔다.
“궐의 물건을 훔쳤는데 네놈 목만 날아갈 것 같으냐?”
보통 횡령의 경우에는 따로 벌을 내리곤 하지만, 고윤은 일단 목을 날려 버리겠다는 듯 나지막이 물었다. 그의 표정엔 귀찮다는 기색이 가득했고, 말투에서는 죄를 확정시킨 뒤 눈앞에 끌려온 이가 죽든 말든 얼른 끝내고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가 보였다.
“이보게. 저자를 당장…….”
“후! ……후후, 훔치지 않았습니다. 바, 받은…… 받은 것입니다요!”
말을 절어가며 드난꾼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고윤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받아?”
“예! 그럼요! 받은 것입니다. 이놈이 품삯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졌다.
“거짓말을 고하는 놈의 혓바닥을 잘라내기라도 해야 헛소릴 더는 지껄이지 못할 텐데.”
고윤은 담담히 드난꾼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드난살이하여 품으로 받았다는 그것의 값을 얼마나 쳐 줬더냐.”
드난꾼은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사, 삼백 냥을 준다고…….”
“도둑놈이 사기꾼에게 후려쳐졌구나. 그것이면 손바닥보다 넓은 갑에 은으로 가득 채워 받아도 모자랄 가격이다.”
하인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것을 보며 고윤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네놈을 보아하니 그런 것을 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역시 훔친 것이냐?”
“아닙니다. 그건 정말로 아닙니다. 마마님께 정말로 받은…….”
드난꾼이 다급하게 두 손바닥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조금 전까지는 경 상궁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드난꾼은 열심히 손을 내젓다가 주위를 둘러싼 이들의 스산한 얼굴에 몸을 움츠렸다.
“그게 그러니까.”
“형틀 준비되었으면 들이라 해라.”
고윤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퉁명하게 명했다. 그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군졸들이 형틀을 끌고 들어왔다. 그러곤 드난꾼을 낚아채듯 끌고 갔다.
“정신 차리고 진실을 고할 때까지 두들기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매에 장사가 있겠습니까.”
엉덩이가 터질 때까지 두들기다 보면 태어난 순간부터 줄줄 읊게 될 거라며 서리들이 옆에서 말을 덧붙였다.
“살려주십시오! 사실대로 고하겠습니다!”
고윤은 서리를 보며 손가락을 펼쳤다가 접었다. 딱 몇 대만 두들긴 뒤에 데려오란 뜻이었다. 성질 같아선 그냥 계속 두들기며 다 실토할 때까지 놔두고 싶은 서리였으나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쳐라!”
찰싹찰싹 소리가 요란한 비명과 함께 울렸다.
고윤은 보고를 다시 읽다가 드난꾼이 투전판 노름에 빚을 갚고자 패물을 팔러 왔다는 소리에 혀를 찼다.
장 열 대를 맞고 눈물 바람으로 다시 끌려와 그의 앞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게 된 하인은 아까와 달리 쭈그렁밤송이처럼 보였다.
고윤은 다시 첫 질문부터 던졌다.
“경 상궁을 알고 있느냐?”
“……예. 소인이 그 댁에서 드난살이를 했습니다.”
드난꾼은 순순히 대답했다. 중간중간, 눈물을 삼키고, 울음 따라 흘러내리는 코 먹는 소리도 있었으나 알아듣기 어렵지는 않았다.
“패물은 훔친 것이냐?”
“그건 정말로 아닙니다. 그냥, 마마님께서 정신이 들고 나가기가 부지기수라, 상태가 나쁘셨을 때 품으로 그것을 달라 했더니 내어주신 것입니다.”
매병으로 오락가락하는 이를 꾀어 병이 악화하였을 때, 청금으로 된 수경을 받았음을 드난꾼이 토해냈다.
“상태가 아주 나빴더냐?”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화를 내셨다가 우셨다가 괴팍하였습니다. 기억도 오락가락하여, 저가 보았을 때는 열 살도 채 안 된 어린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고윤도 매병 걸린 이를 본 적이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그랬다. 백발성성한 노인이 세 살배기 아이처럼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에 퍽 당황하였다가도, 이제 어린 시절밖에 기억 못 하여 평생을 함께한 부인도, 자랑거리였던 아들도, 극진하다 칭찬하기 바빴던 며느리도, 직접 업어 키웠던 손주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묘한 울적함을 느꼈었다. 병이 깊어질수록 어린 시절로 돌아가, 끝내 모든 것을 다 잃고 그리 돌아가셨다.
경 상궁의 상태가 무척이나 나빠졌음을 짐작하며 고윤은 문제의 수양딸에 관해 물었다.
“딸이요? ……그런 이는 없었습니다.”
드난꾼은 콧물을 소매로 훔쳐 내며 답했다.
“수양딸을 본 적이 없는 게 아니고?”
고윤의 말에 드난꾼이 눈치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마님께서는 식솔 없이 혼자 사셨습니다. 제가 본 방문객이라곤 질녀가 보내어 궐에서 왔다는 의녀가 대부분이었고, 그 의녀가 가끔 의관과 함께 왔을 뿐입니다.”
“궐에서 의녀가 왔다?”
“예. 참말입니다. 경 상궁 마마님의 정신이 그나마 온전했을 때부터 드나들었고, 상태가 나빠졌을 때는 의녀가 허락을 구하였다며 질녀 되는 분을 대신하여 집안 대소사를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난살이 품삯을 죄다 후려쳐 다 받지도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했습죠.”
고윤은 드난꾼이 밝힌 것을 따로 정리했다. 새로 생각해 보아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럼 그 뒤로는 경 상궁을 본 적이 없나?”
“예. 그게 답니다.”
“최근까지 살았던 곳도 모르고?”
“예.”
고윤은 서리를 보았다.
“궐에 좀 다녀오겠네.”
“알겠습니다. 하면 이놈은 어찌할까요?”
드난꾼의 말대로라면 물건을 훔친 것은 아니었다. 아픈 이를 속여 재물을 빼돌린 것은 맞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내어준 이가 경 상궁이고 돌려달라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속여 가져간 것을 회수하고, 장 서른 대를 더 치게.”
“……그것만 합니까?”
“그다음엔 횡령에 관한 법도대로 처리하게나.”
“알겠습니다.”
서리가 고개를 숙였다.
* * *
고윤은 궐에 들어 최 나인을 찾았다.
수사에 필요한 사항을 확인해야 하니 공식적으로 요청하여도 될 일이긴 했으나 그런데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대비전의 상궁이었던 경 상궁과 관련된 상황이고 아직 이렇다고 단정 지어 밝힐 수 없으니 당연했다.
“나리.”
최 나인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당분간은 뵙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궐을 나선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고윤도 몰랐다. 그는 멋쩍게 웃음을 흘렸다.
“일이 그리되었습니다.”
“한데 갑작스럽게 보자 하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최 나인은 짧은 시간 동안 고윤의 곁에 머물렀으나 꽤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돌아가지 않고 바로 물었다.
“도움을 구할 일이 있어 연통 드렸습니다.”
최 나인은 뭐든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 나인께선 혹 대비전에 계셨던 경 상궁을 아십니까?”
최 나인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저었다.
“송구하오나 이름만 기억할 뿐, 잘 알지 못합니다. 임 상궁 마마님과 가까웠단 말은 전해 들은 적이 있지만요.”
최 나인은 자신은 다른 곳에 있던 이라 대비전 쪽은 잘 모른다 했다.
“하면 경 상궁 마마님께 제가 알기론 질녀가 궁관으로 있다고 했는데 그것을 조용히 알아보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알음알음 물어보면 알아낼 수는 있사온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알아낸단 보장도 드릴 수가 없고요.”
고윤은 침음을 흘렸다. 시간을 끌어 좋은 일은 아니었다.
“가능한 한 빠르게 알 방법은 없습니까? 최대한 조용히 말입니다.”
최 나인은 이상한 것을 묻는다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리. 그리할 수 있으신 분은 이 궐내에서는 오직 한 분뿐이옵니다. 내명부의 수장이신 중전마마 말입니다.”
궁녀들은 내명부에 속해 있었고, 모든 궁녀에 관한 정보는 중궁에서 관리하였다.
고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제 정말로 여유가 없었기에 망설일 처지도 아니었다.
“중전마마, 한성부 정 참군 들었사옵니다.”
“……들라 하게.”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고윤은 고개를 숙여 신을 벗고 마루에 올랐다.
“드시지요.”
예를 갖춰주는 지밀상궁에게 고윤은 감사의 뜻을 담아 인사를 하곤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게.”
중전은 여느 때처럼 담담히 웃으며 고윤을 맞이했다. 고윤은 절부터 올렸다.
“앉게.”
긴장된 얼굴로 선 고윤은 바른 자세로 자릴 잡았다. 중전은 그런 고윤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연락도 없이 급히 뵙기를 청하였습니다. 송구합니다.”
“아닐세. 언제든 필요한 일이 있으면 내게 오라 하였지 않은가. 그래, 그럼 무슨 일로 왔는지 설명부터 듣도록 할까? 최 상궁의 말로는 시간을 다투는 급한 일이라 하던데.”
고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일전에, 제가 한성부에 급한 일이 생긴 고로 중간에 궐을 나서고자 윤허를 구한 일이 있음을 기억하시는지요.”
“기억하네. 도성 내에서 벌어지는 흉흉한 일과 연관 있다 했지.”
중전의 말에 고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서소문 근방에서 노파의 시신이 한 구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맡아보던 일과 관련이 있어 보러 갔었던 것이고요. 그리고 최근 그 죽은 이의 신원이 밝혀졌습니다.”
중전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한성부 참군 직에 앉은 이가 중궁전까지 들어와 그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궐내의, 누군가와 관련 있단 소리였다.
“그게 누군가?”
“대비전에 있었던 경 상궁이옵니다. 객년, 질환으로 궐을 나섰다 들었습니다.”
고윤의 말에 중전도, 곁을 지키는 상궁들도 표정이 변했다.
“경 상궁? 경 상궁이라면 어마마마의 제조였던 이가 아니냐.”
“그렇사옵니다, 마마.”
중전의 물음에 서 있던 최 상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슨 참혹한 일이.”
고윤은 숨을 깊이 삼켰다가 뱉었다.
“좋지 않은 소식을 이리 전하게 되어 송구합니다.”
중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계속하게. 흉수는 밝혀졌는가?”
“아직입니다. 하여 그 이유로 중전마마를 뵙고자 청을 올린 것입니다. 알아보고자 하는 일에 대한 답을 중전마마께옵서 제게 일러주실 수 있다 하여서요.”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고윤은 고개를 숙였다.
“경 상궁의 집에서 드난살이하던 이의 말론 경 상궁의 질녀가 궐에서 일하고 있다 했습니다. 물어볼 것이 있어 그 질녀를 찾으려는데, 정식으로 찾기엔…….”
“궐에서 일하는 이의 신원을 뒤지는 것이니 최대한 조심하는 게 옳지. 그대가 잘 찾아온 것이야.”
중전은 고윤이 어찌하여 중궁전에 들렀는지 이유를 단박에 알아채곤 그 처신을 칭찬했다. 아랫사람의 일이라곤 하나 참혹한 일에 흉흉한 말이 떠돌 텐데, 그런 일에 대비전이 오르내리는 것이 중전으로서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최 상궁.”
“예, 마마.”
“한 상궁을 부르게.”
최 상궁은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소리 없는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 * *
은헌은 커다란 주머니에 담겨 꿈틀거리는 이를 보았다. 산중 으슥한 곳, 해도 달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풀어라.”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매서웠다.
하인들은 재빨리 주머니 입구를 멘 끈을 붙잡아 당겼다. 겁에 질려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윌 둘러보던 사기꾼이 머릴 들었다.
은헌은 입꼬릴 끌어 올려 매끄럽게 웃었다. 휘어지는 입과 달리 눈꼬리는 흐트러짐 없었다.
“살려주십시오!”
왜 잡혀 왔는지도 모르면서 사기꾼은 넙죽 몸부터 바닥에 붙였다.
“고갤 들어라. 누가 보면 칼이라도 쑤셔 넣고 묻는 줄 알겠다.”
은헌이 손을 내젓자 하인들이 양쪽에서 어깨를 붙잡아 올렸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사기꾼이 눈치를 살폈다.
“내가 뭘 물을 줄 알고?”
은헌은 손에든 모선을 흔들었다.
“아는 바는 없으나…… 나리께서 제게 얼마 전 투전판 소문을 사 가신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사기꾼은 비굴하게 웃으며 은헌의 곁에 선 이를 보았다. 은헌의 시선도 그리 갔다.
“네 얼굴이 팔렸구나.”
석삼이 눈을 굴렸다.
“……곧 괜찮아질 것입니다.”
사람의 입을 막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길이 뭔지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알고 있었다. 석삼은 그렇게 말하곤 허리에 찬 검을 두들겼다. 머리 위에서 오가는 살벌한 말에 사기꾼은 눈알만 바쁘게 굴렸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쏟아졌다.
“그래? 뭐, 그건 알아 하고. 나는 방금 네놈이 말한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 전에 사 간 소문 말이다. 투전판 귀신이 다음에 언제 또 판을 벌이는지 알고 있느냐?”
고윤이 경 상궁을 뒤쫓는 동안 은헌은 망량의 행방을 찾는 중이었다. 다시 처음부터 투전판을 돌며 왈짜를 끌어들여 정보를 구하기엔 시간이 부족해 그는 가장 빠른 방법을 택했다.
사기꾼은 은헌이 저를 데려온 목적을 말하자 표정이 풀렸다.
“그 판이라면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헛기침을 뱉은 놈은 단박에 그리 지껄였다. 이야기로 흥정하려는 놈을 향해 주변에서 매섭게 시선을 보냈지만, 은헌은 무슨 말을 하는지 보겠다는 듯 기다렸다.
사기꾼은 저가 붙잡은 것이 구명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신중하게 굴었다.
“많지 않다?”
추임새를 넣듯 은헌이 입을 뗐다.
“그렇습니다. 저 같은 놈이야 가끔 부탁받은 것을 들어주는 것 정도라서요.”
사기꾼은 한숨지으며 눈치를 봤다.
“나리께서 가져가신 것도 빚 대신 받은 것뿐입니다.”
“그걸 준 이가 따로 있느냐?”
빚 대신 받은 물건이라 했으니 사기꾼에게 빚을 진 사람이 있을 터였다.
“그럼요. 제가 이래 보여도 장사꾼으로 뼈가 굵은 놈입니다. 그런 투전판 사이에 끼어봐야 속 고쟁이 하나 못 건지고 쫓겨날 게 뻔한데 뭣 하러 끼겠습니까. 그래서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눕니다. 다만, 나리께 내어드린 물건은 뭐랄까, 굳이 부른다면 일종의 장물이라 할 수 있습지요.”
비밀이라도 속삭이듯 사기꾼의 목소리가 은밀하게 낮아졌다.
“장물이라면 임자가 따로 있는 것을 빼돌렸단 말이로군.”
사기꾼은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예.”
“그게 누군지 말해야지?”
은헌이 해사하게 웃자, 사기꾼 역시 미소 지었다.
“그럼 살려주시는 겁니까?”
당돌하게 거래를 걸어오는 장사치를 보며 은헌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래. 살려주마. 단 확실한 정보여야 할 것이야.”
“그럼요! 정말로 확실한 정보입니다!”
* * *
고윤은 퇴궐하기 무섭게 은헌의 행방을 찾았다. 어디 갔느냐 수소문할 것도 없었다. 만약을 대비하며 묶어둔 목숨줄 덕에 어디쯤 있겠다 하는 것이 제 손바닥 안 들여다보듯 훤했다. 그는 곧장 길을 열었다.
덜커덩 소리에 은헌은 문을 보았다.
누군가 그의 방문을 열고 있었다. 집에서 일하는 이들이 그의 성정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이리 들어오는 것으로 봐선 짐작 가는 이가 하나뿐이었다.
“왔는가?”
고윤은 태연하게 문을 열고 들어와 재빨리 길을 닫았다.
날씨가 풀린 듯하다가도 아침저녁으론 찬 바람이 들어 방에 화로를 들였는지 훈훈한 열기가 느껴졌다. 고윤은 은헌을 보며 꾸벅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버릇과도 같은 인사에 은헌은 픽 웃곤 앉으라며 제 앞을 가리켰다.
“벽동에 머무는 것을 알면서도 이리 오다니 급한 일이라도 있는가?”
“제 처지에 급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만사가 다 조급하지요.”
고윤은 태연히 답하며 숨을 돌렸다. 쉴 새도 없이 이곳저곳 들쑤셨더니 몸이 늘어졌다.
“피곤해 보이는군.”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더니 이렇습니다.”
별거 아니라는 듯 고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은헌은 그런 고윤을 보며 곁의 창을 열었다.
“쉬는 게 좋겠네. 방을 준비하라 이르지.”
금방이라도 하인을 부를 것 같은 은헌을 보며 고윤은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은헌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죽으면 어차피 푹 잘 테니 잠잘 시간이라도 아껴보겠다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고, 잠시 눈도 못 붙일 정도로 그리 급한 일이 뭔가?”
고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경 상궁의 질녀란 이를 만나고 온 참입니다.”
은헌은 고윤이 궐에 들었다는 보고를 떠올렸다.
“누구던가?”
“대전 침방 상궁으로 있는 김 상궁이란 이였습니다.”
“대전의 김 상궁이라면.”
은헌은 단박에 그 질녀란 이가 누군지 알아냈다. 그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조용한 인상과 달리 뛰어난 바느질 솜씨로 궐내에서도 소문난 이였다.
“김 상궁이 경 상궁의 질녀였던가?”
“확인한 바론 그렇습니다. 경 상궁에게 동생이 둘 있는데 그중 여동생이 시집가서 낳은 아이가 김 상궁이라더군요. 어쨌든 김 상궁에게 경 상궁의 소식을 전하고 문제가 된 수양딸의 일을 물어보았습니다.”
고윤은 말을 하다 말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서 말해보게.”
은헌은 그런 고윤을 재촉했다.
“김 상궁은 전혀 모르고 있더군요. 최근까지 경 상궁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객년, 궐을 나선 경 상궁에게 인사 갈 때마다 본래 살던 집에서 경 상궁을 보았다 했습니다. 한 달 전에도 말입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고요.”
은헌은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을 흘렸다.
“대체 경 상궁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경 상궁의 집에서 일했던 드난꾼의 말로는 의녀와 의관이 드나들었다 하여 그것도 조사해 보았습니다만, 의녀는 기록에 남아 있는데 의관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드난꾼은 분명 궐에서 의녀와 의관이 나왔다고 했는데 말이다.
“의녀 쪽은?”
“대비전의 명으로 서너 번 가보았고, 김 상궁이 몇 번 부탁하여 상태를 보고 약을 처방하였다 했습니다. 드난꾼에게 얼굴을 확인하여 동일인인지 살펴보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드난꾼이 본 의녀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의녀와 의관을 찾아낼 방도가 없는 것인가?”
고윤은 고개를 저었다.
“드난꾼의 증언을 토대로 의녀가 누군지 찾아냈습니다. 얼마 전부터 실종 상태로 소식도 종적도 끊인 이라 하더군요.”
은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의관은? 찾았는가?”
고윤의 표정에 아까와 다른 느낌의 귀찮음과 짜증이 묻어났다.
“의관은 윤이서라는 이름을 쓰는 작자로 혜민서에 있었는데 노름빚을 갚으려 약재를 빼돌린 것이 발견되어 내쳐진 이라 합니다. 행방을 아는 이는 없고요.”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무언가가 하나둘 자리를 잡아갔다.
은헌의 눈이 커졌다.
“윤이서?”
“예.”
은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우연은 아니었군.”
“무엇이 말입니까?”
고윤은 눈을 찌푸렸다. 은헌은 고윤과 눈을 마주치며 입꼬릴 끌어 올렸다.
“그 망량이 있는 곳에 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패가 필요하지 않았는가.”
고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그 패를 넘긴 장사치가 하는 말이 자신도 그것을 빚 대신 넘겨받은 거라 하더군.”
“그런 걸 우리에게 다시 넘긴 겁니까?”
“그래.”
은헌은 그래서 그 패를 맡긴 주인을 찾고 있었다.
“그자의 말로는 윤씨 성의 의원이 맡겼다 하더군. 그것만 있으면 일확천금의 기회가 생길 거라는 말과 함께 말일세.”
윤씨 성을 가진 의원, 망량과 연관이 있는 자. 머릿속에 불꽃이 터진 듯 환해졌다.
“그래서 그자를 찾는 중이라네. 투전판을 전전한다는 것까진 알아냈는데 어디에 나타날지는 모를 일이라 말이지.”
“오늘 잠은 다 잔 것 같군요.”
고윤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연거푸 한숨이 새나왔다.
“어째서?”
의문 가득한 눈으로 은헌이 고갤 기울였다.
“내일부터 포청에서 대대적으로 검계 무리를 추포하게 되었습니다. 놈 중 몇몇이 투전판 무리의 뒷배로 있어 이참에 투전판도 싹 쓸어버리겠다며 포청에서 이를 갈고 있고요. 왈짜들의 패악이 심해져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니 주상 전하께옵서도 엄히 다스리라 하셨답니다.”
한성부, 형조, 포청 할 것 없이 투전판, 투전꾼들에게 매달려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붙잡기 전에 윤 의관을 다른 이가 발견하면 정말로 큰일이 나겠군.”
“수명이 다 될 때까지 영영 해결 방법을 못 찾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한동안은 다들 쉬쉬하며 위협에 몸을 웅크려 그늘로 숨어들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은헌은 선택지도 없는 일에 한숨을 내쉬었다. 여유를 부리며 느긋하게 궁둥이 붙이고 앉아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밖에 행랑아범 있는가!”
은헌이 목소릴 높였다.
* * *
“군기교 4) 쪽은 보내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쪽은 밤에는 사람의 움직임이 드문 곳이라서요.”
투전꾼들이 어디든 없겠느냐마는 그래도 모일 만한 곳에 모이는 법이었다. 고윤은 도성도를 살피며 몇 곳을 짚었다.
“서쪽으론 광통방과 소정동 그리고 동쪽의 백자동, 남쪽의 필동이 다일 겁니다.”
“포도청과 가까운 광통방과 소정동은 빼는 것이 나을 듯한데, 나는 신창동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의심스럽네.”
지도 위로 은헌이 손가락을 튕겼다. 신창동이라면 소의문 근방이었다. 동쪽은 이미 다 뒤져 보았고 서쪽 끝으로 갈수록 점점 오밀조밀하게 덧대고 덧댄 듯 만들어진 집들이 여럿이라 투전판으로 쓰기에 좋은 곳이 많기도 했다.
고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새벽녘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낮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아 더 움직이기 힘겨우니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그렇다면 움직이는 것만이 답이었다.
“가시죠.”
은헌도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고윤은 자리를 정리하고 망설임 없이 은헌의 손목을 붙잡고 이끌었다. 차분한 분위기를 내는 방에서 흙 썩은 냄새가 풍겨오는 거리로 순식간에 주위의 풍경이 바뀌어갔다.
은헌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고윤은 생전 처음 보는 곳으로는 가지 못했다. 한 번은 발이 닿았던 곳이라야 길을 여는 것도 가능했다. 그게 아니면 그 거리처럼 여러 곳으로 길이 뻗어 있어야만 했다. 한성부에서 일하며 귀신의 일로든 다른 일로든 부탁받아서 하는 것 중에 험하지 않은 일이 없다지만, 이런 것을 또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런 곳을 잘도 알았군.”
고윤은 주위를 힐끔 살피고는 별것 아니라는 얼굴을 했다.
“일전에 집을 잃고 거릴 헤매는 귀신 보아 집을 찾아주다 보니 알게 된 겁니다.”
“자네가?”
은헌이 알기론 고윤은 제집 마당에 득시글거리는 귀신들, 거릴 다니며 마주치는 귀신도 귀찮아했다. 길을 잃었단 이유로 도와줄 이는 아니었다. 귀신에게도 귀신만의 법도가 있다고 함부로 도와줘선 안 된다 꾸중하기도 했다.
“……어미와 함께 죽은 줄도 모르고 배고프다 우는 갓난쟁이가 같이 있어서요.”
“찾아주지 않을 수가 없지, 그런 것은.”
보았다면 은헌도 그리했을 터다. 고윤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듯 돌아서서 증축한 건물을 빠져나갔다. 지붕과 지붕이 맞닿아 틈새도 없이, 한두 명 지나다니는 것도 벅찰 듯한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자 그나마 숨통 트일 것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고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저가 온 곳이 맞는지 확인했다. 사람이 늘어나며 수시로 왔다 갔다 해도, 늘 새로운 무언가가 생기곤 하는 곳이었다. 헤매고 뱅뱅 돌기 쉬운 곳이라 길을 꼼꼼하게 살핀 뒤 고윤은 은헌과 함께 나섰다. 고윤은 제 위치를 확인한 다음 소매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이곳으로 오라는 명을 적곤 종이를 접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급한 탓인지 제대로 모양이 잡히지 않았다.
“이리 줘보게.”
은헌은 빼앗다시피 고윤의 손에서 종이를 가져갔다.
그는 종이를 몇 번 접었다가 펼치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새 모양을 만들어냈다.
“여기.”
고윤은 제 손을 한번 들여다보곤 미간을 찌푸린 채 은헌이 내민 종이 새를 받아들었다. 그가 접었다면 너덜너덜했을 날개 부분이 반듯했다.
고윤은 그것을 받아 주를 걸어 하늘로 날려 보냈다.
새는 훨훨 날아올라 은헌의 수하에게로 날아갔다.
“대감.”
근처에 가장 먼저 당도한 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왔는가?”
“걸음이 늦어 송구합니다. 오는 길에 윤 의관에 관한 소식을 알아낸 것이 있어서요.”
재빨리 정보를 취합해 온 이가 보고했다.
“이쪽 골목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뒷골목 주막에 자잘하게 판이 열리곤 하는데 최근 윤 의원이 그쪽에 출입하는 것을 본 이가 있다 합니다.”
장소와 인상착의, 그럴듯한 정보를 담은 목격담이었다.
고윤은 하늘을 살폈다. 해는 뜨지 않았지만, 어스름이 걷히고 있었다. 본디 날이 추울 때는 아침마저 느리게 시작하는 법이지만, 소의문 근방이라 꼭 그렇지도 않았다. 성문이 열리면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니 서둘러야 했다.
“가세.”
은헌의 손짓에 모두가 급히 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오가는 장사치들이 잠깐씩 눈 붙이고 가는 허름한 주막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기 위해 마당에 쌓인 짐들을 밖으로 내가는 이들을 뒤로하고, 그들은 안쪽 방을 뒤졌다. 석 칸 남짓한 주막이다 보니 빠져나갈 구석이 없도록 하고 무작정 안에 있는 사람을 붙잡아 일일이 확인했다. 얼굴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헤매고 있을 무렵 고윤은 장사치들 뒤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이를 보았다. 새카맣게 타 죽어가는 얼굴이란 저런 것이다 싶을 정도로 목덜미 쪽에 피가 고인 듯 푸르뎅뎅한 살결이 눈에 띄는 사내였다. 고윤의 시선을 끈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발을 옮겨 사내의 앞에 섰다. 은헌이 그것을 보고 손짓하자 흩어져 있던 수하들이 죄다 모여 사람 장벽을 만들었다.
“윤이서.”
고윤은 윤 의원의 이름을 불렀다.
사내는 어깨를 움찔거리면서도 쉬이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고윤은 입매를 뒤틀며 웃었다.
“윤이서, 그 이름을 가진 이를 찾는다. 네가 아니냐?”
“사, 사람을, 잘못, 보셨습니다.”
사내는 겁먹은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윤은 그 모습을 비릿한 얼굴로 보며 소매를 흔들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희뿌연 팔과 다리가 드러났다. 사내는 영문 모를 얼굴로 두리번거리다 제 곁에 선 것을 보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윤이서가 누구냐?”
안개 같은 희뿌연 손들이 사내를 가리켰다. 고윤의 표정이 저물어가는 달 아래 스산히 빛났다.
“맞다는데?”
한 번만 더 아니라고 부정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낮아진 목소리에 사내는 마른침을 삼켰다. 뒤에서 손뼉 소리가 울렸다.
“확인은 끝났는가?”
지켜보고 있던 은헌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어 고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곤 빈손을 들어 뒤에 선 이들에게 신호했다.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바닥에 쓰러지듯 앉아 있는 사내의 머리 위로 망태기를 뒤집어씌웠다.
“첫닭이 울기 전에 돌아가게 되었군.”
어스름이 어느 사이에 걷혀들었다.
* * *
윤 의원은 눈을 감고 있는지 뜬지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곳에서 눈을 떴다. 상하좌우조차 구분되지 않는 곳이었다. 정신이 몽롱했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려보려고 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인생처럼 말이다. 윤 의원은 실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웃다 그는 목덜미 뒤쪽에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몸을 떨었다. 갑작스레 온몸에 소름이 밀려들었다.
눈꺼풀을 감았다가 뜨기 무섭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생각한 곳에서 허연 팔들이 보였다.
‘헛것이다.’
그리 생각했다. 밤을 새워 놀음판에 어울리다 보니 혼몽한 상태라 그럴지도 몰랐다. 제 살결을 더듬어 올라오는 한기는 머릿속에서 이는 착각이었다. 윤 의원은 애써 숨을 골라냈다. 이를 꽉 깨물고 그는 몸을 바로 세우려 애썼다. 그러나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손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