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
어둠 속에서 희고 고운 손이 움직였다. 정 나인은 머리맡을 더듬다 눈을 떴다. 신경질이 묻어나는 잠이 덜 깬 눈이 어둠에 적응하며 몇 번이고 깜박였다. 새벽녘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정 나인은 자리끼 그릇이 비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냥 잘까, 그러나 목이 말랐다.
정 나인은 어둑한 방 바깥을 살폈다. 어쩐지 밖으로 나서기가 무서웠다. 으슬으슬한 기분에 그녀는 옆자리에 누운 동무를 보았다.
박 나인의 새근새근한 숨소리에 정 나인은 이내 한숨을 내쉬곤 결국 이불을 걷었다. 꽃망울이 움트기 전이 가장 춥다더니 새벽 서늘한 기운에 몸서리치며 정 나인은 처소에 달린 부엌으로 향했다. 반질반질하게 닦아놓은 마루를 걷던 정 나인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미간을 구겼다. 마루 끝에 청록색 옷자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궐에서 저 색의 옷감은 흔했지만, 생댕기 1) 할 이는 정해져 있어 정 나인은 어렵지 않게 그 치맛자락의 주인을 알아챌 수 있었다.
“얘?”
생각시가 대체 왜 이 새벽에 처소를 나왔는지 몰랐으나, 우선 돌려 보내야 한다는 것을 정 나인은 알고 있었다.
“너 어느 처소의 생각시니?”
정 나인은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그러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처소냐니……까.”
생각시의 얼굴을 확인하려던 정 나인은 굳어오는 혀끝에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바짝 얼어붙었다.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자리하고 있어야 할 눈코입 대신 온통 갈라진 상처만 가득했다. 생각시의 몸이 흐릿해지는 순간 정 나인은 비명을 내질렀다.
긴 밤을 깨워내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