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1)
“어린아이가 된 것 같네.”
나들이에 들뜬 꼴이 퍽 우스워 은헌은 자신을 꾸짖기라도 해야 할까 고민했다. 고윤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본디 사내란 이들은 여든을 넘겨도 애 같은 구석이 있다고 어릴 적 저를 키워준 유모가 그랬지요.”
“그 말 나도 보모상궁에게 들었었지.”
둘은 웃음으로 상황을 넘기곤 가게를 봤다. 일전의 그 거리, 똑같은 두꺼비 간판 아래였다.
고윤은 은헌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저번과 달리 밖에서 주인을 부르지도 않았다.
“왔구먼.”
눈이 툭 튀어나온 주인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달려왔다. 고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은 다 자아내졌습니까?”
“그럼 그럼.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것으로 짜냈지. 먹은 양이 꽤 많더구먼.”
두꺼비는 그리 말하며 안에서 작은 함을 꺼내왔다. 그러곤 뚜껑을 열어 안을 확인시켜 줬다. 은헌은 호기심을 숨기지 않고 함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검은 실이 감겨 있는 실패였다. 검은색임에도 빛에 따라 영롱한 은과 같은 빛깔이거나 옥 같기도 했다.
“이것이 자네의 기억이란 말이지.”
“예. 생각보다 잃은 것들이 많군요.”
야금야금 갉아 먹어 알아채지도 못했는데 이리 뽑아놓으니 많기도 했다. 고윤은 저가 그동안 화낼 일이 이리도 많았던가 다시 새겨보았다.
“한데 이것을 어떻게 다시 머릿속에 집어넣는가?”
책쾌는 방물장수를 찾아가 책벌레 고치를 주고 기억을 실처럼 뽑아달라 하면 될 거라 했다. 은헌은 실처럼 보이는 기억을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때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고윤은 두꺼비를 보았다.
기억을 어떻게 자아내는지에 따라 사용법이 달랐다. 게다가 그도 말로만 들었지 실물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두꺼비가 히죽 입술을 길게 늘였다.
“새벽 연꽃에 고인 이슬을 써서 기억을 뽑았으니 이슬에 녹여 마시면 된다네.”
장사치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녹여 마시란 말이오?”
고윤은 실을 보며 콧등을 찡그렸다. 색이 색이다 보니 맛있을 거란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 그게 가장 안전하게 기억을 되찾는 방법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두꺼비는 어느새 전체가 검게 물든 눈동자를 뱅글뱅글 돌렸다. 그런 방물장수의 시선이 은헌에게 멈추는가 싶더니 히죽 또다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손께선 뭔가 더 필요한 것이 없는가?”
은헌은 저를 보며 묻는 말에 잠시 운을 떼듯 멈췄다 입을 뗐다.
“필요한 것은 없는데 물을 것은 있네.”
“물을 것이라…….”
은헌은 방긋 웃었다.
“내 일전에 가져간 낚싯대 말일세. 알고 보니 그 낚싯대에 하자가 있는 듯해. 낚싯대를 잘 아는 이가 일러주길 물고기가 바늘을 물었는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깃털을 달아야 한다지 뭔가, 아주 가볍고 예민한 것으로 말이야.”
방물장수는 무슨 이야기인지 단번에 알아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깃털이 여기도 있기야 하지만은 그 물건엔 인연이 없는 것들뿐이라.”
“그럼 하자가 확실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만큼 값을 덜 받았는데.”
은헌은 저가 뭐로 치렀는지도 모를 그 값을 되새겼다.
“처음에 깃털 달아야 할 거란 말을 해주지 않았으니 거기서 더 빼줘야 하는 게 아닌가?”
온전한 물건인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무언가 빠졌단 소리는 들은 기억이 없었다. 방물장수가 큰 소리로 껄껄 웃었다.
“뭐, 인간 손님. 그 말도 맞지만, 딱 제값만큼 받았다네. 그 값을 빼내 돌려줄 수는 없으니 다른 것은 뭐 더 필요한 게 없는가?”
두꺼비는 눈을 굴리며 주변의 물건을 훑었다.
“이것도 괜찮은데. 꿈을 담을 수 있는 함이라네. 귀한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담아 선물할 수도 있고. 나쁜 꿈을 담아 적에게 선물하면 조용히 쓱싹하기엔 딱 알맞지.”
손가락이 네 개 달린 손으로 방물장수는 화려하게 꾸며진 함을 내보이곤 뒤쪽의 검을 가리켰다.
“이게 싫으면 옛날 신검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함께 만들어진 천하 명검도 있지.”
은헌은 번쩍번쩍한 물건들을 보다가 고윤을 봤다. 팔을 슬쩍 잡아당긴 그가 머리를 흔들었다. 안 된다는 뜻이었다. 은헌은 알아들었다고 고갯짓을 하곤 뒤에서 귀한 귀물을 꺼내는 두꺼비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다른 것은 되었네. 대신 깃털 말일세. 어떤 것이 그 낚싯대와 인연 닿은 깃털인지 알려줄 수 있는가?”
두꺼비가 킬킬거렸다.
“그 낚싯대에 매달려야 할 깃털은, 기이한 사고로 죽은 귀신이 길을 헤매다 주운, 하늘에서 떨어진 선학의 꽁지깃이어야 하지.”
“기이한 사고로 죽은 귀신이라?”
“그렇지.”
두꺼비가 웃었다.
* * *
은헌과 고윤은 가게를 나섰다. 오는 것이야 같이 왔으니 상관없으나 나가는 길이 문제였다.
“어디로 열어 드릴까요.”
도성 밖으로 갈 건지, 도성 안으로 갈 건지 고윤은 물었다.
“어차피 아침에 입궐하셔야 하는 거면 벽동이 나을 듯한데.”
은헌은 그 말에 웃었다.
“도성 출입 기록에 내 패가 등록되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내관이 따로 있어서 벽동 집엔 갈 수 없다네.”
그 말을 하며 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고윤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그런 것까지 확인합니까.”
“그렇다네.”
고윤은 미간을 구겼다.
대군이 궐 밖으로 어린 나이에 내쳐지다시피 나갔단 말은 최근 들어 알고는 있었다. 게다가 지금도 그렇게 부왕에게 어여쁨받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궐내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한 그도 쉽게 알아낼 수 있을 만큼 대군이 왕에게 받는 취급은 소문이 무성했다.
아비에게 미움받는 자식이란 것과 눈에 보이는 은헌대군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말이다.
고윤은 생각을 멈췄다.
“그럼 집으로 열지요.”
“고맙네.”
은헌은 캐묻지 않는 고윤을 보며 치하했다. 어쨌든 그의 집까지 다시 되돌아가면 고윤만 바빠질 테니 말이다.
거리를 떠날 때가 되자 은헌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시선을 던졌다. 일전에 저녁에 가까운 무렵에 왔을 때와는 또 느낌이 달랐다. 먼 이국의 거리처럼 온통 붉고 푸른 등이 대로의 하늘에 떠 있어 빛으로 화려했다. 멀리서 살펴보면 대지 위를 가로지르는 빛의 강처럼 보일 듯했다.
평범한 인간은 평생 발도 못 디딜 곳이라 했었지.
“여긴 불야성 같군.”
화국 이전의 송국 시대, 개경의 거리가 밤새 이리 화려했다 들었다.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먼 나라에서부터 상인들이 물건을 싣고 찾아와 세상 귀한 것들을 그득 쌓아놓고 팔며, 거리는 사람으로 파도가 치듯 북적이는 별천지라 했다.
“그쪽과도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은헌의 말에 고윤은 위치를 가늠하듯 방향을 재며 고개를 돌렸다.
“그 시대의 거리와 말인가?”
은헌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고윤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가 그럼 그 시절 나온 책을 어찌 구했겠습니까.”
“책쾌에게 사들인 게 아닌가?”
“바람 따라 흘러 다니는 도깨비라도 가끔 때가 맞지 않아 못 구하는 책이 있지만, 어디 있는지는 잘 알지요.”
고윤이 책쾌에게 주로 사들이는 것은 원하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정보였다. 그는 은헌을 보았다. 청반한 20)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욕망이 득시글했다.
“잠시 들렀다 가시겠습니까?”
“……그래도 되는가?”
“뭐, 오래는 곤란하지만, 일각 정돈 상관없습니다.”
고윤은 하늘을 보며 시간을 가늠했다. 어차피 새벽에 연꽃에 고인 이슬을 받으러 가야 하니 오늘 밤 잠들긴 그른 상태였다.
“자네가 괜찮다면 나도 좋네.”
은헌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고윤은 은헌의 손을 붙들고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기대감으로 그득한 건지 손을 붙잡고 붕붕 휘두르는 몸짓에 어쩐지 웃음이 터졌다.
그 시간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은헌은 어느샌가 주위가 캄캄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곧 눈앞에 나타나는, 도성의 저잣거리와는 다른 찬바람이 부는 세상에 눈을 크게 떴다.
옆으로 알아듣기 힘든 옛말을 하며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낯선 언어와 낯선 냄새가 주위를 가득 메우자 그제야 아득했던 감각들이 제자리를 찾아 들었다.
“정말이군.”
고윤은 제 옷소매를 꽉 붙들고 선 은헌의 말에 성큼 길을 안내했다. 좁고 컴컴한 길에서 나와 대로로 접어들자 은헌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들을 지나쳐 가는 이들이 흘깃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소란스럽게 구는 이는 없었다. 둘 말고도 이 거리엔 이국의 특이한 복색을 한 이들이 떼로 지나다녔다.
은헌은 정신없이 고개를 돌렸다.
“여기 있는 것은 사도 괜찮은가?”
그는 고윤에게 먼저 확인했다.
“사시게요? 화폐가 달라…….”
은헌은 붙잡히지 않은 손을 들어 가슴께를 툭툭 쳤다.
“금과 은은 어느 시대든 통하는 법이지.”
장신구와 함께 말이다.
이 시대의 말은 은헌이 배운 말과는 또 달랐다. 처음에는 그게 낯설어 도통 귀에 들리지 않아 애먹었지만, 그는 금방 적응했다. 게다가 고윤이 힘을 써주자 평소보다 더 말이 잘 떠오르기도 했다.
착 하면 척 하고 알아듣는 상인에게 그는 여인들의 머리에 다는 장신구 두 개와 읽지도 못하는 서책을 하나 사들였다. 그리곤 거리에서 몇 가지 물건을 더 샀다.
“주머니를 다 털고 가실 작정입니까?”
고윤은, 그 와중에도 눈높이에 맞는 것을 고르느라 정신없는 대군을 뜯어말렸다. 무슨 생각으로 돈을 그렇게까지 많이 준비해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몸에 지니고 온 금붙이라고 생긴 것은 죄다 털고 갈 기세로 대군은 스스럼없이 주머니를 열었다.
“내가 언제 다시 여기까지 오겠나.”
은헌은 웃으며 대꾸했다.
“바다 건너는 것은커녕 도성 밖으로 멀리 떨어지는 것도 도성문 안에 드는 것도 허락이 필요한 처지에 말이야.”
얼핏 매인 것 없어 보이는 신세지만 실상은 목줄이 단단하게 붙잡혀 있었다.
은헌은 저가 사는 세상의 넓이를 알고 있었다. 구중궁궐 담장 안에 계신 세자보다야 훨씬 더 많은 곳을 다닐 수 있으나 그게 한계였다. 죄인이 집 밖으로 멀리 나다니지 못하듯 그도 그랬다.
“나중에 저랑 다시 오시면 되지요.”
그 커다란 새장을 고윤은 아무렇지도 않게 벌컥 열어젖혔다. 고윤은 담담히 은헌을 보았다.
“뭐, 관청에 나가는 날이야 잠깐밖에 안 되지만 쉬는 날이면 작정하고 아침부터 와도 상관없잖습니까.”
“……그렇군.”
은헌은 픽 웃음을 흘리며 눈에 든 장신구 하나를 마저 사들였다. 적당히 대화하고 많이 걷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더니 허기가 졌다. 고윤은 은헌이 비상식량 삼아 가져온 주전부리가 든 주머니를 풀자 야금야금 받아먹으며 배를 달랬다. 은헌은 제 주머니가 가벼워지자 거리에서 파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저건 어떤가?”
낯선 것 중에 흥미로운 것을 찾아 은헌이 손짓했다. 고윤은 그리로 고개를 돌렸다가 움찔했다.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사람들이 줄 서서 사 먹는 것을 보아하니 괜찮을 듯한데.”
줄까지 서 있으니 어쩐지 한번 먹어봐야겠단 기분이었다. 은헌은 말릴 새도 없이 늘어선 줄의 끝에 붙어 섰다. 그러곤 금방 주전부리를 하나 손에 사 들고 돌아왔다.
“들겠나?”
“저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고윤은 아까 받은 유과를 오독오독 씹으면서 거절했다. 은헌은 웃으며 사 온 것을 조심스레 입에 넣고 씹었다. 화덕에서 구워낸 커다란 부꾸미 같은 것이었다. 그는 우물우물 씹다가 그대로 굳었다. 그리곤 손에 들린 것을 마치 흉악한 것이라도 되는 듯 내려다봤다.
“평생 못 먹어본 맛일 겁니다.”
“……자네 알고 있었나?”
“저도 줄 선 적이 있거든요.”
고윤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은헌은 입안에서 풍기는 향에 코를 찡그렸다.
“향료를 입에 넣은 듯한 맛이야.”
향긋한 냄새가 가득 풍기는데 그 향긋함이 입안에서 미끈거렸다. 고윤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군은 그것을 버리곤 제 소매 주머니에서 얼마 남지 않은 육포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나중에 세자가 보위에 오르면 그때는 멀리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니 여기를, 같은 시간이 아니더라도 다시 와봐야지 하던 결심이 뚝 사라졌다.
“여긴 그냥 물건만 사고 가는 게 제일이죠.”
고윤은 냉정하게 음식 맛을 평가했다. 찾아보면 먹을 만한 것도 많고 먹다 보면 괜찮아질 거란 것도 아는데 그 처음이 원래 어려웠다.
“이제 슬슬 돌아가셔야 합니다.”
<3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