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이리 말이냐?”
“예. 그리하시면 됩니다.”
은헌은 행랑아범이 일러준 대로 아침에 만든 낚싯대를 휘둘러 보았다. 흙바닥을 툭툭 긁어대듯 튕기는 바늘의 움직임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하는 것은 똑같은데.”
행랑아범이 일러준 방법과 똑같이 밤마다 정자 아래 연못에 낚싯줄을 던지는데도 여태 한 번의 입질이 없었다. 은헌은 꿈을 찾아드는 객을 떠올렸다. 그는 잔뜩 신경질을 부리며, 저에게 낚시를 알려준 귀신을 혼구녕 내주겠다며 오늘은 새벽 첫닭이 울기도 전에 돌아갔다.
해 본 적도 없이 대충 겉핥기로 배워 그런가 싶어 은헌은 집에 있는 하인들 가운데 낚시를 해 봤다는 이를 찾아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요령을 익히고 있었다.
“소인도 잠시 만져 본 것이 다였던지라, 다른 사람이 있는지 알아볼까요.”
송구스럽다는 듯 허릴 숙이는 행랑아범을 보며 은헌은 되었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는 낚싯줄을 다시 잡아 올렸다. 뒤로 물렸다가 휙 하고 날아간 실은 힘없이 멀리 가지도 못하고 허공에서 나비처럼 팔랑거리다가 수면 위에 내려앉았다.
은헌은 자릴 박차고 일어섰다.
“대감?”
“나갈 채비 하여라.”
“지금 말입니까?”
아침에 궐에 들었다가 되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래. 오랜만에 스승님께 안부 여쭈러 다녀와야겠다.”
은헌은 얼른 준비하라는 듯 신을 신고 정자에서 내려왔다. 행랑아범이 허둥지둥 알았다고 하고는 움직였다. 다른 청지기가 낚싯대를 정리하는 동안 은헌은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하러 방으로 향했다.
그는 스승을 떠올렸다.
일신상의 이유로 찾아뵈온 지 오래된 스승은, 건너온 소식에 의하면 신선처럼 소일거리 하며 시간을 보낸다 들었다. 세월을 낚는 게 유일한 낙이라던가? 세월도 낚으시니 잉어쯤은 가볍게 건지시겠지, 못난 제자인 은헌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에게 낚시를 처음 알려준 몽중객(夢中客)에게는 미안하지만, 잘하는 이에게 다시 가르침을 청하는 게 현명하게 느껴졌다. 은헌은 관직에서 물러나 멀리 흥인지문 근처에 사시는 스승의 거처를 기억 속에서 재빨리 찾아냈다.
급하게 마련한 기름에 부친 적과 과실 몇 가지를 챙기고, 묵혀둔 술 단지의 술을 다시 걸러 담은 술병 하나 얹으니 선물이 근사했다. 은헌은 그것을 들고 말에 올랐다.
녹번 고개가 가까운 그의 집에서 저 먼 동문의 인창방 2)까지 가려면 한참은 달려야 했다. 외성을 둘러 가는 것보다 도성을 가로지르는 것이 당연히 빠르니 그는 다시 창의문으로 향했다. 궐의 북쪽을 지나 벽동 집을 따라 청계까지 내려와 그는 동쪽으로 향했다. 천을 따라 다리를 몇 개 지나가 초교가 보이자 은헌은 말을 세웠다.
“대감, 영도교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요.”
하인이 말고삐를 붙잡았다.
“게까지 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여기인가 보다.”
말의 거친 투레질에 지나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돌아보았다. 다리 곁에 앉아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겸은(兼隱) 영산은 거칠게 자란 수염을 흔들며 오랜만에 보는 제자에게 달려왔다.
“대감!”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승님.”
은헌은 마의 입은 스승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겸은은 은헌대군을 집으로 청했다.
동네 초입도 아니고 외곽에 자리한 집이었다. 허름한 초가지붕을 보고도 은헌은 대수롭지 않게 들어가 마당에 놓인 마루에 들고 온 것을 올렸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여길 보니 스승님께선 여전하신가 봅니다.”
겸은은 웃음을 터뜨렸다.
“달라질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여전합니다.”
관직에 올랐으나 애초에 관리가 될 성격도 아니었고, 겸은은 그저 학자인 것이 좋았다. 나이를 들고 보니 그것도 덧없이 느껴져 그는 어느 순간부터는 책도 손에서 놓아버린 상태였다. 자호(自號)마저 숨은 이라 칭한 뒤로는 찾아오는 제자들마저 물리고 있었으나 은헌만은 예외였다.
“대군 대감께서도 못 본 새에 의젓해지셨습니다.”
은헌은 저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스승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겸은은 은헌이 궐에서 쫓겨난 이후 중전이 어렵게 수소문하여 붙여준 스승이었다. 그 이유로 왕의 미움을 사 관직에서도 쫓겨나다시피 그만두고 현재는 보는 바와 같이 초로의 어부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누가 눈앞에 서 있는 이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 일컬어지는 겸은 선생이라 할까 싶었다.
물에 젖지 않도록 동동 무릎 위까지 걸어 올린 바짓단을 풀어낸 겸은은 멋쩍은 얼굴로 의관을 정제했다.
그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어디서 기름붙이 냄새가 납니다.”
은헌은 집에서 가져온 것을 풀었다.
“제자가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이온데 빈손으로 올 수야 없지요.”
겸은은 그 말이 우스워 껄껄 소리를 냈다.
“대감께서 예의란 것도 차리실 줄 아시게 되었습니다.”
은헌은 능청스레 웃었다. 그러고는 전이 담긴 바구니 옆에 슬쩍 술병도 꺼내놓았다. 그를 보는 스승의 얼굴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다.
겸은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한 뒤 마루에 앉았다.
“객년(客年)에 책 읽기 싫으시다며 제 그림자 닿는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겠다 하신 분께서 술까지 챙겨 무슨 일로 이리 찾아오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은헌은 조금 심각해진 얼굴을 하는 겸은을 보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스승 된 도리로 제자를 최선을 다해 지켜보겠다는 의지 어린 표정에 미소가 배어 나왔다.
은헌이 궐에서 나올 당시 가장 크게 반발하여 삭봉당할 때도, 그의 스승이 된 뒤 끝내는 관직에서 물러났을 때도 이런 얼굴이었다. 평생을 지아비인 금상에게 날 선 소리, 섭섭하단 말 한 마디 꺼내지 않은 모후께서 붙인 사람치곤 정말로 강직했다. 그래서 오래도록 보지 않겠다 하고 그의 곁에서 떼어낸 스승이었다.
은헌은 쑥스럽게 웃으며 운을 뗐다.
“제자가 스승을 찾을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지요.”
겸은은 눈을 크게 떴다.
“학문에 대한 것은 아니시겠지요?”
“예. 책 읽기는 취미 삼아 하는 것이면 족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것은 저것입니다.”
은헌은 조금 전까지도 청계에서 물고기를 낚아 올리고 있던 낚싯대를 가리켰다. 스승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앞이 무거워야 잘 가라앉지 않겠습니까.”
은헌은 그가 만든 것과 차이가 나는 부분을 꼼꼼히 파고들었다. 겸은이 쓰는 낚싯줄 끝에는 작은 돌처럼 보이는 쇳덩이가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물살에 나풀거리지도 않고요. 그렇게 해놓으니 입질이 좀 늘더군요.”
스승은 은헌에게 설명했다. 유용한 가르침에 은헌은 눈썹을 들썩였다.
“하도 세월만 낚으신다길래…… 입에 풀칠은 하고 사시나 염려하였는데.”
“세월만 낚으면 배를 곪습니다. 입에 풀칠은 해야지요.”
산 입에 거미줄 칠 것도 아니니 부지런히 낚아야 한다며 스승은 너스레를 떨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낚시에 관심을 두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제 기억으론 생선은 입에도 대지 않으셨던 것 같은데요. 물가에 가는 것도 싫어하셨고.”
은헌은 픽 하니 코웃음을 흘렸다.
어릴 적 부왕의 손에 떠밀려 경회루 앞 못에 빠진 뒤로는 한동안 물도 두려웠고, 물고기도 무서워하긴 했다. 세자 형님께서 살려주지 않았다면 그리 허우적대다 죽었을지도 몰랐기에 두려움이 컸다.
사고였다 했다. 모두가 그렇게 떠들었지만, 은헌은 저를 밀어놓고 살려달라 버둥거리는 자신을 서늘한 눈으로 보고만 있던 부왕의 얼굴을 잊지 못했다. 곁에 선 이들도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상선과 대전 상궁들이 말이다.
“분명 그렇긴 했지요. 그 뒤에 저하께서 몸소 헤엄치는 법을 알려주시니 싫어해도 어쩌겠습니까. 아우 된 도리로 열심히 배웠지요.”
“그래도 여전히 생선은 싫어하지 않으십니까.”
“입에 비리니까요. 그런데 잉어를 낚아야 할 일이 생겼지 뭡니까.”
“잉어 말씀입니까?”
“예. 그도 꿈에서 말입니다.”
겸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꿈이라면…… 잠들었을 때 꾸는 것 말입니까.”
은헌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참, 기이한 일이군요.”
“스승님께서도 그런 꿈을 꾸신 적이 계십니까?”
은헌의 물음에 겸은은 머릴 저었다. 그런 일은 들은 적도 없었다.
“게다가 꿈에서 깨면 다른 것은 안개가 짙게 낀 듯 무척이나 희미하고, 낚시했던 것만 드문드문 떠오르지 뭡니까.”
겸은은 이야기를 듣다가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 꿈에서 같이 낚시를 하는 이는 귀신인지 아닌지 정체도 여전히 밝히지 않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얼굴은 이제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막상 알아보려 남에게 설명할라치면 말문이 턱 막힌답니다.”
겸은은 허탈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도 같이 낚시를 하는 겁니까? 잉어를 먼저 낚아버리려고요?”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자가 가져오는 검은 잉어는 분명 태몽이라 했다. 생홀아비 신세에 태몽을 꾸어 뭘 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그런 종류의 일과는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주변 사람 목숨 잡지 않는 상책이었다.
겸은은 곰곰이 대군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주변에 아끼는 이들이 다칠까 홀로 지내는 제자가 오랜만에 들고 온 문제를 스승은 심각하게 살폈다. 궐의 누군가에게 알려 막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면 확실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대군이 헛된 것과 관련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병아리 같은 일도 소처럼 키워 사달 내려 덤빌 이들은 차고 넘쳤다.
겸은은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다 대군을 봤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꿈을 찾아온다는 객보다 더 먼저 잉어를 낚아 정말로 씨를 말려 버리겠단 제자에게 하나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말해줘야 하나 고민이 되긴 했으나 그리 긴 망설임은 아니었다.
“대군께선…… 그 꿈을 그만 꾸고 싶으신 겁니까? 아니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시는 겁니까?”
은헌은 스승의 물음에 눈을 깜박였다.
“꿈꾸지 않을 방법이 있습니까?”
꿈을 그만 꾼다 하여도 다른 꿈이 시작될 수도 있으니 결국엔 근본적인 부분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그쪽은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니 꿈과 관련된 일을 처리해야 했다.
“저는 모르지만, 알 만한 이를 알고 있습니다.”
겸은은 그의 또 다른 제자를 떠올렸다. 대군의 스승이 되며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둔 아이였다.
기괴한 일이라면 그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신속하고 안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