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하면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요?”
고윤은 서탁을 내려쳤다.
신경질적인 손길에도 그의 맞은편에 마주 앉은 선비는 미동조차 없었다. 너르게 두른 갓을 쓴 이를 보며 고윤은 미간을 찡그렸다.
살아 있는 사람의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싸늘하다 못해 푸른 낯짝이 꼴 보기도 싫었다. 그러나 내쫓을 수도 없었다.
이 작자의 부탁을 아직 들어주지도 못했을뿐더러 보낸다 해도 그 뒤를 이어 다른 이가 대신 들어와 하소연을 늘어놓을 게 뻔했다.
지금 역시 그의 집 마당에도 부탁하러 온 이들이 득시글거렸다. 인간도 아니었다. 손님 대접도 안 해주는 고윤을 무시하고 그것들은 자기네들끼리 순서까지 짜서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꿈 주인에게 꼭 잉어를 주기로 하지 않았소.”
깊은 산골짜기에 집이 있는 것도 아닌데 메아리처럼 같은 말이 맴돌았다.
고윤은 책상에 머리라도 박고 싶었다.
“그 꿈 주인이 태몽은 필요 없다 그러지 않소.”
그는 어젯밤 자신이 찾아들었던 꿈을 떠올렸다. 꿈길을 따라 한 달째 들락날락하다 보니 지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처음엔 기겁하여 힘들게 가져간 잉어를 내치던 이가 요즘은 거절만 하여 받지 않더니 어제는 그와 말까지 섞었다.
꿈길을 내는 것부터가 힘들어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싶었지만, 꿈에서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이도 처음이었다. 게다가 꿈을 죄다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깨어나면 일장춘몽처럼 흩어져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혹시나 하여 꿈의 주인이 그의 말을 잘 듣도록 손도 써뒀는데 말이다.
그 생각을 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석계정.”
고윤은 신경질적인 눈매를 가늘게 뜨고 미간을 있는 힘껏 구긴 채 선비를 봤다.
“대체 대군 저를 고집하여 그 꿈을 맡긴 연유가 무엇이오?”
그는 자신이 드나들던 꿈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채자마자 도망쳤다. 대군이라니! 주상전하의 아드님이자, 세자저하의 하나뿐인 아우님이자 적통 대군 그리고…….
고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곤란한 상태였다.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었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는 대군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알음알음 알아왔다. 안타깝게도 지난 밤 들었던 대로 태몽을 꾸어선 몹시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다른 곳에 꿈을 가져다주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일하는 게 났겠다 싶을 정도였다.
“대감께는 태몽이 필요치 않을 텐데.”
은헌대군에게 부인이나 첩실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역병으로 여덟 살 이른 나이에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하고, 그 이듬해 두 번째 부인을 들이고자 간택하였으나 병으로 또다시 사별하여 더는 혼례를 치르겠다 나선 가문이 없다 들었다. 본인도 의지가 없는 모양이라 여태 혼자라고 했다.
여러모로 흉흉한 소문이 많았다.
고윤, 그에 비할 바는 아니라도 말이다. 어지간한 고관 대감 댁에도 이렇게 청탁하려는 이가 줄을 서진 않았을 거라며 그는 쓰게 웃었다.
“그 태몽의 주인이 그리 결정된 것을 어쩌겠소.”
멀쩡한 사내 배 속에 애라도 들어서게 할 참인지 선비는 간결하고도 강한 어조로 약조의 이행을 요구했다.
“잉어는 새벽의 것이 마지막이었소.”
알 법한 곳에 다 말을 넣어보았으나 용이 될 만한 수행을 쌓은 것은 더는 없다고 했다.
“그럼…… 직접 잡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소.”
선비의 말에 고윤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더러 낚으란 말이오?”
“분명 처음 약조하기를……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태몽을 내가 원하는 이에게 가져다줄 수 있다고 했잖소.”
‘무슨 일이 있더라도’가 문제였다.
그때는 꿈 주인이 대군이라는 것도 몰랐고 그의 주술에 이렇게까지 저항할 줄도 몰라 하루면 되겠거니 하고 받아들였었다.
제 손으로 발등을 찍었으니 고윤은 어쩔 수 없이 잉어를 낚아야 했다. 그는 저 할 말만 부지런히 늘어놓고 어느새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선비가 앉아 있던 자리를 보았다.
오간단 말이 없는 것은 저쪽 특징이긴 했지만, 딱히 불쾌하진 않았다.
고윤은 텅 빈 자릴 보며 소맷부리를 걷어 올렸다. 손등을 살짝 덮어 내리는 길이의 천을 끌어 올리자 팔목이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선비와 그 사이에 맺어진 말의 주박이 보였다. 단단히 매듭지어져 있는 것을 확인한 뒤 그는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잉어를 낚든 붕어를 낚든 뭐든 대군에게 가져다주고 얼른 이 귀찮고 수상쩍은 객을 치워야 하지 싶었다.
* * *
“태평하네.”
고윤은 삐딱한 어조로 입을 비죽였다.
왕족이라 그런가? 배포가 크시었다.
남의 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열어놓은 꿈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었다.
고윤은 얼굴을 구긴 채 손에 꽉 쥐고 있는 가루를 바닥에 조금씩 흘렸다. 귀하디귀한 가루에서 꿀 같은 단내가 풍겨 올랐다. 그러나 인간의 입에는 들어가선 안 되는 것이었다. 짙은 냄새에 꼬인 것들이 불나방처럼 달려왔다.
고윤은 손바닥을 부딪쳐 가루를 탈탈 털어냈다. 검은 털이 굽이치는 놈들이 세 갈래로 갈라진 꼬리를 쥐불놀이하듯 빙글빙글 돌렸다.
그는 주위를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함정은 아니었다. 경계도 없이 허술한 꿈을 보며 그는 무거운 숨결을 뱉었다.
“집 뒤쪽 연못에 잉어가 있소.”
꿈길을 따라 함께 걸어온 선비가 팔을 뻗어 가리켰다.
“없으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고윤은 품에 잉어가 없는데도 비린내가 코끝을 찌르는 것 같아 버릇처럼 코를 움켜쥐었다.
“있소. 놓치지만 않으면 될 거요.”
그에게 태몽을 부탁한 선비는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또다시 자취를 감췄다.
“빌어먹을!”
고윤은 다시금 길을 살폈다.
웃는 낯으로 그에게 여기가 어딘지 일러주던 사내답게 잘나고 고운 얼굴이 기억났다. 궐에 드나드는 이마다 먼발치에서나마 보고 와 난리더니 그럴 만한 옥골선풍이었다.
“그래봐야 이리 무방비하면 제 명대로 다 살지도 못할 텐데.”
일이 끝나면 답례로 그가 대신 방비나 제대로 해줘야 할 듯했다. 풀 방구리 드나들 듯 귀한 분 꿈에서 난장을 피고 있으니 적당한 뒷수습도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금방 또 귀찮아져 고윤은 터덜터덜 걸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불러들인 털북숭이에게 삿된 것이 따라붙지 않게 잘 봐달라 명령을 내리고 말이다.
좁은 길을 헤치고 들어가자 으리으리한 고래 등 같은 집이 나왔다. 꿈에 나오는 장소는 고윤이 찾아든 꿈의 주인의 기억 속에서 불러낸 것이었다.
부잣집이라 신분이 높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예상외로 더 높았다. 그는 대문에 손을 올렸다.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가 고윤은 마당을 가로질러 뒤뜰로 곧장 나갔다. 석벽을 쌓고 창틀처럼 화풍으로 문을 낸 곳을 통과하자 못 위로 드리워진 작은 정자가 보였다. 그곳에 대군이 서 있었다.
발소리에 대군은 고개를 재빠르게 돌렸다.
“왔군.”
고윤은 저의 주술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챘다. 보통은 꿈에 이리 들어오면 꽁꽁 얼어붙은 듯 반응이 없어야 했다.
그는 자신을 똑바로 보며 말을 거는 대군에게 대답하는 대신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얼굴이 흐릿해졌어.”
주술로 인한 변화는 알아채지 못하는 게 보통인데 대군은 그 작은 것조차 놓치지 않았다. 하긴 평범한 이라면 애초에 꿈에 침입자가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기도 힘들었다.
고윤은 혀를 찼다.
꿈길이 여전히 방비 없이 열려 있기에 어제는 우연히 깬 거라 생각했는데 그도 그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깨어 있으시군요.”
“자고 있겠지. 여긴 내 꿈속이지 않은가? 아니면 그대의 꿈이거나.”
혹시나 하여 물어본 것에 답도 척척 돌아왔다. 게다가 대군은 말을 하며 움직였다.
고윤은 시간을 확인했다. 주술이 완전히 다 깨진 것은 아닌지 묶어둔 일부분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잠에서 깨기 전까지는 여기서 보낼 수 있었다. 그 전에 꿈에서 나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왕 이리된 것 고윤은 뻔뻔하게 굴기로 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자는 곳이 달라 다른 곳으로 불려 나올 줄 알았는데 여전히 석계정이로군.”
은헌은 주위를 둘러 확인했다.
그는 대군 저인 석계정을 벗어나 조금 더 멀리 와 있었다.
“오늘은 사냥터 안에 있는 별장에 왔거든. 세자 저하께서 가끔 쓰시는 곳이지.”
의미 없는 감탄사를 흘리며 고윤은 정자 위로 올라갔다.
“꿈에 든 객을 피해 달아났더니,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야.”
은헌은 느긋한 태도로 고윤을 보며 웃었다. 그러더니 손에 든 부채를 펼쳐 부치기까지 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고윤은 제 주술을 피해 움직였다고 말하는 대군에게 작은 진실 하나를 흘렸다.
“침수 드는 장소가 달라진다고 꿈을 꾸는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른 공간에서 잔다고 꿈자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은헌대군은 저의 짐작이 맞아들어 갔음에 활짝 웃었다.
“그럼 대군 저가 아니라 내게 걸린 주술이었군.”
고윤은 태연히 대군을 보았다.
어차피 꿈에서 깨어나고 주술이 흩어지고 나면 지금 하는 말도 제대로 기억 못 한다는 것은 아는데 이젠 꼭 그렇다 장담할 수가 없었다.
“주술은 아닙니다. 그저 제가 길눈이 밝아 꿈길을 잘 찾는 것뿐이지요.”
그 말을 하며 고윤은 꿈의 상태를 확인했다. 대군이 그를 경계하기 시작하면 꿈에서 자연스레 배척되어 쫓겨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꿈이 깨어질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
의심쩍지만 넘어가겠다는 듯 은헌은 배시시 웃곤 고윤의 품을 살폈다.
“오늘은 검은 잉어를 가져오지 않았군.”
고윤은 그 말에 울컥했다.
“용이 되려고 수행 중인 잉어가 누구 덕에 씨가 말라서요. 구하려고 해도 더는 구할 수가 없다지 뭡니까.”
“저런…… 안타깝군.”
전혀 아쉽지 않은 얼굴로 대군이 미소 지었다.
“그래서 오늘은 직접 낚으려고 합니다. 지금 보고 계신 저 못에 잉어가 있다 들어서요.”
이마저도 방해하면 대군이라도 가만두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고윤은 소맷부리에 손을 넣었다. 아무것도 든 게 없어 보이는데도 쑥 집어넣고 휘적거리니 신장보다 더 긴 작대기가 뽑혀 나왔다. 앞으로 쭉 빼자 지켜보고 있던 은헌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끝이 살짝 휜 대 끝에 고윤은 실을 달고, 싸구려 굽은 바늘을 빠지지 않도록 단단히 걸었다.
“그게 낚싯대인가?”
은헌은 신기한 듯 살폈다.
“보신 적 없으십니까?”
고윤은 대를 휘둘러 못에 던지곤 물었다.
“멀리서 본 적은 있지만 가까이서는 처음이네.”
대군을 힐끔거리며 고윤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뭔가 재수가 없었다. 낚싯대도 모르는 무식한 이가 있나 했는데 정말로 모를 가능성이 컸다.
밥상에 오르는 생선은 봤겠지만, 살아 있는 상태의 것은 접하기가 쉽지 않을 것도 같았다.
고윤은 어느새 제 옆에 붙어 앉아 구경하는 대군을 뒤로하고 녹죽(綠竹)을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였다.
“그건 왜 그리하는가?”
“움직임이 있으면 더 잘 문다고 해서요.”
“그래?”
고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낚싯대를 만드는 법을 일러준 이가 그렇다 했으니 해 보는 겁니다. 저도 낚시는 처음이라서요.”
그는 자신의 집 마당에 득시글거리는 귀신 사이에서 낚시해 본 이를 찾아 급하게 청을 들어주고 낚시를 배웠다.
은헌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도 낚시가 처음인가?”
“네.”
“그런데 뭘 그렇게 잘하는 이처럼…… 한 십 년은 한 줄 알았다네.”
대군의 타박에 고윤은 코웃음 쳤다.
“낚싯대도 가까이에선 처음 봤다는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듯합니다. 그리고 해 보는 건 처음이라도 낚는 건 옆에서 꽤 봤습니다.”
그것도 딱 한 번이었으나 고윤은 지기 싫어 허세를 부렸다. 대군은 미심쩍어하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태도를 바꾸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붙잡고 있을 테니, 나도 하나 만들어주게.”
고윤은 머리를 홱 돌렸다.
“뭘요?”
“낚싯대 말일세.”
대군은 여전히 아무것도 든 게 없어 보이는 살랑살랑한 고윤의 소매를 가리켰다.
“만들면 무얼 합니까?”
고윤은 태연하게 되물었다.
“낚시하겠지.”
대군 역시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잉어를 낚으시려고요?”
“그걸 낚기 위해 낚시를 하는 게 아닌가?”
고윤의 미간이 구겨졌다.
“낚으면 받아주긴 할 겁니까?”
“내가 낚아 승천시켜 버릴 생각이네만.”
은헌대군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윤의 속을 뒤집었다.
“도성 바닥 잉어를 죄다 승천시키신 것도 모자라십니까?”
그동안 갖다 바친 태몽이 몇인데 어림도 없는 소릴 한다며 고윤은 고개를 팽 하니 돌렸다.
“그러지 말고 내게 하나 만들어주게. 용이 될 놈이 눈먼 것도 아니고 내 낚싯대를 물겠는가?”
고윤은 방긋이 웃곤 무시했다. 어차피 꿈인 데다 정체도 들키지 않았고, 않을 텐데 뭔 상관인가 싶었다. 심드렁하게 못을 보고 있는 고윤의 낚싯대가 흔들렸다.
“뭐 하십니까?”
심통 난 어린아이도 아니고 낚싯대 끝에 달린 실을 당겨 물에서 끄집어낸 은헌대군이 히죽였다.
“남의 꿈을 빌려 낚시를 하면서 객이 주인에게 너무하지 않은가?”
“손님 대접 받은 적도 없습니다만.”
은헌은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발로 엉덩이를 걷어차 내쫓지 않은 것으로 대접을 다한 듯한데.”
대군은 그리 말하며 고윤의 옷자락을 빈손으로 건드렸다. 낚싯대에 걸린 실처럼 옷 또한 손으로 만져졌다. 헛돈다면 육신을 지니고 있으나 허깨비처럼 서로 간에 간섭하기가 불가한 것이고, 만져진다면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단 말이었다.
고윤은 붙들린 제 소매를 보았다.
이 꿈은 이게 문제였다.
“내 것도 하나 만들어주시게나.”
방해받기 싫다면 말이지, 숫제 협박에 가까운 말을 하면서도 대군은 퍽 다정한 것처럼 굴었다.
이 꿈을 어디까지 눈치챘는지 모를 의뭉스러운 얼굴을 보며 고윤은 한숨을 내쉬곤 알았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손에 든 낚싯대를 넘기고 그는 제 것을 하나 더 만들었다. 만들기도 쉬웠다. 흔한 대나무에 실을 엮고, 바늘을 달면 끝이었다. 용이 될 잉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 미끼도 걸지 않았다.
“이렇게 던지면 되는 건가?”
“예, 예.”
대충 알아서 하라는 듯 고윤은 은헌대군에게 속성으로 낚시를 알려줬다. 그도 귀신에게 대충 배웠으니 대강 알려줬다. 맞는 방법인지 아닌지 알 바 아니었다.
은헌은 원하는 것을 다 얻고 나자 배운 대로 낚싯대를 던졌다. 고윤도 옆에서 다시 엉킨 실을 풀어내고 다시 휘둘렀다. 정말로 용이 될 잉어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둘은 물끄러미 연못을 보았다.
그림자들이 날랜 걸음으로 숲길을 달렸다. 쌓이고 쌓여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나뭇잎이 힘없이 그 발걸음 아래 부서져 내렸다.
그들은 숲 가운데 유일하게 물이 고여 있는 곳에 세워진 별장을 확인했다.
“들어간 이는 총 셋입니다.”
숨소리보다 더 낮고 작은 목소리로 보고가 이어졌다. 왕실의 사냥터라 민가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기에 별장 외에는 쉴 데도 없었다. 드나드는 이는 모두 기록하고 있으니 이 숲 안에 누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금방이었다.
수상쩍은 무리는 날랜 몸짓으로 담을 넘었다.
임금과 세자가 궐 안에 있는데도 홀로 별장을 하루 빌려 거한 은헌대군에 대한 감시가 이어졌다.
오늘 누굴 만났는지, 어딜 들렀는지, 갑자기 왜 거처를 옮겨 대군 저가 아닌 이곳에서 잠들었는지에 대한 답을 구해야 했다.
그림자들은 발소릴 내지 않고 별장을 샅샅이 뒤졌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은헌대군은 태평스럽게도 쑥을 태우고 연기를 피워 벌레를 쫓아낸 채 사방이 뚫린 정자에 이부자리를 깔고 잠들어 있었다. 곁을 누가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범한 건지 멍청한 것인지 모를 행동에 그림자들은 눈을 찡그리곤 담장 밖으로 물러났다. 그리곤 그중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구중궁궐 심처에 있는 주인에게 고하러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