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꿈이다.
은헌대군은 주위를 확인했다. 그의 집이 보였다. 매일같이 드나드는 집은 꿈에서도 변함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듯 힘차게 밤하늘을 내달리고 있는 별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그러니 이것은 꿈이었다.
‘오늘로 딱 한 달이군.’
은헌은 날을 헤아렸다.
벌써 그리되었다. 그는 한 달 내리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언제나 그의 집이었고…….
끼이익―.
찾아든 객 또한 한 명이었다.
하늘을 가리듯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자 습습한 안개가 사방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러면 저 멀리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은헌은 담장 쪽을 힐끗 보았다. 아무리 봐도 저 담장 밖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움직이는 것도 집 안에서만 가능했다.
그를 계속해서 찾아오는 객이 가까이 다가드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리 오너라.”
불퉁한 목소리였다. 은헌은 미소를 머금었다. 저자의 말소리가 들려오면 그때부터는 자신의 꿈임에도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객은 사내였다.
은헌보다 손 한 뼘만큼 작았으나 그가 큰 편이니 객은 평범한 신장에 마른 체구였다.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였다. 그는 사내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오늘도 역시 사내는 터벅터벅 후원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씨알 굵은 잉어가 안겨 있었다. 새카만 비늘에 윤기가 자르르했고 사내의 몸집만큼 두꺼웠다. 파닥대는 움직임도 없는 것을 그는 갓난쟁이처럼 안고 있었다.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따라 비린내가 더 심하군.”
은헌대군은 숨을 깊이 삼켰다.
그의 코끝에는 아무런 냄새도 느껴지지 않건만 사내는 품 안의 잉어를 보며 세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기억에 남지 않을 희미한 얼굴도 아닌데.’
은헌은 다시금 사내의 얼굴 요모조모를 눈으로 훑었다. 매번 이리 유심히 보는데도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고 꿈을 벗어나면 아예 기억 저 멀리서 가물가물했다. 살짝 둥글어 보이는 턱선 위로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였다. 못난 얼굴은 아니었다. 가로로 긴 눈매는 끝이 깊고 성질머리를 드러내듯 날카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모난 구석 없이 순하게 생겼다.
가까이 다가온 사내와 은헌의 시선이 마주쳤다. 먹을 떨궈놓은 듯 까만 눈이었다. 그 눈에 불안감과 짜증이 보였다.
은헌은 웃음을 삼켰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는 뻔하였다.
사내는 은헌을 보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말을 걸었다.
“가져가시오. 댁의 것이오.”
잉어가 내밀어졌다.
은헌은 그제야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한 가지 꿈을 오래도록 꾸다 보니 언제쯤 되면 말을 할 수 있는지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싫네.”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사내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구겨졌다.
“대체 연유가 무엇이오?”
은헌대군은 평소와 다르게 그에게 따져 묻는 사내를 향해 코웃음 쳤다. 사내는 분명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수상쩍으니 그런 게지.”
사내가 혀를 차며 품 안의 잉어를 본 뒤 고개를 들었다.
“이게 대체 뭔지나 아시오?”
말투가 뾰족했다.
“그러는 자넨 내가 대체 누군지 아는 건가?”
은헌의 물음에 사내가 입술을 삐죽였다.
“태몽을 꼭 꿔야 하는, 돈은 있고 자식은 없는 선비겠지.”
그러니까 이만 받으라는 듯 사내는 잉어를 다시 내밀었다.
“받지 않겠네.”
“대체 왜 그러는 거요?”
선비는 또다시 거절당한 잉어를 네 잘못이 아니라는 듯 토닥였다. 그 모습을 보며 은헌은 낮은 웃음소릴 흘렸다.
“내겐 부인이 없는데 태몽을 꿔봐야 무얼 하겠나.”
그 외에도 이유는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사내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가 사내에게 말한 대로 그는 부인이 없었다.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부인을 들일 생각도 없었다.
“지금 홀아비한테 태몽을 맡긴 겁니까?”
사내는 모로 고개를 기울이더니 옆을 보며 물었다. 은헌대군 역시 그리로 머릴 움직였지만 소용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홀아비라고 아일 가지지 못하리란 법은 없지만.”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한소리 들은 건지 사내는 다시 은헌을 보았다.
“어쨌든 받으시오. 이 꿈의 주인은 댁이니.”
사내는 한 달째 계속되는 실랑이를 오늘은 반드시 끝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줄곧 조용하던 품 안의 잉어가 거듭된 거절에 기분이 상하기라도 한 것인지 꼬리를 퍼덕거리기 시작했다.
“싫네.”
몇 번이고 싫다는 말에 사내는 헛숨을 뱉었다.
“아니, 무슨…… 이런 꿈은 백 년에 한 번 꾸기도 힘든 태몽인데 도대체 왜 싫다는 거요? 이 꿈으로 태어날 아이는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팔자일 텐데.”
그 부분이 몹시도 곤란했다. 은헌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태몽은 안 되네. 특히 그 품에 든 것은.”
“태몽을 꾸어선 안 되는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 있소? 게다가 이놈이 잉어라 그렇지 이게 날이면 날마다 오는 용…… 이긴 헌데.”
사내는 울컥한 듯 버럭 소릴 높여 설명하다가 무언가 마음에 걸린 듯 눈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은헌을 샅샅이 훑었다.
“내 혹시나 하여 묻는데 여기가 어느 댁이오?”
“이르게도 묻는군.”
은헌이 혀를 찼다.
그걸 물으려면 한 달은 일찍 물었어야 했다.
“그야! 그렇게 약조가…… 아니, 그건 되었고. 여기가 뉘 댁인지나 대답해 주시오.”
대답이나 하라는 듯 사내가 재촉했다.
“여긴 석계정(石溪井)이라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내의 품에서 조금씩 파닥거리던 잉어가 날뛰었다.
모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내는 허둥지둥 붙잡으려 했으나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잉어가 움직였다. 손 쓸 새도 없이 바닥이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주변에 낀 오색구름과 안개가 먹구름처럼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했다.
“빌어먹을!”
사내가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은헌이 별재로 쓰고 있는 석계정의 뒤뜰이었다. 꿈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사람이 발을 디뎌 서 있으니 단단한 바닥이 있어야 할 곳이었다. 한데도 잉어가 땅에 닿자 수면을 두드린 것처럼 첨벙 소리가 났다.
사방이 번쩍였다.
우르릉 쾅―!!
천지를 찢어놓을 것 같은 굉음이 울림과 동시에 바닥에 있는 잉어가 몸을 튕겨 올렸다. 올라올 때는 물고기의 태를 하고 있던 것이 순식간에 허물을 벗고 날아올랐다. 긴 몸을 따라 검은 비늘이 번뜩거렸다.
은헌대군은 순식간에 의식이 아득해지는 것에 시간이 다 됐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사내를 보았다.
단단히 화가 난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곁에 선 누군가에게 따져 묻고 있는 것 같았으나 오가는 이야기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몸이 무거워졌다. 깃털이 삽시간에 바위로 바뀐 것 같았다.
은헌대군은 아래로 떨어지는 눈꺼풀을 차마 들어 올리지 못하고 그대로 감았다.
* * *
새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무겁디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린 은헌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깜박였다. 익숙한 방이 보였다. 몸을 일으켜 세워 확인하니 언제나 그랬듯 그의 침소였다. 손으로 아직 달아나지 못한 잠기운을 문질러 내며 그는 몸에서 흘러내린 이불을 옆으로 젖혔다.
닫혀 있는 창을 열자 조금 전까지도 그가 서 있었던 뒤뜰이 보였다. 그와 함께 여름 햇살 드리워진 푸르고 싱그러운 하늘도 보였다.
“대감마님, 기침하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는지 마루 아래로 선 청지기가 문안 인사를 올렸다.
은헌은 바쁘게 소세를 하고, 계설향1)을 물고 있다 뱉었다. 하인은 익숙하게 머리를 빗겨 내려 올린 뒤 동곳을 찔러 넣었다. 옷을 갖춰 입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관복을 입기 무섭게 마루로 나선 그의 앞에 하인이 허리를 숙여 신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대군은 신을 신고 나서 마지막으로 제 차림새를 살폈다. 흠잡을 곳 없이 깔끔했다. 그는 서늘한 얼굴로 채비를 살폈다. 겸종들 역시 물 흐르듯 유려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그 얼굴에 예민함이 엿보였다.
“대감마님. 오늘은 북정문2)에 사람이 많아 길이 좀 막힐 듯하여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리하면 늦지 않겠느냐?”
“예. 빠듯하긴 하나 평소 드시는 시간에 도착할 듯하옵니다.”
매일 벌어지는 일상에 어디로 가면 막히고, 어디는 수월한지 길눈이 자연스레 트인 청지기가 고개를 조아렸다.
은헌은 몸을 돌렸다.
그의 거처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산세를 따라 회색의 성벽이 보였다. 한양의 성곽을 보는 그의 시선은 어떤 감정도 담아내지 않았다.
편자를 밟고 말 등 위에 오른 은헌은 집 안에서부터 말을 타고 나섰다. 몇 걸음이라도 줄여 급히 궐에 들어야 했다.
* * *
“은헌은 언제 온다던?”
세자는 이른 아침부터 마주하고 있는 부왕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무학제에서 출발하였을 테니 이제 서문에 다다랐을 겁니다.”
성 밖에 사는 이니 궐까지 오려면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이번 주는 도성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을 때라 문을 지나는 데에만 한참이나 걸렸다. 신분을 밝혀 먼저 지나올 수도 있지만, 왕의 허락 없이 은헌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왕은 뻔한 사정을 알면서도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게으른 놈 같으니.”
세자는 한숨을 애써 눌렀다.
여기서 아우의 편을 들어 한마디 보태지 않는 게 중요했다. 그가 편들수록 부왕의 입에서 나오는 은헌에 대한 평은 더 박해질 뿐이었다.
일곱 살 급하지도 않은 나이의 아우에게 혼례를 치르게 한 뒤 쫓아내듯 도성 밖으로 내친 이도 왕이었다.
세자는 순하고 성정 여린 아우를 떠올리며 거듭 말을 혀끝에서 눌렀다. 오늘따라 부왕의 심기가 불편한 데는 그도 한몫 거들었으니 더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은헌이 들거든 곧장 내게 오라 일러라. 대군 하는 일이 매일 궐에 들어 문안 인사를 하는 것밖에 없는데 뭐가 이리 늑장을 부려 과인을 기다리게 하는고.”
왕의 말에 상선은 조용히 허리를 숙여 물러났다.
세자는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내관이 쪼르르 달려왔다. 세자는 곧장 필요한 것을 확인했다.
상전의 궁금증을 채워주듯 내관은 재빠르게 은헌대군의 정보를 고해 올렸다.
그럼 육조거리가 코앞이었다. 궐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어도 말이다.
“더 서두르시라고 말을 전하였사온데…….”
“누가 그런 말을 전하라 했더냐?”
세자의 목소리가 서릿발처럼 순식간에 매서워졌다. 왕이 상선에게 내린 말은 궐 안에 들어왔을 때의 일이고 궐 밖에 있는 아우에게 길을 재촉할 자는 아직 없었다.
모시는 이의 불편한 기색에 내관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세자는 은헌이 주변에 휘둘리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이미 왕에게 실컷 휘둘리고 있으니 더 보탤 것 없다는 마음이었다.
“그것이 교태전에서…… 아침부터 상궁들이 분주하였습니다.”
가뜩이나 아비의 눈 밖에 난 아들, 허물 하나라도 더하지 않으려는 어미의 뜻임을 알게 된 세자는 혀를 찼다.
“어마마마께옵서…….”
세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대군 대감께옵서 서둘러 오신다 하셨으니 걱정 마시옵소서.”
“알았다. 은헌이 들거든 내게 먼저 알리거라.”
부왕을 만나기 전에 그가 먼저 아우를 보는 게 나을 듯했다. 그래야 영문도 모를 부당한 화풀이에 크게 마음 상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세자는 대전을 다시 돌아보고선 걸음을 재촉하여 벗어났다.
궐의 아침 역시 분주했다. 저잣거리 같은 소란스러움은 없었으나 바쁜 것은 매한가지였다. 관복을 입고 입궐한 신하들이, 세자와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세자가 멀리 떨어져 사라지면 그 뒤에서 신하들은 저마다 입을 열었다.
장자로 태어났으나 빈의 소생인 세자와 중전의 소생으로 유일한 적통이지만 왕의 명으로 도성 밖에 머무는 대군에 관한 말은 쉬이 끝나지도 않았다.
세자가 세자빈을 들이고 벌써 십수 년, 그동안 후사가 생기지 않았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 *
은헌대군은 버선발로 대청에 올랐다.
일각 정도 흐른 듯한데도 그는 여전히 대전의 마루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상선은 무심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대전 상궁도 마찬가지였다.
은헌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도 태연히 웃었다.
새벽 별 뜰 때부터 궐에 들어, 매번 같은 시간에 도착하건만 늑장 부렸다는 이유로 벌쓰는 것은 그에겐 꽤 흔한 일이었다. 석고대죄하듯 적삼에 이마를 땅에 찧으며 곡하지 않는 게 어딘가 싶었다.
“전하.”
상선은 다시금 안에 고해 올렸다.
“뭐냐?”
부왕의 목소리가 드디어 들렸다. 지금까지는 들은 체도 하지 않더니 이제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린 모양이었다.
“은헌대군이 들었사옵니다.”
“들라 해라.”
은헌은 몇 번이나 가다듬었던 옷매무새를 다시금 정리했다.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이 보였다.
은헌은 궐에 들어오자마자 그를 만나러 왔던 형님과 시선을 마주하고는 부왕 앞에 서서 몸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