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3/93)

   @@[ 제5장 최후의 결전@@]

  일검에 산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바람이 폭풍이 되었고, 잔잔한 물이 해일이 되어 일어나는 장대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검으로 펼쳤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위력적이었다.

  휘리리릭!파파팡!

  순식간에 1천 미터를 이동했다.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것처럼 쾌속한 움직임이다. 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기체의 움직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빠른 이동으로 인해 천둥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더욱 속도를 높이자 파공성이 몇 백 미터 뒤에서 전해졌다.

  -썬더피니쉬먼트(뇌격의 징벌).

  -아쿠아익스폴로견(수폭).

  -헬파이어(지옥의 불길).

  불과, 물, 뇌전의 마법이 연속적으로 펼쳐졌다. 7서클에서 9서클까지의 마법이 숨 쉴 틈 없이 쏘아져 나갔다. 마법의 조종인 드래곤을 넘어서는 무서운 마력이 폭발하였다.

  -무극칠검식-제1초식-둔중유극.

  대지를 부서뜨릴 듯한 파괴적인 검격과 마법을 시전하고 바로 정중동의 묘리가 스며들어 유의 극차점에 도달한 무극칠검식을 연속으로 출수하였다. 육중한 기체의 외형과는 다르게 대단히 유연하면서도 흔들림이 존재하지 않았다. 큰 기술을 사용하고 나면 발생하는 기의 동요와 흔들림이 존재하지 않았다. 파괴적인 검법을 시전하고 난 직전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없는 고요함이 느껴졌다. 흐름의 미학이라고 불리는 둔중유극이다. 대기의 흐름마저 검의 흐름에 동참하였다. 한없이 느리고, 무겁게 느껴지던 기운이 어느새 갑자기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무극칠검식-제5절초-파천멸환.

  무극칠검식의 패도검식미 불을 뿜었다. 폭발하는 화산의 분노와 같은 기세가 뻗어나갔다. 지름이 3미터나 되는 검환이 형성되어 대지를 강타했다.

   푸아아아아앙!

  대지의 표면이 메테오를 맞은 것처럼 움푹 들어가면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위력은 끝을 모르게 퍼져나갔다.

  모든 검법을 다 펼쳐본 후 드래곤 나이트는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가르딘은 드래곤 나이트의 성능을 최종적으로 시험해 보았다. 지난 6개월이 화살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기간 동안 가르딘은 검을 수련하면서 드래곤 나이트의 성능을 테스트했다. 드래곤 나이트는 자신만만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탑승자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것은 물론 9서클 마법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

  “하루 남았네.”

  대마왕이 부활하기 딱 하루가 남았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초조해지기 마련이었다. 가르딘도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이 옆에서 힘을 주었다. 라이나와 브리안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겼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로 인해 가르딘은 6개월 만에 한 단계 위의 성취를 얻어내었다. 지금은 대마왕이 두렵지만은 않았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까지 들었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그러지.

  슈슝!

  공간이동을 해서 집으로 돌아온 가르딘은 라이나와 브리안에게 갔다. 라이나와 브리안은 이전과 다름없이 생활을 했다. 가르딘은 가족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별다른 일없이 아내와 대화를 하고, 딸과 장난을 쳤다. 어느 가족에게나 볼 수 있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오늘은 특별히 아버지와 형들의 식구까지 모두 불렀다. 그동안 아버지와 형들을 너무 방치해 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런 마음이 든 것부터가 대단한 발전이었다. 미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공작가의 식솔치고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지만 모두가 모이니 그림이 나왔다. 오브라이언 남작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고집스럽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고, 손주와 손녀의 재롱을 보며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되었다. 라이벨과 류카이젠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눈빛에 서린 오만과 자만심이 사라졌다. 게을렀던 육체를 추스르고, 수련을 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특히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큰어머니 소니아였다. 그녀의 눈에서 독기가 사라지고, 온화함 이 비추어졌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며, 가르딘은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까지 있었다. 소니아의 마음속에 가르딘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자리했다.

 가르딘은 온 가족이 모이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진정한 가족이 됐구나!’

  서로 미움, 원망, 시기, 질투가 사라지고, 믿음과 사랑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 누가 잘못을 하던 믿고 끝까지 인내하는 것

  ‘참 오랜 시간을 돌아왔네.’

  따지고 보면 시간이 오래 흘렀다. 시간이라는 마약이 가르딘과 가족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절대 용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언제 다시 변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행복했다.

  “브리안이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가요.”

  “그렇고말고.”

  가르딘은 알면서도 웃으면서 넘어갔다. 라이벨과 류카이젠의 아들과 딸들도 가르딘의 지시에 따라서 검술과 마법, 행정교육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브리안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었다. 브리안은 천재 중의 천재이며, 최강의 부모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가르딘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모래가 물을 흡수하듯이 모두 빨아들였다. 지금의 성취는 당연한 결과였다.

  만약 오브라이언 남작이 브리안의 진정한 능력을 알고 있었다면 놀라서 까무러쳤을 것이다.

  식사를 하기 직전에 쉴라와 아이시런, 파멜라, 록산느까지 찾아왔다. 필리언, 갈라, 유타도 초대하려고 했지만 가족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부르지 않았다.

  “그럼 식사하자.”

  식사는 조용하지 않았다. 가르딘은 조용하게 먹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가족들끼리 식사시간까지 조심조심하며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시간이 서로 흉금을 터놓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왁자지낄하며 분주한 식사시간이 되었다.

  식사를 끝내고, 다과를 즐겼다. 가르딘은 하루가 정말 빨리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상적인 일의 반복적인 생활 속에서 삶의 활력소가 되는 가족이 없었다면 인생의 낙이 없었을 것이다.

  밤이 찾아왔다.

   구름이 없는 맑은 날이라 달과 별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가르딘은 라이나와 단둘이 밖으로 나와 저택의 뒤에 있는 언덕에 올랐다. 작은 언덕 위에는 의자가 있어 저택과 하늘, 주변 풍경을 보기에 참 좋은 장소였다.

  가르딘과 라이나는 같은 의자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았다. 달빛에 물들어 있는 라이나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가르딘을 그녀를 물끄러미 보았다. 라이나는 새침한 표정을 짓더니 눈을 사르르 감았다. 가르딘은 살며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앙증맞은 입술에 입을 갖다 대었다. 길게 그리고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밤하늘을 보며 옛일을 추억처럼 되새겼다.

  “밤하늘에 별이 참 밝네요.”

  “그러네.”

  “10년 전에는 당신이 저 별을 따다 주겠다고 했는데!”

  “그럼 따줄까!”

  “그때도 당신은 그렇게 말했어요!” 

  “그랬나.”

  “결국 따지는 못했어요. 대신에 나중에 제 소원을 들어준 다고 했어요.”

  “지금이라도 말해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줄게!” 

  연애시절 가르딘은 라이나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비록 그것이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이루어 줄 것이다. 라이나는 뜸을 들였다. 망설이는 그녀에게 가르딘이 환하게 웃으며.

  “어려워도 괜찮아! 내가 들어주고 싶어서 그래.” 

  “정말이죠!”

  “그럼,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것 봤어!” 

  다른 이들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그녀에게는 거짓을 고하지 않았다. 가르딘은 라이나에게만큼은 진실했다. 오랫동안 뜸을 들이던 라이나가 입을 열었다. 

  “죽지 마세요! 그리고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 

  가르딘은 순간 울컥하는 심정이었다. 그토록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건만, 라이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어.”

  “그럼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아니.”

  그녀라면 당연히 알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르딘이 미처 모르는 부분까지도 라이나가 미리 알고 챙겨주었다. 그녀라면 가르딘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소원 들어 줄 거죠.”

  “당연하지! 걱정 마, 난 절대 당신과 브리안을 두고 죽지 않아!”

  가르딘의 음성에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쳐 나가겠다는 의지와 용기로 무장되었다. 라이나는 그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무조건 가르딘을 믿었다. 

  부부는 일심동체이며 무적이었다.

  “그럼 됐어요.” 

  “고마워.” ’

  가르딘은 다시 한 번 라이나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반드시 그녀의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새벽에 떠 오른 해가 대지를 비추었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가르딘의 저택 분위기가 무섭게 가라앉아 있었다. 비장함이 감돌고 있는 상황이다. 100명의 기사단과 500명의 창기병이 나란히 정렬해 있었다. 그 중심에 가르딘이 서 있었다. 6개월 동안 기사단과 창기병도 강훈련을 해왔다. 이제는 완전한 오러 마스터와 랜스 마스터가 되어 있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가르딘을 보았다. 가르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에 와서 걱정하는 척하지 마라! 가증스럽다!”

  “뭐야?”

  “그냥 편안히 기다려, 후딱 끝내고 올 테니.” 

  “말이나 못하면.”

  언제나 동기들과는 티격태격한다. 그리고 그것이 솔직히 편했다. 가르딘은 무거워지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르딘이 동기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고 난 후 길을 나서려고 할 때, 아이시런이 찾아왔다. 그녀는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가르딘을 보고 있었다. 

  “뭔 일이야?”

  “조심하세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얼마 전부터 가르딘은 아이시런 공주는 공주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유는 아이시런의 강력한요청 때문이다. 쉴라와는 편하게 대화를 하면서 자신에게만 존대를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강짜를 부렸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어느 정 도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되었다. 

  “내가 바본 줄 알아요.”

  가르딘이 6개월 동안 계속 쉴라와 같이 다크랜드로 들어갔었다. 아이시런도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가르딘이 저지했었다. 아이시런이 이유를 묻자 다크랜드의 몬스터를 방해하기 위해서 쉴라의 신성력이 필요하다고만 했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생각하면 금세 들통이 날 거짓말이었다. 발키리영지의 전력이라면 다크랜드의 몬스터를 막고도 남았다. 굳이 쉴라까지 동원될 필요가 없다.

  “오늘이 지나면 말해 주지.” 

  “정말인가요?” 

  “그래.”

  “돌아오면 꼭 말해 줘요 ”

  “알았다.”

  툭툭!

  가볍게 아이시런의 어깨를 두드리고, 가르딘은 다크랜드로 향했다. 아이시런은 멀어져 가는 가르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르딘이 두드린 어깨에 살포시 얼굴을 같다대었다. 마치 남아 있는 가르딘의 채취를 느끼고 싶어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녀도 이제는 가르딘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 확실히 알았다.

  ‘꼭 돌아오세요!’

  여인들의 직감은 무서운 능력을 가졌다. 정확한 이유를 모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육감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다크랜드의 능선을 넘어 라이젠의 레어로 향했다.

  레어에는 드래곤과 쉴라, 파멜라가 모여 있었다. 가르딘이 도착하자 드래곤들의 눈빛이 변했다. 가르딘에 대한 적의는 아니지만 투지는 남아 있었다. 가르딘은 드래곤의 도전적인 눈빛에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가르딘은 라이젠에게 계획대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말 괜찮겠나?”

  “위험하면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솔직히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저도 그렇습니다.”

  신호를 보낸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가르딘이 막지 못하면 드래곤이라고 해도 별수 없었다. 모두 다 죽는다. 그 리고 세상은 대마왕의 손아귀에 멸망할 것이다.

  “그럴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테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래,너만 믿는다.”

  “그리고 약속은 지키리라 믿습니다.”

  “알겠다. 이놈아!”

 가르딘은 드래곤들에게 약조를 받았다. 드래곤이 중간계에 존재하는 한 발키리영지의 수호룡이 되는 것을 용언으로 약속했다. 로드의 인장을 걸고 한 약속이라 드래곤들은 어길 수가 없다.

  “영주님 이거 받으세요.”

  파멜라가 가르딘에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압축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드래곤 하트에는 빼곡한 수식과 계산이 적혀 있었다. 파멜라와 안젤리카의 노력에 의해 탄생한 진원정이라는 것으로 마 진법의 시발점이자 중심이 되는 중요한 물건이다.

  “오러를 집어넣으시면 진이 발동하게 될 거예요.”

  “고생했다.”

  “무사히 돌아오시기만 하세요.”

  한쪽에서 쉴라가 가르딘의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마진법의 축에 막대한 신성력을 소모한 쉴라였다.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았다. 가르딘은 쉴라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난 후 레어를 빠져나왔다. 이제부터는 홀가분하게 대마왕을 상대하면 되었다. 가르딘은 망설이지 않고 드래곤 나이트를 소환했다.

  “소환.”

  부웅!

  드래곤 나이트를 소환한 후 탑승한 가르딘은 다크랜드의 북동쪽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대부분이 산맥으로 이루어진 다크랜드의 일반적인 지형에 비해 이곳은 넓은 평야가 존재했다. 기름지고 풍족한 땅이지만 이 평야는 절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이다.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기가 토양에 쌓여 있어 농작물조차 마기에 물들어 버릴 수 있다.

  가르딘은 6개월 동안 넓은 평야를 샅샅이 살폈다. 마왕이 부활하는 곳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한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 라이젠이 그러길, 마왕은 중간계에 존재하지만 공간의 틈새 안에 갇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같은 공간이기는 해도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라 찾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가르딘은 플라이마법을 사용해서 평야의 상공에 떠 있었다. 높으면서도 기운의 변화를 최대한 감지하기 쉬운 곳에 자리했다. 초조한 시간이다. 6개월의 시간이 빨리 갔다고 하면, 지금 이 순간은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이율배반적인 느낌이 들었다.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건가!’

  어차피 나올 존재라면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가르딘이었다. 시간을 질질 끌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가르딘은 조급해지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불안함과 성급한 행동은 실수를 불러오는 요소다. 지금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계획대로 행동을 해야 한다. 호흡을 조절해서 마음을 차분하게 유지한 가르딘은 기감을 확장했다. 작은 기운의 반응에도 가르딘은 움직일 수 있도록 대비했다. 6개월 동안 평야를 뒤지면서 일일이 공간이동의 좌표를 계산해 놓았다. 바로 이동할 수 있는 대비를 한 것이다.

  “이길 수 있겠지.”

  -물론이다.

  “그건 마음에 드는군.”

  드래곤 나이트는 진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

  분리된 공간과 공간 사이에 신의 제약이 걸려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어둠의 원천적인 힘이 아직은 부족했다. 그는 때를 기다렸다. 어둠의 절대적인 힘이 지상에 강림하게 되면 그의 힘도 강해진다. 그는 어둠의 힘이 흡수되어 완벽해질 때까지 참고 인내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몸을 금제한 신의 제약을 풀 수 있는 어둠의 원천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세상을 암흑으로 뒤흔들어 버릴 수 있는 극강의 어둠이 그의 진실된 정체였다. 신이 제약을 걸어놓았던 공간과 공간의 틈을 이제는 끊어낼 수 있었다.

  우우우우웅!

  쩌저저적!

  광폭하고, 사나운 어둠의 원천적인 힘이 팽창하며, 공간을 틈을 막고 있던 신의 방벽에 균열을 일으켰다. 광대무변한 압도적인 힘에 의해 균열은 점점 더 커지고, 마침내 부서져 내렸다.

  “크하하하하!”

  깨져나간 공간의 틈이 보였다. 그는 희열에 가득 찬 듯이 부서진 공간의 틈으로 세상을 보았다. 신이 만들어 놓은 차원으로 인해 그는 어둠의 힘을 확장시키지 못했다. 마침내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왔다. 너무도 오랜 시간의 기다림이었다. 이제 저 앞으로 나가면 세상은 그의 어둠으로 물들어 버릴 것이다. 이제는 신이라고 해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 절로 웃음이 맺혔다.

  “이제 세상은 나의 것이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공간의 틈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부서진 공간으로 빨려들어 가듯이 서서히 나아갔다. 빛으로 둘러싸인 세상이 그를 맞이했다. 어둠의 상극으로 이루어진 빛의 세상을 반드시 어둠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의지가 솟구쳤다.

  솨아아아!

  그가 나오자 세상의 빛이 모조리 그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는 중간계의 빛이 갑자기 증폭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빛이 아닌 엄청난 기운의 집합체였다.

  ‘응?’

  그는 빛이 거대한 기운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미처 대처하기에는 시간이 늦었다. 빛은 결국 바로 그 앞에서 지축을 흔드는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푸아아아아! 투꽈과광!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폭발이 평야를 뒤흔들고, 사방으로 균열이 일어나며 대지가 갈라졌다. 굉장한 폭발력이 아닐 수 없었다. 도시 하나 정도는 삽시간에 날려 버리고도 남을 위력이다.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나고 난 후에 그는 간신히 바닥을 되짚을 수 있었다. 본신의 힘을 아직 활발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반격은커녕 어찌된 일인지도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는 바닥에 손을 대고 앉아 호흡을 안정시켰다.

  그런데.

  사방을 뒤덮은 흙먼지 사이로 무언가가 얼굴로 날아오고 있었다.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의 턱에 강대한 충격이 느꼈다.

  뻐어어억!

  쿠다다다다당!

  발에 턱을 맞은 그의 신형이 바닥을 볼품없이 나뒹굴렷다.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시련이 계속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신형은 쓰러진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엎어진 그를 지속적으로 밟아대었다.

  파파파파파파팍! 퍼퍼퍼퍼퍼퍽!

  혼신의 힘을 다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밟아서 짓이겨 버리고 있었다. 그는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다. 세상에 나온 직후 밟혀 죽는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내부에 숨 쉬고 있는 어둠의 원천이 마침내 포악하고 잔인한 이를 날카롭게 세웠다. 응축된 어둠의 마기는 철혈의 방패가 되어 놈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리고 어둠의 기운을 뿜어내었다.

  “이놈!”

  푸아아아앙!

  칠흑같이 어둠의 기운이 활화산처럼 뿜어져 나갔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어둠 속에 분쇄되어 버렸다. 마치 그라인드(분쇄)마법으로 산산이 부숴서 소멸시켜 버린 것 같은 광경이 연출되었다.

  바닥에 누워 있던 그가 서서히 일어났다. 그가 펼쳐놓은 어둠이 다시 그에게 스며들더니 짓이겨 졌던 상처들이 아물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는 서슬 퍼런 눈빛으로 하늘을 보았다. 허공에 떠 있는 존재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최후의 결전(決 1¾ 297

 육중한 크기를 자랑하는 타이탄이었다.

  뚜둑! 뚜둑!

  그는 뻐근한 목을 좌우로 꺾으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좀 전에는 정말 죽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어둠의 절대지존이라고 불리는 자신에게 그것은 치욕이었다. 누가 감히 자신에게 이처럼 천박한 공격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둠의 절대적인 존재이자 마의 지존인 대마왕 크란트스에게 말이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폭사되었다. 세상을 멸하기 전에 허공에 떠 있는 놈을 갈기갈기 찢어놔야 분이 풀릴 것 이다.

  “살아있는 것이 지옥이 될 것이다!”

  드래곤 나이트에 타고 있었던 가르딘은 머리를 긁적였다. 가르딘은 공간의 틈이 벌어지면서 새어 나오는 압도적인 어둠의 기운을 느꼈다. 그래서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공간 이동을 한 후, 무극칠검식의 연환결을 사용해서 벌어진 공간사이로 출수했다. 극성공력의 최강공격을 가해 나오려는 대마왕을 공간의 틈으로 밀어 넣어버리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대마왕은 역시 대마왕이었다. 그 정도 충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러공격이 통하지 않자 가르딘은 지상에 내려와서 대마왕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턱주가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인정사정없이 발로 밟았다. 아예 뭉개버리려는 것이었다. 대마왕은 물리적인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거의 끝나갈 것 같았는데, 갑자기 무시무시한 기운이 대마왕의 주변에 형성되었다. 위험함을 감지한 가르딘은 지체하지 않고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어둠의 기운이 반경 1만 미터에 해당하는 지역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경외지경의 엄청난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세긴 세구나!”

  날로 먹으려던 첫 번째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 가르딘은 선방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통하면 그걸로 끝장을 보려고 했지만 대마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제는 두 번째 작전을 돌입해야 한다.

  슈웅!

  가르딘은 그 자리에서 삼십육계줄행랑을 쳤다. 섬전행을 극성으로 전개하여 신형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도망치는 것을 본 대마왕 크란트스가 노성을 터트렸다.

   “감히!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파앙!

  지면을 발로 차자 크란트스의 신형이 솟구쳐 올랐다.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크란트스의 신형은 가르딘의 등 뒤를 바짝 쫓았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마왕의 육체적인 능력은 가공무쌍했다.

  “죽어랏! 이놈!”

  -헬스트라이크(지옥멸격).

  가르딘은 뒤에서 느껴지는 가공할 기운을 느끼자 등골이 서늘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대마왕이 만들어낸 어둠의 기운이 날카로운 검날이 되어 가르딘의 뒤를 공격해 왔다. 가르딘은 직선에서 갑자기 횡으로 반향으로 틀어 헬스트라이크를 피했다.

  “이... 런!”

  헬스트라이크가 방향을 바꾸었다. 크란트스는 의지로 마법의 공격도 마음먹은 대로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가히 심안의 영역에 든 궁극의 경지라고 불릴 수 있었다. 수천 개에 달하는 지옥의 검날이 가르딘을 난자할 듯이 쫓아왔다. 섬전행만으로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가르딘은 공간을 이동했다.

  파파파파팟! 카카카강!

  가르딘의 신형이 사라지고 난 후 헬스트라이크가 폭사를 일으켰다. 크란트스는 드래곤 나이트가 사라진 것을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감히 인간 따위가 대마왕을 농락하고 있었다. 절대로 그냥 둘 수 없었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흥!”

  가르딘은 대마왕의 뒤에 나타났다. 그리고 콧방귀를 뀌었다.

  “도망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드래곤 나이트가 대마왕을 향해 돌진해 왔다. 공격의 범위에서 벗어난 가르딘은 지체하지 않고 검을 뻗었다. 대마왕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크란트스는 마의 절대지존이다. 물러선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카아앙!

  검과 검이 충돌을 일으켰다. 크란트스도 검을 소환하였다. 지옥의 명검이라고 불리는 헬소드 제뷰트를 소환하여 가르딘의 검격을 막았다. 제뷰트는 크란트스의 뼈로 만들어낸 검이다. 그의 분신과 같으며, 수만에 달하는 마족의 피로 담금질을 해서 탄생한 지옥검이다.

  무극의 절대경지에 이른 가르딘은 대마왕의 검력과 부딪치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한 것보다 몇 배는 더 강했다. 검에 의지를 실어 권능의 영역까지 넓혔음에도 불구하고 크란트스에게 밀리고 있었다.

  파파팡! 타타타탕!

  폭죽 터지는 소리가사방에서 들려왔다. 둘의 움직임이 너무 빠르다 보니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나타났다 사그라지기를 지속적으로 반복했다. 가르딘은 무극칠검식을 하나로 합일한 무극의 기운을 이용한 검형을 뿌렸다. 무극의 검형은 형태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위력은 무극칠검식을 훨씬 초월했다.

  파팟! 치치치칙!

  크란트스의 옆구리에 가르딘의 검격이 스쳤다. 무극의 검격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는 소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기 마련이건만, 대마왕은 미간을 약간 찌푸릴 뿐 전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상처 주변에 어둠의 기운이 형성되더니 금세 회복이 되었다.

  대마왕 크란트스도 놀라는 눈치였다. 대마왕을 상대로 이 정도까지 버털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알 거 없다!”

  “건방진!”

  다시 치열한 공방전이 지속되었다. 대마왕의 권능이 점점 더 범위를 넓혀갔다. 어둠의 기운이 스며든 곳에서 가르딘은 움직임이 거북해지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의 권역을 확보하고 있는 가르딘조차 답답해졌다.

  비틀!

  마침내 허점을 내준 가르딘이다. 대마왕은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 즉시 반격을 가해 드래곤 나이트의 어깨를 강타했다. 어둠의 기운을 압축하여 터뜨려 버렸다. 마치 소닉버스터와 같은 위력을 지녔다.

  퍼어엉!

  충격을 받은 가르딘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대마왕은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지 지속적인 마법공격을 연격했다. 9서클을 넘어서는 무시무시한 지옥의 마력이 가르딘과 주변을 쑥대밭으로만들어 버렸다.

  “먼지가 되어라!”

   슈슈슈슝!

  파파파팡! 꽈과과광! 투꽈꽈과꽝!

  마르지 않는 마력의 분출이 터져 나가자 평야의 대부분이 망가져 버리고 있었다. 모든 생명을 파멸시켜버릴 듯한 공격이다. 이 일대를 완전히 박살내버릴 듯한 기세였다.

  퓨우웅!

  마법의 폭사로 인해 흩날리는 먼지구름 사이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앱솔루트배리어와 천룡 강기를 무장한 드래곤 나이트가 크란트스의 공격범위에서 벗어나더니 또다시 도주하기 시작했다. 대마왕은 도망치는 가르딘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가르딘은 극성에 달하는 섬전행을 시전해서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대마왕의 속력은 훨씬 빨랐다. 이번에도 거리가 점점좁혀지고 있었다.

  “더럽게 빠르네!”

  가르딘은 호흡이 조금 거칠어진 것을 확인했다. 힘의 소진이 느껴진 것이다. 고작 몇 번의 부딪침만으로 힘의 소모가 상당한 수준이다. 대마왕과의 결전에서 천룡무상신공을 극성으로 운기한 덕분이었다.

  -데빌홀(지옥의 수렁).

  크란트스의 마력이 공간을 이동하여 가르딘의 바로 옆에 데빌홀을 만들었다. 어둠의 기운이 빛을 빨아들이듯이 주변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작은 구멍에 불과하지만 위력은 태풍을 능가했다.

  휘이이잉!

  ‘이런!’

  도망치기 힘들다는 것을 안 가르딘은 물러서지 않고 데빌홀을 향해 검을 뻗었다. 가르딘이 천룡안을 개방했다. 무극의 절대영안이 푸른빛을 토해내었다. 그러자 데빌홀을 구성하는 마력의 본질적인 기운이 보였다. 어둠을 구성하는 음과 양이 서로 충돌을 일으켜서 블랙홀을 만들어낸 것이다. 가르딘은 데빌홀의 부딪치는 교차점을 파악하고 검을 찔러 넣었다. 무극의 검력이 뻗어나가 데빌홀의 정중앙을 관통했다. 그러자 데빌홀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 멸되었다. 가르딘은 식은땀이 흘렀다. 잘못했으면 어둠의 차원으로 빨려들어가 버렸을 것이다.

  착!

  “젠장!”

  “끝이다! 이놈!”

 크란트스는 데빌홀을 가르딘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시용한 것이다. 크란트스가 어느새 다가와 드래곤 나이트의 발목을 잡았다. 가르딘이 벗어나기 위해 오른발을 휘저었지만 크란트스의 반응이 더 빨랐다. 그가 발목을 잡더니 지상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따라들어 와서 연속적으로 가르딘의 전신을 가격하였다.

  퍼퍼퍼퍽!

  쿠다다당!

  어둠의 권격술이라고 불리는 헬파이트의 연격이었다. 일격에 일격에 스며든 위력이 대지를 가루고 만들고도 남았다. 가르딘은 정신이 없이 당하는 와중에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타격력을 줄였다. 태극의 원리를 이용하여서 크란트스의 권격을 돌리고, 돌려 회전에 의해서 비껴나가도록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 나이트의 외관이 형편없이 망가져 가고 있었다. 내부의 충격도 장난 아니었다.

  울컥!

  주르륵!

  가르딘의 입가를 타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더럽게 아프네!’

  최근에 이런 고통을 당한 것도 처음이다. 가르딘은 이를 악물어야 했다. 아직 기회는 있었다. 권능의 힘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르딘은 뛰어난 위기관리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르딘은 최대한 버티고 버렸다. 크란트스의 마법공격이 있을 때까지 당하는 척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제 끝이닷!”

  어둠의 극강 마력이 크란트스의 손에서 뻗어 나왔다. 손에 닿기만 하며 사라져 버리는 소멸의 권능이었다. 가르딘은 위기가 바로 기회임을 깨달았다. 무극의 권능을 사용하여 지옥 소멸의 권능과 대적하는 척하면서 섬전행을 극강으로 펼쳤다

  퍼어어엉!

  튕기듯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가르딘이 빠져나가자 크란트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르딘이 지금까지 도망칠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가르딘의 수작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 크란트스는 또다시 분노했다.

  가르딘은 모든 공력을 신법이 쏟아 부었다. 그의 뒤를 크란트스가 바짝 쫓았다. 쫓고 쫓기는 일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눈을 한번 깜빡이자 수 킬로미터를 이동했다. 둘 다 이를 악물고 도망치고 추격했다. 가르딘은 입에서 단내가 풍겼다.

  가르딘은 일정 거리를 확보한 후 멈추었다. 뒤따라오던 크란트스도 신형을 멈추었다. 그는 가르딘이 도망치는 것을 포기했다고 확신했다.

  “여기가 네 무덤이다!”

  “누구 무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인간 따위가 대마왕에게 덤빈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시끄럽고 어서 덤벼!”

  까딱! 까딱!

  가르딘의 손가락 염장질이 펼쳐졌다. 어떤 상대든 이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넘어오게 되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일방적으로 당했던 놈이 기고만장해하자 화가 치미는 크란트스였다.

  빠직!

  “죽인다!”

  대마왕도 다르지 않았다. 크란트스가 무서운 속도로 가르딘을 향해 쇄도했다. 가르딘은 지상으로 내려와서 대마왕을 맞이했다. 그리고 근접거리까지 다가오자 가르딘은 지체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드래곤 하트에 오러를 집중했다.

  우웅!

  드래곤하트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가르딘을 중심으로 수만 가닥의 빛이 새어 나가면서 파멜라가 설치한 마진법이 개진되었다. 빛의 성역이 펼쳐지고 있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크란트스는 가르딘이 어떤 수작을 부리던 신경 쓰지 않았다. 대마왕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 했다.

  “어쭙잖은 수작이 통할 것이라 보는 것이냐!”

  대마왕의 전력이 담긴 제뷰트가 가르딘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쳐졌다. 빛을 능가하는 어둠의 일격이라고 불릴 만했다. 크란트스는 가르딘이 타이탄과 함께 반으로 갈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아니?”

  가르딘이 제뷰트를 한 손으로 잡은 것이 아닌가! 놀란 크란트스가 검을 빼려고 할 때 가르딘의 검이 횡으로 그어졌다.

  휘릭! 댕강!

  극강의 육체를 가지고 있던 크란트스의 허리 아래가 거짓말처럼 잘려나갔다. 반 토막으로 잘린 크란트스는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가르딘은 크란트스가 놀라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대마왕을 상대로 일일이 설명해 줄 이유가 없다. 행여나 방심하다가 일이 어찌될지 아무도 모른다. 승기를 잡았으면 확실히 끝을 내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가르딘의 검이 다시 사선을 그어졌다. 크란트스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어느새 검이 그의 오른쪽 어깨부분에서 왼쪽허리까지 베어져 들어갔다. 상체의 일부분만이 남겨져버린 대마왕이었다. 가르딘은 지겨운 생명력을 가진 마계 종족의 대빵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지를 남겨주지 않았다.

  크란트스는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가르딘의 주변에서 엄청난 신성력이 발생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둠의 기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방심한 나머지 뒤늦게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다. 가르딘의 비겁한 술수에 대마왕은 이를 갈았다. 만약 이런 지저분한 수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겼을 것이 분명했다.

  “치... 사한!”

  “땡큐! 잘 가라!”

  “안... 돼!”

  가르딘은 천룡무상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한계를 넘어서는 극강의 기운이 형성되었다. 무극의 최종점에 달해 있는 가르딘은 최후의 절초를 대마왕에게 선사했다. 대마왕이 마지막 발악을 해왔다. 크란트스의 잘려진 신체부위가 가르딘을 향해 덤벼들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가르딘은 이미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같은 수법에 두 번이나 당하지 않는다. 가르딘이 형성한 의지의 검이 덤벼드는 크란트스의 잘린 신체를 산산이 부숴버렸다. 만약의 사태까지 완벽 대비한 가르딘은 망설이지 않고 무극칠검식의 연환결 최종오의 무극을 사용했다.

   팟!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대마왕은 사라져버렸다. 보기에는 싱거운 검격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어둠을 무로 돌려버리는 무시무시한 절초였다. 대마왕의 기운 자체를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하아! 하아!

  가르딘은 숨을 몰아쉬었다. 대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생사의 기로에 들어선 상황은 몇 번이나 경험했다. 긴장감이 풀리자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한순간이라도 방심을 했다면 어찌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결국에는 이겼다. 어떤 수단을 사용하던 승리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대마왕의 부활로 인해 벌어질 대재앙을 막아내었다.

  “집으로 간다.”

  슈웅!

 공간이동을 통해 가르딘은 저택으로 향했다. 가르딘은 보았다. 저택의 정문에 그가 사랑하는 라이나와 브리안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가르딘을 보고 있었다. 라이나와 브리안의 주변으로 쉴라, 아이시런, 필리언, 갈라, 유타, 파멜라, 라이펜, 안젤리카, 파멜라 등 모든 이들이 마중 나왔다. 모든 이들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르딘도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라이나와 브리안이 가르딘을 향해 달려왔다. 가르딘은 망설이지 않고 라이나와 브리안을 부둥켜안았다. 

  “약속 지켰다!” 

  “고마워요!”

  “아빠! 최고야!” 

  씨익!

  가르딘의 흐뭇한 미소는 지워질 줄 몰랐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만 있다면 가르딘은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외전-브리안전기

  고풍스럽게 잘 지어진 특급 식당 안으로 여인이 들어왔다.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는 머리카락과 희고 매끄러운 피부,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지닌 여인이다. 대륙을 통틀어도 이만한 미인은 흔치 않았다. 있다면 30년 전의 대륙제일미인으로 불리는 카이로만 제국의 황녀뿐일 것이다. 그녀의 복장 역시 범상하지 않았다. 움직이기 편한 경장차림이기는 해도 모든 것이 값비싼 옷감으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식당은 점심이나 저녁 시간이 아니라 한산했다. 또한 일반 평민이 들어오기에는 값이 너무 비쌌다. 그녀는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그녀가 앉자 산뜻하게 메이드복을 차려입은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다가왔다.

  “무엇을 드시겠어요.”

  그녀는 메뉴판에 적힌 몇 가지를 주문했다. 모두 식당에서 최상급에 달하는 요리였다. 종업원은 그녀의 안목이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이 나오자 그녀는 바깥 경치를 구경하며 식사를 했다. 그녀는 조금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마도시대유적은 개뿔! 건진 건 이거 하나뿐이잖아!”

  고상한 얼굴을 한 여인의 입에서 나온 말투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거칠고 품위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손안에 들려진 물품을 보며 짜증을 냈다. 물건은 작은 반지였다. 드워프가 세공했는지, 무척이나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것이었다. 귀중품으로서도 충분히 높은 가치가 있는 반지였다.

  “이게 뭐야? 고작 8서클 마법아이템을 어디다 쓰라고! 젠장!”

  여인의 말을 들은 사람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을 것이다. 8서클 마법아이템이 고작이라니!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현 미드라이언 대륙에 8서클마법사는 절대 흔치 않다. 또한 공식적으로 확인된 8서클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8서클마법아이템을 만들려면 최소한 9서클은 되어야 한다. 다른 마법사들이 봤다면 거품을 물어도 이상하지 않을 말이었다. 

  “어쩔 수 없지 동생 장난감으로나 줘야겠다.”

  마법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마법아이템을 장난감 취급하다니! 도대체 여인의 정신상태가 정상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녀는 반지를 다시 집어넣고 나서 남은 식사를 마저 하려고 했다. 그런데 식당의 문이 열리고 2층으로 올라온 놈들로 인해 식사를 방해받았다. 녀석들 중 똘마니 한 명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레이디, 저희 공자님께서 식사를 같이하시기를 바라십시다. 부디 시간을 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싫은데.”

  그녀는 빵맛 없이 생긴 놈의 말을 단숨에 거절해 버렸다. 그러자 녀석은 재수 없는 놈들의 전형적인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저희 팔레틴 공자님은 실베니아 왕국의 제1공작이신 다우스트 공작님의 차남이십니다. 레이디께서도 좋은 만남이 될 겁니다. 그러니 이리 오시지요!”

  “싫다고.”

  그녀는 싫은 기색이 완연했다. 가뜩이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짜증이 나는 상황에서 재수 없는 놈들을 보고 있는 것은 고역이었다. 솔직히 평소 그녀의 성격에 비해 오늘 많이 참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자중하라고 경고를 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까지 인내심을 발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감히 실베니아 왕국에서 나의 제안을 거부하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다우스트 공작은 실베니아 왕국의 실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왕 다음으로 막강한 배경과 무소불위한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다. 다우스트 공작가의 차남인 그는 장남과 다르게 능력이 많이 부족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건드릴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다. 형편없는 인성에 주색잡기나 하는 인간 말종이기는 해도 그가 지닌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기고만장하고, 거만한 귀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꿈에서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여 인을 본 팔레틴이 그냥 넘어갈 인간은 아니었다. 고양이가 생선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팔레틴은 여인이 감히 거절하지 않을 것 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 일언반구도 없이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쳐다보지도 않고 거절당한 팔레틴은 무시당했다는 수치감에 화가 났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시였다. 언제나 형의 그늘에 가려 못난이라는 빈축을 사왔다. 그는 수하를 물리고 직접 다가갔다.

  “네년이 감히 나의 정중한 제안을 무시한 것이냐!” 

  ‘년.’

  “지금이라도 당장 말을 듣지 않으면 네년을 귀족 모독죄로 죽일 수도 있음을 알아라.”

  ‘또, 년! 그럼 내가 쌍년이라는 소리잖아!’ 

  그녀에게 다른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떤 누구도 그녀에게 계집년이라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상대는 이미 저 세상으로 보내졌다. 그것도 무참히 짓밟힌 후에. 

  스윽!

  그녀가 일어났다. 그러자 팔레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겁에 질려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이라 여긴 것이다. 

  “잘 생각했... 커억!”

  대롱! 대롱!

  그녀의 가녀린 손에 팔레틴의 목이 잡혀 들어 올려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그녀에게 소리쳤다. 

  “죽고 싶지 않으면 공자님을 놔라!” 

  “그렇지 않아도 놀 생각이야.” 

  철퍼덕!

 그녀가 손을 풀자 팔레틴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켁켁거렸다. 기사들이 그녀 주변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재빨리 포위했다. 공작의 아들을 손댔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기사들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팔레틴을 마구 짓밟는 것이 아닌가! 돌발적인 상황에 기사들은 멈칫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막아서려고 하자, 여인이 말했다.

  “나 지금 많이 참고 있는 거다. 죽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게 좋아.”

  “닥쳐랏! 계집!”

  “요망한 계집을 쳐랏!”

  기사들은 여인의 말을 듣지도 않고 검을 빼 들며 달려들었다. 흉흉한 검이 뻗어옴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팔레틴을 계속 밟고 있었다. 기사들 따위는 애초부터 안중에도 없었다.

  “오늘 정말 뚜껑 열리게 만드네.”

  휘리리릭!

  퍼퍼퍼퍼퍼픽!

  빛이 번쩍하자 덤벼들었던 6명의 기사들이 식당의 구석으로 날아가서 처박혔다. 한 방씩 맞은 기사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모두 제정신이 아닌지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맨 처음 그녀에게 다가가서 주선을 하려 했던 팔레틴의 수족 게르만이 두려운 듯이 소리쳤다.

   “그... 분이 누군지 알고 있다면 그만 하는 게 좋... 을 거 다!”

  “넌 내가 누군지 아냐?”

  그녀의 되물음에 게르만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누... 구... 신지?” 

  “정말 나 몰라, 내가 꽤 유명한데.” 

  게르만은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대륙의 악명이 뇌리를 강타했다.

  -태양을 닮은 황금빛 머리카락에 눈부신 미모를 지닌 여인의 얼굴에 속지 마라! 그녀는 파멸의 여신이자, 재앙의 화신이다! 절대 건드리지 마라! 모두 잿더미가 되는 수가 있다.

  “서...설... 마!”

  게르만도 직접 본 일이 없었기에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대륙의 악명과 일치했다. 황금빛 머리카락에 눈부신 미모. 

  “크... 레이지... 프린세스... 브... 리안...카이로스!”

  ᅵ “알면 어떻게 될지 알지.”

  “살... 려 주십시오!” 

  “이제 와서 그래봤자 소용없지.” 

  “호호호호호!”

  그날 브리안은 폭발하고 말았다. 참고 있던 이성적 판단력이 폭발하자 그 화는 실베니아 왕국 전체로 번져 나갔다. 날 벼락을 맞은 다우스트 공작가와 실베니아 국왕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말을 한다고 들을 브리안이 아니었다. 브리안은 수틀리면 일국을 통째로 말아먹을 수 있는 전투력을 가진 괴물이다. 인간으로서는 그녀를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9서클 대마법사에 그랜드 마스터 급의 실력을 지닌 마검사이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그녀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대륙을 제집 드나들 듯이 다닌다. 카이로만 제국조차 그녀에게는 안방이나 다름없다. 황제도 그녀는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드래곤조차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빌빌거린다는 말 이 있을 정도다.

  결국 실베니아 국왕이 무릎을 꿇으며 백만 번 사죄를 해서 겨우 브리안을 달랠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 실베니아 왕국이 대륙에서 지워질 뻔했다.

  실베니아 왕국을 초토화시키기 직전까지 몰아붙이고 난 후 브리안은 워프마법을 사용해 발키리영지로 돌아왔다. 그녀는 아버지의 저택 바로 옆에 저택을 짓고 살았다. 자립은 해야겠는데, 아버지랑 떨어져 살기는 싫었던 브리안은 저택 주변에 집을 짓는 괴행을 저질렀다. 또한 아버지를 본받아 남편을 7명이나 두었다. 그녀가 집에 들어오자 그녀를 반기는 남편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가 올 때 대기하지 않고 딴짓하면 그날은 재앙이 벌어진다. 부부싸움은 흔히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브리안은 달랐다. 진짜로 물을 베어 쪼개버릴 수 있는 브리안이다. 남편들도 오러 마스터 최상급에 올라 있기는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오셨습니까! 부인님!”

  “번호”

  브리안이 번호라는 말을 하자 남편들이 순서대로 서서 번호를 외쳤다.

  “일곱! 부인님 마중 대기 번호 끝!”

  “좋아.”

  “얼마나 피곤했습니까! 여기 편안히 쉬십시오!”

  “아냐. 오늘은 아빠한테 가야 돼.”

  “알겠습니다. 그럼 부인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상전이 따로 없었다. 일부 남편들은 브리안이 좋아서 결혼 한 것이 아니었다. 대륙을 돌아다니다가 맘에 든 사내들을 브리안이 강제로 데리고 왔다. 거부하면 그냥 두지 않는다는 협박에 못 이겨 살고 있는 것이다. 브리안은 거칠 것이 없다. 대륙의 폭군이자 무법자라고 괜히 불리는 게 아니었다.

  브리안은 집에서 간단하게 복장을 풀고,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엄마와 아빠를 볼 때면 항상 여성스럽게 입고 가야 했다. 정성스럽게 치장을 한 후 브리안은 옆 저택으로 갔다.

  저택의 안으로 들어가는데 필리언을 본 브리안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 오랜만이구나! 안 보는 동안 더 예뻐졌네.” 

  “아저씨도 점점 젊어지시는데요!” 

  “고맙구나!”

  “아버지는 어디 계시나요?”

   “가주실에 있을 거다.” 

  “고마워요.”

  가르딘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카이로만 제국의 공작이다. 홀로 대륙을 일통해도 되는 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르딘은 발키리영지와, 헥토르영지에 만족했다. 처음에는 제국과 왕국, 공국도 의심을 했지만 30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발키리영지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과거의 전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데다가 지금은 더욱 강해졌다. 잘못 건드리면 제국이든 왕국이든 박살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누가 감히 건드리겠는가! 가히 무적의 영지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저택의 가주실에서 가르딘과 라이나, 아이시런, 쉴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가르딘과 그녀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 없이 똑같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르딘이 아이시런과 쉴라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대마왕과의 결전이 끝난 후에도 쉴라와 아이시런은 떠나지 않고 10년이나 가르딘의 저택에 머물렀다. 가르딘도 시간이 지나면 포기할 것이라 여겼는데, 그녀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르딘에게는 라이나가 있었다. 라이나를 두고 그녀들을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그런데 라이나가 그녀들을 받아들이라고 가르딘에게 먼저 말을 했다. 가르딘은 몇 번이나 안 된다고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들과 결혼해서 자식까지 보았다. 중간에 엘프인 리니안이 가까이 있기는 해지만 그녀는 사우스랜드로 돌아갔다. 가르딘도 엘프와의 결혼은 탐탁지 않았다.

  끼이익! .

  브리안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가르딘과 라이나, 아이시런, 쉴라에게 인사를 했다.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인사를 하는 브리안에게 라이나가 입을 열었다.

  “또 사고를 쳤더구나!”

  “전 사고 친 적 없어요!”

  “정말 없니?"

  실베니아 왕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라이나가 알고 있는 듯 했다. 라이나의 추궁에도 브리안은 당당했다.

  “그놈이 먼저 제게 추잡한 짓을 했다니까요!”

  “그럼 그 한 사람으로 끝내야지! 왕국 전체를 뒤집어 놓으면 어떡하니!”

  “원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에요. 왕이 내게 사죄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브리안이다. 브리안은 무적의 힘을 갖추었다. 가르딘처럼 힘을 숨기지도 않았다. 절대적인 힘이 있는데 왜 숨기는가! 그녀는 하고 싶은 대로 다하며 살고 있었다. 

  “잘했구나 브리안!” 

  “아빠는 역시 이해해 줄 줄 알았어!”

  가르딘이 브리안의 말에 수긍하려고 하자 찌릿한 기운이 .사방에서 쏘아졌다. 라이나, 아이시런, 쉴라의 눈빛에 가르딘이 급히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요즘 들어 네 남편들이 아주 조금 기가 죽어 사는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살려주지 그러냐!”

  브리안의 남편들이 몰래, 가르딘을 찾아왔었다. 제발 브리안에게 말해서 사정을 좀 봐달라는 아부였다. 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알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르딘이 넌지시 브리안에게 얘기를 건넸다. 하지만 들려오는 브리안의 대답은 냉정했다.

  “조금만 잘해 주면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려고 해서 안 돼요. 적당히 군기를 잡아 줘야 말을 잘 듣거든요.” 

  “어... 그렇겠구나!”

  가르딘은 브리안의 대답에 곧바로 수긍했다. 어차피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 가르딘이라고해서 다르지 않았다. 예전에 브리안이 생일선물로 정령왕을 달라는 바람에 가르딘은 테리우스까지 넘긴 적이 있다. 그때 테리우스가 자기가 물건이냐며 소리를 질렀지만 5개 소원 중에 하나라고 하면서 억지로 넘겨 버렸다. 솔직히 브리안이 원하면 드래곤나이트도 주고 싶지만 녀석은 맘대로 되지 않아서 주지 못했다. 사랑스러운 딸에게 무엇을 못 해주겠는가!

  ‘미안하지만 이게 내 한계다. 너희들은 각자 알아서 해 라!’

  가르딘도 제 코가 석자였다. 지금 누구 사정 봐주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한번 말을 꺼내봤을 뿐인데, 역시나였다. 그렇다고 가르딘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라이나와 쉴라, 아이시런 모두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사랑이 너무 많아서 조금 문제이기는 해도 그 정도면 별것 아니었다.

  ‘그래 인생 뭐 있느냐,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가르딘도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다.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현실에 안주해 버렸다.

 「가르딘 전기」14권 완결

   작가후기

  드디어 마감을 쳤습니다.

  14권까지 오다니, 제가 지금까지 쓴 글 중에서 가장 긴 장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보람 있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제 나름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직까지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글을 여기까지 끌고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독자님들의 성원 때문입니다. 그리고 출판을 위해 애써주신 영상노트에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차기작은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차기작은 「가르딘 전기」와는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진 주인공입니다. 패도적이면서 좀 더 적극적인 주인공을 설정했습니다. 제목에서 필이 올 겁니다. 차기작 제목은 「대륙지존기」입니다.

  앞으로도 더 발전된 글로 찾아뵙기를 약속드립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건드리고고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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