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평화@@]
중간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마왕과의 전쟁이 끝나고 한 달이 흘렀다. 흉흉했던 시기가 지나가고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 하게 되었다. 대륙을 혈난으로 몰아갔던 마왕의 그늘이 서서히 회복이 되어가면서 활기를 찾아갔다.
명실 공히 대륙최강의 국가로 우뚝 서게 된 카이로만 제국의 지휘 아래, 왕국과 공국이 협조를 하여 대륙의 환란을 종식시켰다. 마왕과의 결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카이로만 제국에서 영웅과 위대한 기사가 배출 되어 마왕을 무찌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륙인들에게 제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러쉬 황제는 제국을 반석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황제의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굳건한 성도 기틀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바람에 견딜 수 없다. 러쉬 황제는 대륙의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카이로만 제국의 존재 자체를 각인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혹독했던 시기도 결국은 시간의 흐름에 점점 더 잊혀만 갔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볼 수 없지만 어느새 제국, 왕국, 공국이라는 틀에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세력의 군집이 이루어졌다. 마왕을 대적하기 위해 합심했던 마음은 찰나 에 불과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현실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었다.
대륙이 안정을 찾아가고, 카이로만 제국의 기틀이 반석에 올라서며, 전에 없는 명성을 쌓아, 성쇠를 부가하게 되었다. 초대 카이로만 대제 시절 제국의 아성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쉬 황제는 걱정과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유는 가르딘 공작 때문이었다. 마왕과의 결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곳이 발키리영지다. 이번 전쟁에서 발키리영지의 영주인 가르턴 공작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검사로 알려졌다. 대륙최강의 검사라고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가졌다. 현재 가르딘 공작과 견줄 수 있는 검사는 스필언과 미토스뿐이다.
하지만 스필언과 미토스는 마왕과의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다. 아직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니, 가르딘을 대적할 상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으로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다는 검의 절대경지인 그랜드 마스터 급의 기사. 가히 일인군단이라 불릴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무력이 강하다고 해서 러쉬 황제가 이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시 가르딘 공작이 보유한 무력이 세상에 드러났다. 상식적인 수준을 한참이나 벗어난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대륙 전체가 덤벼든다고 해도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 무력이었다.
발키리영지의 전력
-가르단 공작 : 그랜드 마스터 급의 기사(현존 대륙최강의 기사).
-발키리기사단 : 인원 103명, 전원 오러 마스터(현존 대륙최강의 기사단).
-크레이지드래곤창기병 : 인원 500명, 전원 랜스 마스터(현존 대륙최강의 창기병)
총 병력 : 6만. 정예 전투병(현존 대륙최강의 정예병).
-병기 : 4대의 타이탄 보유(현존 대륙최강의 병기).
-수호룡 : 드래곤로드 외 전ᅵ 드래곤.
“후우우!”
러쉬 황제는 서탁에 놓인 발키리영지의 전력을 보자 가슴이 턱턱 막혀왔다. 과연 이게 가능한 조합인가! 신이 장난질을 쳐 놓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무시무시한 조합이었다.
대륙최강국의 황제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그조차 발키리영지의 전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했다. 세상은 홀로 무적일 수 없다. 인간인 이상 약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르딘 공작은 어디 하나 뚫고 들어갈 빈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적으로 돌아서면 제국을 지배하고, 대륙을 정벌해도 이상하지 않은 전력이었다. 일인군단의 실력에 이만한 전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황궁의 여러 신하들이 가르딘 공작의 위험함을 은밀하게 성토하는 분위기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발키리 영지에 들어가서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가르딘 공작의 머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러쉬 황제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의 명석한 두뇌로도 파악이 되지 않는 인물이다. 황제의 직권을 이용해서 가르딘 공작의 의중을 떠보지도 못한다. 그가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재앙과 같았다. 가르딘 공작을 잡아 둔다고 해도 막아낼 수 없을 뿐더러, 드래곤로드가 수호룡으로 있는 상태다. 드래곤의 분노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러쉬 황제는 가르딘 공작을 황도로 올라오라고 명령하지 못했다. 가르딘 공작이 황도에 올 경우, 귀족들의 동요는 불을 보듯 자명했다.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황제의 권력과 기틀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릴 수도 있었다.
“과연 나라면 그만한 전력을 가지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러쉬 황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비록 전쟁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면 대륙을 일통해 버렸을 것이다. 인간인 이상 욕망과 욕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가르딘 공작이 제국의 충신으로서 지속적으로 남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사람의 마음도 한순간 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러쉬 황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보안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어렵구나!”
황제가 신하를 두려워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러쉬 황제가 고민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아이시런 공주가 찾아왔다. 전쟁 중에 찾아온 아이시런 공주의 황녀다운 모습과 용기에 러쉬 황제는 감동했었다. 또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족이었다.
“무슨 일이냐?”
“요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서요. 그러다 쓰러지시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그런 얘기라면 나는 괜찮다.”
“이유가 있을 테지요.”
아이시런 공주는 이유를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듣고 싶어서 러쉬 황제에게 물었다. 러쉬 황제는 차마 말을 잊지 못했다. 황제가 신하를 믿지 못하고, 두려워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망설이는 황제를 대신해,
“가르딘 공작 때문이겠지요.”
“알면서 물어본 것이냐?”
“공공연한 비밀이잖아요.”
러쉬 황제의 심기가 편치는 않았다. 아이시런 공주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귀족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솔직히 모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아이시런 공주로 인해 다시 한 번 상기되었다는 것이 불편한 따름 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가르딘 공작을 끓어 앉혀 충성서약을 맺어, 그의 모든 전력을 손에 넣고 싶은 마음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답답하고 불편했다.
아이시런 공주는 러쉬 황제의 불편한 심경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황제의 고민이 기우에 불과하다고 단정했다.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데.’
가르딘이 제국을 세우고, 대륙을 정벌한다니!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아이시런 공주는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에 전 재산과 미모를 걸 수 있었다.
‘아마 귀찮다고 황제의 자리도 걷어차 버리겠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위해서 모든 인생을 걸고 있는 가르딘이다. 제국건설이나, 대륙정벌은 일반적인 욕망을 지닌 인간들에 한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반면에 가르딘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존재다. 권력과 명예보다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가르딘이 반란을 획책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이시런 공주는 황제에게 사실을 전하지 않았다. 그녀는 황궁에 돌아온 후부터 황제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내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한 달이라는 시간도 제국이 안정을 취하는 유예기간이었다. 모든 일을 계획할 때, 조급한 마음에 성급하게 나서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아이시런 공주가 러쉬 황제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지그시 바라보며 이 한 몸 바칠 수 있다는 의지를 실었다. 가르딘과의 경쟁으로 인해 연기는 물이 오를 때로 올랐다. 다 시 한 번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할 말이 있는 거냐?”
“제가 오라버니의 근심을 털어 드리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아이시런 공주의 뜬금없는 말에 러쉬 황제는 순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제국의 황제도 풀지 못하는 숙제를 공주가 어찌 풀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아이시런 공주의 확고한 말투와 비장한 모습을 보자.
“너 설마?”
“제가 비록 여인이기는 해도, 제국의 황녀예요! 어찌 제국의 불안거리를 두고 모른 척 방관할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러쉬 황제는 더 없이 놀랍고. 안타까웠다. 두 대공가의 신성과 맺어지는 것을 은근히 꺼리기까지 했다. 아이시런 공주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대답을 주저하고 있는 러쉬 황제였다. 아이시런 공주는 망설이고 있는 황제에게 연속적으로 미끼를 뿌렸다. 이미 3분의 2는 미끼를 문 상태였다. 빠져나갈 기회를 주지 않는 노련한 낚시꾼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제가 아깝기는 해도, 그는 대륙최강의 기사이자 제국의 주요 전력이에요. 그를 이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잖아요! 저는 제 소임을 다하겠어요!”
그는 동생의 확고한 신념에 감탄했다. 제국을 위해 희생하는 전형적인 황녀의 자랑스러운 모습이 아닌가! 평소의 러쉬 황제라면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사리 깊은 결정을 내리겠지만 한 달이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태라,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냉철하게 분석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전쟁 중에 보여준 아이시런 공주의 기백과 용기가 믿음을 주기에 충분한 역할을 했다. 결국 아이시런 공주의 의도대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되었다.
“알겠다. 네 뜻대로 하여라.”
“최선을 다할게요.”
“너는 제국의 황녀다! 그걸 절대 잊지 마라!”
“알았어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한 후 아이시런 공주는 등을 돌렸다. 돌아선 아이시런 공주의 등에서 의연함이 보였다. 최후까지 방심을 허용하지 않는 아이시런 공주의 철두철미한 모습이었다. 러쉬 황제는 동생을 정략적인 방법으로 이용한다는 것에 대한 심적인 부담감으로 마음이 편치 않아 보였다. 반면에 돌아선 아이시런 공주는 입가에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아저씨도 내 호의를 잊지 않았겠지, 잊었다면 다시 상기 시켜주지. 뼈저리게!’
아이시런 공주는 전의를 불태웠다. 거대한 장벽이 눈앞에 존재하지만 그 장벽과 나란히 설 각오를 다졌다.
세상의 가장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는 곳. 최강의 검사이자, 최강의 무력집단이 존재하는 대륙최강의 영지. 알게 모르게 세상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발키리영지다. 마왕의 강림과 동시에 대륙을 지키는 수호영지가 되어 경외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영웅과 더불어 마왕을 무찌르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기에 명성이 대륙 전체를 진동시켰다. 전쟁이 끝나고 난 후각 왕국과 공국의 사절단이 제국을 거쳐 발키리영지에 왕래를 빈번히 했다. 제국과 우호를 다지면서 발키리영지와도 함께하려는 뜻이 비추어졌다. 물론 카이로만 제국의 황제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이라 공식적인 절차와는 다른 비공식적인 절차를 따르고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왕국과 공국의 노력은 씨도 먹히지 않았다. 가르딘 공작은 그들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불만을 가질만도 한 상황이지만 왕 국과 공국; 심지어 제국의 귀족들까지 섣불리 따지지 못했다. 이유는 가르딘 공작이 자꾸 찾아오면 황제에게 사실을 모두 꼬질러 버리겠다고 한 것이다. 가르딘을 등에 업고 무언가를 해보려던 이들은 그 즉시 꼬리를 말고 물러났다. 카이로만 제국의 황궁에서 심심치 않게 가르딘을 음해하는 귀족들도 대부분이 이런 자들이었다.
가르딘은 시답지 않은 녀석들이 들러붙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귀찮은 날파리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지만, 방치하는 것도 좋지 못했다. 때로는 단호하게 대처를 해서 다시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요즘 들어 검 좀 휘두르는 놈들은 죄다 발키리영지로 모여들고 있었다. 오러 마스터가 떼로 모여 있는 발키리영지에서 무언가 배울 것이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개중에 뛰어난 녀석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기를 가르쳐 줄 가르딘이 아니었다. 세상을 만만히 보고 있는 놈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검을 수련하는 자에게 절대지경의 검법과; 오러심법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이다. 기연을 찾아오는 검사들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다만 가르딘이 알지도 못하는 수상한 놈들에게 검법을 가르쳐줄 리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불세출의 뛰어난 자질을 지닌 녀석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가르딘은 검법을 전수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 녀석들에게 잔인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세상은 자질보다 인맥이 우선이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에게 자질만 믿고 가르치다 한 방에 훅! 간 경우가 허다했다. 상대에 대해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자가 아니면 절대 검법을 전수하지 않는다. 그것이 오랜 전통이다.
가르딘은 그들을 만나지도 않았을뿐더러 대부분이 문전박대를 당하고 쫓겨났다. 앙심을 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일일이 상대해 주면 만만히 볼 수도 있다. 거지에게 밥을 주다 보면 떼거리로 달려드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그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귀찮았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도 부족한 시간에 다른 놈들의 눈치를 보며 살기도 싫었다. 이미 실력이 까발려진 상황이라 가르딘은 과감한 결단력을 보여 주었다. 안하무인, 적반하장의 태도는 아닐지라도 전보다 더 추진력이 강해졌다.
발키리영지는 대륙인들의 호승심과, 영주의 과감한 추진력으로 인해 날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발키리영지의 거미줄 같은 행정망을 통한 헥토르영지와의 연계와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상태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편이다.
마왕과의 전쟁이 끝난 지 두 달이 지나가는 시간 동안 가르딘은 오전 중에 행정업무를 마치고 난 후 라이나와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사랑을 속삭였다. 이 시간이 가르딘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반복적인 일상을 거듭하면서도 전혀 무료하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라이나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하고 있는 브리안을 보는 것만으로 흐뭇했다. 브리안은 정말 대단히 빠른 성취를 보였다. 대정신공의 화후가 벌써 6성을 넘어서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더군다나 브리안은 신공뿐 아니라 마법까지도 4서클에 이르고 있는 상태였다.
“마법과 검을 한꺼번에 수련하다니! 우리 딸은 천재구나!”
“아빠 닮아서 그래.”
마법과 검은 동시에 수련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다. 마법의 서클과 검의 오러가 상충하여 서클의 파괴와 오러플로전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마검사는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전해지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도 가르딘은 전혀 불안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딸의 성취를 반기고 있었다. 딸을 끔찍이 위하는 가르딘이 위험을 좌시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가르딘도 마법과 검을 합일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의 극의를 이루어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경지에 다다른 가르딘이다. 이제는 마왕의 합공을 정면으로 상대한다고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가르딘이 브리안의 상태를 모를 리 만무했다.
“아빠가 가르쳐 준 대로 했더니 전혀 어렵지 않았어!”
“그랬니!”
가르딘은 브리안의 칭찬에 자신도 모르게 입이 헤벌쪽 벌어졌다. 가르딘은 대정신공에 천룡무상신공의 오의를 섞었다. 천룡무상신공은 여인이 익히기에는 힘든 점이 존재했다. 그래서 중원에 산재한 신공 중에 하나였던 대정신공을 가르쳤다. 대정신공이 뛰어난 신공이기는 해도 천룡무상신공에 비해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전이었다면 천룡무상 신공과 다른 신공의 결합이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가르딘은 새로운 창조가 가능한 경지였다. 대정신공의 공능을 보완하여 마법서클을 만드는데 지장을 주지 않도록 고안했다. 삼라만상의 기운을 포용하는 천룡무상신공이라면 능히 마나도 포용이 가능할 것이라 보았다. 그로 인해 3서클에 가로막혀 있었던 브리안은 4서클을 넘어서게 되었다.
-파이어윌(불의장벽).
마법을 선보이며 가르딘에게 성취를 시험하고 있는 브리안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까맣게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뜨거운 불의 장벽이지만 가르딘은 약간 뜨겁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 뿐이었다. 솔직히 전혀 뜨겁지 않았다. 천룡신의 완벽한 신체를 가진 가르딘은 용암을 손바닥으로 풀 수도 있었다.
“아이구! 뜨거워라!”
“아빠도 참! 다음 것도 간다!”
“어서 해보아라.”
-파이어애로우(불의화살).
-원드커터(바람의칼날).
-체인라이트닝(뇌연격).
살벌한 마법이 난사되고 있었다. 보통 아버지가 아닌 가르딘이기에 받아 줄 수 있는 공격이다. 실상 마법에 대한 이해력은 누구보다 뛰어난 브리안이었다. 이론적인 부분은 5서클은 넘어선 지 오래였다. 마법의 조종이자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에게 단독과외로 사사받은 브리안에게 그 정도는 식은 수프 먹기였다. 지금까지 3서클에 머물고 있었던 것은 대정신공의 화후가 높아지면서 마나서클의 기운이 장애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르딘이 대정신공의 공능을 바꾸고, 내공의 성질을 바꾸어주자 한순간에 1서클의 벽을 넘어설 수 있었다. 곧 있으면 5서클을 넘어 6서클에 이를 것이다. 전무후무한 재능과 성취가 아닐 수 없었다.
예전이라면 라이나가 보고 있기에 검이나 마법을 가르치는데 망설였을 것이다.
하지만 가르딘은 생각을 달리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가르딘은 너무 많이 드러나 있는 상태다. 가르딘의 능력이 대단한 만큼 적의 술수도 위험하고, 음험해질 것이 분명하다. 사람을 이용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인질이다. 가르딘은 만일의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특히 가족에 대한 대비책은 한 가지로는 부족했다. 요즘에는 라이나도 수련을 시키고 있는 상태다. 너무 가날프고, 연약해서 힘든 수련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무척 젊어진 라이나는 무공이 꼭 나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젊고, 예뻐지고 싶어 하는 것은 여성의 본능이다. 솔직히 그것은 사내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치열하고, 중대한 일이 다. 가르딘은 친절하고 세밀하게 라이나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었다. 절대 화를 내지 않고 되도록 재밌고, 유쾌하게 무공을 전수했다. 그렇다고 해서 라이나의 성취가 느리냐, 그것도 아니다. 가르딘은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을 합일하여 심안의 영역을 넓혔다. 심안은 여러모로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가르딘은 운용요결을 가르치면서도 세밀한 기의 컨트롤과 그에 필요한 지식 등을 의념으로 라이나의 머릿속에 집어넣어 주었다. 그렇기에 라이나는 한번 배운 것은 절대 잊어 먹지 않는다.
“봐봐! 이렇게 하면 돼! 쉽지.”
“어머! 그러네요!”
“역시 나의 여보라니까!”
“당신도 참! 부끄럽게 왜 그래요!”
“왜 보는 사람도 없는데 어때!”
“그래도.”
기사에게 수련은 혹독하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된 수련과 자기 수양이 일생동안 지속된다. 결코 만만하다 할 수 없으며, 재미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르딘과 라이나는 즐거웠다. 부부가 같이 취미로 할 수 있으며, 서로의 몸을 자연스럽게 스킨삽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의 정을 뜨겁게 달구는 여흥거리였다. 평생을 검만 바라보고 수련해도 힘든 상승의 경지를 가르딘은 놀면서 가르칠 수 있었다. 여타의 기사들이 봤다면 억울해서 할복했을지도 모른다.
가르딘과 라이나의 낯 뜨거운 장면은 만 18세 이하는 정신건강에 좋지 못하며,60세 이상은 심장마비 걸릴 수 있으니 보지 않는 게 나았다. 가르딘은 시간 가늘 줄도 몰랐다.
그런데 10일 전부터 가르딘의 행복한 시간이 방해받기 시작했다. 가르딘이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필이면 가르딘이 가장 낄끄러워 하는 존재들이 찾아왔다. 무력으로 쫓아내려고 해도 라이나가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가르딘의 행복을 박살내고 있는 존재들은, 성녀 쉴라와, 제국의 공주 아이시런이었다. 그녀들이 찾아옴으로써 가르딘은 라이나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여인들의 수다.
끝이 없다. 기다리다가 날 밤 까는 일은 예삿일처럼 빈번하게 벌어진다. 별로 재미도 없고, 쓸데없는 대화를 하루 종일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어느 날 가르딘이 쉴라와 아이시런을 따로 불렀다. 성녀와 쉴라는 영지에 오고 난 후 한 번도 가르딘을 찾지 않았다. 가르딘이 조바심을 내도록 조장한 것이다.
“안 바쁘냐?"
“한가해요.”
“저도 한가해요.”
빠직!
쉴라와 아이시런의 얼굴에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가르딘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면서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제국의 공주와 성녀가 한가하다니! 그게 상식적인 대답인가!
바쁘지 않아도 바쁘다고, 상투적인 말을 해주는 것이 올바른 지식을 갖춘 성녀와 공주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바쁘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가르딘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가르딘도 냉정하게 [꺼져]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아이시런과 쉴라에게 정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이 많은 오빠로서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 정도가 딱 적당했다.
“아예 눌러 살아라!”
가르딘이 포기한 듯이 손을 들었다. 하지만 실수한 것이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뭐?”
푸념하듯이 한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어쩌란 말인가! 이제 와서 진심이 아니라고 하기에도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오해가 있다면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가르딘이 번복하려고 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버리면 어쩌냐!”
뒷말은 듣지도 않고 그녀들은 나가버렸다. 가르딘은 답답함을 느꼈다. 매정하게 대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아예 모른 척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제국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가르딘이다. 황제가 명령을 해도 납득되지 않는 일은 거절할 실력과 명성이 있었다.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어차피 시간이 되면 돌아가기 마련이다. 언제까지 발키리영지에 머물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 여겼다.
끈 떨어진 두레박신세가 되어버린 가르딘은 너무 한가했다. 행정의 대부분은 파멜라가 알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이제는 일부 중요한 서류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파멜라가 직접 서명하고 직인을 찍었다. 오전 공무도 많지 않은 날이 지속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중이떠중이들을 상대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다. 저택 밖에 나가면 식을 줄 모르는 인기로 인해 피곤하기까지 했다.
“이놈의 인기는 정말!”
가르딘은 한가한 시간 동안 수련을 시작했다. 뜻하지 않은 수련이 아닐 수 없었다. 영지에 오고 난 후 한 번도 검을 잡아보지 않았다. 잡을 일도 없을뿐더러, 라이나와 보내는 시간이 더 중요했었다.
마왕의 마지막 일격을 막았을 때 가르딘은 한계의 영역을 초월했었다. 가르딘은 한계가 바로 또 다른 시작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포용하여 조화의 극의를 이루었다고 자부했었다. 그러나 가르딘은 무에 궁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초월자의 영역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세상의 이치가 저절로 스며들어왔다. 모든 만물의 태생적인 역사와 기운까지도 흡수되었다. 이렇게 되자 세상을 바라보는 가르딘의 관점과 시각이 변했다.
‘본질을 보게 된 것인가.’
가르딘은 막 떠오른 한 조각의 편린이 사라지기 전에 검을 휘둘러보고 싶었다. 저택에서는 마땅히 검을 휘두를 만한 장소가 없었다. 일반적인 검사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가르딘은 일반적인 허용범위를 넘어섰다. 잘못하면 저택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다. 비싸게 주고 지은 집이 부서지는 것은 사양이었다. 가르딘은 지체하지 않고 저택을 벗어나 다크랜드로 향했다. 수련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다크랜드였다. 제한 없이 힘을 사용한다 해도 염려할 필요성이 없다. 산이 부서진다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스르렁!
천룡검이 자연스럽게 뽑혀 가르딘의 손에 잡혔다.
영성을 지닌 천룡검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듯 상서로운 기운과 동시에 검명을 토해내었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떨림이 대기를 진동시켰다. 검의 기운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가르딘은 차분히 내면을 다스리고, 명경지수와 같은 고요함을 마음에 담았다. 바람이 불지 않는 호수조차 작은 흔들림이 존재한다. 반면에 가르딘은 아주 미세한 기운의 영역조차 통제를 하고 있었다. 숨을 내쉬는 호흡의 움직임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의 몸은 우주와 같으며 마음은 우주를 넘어선다고 한다. 가르딘은 몸과 마음을 읽고 조화를 이루었다. 조화는 점점 영역을 넓혀 주변의 자연까자 범위를 확장시켰다. 의지의 영역이자 가르딘의 공간이다. 권능의 공간이라고 불리는 이 능력은 신의 능력과 같았다. 물론 신의 절대적 권능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미터,10미터,100미터.
가르딘은 지배할 수 있는 공간의 영역을 넓히며, 탐색했다. 숲과 나무, 땅을 지탱하는 근원이 가르딘의 뇌리로 전달이 되었다. 아주 작은 풀벌레의 탄생과 죽음의 역사까지도 찾아내었다. 신비롭고 경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후으읍!”
한 호흡을 쉬고 영역을 압축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굳건하게 방어했다. 반경 30미터 안을 통제하고 있는 가르딘이다. 가르딘의 영역안에 있는 이상 그 어떤 존재도 침입을 불허하였다. 가르딘의 의지와 권능이 통제하고 있는 중심에 천룡검의 검신이 푸른빛을 토해 내었다. 천룡검의 영성과 가르딘의 마음이 혼연일치가 되어 무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만, 남의 기억과 생각을 멋대로 읽지 마!
‘저절로 읽히는 데 난들 어떡하느냐?
-안돼!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후후후!’
천룡검이 삼중으로 마음의 장벽을 만들어 방비를 해봤지만 소용없는 짓에 불과했다. 가르딘의 의지력은 천룡검의 영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고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두터운 천룡검의 장벽이 모래알처럼 부서져 내렸다. 숨기려고 해도 절대의 관을 이룬 가르딘은 저절로 보게 되었다. 천룡검의 모든 기억과 생각이 가르딘의 뇌리에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각인되었다. 천룡검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무극칠검식의 연환결에 대한 구결과 오의가 가르딘에게 흘러 들어왔다.
씨익!
가르딘이 미소를 지었다.
-도둑놈!
‘난 잘못없다.’
천룡검은 억울했다. 무극칠검식의 연환결은 천룡검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비장의 카드였다. 헌데, 그것조차 가르딘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도 없는 빈털터리에 개털이 되었다.
“호오!”
가르딘이 탄성을 내질렀다. 신마는 과연 대단한 존재였다. 그의 경지가 비록 가르딘에 비해 떨어질지는 몰라도, 무를 논하는 관점만은 가르딘보다 위에 있었다. 신마가 이루지 못한 무극칠검식의 궁극적인 모습은 결국 무극이었다.
“7개의 검형으로 변화를 이루었다고 해도 무극칠검식은 무극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무극은 끝이 없고, 변화도 없다. 변화를 일으킨 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무극에서 시작을 했다면 다시 무극으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무극칠검식의 뿌리이자 종착지는 무극이다. 태초의 시작은 혼돈이다. 혼돈에서 파생된 기운이 음과 양으로 분리되어 존재하며, 음과 양이 합일하여 무극의 기운을 이루어 완벽한 존재로 탄생이 된다. 신마는 무극의 기운을 사용하기 위해서 무극칠검식을 만들어 내었다. 그의 모든 지식과 능력을 동원하여 무극의 힘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해 내었다. 그것이 바로 무극칠검식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다시 시작이 있다. 끝없이 반복되는 기운의 종착점에 연환결의 뿌리가 존재 하며. 그곳이 바로 무극이다.”
가르딘은 무극칠검식을 다시 원래의 형태로 돌려버리고 있었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근원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절대의 영역에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무극칠검식의 뜻과 근원의 맥이 온전하게 파악이 되었다.
가르딘은 천룡검을 들어 뻗었다. 가볍게 뻗은 일검에 불과했다.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일검이 아니라 스스로 궁구한 의문을 풀어내기 이한 일검이었다. 검의 흐름은 하나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안에 서린 기운은 무극칠검식의 오의가 모두 풀어져 있었다. 느림과 빠름, 직선과 곡선, 일검과 만검, 생과 사의 뜻이 하나로 합일하여 면면부절하였다.
허공을 향해 검을 뻗었다.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허공은 대기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힘을 다한 일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은 가히 하늘을 꿰뚫어버릴 듯했다. 무극칠검식을 합일하여 펼친 무극의 일검이 지닌 경천동지한 위력이었다. 가르딘도 솔직히 놀라웠다.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최강의 경지가 과연 이러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내가 펼치고도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가르딘은 초월의 영역이 무엇인지 경험했다. 솔직히 세상 전체가 덤벼온다고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천상천하, 부부무적, 가족사랑, 영원불멸을 이루어도 손색이 없는 경지에 다다랐다고 자부했다.
기운을 갈무리한 가르딘은 의지의 권능을 풀었다. 수련을 끝내고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오늘 얻은 수확이 이제까지 얻은 것을 훨씬 초월한다고 할 수 있었다. 가르딘은 만족했다.
슈웅!
돌아가려는 가르딘의 앞으로 무언가가 소환이 되었다. 8미터에 달하는 기계체가 섬광을 동반하며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 가르딘은 길목을 가로막으며 나타난 물체를 보고 짜증이 치밀었다.
빠직!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온다. 무극칠검식의 연환결을 이루기 위해 얻어내었던 절대의 평정심이 흔들릴 정도로 짜증이 솟구쳤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은 그렇다 치고, 다 끝난 마당에 나타난 것이 아주 못마땅했다.
퉤엣!
가르딘이 못 볼 것 봤다는 표정으로 지으며, 이물질이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는 가래침을 바닥에 뱉어내었다. 한동안 침 좀 뱉어본 완벽한 폼이었다. 뒷골목을 배회하는 건달들도 가르딘의 모습을 보면 능숙한 숙련자라고 느낄 정도였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해.”
-나는 장난하지 않았다.
가르딘의 앞을 가로막은 존재는 삼신기 중의 하나이자 가르딘과 계약을 한 타이탄, 드래곤 나이트였다.
부르르르!
가르딘의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무지하게 참고 있는 것이다.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었다. 드래곤 나이트의 태도가 너무 당당했다. 마왕을 상대할 때는 불러도 대답조차 하지 않은 놈이 이제 와서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가르딘은 드래곤 나이트를 산산이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이성적인 자제력이 남아 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칼부림이 먼저 났을 것이다.
“그래 좋다. 다른 것은 둘째치고 왜 지금 내 앞에 나타난 거냐?"
-그냥.
“뭐?”
-이라고 하면 네가 화내겠지.
“이 자식이 지금 나랑 정말 해보자는 거야!”
드래곤 나이트는 가르딘의 화를 돋우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소유하고 있었다. 가르딘의 염장을 제대로 지르고 있었다. 가르딘은 염불이 터졌다. 남의 염장을 마ᅵ구 터트려는 봤지만 자신이 직접 당하기는 근래에 들어 최초였다. 또한 이처럼 염불이 터지기는 처음이었다. 드래곤 나이트의 담담한 목소리와 톤에 짜증이 났다. 그러고 보니 드래곤 나이트와 말을 섞을 때마다 짜증이 났는지 깨닫게 되었다. 바로 자신과 똑같은 목소리였던 것이다. 거기다가 성격까지 판박이처럼 비슷했다.
“고철덩어리 주제에 염장을 질렀겠다!”
꽈악!
가르딘이 그립(검병)에 손을 갖다 대었다. 어차피 고철덩어리니 잘라서 농기구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여겼다. 고철덩어리랑 더 이상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짜증이다. 가르딘이 검을 빼려고 하자.
-잠깐.
멈칫!
“왜? 마지막 유언이라도 남기고 싶은 것이냐?"
-내 말을 듣고 나서도 베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
드래곤 나이트는 여전히 담담했다. 흥분한 가르딘과 다르게 무척이나 침착하고, 조리 있었다.
“말해 봐, 단! 별것 아니면 가만히 안 둘 줄 알아!”
-어차피 나는 인간이 아니다. 고통을 느낄 것이라 여기는가! 원래부터 영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라진다 하여도 아쉬울 것 없다. 하지만 너는 다르다. 나와 달리 너는 사람이다. 인연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니 목숨에 연연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말이 틀렸나?
“당연한 소리는 하지 마라! 별로 설득력 없다!”
논리적인 말을 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가르딘은 그저 화풀이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드래곤 나이트에게 시시껄렁한 설교를 듣고 싶을 리 만무했다. 듣고 보니 타이탄에게 설교 받을 정도로 인성교육 못 받지는 않았다. 가르딘의 화를 부단히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신기는 사라지게는 낫지.”
-난 임무를 잊은 적이 없다.
“마왕을 상대하는 게 임무 아닌가!”
-맞다.
“그럼 답 나왔네.”
샤이닝나이트와 세인트나이트처럼 빛이 되어 사라져 주면 되었다. 신기가 있으나 없으나 가르딘에게는 하등 상관이 없다. 어차피 사용하지도 못하는 신기는 남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게 나았다.
-마왕은 둘이 아니다.
“뭔 소리야?”
-곧 마왕이 부활할 것이다.
“뭐?”
갈수록 가관이다. 마왕이 사라진 지 벌써 2달이 지났다. 그런데 또다시 마왕이 나타난다고 하고 있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가르딘은 더 이상 듣고 있을 가치를 못 느꼈다.
“신소리 하지 마!”
-마왕중의 마왕이 부활한다.
“응?”
-대마왕이 곧 깨어난다. 그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불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잠… 깐! 정말이냐?"
-나는 거짓을 모른다.
드래곤 나이트의 얼토당토한 말을 비웃으며 무시해 버리고 싶었지만 가르딘은 그럴 수 없었다.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가르딘은 드래곤 나이트의 본질 역시도 파악 할 수 있었다. 드래곤 나이트는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은 아니다.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자 가르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언제지?”
-6개월 후다.
저번보다는 길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대마왕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했다.
“대마왕이 강한가?”
-마계를 지배하는 5마왕이 모두 덤빈다고 해도 대마왕을 이길수 없다.
강함의 척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현재 가르딘의 능력도 마왕 둘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5명의 마왕은 제법 힘들겠지만 유격전을 펼치면 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내가 이길 확률은?"
-현재 너의 능력은 나조차도 측정이 불가능하다. 확실히 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마왕을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다. 대마왕은 추측불가의 영역에 존재하는 괴물이다.
“왜 지금 강림하는 거지?"
오랜 시간동안 마왕의 부활을 위해서 노력한 어둠의 길드가 피의 의식을 진행해서 마왕이 강림했다. 반면에 이번에는 그런 의식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마왕이 중간계에 강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불가였다. 정령왕 테리우스가 말하길, 차원을 여는 일은 결코 쉽다 할 수 없다고 했다. 몇 만 불의 확률을 뚫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깨어난다고 했지 강림한다고 하지 않았다.
“그게 뭐?”
-대마왕은 중간계에 봉인이 되어 있다.
“설마 여기는 아니지?”
가르딘이 한번 찍어 보았다.
-맞다.
한때. 대륙에 럭키윈이라는 추첨식 복권이 유행했었다. 일확천금을 노리며 가르딘도 젊은 시절 도전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번호 맞추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여태까지 3개 이상 맞아본 적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번에 맞췄다. 역시 불운은 강했다.
“진짜!”
-그렇다. 이곳이 왜 다크랜드라고 불리며, 어둠의 대지라고 불리겠는가! 내가 왜 이곳에서 오랜 시간 잠자고 있었는지 알고 있는가! 이유는 모두 대마왕이 다크랜드에 봉인되어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다. 다크랜드라는 이름부터가 어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드래곤 나이트가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하나둘씩 원인을 찾아 조각을 맞추자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부활할 수 있는 거지?"
-원인은 마왕의 강림부터 시작된 것 같다. 마왕의 권능이 중간계에 피를 뿌리자 대마왕의 봉인된 제약이 풀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추측?”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가르딘은 순간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두 마왕의 강림과 죽음이 대마왕의 부활을 위한 제물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실로 무서운 간계가 아닐 수 없었다.
“젠장!”
욕이 터져 나온다. 끝났다 싶으면 더 큰 일이 가르딘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왜 일이 자꾸 이지경이 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세상에 알려 대비를 해야 하나?”
-그래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대마왕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너밖에 없을 테니!
“그... 렇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영웅이 의식불명인 상태에다, 두 신기마저 사라졌다. 가르딘만이 대마왕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가르딘은 짱돌을 굴렸다. 어떻게 하면 대마왕을 막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붙어보지 않는 이상 정확한 결론을 내기 힘들었다. 이기면 좋겠지만 아니면 끝이다.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그런 방법이 있다면 애초부터 말했을 거다.
“네 능력은 어느 정도지?"
-나는 너를 매개체로 하여 능력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존재다. 어느 정도의 역량을 발휘할지는 너의 역량에 달렸다.
드래곤 나이트도 샤이닝나이트와 세인트나이트처럼 각인 된 검술이 있다. 그러나 가르딘의 검술을 능가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드래곤 나이트는 그저 가르딘의 능력을 증폭시켜 보조적인 존재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능력이다. 지금의 가르딘이 더 강해진다는 소리가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럼 너는 이제 내가 부를 때 소환되는거냐?”
-그렇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단, 아무 때나 부르지 마라. 귀찮다.
“주인이 부르면 나타나야지:’
-수틀리면 안 나올 수도 있다.
“역시나 재수가 없어.”
-재수가 없어도 내 도움을 필요할 거다. 솔직히 나는 중간계가 망가지든 말든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내 사명과 의지 때문에 대마왕을 막을 뿐이다.
가르딘의 말투와 성격을 그대로 빼다 닮은 이기적인 타이탄이었다. 가르딘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절대 자신은 드래곤 나이트와 친해질 수 없다는 것을.
가르딘은 다크랜드에서 곧장 저택으로 돌아온 후 집무실에서 대마왕을 막을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생각을 한다고 해서 당장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허공에 떠다니는 구름을 잡는 것처럼 허우적대었다.
“일단 내 실력을 더 끌어올리기는 해야겠는데.”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더 높은 경지로 들어서기 위해 조바심을 내봤자 길을 열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깨달음은 한순간에 찾아오지만 그 길을 열기 위해서는 무한한 수련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은 6개월 동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순서를 정하고, 계획성 있게 6개월 과정 [대마왕무찌르기] 작전을 구상해 보았다.
-대마왕무찌르기계획표.
1. 드래곤에게 연락.
2. 동기들에게 만일의 사태를 대비시감
3. 파멜라에게 마진법을 설차
4. 영지의 방어력 재점검.
5. 틈틈이 수련.
그리 실용성이 있는 계획은 아니다. 누구나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초적인 수준이다. 가르딘이 계획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혼자서 생각을 해봐야 더 나은 방법을 짜기 힘들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할 때였다. 가르딘은 계획대로 라이젠에게 방금 들어온 따끈하고 신선한 정보를 전했다.
“로드 나와라, 오버.”
-무슨일이냐?
통신구를 통해 라이젠의 짜증 끼가 배어 나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왕과의 결전 이후 빈둥빈둥 쉬고 있었던 라이젠이다. 드래곤은 마나의 축복을 받은 존재다. 쉬는 것이 마나를 확충하고,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쉬는 시간을 방해받은 것에 대한 짜증이었다.
“정보가 있습니다.”
-정보? 내가 무슨 정보가 필요하다고 연락질이야!
“대마왕이 부활한답니다.”
-뭐......?
“대마왕이 깨어난다고요.”
슈웅!
잔뜩 찌푸려진 인상을 짓고 있는 라이젠이었다. 좀 전에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순식간에 공간이동을 해왔다. 농담하는 것이라면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듯한 기세를 뿜어내었다. 엄청난 기세가 집무실 안을 휘몰아쳤다. 가르딘의 머리카락이 기세로 인해 팔랑거렸다. 드래곤의 포효라고 불리는 피어가 발생한 것이다.
“바람이 시원합니다.”
“농담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확실한 거냐?”
“농담이면 저도 좋겠지만 사실입니다.”
“누가 말해 줬냐?”
“드래곤 나이트가 지껄였습니다.”
가르딘은 드래곤 나이트에게 들은 대로 사실을 전했다. 설명을 듣고 난 라이젠은 암담한 표정이 되었다. 마왕의 능력을 한참이나 벗어난 대마왕이라는 존재를 어찌 상대할지 라이젠도 답을 내지 못했다. 현재로서 믿을 수 있는 놈은 얄밉지만 가르딘뿐이다. 드래곤이 인간을 의지하다니! 중간계를 굳건히 지키신 조상 드래곤을 볼 낯이 없는 상황이다.
“넌 어쩔 생각이지?”
“싸워야죠.”
“방법은 있냐?”
“지금부터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시간은 정확히 6개월 남았다. 그 기간 동안 대마왕을 상대할 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르딘은 적을 상대함에 있어서 정면대결을 고집하지 않는다. 희생을 줄이면서 쉽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꼼수라고 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대마왕을 상대하는데 정정당당한 대결을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겨야 했다.
“라이젠 님은 드래곤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방법을 모색하십시오. 저도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알겠다.”
라이젠은 오자마자 바로 돌아갔다. 레어로 돌아가서 전 드래곤을 다시 불러 모아야 했다.
가르딘은 혼자 고민하지 않았다. 동기들과 파멜라를 집무실로 불렀다. 20분쯤 지나고 난 후필리언, 갈라, 유타가파 멜라와 함께 집무실로 들어왔다. 가르딘은 동기들과 파멜라에게 숨을 돌릴 수 있도록 차를 먼저 대접해 주었다.
“차 마시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거고, 무슨 일이야?"
“듣고서 놀라지 마.”
“이미 놀랄 일을 너무 겪어서 펜만한 일에는 신경도 쓰지 않아.”
필리언, 갈라, 유타는 가르딘이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가르딘은 최대한 담담하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동기들과 파멜라의 안색이 점점 시퍼렇게 질려가고 있었다. 놀라지 않을 일과 놀랄 일이 따로 있다. 드래곤이 쳐들어온다고 했으면 그리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대마왕이다. 이건 정말 놀랄 일이었다.
“빌어먹을!”
“육시랄!”
“젠장!”
가르딘의 동기들다웠다. 가르딘과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욕이 튀어나왔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엄청난 일이라 공황상태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었다.
“어째 네 주위에만 있으면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그게 내 탓이라 이거냐!”
“원체 네가 재수 없잖아!”
“잡소리 그만 해라. 나도 머리 복잡하다!”
필리언도 답답해서 해보는 소리다. 마왕부활도 몇 만 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다. 그런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이나, 그것도 대마왕이 부활을 한다니! 짜증나는 것도 당연했다.
“파멜라!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으냐?”
“솔직히 답이 안 나오는 일이라 대답하기 어렵네요. 저는 대마왕은커녕 마왕도 본 적이 없어요. 마왕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마왕을 상대할 작전을 짜기란 어려워요.”
파멜라는 솔직하게 말했다. 사설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정확한 정황과 적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대책은 그다음부터 세우면 되었다. 가르딘은 파멜라가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마왕의 역량을 계략적으로 알려주었다.
“마왕은 드래곤들 모두가 덤벼들어도 이기기 힘들어. 그런 마왕들이 떼거리로 덤벼도 대마왕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최대한 담담히 말했지만 파장은 엄청났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도 지금보다 나은 상황일지 모른다. 너무나 암담해서 무슨 말을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파멜라도 잠시 동안 대답을 주저하고 있었다. 쉽게 답을 내기보다는 좀 더 고찰을 해보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녀는 보기보다 대담하고, 확실한 해답을 던져주었다.
“굉장하네요.”
“당연히 굉장하지.”
“하지만 상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이냐?”
가르딘이 화색을 띠며 물었다.
“새로운 마진법을 구상하고 있었어요. 그것이 완성된다면 대마왕의 능력을 반감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요.”
파멜라도 확답은 하지 않았다. 다만 가능성을 제시했다. 현재 파멜라의 진법성취는 천기의 능력에 범접해 있다. 또한 마법진과의 연계가 가능해진 상태라 천기자라고 해도 파멜라를 능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파멜라는 역천무한진을 재조합하여 순행의 원리를 밝혀내었다. 그로 인해 역천무한진의 원류를 파악해 내었다. 역천무한진의 원리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단서를제공했다. 역천무한진을 역으로 돌려 무한진을 구상할 수 있었다. 무한진은 말 그대로 무한했다. 또한 변화가 가능하다. 여러 가지의 진법의 장단점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공전절후한 공능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파멜라의 진법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
“대마왕의 부활지점이 어딘지 아시나요?”
“범위가 조금 넓어서 그렇지 대략적인 위치는 다크랜드 북동쪽의 평야지대라고 했어. 하지만 위치를 알아도 부활을 막을 방법은 없다는데. 어쩔 생각이냐?’
“마진법을 설치할 거예요.”
파멜라의 진법실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대마왕을 진안에 가두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대마왕의 능력이 드래곤 나이트가 말한 대로라면 충분히 뚫어내고도 남았다.
“대마왕은 어둠의 존재이잖아요. 빛의 기운, 즉 신성력과 항마력에 상대적일 거라 생각해요.”
“그렇겠지.”
당연한 소리였다. 이전의 공간분리마진법에 항마진을 가미하라고 한 것은 가르딘이었다. 그 점을 파멜라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역천무한진의 비밀을 밝혀내면서 새로운 진을 개발했어요. 이름은 우주무한천극진이에요.”
“이름만 들어보면 무시무시하구나!”
“이름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굉장한 진이에요. 이 진은 무한의 기운을 응축해서 흡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어요. 쉽게 설명하면 작은 기운을 수십 배로 증폭할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그다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단순히 기운을 증폭했다고 해서는 위력적일 수는 없다. 무언가 다른 획기적이고,창의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어둠의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성력과 항마력을 무한진의 축에 가미하는 거예요. 그럼 대마왕의 기운을 어느 정도는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음!’
파멜라의 설명을 들어보니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때마침 쉴라가 발키리영지에 있었다. 그녀가 도와준다면 신성력을 진의 축에 가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마진법이 그녀가 얘기한대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언제까지 만들 수 있겠니?"
“대단위 공역이기에 6개월 안에 끝내려면 다수의 인원이 필요해요.”
“드워프를 동원하면 되니, 걱정할 필요 없다.”
“문제가 하나 더 있어요.”
“뭔데?”
“진을 설치해도 대마왕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게 더 위험한 일이 될 거예요.”
대마왕이 진 안에서 부활하면 좋겠지만 다크랜드 북동쪽의 넓은 평야지역을 모두 진으로 둘러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누군가 대마왕을 진으로 유인해야 한다. 가르딘이 그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필리언, 갈라, 유타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필리언, 갈라, 유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내가 한다! 이 자식들아! 겁은 많아 가지고서”
“역시 가르딘이야! 네가 할 줄 알았다니까! 용감하다! 가르딘! 너는 대륙 최고의 영웅이 될 자질을 타고났어! 그렇지! 유타, 갈라!”
“으응!”
“물론이지!”
“냉정한 자식들!”
가르딘도 동기들에게 대마왕을 상대하라고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동기들의 실력이 그랜드 마스터 초급에 달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는 턱도 없는 소리다. 대마왕의 한 방감도되지 못한다.
“여기서 한 말은 비밀인 거 알지.”
“물론이다.”
“내일까지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음 날부터 시작한다. 알겠지.”
“알았다.”
“알겠어요.”
최대한 소수만 알고 있는 게 현재로서는 나았다. 특히 가르딘은 가족에게는 사실을 알리지 않을 생각이다. 최대한 아무도 모르게 대마왕과 결전을 펼칠 계획을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