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화 (89/93)

                 가르딘전기 14 건드리고고   @@[Title [email protected]@]

     @@[제1장 D-day 30일@@]

  대륙의 제국, 왕국, 공국의 황제와 왕을 비롯한 상위귀족들은 신성제국에서 보내온 공문으로 인해 내정이 발칵 뒤집어졌다.

  믿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내용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주신 라이니언의 신탁과 대신관, 성녀의 인증된 내용이다. 수긍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방관하여 멸망한다는 뜻과 일치했다. 남은 시간이 촉박했다. 대륙의 어느 곳에서 마왕이 강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비를 해야 한다. 각 국은 마왕을 막기 위해서 모든 국력을 총동원했다.

  또한 대륙 전체에 소문이 나지 않도록 정보를 단단히 단속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륙의 백성들이 사실을 알게 되면 폭동이 발생할 수 있다. 원활한 통제를 위해서는 정보의 단속이 필수였다.

  성녀는 마왕과 대적할 수 있는 영웅의 존재를 알렸다. 대륙의 모든 국가는 영웅의 존재를 믿어야만 했다. 마왕과 대결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드래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마왕의 능력은 무시무시했다. 인간이 마왕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절대적 강함 때문만이 아니다. 마왕이 가진 권능에 지배를 당하게 되면 인간은 인간이 아니게 된다. 그들 또한 마족이 되어 버릴 수 있다. 인간계가 마계가 되어 버린다는 뜻이다.

  대륙의 국가 중 가장 바쁜 곳이 신성제국이다.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신성력과, 성기, 성수다. 쉴라와 대신관, 신관들이 최대한 서둘러서 신성력을 병기에 주입하고, 성수를 만들었다. 최대한 집중해서 많이 만들어야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국, 왕국, 공국에서는 신성제국에 성기와, 성수를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또한 신관들의 파견을 원하고 있었다. 신성제국이 대륙의 2강에 속하기는 하나 각국의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기는 힘들었다. 더군다나 마왕의 강림이 시작되는 곳을 찾기 위해서 모든 정보력을 열어야 했다. 인포메드를 비롯한 대륙의 정보망을 총 가동했다.

  카이로만 제국은 병력의 집결 상황을 체크하고, 대규모 병단을 움직일 수 있는 식량과, 무기 등을 새로이 만들고 부대를 편성해 나갔다. 마왕이 강림했을 때 신속하게 대륙의 전 병력을 한곳에 모아 놓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카이로만 제국이 주도적으로 명령을 하여 왕국과, 공국에 전달하였다. 왕국과 공국도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서 기사와 병력, 무기를 지원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대륙역사상 최악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었다. 마왕의 강림을 막을 완벽한 준비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보장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그저 영웅이 출현하여 마왕을 막아 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전 대륙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가르딘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병력을 운용해야 한다. 마왕강림까지 남은 시간이 30일이다. 그 시간 동안 절반은 병력과 무기, 식량을 조율하고, 나머지 시간은 이동할 준비를 해야 한다. 기사단과 병력을 총동원하고, 진군하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가르딘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발키리기사단과, 크레이지드래곤창기병을 불렀다. 병력관리도 중요하지만 더 강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강제성을 부여하기로 했다.

  -단기간 마스터 되기!

  20일 만에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라야 한다. 또한 그에 준하는 실력을 키워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가르딘은 파멜라를 불렀다.

  “마나를 집중시키는 진법을 민들라고요?”

  “생각해 둔 것 없어?”

  “있지만 조금 위험해요. 마나응축의 미세한 조절이 쉽지 가 않아서요. 잘못하면 오러플로전에 걸릴 수도 있어요:’

  “어쩔 수 없다. 만들어.”

  “알았어요.”

  가르딘은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었다. 쉴라가 말하길 마왕이 부릴 수 있는 마족의 수가 족히 10만에 달한다고 한다. 마왕만 상대해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마왕을 상대하기 전에 마족들도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무조건 실력을 키워야 한다.

  가르딘은 전략과 전술을 구상하면서도 어둠의 길드가 행 한 짓을 이해하지 못했다.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마왕을 강림 하려고 한 이유부터가 설득력이 떨어졌다. 최소한 무언가 이득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흑마법사는 죽게 되면 마왕의 권속이 되어 영원한 어둠 속에 산다고 한다. 그렇다면 죽는 것도 그리 편한 선택이 아니지 않는가! 상식적이지 않는 놈들 이 아닐 수 없었다.

  ‘빌어먹을 놈들! 죽으려면 곱게 죽지.’ 

  어둠의 길드는 마지막까지 저주를 퍼붓고 사라져 버렸다. 솔직히 어둠의 길드가 보유한 전력만 있으면 제국을 세웠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한 힘을 마왕 강림에 모두 쏟아 붓다니 가르딘으로서는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공주랑 쉴라가 돌아가서 정신은 사납지 않은데.’ 

  전 대륙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쉴라는 성녀로서의 임무로 인해 가장 바쁘다. 마왕 강림이 한 달 남은 상황에서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대신관 이하 신관들의 신성력을 고양하고, 성기사들의 힘을 강화해야 했다.

  또한 전 대륙의 제국, 왕국, 공국에 사실을 알리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설득을 해야 했다. 스스로의 신성력도 수양해야 히는 상황에서 정신없이 바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시런 공주는 환궁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러쉬 황제가 빨리 황궁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황제가 직접 내린 명령이었다. 이전까지 돌아오라고 권유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이시런 공주가 비록 고집이 쇠심 줄 같다고 하지만 황제의 직접적인 명령을 거부 할 수는 없었다. 돌아가기 전 아이시런 공주는 쉴라와, 리니안을 의미심장하게 보았다. 눈빛에서 이상한 기류가 감돌았다. 그것은 쉴라와 리니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간의 미묘한 경쟁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물론 압도적인 승자인 라이나가 버티고 있기에 차마 말을 하지는 못했다.

  스필언과 미토스도 황궁으로 돌아갔다. 신성이 돌아가기 전 가르딘은 대련을 한번 해주었다. 어차피 이제는 스필언과 미토스는 가르딘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면 신성이 바보라는 소리다.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머리를 가진 녀석들이 모를 리 만무했다.

  짧은 시간 동안 스필언과 미토스의 실력은 일취월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물론 청출어람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아직까지 가르딘을 추월하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가르딘은 대련을 통해 스필언과 미토스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었다. 단순한 가르침일지 모르나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다다른 신성이다. 알아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는 김에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에게 잘 말해서 시간을 좀 벌어달라고 부탁했다. 이걸 부탁하기 위해서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가르침을 내려준 것이다. 덤으로 실력이 상승해서 마왕을 이겨주면 훨씬 고마울 것이다.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하루라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르딘이 연무장에 들어섰다.

  발키리기사단, 크레이지드래곤창기병이 줄을 맞춰 도열해 있었다. 가르딘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였다. 아직까지 발키리기사단과, 창기병은 마왕강림에 대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황제가 명령을 내려 마왕강림에 대한 비밀이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 놓은 상황이다. 30일 후에는 알게 될 사실이지만 미리 알려 불안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오늘부터 집중훈련을 시작하겠다. 이의는 없다. 죽을 각오로 수련을 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 내가 원하는 수준에 오르지 못할 시에는 기사자격을 박달하고, 창기병에서 축출해 버릴 테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가르딘의 단호한 결정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기사단과 창기병에게 지위의 박탈은 죽으라는 소리와 같았다. 죽기 살기로 훈련하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명령이었다. 기사들과 창기병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필리언, 갈라, 유타까지도 놀라는 기색이 완연했다. 가르딘이 평소에는 유들유들하고, 능구렁이 같아도 저처럼 말할 때에는 달랐다. 이전에도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한 가르딘의 진지함이었다.

  ‘재가 뭘 잘못 먹었나.’ 

  ‘심각한 일인 것 같다.’

  ‘불안한데.’

  가르딘은 단기속성 오러 마스터 되기 수련법을 기사단과, 창기병에게 알려주었다.

  -아침부터 정오까지 오러심법수련(마나집중마진법).

  -정오부터 저녁까지 검법, 창법수련.

  -저녁부터 밤까지 대련, 근력수련.

  -취침 2시간(별도:심법수련).

  하루를 쉴 시간도 없이 수련으로 빼곡하게 계획을 세웠다. 몸이 남아나지 않는 수련법이었다. 하루 2시간도 자지 말라고 했다. 취침 대신 심법으로 피로를 풀라고 강요하고 있었 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어설픈 마음가짐으로는 성취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을 명백히 전했다.

  “지금이라도 수련에 빠지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와라."

  가르딘의 명령을 거절할 기사단과, 창기병은 없다. 발키리 영지의 수호신이자 위대한 기사인 가르딘이다. 발키리영지 에서 가르딘이 법이고, 신이었다.

  “그럼 바로 시작한다.”

  “충!”

  가르딘은 명령과 동시에 수련을 시작했다. 원래부터 부단한 단련을 해온 기사단과 창기병이다. 오늘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마음가짐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가르딘은 기사단과 창기병의 수련을 지시하고, 감독하면서 필리언, 유타, 갈라에게 병력운용상황을 다시 확인했다. 

  “당장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지?’ 

  “발키리영지와 헥토르영지에서 병력을 치출하면 6만 정도는 되는데.”

  “가용인원이라는 말이지.” 

  “그래.”

  “그럼 6만 병력의 최적화에 들어간다.” 

  “뭐? 너 설마 전쟁 하냐?” 

  “이유는 묻지 마 이따가 따로 얘기해 줄 테니.” 

  가르딘은 병사들을 최정예로 만들기로 했다. 마족과의 대결에서 병력의 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대륙 전체의 병력수로 따지면 총 1천만은 될 것이다. 수만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병력 한 사람당 실력을 키워야 한다.

   또한 전체 병법과 전술에 맞는 운용이 필요하다. 소수의 강적을 상대하기 위한 전법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킬 것이다. 그에 따라 영지의 자금운용을 모두 군자금과 병기, 군량미에 투입해야 했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가르딘의 결정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기사단과 창기병의 수련도 그렇지만 대규모 병력운 용까지, 대륙전쟁을 할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 다.

  채채챙! 타타탕!

  발키리영지의 기사단과 창기병의 실력은 다른 영지의 수준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했다. 인간을 상대한다면 절대로 지지 않을 전력이다.

  하지만 상대는 마족이다. 결코 방심할 수 없다. 가르딘은 검법과, 창법의 수련을 위해서 직접 시범까지 보여 주었다.

  수련은 고되고,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었다. 기초적인 훈련이 가장 힘들다.

  하지만 실력증진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가르딘은 기본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혹독한 수련을 중시했다.

  수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가르딘은 동기들과 투르를 따로 불러 지하연무장으로 데리고 왔다. 아직은 기사단과 창기병에게는 밝힐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알아봤자 수련하는데 방해만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필리언이 대표해서 물었다. 가르딘은 지체하지 않고 대답해 주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놈들은 알고 있을 필요성이 있었다.

  “마왕이 강림한다.”

  “응?”

  다들 가르딘이 농담한다고 생각했는지, 순간적으로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들이었다. 마왕이 강림한다는 것을 선 뜻 믿어 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동기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뻥치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표정들이다.

  “농담이지!”

  “나도 농담이었으면 좋겠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가르딘이다. 가르딘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동기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제 조금 생활이 윤택해지고, 삶의 여유를 느끼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마왕의 강림이라니 믿고 싶지가 않았다.

  “설마?”

  “설마가 드래곤도 잡더라.”

  “그럴 수가!”

  한동안 공황상태를 벗어나기 힘든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태어나서 이제까지 경험해 본 어떤 일보다 놀라웠다. 인정하기 싫은 상황이지만 가르딘에게서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동기들은 물었다.

  “언제냐?”

  “한달.”

  “뭐어!”

  이제는 놀라기도 지친다. 마왕강림이 고작 한 달 남은 상황이란다! 이제는 정말 빼도 박도 못 하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한숨아 터져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자들이라도 더 만나는 건데!”

  “젠장 술 끊으려고 했는데 세상이 도외주지는 않는구나!” 

  “괜히 뼈 빠지게 돈 모았잖아! 젠장!”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자제한 것들이 안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 많이 자제하면서 살지도 않은 인간들이 말이다. 누가 보면 100년 동안 면벽수련하는 고승인 줄 착각할 것이다.

  “그만 한탄하고, 지금부터 하는 말 잘 들어.” 

  “뭔데?”

  “너희들도 그랜드 마스터에 들어줘야겠다.”

  “응?”

  그랜드 마스터가 뉘 집 애들 이름처럼 쉽게 붙일 수 있는 것 아니고,갑자기 그랜드 마스터가 되라는 가르딘의 황당한 말에 동기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오러 마스터만 해도 어느 곳을 가도 대접 잘 받을 수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 는 꿈에서나 가능할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하고 있는 가르딘이 이해되지 않았다. 

  “장난 하냐?”

  “아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물론.”

  “이 세상에 그랜드 마스터가 어디 있어!”

 현 대륙에 최상급에 이른 오러 마스터도 2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기들은 가르딘의 당연한 태도에 좀 전에 얘기한 마왕강림이 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있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스필언과 미토스는 지금 그랜드 마스터에 올라섰다.”

  “정말!”

  “그래.”

  필리언, 갈라, 유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마 전부터 스필언과 미토스의 경지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졌는데, 벽을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경지를 파악하려면 그보다 훨씬 높은 경지를 가져야 한다.

  “너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냐?"

  “나도 그랜드 마ᅵ스터니까."

  쿨럭!

  헛기침이 나오고 말았다. 가르딘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스스로를 그랜드 마스터라고 주장했다. 동기들은 한평생 살면서 오늘처럼 놀라기도 처음이었다. 마왕이 강림한다지 않나, 신성이 그랜드 마스터에 올라섰고, 수십 년 동안 함께해 온 가르딘도 그랜드 마스터라고 하고 있었다. ‘어, 그러냐.’ 라고 쉽게 믿는다면 그건 미친놈이었다.

  “미친 것 아냐?”

  “아니.”

  “그럼 네가 우리 넷을 다 상대하고도 남겠네.”

  “당연하지.”

  “머리에 과부화가 걸린 것 같으니 신관한테 가봐라!”

  씨익!

  가르딘이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당장 증명해 줄 테니 걱정 마라.”

  “뭘?”

  “실력을.”

  슈슉!

  가르딘의 신형이 사라졌다. 바로 눈앞에 있던 가르딘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마법을 익혔을 리 없으니 공간을 이동한 것은 아니다. 필리언, 갈라, 유타, 투르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가르딘의 신형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뭐야, 이게?”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필리언은 귀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후우우!”

  화들짝!

  여자가 은밀하게 입김을 부는 것도 아니고, 가르딘이 귀에 입김을 불자 소름이 돋은 필리언이었다. 필리언이 등을 돌려 가르딘을 찾으려고 했는데 또다시 사라졌다. 유령이 곡할 상황이다. 주변에 있어야 할 가르딘의 신형을 쫓을 수가 없었다. 오러 마스터 급 기사들 3명과 그에 버금가는 괴물이 빤 히 눈뜨고 병신 되는 순간이다.

  “젠장!”

  “어디 있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르딘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기들과 투르는 앞에 나타난 가르딘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떻게?”

  “그랜드 마스터니까.”

  동기들은 부정하지 못했다. 오러 마스터의 실력자가 눈으로 쫓지도 못하는 속도를 지녔다는 것은 상상을 불허하는 경지에 다다랐다는 뜻이 되었다. 가르딘은 고속으로 신형을 움직였다. 그것도 필리언, 갈라, 유타, 투르의 사각지역으로만 신형을 움직여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지하연무장이 크긴 해도 사각지역이 있을 리 만무했다. 말도 안 되는 빠르기였다. 속도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동기들은 가르딘의 놀라운 실력에 합죽이가 되었다. 카이로만 대제의 실력에 버금가는 존재가 가르딘이라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솔직히 마왕강림보다 더 놀랐다.

  “이제 인정하지.”

  “그... 래.”

  “그럼, 인정한 것으로 알고, 시작한다.”

  “뭘?”

  “알면서 왜 그래!”

  파팟!

  가르딘의 번개 같은 손속이 작렬했다. 귀신같은 점혈수법이 펼쳐졌다. 동기들과 투르는 그 자리에서 석상처럼 몸이 마비되었다. 가르딘은 점혈과 동시에 무상의 기운을 주입했다.

  “조금 아플 거야.”

  기운을 집어넣어 오러의 영역을 넓히는 작업을 수행할 것 이다. 개척되지 않은 길을 열고, 확장하는 작업이 그리 만만치 않다. 고통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동기들은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싶어도 아혈이 점혈되는 바람에 입을 열 수 없는 상태였다. 가르딘은 망설이지 않고 천룡무 상신공의 기운을 동기들과 투르의 단전에 직접적으로 부여 했다. 그랜드 마스터의 압도적인 기운이 필리언, 갈라, 유타, 투르의 단전을 통해 안으로 스며들었다. 무지막지한 기운이라 고통이 장난 아니었다. 극악한 고통으로 인해 비명을 내려다가 가르딘의 말에 억지로 닫았다.

  “입을 열면 기운이 터져 나와 오러플로전에 걸릴 수도 있거든. 입 열지 마.”

  [진작 말해야 할 것 아니야!]

  [이게 무슨 조금이야!]

  [이 자식 우리를 죽이려는 것 아냐!]

  ‘크윽!’

  속으로 왕창 욕을 하는 동기들이다. 그나마 투르는 안간힘을 쓰며 기운을 버티고 있었다. 전신에 힘줄이란 힘줄은 모두 튀어나온 상태다. 눈까지 충혈되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온몸에 오러가 가득 차서 이리저리 요동을 쳤다. 작은 점에서 시작하는 물결이 아니라 처음부터 대형 해일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르륵! 주르륵!

  동기들과 투르의 몸에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축축이 젖어오는 것은 땀뿐만이 아니었다. 땀을 통해 몸 안에 오랫동안 쌓인 노폐물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가르딘은 기운을 집중하고 난 후 뒤로 물러섰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한다. 가르딘은 품에서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낸 후 동기들을 관찰했다. 위험한 상황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으으윽! 부들! 부들!

  고통을 참고, 몸 안의 기운을 통제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동기들은 카이만 오러 심법을 운용하여 기운을 통제하고, 투르는 광천패황신공으로 내공을 조율하였다. 몸에서 잔 경련이 맹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여 내공의 흐름을 놓치면 한순간에 오러플로전에 이를 수도 있는 위험한 고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기운을 통제하기 위해서 이를 악물었다.

  ‘개자식! 벗어나기만 해봐!’

  ‘으윽!’

  고통도 보통 고통이 아니다. 더군다나 고통이 가속되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막막함은 겪어보지 않은 자는 알 수 없을 정도로 고약했다.

  날이 저물고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까지 필리언, 갈라, 유타, 투르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동기들이 고생하는 시간에 가르딘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끊임없이 무극칠검식의 연환결을 되새기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다시 시작을 뜻한다. 연환결의 시작이 바로 끝을 향해 내달리는 길이 될지 모르겠군.’

  무극칠검식의 2초식을 융합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가르딘은 노력했다.

  하지만 가르딘의 경우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노력할수록 실력 상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집착과 조급함이라니!’

  알면서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는 상황이다. 마왕의 강림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조급한 가르딘이다. 또한 가족에 대한 가르딘의 사랑이 무공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나 가르딘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무극의 기운은 조급함으로 다룰 수 있는 만만한 기운이 아니다. 천천히 순리에 맞게 깨달아 나가야 뜻을 이룰 수 있다.

  ‘쉽지 않군.’

  그러나 포기는 하지 않았다. 가족과 모두를 위해서 가르딘은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제까지 이루어 놓은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만전을 기했다.

  날이 밝아왔다.

  우우우우웅! 

  동기들과 투르의 몸에서 광휘가 번쩍였다. 몸 안에 스며든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가르딘이 주입한 무상의 기운이 용트림을 하며 마지막 고비를 향해 내달렸다. 동기들과 투르의 몸이 심하게 들썩였다.

  휘이이이잉!

  동기들과 투르의 몸에서 기운이 발산되어 지하연무장 안을 휘감았다. 광대한 기운이 표출되었다. 가르딘은 힘의 여파가 분출되는 마지막 고비가 다가왔음을 체감했다.

  가르딘이 동기들과 투르에게 위험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수준이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강해지는 녀석들이 있다 보니 노력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실제적으로 필리언, 갈라, 유타, 투르의 실력은 오러 마스터 상급에 다다라 있었다. 과거에 비하면 괄목상대할 만한 성취였다.

  가르딘은 삼신기를 찾고 돌아왔을 때 동기들과 투르의 성취에 약간은 놀랐었다. 불과 몇 달 만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헥토르 욍국과, 어둠의 길드가 쳐들어 왔을 때와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녀석들이었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동기들과 투르는 굉장한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쩌저저적!

  동기들과 투르가 뿜어내는 기운에 지하연무장의 바닥이 갈라졌다. 응축된 기운이 거세지다가 점점 잦아 들어갔다. 무상의 기운을 몸 안으로 흡수하고, 갈무리를 한 것이다. 기운이 서서히 잦아들며, 평온해졌다.

  번쩍!

  동기들과 투르가 눈을 떴다. 밤새 기운을 컨트롤하고, 집중하느라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다. 그에 반해 몸 안에서 꿈틀대는 충만한 기운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모든 노폐물들이 빠져나오면서 몸의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가르딘을 포위했다.

  “인마! 미리 언질을 줘야 할 거 아냐?"

  “그냥 모르고 당하는 게 나아:’

  “젠장! 우리만 당할 수는 없지!”

  “각오하는 게 좋아.”

  기연을 줬는데도 궁지에 몰린 가르딘이다. 그렇지만 가르딘은 태연했다. 비장의 카드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냄새 안 나냐?”

  “뭔 냄새?”

  사람의 후각은 적응의 산물이다. 가장 빨리 적응을 하며, 마비가 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아무리 지독한 냄새도 계속 노출이 되면 냄새를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크크크!”

  가르딘이 음흉하게 웃었다. 불길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는 동기들이었다.

  “너희들 똥 쌌어!”

   “뭐... 라고!”

  그제야 엉덩이가 묵직한 것을 깨달은 동기들이다. 나이 마흔에 바지에 실례를 한 것이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내공을 주입하고 노폐물 배출되는 시기에 괄약근의 힘이 약화되었다. 전신에 힘을 주는데 괄약근만은 힘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항문을 통해 노폐물이 배출되었다. 가르딘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가르딘이 품안에 간직한 영상저장마법구를 꺼냈다.

  “너 설마?"

  “내가 그랬잖아, 설마가 큰일 낸다고.” 

  “그거 이리 내! 아니면 가만 안 둔다!” 

  “어쭈, 지금 당장 너희들 중 나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텐데.”

  분하지만 사실이다. 충만한 기운과 최적의 몸 상태인 것은 사실이지만 단련해야 한다. 지금 당장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개개지 마라.” 

  부들! 부들!

  가르딘이 치고 싶으면 한번 쳐보라는 식으로 얼굴을 쭈욱 내밀었다. 주먹을 부르는 얼굴이다. 

  하지만 칠 수 없는 동기들은 분을 삭이며 주먹을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치사한 놈!”

  “쑥스럽게 그런 칭찬은 하지 마라.”

  “젠장!”

  가르딘과 동기들 사이에 치사함은 칭찬이다.

  파멜라가 밤새 고민을 한 후 저택의 내부, 사람들의 출입 이 적은 장소에 진법을 설치했다. 마나를 응집하는 진법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마나응집력과, 분포도, 파생력과 위력을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 마나응집력은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자첫 잘못하면 마나응집력이 극의에 이르러 폭발할 수도 있다. 또한 흡수력이 강할 경우 주변의 기운까지 흡입하게 되어 진법 주변이 사계가 될 수 있었다. 역천무한진을 변환하고, 흡혼진을 가미하였다. 또한 안젤리카에게서 배운 마나마법진을 활용하였다. 모든 진법의 장단점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창안을 할 수 있어야 가능 한 영역이다. 파멜라가 아니라면 하룻밤 만에 이만한 작업을 완수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차가 조금 나올 것 같은데.”

  시간이 된다면 연구를 조금 더 해보고 싶은 파멜라였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대로 되지는 못했다. 지하연무장 안에서 나온 가르딘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가르딘은 진법 설치를 완비하고 난 후 망설이고 있는 파멜라를 보았다. 

  “왜 그러지?”

  “위험할 수도 있어서요. 꼭 이렇게까지 서둘러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나요?”

  “물론.”

  “그래도 위험한 것은 부정할 수 없어요”

  “우선 개진을 해봐. 내가 테스트를 해볼 테니 그에 맞춰서 준비를 하면 되잖아.”

  “알았어요.”

  파멜라는 진법의 각 축에 마정석을 올려놓았다. 진법의 오행과 사상, 구궁, 팔괘를 파악한 후 축을 만들었다. 9개의 축에 마정석을 올려놓자 진이 가동되었다.

  우우웅!

  진법의 외부로 퍼져 나오는 기운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작은 파동이 대기를 미세하게 흔들었을 뿐이다. 가르딘은 주변의 기운을 흡입하는 강도를 체크해 보았다. 기감의 영역은 가르딘이 가장 뛰어나다. 작은 흐름도 가르딘의 영역 안에서 감지가 가능했다. 마나를 흡입하는 장소이기에 사람들의 출입이 적어야 한다. 잘못하면 진의 영향으로 사람의 기운까지 흡입될 수 있었다. 

  “외부에 미치는 영향은 그라 크지 않군.”

  “다행이네요.”

  “그럼 이번에는 안을 체크해 보겠다.”

  가르딘은 망설이지 않고 진법 안에 들어갔다. 생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가르딘은 기운이 변화하는 것을 확인해 보았다. 대기의 기운을 흡입하여 기운을 응집하고 있었다. 기운은 대기 중에 퍼진 마나이지만 선천의 기운과 흡사했다. 파멜라가 알고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선천의 기운을 제대로만 오러로 정진할 수 있다면 빠른 성취가 가능할 것이다. 후천적인 기운과 선천적인 기운의 차이는 순도다. 같은 모양과 같은 크기, 같은 성질의 기운이라고 해도 위력 은 같지 않다. 운기행공을 통해 기운을 흡입하고 정제하여 체내에 쌓는데 선천의 기운과 가까울수록 비슷한 운용을 해도 그 위력은 훨씬 더 강력하다.

  ‘음!’

  가르딘은 흡입된 기운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파악했다. 기운이 유동적이어서, 강약을 반복했다. 오러심법을 수련 중에 오러의 유동성은 대단히 위험하다. 잘못하면 오러플로전에 걸릴 수도 있었다. 운기행공은 미세한 기운의 파동에서 영향을 미칠 만큼 세밀한 수행이다. 운기는 정해진 운기 행로를 통해 흡입되어 나아간다.

  나아가는 기운을 갈고닦아 점차적으로 영역을 넓히고 확장한다. 이 과정이 제일 조심스럽고, 위험한 상태다. 그러한 과정에서 갑작스러운 기운의 변화는 파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수련자의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섰다면 모를까, 오러 마스터도 되지 못한 기사들과 창기병에게는 위험한 조건이었다.

  가르딘은 오러의 강약을 기운을 발산하여 유동적으로 조 절을 해보았다. 가르딘은 외부에서 흡입된 기운을 본신의 기운으로 억눌렀다.

  ‘이건 아니군.’

  기운을 발산하여 조절하게 되면 선천의 기운이 제약을 받게 된다. 방법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발산이 아니라 흡입을 통해 기운의 유동성을 조절하는 것이다. 천룡무상 신공을 운용하여 기운을 흡입한 후 일정시간 동안 간격을 조 절해 보았다.

  그러자 기운의 파동이 전보다는 일정해졌다. 문제는 가르딘이 계속 이곳에서 조절을 해주어야 한다. 오러수련에만 모든 시간을 투자할 수 없는 가르딘이다. 일정이 바쁜 관계로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진법 밖으로 나온 가르딘은 파멜라에게 안에서 느껴진 문제점을 설명해 주었다.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서둘러 계산을 다시 해서 보완을 해야 했다.

  “역시 기운을 조절하는 게 맘처럼 안 되네요. 영주님이 느끼신 대로가 맞을 거예요. 외부에서의 변화도 조금씩은 달랐거든요.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으니 다시 만들어야겠어요.”

  “그럴 시간이 없다.”

  “하지만 이대로는 기사들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기사들과 창기병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다.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가르딘은 동기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가 동시에 오러를 흡수하여 유동적인 기운을 조절한다면 수련이 가능한 수준은 될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가르딘과 동기들이 번갈아 가면서 마나의 유동성을 조절하고, 파멜라가 진법을 보완하면 되었다. 가르딘은 파멜라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새로운 방어 진법을 만들지 않았니?”

  “이번에 새로운 마진법을 만들기는 했어요. 시험단계이기는 하지만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거예요.”

  파멜라는 진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녀는 지닌바 천재성을 모두 발휘하여 마진법을 만들어 내었다. 가르딘의 표정에서 안도감이 엿보였다. 파멜라가 저처럼 확신하고 있는 마진법이라면 마족이 침입한다고 해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방어진법을 빠른 시간 내에 저택에 설치해 줘.” 

  “알겠어요.”

  “그리고, 진법에 항마의 기운을 가미했으면 해.”

  “그럴게요.”

  마족이라면 항마의 기운에 상극이다. 자체적인 기운만으로도 마족의 접근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 신마의 세상에서 이르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였다. 가족의 안정이 보장되어야 가르딘도 밖에 나가서 안심하고 모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발키리영지에 가족을 두고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가르딘으로서는 당연한 걱정이었다.

  “아마 설치되면 영주님도 놀라실 거예요.”

  “기대하지.”

  파멜라는 역천무한진을 변환하여 새로운 방어진을 만들어내었다. 역천무한진은 정말 무한의 진법이었다. 아직까지도 역천무한진의 모든 역량을 파악하지 못했다. 만약 확실한 요체를 파악만 한다면 마왕이 온다고 해도 뚫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각 행정관들에게 연락해서 군량미를 되도록 많이 비축해 놓으라고 전해.”

   “그렇게 할게요.”

  시기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군량미를 비축해 놓고, 만일에 사태를 대비해야 했다. 최악의 순간에는 돈보다 식량이 더 필요하다. 되도록 외부로 방출되는 식량을 차단해야 했다.

  가르딘의 수련명령에 의해 기사들이 마나응집마진법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사들과 창기병은 마진법에 들어서는 순간 피부로 느껴지는 마나에 절로 감탄을 터뜨렸다. 대기 중의 마나를 느끼기 위해서는 오러심법을 운용해야만 한다. 오러심법을 운용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마나가 느껴진다는 것은 마나가 충만하다는 뜻이었다. 기사들과 창기병은 지체하지 않고 오러심법을 운용했다.

  “무리하게 많은 기운을 흡입하지 마라, 아직 오러의 영역이 넓지 않다. 그러니 3일 동안은 익숙해지는 데 주력해라.”

  “예!”

  기사들과 창기병에게 충고를 한 후 가르딘도 진법의 한 축에 자리를 잡고 기를 흡입했다. 불안정한 기운의 파장이 변화하는 것을 가르딘이 억제를 했다. 오러심법을 수련하는 동안 필리언, 갈라, 유타에게 병력을 출하고 수련시키도록 부탁해 놓았다.

  오전에 오러심법을 끝내고, 기사들과 창기병은 실전과 같은 대련을 치렀다. 대련 중에 입는 상처는 대량의 포션이 있기에 얼마든지 회복이 가능했다. 며칠 동안은 익숙하지 않아 고생을 했지만 기사들은 오러의 수련이 바탕이 되어 기량과 회복력이 나날이 향상이 되었다.

  불과 4일 만에 발키리영지는 전시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했다. 파멜라가 미리 구축해 놓은 거미줄 같은 행정영역이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로 인해 전쟁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조성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D-day 18일.

  채채채챙!

  사사사삭! 꽈과과광!

  공간과 공간을 가르는 검과 창의 궤적이 보이지도 않는다. 숨 돌림 틈 없는 공방전이 지속되었다. 일반적인 대결이 아니었다. 공간이 탁 트인 장소에서 벌어지는 초유의 대결이 다. 검격이 지나간 자리는 여지없이 부서져나갔다. 또한 창격이 부딪친 곳은 흔적도 없이 박살이 났다.

  1 대 4의 불리한 상황처럼 보이지만 가르딘은 무리 없이 검격과 창격을 막아내었다. 가르딘과 동기들, 투르는 4일에 한 번씩 생사대결을 펼쳤다. 다크랜드 안에서 벌어지는 대결 이라 실력을 감추지 않았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가르딘의 놀라운 검술과 위력적인 검력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가르딘의 도움으로 인해 그랜드 마스터 급의 오러를 소유하게 되었다.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12일 동안 필리언, 갈라, 유타는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그 결과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딘과의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괴물같은놈!” 

  “마족은 나처럼 물렁하지 않아! 죽기 싫으면 실력을 높여!”.

  “말처럼 쉬우면, 진즉에 네놈을 때려줬겠다!”

  처음부터 봐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강한 줄은 몰랐던 동기들이다. 가르딘의 실력이 새삼 무서울 지경이었다. 이제는 얼마나 강한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세상 어디를 가도 가르딘보다 강한 녀석은 없다는 생각이 되었다. 그랜드 마스터 급의 실력자 4명이 쩔쩔매는 상대를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보니 이상한 것이 있었다. 이 정도로 강한데도 불구하고 세상에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을까라는 공통적인 궁금증이 발생했다.

  “너 이만한 실력이 있는데 왜 감춘 거냐?"

  “그냥! 귀찮아서!”

  가족들과 놀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럴 시간은 가르딘에게 없다. 지금도 가르딘은 남는 시간 대부분을 가족들과 보낸다.

  “뭐? 이런 미친놈! 역시 넌 미친놈이야!”

  “그러는 너희들은?”

  “그야 우리도 귀찮으니까.”

  “같은 미친놈끼리 오늘 죽어 보자!”

   “오냐! 죽자!”

  가르딘의 검격이 더욱더 맹렬하게 변했다. 대련할 때마다 강하게 더 밀어붙여서 동기들의 실력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그로 인해 동기들의 실력이 점점 그랜드 마스터 초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투르의 성장이었다. 광천패황신공의 극의를 점점 깨닫기 시작하면서 완벽한 금강불괴지신에 달해졌다. 잠재된 역량이 누구보다 뛰어났던 투르였다. 모든 힘이 개방되자 상상을 불허하는 성취를 이루었다. 광룡창법에 서 펼쳐지는 창법의 위력이 산을 부수고도 남았다. 일신우일신도 투르에게는 부족했다.

  -뇌전폭풍도법-제4절초-참풍멸마.

  -광룡창법-극강패력-광룡폭살.

  필리언, 갈라, 유타의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2미터 이상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뇌전폭풍도법의 최후초식이 그물망처럼 뻗어 나와 검강의 물결을 이루었다. 투르의 창에서 오러 랜스(창강)가 형성되어 광풍처럼 쏘아져 나갔다. 동기들과 투르 모두 일격필살의 최강초식을 펼쳐내었다. 마를 멸하는 극강의 기운과, 사나운 맹룡이 용트림을 하는 것 같은 형상을 이루었다.

  가르딘은 주변을 가득 메후는 검강과 창강을 보며 천룡검을 곧추 세웠다. 필살의 절기를 보여준다면 가르딘도 그에 준하는 답을 해주어야 했다. 어설프게 상대해서 자만심을 채워줄 시기가 아니다.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되지.’

  마족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드래곤에 필적할 수준일 것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필리언, 갈라, 유타, 투르가 강해 져야 가르딘도 안심을 할 수 있었다.

  -무극칠검식-제2절초-일격참뢰.

  힘과 속도의 싸움이다. 가르딘은 모든 것에서 월등하다는 것을 보여주어 실력 상승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푸아아아앙! 쫘아아악!

  검강과 창강이 가르딘의 일격에 허무하게 잘려나갔다. 참풍멸마와 광룡폭살을 잘라낸 일격참뢰의 기운이 빗살처럼 뻗어나가 동기들과 투르의 검과 창에 철벽을 두드리는 듯한 충격을 주었다.

  쿠우우웅!

  철퍼덕! 데굴! 데굴!

  충격을 받고 공중으로 4미터나 솟아오른 동기들과 투르가 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서 굴렀다. 바닥을 몇 바퀴나 회전한 후 신형을 간신히 멈춘 동기들과 투르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허탈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최강의 위력이기에 어느 정도는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가르딘은 단 일격에 혼신을 다한 합공을 쪼개 버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내상까지 입혔다. 

  “야! 인마! 너 우리 죽이려고 작정했지!” 

  “고작 그 정도에 당할 줄은 몰랐다.” 

  “이... 걸 그냥!” 

  “그냥 뭐! 어쩌려고.” 

  히죽!

  이죽거리며 웃는 가르딘의 모습에 속이 부글거리는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일검이라도 시원하게 날려 주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금세 동기들과 투르는 허탈한 감정을 토해내었다. 다시 혹독하게 수련해서 반드시 가르딘의 웃는 얼굴을 우는 얼굴로 바꾸어 주고 싶었다. “젠장! 다시 하자!”

  “아아! 어서 덤벼!” 

  까딱! 까딱!

  가르딘의 검지를 건방지게 까딱거렸다.

  “저 개 진상을 그냥 두면 우리는 기사가 아니다!”

  이얍!

  기합성과 함께 또다시 사투가 벌어졌다. 동기들과의 우정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생사를 가르는 필사적인 검격과 창격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사력을 다하는 동기들과 투르에 비해 여전히 가르딘은 여유가 넘쳤다. 그것이 배알이 꼴리는 동기들이었다. 가르딘이 계속 유세 떠는 꼴은 죽어도 보고 싶지 않는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이놈아! 제발 좀 맞아라!”

  “그렇게 느려서야 어디 맞겠냐!”

  “이게 어디가 느려!”

   슈슈슈슈슈슝!

  반 호흡에 30여 검에 달하는 검격을 날릴 수 있는 필리언이었다.

  그런데도 가르딘의 신형을 건드리기는커녕 스치지도 못했다. 결코 느리다고 할 수 없는 검속임에 틀림없지만 대결은 상대적이다. 상대가 강하면 그에 걸맞은 수준에 다다라야 한다. 그것이 승자의 진리다. 가르딘은 승자의 진리를 확인하며 동기들을 들들 볶았다. 간간이 염장질도 서슴지 않는 센 스룰 발휘해 주었다. 실력이 상승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라이젠의 레어는 고요하면서도 분주했다.

  라이젠은 마음을 다스리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카라이라스로부터 인장 수여를 위한 의식을 준비하라는 전언을 받았다.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카라이라스는 더 이상 드래곤로드의 자리를 맡고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자리를 인계받아야 하는 라이젠으로서는 마음을 비우고, 차분하게 수양을 쌓아야 했다. 드래곤로드의 자리를 받는 일이다. 불경한 마음을 모두 쏟아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제갈때가됐구나.”

  “아빠.”

  라이젠의 시선이 안젤리카에게 향했다. 그동안 손 한 번 대지 않고 곱게 잘 키운 딸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라이젠은 마음이 평온해졌다. 안젤리카만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라이젠이 드래곤로드의 인장을 받을 결심을 한 것도 모두 안젤리카 때문이다. 카라이라스의 힘과 인장의 권능을 받지 않는 이상 마왕과의 대적은 불가능하다. 카라이라스의 경우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길지 않았다. 실질적인 전투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드래곤로드가 움직이지 않으면 드래곤의 통솔이 어려워진다. 대륙에 얼마 남자 않은 드래곤이 죽어 가는 것을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처지다. 대륙이 위험하면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안젤리카의 미래가 어둡게 된다. 항상 밝고,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고 싶은 아비로서는 당연한 의무였다.

  15일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마음을 수양한 라이젠이 안젤리카를 대동하고 레어를 나서려고 할 때였다.

  어디선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아무 때나 주인 허락 없이 나타나는 무례한 놈이 있었다. 드래곤레어를 제집 드나들 듯이 거리낌 없이 들락날락했다.

  “넌 또 무슨 일이냐?”

  “타이밍도 못 맞춰서 마왕강림을 시킨 장본인을 잠시 보러 왔습니다만.”

  “뭐야! 이걸! 옥 혈압이!” 

  혈압상승으로 뒷골을 잡은 라이젠이었다.

  가르딘의 이죽거림에 15일간의 수양이 저 멀리 허공으로 날아가 분쇄되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세 개의 달이 붉게 변하는 날, 라이젠이 브레스를 쏘는 시기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마왕강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라이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이젠이라고 해서 마왕을 강림시키고 싶었을 리 없지 않은가! 소모되어버린 시간을 다시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마왕 강림의 책임이 전적으로 라이젠에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르딘은 장난 삼아 던진 말이지만 라이젠의 심기는 언짢아졌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지금 바쁜 일이 있어서 외출해야 한다. 근데 넌 왜 온 거냐?”

  “대책이 있나 해서 와봤습니다.” 

  가르딘은 마왕강림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으면서도 드래곤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일단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우군이 드래곤이다. 무언가 대책이 있지 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대책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대책!” 

  “배짱만 부린다고 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왕 이렇게 된 것 중간계를 위해서 전 드래곤을 통솔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래서 지금 외출하는 거다. 뒷북치지 말고 어서 비켜 라.”

  “오오오오! 그럼 로드가 되시는 겁니까!” 

  “그렇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별로 축하받고 싶지 않은 라이젠이다. 가득이나 좋지 않은 상황에서 목숨을 걸어야 히는 자리다. 막중한-자리이며 부담이 되는 자리다. 더군다나 가르딘의 축하 따위는 받고 싶지도 않다. 이상하게도 가르딘이 좋게 말을 하면 뒤끝이 좋지 못했다.

  “네 꿍꿍이가 뭔지 모르지만 절대 안 된다. 아니 무조건 그냥 안 돼!”

  “제게 무슨 속셈이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의를 위해 불철주야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는 저로서는 무척이나 억울하고 소원한 말씀이십니다.”

  “행여나 네가 잘도 그렇겠다.”

  “하아아!”

  가르딘이 한숨을 쉬며 안타까운 탄성을 토해내었다. 보고있는 하여금 절로 안타깝게 만드는 절정의 연기력을 뽐내었다. 보고 있던 라이젠도 가르딘을 알지 못했다면 깜빡 속을 뻔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인연의 세월이 얼마인데, 이다지도 신뢰를 쌓지 못했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얼씨구!”

  “모든 인연은 전생에서 시작해서 현세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세월의 고리라고 합니다. 모든 고난과 시련을 겪고 맺어진 인연의 고리를 어찌 그리 쉽게 여길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지만 저는 라이젠님을 절대 원망하지 않습니다. 모 든 것이 저의 불찰이니 말입니다.” 

  “지랄을 해라!”

  누가 누굴 원망한단 말인가! 라이젠은 되도 않는 말을 태연하게 내뱉는 가르딘이라는 인간의 머리를 열어 보고 싶은 강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시끄럽고 본론만 말해.” 

  “정 그러시다면 본론을 말하겠습니다.” 

  “바쁘니까! 빨리 말해.”

  “아! 정말 말하려고 하고 있는데! 왜 거기서 초를 칩니까!”

  “아, 몰라. 나 간다.” 

  “그럼 그냥 가십시오.”

  가르딘도 사정을 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먼저 고개를 돌리자 라이젠이 도리어 궁금해졌다. 쉽게 물러설 놈이 아니기에 궁금증은 배가되었다.

  ‘젠장, 말 한 번 섞을 때마다 8천 년 수양이 모두 허물어지는 것 같으니, 원!’

  “빨리 말해라.” 

  가르딘도 정색을 했다.

  “우산 가용할 수 있는 드래곤과 마법무구가 얼마나 됩니까?

  “그건 왜?”

  “그럼 무턱대고 마왕과 대결할 겁니까! 작전을 짜야지 않습니까! 전술의 기본이 나를 알고 적을 아는 것 아닙니까!”

  “드래곤은 18이고, 사용할 수 있는 마법무구는 1만 개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한다.”

  “드래곤들의 실력과, 마법무구의 위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드래곤의 내력을 낱낱이 까발리라고 종용하는 가르딘이다. 라이젠은 대답을 망설이다가 가르딘의 진지함을 읽고 설명을 해주었다.

  ‘고룡 급이 라이젠 님뿐이고, 나머지는 웜급이라는 뜻이네. 마법무구도 타이탄 급에 버금가는 것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고.’

  가르딘은 대략적인 마왕의 역량을 확인해 보았다. 정령왕 테리우스가 말하길, 자신이 한 방감도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전력을 다하면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고 했으니 최소한 10배, 아니면 그 이상이다. 정말 굉장한 능력치가 아닐 수 없었다. 수치상으로는 고룡급 드래곤10마리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투 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은 모든 드래곤이 덤벼도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라이젠 님은 마왕의 능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합니까?” 

  “적어도 나보다는 강하겠지.” 자존심이 상하지만 라이젠은 현실을 인정했다.

  “실제로는 그 이상일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솔직히 삼신기로 어느 정도나 마왕을 막을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고대 문헌상에 보면 마왕의 능력에 버금간다고 적혀 있었다.” 

  “정말입니까?”

  드래곤 나이트의 괘씸한 행동을 봐서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봤자 타이탄이다. 고철덩어리가 그 정도로 강하다는 것도 신뢰성이 떨어졌다.

   “내가 이 상황에서 거짓을 말하겠냐! 사실이니 한번 말하면 좀 믿어라!”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고대 문헌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영웅이 마왕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분탕질하는 마족들을 나머지 중간계의 모든 종족이 막아내야 한다. 상급마족의 역량과 드래곤의 역량을 비교해 보았다. 얼추 맞춰 보니 비슷한 정도는 되었다.

  “제가 가진 힘과, 능력이라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라이젠 님이 지닌 타이탄 3대를 지원해 주면 필리언, 갈라, 유타, 투르가 탈 수 있습니다. 녀석들의 실력이 이제 그랜드 마스터 초급에 이르렀으니 중급마족 이상은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음!’

  가르딘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타이탄은 만들어 놓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는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나 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가르딘이 말한 이들이라면 타이탄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 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중급마족 이상을 상대하는 일은 드래곤도 결코 쉽지 않다. 희생을 줄이고,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르딘의 말대로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지상 전투는 제 쪽에서 맡겠습니다. 대신에 라이젠 님을 비롯한 드래곤들이 뒤에서 마법으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지.”

  “합동작전만 잘 수행한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가르딘은 전쟁 시 실력을 드러내야 한다는 위험이 있음을 감지했다. 그래서 드래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타이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위험할 수 있으나 4대 이상이라면 달라진다. 아무리 간 큰 자라고 해도 그랜드 마스터 급의 기사를 보유한 발키리영지를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너도 마왕은 무서운가 보구나!”

  “당연한 소리는 하지 마십쇼.”

  “하긴 나도 무섭다.” 

  “그러니 서로 도와야지요.”

  “최선을 다해야한다.”

  가르딘은 만일의 사태까지 대비했다.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전력을 다할 것이다. 어설프게 실력을 숨기려고 하다가 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라이젠과 가르딘은 가족을 위해서 세상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다.

  착! 착! 착!

  10인의 병사들이 줄을 이어 전법을 훈련했다. 검과 창을 찌르며, 차례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만자 형태로 소수의 인원을 포위하면서 10명,30명,50명,100명 단위로 구성을 한다. 각 단위마다 상위로 옮겨질수록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형태였다. 다수가 소수를 강력하게 압박하여 피해를 줄이며 적을 제압하는 방법이었다.

  훈련의 강도가 여느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죽기 살기로 움직이지 않으면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입에서 단내가 풀풀 풍길 때까지 6만의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뛰어다녔다. 가르딘은 병사들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실력이 뛰어난 병사를 뽑아 백부장 급의 지위를 부여해 주었다. 평민에서 귀족으로 올려주는 신분상승은 아닐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돈을 지급했다.

  대신 악마처럼 괴롭혔다. 훈련의 강도를 높이가 위해 백부장 급의 병사들을 지독할 정도로 괴롭힌 다음 그 화를 병사들에게 토해내도록 종용했다. 백수장 급의 병사들은 자신들이 당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가르딘의 괴롭힘은 보통이 아니다. 한번 괴롭힘을 경험해 보면 하루 종일 허상이 보일 정도였다.

  “거기지금 걷지, 죽고 싶어!” 

  “아... 닙니다!” 

  “여기가 밖이지 안이야!”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은 집에 가서 해! 어서 뛰어! 아니면 하루 종일 대가리 박고 자갈밭을 길 줄 알아!”

  가르딘의 괴롭힘으로 특화된 백부장들은 한다면 하는 독종놈들이다. 더군다나 시킨 대로 하지 않으면 명령불복종으로 사형이었다. 살려면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해야 한다. 

  “포위진형!” 

  처처처척!

 인간의 능력은 무한했다. 불과 5일 만에 병력의 군집력이 상상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10단위 50단위의 병력으로 응집했다. 전후좌우로 퍼지는 진형의 짜임새가 남달랐다. 훈련이 막바지에 이를 때쯤에 가르딘은 의례적으로 나타나서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해 주었다. 맘 좋은 영주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에 반해 백수장 급 병사들은 가르딘의 웃는 모습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마지막에 나타나서 훈련의 모든 상황을 체크하고 난 후 음에 들지 않으면 초상 치를 수 있었다. 악마가 따로 있지 않았다. 병사들이 훈련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옥이 기다린다.

  가르딘은 병사들의 훈련양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흘린 땀만큼 여벌의 목숨을 얻을 수 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가르딘은 병사들의 훈련상황을 체크하고 난 후 저택으로 돌아왔다. 매번 저택 추변의 방어준비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만일의 사태까지도 완벽하게 준비를 해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이중삼중으로는 부족했다. 가장 중요한 마진법의 역량은 항상 점검을 해주었다. 파멜라의 마진법은 예상대로 보통이 아니었다. 라이젠에게 부탁해서 최상급 마정석을 얻어 파멜라에게 주었다. 또한 비밀리에 드워프를 데리고 와서 작업을 시켰다. 저택방어를 위해서 최상을 조건을 제공해 주었다.

  파멜라가 만들어낸 마진법은 공간분리무한진이었다. 이름만 들어봐서는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다. 공간과 공간의 틈을 분리시켜 결계를 형성한 진이었다. 파멜라는 최대한 공간과 공간의 범위를 좁혔다. 그래서 다 공간으로 분리된 장소마다 방어진을 형성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한 공간이 침입을 받았더라도 수백의 공간이 남아 있게 된다. 더군다나 각 공간마다 형성된 마나의 짜임새는 수많은 실타래가 촘촘하게 엮인 것처럼 되어 있어 뚫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드래곤의 브레스도 튕겨낼 수 있을 정도의 견고함을 자랑했다. 또한 가르딘의 의견을 수렴해서 항마의 기운을 공간과 공간 사이마다 집약시켜 안으로 파고들어 올수록 기운이 강력해지도록 응집력을 높였다.

  “굉장하다!”

  가르딘조차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대단했다. 아직도 보완해야 될 것이 남았다고 하는 파멜라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게 되었다.

  진법을 확인하고 난 후 저택에 설치된 무기들의 배치도 다시 한 번 체크했다. 또한 드워프에게 말해서 지하에 견고한 비밀방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슈우웅!

  순도 높은 오러의 기운이 바탕이 되어 한 점으로 응축이 되었다. 응축된 기운이 완벽한 검과 창의 형상이 되었다. 타는 듯한 기운을 발산하였다. 마침내 오러 블레이드와 오러 랜스가 뿜어져 나왔다. 발키리기사단과 크레이지드래곤창기병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정에 휩싸였다. 자신들이 형성한 검강과 창강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100명과500명이 청백색의 오러 블레이드와 오러 랜스를 뿜어내자 압도적인 기운의 여파가 연무장을 휘몰아쳤다. 

  휘이이이잉!

  대기의 오러가 소용돌이를 치는 것 같았다. 이로써 대륙최강의 기사단과, 창기병이 탄생한 것이다.

  가르딘이 연무장에 당도했다. 오러 블레이드와 오러 랜스를 보았다. 굉장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가르딘은 만족하지 않았다.

  ‘음, 역시나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 

  불만족스러운 가르딘의 표정을 본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대륙 어디를 뒤져보아도 저 정도 실력의 기사들과 창기병을 보유한 곳은 한곳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가르딘의 불만을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또 불만이냐?”

  “완전한 오러 마스터가 아니잖아.” 

  “그래도 저 정도면 대단한 거지.” 

  동기들도 가르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시일 내에 마스터 급에 준하는 오러를 형성해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 사실 발키리기사단과 창기병은 완벽한 마스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선천의 기운을 흡입하여 순도가 높아진 오러 블레이드와 오러 랜스를 뿜어낼 수 있다고 해도 깨달음을 통해 얻은 결과가 아니라서 그런지 부자연스러웠다. 진정한 오러 마스터와 대결을 펼친다면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깨달음은 단기간에 찾아오지 않는다. 더 큰 것을 바라는 것이 가르딘도 욕심이라는 것을 알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대가 사람이면 내가 걱정도 하지 않는다.”

  “하긴.”

  한숨이 터져 나오는 가르딘의 대답에 필리언, 갈라, 유타도 입을 다물었다. 분명히 인간의 기준에서는 놀랍다 못 해 기적적인 일이다.

  하지만 적은 인간이 아니라 마왕과 마족이다.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마왕의 일수면 한 줌의 핏물이 돼서 사라질 것이다.

  가르딘은 어둠의 길드를 부수고 돌아온 날부터 끊임없이 드래곤 나이트를 불러 불러보았다.

  그런데 대꾸는커녕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삼신기는 반응조차 없지, 초조하지 않을 리 없었다.

  ‘드래곤 나이트가 아니라 애물단지야, 젠장!’

  없다면 모를까 있는데도 사용을 못하니 짜증이 날만도 했다. 도대체 왜 말을 듣지 않는지 이유라도 알 수 있으면 속이라도 시원할 것이다. 역시 믿을 것은 스스로의 실력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고철덩어리를 믿는 게 아니었어.’

  D-day 14일.

  황도로 병력을 이끌고 가야 할 때가 다가왔다. 6만의 병력 과, 발키리기사단, 크레이지드래곤창기병이 가르딘의 저택 외곽에 100열종대로 길게 늘어섰다. 기사단과, 창기병, 병사들 모두 서릿발 같은 기세를 뿜어내었다. 지옥수련을 버티고 난 후 그들은 정예 중에 정예가 되었다. 과거 헥토르 왕국의 30만 대군이 다시 쳐들어온다고 해도 정면으로 부딪쳐서 박살낼 수 있을 정도의 기세와 역량을 갖추었다.

  주변에 모인 영지민들은 전쟁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기사와 병사들이 보여주는 기개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했다. 병사들이 뿜어내는 기세가 칼날같이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가르딘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가르딘은 라이나, 브리안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르딘은 지금까지 사실을 숨겨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을 해주어 야 했다. 파멜라에게는 하루 전에 사실을 미리 전했다. 파멜라조차 너무 놀란 나머지 두려운 듯한 기색이 완연했다.

  “여보.”

  “말하세요.”

  라이나는 내미지상의 여인, 사내를 더욱 밝혀주는 햇살 같은 여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강했다. 겉으로 보이는 강인함이 아니라 내면의 정신이 강철같이 단단했다. 가르딘도 라이나가 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마왕이 강림할 거야.”

  “예”

  라이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불안한 눈빛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르딘을 믿을 뿐이다. 이제까지 가르딘은 라이나를 실망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라이나도 가르딘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둘 사이에 보여주는 신뢰와 믿음은 세상이 무너진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만큼 수 없이 단련이 되어 있었다.

  “당신을 믿어요.”

  “그래, 당신이 믿는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라이나의 믿음이 가르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아내와 딸을 두고 위험한 전장으로 떠나야 하는 가장의 마음을 라이나는 잘 알고 있었다. 가르딘은 라이나와 브리안을 말없이 가슴에 안았다. 많은 말은 필요 없다. 마음으로 모든 말은 전해졌다. 

  가르딘이 일어섰다. 

  “편히 기다려, 후딱 끝내고 올 테니.”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 놓고 있을께요.”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기사지!”

  “그럼, 세상에 날 이길 사람은 브리안밖에 없지.” 

  가르딘은 라이나와 브리안의 믿음과 신뢰를 마음에 새기며 돌아섰다. 눈동자에서 의지와 확신이 불타올랐다. 결코 라이나와 브리안을 두고 먼저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각오와 의지가 선 이상 가르딘은 이제까지의 가르딘보다 훨씬 강해졌다.

  밖으로 나오는 통로를 따라 나가는 길에 파멜라와 리니안이 서 있었다. 리니안은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가르딘이 거절했다. 오행심법의 전수가 끝난 상황이다. 위험한 전장으로 나가 죽기라도 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었 다. 엘프들의 염원을 위해 나섰다면 사명감을 가져야 했다. 

  “파멜라!”

  “예, 영주님!”

  “10일 후에 안젤리카가 올 거야. 아내와 딸을 부탁해.”

  “걱정하지 마세요. 목숨을 걸고 지켜드릴게요!”

  “미안하지만 사양하지 않을게. 그리고 고마워.” 

  “무사히 돌아오시기만 하면 돼요.”

  “알겠다.”

  파멜라와 리니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밖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나왔다. 저택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경계를 넘자, 기사단, 창기병, 병력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가르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보내주는 눈빛을 하나하나 기억해 두는 가르딘이다. 마련해 둔 말에 올라탄 가르딘이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가자!”

  “충! 충! 충!”

  가르딘의 명령하자 대규모의 병력이 황도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빠른 시간 안에 황도까지 전진해야 했다.

  D-day 2일 전.

  대지를 뒤덮을 정도의 많은 병력이 줄을 이어 황도 오스란의 외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수백만의 병력이 집결되고 있었다. 제국대전을 준비하는 병력보다 훨씬 더 많았다. 오스란의 외곽에 병력을 집결시킨 것은 병시들이 이동하는 동선 을 줄이기 위해서다. 황도는 방어를 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병력을 이동시키고, 외부로 벗어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더군다나 400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오스탄에 모두 모여 있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모여드는 병사들 사이로 발키리영지군이 들어섰다. 제국 전쟁 이후 가르딘 공작의 위용은 카이로만 제국을 뒤흔들었다. 가르딘의 기사단과 병사들이 움직이자 다른 귀족들의 병사들이 좌우로 벌어지며 길을 터 주었다.

  ‘많이도 모였군.’

  제국의 모든 병력이 한곳에 모였다. 어디가 시작이며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병력이다. 병사들은 무엇 때문에 집결되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이곳에 모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다 해도 그들은 이곳에 모여야 한다.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아가서 싸워야 한다. 가르딘은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고 있었다. 지킨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 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무슨 수를 쓰던 지켜야 한다.

  휘이이이이잉!

  삭막한 바람이 가르딘의 갑주를 차갑게 식혔다. 서늘한 바람에 햇빛을 가린 검은 구름, 다가오는 위험을 예고라도 하는 듯했다. 불길한 감정이 엄습하는 상황이다. 가르딘은 가족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2일 남은 건가.’

  가르딘은 흑마법사가 마지막에 심술이 나서 장난을 부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해야 할 일은 모른 척 지나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반드시 나아가서 해결해야 한다.

  황도의 외곽 들판이 막사로 가득 채워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막사가 눈에 띄었다. 대륙의 제황이자 카이로만 제국의 황제가 머무는 곳이다. 가르딘은 말에서 내려 황제가 있는 막사로 향했다. 황제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신하된 도리가 아니었다. 막사를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가르딘을 보고 기사의 예를 갖추었다. 가르딘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주며 막사의 휘장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는 다르게 안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여느 막사와 비슷했다. 마왕과의 결전이 있는 상황에서 화려한 장식은 사치에 불과하기에 러쉬 황제가 전투에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 모두 치우라고 명령했다.

   막사는 단순히 황제가 머무는 역할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전략회의도 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가르딘은 황제에게 예를 갖추고 대례를 하였다.

  “부름을 받고 늦게 오게 되어서 송구하옵니다!”

  “괜찮네, 먼 길을 오느라 수고했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가르딘은 발리스타 대공과 파스트론 대공에게 인사를 올 리고, 마미어 공작과, 바자바인 공작에게 가볍게 예를 올린 이후 마련된 좌석에 앉았다. 회의장 안에는 스필언과 미토스까지 앉아 있었다.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재가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알게 모르게 영웅의 존재는 모든 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

  회의는 마왕이 강림했을 시의 이동수단과, 전투방법, 보급의 전반적인 전쟁의 중요한 전략을 결정하고 있었다. 대공가에서 전략과 전술을 주도적으로 내세우고, 황제가 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수없이 많은 전장을 누빈 발리스타 대공과 파스트론 대공이지만 마왕을 상대로는 어떤 전술이 효과적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가르딘은 회의에 간간이 응대를 하였지만 주도적이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의견을 어필한다고 해서 큰 변화를 주기는 어려웠다. 어차피 대부분이 이미 결정이 되었고, 그 이상의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기도 힘들었다. 가르딘도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저 대공가의 뜻을 존중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묵묵히 들었다.

  가르딘은 회의가 끝나고 난 후 따로 발리스타 대공과, 파 스트론 대공, 마이어 공작을 만나고 전술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다시 한 번 조율했다. 모든 회의가 끝나고 막사 밖으로 나오자 하늘은 어두워졌다. 저녁시간을 지나 밤이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지정된 막사로 돌아가는 길에 스필언과 미토스를 잠시 만났다.

  “신기는 통제가 잘 되느냐?”

  “그렇습니다.”

  “다행이군.”

  ‘그런데 나는 왜 안 되지.’

  가르딘은 신기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짜증이 솟구쳤다. 샤이닝나이트와 세인트나이트는 알아서 비기를 전수해 주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완벽한 호흡을 맞추기까지 했다. 반면에 가르딘은 타이탄검술이나 가동법을 배우기는커녕 대꾸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짜증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내밀었다. 

  “미래는 너희들 손에 달렸으니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공작님이 주신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세상을 구하는 일에 손을 거들었다는 데 만족할 뿐이다.” 

  ‘그렇게 보답하고 싶으면 마왕을 무찔러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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