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장 마왕강림의 전조@@]
신성제국의 대신전 예하 신도교육관이 습격당했다. 각 대륙에서 뽑힌 성혈을 가진 여아들에게 제공된 학술관이자 숙소였다. 성녀를 보필하기 위해서 뽑힌 소녀들이기 때문에 경비가 삼엄하다. 30명의 성기사와 600명의 병력이 교육관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둠이 깔린 시기를 틈타 500명이나 되는 인원이 습격을 해왔다.
대결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습격한 자들은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키고 있던 성기사와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대신전을 지키고 있는 성기사와 병력이 당도했을 때는 이미 끝이 난 후였다. 성기사와 병사들이 죽어 있고, 소녀들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놈들의 목적은 성혈을 가진 여아들이 확실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스무 명 중 열다섯 명이 대신전에 있었다는 것이다.
신성제국의 역사상 직접적인 침입을 받은 경우는 이번 사례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국이 발칵 뒤집어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분노한 프리먼 대신관은 제국의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놈들의 행방을 찾았다. 집요한 추적 끝에 놈들의 동선을 파악 한 후 병력을 대거 투입했다. 결과적으로 놈들을 대부분 죽였지만 소녀들은 찾지 못했다. 그로 인한 인명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50명의 성기사가 죽고, 2천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참담한 소식을 접한 쉴라는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설마 이토록 대놓고 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만약 예측만 했더라면 드래곤의 도움으로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가르딘은 신성제국에서 벌어진 사건의 정황을 듣자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대신전이 습격받은 날이 가르딘과 라이젠, 베로나가 포그랜드로 향하던 시기와 일치했다.
어둠의 길드가 노린 것은 드래곤의 감시망을 포그랜드로 쏠리게 만들고, 대신전을 노려 성혈을 가진 여아를 납치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설마 신성제국을 노릴까라는 일반적인 생각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더군다나 놈들은 드래곤이 아닌 이상 꺼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드래곤을 죽이고, 소녀들을 납치한다. 일석이조를 노렸구나!’
간단한 것 같지만 결코 허술하지 않은 계략이었다. 이번 계략으로 인해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포레스트와 그란테스가 죽었고, 라이젠과 베로나는 드래곤하트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한다. 드래곤의 개입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문제는 놈들이 어디 있느냐인데?”
극악의 수까지 동원하며 최후의 결전을 벌이려고 하는 어둠의 길드였다. 목적이 임박했다는 뜻이 되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잠잠하던 어둠의 길드가 이처럼 대놓고 결전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추적을 해서 어둠의 길드 놈들을 잡는다고 해도 총단을 찾기는 실제로 어렵다. 놈들은 죽음마저도 도외시한다. 밝혀낼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대로 놈들이 마왕을 부활시키기라도 한다면 세상이 피에 잠기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답답하네.”
라이젠과 베로나는 레어에서 요양 중이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어둠의 길드를 찾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날의 폭발에서 살아난 것도 다행이었다. 가르딘이 얄밉게 먼저 도망친 것이 못내 마음이 쓰이지만 말이다.
“결국 놈들의 수에 놀아난 꼴이구나!”
“어쩔 수가 없었잖아요.”
“이 일을 어쩌지. 로드께서는 지금 움직이실 수 있는 것이냐?”
“솔직히 로드께서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계세요.”
현 드래곤로드는 카라이라스다. 그의 나이 이제 1만 5천 살이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나이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뭐? 그런 중요한 얘기를 왜 지금 한 거냐?”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사실 로드께서는 차기 로드로 라이젠 님을 거론하셨거든요.”
라이젠은 반박할 수 없었다. 개체수가 얼마 남지 않은 드래곤이다. 그중에서 로드의 자리를 맡을 드래곤은 이제 라이젠뿐이다. 지금까지 안젤리카 때문에 극구 사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수긍을 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드래곤로드가 되기 위해서는 현 로드의 인장을 받아야 한다. 만약 인장을 받지 못하게 되면 드래곤로드의 자리는 사라지게 된다. 드래곤로드는 신이 정해주신 사명감의 자리다. 드래곤로드가 사라진다면 드래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라이젠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때, 안젤리카가 가르딘의 저택에서 급하게 레어로 돌아왔다. “아빠!”
“왜 그러냐?”
“이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젤리카는 아공간에 좌우로 50센티 정도 되는 판자를 꺼냈다. 판자 안에는 빼곡한 수식과 복잡한 연산이 적혀 있었다. 또한 대공간마법진의 형태를 띤 마법진도 그려져 있었다. 연산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드래곤들조차 계산하기 벅차고, 어려운 수식이었다. 라이젠과 베로나는 아무리 봐도 파악하기 힘들었다. 마법진인 것 같지만 마법진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수식이 많았다.
“마진법이에요.”
“파멜라와 같이 연구하고 있는 것 말이구나!”
“맞아요. 이곳에 핵을 놓고 여기에 마력을 집어넣으면 작동을 할 거예요.”
베로나가 가지고 온 제롬의 핵을 뜻하는 것이었다. 라이젠이 연구를 하는 동안 안젤리카도 제롬의 핵을 파악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혼자서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파멜라의 진법과 뛰어난 머리가 도움이 되어 방법을 찾아내었다.
냉동된 제롬의 핵을 판자의 중앙에 놓았다. 그리고 마진법을 발동시키고, 난 후 핵의 냉동마법을 풀었다. 마진법이 발동하자 판자의 주변을 완벽하게 차단해 버렸다. 마력과 진법의 힘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역작이다. 냉동마법이 풀리면 바로 부식되어 버리는 것과는 다르게 제롬의 핵은 멀쩡하게 보존이 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라이젠과 베로나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어떤 마법을 사용해도 소용없는 일을 안젤리카가 해낸 것이다. 사실 이것은 파멜라의 도움이 가장 컸다. 역천무한진을 연구한 파멜라는 진의 효율성이 무한하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역천무한진을 역으로 다시 바꾸면 무한진이 되고, 여러 가지 진법에 혼합을 하게 되면 상상을 불허는 위력을 낼 수 있었다. 진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켜 주는 원동력을 제공해 주었다. 역천무한진이라는 말 그대였다. 하늘을 역행하는 무한의 진법이었다.
시간을 멈추는 마법은 9서클을 넘어선다. 드래곤이라고 해도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하지만 역천무한진이 결합이 되자 시간정지마법이 가능해졌다. 또한 보존마법과 해독마법까지 극대화시켰다. 그로 인해 제롬의 핵에 걸린 금제가 풀린 것이다.
안젤리카는 조심스럽게 핵에 새겨진 기억의 편린을 메모리리드마법을 통해 읽어 나갔다.
제롬의 핵은 여러 가지 기억을 담고 있었다. 강화인간의 경우 머리에 기억을 저장하지 않고 핵에 기억을 저장하는 특이한 성질을 담고 있다. 다만 기억이 연결되지는 않았다. 조각조각 나뉜 기억을 나열해 봤지만 어둠의 길드 총단이 있는 곳을 단번에 확인하기는 힘들었다.
“3개의 솟아오른 산, 넓은 분지, 끝을 알 수 없는 절애, 와이번의 형상!”
“지형을 나타내는 건가?”
“아마 그럴 거예요.”
“찾기가 쉽지는 않겠구나!”
산이 3개에 그 안에 분지가 있고, 옆으로 절애가 형성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외관으로 보면 와이번의 형상을 갖추고 있을 수 있었다. 대륙 전체를 뒤져서라도 이와 같은 지형을 가지고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곳에 놈들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미드라이언 대륙을 비추는 블루문, 화이트문, 레드문이 모두 일직선으로 평행을 이루었다. 모든 달이 이처럼 평행을 이루는 사례는 없었다. 특이한 것은 레드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머지 달들이 모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음습함과 불길함이 대지를 감싸는 시기였다.
솟아오른 3개의 산 아래 넓은 분지가 존재했다. 그 주변을 감싸는 산의 형태가 와이번을 닮았다.
쿠쿠쿵!
분지의 중앙을 시작으로 진동이 퍼져나갔다. 중앙의 분지가 서서히 갈라지더니 아래에서 단상이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하에서 거대한 단상과 악마의 조각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슬 퍼런 분위기를 풍기는 악마의 조각상이 붉게 물드는 달에 반사되어 지옥의 마왕을 연상케 하였다.
대단한 공사가 아닐 수 없었다. 거대한 단상과 조각상의 무게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한두 해의 작업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단상의 중앙에 검은색 로브를 입은 에빌스트가 서 있었다.
“드디어 시간이 다 되었구나! 염원하던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일직선으로 평행하던 달들이 완벽하게 하나의 형상으로 이루어졌다. 붉은빛이 강렬할수록 대지를 비추는 어둠도 붉게 물들어갔다. 대지마저 붉은 기운에 의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세상이 붉게 물드는 어둠의 시기.
그때를 기다리기 위해서 에빌스트는 모든 고통과 시련을 참고 인내했다. 어둠의 길드가 대부분 와해되어 버리면서 까지도 그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기다렸다.
단상 아래 마련된 통의 붉은 핏물이 달의 기운을 받아 더욱 붉게 물들었다.
에빌스트는 그 중심에 서서 마계의 주문을 외웠다.
-근원적인 악의 주인이시며, 피의 권능을 자닌 나의 주인이시여! 빛의 세상을 멸하며, 어둠의 세상을 만들어 주시옵서서!
에빌스트는 마계의 주문을 외우면서 그의 내부에 존재하는 흑마법력을 모두 쏟아붓고 있었다. 마혈로 변화를 일으킨 붉은 핏물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핏물은 붉은 달의 기운을 흡수했다. 달의 붉은빛이 마혈과 동화를 일으킨 것이다.
철렁! 철렁!
-순수한 마의 화인이여! 염원을 받들어 그대의 충직한 신하가 되기를 원하옵니다! 탄압 받던 어둠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옵니다!
우우우우우우웅!
광포한 기운이 분지 전체를 뒤흔들었다. 흔들리는 기운은 거침없이 세상을 향해 뻗어나갔다. 대지 전체가 압도적인 기운에 압살을 당하는 것 같았다. 쉴 새 없이 요동을 치는 대지는 멈추지 않았다.
마혈이 레드문과 연결이 되자 공간이 열렸다. 어둠의 소용돌이로 이루어진 공간이 열리며 마혈이 스며들어 가기 시작했다. 핏물이 공간으로 빨려 들어갈수록 대기의 파동을 거세지고 있었다.
응축된 마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며 분지 전체를 뒤덮었다. 소용돌이 속에서 에빌스트는 환희에 가까운 탄성을 내질렀다.
“드... 디어! 대업이 이루어지는구나! 크하하하하하!”
에빌스트가 환호성을 내지를 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쏘아져 왔다.
푸아아아아앙!
난데없이 대지를 부숴버리는 가공할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의식에 집중하고 있던 에빌스트는 날아오는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아야 했다. 피하기에는 마지막 주문이 남아 있었다.
꽈과과과과광! 파파파파팡!
와이번 형상을 한 분지 전체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드래곤이 뿜어낸 브레스의 위력은 산을 없애 버릴 정도로 가공했다.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은 라이젠과 브리안, 안젤리카였다. 그 옆으로 가르딘과 신성, 쉴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륙 전체를 뒤지며 어둠의 길드 총단을 찾았다. 결국 어둠의 길드 총단이 있는 지형을 찾을 수 있었고, 놈들이 의식을 거행하는 것을 발견했다. 마기가 치솟는 것을 보자 가르딘은 지체 없이 브레스를 쏘라고 라이젠에게 말했다. 살피는 것이 아니라 쏘고 보자는 것이었다. 붉게 물드는 달과, 광포한 마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라이젠도 가르딘의 의견을 따랐다.
브레스가 쓸고 지나간 대지는 모든 것이 소멸되어 버렸다. 마의 조각상은 물론, 단상까지도 모두 휩쓸고 지나갔다. 사라진 대지는 폭발의 흔적만이 남았을 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르딘과 드래곤, 쉴라, 신성이 사라진 대지로 내려갔다. 흔적도 없이 날아간 이상 모든 것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제 끝났나?”
“마기가 사라진 것을 봐서는 끝난 것 아닌가요!”
시위를 압도하던 마기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어둠의 길드는 이제 대륙에서 사라진 것이다.
가르딘은 기감을 열었다. 끝나기는 했는데 똥을 누다만 것 같은 찝찝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것이라도 놓칠 수는 없었다. 천룡무상신공의 기운을 운용하여 기감을 확대했다. 쑥대밭이 되어 버린 대지에서 꿈틀거리는 작은 마기가 느껴졌다.
가르딘은 지체하지 않고 마기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신속하게 움직였다.
“크크크크! 크크크크!”
같이 온 일행도 가르딘이 움직이자 따라갔다. 그곳에는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 에빌스트의 머리통이 남아 있었다.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고서는 살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것도 머리통만 남은 채로 웃고 있으니 말이다.
“리치!”
“전에 만난 놈과 똑같은 놈이네.”
에빌스트의 검붉은 눈이 가르딘과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에빌스트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그는 핵의 절반 이상이 손실을 입었다. 다시 살아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릴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너...희들은 이...제 끝...났다!”
“뭔 소리야, 끝나는 것은 너지.”
가르딘이 머리통만 남은 게 자존심을 세우자 어이없다는 듯이 비웃어주었다
“한 달이다!”
“한달?”
“그... 것이 너희가 즐길 수 있는 마... 지막 시간이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의식... 은 끝... 났다. 나는 그... 저 어둠의 세... 상을 여는 안내... 자에 불과... 크... 하하하......!”
부스스스스!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스스로 사라져 버리는 에빌스트였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의식은 그저 길을 여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강림은 한 달 후에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닌가!
가르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 장!”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이런 개 같은 경우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못내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는 가르딘이다. 시간 싸움에서 놈들에게 지고 말았다. 이제는 다가올 위험을 대비해야 했다.
‘가르딘 전기’ 14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