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3/93)

                 가르딘 전기 13 건드리고고   @@[Title [email protected]@]

     @@[제1장 다크로드 프레인@@]

  아름답던 마을의 정경이 폭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부서져 내렸다. 로브를 걸친 마법사의 손에서 펼쳐지는 광폭한 마기의 폭발은 잔인하며 가공 무쌍했다. 고작 두 명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압도적인 위력 앞에 엘프들은 두려움에 질렸다.

  로브의 인물은 어둠의 길드를 지배하는 두 명의 총수 중 한 명인 다크로드 프레인이었다. 세븐핸드가 모두 죽자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직접 엘프 마을로 공간이동을 해 왔다. 세븐핸드의 페시안이 죽기 전에 엘프 마을의 좌표를 프레인에게 전송한 것이다. 페시안이 죽어가며 가르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한 것은 프레인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 분명했다.

  “신기를 내놓아라. 그럼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주겠다.”

  분노로 가득 찬 프레인은 엘프들을 살려둘 생각 따위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조리 다 죽여 버리고 싶은 극도의 살인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심혈을 기울여 일구어놓은 작품(세븐핸드)이 무너졌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마법사는 자존심으로 뭉쳐진 존재들이다. 특히 프레인은 본인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했다.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흑마법사는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엘프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두려움에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엘프들이 멍하니 서 있을 때였다.

  엘프 여인이 바람의 정령을 소환하였다. 그녀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죽더라도 마지막까지 싸워서 물러서지 않는 엘프들의 저력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을 눈 앞에 두고 겁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다.

  바람의 정령이 엘프 여인의 부름에 응하였다. 엘프의 친구이자 영혼의 동반자인 바람의 정령에게 마을을 습격한 자들을 막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저자를 막아주세요!”

  바람의 정령이 그녀의 부탁대로 프레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정령은 소환자의 자연 친화력과 의지에 따라 능력의 발휘가 결정된다. 소환자의 의지가 강하다면 그의 바람대로 움직일 것이다.

  아무도 나서지 못할 때 그녀가 나섰다. 엘프들은 그 모습을 보자 용기를 얻었는지 정령을 소환하였다. 속속 정령들이 소환되었다.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휘이이이잉!

  바람의 정령,물의 정령,땅의 정령, 불의 정령, 나무의 정령 등 모든 정령이 프레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하나일 때의 정령과 수백일 때의 정령은 달랐다. 모두가 합심하자 굉장한 힘의 파동이 느껴졌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적이 비록 강하다고 해도 위협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수백의 정령들이 정면을 가득 메우며 날아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인은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잔인한 웃음만 들려왔다. 프레인의 안중에 엘프들의 반항은 존재 하지 않았다. 

  “크크크크! 발악을 하는군.”

  프레인은 죽음을 향해 덤벼오는 날파리들을 향해 어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기로 작정한 듯했다. 프레인의 몸에서 어둠의 마기가 뭉클뭉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어둠의 절대자이며, 마도의 극을 이룬 자였다. 그의 의념 자체가 어둠의 마기를 조종하는 절대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프레인이 손을 휘젓자 어둠의 마기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뿜어져 나갔다. 순도 높은 어둠의 기운이 형체를 갖추며 하나의 완벽한 드래곤이 되었다. 어둠의 마기로 형성된 다크드래곤이었다.

  "모두 부숴라!”

  크아아아앙!

  어둠의 마기로 형성된 다크드래곤이 포효를 했다. 흉악한 이빨을 드러낸 다크드래곤이 정령들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흉포한 기운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모든 종족은 드래곤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드래곤이 가진 압도적인 위압감과 광폭함은 다른 종족이 막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푸아아아앙!

  "으아아악!”

  다크드래곤과 수백의 정령이 충돌했다.

  정령들의 비명이 대지를 울렸다. 다크드래곤의 사나운 이가 정령의 기운을 물어뜯어 버리고 있었다. 수백의 정령들이었지만 다크드래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닌바 역량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수가 많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을 잠식해 버리는 어둠의 절대적인 힘은 엘프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까아아악! 크어어어억!”

  정령들이 강제로 역소환이 되자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게 된 엘프들은 신음성을 내질렀다. 역소환에 대한 반발이 피를 역류하게 만들었다. 엘프들 모두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단 한 번의 부딪침에 전투력을 모두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

  정령들을 모두 집어삼킨 다크드래곤은 아직도 만족하지 않은 듯했다. 어둠의 드래곤이 엘프들을 향해 포악한 성정을 드러내었다.

  리니안과 엘프들은 절망감을 느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용기만으로는 부족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엘프들은 전멸할 것이다.

  ‘용사님, 도와주세요!’

  어둠의 드래곤은 엘프들을 향해 거대한 입을 벌렸다. 어둠의 드래곤이 뿜어내는 마기 앞에 엘프들은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마기가 그들의 심령에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드래곤이 뿜어내는 권능과 같은 능력이었다.

  사아아아악!

  “크어어어어엉!”

  빛을 가르는 뇌전의 기운이 어둠을 갈라버렸다. 포효하던 다크드래곤의 허리와 목이 예리하게 잘려 나갔다. 응축된 뇌전의 기운은 어둠의 마기마저 잘라내 버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크드래곤이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괴성을 지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둠의 핵이 잘려 나가는 순간 모든 힘을 잃고 소멸해 버린 것이다.

   어둠의 마기를 이용하여 다크드래곤을 조종하던 프레인의 표정이 변했다. 로브로 가린 그의 눈가가 검붉은 빛을 내었다. 다크드래곤은 어둠의 마력으로 탄생한 드래곤이다. 고작 빛의 검으로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오러마스터 최상급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약간이나마 가능할 것이다.

  프레인의 시선이 오러를 사용한 자를 보았다.

  “넌 누구냐?”

  허공을 격하여 등장한 이는 능글맞은 중년인이었다. 프레인이 예상한 신성이 아니다. 신성은 두 명이고, 저처럼 생기지 않았다. 프레인은 이곳에 신성과 성녀가 모두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오라는 놈은 오지 않고 생뚱맞은 놈이 자신의 일을 방해한 것이다. 들려오는 대답도 상상초월이었다. 어둠의 마기가 장악한 영역 안에서 태연하게 반박을 하고 있었다. 상식적인 놈으로 보기 힘들었다. 좀 전에 보여준 검술이 아니라면 미친놈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그러는 너는 누구냐?”

  "건방진!”

  "폼 잡지 마라.”

  "감히!”

  "어쭈!”

  중년인의 떨이로 파는 듯한 저렴한 말에 프레인의 마기가 꿈틀거렸다. 대응하는 솜씨가 가관이었다. 하는 말마다 프레인의 신경을 긁어대고 있었다. 몇 마디 말에 불과하지만 지금처럼 신경질 나게 만드는 놈도 처음이었다. 프레인의 옆에 대기하고 있던 데븐스조차 검을 뽑을 뻔하였다. 항상 명령이 아니면 나서지 않는 데븐스조차 감정조절을 하기 힘든 상대였다.

  프레인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검붉은 안광을 거세게 뿜어 내었다. 잊고 있었던 존재가 다시 상기되었다.

  "네놈이 가르딘이구나!”

  ‘호오!’

  "딩동댕!”

  중년인이 짐짓 놀랐다는 듯이 탄성을 내질러 주었다. 프레인의 말대로 어둠의 드래곤을 두 쪽으로 갈라버리고 프레인의 염장을 몇 마디 말로 뒤집어놓은 자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이 아니라면 9서클 흑마법사 앞에서 이처럼 태연하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담대함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3분 전.

  가르딘은 세계수에서 세인트나이트를 얻는 즉시 발키리 영지로 돌아가려고 서둘렀다. 가장 먼저 길을 잡고 가려는 찰나에 사악한 기운이 엘프 마을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기운의 성질이 이전까지 만났던 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짙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사람 같지 않은 냄새가 가르딘의 감각을 자극했다. 가르딘은 께름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쉴라에게 어둠의 기운이 엘프 마을을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쉴라가 말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뭘?”

  “엘프 마을이 위험하다는 소리잖아요.”

  “그런데?"

  “지금 그런데라는 말이 나와요. 빨리 가서 도와줘야 할 것 아니에요.”

  "내가?”

  "그럼 지금 누가 가장 빨라요.”

  이것은 가르딘이 의도한 것과 다르다. 위험한 놈들이 오니까 엘프 마을을 돌아서 가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쉴라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눈빛을 보내며,가르딘에게 강요를 하고 있었다. 괜히 말을 꺼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후회해 봤자 늦었다.

  가르딘은 스필언과 미토스를 바라보았다.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나서서 호된 꼴 당하기 싫은 가르딘이 망설이자 쉴라의 날카로운 눈빛이 작렬했다. 맴피스와 장로들도 가르딘의 말을 들었기에 다급한 기색이 완연했다. 또한 도움을 달라는 애호조의 눈빛이 가르딘의 심장을 찔러왔다. 차마 외면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외면하면 진짜 나쁜 놈이 된다. 지금까지 그리 순탄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는 없으나, 남에게 나쁜 짓하고 살지는 않은 가르딘이다. 이제 와서 나쁜 놈이 되기에는 억울했다.

  "알...았다! 가면 되잖아!”

  "말만하지 말고 빨리 움직여욧!”

   “알았다니까!”

  세인트나이트를 얻으면 할 일이 모두 끝나는 줄 알았건만 알아서 일거리를 만들어 주는 세상이었다. 가르딘은 세상을 향해 욕을 한 번 시원하게 속으로 하고 섬전보를 극성으로 전개해 허공으로 사라졌다.

  슈우웅!

  가르딘의 신형이 바람 속에 사라져 버렸다. 바로 코앞에 있던 쉴라와 장로들은 가르딘의 유령같은 움직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순간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가르딘의 신형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워프(공간이동) 마법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마법이 아니기에 놀람은 더 컸다.

  ‘역시 아저씨의 실력은 굉장해! 세상을 구하겠다는 정의감만 가지면 좋을 텐데.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타고난 본성은 주신께서조차 어쩔 수 없으니!’

  가르딘이 지닌 실력을 세상을 향해 쓰기를 바라는 쉴라였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여행하는 동안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언제나 라이나와 브리안만을 생각하는 가르딘에게 인류는 그 다음이었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놀람은 다른 이들과 차원이 달랐다. 그들조차 가르딘이 움직이는 기운을 희미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오러마스터를 넘어 그랜드마스터 초입에 이른 스필언과 미토스는 다시 한 번 가르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자 경외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쫓아가야 할 스승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역시 나의 상상을 넘어 서시는 분이구나!’

  ‘나는 기필코 저분을 따라 가겠다!’

  스필언과 미토스도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이 가진 최고의 신법을 펼쳐 가르딘의 뒤를 따랐다. 쉴라와 엘프 장로들도 뒤따라서 달려 나갔다. 

  가르딘은 고작 3분 만에 허공을 격하고 엘프 마을까지 당도했다. 세계수가 위치한 장소에서 엘프 마을까지 빠르게 걸어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딘은 거리의 구애를 받지 않았다. 섬전보를 극성으로 전개한 것도 아니었다. 고작 6성에 불과 하지만 바람조차 가르딘의 신형을 따르지 못했다. 엘프들을 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그다지 갖고 있지 않았던 가르딘이다. 엘프들이 그동안 보여준 행동들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이 넓고 대범한 사람은 마음에 담지 않겠지만 가르딘은 대범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사소한 일을 모두 마음에 담아놓고 있었다. 한 100년쯤 지나면 약간이나 잊어줄 수 있는 아량은 있었다.

  가르딘이 마을에 당도했을 때 검은 드래곤이 엘프들을 잡아먹으려는 모습을 보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었다.

  무형의 형체가 어둠의 기운을 흡입하여 완연한 형태의 드래곤이 된 것이다.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저게 뭐야?"

  시작부터 정상적인 것들은 등장하지도 않았다. 우선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엘프들이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조금만 늦으면 엘프들의 목숨이 위험했다. 가르딘은 망설이지 않고 무극칠검식의 최강 쾌검식인 일격참뢰을 뿌렸다. 어둠을 잘라내는 뇌전의 기운은 천룡무상 신공의 정수가 스며들어가 있었다. 다크드래곤이 비록 어둠의 마기가 집약된 결정체이기는 하나 일격참뢰를 버티지는 못했다. 순식간에 어둠을 두 조각으로 잘라내어 무위로 돌려놓았다. 수백의 엘프들이 반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다크드래곤이 단칼에 소멸되었다.

  가르딘의 등장으로 엘프들은 다소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엘프들을 처참하게 죽인 자들의 능력도 무섭지만 가르딘의 능력도 그에 못지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특히 바로 앞에서 죽음의 위기를 넘긴 리니안은 가르딘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위기의 순간에 몇 번이나 구해 준 용사로 보였다. 물론 가르딘은 리니안만을 구하기 위해서 무극칠검식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모든 엘프들을 구하기 위해 사용한 것에 불과했다.

  또한 지금 당장은 눈앞에 존재하는 놈들을 상대하는 것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곳에 한눈팔 수 있는 훈훈한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가르딘은 멋진 등장과 동시에 프레인과 마주섰다. 전신을 가리는 백색의 로브를 입고 있었지만 로브 안은 검은 장막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전신에 서 퍼져 나오는 음습하고,짙은 마기는 결코 흔하지 않은 기운이었다. 예전에 한 번 경험했던 기운보다 더 강하고, 어두웠다.

  ‘다마트 황자와 비슷하지만 더 강한데!’

  오크 똥을 피하려다가 오우거 똥을 밟은 가르딘이었다. 당시에도 제법 위험한 순간을 경험했었다. 다마트 황자가 죽기 전에 소환한 발록이 제대로 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 태였다면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다.

  프레인이 먼저 가르딘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물었다. 가르딘은 가볍게 응대를 하면서 상대의 기색을 살폈다. 웬만하면 정체를 들키지 않는 게 가르딘으로서는 유리했다. 최대한 숨기면서 놈들의 정체를 캐기 위한 염장을 질러주었다.

  하지만 가르딘의 예상과는 다르게 프레인이 가르딘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놀란 표정을 짓지 않고 있었는데,속은 무척이나 놀랐다. 어떻게 자신의 정체를 알아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떠그럴!’

  의문의 용사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니라고 부정해 봤자 프레인의 태도가 너무 단호했다. 그런 말은 씨도 안 먹힐 부질없는 짓이었다. 괜한 일에 심기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가르딘은 아주 쿨하게 인정해 주었다.

  현재 프레인의 마기가 거센 폭풍처럼 요동을 쳤다. 매번 일을 벌일 때마다 들려오는 이름이 가르딘이다. 가르딘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프레인이 계획한 일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또한 세븐핸드조차 발키리 영지를 보냈다가 모두 산화해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가운데 꼭 들어가는 이름이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에 대한 정보는 길드내에서 철저하게 조사되었다. 오러마스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실력으로는 절대 다크드래곤을 일 검에 처리해 버릴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이제까지 실력을 숨기고 어둠의 길드를 방해해 왔다는 것이 아닌가! 쉴라를 신성제국으로 데리고 가서 성녀로서 각성시킨 것도 모두 계획적인 일이라고 여기게 된 프레인이었다.

  다크로드인 알케인의 죽음도 가르딘의 수작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모든 것이 가르딘 때문이라고 프레인은 확신했다. 아이러니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의문스러운 일들이 퍼즐이 착착 들어맞듯이 맞아 떨어졌다. 대업을 위해 구축해 놓은 어둠의 길드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모두 가르딘의 계략 때문이었다. 프레인은 분노를 참아내기 힘들었다. 가르딘에 대한 적의가 솟구쳐 올랐다.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어 버릴 수 있는 흉포한 마기가 소용돌이쳤다.

  우우우우웅! 휘이이이이이잉!

  갑작스럽게 폭풍처럼 터져 나오는 마기의 기운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가르딘은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전보다 더 강력해지고 있었다. 피부를 찌르는 기운은 순수한 마기에 가까웠다. 몸 안으로 스며드는 마기가 정신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력했다. 마기는 심령에 주는 타격이 강하기에 안이하게 생각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었다.

  "네놈이 나의 모든 계획을 방해했구나! 도저히 용서하지 못한다!”

  ‘뭔 개소리야?’

  프레인의 공격을 방해한 것은 다크드래곤이 처음이었다. 가르딘은 뚱딴지같은 프레인의 분노에 어리둥절했다. 괜스레 터뜨릴 곳이 없어서 자신에게 화풀이를 한다고 여겼다. 상대가 분노한다고 해서 가르딘까지 분노하지는 않았다. 우선은 침착하게 대응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네놈들의 목적이 무엇이냐?”

  “그것보다 네놈의 목숨을 걱정하는 게 좋을 거다! 이 자리에서 네놈의 육신을 모조리 다 불태운 후 영혼마저 지옥의 고통을 맛보게 해주겠다!” 

  “순순히 부는 게 좋을 텐데, 맞고 불면 늦는다.” 

  ''네놈의 같잖은 말을 들어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프레인은 더 이상 말을 잊지 않았다. 그의 전신에 퍼져 있는 마기가 응축되어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었다. 어둠이 자리한 곳은 여지없이 잘려 나고 있었다. 어둠의 마기를 자유자재로 사용이 가능한 프레인이었다. 

  “잠깐.”

  멈칫!

  가르딘의 느닷없는 외침에 프레인이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추었다. 그는 가르딘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보았다. 어둠의 기운에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늦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냐! 하지만 소용없다!”

  휘리리릭!

  가르딘이 먼저 검을 휘둘렀다. 프레인이 공격하는 흐름을 끊어놓고, 섬전보를 운용하여 접근했다. 그 순간에 천룡무상 신공을 폭발적으로 일으켰다. 찰나의 순간에 회전하여 강렬한 힘을 형성한 가르딘은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아무리 대단한 대마법사라고 해도 근접전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카아앙!

  주르르륵!

  검격이 부딪쳤다. 귀를 찢는 듯한 파공성이 들렸다. 가르딘은 검을 막아선 존재를 눈여겨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강한 기운이 풍기지 않았지만 일단 검을 맞대자 만만치 않은 놈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닐지라도 지금의 일격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데븐스는 고작 가르딘의 검력에 밀려났을 뿐 그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다. 가르딘은 데븐스에게서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룡무상신공의 기운이 검력을 타고 데븐스의 검에 충격을 주었다면 혈맥이 터지거나 내상을 입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데븐스는 외상도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상도 당하지 않았다. 아니 내상 자체를 입을 수 없는 존재 같았다.

  “이놈! 같잖은 수를 쓰다니!”

  어쭙잖은 수작에 걸려들었다는 것이 화가 났는지 프레인의 손에서 마기가 형성되어 가르딘을 노리고 들어왔다. 응징을 해주지 않는다면 화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다크소닉버스트!”

  가르딘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어둠의 겁화를 느끼자 그 즉시 뒤로 몸을 뺐다. 보통의 불길이 아니었다. 스치기만 해도 타 버릴 것 같은 기운이다. 정면으로 대응해 봤자 쓸데없이 기운만 소모될 수 있었다. 이럴 때는 주저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이익이었다.

  슈우우웅!

  어둠 속에 스며든 음속의 암화는 엄청나게 빨랐다. 가르딘이 회피하는 동작을 계산하고 날아오고 있었다. 상대방의 기운을 탐지하고 날아가는 유도식 마법능력을 결합한 것이다. 가르딘의 동작도 음속을 능가하고 있었다. 섬전보가 전후죄우로 어지럽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가르딘의 신형이 여러 개로 보일 정도였다. 섬전보가 극성에 이르자 이형환위가 펼쳐졌다.

  ‘꽤 까다로운데!’

 여러 개의 신형조차 사방으로 쏘아져 오는 음속의 암화를 피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가르딘은 최대한 어지럽게 움직이면서 앞으로 접근해 나갔다. 공간을 줄이면 암화를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프레인은 다크소닉버스트가 통하지 않자 그 즉시 다크핸드(어둠의 권능)를 연달아 펼쳤다. 마력의 제한이 거의 없는 듯한 프레인이었다. 다크핸드는 어둠의 권능을 통해 프레인 의 의지가 미치는 영역을 잡아둘 수 있었다. 반경 10미터 안에서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응?’

  가르딘은 프레인에게 접근하는 찰나에 무형을 기운이 전신을 붙잡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신을 옥죄는 듯한 기운은 가르딘의 움직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주변에 퍼져 있던 다크소닉버스트가 가르딘을 향해 집중 포화되었다. 약간의 머뭇거림이 위기를 자초하고 있었다.

  ‘까다롭게 하네! 젠장!’

  프레인은 다크핸드 안에서도 빠른 신형을 유지하는 가르딘을 보자 기가 막혔다. 프레인의 의지가 가르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보통이 아니구나!’

  가르딘은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았다. 극히 짧은 순간에 가르딘의 기감이 맹렬하게 영역을 확장했다. 가르딘은 어둠 속에 프레인의 의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어둠의 의지인가! 그렇다면!’

  다크핸드는 프레인의 의지가 형성된 어둠의 마기였다. 어둠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가공할 만한 능력이었다. 검의 경지로 따지면 심검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가르딘의 눈동자가 푸른빛을 토해내었다. 천룡안이 개방 되었다. 전신을 옥죄고 있는 검은 그림자들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프레인이 형성한 어둠의 의념은 강했다.

  하지만 가르딘의 의지도 그 어떤 존재보다 강력했다.

  "나의 마음은 신의 의지도 끊어버릴 수 있다! 천단심!”

  가르딘의 외침이 힘이 되어 뻗어나갔다. 어둠의 권능이 형성한 기운이 가르딘의 외침에 의해 날카롭게 잘려 나갔다. 실타래처럼 촘촘하게 망을 형성한 프레인의 기운이 거침없이 잘려 나갔다. 천룡안은 심안의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심안은 심검을 펼치는 가장 중요한 연결 부분이었다. 가르딘의 감각에 잡힌 지점은 여지없이 잘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크윽!”

  프레인은 어둠의 의념이 잘려 나가자 심적인 충격을 받았다. 그가 펼치는 다크핸드는 이제껏 누구도 빠져나간 적이 없었던 절대적인 권능이었다.

  그런데 지금 가르딘이 그에 버금가는 권능으로 다크핸드를 잘라내 버리고 말았다. 가르딘의 의지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차가웠던 이성에 불이 지펴졌다.

  "건방진 놈!”

  가르딘은 움직임이 자유로워지는 순간에 섬전보를 극성으로 운용하여 프레인의 정면으로 다가섰다. 한순간에 숨통을 끊어버리려는 의도였다. 저런 놈은 심장에 검을 한번 맞아봐야 ‘하아아아! 이제부터 착하게 살걸.’이라며 후회하게 될 것이다.

  파아앙!

  바람을 차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가르딘의 신형이 대기 속에 사라졌다 나타났을 때 프레인의 바로 코앞에까지 접근했다. 삽시간에 거리를 무시하고 다가온 것이다. 프레인조차 가르딘의 신형을 잡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이럴 수가!”

  가르딘은 망설이지 않고 검을 뻗었다. 검이 뻗어나가는 궤적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검을 뻗는다는 마음이 일자 이미 검은 프레인의 심장을 찔러 들어갔다.

  “지옥에나 가서 후회해라. 이놈아!”

  치이이익!

  ‘응?’

  살속을 뚫고 심장을 파고든 소리치고는 이상했다. 마치 오랜 정련을 거듭하여 만들어낸 단단한 백련정강을 뚫고 들어가는 것처럼 거칠고 둔탁한 느낌이 들었다. 가르딘의 검은 오러블레이드가 형성되어 있었다. 천룡무상신공의 기운이 들어간 천룡무상강기로 형성된 오러블레이드를 맞은 자는 그 즉시 전신의 혈맥이 터져버린다.

  하지만 프레인은 흉흉한 검붉은 눈빛을 빛내며 가르딘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 투영된 프레인의 진실된 실체가 가르딘의 천룡안에 잡혔다.

  “뭐...냐? 넌... 해...골바가지를 뒤집어쓴... 허억!”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해골을 뒤집어썼다고 하기에는 해골이 너무 작았다. 인체구조상 저 안에 사람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고 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냥 해골이라는 뜻이었다.

  ᅳ헬파이어(지옥의 겁화)!

  프레인이 초근접거리에서 헬파이어를 시전했다. 몸이 다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일격이었다. 가르딘은 다급하게 거리를 벌리며 떨어지려고 했다. 그 순간에 데븐스가 가르딘을 향해 검을 찔러왔다. 거리를 벌리는 동선을 파악한 후 절묘하게 공격을 가히는 데븐스였다. 찰나의 간격을 파악하고 덤벼오는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르딘이 인상을 찌푸렸다. 보기에 따라서는 피할 공간과 시간이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카카강! 타타탕!

  데븐스의 검이 막혔다. 가르딘이 막은 것은 아니었다. 가르딘의 뒤를 따라온 신성이 이제 막 도착한 것이다. 위급해 보이는 가르딘을 보자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어 데븐스의 일격을 막아낸 것이다. 데븐스는 검을 막은 존재들을 보며 서슬 퍼런 기운을 뿜어내었다.

  콰아아앙! 화르르르화화활!

  가르딘이 인상을 찌푸린 것은 스필언과 미토스가 데븐스의 검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가르딘은 어쩔 수 없이 프레인의 헬파이어를 정면으로 막아야 했다. 그가 피하면 스 필언과 미토스는 물론 엘프들까지 피해를 받을 수 있었다.

  '얘들은 때를 못 맞춰!’

  타는 듯한 기운을 정면으로 막아낸 가르딘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화염계 최고의 마법인 헬파이어를 쳐낸 자가 한 말치고는 너무 유치했다.

  가르딘은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신경을 쓸 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상처를 받고 분노한 프레인이 9서클 흑마법을 지속적으로 난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크그래비티핸드(중력권능).

  -헬파이어(어둠의 겁화).

  -기가라이트닝(초극뇌전).

   중력마법을 사용한 순간 떨어지는 10개의 헬파이어와 광속을 넘어서는 기가라이트닝의 조합은 가공 무쌍했다. 한 발만 맞아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을 정도였다. 광포한 위력의 대단위 마법이 가르딘을 향해 집중포화되었다.

  쿠과과과광! 꽈과과광! 투꽈과과광!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기운의 여파가 지형지물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반경 20미터 안에 순식간에 초토화되는 순간이었다. 그 엄청난 위력에 엘프들조차 충격의 여파를 받고 날아가 버렸다. 지켜보던 이들은 가르딘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 여겼다. 상식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공격을 받아넘기 는 것은 사람인 이상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가르딘을 돕기 위해서 나아가려고 했지만 데븐스로 인해 막히고 있었다. 데븐스는 신성이 이제껏 상대한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자였다. 검속에 스며든 광폭 하면서도 정교한 검술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세븐핸드를 모두 합해 놓은 것보다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디서 이런 자들이!’ 

  ‘제국의 오러마스터도 이 정도는 아니다!’ 

  데븐스의 능력만 놓고 보면 대륙최강이라는 파스트론 공작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가르딘이 신경 쓰여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데븐스의 검격이 사혈을 향해 뻗어왔다. 둘이 합공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데븐스는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더 공격적이었다.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는 듯한 저돌적인 공격이었다. 그와 더불어 무척이나 실전적인 검술이었다. 적의 숨통을 끊어놓은 일격필살의 검격을 자유자재로 뿌리고 있었다. 크하하하! 

  "죽어랏! 이놈!”

  프레인은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고작 검사 따위에게 육체에 대한 비밀이 드러났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그는 근원적으로 뻗어 나오는 모든 어둠의 마력을 일순간에 퍼 부었다. 가르딘이라는 존재 자체를 세상에서 소멸시키려는 의도였다. 놈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프레인에게는 역린이었다.

  "네놈과 연관된 모든 것들 다 죽여버리겠다!” 

  살심이 치솟고 있었다. 가르딘만 죽여서는 분노가 풀리지 않았다. 가르딘과 연관된 모든 것들을 소멸시켜야 쌓인 분노가 작게나마 풀릴 것 같았다.

  휘이잉!

  프레인의 마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움푹 들어갔다.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녹아버리거나 타서 붉은 용암이 되었다. 헬파이어의 열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숲과 조화를 이루어 놓은 엘프 마을이 완벽하게 망가져 버렸다. 활활 타오르는 열기는 식지 않았다. 프레인의 분노만큼이나 폭발적이었다.

  쌔애앵!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프레인의 사각지역에서 검환이 날아왔다. 검환은 오러블레이드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검의 절대 경지였다. 작은 배슬(구슬)에 불과한 구슬이 프레인의 기감에 잡혔다. 어둠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작지만 그 안에 서린 검의 능력이 프레인의 뇌리를 자극했다. 그것이 못마땅한 프레인이었다. 자신이 위기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수치였다. 프레인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검환을 부딪쳤다. 앱솔루트 다크배리어(절대어둠방어)를 시전하였다. 다크배리어의 위력과는 차원이 다른 흑마법의 절대방어마법이었다.

  “이놈! 소용없다!”

  모든 어둠의 마력을 중첩하여 만일의 사태까지도 대응했다. 어둠의 기운이 철의 방벽이 되어 프레인을 보호했다. 순도 높은 어둠은 그 무엇도 투영하지 못했다. 어둠 속에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상황이다.

  푸아아아아아앙!

  하늘을 부숴버리는 가공할 검환이 앱솔루트 다크배리어와 부딪쳤다. 작은 검환은 부딪쳐서 터지지 않고 전진해 나갔다. 어둠의 방패가 끝없이 중첩이 되며 검환을 막아섰다.

  쩌저저저적!

  "아니!”

  어둠의 절대방패가 조금씩 균열을 일으켰다. 어둠의 편린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검환도 마지막 위력을 발하듯 작게 응축했다가 팽창했다. 그 순간 검환에 응축되어 있던 천룡무상신공의 기운이 터져 나왔다. 사방으로 빛의 기운이 퍼져나갔다. 검환에 서린 기운은 오러블레이드를 한참이나 능가했다. 삽시간에 어둠은 빛의 기운 앞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쿠아아아앙!

   대화산이 터지는 듯한 상상을 초월하는 굉음이 울렸다. 힘의 여파로 인해 지축이 흔들리기까지 했다. 사방이 모두 빛의 영역이 되었다. 어둠은 사라지고 빛의 환영이 뒤덮자 눈이 부시기까지 했다.

  퓨우우웅!

  빛을 뚫고 가르딘의 신형이 나타났다. 무극칠검식의 파천멸환을 시전한 순간에 섬전보를 운용하여 프레인에게 접근했다. 검의 사정거리 안에 진입한 순간 가르딘의 검에서 천룡무상강기가 뻗어 나왔다. 심장을 찔러도 소용없다면 일순간에 반으로 쪼개버리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일단 전투불능을 만들고,난 후 재생되기 전에 소멸시키는 것이다.

  검환으로 인해 상당한 충격을 받은 프레인이었다. 빛의 강기가 훑고 지나가자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백색의 로브가 찢겨 나갔다. 로브는 7서클 방어마법이 걸려 있어 웬만한 충격에는 흠집도 나지 않는다. 프레인은 로브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검환이 터지고 나서 곧바로 이어지는 가르딘의 연속적인 공격을 피하는 것이 먼저였다.

  -다크블링크(공간이동).

  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가르딘의 천룡무상강기가 프레인의 신형을 반으로 쪼겠다. 반으로 잘려진 프레인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사라졌다. 그 순간 가르딘의 등 뒤에서 어둠의 마기가 느껴졌다.

  이글! 이글!

  간신히 몸을 피한 프레인의 눈빛이 분노에 의해 이글거렸다. 어둠의 공간을 주변에 깔아 놓지 않았다면 가르딘의 일격을 피할 수 없었을 수도 있었다. 일반적인 블링크와 다르게 다크블링크는 어둠의 권역에 속한 지점에 순간적인 이동이 가능했다. 가르딘이 뿜어낸 빛의 강기에 의해 어둠의 권역까지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공간 속에 사로잡힐 수도 있었다.

  덜렁!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다. 프레인의 오른팔이 예리하게 잘려져 나가 있었다.

  “죽...인다! 네놈을 반드시 죽인다!”

  가르딘은 잘려 나간 팔에 피가 흐르지 않는 프레인을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동안 보아 온 것이 있어서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는다. 한두 번 보아 온 것이 아니라 신기한 것에 대한 면역력이 생겨나 버린 것이다. 놀라지 않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중에 이상한 놈으로 오인받을 수 있다.

  “지옥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려주마!”

  피식!

  가르딘의 입가에 비웃음이 맺혔다.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보라는 뜻이었다. 가르딘은 프레인이 마지막에 한 말을 똑똑히 들었다. 가르딘은 물론 가르딘과 연관된 모든 사람을 죽이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가르딘이 아니다. 가르딘의 전신에 살기가 퍼져 나왔다. 다른 것은 다 참아도 가족과 연관된 일은 참지 않는다. 그 상대가 설혹 신이 될지언정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인페르노(초열용암).

  -마그마블라스트(용암불출).

  프레인은 마법을 사용하여 가르딘이 서 있는 곳을 용암지대로 만들어버렸다. 가르딘이 공중으로 떠오르자 마그마블라스트가 분출되어 가르딘의 전신을 덮쳐왔다. 가르딘은 용암이 움직이는 지점에서 허공을 발판 삼아 튀어 올랐다. 대기를 타고 움직이는 것 정도는 가르딘에게 우스웠다. 가르딘이 날렵하게 피하는 것을 보자 프레인은 8서클 마법인 스톰스트라이크(풍격)를 시전하여 가르딘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후우우우우웅!

  폭풍에 실린 어둠의 기운이 가르딘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 왔다.

  공중에 떠 있는 가르딘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에서 미증유의 거력이 형성되어 스톰스트라이크에 맞섰다. 

  푸아아아앙!

  가르딘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풍이 스톰스트라이크를 와해시켜 버렸다. 가르딘은 프레인의 마법을 막아내고 곧바로 검을 던졌다. 천룡무상신공의 기운이 검에 실렸다. 가르딘이 노리는 곳은 프레인의 얼굴이었다. 검은 공간을 무시하며 프레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쌔애앵!

  프레인은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는 가르딘의 검을 막아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크실드를 펼쳤지만 검에 실린 위력은 만만치가 않았다. 삽시간에 다크실드를 뚫어버리고 프레인의 얼굴을 꿰뚫었다.

  치이이이익!

  로브로 가려진 프레인의 얼굴이 가르딘의 검에 꿰뚫리면서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검은 로브를 뚫고 프레인의 머리 뒤로 튀어나왔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해도 부족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프레인은 달랐다.

  척! 끼이이익!

  얼굴을 뚫어버린 검을 왼손으로 잡더니 빼내는 것이 아닌가! 정말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 아닐 수 없었다. 검을 빼내면서 로브가 뒤로 젖혀졌다. 그리고 프레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완벽한 해골의 형상을 띤 프레인이었다. 그 모습을 본 가르딘은 설마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리치!’

  실제적으로 리치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가르딘이다. 그저 책에 적혀진 내용을 읽은 것이 다였다. 리치는 불사의 육체를 갖는 대신 그의 모든 것을 어둠에 바쳐야만 한다. 마법사들이라는 족속은 마법의 탐구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한다. 리치가 되면 불사의 육체와 더불어 엄청난 마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 힘은 보통의 마법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에 속한다. 리치 한 명이 작은 소왕국을 박살 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끝없이 차오르는 어둠의 마기가 마법의 힘을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정체를 드러낸 프레인의 모습은 기괴할 정도로 흉악해 보였다. 해골의 형상이기는 하지만 살점이 군데군데 붙어 있는 것이 징그러웠다.

  생각 같아서는 로브를 다시 씌워주고 싶은 가르딘이다. 저 얼굴을 보면 1년 전에 먹은 고구마가 올라올 것 같았다. 

  “웬만하면 얼굴은 가리지. 오바이트 쏠린다.” 

  "닥쳐!”

  "왜,얼굴에 살 좀 더 붙여주랴!” 

  가르딘의 이죽거림에 프레인도 만만치 않은 응수를 했다. 

  “검사 주제에 검을 던진 것이 네놈의 실수다!” 

  프레인은 가르딘의 검을 한쪽으로 내 던져 버렸다. 가르딘이 다시 검을 쥐기 위해서는 프레인의 무차별적인 마법을 피해야만 가능했다. 프레인은 일부러 검을 부서뜨리지 않았다. 검사의 본능 상 검을 쥐기 위해 필사적으로 행동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을 역으로 이용한다면 지금까지 상대하기 힘들었던 가르딘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프레인은 트윈싸이클론 마법을 사용하여 회오리를 만들어 냈다. 토네이도를 능가하는 돌풍은 가르딘의 정면을 덮쳐왔다. 검을 쥐고 있지 않은 가르딘은 그다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가르딘은 정면을 응시하며 프레인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가르딘의 눈빛이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가르딘의 침착함에 불길한 마음이 든 프레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망설이지는 않았다. 불안감으로 인해 머뭇거리는 것은 애송이 마법사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프레인은 가지고 있는 모든 마력을 한곳에 집중했다. 어둠의 마력이 소용돌이치듯 프레인에게 흡수되었다. 프레인의 주변이 모두 어둠의 공간이 되어갔다.

  씨익!

  가르딘이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위험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미소를 짓는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다.

  데븐스의 검이 스필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로 검의 궤적을 피할 수가 있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머리가 잘려 나갈 수 있었다. 스필언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 사이에 미토스가 데븐스의 오른팔을 노리며 베어 들어왔다. 미토스는 호흡과 호흡의 간격 사이를 뚫고 들어가는 정교한 검격을 구사하였다. 한 호흡이라도 늦었다면 스필언과의 합공이 무의미했을 것이다.

  사아악!

  카아앙!

  데븐스가 반사적으로 몸을 반 바퀴 회전하더니 쥐고 있던 검을 사선 아래서 위로 들어 올렸다. 예리하게 베어오는 미토스의 검과 충돌을 일으켰다. 미토스는 검에 항마멸사신공의 공능을 주입하여 오러블레이드를 형성한 상태였다. 항마의 기운이 서린 오러블레이드의 위력은 평상시와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다. 스필언과 검격을 맞대는 그 찰나의 빈틈을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데븐스는 놀라운 반응감각을 보이며 막아내었다. 데븐스의 검도 보통이 아니었다. 검 자체적으로 굉장한 능력이 있었다. 데븐스가 발휘하는 데빌오러블레이드를 한층 더 강화시켜 주고 있었다.

  퍼퍽!

  파팟! 차차착!

   미토스의 검격을 막아내는 순간 또 다른 틈을 발견한 스필언이 데븐스의 팔 아래 갈비뼈 부근을 발로 찼다. 데븐스가 위기감을 느꼈는지 왼팔을 들어 본능적으로 쳐내면서 뒤로 3바퀴를 회전해 충격의 여파를 줄였다. 무거운 중장갑옷을 전신으로 무장한 데븐스는 의외로 무척이나 날렵했다. 몸에 차고 있는 초중량의 풀플레이트 갑주가 가벼워 보이기까지 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데븐스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했다. 또한 그가 가진 검이 보통검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검을 맞댈 때마다 느껴지는 상상을 불허하는 압력이 스필언과 미토스가 발휘하는 항마멸사신공의 공능을 무력화하고 있었다. 어둠의 마기에 상극인 항마멸사신공을 이처럼 괴롭히는 경우는 처음 당해보는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검의 위력이 보통이 아냐!’

  ‘더군다나 저자의 검법도 만만치 않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검법인데 이처럼 위력적이라니!’

  데븐스가 펼치는 검법도 상당했다. 그의 검에서 뿌려지는 검초는 말 그대로 살초였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최적의 검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검법에서 짙은 어둠과 피의 절규가 느껴졌다. 상황이 이쯤 되자 상대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제법이구나.”

  데븐스도 이처럼 오랜 시간 검을 맞댄 적이 오랜만이었다. 두 신성의 실력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서 더 살의가 불타오르고 신성의 핏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싶은 데븐스였다. 데븐스의 오랜 시간 잠자고 있던 잔인한 혈성이 눈을 떠가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오랜 시절의 고통이 그의 뇌리를 자극했다. 정의감으로 뭉쳐진 놈들에 대한 무조건 적인 적의가 불타올랐다. 

  "나 데븐스의 검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크크크크!”

  거의 말이 없던 데븐스의 잔인하게 웃었다. 데븐스의 이름을 들은 스필언과 미토스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그는 이미 죽었을 텐데.’

  데븐스라는 이름은 스필언과 미토스도 얼핏 들어본 적이 있었다. 400년 전에 무작정 사람을 죽이고 다닌 피의 학살자라고 불린 자의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이 이토록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것은 그가 살인한 사람의 수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저 피에 미친 살인자라고 치부하기에는 부족했다. 그의 손에 죽은 자들 중에 오러마스터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당시의 이야기를 전하길 마계의 전사가 지상에 강림하여 세상을 도륙했다고 한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 신성제국의 성녀와 기사,오러마스터까지 포함하여 1천 명이나 되는 기사들이 동원되었다. 데븐스 한 명을 죽이기 위해 막강한 전력이 투입된 것이다. 결국 데븐스를 죽이기는 했지만,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성녀와 성기사가 합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들 300명이 죽고,오러마스터까지 중상을 입고 말았다. 데븐스가 보여준 가공할 만한 능력에 모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순수한 실력을 놓고 보면 오러마스터 최상급에 이른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대륙역사상 가장 강한 기사였던 카이로만 대제에 버금간다는 소리였다.

  미토스와 스필언은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벌써 400년이나 지난 과거의 인물이다. 그가 다시 살아 올 리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현재 데븐스가 보여주는 역량은 과거의 인물에 비해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그랜드마스터 초입에 들어선 미토스와 스필언이 합공을 하는데도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과거의 데븐스보다 훨씬 강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르르륵!

  데븐스가 검을 들고 돌진해 왔다. 바닥을 미끄러지듯이 유영을 했다. 거대한 덩치와는 다르게 가벼우며 빨랐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방어자세를 취하며 조심스럽게 검을 들어 올렸다. 

  타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쉴 틈 없는 공방전이 펼쳐졌다. 검이 뻗어 가는 순간에 다시 회수된 검이 아래서 위로 베어져 올라왔다. 상식을 불허하는 검속의 열전이었다. 출수와 회수,공격과 수비가 동시에 다 이루어지고 있었다. 검의 기본적인 수련이 극에 달해 있는 것 같았다. 

  카카카캉! 타타타탕!

  맹렬하게 검법이 맞부딪쳤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검에서 스톰검법과 일렉트릭검법의 오의가 불을 뿜었다. 그에 대응 데븐스도 블러드드래곤(혈룡) 검법을 휘둘렀다. 400년 전 그의 독문검법이자 대륙을 피에 젖게 만든 무서운 검법이었다. 데븐스가 검을 휘두르자 붉은 피를 머금은 듯한 드래곤이 형상화되어 튀어나왔다. 블러드드래곤은 신성의 피를 갈구하고 있었다. 핏빛 드래곤이 신성을 향해 포악한 아가리를 벌렸다. 삽시간에 잡아 먹혀 찢겨버릴 것 같은 상황이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그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서로의 거리를 좁히더니 합심해서 검법을 출수했다. 가르딘이 가르쳐 준 천지인의 삼재진을 두 사람이 사용 할 수 있도록 개선을 한 것이다. 천재의 응용능력은 일반상식을 넘어섰다. 미토스가 천지인의 초식을 한꺼번에 출수하자 스톰검법과 일렉트릭검법의 묘리를 스필언이 동시에 펼 쳤다. 뇌풍삼재검진이 일시에 펼쳐졌다. 삼재진의 거대한 기운이 블러드드래곤의 움직임을 봉쇄하자 일렉트릭검법과 스톰검법이 합쳐진 뇌전폭풍검법이 출수되었다. 블러드드래곤의 기운이 뇌전폭풍검법에 모조리 다 부서져 버렸다.

  데븐스는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직후에 공중으로 도약을 했다. 공중에 뜬 상태에서 블러드레인(혈우)을 뿌렸다. 피를 머금은 비가 소나기처럼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후두두두두두두둑! 파파파파팡!

  블러드레인이 쏟아진 지점이 폭발을 일으키며 지형을 변형시켰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항마멸사신공의 공력을 이용하여 스톰실드(폭풍검막)를 펼치지 않았다면 꼬챙이 꽂힌 생선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극성에 달하는 항마멸사신공을 연거푸 사용하고 있는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데븐스도 어둠의 기운을 극성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3명 모두 필사적으로 대결을 펼치는 상황이었다.

  후우우!

  1천 합의 혈전을 벌이자 스필언과 미토스의 호흡이 조금이지만 거칠어졌다. 신성도 사람인 이상 공력과 체력이 무제한 일 수는 없었다. 그에 반해 데븐스는 숨이 거칠어지기는커녕 더욱 진한 살기를 뿜어내었다.

  이제야 마을에 도착한 쉴라와 맴피스,엘프 장로들이었다. 그들은 처참하게 망가져 있는 마을을 보자 경악했다. 그들이 이제까지 봐왔던 마을과는 전혀 달랐다. 더군다나 죽은 엘프 들조차 보였다. 사우스랜드에 들어와서 겪는 최악의 사태였다. 맴피스와 장로들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쉴라가 나서지 않았다면 계속 머뭇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부상당한 엘프들을 보살피세요. 저는 저들을 맡을게요.”

  “성녀께서 직접 나서시겠다는 말입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많은 없잖아요.”

  가르딘과 프레인,데븐스와 스필언, 미토스의 대결은 상식적인 대결이 아니었다. 가까이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산산이 부서져 버릴 수 있었다. 맴피스와 장로들은 압도적인 장면에 악마와 신이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느껴졌다.

  쉴라는 우선 스필언과 미토스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르딘과 다르게 스필언과 미토스는 지금 지쳐가고 있었다. 그녀가 도와주어야 승산이 있었다. 쉴라는 사방으로 솟구쳐 오르는 마기와 부딪치는 항마멸사신공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서 신성력을 이용한 홀리실드(성력방패)를 사용했다.

  쉴라가 나서자 남겨진 맴피스와 장로들이 부상당한 엘프들을 보살피기 위해 움직였다. 충돌의 여파로 인해 엘프들은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난다면 손을 쓰기 힘들었다. 최대한 빨리 위급한 엘프들을 치료를 한 후 성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끼이이이이잉!

  어둠의 마력을 모두 집중시키자 프레인을 중심으로 기류가 발생했다. 휘몰아치는 기류는 파괴적이었다.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산산이 부숴 가루로 만들었다. 어둠의 권능을 극대화한 프레인이 가르딘을 향해 데빌핸드(마왕의 권능)을 사용했다. 다크핸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왕의 권능은 프레인조차 쉽게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다. 리치로서의 모든 힘과 어둠의 기운을 흡수해야만 가능했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그 힘의 여파가 상당했다. 프레인조차 일단 사용하고 나면 다시 마력을 사용하기 위해서 10년 이상 힘을 모아야 했다.

  “어둠의 세상 속에 몸부림치다 죽어라! 데빌핸드!”

  위이이이잉!

  마왕의 권능이 가르딘의 주변을 완벽하게 통제했다. 다크핸드가 주었던 압박과는 기질 자체가 달랐다. 조여오는 힘에 의해 숨조차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 딘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침착하게 천룡안을 개방한 가르딘의 시선은 프레인의 중심에 향했다.

  '저기군!’

  가르딘은 일부러 프레인이 모든 힘을 발휘할 때까지 기다렸다. 마력을 모으기 위해서는 모든 힘을 개방해야 한다. 프레인의 모든 힘이 집중되면 공격력은 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부작용도 있기 마련이다. 가르딘은 철저하게 그 점을 파고들었다. 아무리 검을 찔러도 죽지 않는 존재를 상대로 언제까지 힘을 소진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천룡안을 개방한 가르딘의 의념이 무언가를 향해 뻗어나갔다. 천룡무상신공의 기운을 머금은 기운이 가르딘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데빌그라인드(지옥의 분쇄).

  가르딘의 육신과 영혼을 한꺼번에 깨끗하게 분해시켜 버리려는 프레인이었다. 9서클 흑마법 중 가장 강력하며 잔인한 마법이 아닐 수 없었다. 데빌그라인드에 당한 자는 영혼마저 구속되어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갈 때까지 고통을 받게 된다.

  “끝이닷.”

  데빌핸드로 인해 가르딘은 움직이지 못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가르딘의 주변을 가득 메운 어둠이 날카로운 톱니바퀴로 변했다. 수만 가닥의 톱니바퀴는 마음마저 분쇄시켜 버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가르딘의 몸이 완벽하게 분해되어 버릴 것 같았다.

  우우웅!

  주인을 떠난 물체가 스스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빛의 빠르기로 날아갔다.

  슈유유유융! 푸우우욱!

  어둠을 뚫고 날아간 검은 목표물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커어어억!’ 

  “어... 떻... 게?”

  허리 아래 부분을 뚫고 나온 검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본 프레인이었다. 배를 뚫어 버린 검은 프레인이 등 뒤로 던져버린 가르딘의 검이었다. 주인을 잃은 검이 스스로 움직여 자신을 찔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배꼽 아래는 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검은 프레인의 마기가 꿈틀거리는 중심점을 정확하게 찔렀다. 그로 인해 프레인이 형성한 마기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리치는 생명과 영혼의 저장소를 따로 정할 수 있다. 라이프배슬(생명구)라고 불리는 구슬에 생명력과 영혼을 저장하여 전신이 타격을 입어도 어둠의 마력으로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자신의 생명을 절대 다른 곳에 두지 않는다. 그의 몸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프레인도 여타의 마법사들과 같이 남을 잘 믿지 못했다. 그렇기에 몸의 중심에서 벗어난 배꼽 아래에 라이프배슬을 감춰놓았다.

  프레인은 몸 안에서 영혼의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이... 놈!”

  가르딘은 몸을 구속하는 데빌핸드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짐작이 들어맞았음을 확신했다. 프레인이 모든 마력을 개방하기 전까지는 라이프배슬의 위치를 찾기가 힘들었다. 힘의 원동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 어둠의 마력으로 가려 놓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모든 마력을 개방하는 순간 어둠의 근원이 프레인의 허리 아래에서 느껴졌다. 그렇기에 가르딘은 일부러 시간을 끌며 프레인이 힘을 발휘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가르딘은 이기어검술을 사용하였다. 가르딘의 검은 지속적으로 천룡무상신공의 기운을 받아 왔다. 그렇기에 검에는 천룡무상진기가 남아 있었다. 그 어떤 순간이라도 가르딘이 마음만 먹으면 검은 알아서 움직여 주었다.

  “지겹게 재생하는 것도 끝이다.”

  가르딘의 의지가 검이 되었다. 심검의 영역에 도달한 가르딘에게 검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였다. 프레인이 가르딘의 경지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이 죽음을 재촉한 결과가 되었 다.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부숴버리려는 가르딘이다. 가르딘의 의지가 무형의 기운을 형성하였다. 심검은 마음의 검이다. 의지의 역량이 크다면 그 무엇이라도 잘라버릴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 더군다나 심검은 막는다고 막아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막아내기 위해서는 그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슈우우욱!

  싹둑! 싹둑!

  심검이 날아가며 사각형으로 퍼졌다.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형성된 심망이 프레인의 전신을 살포시 훑고 지나갔다.

  "안...돼!”

  프레인의 단말마가 터져 나왔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이미 그의 몸은 심망으로 인해 사방으로 잘려 나가고 있었다.

  "후우우!”

  가르딘은 잠시 한숨을 쉬었다. 이전의 알케인보다 족히 두 배는 더 강했다. 사실 인간일 때와 리치일 때의 차이점이 프레인과 알케인의 차이였다. 알케인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경지는 9서클이었지만 몸은 어둠의 역량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에 반해 프레인은 리치의 몸이기에 어둠의 마력을 자유자재로 사용이 가능했다.

  “정들은 검까지 망가졌네.”

  심망을 사용하면서 가르딘의 검까지 잘려 나가버리고 말았다. 공작이 되었기에 돈을 꽤 들인 검이라 아깝기는 했다.

  쿠쿠쿠쿵! 파파파팡!

  멀리서 가르딘의 귓가로 파공성이 들렸다. 신성과 데븐스가 격렬하게 대결을 벌이고 있는 소리였다. 프레인과 대결이 있을 때부터 가르딘은 신성과 거리를 조금씩 벌렸다. 프레인의 마력이 워낙 강력해서 자칫 스필언과 미토스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서로의 대결의 여파가 일반적인 기사들과의 대결과 다르게 엄청나기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럴 바에는 거리를 두고 싸우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가르딘은 신성의 기운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을 파악했다. 서로 비슷한 역량을 펼치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였다. 그에 반해 상대는 처음과 지금의 역량이 똑같았다. 힘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대장보다 수하가 더 강한 건가?"

  데븐스가 일 검을 맞대본 가르딘이었다. 제법 강한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신성의 합공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라고는 보지 않았다.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감추어 놓고 있었던 것이라고 여겼다.

  '계속 강한 놈들만 나타나네,진짜!’

  적을 이기면 이길수록 강한 상대가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미드라이언 대륙에 알려진 강자들이 아닌 숨겨진 강자들이다. 그들이 가진 힘은 드러난 힘보다 훨씬 강했다. 상식이 통 하지 않는 놈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지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나중에는 어떤 것들이 나타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꽈과과과광! 치이이이익!

  가르딘이 잠시 멍 때리고 있는 사이에도 지면을 강타한 오러블레이드의 충격음이 들려왔다. 더 이상 망설이고 있다가는 영웅이 다칠 수도 있었다. 지금 여기서 영웅이 죽게 되면 뒷일을 가르딘이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 수야 없지.’

  행복과 축복은 라이나,브리안에게,고생은 가족을 제외한 모두에게 나눠주라고 있는 것이다. 가르딘은 자기 혼자 고생하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세상을 위해 모두에게 나눠줄 것 이다. 뼛속깊이 말이다.

  살다 보면 사람들의 자주 이기심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구해주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스스로를 구하지 못할 바에는 기대는 하지 말 아야 한다. 열심히 싸워도 세상이 멸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꼭 영웅과 성녀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가르딘이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지켜본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의 이기심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세상의 위기를 구해낼 영웅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가르딘이 움직였다.

  가르딘이 신성에게 가고 난 후였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반칙인 존재가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꼼지락! 꼼지락!

  수십 조각으로 부서진 프레인의 조각들 중 일부가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해골머리가 반 이상 잘려 나가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프레인의 모습이었다. 기괴한 모습 사이로 처절한 기운이 느껴졌다.

  “...크크,네놈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마! 크크크!”

  음성을 알아듣기 어려운 거북한 소리가 들렸다. 시커먼 기운이 작게 움직이자 가르딘에게 잘려 나갔던 오른팔이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쉴라가 신성들의 뒤를 보조했다. 성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이 스필언과 미토스의 지쳐 가는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서서히 차오르는 항마멸사신공의 공력이 신성력과 결합을 하여 성스러운 기운을 내뿜었다.

  데빌오러와 항마멸사신공이 불꽃을 터뜨렸다.

  휘리리릭! 카카캉!

  미토스가 스필언의 신형을 붙잡고 퉁기듯이 밀었다. 스필언이 미토스를 발판 삼아 데븐스룰 향해 쏘아져 나갔다. 스필언의 신형이 회전하자 검이 무섭도록 빠르게 회전했다. 낮은 축으로 회전한 스필언의 검이 데븐스의 허리 아래 부분을 노리며 들어갔다. 데븐스가 왼발의 발뒤꿈치를 지면에 강하게 짚고 두 손으로 검을 잡아 다리를 보호했다. 회전하는 힘에 실린 스필언의 검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데븐스의 검과 스필언의 검이 충돌하자 충격음이 대기를 울렸다. 오러블레이드와 데빌오러블레이드가 부딪친 힘의 편린이 사방으로 튀었다.

  파팟!

  스필언의 검을 데븐스가 막는 그 찰나의 순간에 미토스가 공중으로 도약한 후 찍어 내려왔다. 일도양단의 수법이였다.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이스트 산을 쪼개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졌다. 데븐스의 머리를 정확하게 노리며 내리쳐졌다. 공격이 성공한다면 데븐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으로 잘릴 것이다.

  쿠꽈과과광!

  지면이 일직선으로 그어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검력이 폭발한 자리는 반경 4미터 안이 움푹 들어가 버렸다. 폭발의 중심점에 있어야 할 데븐스의 신형이 사라졌다. 공격이 들어오는 틈에 신속하게 신형을 뒤로 뺀 것이다. 마치 섬전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이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순간 의문점이 들었다. 좀 전에 데븐스가 보인 움직임은 어디선가 본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뭐지?’

  ‘익숙한 수법인데.’

  분명히 익숙하기는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빠르지 않고,군더더기가 보였다. 물론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지. 느리다는 뜻이 절대 아니었다. 데븐스의 움직임은 상당히 빨랐다. 눈으로 쫓기도 힘들었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스피드에 비견되거나 그 이상의 움직임이었다.

  방어를 취하던 데븐스가 공세를 다시 취했다. 방어만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사사사삭!

  데븐스가 스텝을 밟자 사라졌다 나타났다. 공간을 순간적으로 이동한 것처럼 느껴졌다. 폭발적으로 달려나오는 스피드에 전력을 실은 데븐스가 일격필살의 검초를 뿌렸다. 블러드드래곤검법의 오의 비전이라고 불리는 블러드쉐도우붐버(혈영탄)이었다. 어둠의 강기가 일순간 사라졌다가 스필언과 미토스의 정면에 나타났다. 소리조차 나지 않는 공격이기에 막는 것이 어려웠지만 스필언과 미토스는 한순간도 데븐스의 공격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었기에 대비를 할 수 있었다.

  촤아아아악! 푸우우우웅!

  스필언과 미토스가 좌우로 벌리며 날아오는 블러드쉐도우붐버의 공격범위를 피했다. 지면을 스친 데븐스의 공격이 폭발하면서 사방으로 먼지가 퍼지고,흙더미가 날아갔다. 시야를 가리는 뿌연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스필언과 미토스가 다급한 듯이 몸을 날렸다.

  “이런!”

  데븐스가 날린 공격은 애초부터 스필언과 미토스를 노린 것이 아니었다. 절초이기는 하지만 스필언과 미토스가 피할 줄 알고 있었다. 잠시 공간을 벌이려는 의도였다. 그 순간에 데븐스가 쉴라를 향해 검을 들이밀었다. 데븐스는 신성의 능력이 강해진 것이 쉴라로 인한 것임을 간파하고,쉴라부터 먼저 처리해 버리려는 의도였다. 더군다나 이번 임무는 신기와 성녀의 처리였다. 데븐스는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고 실행해 나갔다.

  쉴라는 신성력을 전개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향해 공격해 오는 데븐스를 보자마자 인크레더블홀리배리어(기적의 방어)를 펼쳤다. 막아낼 수 있을지는 자신하지 못했다. 여태까지 상대방의 공격을 직접적으로 막아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또한 데븐스는 그녀가 이제까지 상대한 자들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데븐스의 검에 맺혀진 어둠의 강기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쉴라는 최선을 다해 신성력을 사용했다.

  “라이니언이시여! 저에게 힘을 주세요!”

  우우우웅!

  쉴라의 주변에 성스러운 기운이 한 데로 모였다. 모든 신성력을 한곳에 집중하여 데븐스의 공격을 막아내려고 했다. 쉴라가 알고 있는 공격마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모든 것이 방어와 치료를 중점으로 두고 있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데븐스의 검을 막는 것뿐이었다.

  "죽어라.”

  무미건조한 데븐스의 음성이 쉴라의 귀를 자극했다. 데븐스는 망설이지 않고 성녀의 목을 노렸다. 방어마법을 친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데븐스는 신성력과 성녀 따위를 믿지도 않는다. 그저 죽여야 하는 목표물일 뿐이다. 데븐스의 데빌오러가 쉴라의 방어마법을 두드렸다.

  카아아앙! 파파파팡!

   “아악!”

  쉴라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데빌오러블레이드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가 펼치는 절대방어마법조차 충격을 받고 균열을 일으켰다. 몇 번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도대체?’

  쉴라는 믿을 수가 없었다. 데븐스의 데빌오러블레이드도 위력적이지만 검 자체적으로 이상한 공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영성을 가진 것처럼 적을 향해 거침없는 적의를 보이고 있었다. 세상을 무너뜨리려는 음습하면서도 한스러운 기운이 아닐 수 없었다. 검이 지닌 한이 쉴라의 심령까지 뒤흔들었다.

  데븐스가 쉴 새 없이 쉴라를 공격하는 사이에 미토스와 스필언이 접근했다. 기척을 느낀 데븐스가 기괴하게 웃었다.

  씨익!

  '걸려들었구나!’

  여태까지 완벽한 합공능력을 보여준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데븐스도 한 명이라면 상대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명이 되자 쉽지가 않았다. 방어를 뚫고 공격을 성공시키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데븐스는 공격의 방향을 바꾸었다. 쉴라를 공격해서 죽일 수 있다면 다행이고,아니라면 신성의 완벽한 합공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데븐스의 시야에 다급하게 접근하는 스필언과 미토스가 보였다. 데븐스는 신성이 가까이 다가오는 그 순간에 뒤로 돌아 강력한 검법을 펼쳤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데븐스의 공격은 신성들도 예상하지 못한 일격이었다.

  파아아아아아앙!

  스필언과 미토스는 급작스럽게 몸을 틀어 검을 들어 막아내었다.

  하지만 데븐스의 검력을 고스란히 정면으로 맞게 된 스필언과 미토스는 일순간 항마멸사신공이 흔들리는 충격을 받았다. 데빌오러의 마기가 항마멸사신공의 운용을 방해하였다.

  울컥!

  스필언과 미토스는 핏물이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휘청거리는 신형을 유지하기도 힘든 순간에 데븐스가 빠르게 접근 했다. 어둠의 공간을 가른 데븐스가 블러드드래곤검법의 오의인 블러드일렉트릭샷(혈참뢰)를 뿌렸다. 핏빛 뇌전이 스필언과 미토스의 전신을 노리며 베어져 왔다. 위기일발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방어하기에는 데븐스의 검격이 너무 빠르고 강력했다. 들끓어 오르는 항마멸사신공을 바로잡는데도 시간이 필요한 상태였다.

  “끝이닷!”

  그때였다.

  빛의 뇌전이 허공을 갈랐다.

  챠아아아악!

  허공을 가른 빛의 뇌전은 붉은 뇌전을 송두리째 갈라놓는 것도 부족했다. 붉은 뇌전을 자른 빛의 뇌전은 데븐스까지 노리고 들어갔다. 일격필살의 절초를 펼친 상황이라 데븐스는 피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고 해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했다.

  "이럴 수가!”

  사아악! 치이이익!

  데븐스룰 감싸고 있던 중장갑옷의 정면이 일시에 갈라졌다. 갈라진 갑옷 주변이 뇌전을 맞은 것처럼 시꺼멓게 타 들어갔다. 충격을 받고 튕겨 나간 데븐스가 바닥을 뒹굴었다. 바닥에 검을 꽂아 신형을 바로 잡은 데븐스의 검붉은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상대를 보았다.

  저벅! 저벅!

  가르딘이 데븐스에게 걸어갔다.

  조금 전 위기를 감지한 가르딘이 신성을 도와주기 위해서 검법을 출수했다.

  하지만 놀라기는 가르딘도 마찬가지였다. 데븐스가 사용한 검초가 무극칠검식의 일격참뢰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짙은 어둠의 마기가 뒤섞여 있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원형은 같다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너,뭐야?”

  세상에 무극칠검식을 알고 있는 자는 가르딘뿐이다. 또 다른 자가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가르딘은 데븐스가 어떻게 해서 무극칠검식을 알고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응?’

   가르딘의 시선이 데븐스의 검에 향했다.

  기운이 익숙하지 않고 마기를 뿜어내서 잘 몰라봤는데, 다시 보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검을 데븐스가 들고 있었다. 가르딘은 다시 한 번 데븐스의 검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검은 대륙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 않았다. 미드라이언 대륙에서 생소한 검의 모양이었다. 가르딘은 그제야 데븐스의 검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천...룡검!”

  차원을 건너오기 전에 잃어버린 신마의 독문 병기가 생뚱맞은 장소에서 나타난 것이다. 가르딘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신마의 기억에 의하면 천룡검은 신기를 타고난 명검이었다. 저처럼 짙은 어둠과 사기를 품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천룡검이 아니라고는 부정하지 못했다. 천룡검에 새겨진 천룡의 형상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룡검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었다. 더군다나 좀 전에 데븐스는 일격참뢰까지 사용했다. 부정하기에는 증거가 너무 명백했다.

  “너 그 검 어디서 난 거냐?”

  “네가 어떻게 나타난 거냐?”

  가르딘과 데븐스가 동시에 물었다. 가르딘은 데븐스가 천룡검을 어떻게 얻었는지 알고 싶었고,데븐스는 프레인과 대결을 펼쳐야 할 가르딘이 나타난 것에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먼저 물었다!”

  “이놈! 로드를 어떻게 한 거냐?"

  “야, 인마! 대화도 순서가 있는 거야! 내가 먼저 물었으니 먼저 대답해라!”

  “네놈이 먼저 대답해라!”

  “이 자식이! 한번 뒈지게 맞아봐야 좀 전에 먼저 대답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다!”

  “미친놈! 네놈을 산산이 잘라서 오크의 식량으로 던져주마!”

  데븐스의 400년 삶 중에서 이처럼 말을 많이 한 것도 처음이었다. 가르딘으로 인해 무형의 압박을 받고 있는 데븐스였다. 데븐스는 가르딘을 본 순간부터 데빌드래곤소드(마룡검)가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데빌오러가 이처럼 흔들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죽여주마!”

  “역시 네놈들은 말로 해서는 들어 처먹지를 않아!”

  "닥쳐!”

  데븐스가 먼저 공격을 해왔다. 성난 오우거처럼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가르딘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최선을 다했다. 블러드드래곤 검법의 최종오의인 블러드소울브로큰(혈혼섬)을 펼쳤다. 섬전보와 비슷한 데빌일렉트릭 스텝을 사용하고 있는 데븐스였다. 데븐스의 신형이 거리를 좁히며 가르딘에게 다가섰다.

  '이거 봐라. 어설프기는 하지만 섬전보에 이어 무극혼섬까지 사용한단 말이지!’

  미심쩍었던 부분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데븐스가 가지고 있는 검은 천룡검이 확실했다. 어떤 이유로 천룡검이 데븐스에게 왔고, 검법을 익힐 수 있는지 다각도로 예상을 해보려는 찰나에 데븐스의 검이 바로 코앞에까지 쏘아져왔다. 데븐스의 섬전보는 가르딘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았다. 직선적인 움직임은 빠를지 몰라도 좌우로 움직이는 유동적인 면이 부족했다.

  사삭! 파아앗!

  데븐스의 검이 허공을 찔렀다. 데븐스는 순간적으로 가르딘의 신형이 두세 겹으로 보였다. 데빌드래곤 소드가 뻗어나간 자리에는 가르딘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으려고 고개를 돌리는 찰나에 쓰고 있던 투구에 충격이 왔다. 전신을 중장갑으로 무장을 한 후 머리까지 투구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던 데븐스였다. 중장갑은 프레인이 대방어 마법진을 그려 넣었기에 웬만한 충격은 모두 흡수해 버릴 수 있었다. 또한 마법에 대한 저항력도 강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상상을 불허하는 일격이 아닐 수 없었다.

  퍼어어억!

  데븐스의 투구 옆면,즉 죽탱이를 한 방 시원하게 갈겨버리는 가르딘이었다. 허리에서 시작된 힘의 원동력이 어깨를 타고 팔을 통해 주먹으로 뻗어나가는 환상적인 권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다리를 단단히 고정하여 원심력을 이용한 회전펀치였다. 순식간에 회전하는 근력과,내공의 조화가 이루어져서 한 방만 맞아도 머리통이 터져 나갈 수 있었다.

  철커덩! 데구르르르!

  데븐스의 투구가 우그러지면서 튕겨져 나갔다. 어떤 충격에도 끄떡도 없는 데븐스의 얼굴이 드러났다.

   가르딘은 또다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놈들은 다 뭐야? 왜 자꾸 시체들이 움직이는 거야!’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데븐스의 얼굴이 너무 앙상했다. 앙상하다 못해 뼈만 남은 것들이 살아 있다고 말도 하며,움직이기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들어 죽인 자 들이 다시 살아날까 겁이 날 지경이다. 이제까지 가르딘이 죽인 자들을 나열하면 앉아 번호로 연병장을 100바퀴를 돌아도 부족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크르르릉!

  데븐스는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표정을 지을 수 있는 피부가 없는 이상 그냥 검붉은 눈빛을 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더 소름 끼치게 만들기는 했다.

  스필언과 미토스, 쉴라는 데븐스의 모습을 보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살아 있는 시체이며 오러마스터 이상의 능력을 보유한 존재는 별로 없었다. 그런 존재는 죽음 이후 어둠의 마기로 다시 탄생한 데스나이트뿐이다.

  “공작님! 놈은 400년 전에 대륙을 피에 젖게 만든 데븐스입니다.”

  "아무래도 데스나이트로 부활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둠의 기사라고 불리는 데스나이트는 살아생전의 능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데다 어둠의 마력을 받는 이상 힘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또한 불사의 육체를 가지고 있어 웬만한 충격에는 죽지도 않는다.

  “저희들도 돕겠습니다.”

  "너희들은 운기요상이나 제대로 하고 기다려. 이놈은 내가 손볼 테니.”

  어정쩡하게 도움을 줘봤자 귀찮기만 했다. 데븐스가 강하기는 하지만 못 죽일 정도는 아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나서고 싶었지만 가르딘의 말대로 내공이 불안정했다. 괜히 어설픈 도움을 주었다가는 쉴라와 같은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다.

  ‘리치도 죽였는데,똘만이를 못 죽인 데서야 말이 안 되지.’

  어차피 가르딘은 데븐스에게서 천룡검을 빼앗아야 한다. 천룡검에 신마의 사념이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만일 그렇다면 문제가 커진다. 놈이 달아나는 것도 원천 봉쇄해야 한다. 무극칠검식은 가르딘의 독문비기다. 비기가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크아아아앙!”

  데븐스가 소리를 질렀다. 분노한 데븐스는 지니고 있는 어둠의 오러를 모두 끌어올렸다. 검은 기운이 데븐스의 전신을 뒤덮었다. 어둠의 기운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타는 듯한 어둠의 기운이 주변에 닿자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 시작했다. 힘의 세기로만 따지만 프레인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파팟!

  지면을 있는 힘껏 박차자 데븐스의 신형이 일순간 튕겨 나갔다. 폭풍 같은 저돌적인 공격을 바라보던 가르딘이 땅을 거세게 박찼다.

  쿠우웅! 쩌저저저적!

  휘청!

  가르딘이 지면을 내리밟았다. 천룡무상각의 세 번째 비기인 천룡진각이다. 내리치는 힘으로 지축을 흔들어 충격을 주는 기술이다. 천룡진각을 사용하자 지축이 거센 충격을 받더니 좌우로 갈라졌다. 숲 전체가 진동하는 듯한 충격이었다. 광폭한 바람처럼 내달리던 데븐스 의 신형이 지면을 내딛자 휘청거렸다. 데븐스는 그 즉시 균형을 잡기 위해서 있는 힘껏 날아올랐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데븐스가 가르딘을 찾았다.

  “아니?”

  있어야 할 장소에 가르딘이 없었다.

  “여기다.”

  “헛!”

  데븐스가 놀라기도 전에 가르딘의 발차기가 데븐스의 목에 작렬했다.

  빠각!

  슈우우웅 푸아앗!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데븐스의 머리와 몸이 분리된 채 바닥에 처박혔다. 흙 속에 밝히 데븐스가 벗어나기 위해서 바동거리며 일어서는 순간에 가르딘이 또다시 나타났다. 가 르딘의 두 주먹에서 형성된 기류가 데븐스의 몸을 격타했다. 가볍게 친 것 같지만 진각에 실린 힘이 고스란히 주먹에 스며들어가 있었다. 천룡무상권의 제6식 천룡붕권의 무지막지한 위력이 데븐스의 신형을 5미터 이상 치솟게 만들었다.

  푸우우웅!

   퍼퍼퍼퍼퍼퍼퍽!

  솟구쳐 오른 데븐스의 신형을 따라서 날아오른 후 연속적인 연환권격술을 선보이는 가르딘이었다. 인정사정없이 데븐스의 몸을 팼다. 갑옷이 우그러지고,짓이겨지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뼈가 가루가 되어 즉사했겠지만 이미 죽은 데븐스의 몸은 무척이나 단단했다. 데븐스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검을 사용해서 가르딘의 공격을 벗어났다. 천룡검의 날카로운 예기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신마의 독문 병기다운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머리가 없는데도 반격을 한단 말이지.’

  가르딘이 데븐스의 머리가 떨어진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역시나 데븐스의 머리는 여전히 검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머리가 완벽하게 부서지지 않는 이상 몸은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몸이 타이탄도 아니고, 이게 뭐야?” 

  목이 부러지면 죽어주는 것이 목을 부러뜨린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이러면 목을 부러뜨린 의미가 없지 않은가! 가르딘은 짜증이 났다가 기막힌 생각이 들었다.

  가르딘이 짱돌을 굴리는 사이에 데븐스의 몸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가르딘은 그 즉시 데븐스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날아오는 검을 향해 들이밀었다. 

  멈칫!

  머리가 사라지면 데븐스도 살아남지 못한다. 흉흉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데븐스의 모습에서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땀이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호오!’

  "그래도 머리는 소중히 여긴다 이거지.” 

  “이...비겁한 놈!” 

  "비겁하기는 수단이 좋다고 해라.” 

  머리만 남은 것이 말은 잘도 하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대화를 하기에는 가장 좋은 상황이 되었다. 몸과 머리가 분리된 데븐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도 저도 하지 못하게 된 데븐스는 열불이 터졌다. 화가 나서 공격을 감행했지만 가르딘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데븐스의 머리를 이용하여 공격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었다.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가는 데븐스의 머리가 허무하게 쪼개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네...놈이 기사라면 이런 비열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딴 말에 동요하는 기사는 애송이지. 안 그래.” 

  가르딘은 데스나이트 데븐스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말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데븐스는 깨닫지 못하는 듯 했다. 프레인조차 가르딘의 말발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데 어찌 데븐스 따위가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놈... 내가 죽더라도 너는 반드시 죽...이겠다!” 

  "설마 네가 죽는다고 해서 나도 죽을 거라는 착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윽!’

  데븐스는 자신이 방패막이가 되는 순간에 죽음을 각오하기로 했다. 최강의 초식을 펼치면 가르딘과 같이 동귀어진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가르딘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가르딘은 데븐스의 머리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며 가지고 놀았다. 

  "네놈의 의지는 높게 사주마.” 

  "나를 조롱하지 말고 어서 죽여랏!” 

  "죽음을 각오한 네 의지에 경탄을 보낸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 검을 주면 머리를 돌려주지.”

  “뭐?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싫으면 이 상태로 머리가 으깨져서 죽든가.” 

  가르딘은 전혀 아쉬울 것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어차피 주도권은 가르딘이 가지고 있었다. 데븐스로서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 가르딘이 머리를 부숴버리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게 된다.

  '이놈,나를 놔주는 즉시 네놈은 죽는다!’ 

  데븐스는 교환하는 그 찰나에 모든 것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가르딘의 말대로 데븐스가 교환을 수락했다. 데븐스의 몸이 가르딘과 일정 거리 내로 떨어졌다. 서로 머리와 검을 교환하는 즉시 다시 대결을 펼칠 듯한 자세를 취했다.

  지켜보고 있던 쉴라와 스필언,미토스는 대결이 이상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가르딘이 잘려진 머리와 대화를 나누지 않나, 검과 머리를 교환한 후 대결을 벌이자고 하지 않나 상식적이지 않았다. 시작은 공전절후했는데 지금은 치열하기는커녕 치사했다. 가르딘의 교묘한 술법에 이제까지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했던 데븐스가 힘 한 번 사용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장면이 어색하게 보였다. 

  쉴라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가르딘과 데븐스의 몸이 마주섰다. 머리가 없는 몸이 무인조종으로 움직이는 것이 신기한 가르딘이다. 차라리 머리를 다른 곳에 두고 몸만 가서 싸우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셋에 서로의 물건을 넘긴다.” 

  “좋다.”

  가르딘이 쉴라를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무언가 부탁을 하려는 태도였다. 쉴라는 순간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쉴라야! 숫자 좀 세라.”

  “예?”

  혈전 중에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알 수가 없는 쉴라였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는 쉴라였다. 가르딘의 성격이 쉴라마저 조금은 이상하게 바꾸어놓았는지 몰랐다.

  -하나.

  -둘.

  -셋.

  맑고 청아한 쉴라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서로가 원하는 것을 던졌다. 데븐스와 가르딘이 원하는 것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데븐스의 몸이 앞으로 달려 나가 목을 잡는 그 순 간에 가르딘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착!

  가르딘이 천룡검을 잡자 미친 듯이 검음을 토해내었다. 왜 자신을 잡느냐고 반항을 하는 것 같았다. 가르딘은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천룡검의 분노가 느껴졌다. 앙탈이 제법 심했 다. 가르딘이 천룡무상신공을 운기해서 천룡검의 기운을 강제적으로 가두었다. 지금은 앙탈을 받아줄 때가 아니었다. 검명을 토해내던 천룡검이 가르딘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천룡검의 영성을 힘으로 잠재운 것이다. 천룡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는 가르딘이었다.

  "이...놈!”

  "왜?”

  “약속이 다르지 않느냐!”

  가르딘은 쉴라가 '셋!’을 외치는 순간에 데븐스의 머리를 던지기는 했다. 데븐스의 몸도 머리를 받기 위해서 손을 벌렸다. 조금만 가까이 가면 머리를 잡고 원래의 모습으로 합체가 가능했다.

  그런데 닿을락 말락 하는 그 사이에 데븐스의 머리가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이 가르딘의 손바닥으로 끌려들어 갔다. 데븐스의 몸은 합체를 하지 못하고 멀뚱히 서 있는 상태가 되었다. 가르딘은 머리를 던지는 상황에서 허공섭물을 사용했다. 심검의 경지에 든 가르딘은 작은 기운을 데븐스의 머리에 심어 놓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 마치 머리통에 줄을 매달아놓고 다시 잡아당기는 형상과 같았다.

  "나는 원래부터 악당과는 약속을 하지 않아. 어차피 너도 약속을 지킬 생각은 아니었잖아, 안 그래!”

  "닥...쳐라! 비열...한 놈!”

  "그런 소리 자주 들었다. 그러니 욕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라. 나는 그냥 네 머리를 으깨 버릴 테니!”

  "안... 돼!”

  가르딘의 다음 행동에 데븐스가 기겁했다.

  데븐스의 몸이 가르딘을 향해 빠르게 쏘아져왔다. 

  하지만 가르딘이 손에 힘을 주는 시간은 그보다 더 빨랐다. 데븐스의 몸이 미처 다가오기도 전에 머리가 으스러지고 있었다. 조여 오는 힘에 데븐스의 머리가 부서져갔다. 머릿속에 있는 핵이 부서져 버리면 데븐스는 끝장이었다.

  으드드드득!

  “크아아아아악!”

  억울해서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수 없다는 듯이 마지막 비명을 지르는 데븐스였다. 달려오던 데븐스의 몸도 머리가 으스러지자 힘을 잃고 그 자리에 멈추었다. 멈추어진 몸은 얼 마 버티지 못하고 으스러져 가루가 되어갔다. 남겨진 것은 찌그러진 투구와,갑옷뿐이었다. 세븐핸드 최고의 검객으로 불리는 데븐스의 죽음치고는 너무 허망했다. 그가 상대한 자가 가르딘이 아니었다면 이처럼 어이없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데븐스는 죽기 전까지 가르딘을 너무 몰랐다. 약속을 그다지 신용하지 않는 가르딘이다. 하물며 악당과는 절대 약속을 하지 않는다. 했다고 해도 먼저 뒤통수를 쳐버린다. 그 것이 가르딘이었다.

  “후우! 이제 다 끝났겠지.”

  얼토당토않고 이상한 놈들이 나타나서 일이 꼬여버리고 말았다. 괜히 비싼 빵 처먹고 힘만 낭비한 꼴이었다. 그래도 수확은 한 가지 있었다. 손에 들린 천룡검이 마음에 들었다. 오랫동안 사용한 검처럼 느껴졌다. 그전에 신마의 독문병기로서의 착실히 역할을 수행한 놈이 왜 이상한 길로 빠졌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쉴라와 신성이 가르딘에게 다가왔다.

  “이제 갈길 가자.”

  “엘프들이 죽고, 다쳤는데 그냥 가요.”

  “그럼 뭐 하게.”

  “치료는 해주고 가야잖아요.”

  손톱만큼 양심에 걸리기는 한 가르딘이다. 그렇다고 엘프들이 죽어서 슬프거나 가슴 아프지는 않다.

  “나... 도 그럴 생각이었다.”

  “거짓말!”

  “나는 평생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다.”

  뻔뻔함이 극치였다. 표정만 보면 정말인 줄 착각을 할 정도다. 쉴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가르딘을 쳐다보았다. 좀 전에 데븐스를 가지고 논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뻔뻔하기는,그럼 조금 전에 한 거짓말은 뭐예요!” 

  “난 악당하고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알면서 왜 그래. 그런 놈들은 먼저 배신해 주는 게 예의야.”

  말 같지도 않는 말은 그럴듯하게 하는 가르딘이다. 스필언과 미토스도 그럴듯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쉴라는 뒷골이 당겼다. 가르딘하고 있으면 영웅들마저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들었다. 또한 악당도 가르딘에게 걸리면 불쌍해 보였다. 누가 악당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찌릿!

  가르딘은 갑자기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생소하기까지 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봐서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르딘은 그 순간 불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그래요?” 

  “몰라.”

  기감을 확장시켜 주변을 돌아보았는데 왜 불안감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도대체 어디서에 기인한 것인지 확인하기 힘들었다. 그 순간에 지면을 내리누르는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미세하지만 그 기운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위?’

  허공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가르딘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지점이었다. 확인하기 위해 가르딘은 천룡안을 개방하여 안법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까마득한 하늘에 점 2개가 보였다. 큰 점 하나와 작은 점 하나였다.

  “갑자기 하늘은 왜 봐요?”

  “하늘에서 점이 날아온다.”

  “점이요!”

  “거리를 계산하면 직경 30미터짜리와 5미터짜리는 되겠는데!”

  “그런데요?”

  “이곳으로 떨어지고 있어!”

  “예?”

  하늘에서 떨어지는 점치고는 무척이나 크다. 그리고 속도 또한 굉장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가르딘과 쉴라, 신성 모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운... 석?”

  “왜 갑자기 운석이 이곳에 떨어지는 거야!”

  저 정도 크기면 이 일대는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숲이고 나발이고, 다 날아가고 거대한 웅덩이 하나만 덩그러니 남게 될 것이 확실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곳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도망치자.”

  “지금 그게 말이 돼요. 그럼 엘프들은요!”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엘프들이 불쌍하지도 않아요!” 

  “응.”

  태연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가르딘이었다. 엘프들이 죽든지 말든지 그게 자신하고 무슨 상관인가! 그렇다고 운석을 막을 방법이 딱히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럴 때는 그냥 도망치는 게 상책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망치기 힘들어질 뿐이다. 가르딘이 재촉했지만 쉴라와 스필언, 미토스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망치는 것보다 막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못 가요.” 

  “그럼 가만히 있다가 같이 죽게!” 

  “막을 방법을 생각해 봐야죠.” 

  “그럼 같이 도망치자고 하면 되잖아! 어서 가서 말하자!” 

  가르딘이 엘프들에게 가서 다급한 상황을 전했다. 맴피스와 장로들은 운석이 떨어진다는 말에 놀라서 기겁하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지요.”

  “갈 수 없습니다!”

  “이곳에 세계수가 있습니다. 세계수를 버리고 우리가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니, 지금 목숨이 걸렸는데, 그까짓 나무가......!” 

  차마 더 이상 하지 못한 가르딘이다. 맴피스와 장로들이 무섭게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엘프들에게 세계수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가르딘처럼 함부로 여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가르딘이 쉴라에게 전음을 날렸다. 

  ‘안 간 데잖아! 우리라도 가자.’ 

  ‘안 돼요. 우리 잘못도 있는데 어떻게 그냥 가요.’ 

  ‘그럼 어떡하라고!’ 

  ‘막아야죠!’ 

  ‘어떻게’

  ‘그건 아저씨가 알아서 해야죠. 연약한 제가 뭘 하겠어요.’

  ‘뭐? 내가?’

  ‘아저씨가 막지 못하면 나는 연애도 해보지 못하고 죽게 생겼네요.’

  ‘성녀가 무슨 연애!’

  ‘성녀는 사람 아닌가요. 저는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 거예요.’ 

  ‘너 잘났다!’

  아주 막 나가는 성녀였다. 성녀가 혼인한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도 못했다. 쉴라가 아니라면 감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가르딘은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쉴라 때문에 짜증이 났다. 더군다나 이제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도대체 운석이 왜 지금 떨어지는 거야!’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엘프 마을을 떠나고 난 후에 떨어져도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처럼 고민을 할 필요성도 없을 것이다. 늦은 후회를 해봐도 소용없는 짓이 되었다. 지금 당장은 운석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최대한 하늘에서 막아야 하는데.’ 

  지상에서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숲 전체를 기로 보호하는 것은 가르딘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떨어져 내려오기 전에 하늘에서 박살을 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크... 하하하! 네놈이 아무리 강해도 여기서... 죽을... 것 이다!”

  가르딘의 심망에 당한 후 죽었어야 할 프레인이 이제야 기운이 다해서 소멸해 가고 있었다. 프레인은 애초에 라이프배슬은 2곳으로 분리를 해놓았다. 물론 대부분의 생명력이 들어 있는 곳은 가르딘에 의해서 부서졌다. 마지막 생명력을 불사를 수 있는 곳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가르딘이 처음에 잘라낸 프레인의 팔이었다. 프레인은 자신의 남아 있는 생명력과 영혼의 힘을 한가지 마법에 모두 소모해 버렸다. 이대로 가르딘을 놔둔 채로 혼자 죽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프레인이 시전한 마법은 9서클 최고 마법 중에서도 금기 마법으로 통하는 메테오(혜성충돌)였다. 일단 메테오가 시전 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낙장불입의 마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잔인한 마법이었다. 작은 운석에 불과하지만 대기 위에 떠 있는 운석이 지상으로 낙하면서 받는 속력과 위력에 지상은 모든 것이 소멸되어 버린다.

  프레인은 메테오를 시전하기 위해서 마법진을 그리고, 어둠의 마력까지 소환했다. 그가 가진 마력만으로도 메테오를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프레인의 생명력과 영혼, 어둠의 마기가 메테오 마법진에 스며들어 갔다.

  우우우우우웅!

  마법진이 음습한 빛을 뿜어내며 허공을 향해 뻗어나갔다. 

  프레인은 마지막 남은 생명력을 소모한 후에 가루가 되어 부서져갔다. 어둠의 길드 최강의 다크로드가 가르딘을 죽이기 위해서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다.

  엘프들이 죽어도 숲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개개는 바람에 가르딘은 운석을 막기 위해서 날아올랐다. 스필언과 미토스도 가르딘을 돕겠다며 따라나섰다. 가르딘은 운석까지 가기위해서 최대한 힘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력을 사용하여 날아갈 수도 있겠지만 스필언과 미토스가 문제였다. 그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되었다. 엘프들이 바람의 정령을 사용해서 하늘로 올려주겠다고 한 것이다. 엘프들도 목숨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기에 최선을 다했다.

  “제가 도와드리겠어요.”

  가르딘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된 리니안이 나섰다. 그녀는 가르딘에게 조금이나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것이 엘프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 여겼다. 리니안이 바람의 정령을 소환하였다.

  바람의 정령을 타고 가르딘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바람이 감싸는 느낌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가르딘이었다.

  ‘정령도 나름 쓸모가 있군.’

  가르딘의 뒤를 이어 스필언과 미토스도 정령의 도움을 받아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깃털처럼 날아오른 가르딘과 신성은 운석을 향해 날아갔다. 가장 큰 운석을 가르딘이 맡기로 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떨어지는 작은 운석을 스필언과 미토스가 맡았다.

  바람의 정령은 지상에서 까마득히 높은 곳까지 가르딘과 신성을 데리고 올라갔다. 공중으로 올라오자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신형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였다.

  휘이이이이잉!

  거세게 부는 바람이 순식간에 정지되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운석의 압력이 바람마저 정지시킨 것이다.

  ‘스필언, 미토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운석은 떨어져 내려오는 속도가 빠르기에 엄청난 압력과 고열을 수반하니 한 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여력을 남기지 마라! 너희들 의 잠들어 있는 힘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운석은 반드시 부서뜨릴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가르딘은 스필언과 미토스가 약간 걱정이 되었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기는 했지만 가르딘이 보기에는 아직 멀었다. 녀석들이 얼마나 해주는가에 따라서 이번 일의 성패가 달렸다.

  ‘녀석들보다 내가 더 걱정이군!’

  처음에 볼 때는 점만 한 것이었지만 근처까지 접근하니 그 크기가 허공을 뒤덮었다. 가르딘은 괜히 자신이 큰 것을 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득 가르딘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정령이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령도 두려움이 있나?’

  운석이 가진 거대한 압력과 파괴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르딘은 말을 걸어 보았다. 정령은 자연의 총화로 만들어진 결정체다. 마음의 언어가 통할 수 있다면 대화가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소림의 혜광심어를 능가하는 천룡심어로 바람의 정령에게 말을 걸었다.

  '떨고 있냐.’

  우우웅!

  휘청!

  가르딘이 말을 걸자 정령이 깜짝 놀랐는지 일렁거렸다. 그 바람에 가르딘은 몸을 휘청거렸다. 놀라기는 가르딘이 더 놀라는 상황이었다. 말 한 번 걸었다가 허공 끝에서 떨어질 뻔 했다.

  -어떻게......?

  ‘내가 말 거는 게 이상하냐?’

  -솔직히 그래요. 엘프들 중에서도 하이엘프만이 우리와 의사소통이 조금이지만 가능하거든요.

  정령은 의사소통이 가능한 가르딘을 신기하게 보았다. 인간들 중에서 간혹 가다 정령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부릴 수 있는 능력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정령도 두려움을 느끼느냐?’

  -느끼죠, 약간 아프거든요. 뭐! 그래도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서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에요.

  '너 말이 많구나.’

  -솔직히 많이 답답했거든요. 말을 할 수 있는 게 이처럼 재밌는 줄 처음 알았어요.

  ‘지금 상황에서 대화를 계속 해줄 수는 없겠구나!’ 

  -아쉽네요.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는 정령과는 다르게 가르딘은 진중해 졌다. 조금 있으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운석을 홀로 막아야 한다. 집중해야만 무사하게 일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버틸 수 있냐?’

  -운석의 압력과 열이 굉장해서 오래 버티지는 못해요. 

  정령의 능력은 오로지 소환자의 역량에 따라 달렸다. 리니안이 부릴 수 있는 정령의 능력은 그 정도가 한계였다. 더 강력한 정력을 소환하려면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가르딘도 신성에게 한 말대로 한 번에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운석 쪼가리 한 개라도 지상에 떨어지면 재앙이었다. 10미터 크기의 운석이 직경 1,200미터, 깊이 130미터의 위력을 보인다고 한다. 메테오가 왜 금기마법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위력이다. 아주 오래전 팔레슨 왕국이 드래곤의 헤즐링을 우발적으로 죽인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분노한 드래곤이 팔레슨 왕국에 메테오를 사용했다. 팔레슨 왕국은 그날로 대륙에서 지워졌었다. 

  “가능한지 모르겠군.”

  일전에 가르딘은 라이젠의 레어에 가는 길에 약간의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었다. 깨달음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각각의 떨어진 검법 간에 호환이 가능하다는 실마리였다. 무극칠 검식은 서로 떨어져 있는 단일화된 검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끊임없이 고심을 거듭한 끝에 가르딘은 몇 가지 초식은 혼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조금 더 발전하면 연환결의 실마리를 완벽하게 풀 수 있을 날이 올지도 몰랐다.

  “나의 의지가 하늘을 꿰뚫으면 세상에 부수지 못할 것은 없다!”

  가르딘의 몸에서 무상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대기를 압도하는 무지막지한 무형의 기운이었다. 가르딘의 기운이 파동이 되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넘실거리는 기운은 허리케인처럼 돌풍을 만들었다.

  -오오! 굉장하네요!

  “지금은 말 시키지 마라.”

  -알... 았어요.

  정령이 말시키는 바람에 정신이 다 사나웠다. 한 번 대화의 물꼬를 틀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괜히 말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가르딘이다. 대화단절을 선언한 가르딘이 다시 집중했다. 생각은 해보았지만 처음 시도하는 무극칠검식의 연환결이었다. 그 힘의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르딘도 짐작하지 못했다.

  “간닷!”

  쌔애애애애앵! 푸우우우우우우웅!

  떨어지는 운석이 가공할 위력을 뿜어내었다. 구름마저 회오리처럼 뚫려 나가고 그 주변이 와해되어 버렸다. 허공에서 느껴지는 압력으로 인해 전신이 받는 압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전신을 거대한 망치로 으깨는 듯한 충격이 가해졌다.

  “의지가 하늘에 닿으면 파천의 기운은 자연스럽게 검에 실려 무수히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혼탁한 기운의 파동이 제자리에 설 때 모든 것은 한가지로 일통하게 되어진다!”

  가르딘의 의념과 천룡무상진기가 하나로 이어졌다. 이제까지 경험한 가르딘의 모든 능력이 천룡무상진기와 함께 검으로 전달이 되었다. 가르딘에 의해서 강제로 잠을 자게 된 천룡검이 부르르 떨며 검명을 통해내었다. 천룡검이 푸른빛을 토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가르딘은 천룡검을 들었다. 내려오는 운석을 향해 천룡의의 터져 나왔다. 천룡검의 끝에 가공할 만한 기운이 형성되어 하나의 구체로 완성되었다. 이제까지 펼친 파천멸환의 검환과는 크기와 기운자체가 달랐다. 무극만검의 운용요결과 가르딘의 의지가 혼합된 검환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발산했다.

  “이야야얍!”

  기합성을 내지르며 가르딘이 검의 환을 운석을 향해 내던졌다.

  대기를 찢는 파공성을 내며 쏘아져 내려오는 운석과 검환의 크기가 비슷했다. 아니 거의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가 더 강한가는 충돌이 일어나면 알게 될 것이다.

  슈우우웅!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운석과 아래서 솟구쳐 올라오는 검환이 마침내 부딪쳤다. 광폭한 폭음이 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거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검환이 운석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검환에 닿은 불덩어리 같은 운석이 소멸하고 있었다. 일검에 실린 위력이 무념무상의 경지에 달하면 유를 무로 돌려버릴 수 있는 것이 무극만검이다. 무극만검의 오의가 검환에 실려 있어 운석을 소멸시켜 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누군가보고 있었다면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대기를 들끓게 만들었던 유성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한 순간에 팟! 하고 소멸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시전을 한 가르딘도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환결의 위력이 이처럼 굉장할 줄은 가르딘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은 전력을 다했다고 하기에도 말하기 어려웠다. 연환결의 성취가 고작 절반밖에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완성된 힘을 사용하게 된다면 대륙을 한 방에 뒤엎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굉장하군!’

  무극칠검식이 모두 이어져 하나의 검식이 되었을 때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가르딘은 그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과연 이 검식을 누가 막을 수 있을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굉장해요!

  바람의 정령이 가르딘의 엄청난 모습에 놀랐다는 듯이 박수를 쳤다. 박수소리에 정신을 차린 가르딘은 놀란 가슴을 다스리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이 정도는 가뿐하지.’

  우쭐한 것도 잠시였다. 충돌을 막는 당사자는 가르딘만이 아니었다. 가르딘보다 작은 운석이기는 하지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어떻게 됐는지 가르딘이 살폈다.

  “이런!”

  운석을 완벽하게 부수기는 했다. 그러나 운석을 부수는 대신에 스필언과 미토스가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힘을 잃고 떨어지는 스필언과 미토스가 보였기 때문이다. 가르딘은 그 즉시 섬전행을 운용했다.

  쌔애앵!

  -같이 가요!

  너무 빠르다 보니 바람의 정령이 뒤처지는 상황이 되었다. 가르딘은 정령의 외침을 무시하고 떨어지고 있는 스필언과 미토스를 향해 의지를 뻗었다. 가르딘의 의지는 허공을 타고 거미줄처럼 뻗어나갔다. 급속하게 떨어지는 스필언과 미토스가 가르딘의 허공섭물에 의해서 공중에서 멈추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바닥에 떨어져서 으깨질 뻔한 신성이었다.

  신성을 낚아챈 가르딘이 상태를 체크했다.

  운석이 낙하하면서 생겨난 압력과 열기에 스필언과 미토스의 옷이 넝마처럼 타들어가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본원진기까지 소모하다니! 참!”

  본원진기란 다른 말로 생명력을 의미한다. 내공의 근원도 삶을 살아가는 생명력에서 기원을 하게 된다. 본원진기가 샘물의 근원이라고 하면 내공은 샘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샘물은 사용한 후 다시 채울 수 있지만 샘물의 근원이 마르게 되면 샘터 자체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근원이 마른 후 한참이 흐르면 내공이 전폐되어 버린다. 마르지 않고 흘러가는 힘의 원천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신성은 더 이상 신성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가르딘은 신성의 무모한 행동에 화가 나는 반면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스필언과 미토스의 행동에 부끄럽기까지 했다.

  ‘영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마음가짐이겠지.’

  왜 신탁에서 스필언과 미토스를 영웅으로 선택했는지 느껴가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은 이대로 신성의 내공이 전폐 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

   가르딘은 천룡무상신공을 개방했다. 지금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돌이킬 수 없기에 가능한 신속하게 내공을 개방해 신성의 본원진기를 채워주기로 했다. 공령지체에 달 한 가르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생명력을 소진해야 했을 것이다.

  하늘을 담은 용의 기운이 솟구쳐 올라 가르딘이 지닌 무상의 의지와 결합하였다.

  쉬이이이잉!

  가르딘을 중심으로 용권풍이 형성되었다. 천룡무상신공의 기운이 대기의 기운마저 요동치게 만든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가르딘은 두 신성의 단전에 손을 대었다. 천룡무상신공으 로 대자연의 기운을 흡입하여 원기를 만들어 두 신성의 단전을 채우기 시작했다.

  "크음!”

  몸 안으로 스며드는 원대하고, 맑은 기운을 느꼈는지 스필언과 미토스가 신음을 내었다. 가르딘은 그 즉시 신성의 뇌리를 일깨웠다. 단전에서 시작된 기운을 운기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스스로 해야 될 일이다. 

  ‘일어나라!’ 

  ‘헛, 공작님!’ 

  ‘공작님!’

  ‘깨어났으면 단전에서 시작되는 기운을 흡입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라.’

  스필언과 미토스는 가르딘의 뜻대로 항마멸사신공을 운용했다. 의식은 깨어났지만 몸은 아직 움직이지 못했다. 신성이 할 수 있는 것은 가르딘이 준 자연지기로 소모한 본원진기를 채우는 길뿐이었다.

  단전에서 시작된 무한한 힘은 스필언과 미토스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있었다. 그동안 그들은 항마멸사신공의 극의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파장 안에 자연의 모든 총화가 스며들어 가고 있기에 더 넓고 웅대한 힘의 편린을 경험하고 있었다. 항마멸사신공은 단순히 마를 멸하는 불도의 심공이 아니다. 마음을 수련하고 깨달아 불신 경지에 이르도록 만들어 가는 수련의 심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저 강해지려고만 해서는 불도의 높은 뜻을 깨우칠 수 없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자만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나 노력했기에 강해지고 있다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만이었던 것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이 자연스럽지만 거칠지 않게 단전에서 시작된 만물의 기운을 받아들어 새롭게 세상을 인지하는 넓은 마음을 얻어가야 한다.

  우우우우웅!

  스필언과 미토스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거센 기운이 잔잔하게 변하면서 만물을 포용하는 관용을 보이고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표정이 편안하게 변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이치에 달통한 듯한 모습이었다.

  가르딘은 스필언과 미토스의 상태를 보자 경악했다. 10년을 수련해서 겨우 신성과 같은 경지를 꿈을 꾸게 되었다. 그것도 절대의 심공이라고 불리는 천룡무상신공의 도움으로 말이다. 천룡무상신공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도 못하는 심상의 경지를 스필언과 미토스는 고작 3년 만에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영웅을 인도히는 자.

  신탁에 정해진 대로 가르딘은 영웅에게 길을 제시하는 인도자가 되고 있었다. 새삼 신이 정한 율법이 무섭기까지 했다. 누군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을 정해놓았다고 생각을 해봐라,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거 무신론을 부정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신앙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가르딘도 요즘 들어 신에 대한 또 다른 성찰을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가르딘은 한 가지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신에게 잘못 찍히면 직살 나게 고생하다가 인생 종친다.

  가르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 했으면 많이 한 것 아닙니까! 조금 편하게 좀 해 주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마왕이 부활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 개고생을 이만큼이나 했으면 가르딘도 할 만큼 한 것이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조금 편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계신 라이니언에게 빌었다. 물론 소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일정을 보니 꼭 들어준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 주신은 가끔가다 수위조절을 잘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적당히 융통성 있게 넘어가야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것 아닌가!

  ‘신은 사람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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