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사우스랜드@@]
러쉬 황제가 등극하고 1년의 시간이 지나가자 내정과 외정이 안정을 찾아갔다. 대륙최강국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다졌다. 내적으로 안정이 되자 외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제국으로서 왕국을 다스리고 위협이 되는 존재를 철저하게 압박을 가할 준비를 마련해 나갔다.
특히 코카 왕국에 대한 공격적인 외교를 감행하였다. 은밀하게 외부적인 압박을 가해 코카 왕국을 조금씩 갉아먹으면서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정책을 시행했다.
코카 왕국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지만 아직도 그 힘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야심을 품고 있는 라이언을 좌시할 수 만은 없었다. 압박을 가하면서도 큰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했다.
러쉬 황제는 대전회의에서 코카 왕국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공식적인 입장은 다른 왕국과 비슷한 조건을 제시해 주어야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았다. 코카 왕국의 무리한 도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옹 정책]이었다.
대전회의가 끝나고 난 후 러쉬 황제는 전대 황제가 사용한 정원으로 가서 차를 마셨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의례적으로 머리를 쉬어주고 있는 러쉬 황제였다. 제국의 일은 모두 차근차근 진행이 되고 있는데, 아이시런 공주가 아직도 돌아 오지 않은 것이 걱정되고 있는 러쉬 황제다. 그래서 따로 카니발 백작을 불렀다.
러쉬 황제의 부름에 카니발 백작은 만사를 제쳐놓고 왔다.
"부르셨습니까."
"거기 앉게."
"황공하옵니다."
"자네도 차 한잔하게."
카니발 백작은 러쉬 황제의 뜻하지 않은 부름에 많은 생각을 하였다.
"가르딘 공작은 잘 있나?"
"그렇습니다."
"아이시런이 발키리 영지로 떠난 지 몇 달이 지났는지 모르겠어. 그런데도 아직까지 발키리 영지에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구나."
러쉬 황제는 아이시런 공주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변방 영지에 너무 오랜 시간 가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카니발 백작은 고민이 되었다. 현재 가르딘 공 작은 외부로 출타 중이었다.
아이시런 공주는 가르딘 공작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을 해보니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이시런 공주가 왜 가르딘 공작을 보려고 하는 것부터가 의문이다.
'설마!'
카니발 백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르딘 공작과 아이시런 공주가 어울리기나 한단 말인가! 물론 가르딘 공작의 뛰어난 점이야 카니발 백작도 인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당치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도둑놈인데!'
카니발 백작은 새삼 가르딘 공작의 야심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오버마인드를 하게 되었다.
"자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나."
"죄송합니다."
"가르딘 공작도 수도에 한번 올라와야지 않겠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가르딘 공작에게 은밀히 소식을 전해서 아이시런이 돌아올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하네."
"알겠습니다."
"단, 내가 말을 했다는 것은 아이시런에게 비밀이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러쉬 황제가 아이시런 공주를 생각하는 마음은 남달랐다. 이유라면 어머니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 되었기 때문이다. 두 형제가 죽고 난 후 러쉬 황제는 약간이지만 죄 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거창한 명분을 떠나서, 권력을 얻기 위해 골육상쟁을 벌인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을 해도 지울 수 없는 더러운 흔적이었다.
카니발 백작은 러쉬 황제부터 부탁을 받은 즉시 가르딘 공작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가르딘 공작님!"
-왜?
"황제 폐하께서 황도에 공주님과 함께 올라오시랍니다."
-그래서 어떡하라고.
"돌려 보내셔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나 출타 중인 것 알잖아. 공주를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돌려보내.
"황제 폐하의 부탁입니다."
-몰라, 알아서 해.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시다니."
-나 지금 그런 것 생각할 여유 없다.
"황제 폐하의 부탁을 외면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다 큰일 납니다."
-내가 왜 너를 황도에 꽂아 둔 줄 알아. 그런 일 해결하라고 보낸 거 아냐! 귀찮은 일은 알아서 좀 해결해라.
황제에게 밉보이고 오래살 수 있는 귀족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황제가 명령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였다. 가르딘처럼 나 몰라라 배째는 것은 경우에 어긋 났다. 카니발 백작은 다급해지고 있었다. 카니발 백작이 유능하다고 해도 이런 경우까지 해결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가르딘 공작님!"
팟!
카니발 백작이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통신구의 불빛이 꺼졌다. 카니발 백작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발키리 영지에 연락을 한다고 해도 가르딘 공작이외에 아이시런 공주를 데려올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데려오려면 황제의 명령이라고 해야 하는데, 러쉬 황제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이도 저도 못하게 생긴 카니발 백작이다. 뜻하지 않은 난관봉착이었다.
"이런 젠장!"
카니발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하고 말았다. 그의 생애 이토록 황당한 경우는 오늘이 처음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카니발 백작의 통신을 받을 때 가르딘은 비스테인상단의 귀빈대접을 받으며 카스틴 항구에 머물고 있었다. 발키리 영지에 공주가 방문하는 시점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웠다. 발키리 영지에 공주가 있다면 적들의 도발을 어느 정도는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시런 공주를 공격하는 제국을 공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영지의 방어력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카아!
"좋다."
비스테 인상단이 제공한 블루마리아라는 술은 달짝지근하고 굉장히 시원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몸 안으로 퍼지는 알싸한 향은 일품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술 한잔 마시며 피로를 풀고 있는 가르딘의 방에 쉴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이제 출발할 때가 됐어요."
"그러냐."
"그런데 너무 천하태평이네요."
"놀 때는 화끈하게, 일할 때는 확실하게. 이게 내 원칙 중에 하나다."
단, 가르딘은 남의 돈일 때나 화끈하게 사용한다. 자기 돈은 절대 화끈하지 않다. 쪼잔의 극치를 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이걸 보고 마왕을 물리치기 위한 여정이라고 생각 하겠어요."
"아! 몰라.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야."
브라나도 대륙에서 카스틴 항구로 돌아오는 여정 동안 가르딘이 한 고생은 이만저만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이 정도 보상은 당연한 권리였다. 또한 그렇게 오래 쉰 것도 아니었다. 고작 3일에 불과했다. 3일 동안 불사지를 듯이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돌아다닌 가르딘이 었다. 마치 목숨을 건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 출발해요."
"알았다."
가르딘은 옷을 챙겨 입고, 곧바로 비스테인상단의 지점장에게 갔다. 여정을 위한 약간의 성의를 받아 보려는 속셈이다. 가르딘은 주겠다는 것 마다하지 않고, 주지 않으면 끝까지 받아 챙긴다.
"이제 그만 출발하려고 합니다."
"벌써 가시려고요."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여정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성의를 거절하는 것도 실례이니 받겠습니다."
라빈스 지점장은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적당한 성의를 표했다. 돈주머니를 날름 받은 가르딘은 무게를 추정해 보았다. 생각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자 조금은 안타까운 표 정을지었다.
그러자 라빈스 지점장이 눈치를 채고, 여분의 차비를 따로 더 주었다. 그제야 반갑게 악수를 나눈 가르딘이었다. 주는 대로 받고, 여비까지 다 챙기고 나서야 가르딘은 삼신기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카스틴 항구를 벗어나고 난 후 가르딘과 일행은 복장을 갈아입고 방향을 틀었다. 동쪽으로 가는 길을 벗어나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쉴라가 느끼는 삼신기의 기운이 미드라이언 대륙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북해와는 극과 극의 방향이었다. 추운 겨울이 아닌 여름이라 대륙은 덥기까지 했다.
30일 정도를 끊임 없이 남쪽을 향해 말을 타고 달렸다. 여러 왕국을 거치는 동안 방해되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이 었다.
대륙의 남쪽 끝은 인간이 발을 들이지 못하는 다크랜드와 비슷한 또 다른 오지가 존재했다. 다크랜드의 몬스터들에 비해서는 적다고 할 수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다양한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라 인간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또한 여름 동안 상상 이상의 비가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는 마른 대지까지 강으로 만들 정도로 엄청나서 사람이 살기가 쉽지 않은 지형이다. 그곳이 바로 남방오지라고 불리는 사우스랜드였다.
내리찍는 태양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했다.
타는 듯한 태양아래 가르딘과 쉴라, 스필언, 미토스는 끊임없이 내달렸다. 사우스랜드에 다가갈수록 인적이 드물다 못해 사라졌다.
"여기서 더 들어가야 하는 거냐?"
"그래요."
''다크랜드에 이어 사우스탠드까지 가보게 생겼구나."
"저 숲의 끝에서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요."
"만날 끝이지."
그놈의 기운은 매번 대륙의 끝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는 절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어떤 고생문이 열려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하며, 거치적거리는 것은 절대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다.
사우스랜드는 말을 타고 들어가기 용이치 않은 곳이 었다. 빼곡한 밀림지대로 둘러싸여 있어 말로 달릴 수 있는 길이 존재하지 않았다. 말은 외곽에 풀어놓고 지금부터는 걸어서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솨아아아악!
밀림의 수풀 사이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굵은 장대비가 내렸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비명성에 가까웠다. 바로 앞조차 굵은 빗줄기에 의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빼곡한 나무와 수풀로 인해 빛이 차단되어 상당히 어두웠다.
밀림지대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목숨이 위험한 이유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쉴라가 없었다면 신기를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질퍽! 질퍽!
땅이 질퍽하게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비는 하루 종일 내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강우량은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신비한 현상이었다.
쉴라의 걷는 모습이 불균형적이었다. 질퍽하게 젖어 있는 땅으로 인해 걸어가는 것도 힘이 들어 보였다.
"무리하지 말고, 내 등에 업혀라."
"그래도 돼요."
"네가 지치면 우리가 더 힘들다."
"알았어요."
두 번 거절하지 않고 쉴라는 가르딘의 등에 업혔다. 등에 업힌 쉴라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여기서 쭈욱 들어가면 돼요."
밀림지대를 지나 안으로 더 들어가자 강이 보였다.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인해 강폭이 넓어져서 밀림지대까지 강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무 사이로 강물이 들어와 있는 모습은 신기한 광경을 연출했다.
"물에서 나무가 자라는 것 같네요."
"비가 더 오면 여기까지 모두 잠길 수도 있겠다."
"나 때문에 신기한 구경 많이 하니 좋죠."
''많이 좋구나! 빠드득!"
강줄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려면 뗏목이 필요했다. 가르 딘의 지시에 따라 스필언과 미토스가 나무들을 베었다. 50미터를 훌쩍 넘는 큰 나무들도 신성의 검격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었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나무를 구해오자 가르딘은 뗏목을 만들었다.
근처에 널린 나무줄기를 이용해서 통나무를 엮었다. 통나 무의 폭이 커서 뗏목 역시 상당히 크게 만들 수 있었다. 통나무의 옆면을 평평하게 깎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 나무를 꽂고 형겊을 씌워 놓으니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그런 대로 배의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제 가자."
"이런 여행도 낭만이 있네요."
비를 맞아 축축한 옷이 거치적거리고, 음습한 날씨는 찜찝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유쾌한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들과 거머리들이 가르딘 일행을 괴롭혔다.
물론 가르딘과 신성은 단단한 신체를 가지고 있어서 피를 빨리지는 않았다. 쉴라도 신성력이 뿜어져 나와 모기들의 접근을 간단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다만 눈앞으로 이리저 리 날아다니는 모기들과 하루살이들이 짜증날 뿐이다.
가르딘은 어린 시절 [대륙영웅전기]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영웅들의 일대 서사시를 당시의 유명한 작가가 약간의 과장을 섞어 집필한 책이다. 한때 굉장한 인기를 누린 책이 다. 총 5권으로 되어 있으며 영웅이 되어 가는 과정과 신기를 찾는 모습까지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세세하고 사소한 내용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 특히 영웅이 신기를 찾을 때, 강대한 적들의 방해를 뚫고 찾아내는 모습만 설명해 놓았지, 여행 중에 벌어지는 사소하지만 짜증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설명해 놓지 않았다. 생리현상과 의식주, 기타 하루살이나 모기 같은 잡스러운 것들이 얼마나 여행을 짜증나게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낭만은 개뿔.'
모닥불 피워 놓고 있으면 아름다운 여인이 영웅의 어깨에 기대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소설 속의 이야기였다. 실제는 오랜 여행으로 인해 꼬질꼬질해질 대로 해지고,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짓뭉개져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비까지 내리면 노래 부르고 싶은 생각은 저 멀리 하늘로 승천해 버릴 것이다. 만약 노래라도 부르면 시끄럽다고 입을 틀어막으며 [잠이나 쳐 자]라고 할 것이 분명 하다.
3일 동안 꼬박 강을 타고 밀림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뗏목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곳곳에서 출몰하는 강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했다. 물속 아래서 집요하게 공격을 하기에 생각처럼 쉽 게 막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잠도 못 자게 하니 짜증이 날 정도였다.
강변에 도착을 한 후 가르딘과 일행은 뗏목을 버리고 또다시 걸었다. 언제까지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밀림지대를 5일 동안 걸어야만 했다.
수풀과 수풀 사이로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검으로 수풀을 쳐내야 길을 낼 수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길을 열었다.
'응?'
가르딘은 눈앞에서 무언가 흔들리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재빨리 쉴라를 뒤로 잡아 댕겼다. 갑자기 뒤에서 댕기는 힘에 의해 끌려가고만 쉴라가 가르딘을 쳐다보며 물었다.
"왜요?"
"마법진이 있는 것 같다."
"그냥 숲인 것같은데."
"숲과 환영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아. 잠시 뒤로 물러서 있어."
공간과 공간의 이질성을 만들어서 환영을 보게 하는 진이었다. 누군가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방어진의 형태였다. 가르딘은 기감을 확장시켰다. 진법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파훼법은 다른 곳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마법진의 파훼법은 진법보다 훨씬 간단할 수 있다.
왜냐! 마정석의 위치만 파악할 수 있으면 파훼하는데 어렵지 않다. 문제는 마법진 자체적으로 마나의 기운을 포함하고 있기에 마정석의 위치를 간파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기감이 특출나게 발달해 있지 않은 자는 마정석의 위치를 발견할 수 없다. 마법사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 마정석의 위치를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가르딘은 기감을 집중하여 마법진 안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기운을 찾았다. 마정석의 위치가 희미할수록 고단위 진법일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마법사의 역량이 높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10미터 전방에서 왼쪽으로 3미터 지점을 중심으로 7미터 간격으로 설치가 되어 있다."
위치를 파악한 가르딘과 신성은 검탄을 형성해서 마법진 안을 공격했다. 거리 차이는 오러마스터에게 그다지 위협을 주지 못했다.
슈우웅!
푸아아앙!
공간의 뒤틀림으로 인해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지만 그것 으로 끝이었다. 공간이 열리자 흔들렸던 그림자들이 원래의 형태로 드러났다. 가르딘의 말대로 마법진이 설치가 되어 있 었다.
"이런 곳에 왜 마법진이 있지? 사람이 있다는 건가?"
현재 가르딘 일행은 사우스랜드 중심의 끝에 다다라 있는 상태였다. 오는 동안 사람의 낌새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전방에서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저 안에서 신기가 느껴지고 있어요."
"조심해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숲의 기운 사이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마법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수상했다. 수상한 곳에 들어갈 때는 조심하는 게 상책이었다.
검은 복장을 한 200명의 무리가 밀림을 헤집으며 누군가를 추적하고 있었다. 몸놀림이 가볍고, 빠르며 일사불란했다. 오랜 시간을 강도 높은 수련을 한 자들의 움직임이었다. 200명이 뿜어내는 어둠의 기운이 시위를 압도하는 듯했다. 보이는 기운만으로도 능히 1만의 대군에 필적할 정도였다.
"우리까지 출전을 할 줄은 몰랐어."
"자칼과 알베이다가 멍청한 것이겠지."
그들은 세븐핸드의 또 다른 인물들이었다. 세븐핸드는 개개인의 지위가 동등하게 주어져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세븐핸드 간의 서열이 존재했다. 자칼과 알베이다는 세븐핸드의 6위와 7위 정도의 실력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에 반해 그들은 세븐핸드의 2위와 3위에 해당하는 실력자들이었다. 세븐핸드의 상위서열 2명이 한꺼번에 움직인 경우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둑길드는 성녀를 찾기 위해서 모든 정보력을 다 동원하였다. 가르딘이 복장과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카스틴 항구부터 추적을 한 결과 사우스랜드까지 찾아올 수 있었다.
"신성의 실력이 어떤지 알 수 있겠군."
"마스터 라고 하니까 조심을 해야 할 거다."
"그래봤자 우리의 상대는 아니다."
오러마스터를 상대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두 사람이 었다.
슈우우웅!
팟!
쉴라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챈 가르딘은 정면을 응시했다. 화살은 빠르면서도 탄성력이 뛰어났다.
또한 보이지 않는 사각지역에서 정확히 노리며 들어왔다. 가르딘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쉴라가 다칠 뻔했다. 가르딘은 기감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기척에 놀라워했다. 숲 자체가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척은 절대로 아니었다. 화살은 지속적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슈슈슉! 슈슈슉!
40여 발의 화살이 가르딘 일행을 조준하며 날아왔다. 빠른 것뿐만 아니라 정확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보통의 기사들이었다면 방심하다가 당할 수도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튀어나와 날아오는 화살을 모두 검으로 쳐내었다.
카가가가강!
스필언과 미토스의 검은 화살보다 빠르고 강했다. 순식간에 108번의 검속이 시전되자 날아오는 화살은 모두 가루가 되어 버렸다. 적은 수풀로 가려진 곳에서 화살을 날리고 있 었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실력에 놀란 기척이 느껴졌다.
가르딘은 스필언과 미토스가 막고 있는 사이에 뒤로 몰래 움직였다. 회살을 발사하는 지점을 외곽으로 치고 들어가 보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뚜렷한 적의가 느껴지고 있었다. 목적도 없이 공격하는 자들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뭇가지를 발판 삼아 튀어 오른 가르딘이 수풀 속으로 향했다. 수풀 속에서 무형의 기운이 조여 오는 것이 느껴졌다.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기운은 명확하게 느껴졌다. 자연의 기운이지만 그 안에 서린 힘은 결코 약하다 할 수 없었다.
-바람의 정령이여! 다가오는 적을 멸하라!
가날픈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르딘은 목소리와 동시에 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것을 느꼈다. 가르딘은 천룡안을 개방했다. 그러자 무형의 기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무 형의 기운은 날개가 달린 여인의 모습이었다. 칼을 들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휘두르자 바람의 칼날이 형성되어 가르딘을 공격했다.
"다짜고짜 공격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눈앞에 보이는 바람의 칼날을 검으로 쳐내었다. 바람에 실린 무형의 힘은 가르딘의 오러 앞에 무용지물이 었다.
사아악!
바람의 칼날을 반으로 가른 가르딘은 날개가 날린 여인을 향해 쇄도했다. 보이지 않는 자연적인 힘으로 형성된 여인이 무섭게 치고 들어오는 가르딘에게 바람의 창을 날렸다. 가르딘은 날아오는 창을 모두 갈라 버렸다.
삽시간에 거리를 좁혔다. 옆으로 피하려는 바람의 정령을 섬전보를 이용하여 따라붙은 후 옆구리를 찔렸다. 허공을 찌른 것 같지만 실상은 달랐다. 천룡무상강기가 기운의 맥을 끊어 버린 것이다. 정령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사라져 버렸다.
까아악!
바람의 정령이 사라지자 여인의 비명성이 들렸다. 수풀 사이로 가려진 곳에서 시퍼렇게 질려 있는 여인(?)을 볼 수 있었다. 여인은 적의가 담긴 눈으로 가르딘을 쏘아보았다. 가 르딘은 여인이라고 해서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상대를 죽이려는 공격을 가했다.
가르딘은 여인을 매섭게 노려보며 다가갔다. 그러자 주변의 여성인지 남성인지 모를 것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놈을 막아!"
"엘프?"
가르딘은 상대가 엘프인지 확신하지는 못했다. 책에서 본적은 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종족 정도로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프라고 짐작한 것은 놈들의 생김새 때문이다. 아름다운 페이스에 귀가 쫑긋한 모습은 엘프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죽여, 말아.'
약간의 갈등이 생겼다. 왜 공격하는지 이유를 확인하고 죽일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은 검 대신 주먹으로 약간 만져주기로 결정했다. 죽지만 않으 면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10명의 엘프들이 검을 빼 들은 채 가르딘을 둘러쌌다. 제법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일반적인 신체능력이 인간 보다는 뛰어난 듯했다. 엘프 2명이 정면에서 검을 찔렸다. 뒷발에 힘을 실어 튀어 오른 반동으로 검을 뻗은 것이다. 빠르기는 하지만 단조로운 공격이었다. 가르딘이 한 발자국 움직이자 엘프들의 공격은 허공을 찔렸다. 근접거리로 접근한 가르딘의 두 주먹이 엘프의 배를 가격했다.
퍼퍽! 퍼퍽!
가르딘의 주먹에 실린 힘은 단단한 철판도 단숨에 부술 수 있었다. 한 대 맞은 엘프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실 끊어지듯 날아가서 처박혔다. 바닥에 나뒹군 엘프는 숨을 쉬는 것도 버거운 모습이 었다.
'얼굴이 너무 거슬려!'
놀란 엘프들이 합공하기 시작했다. 가르딘은 아름다운 얼굴을 한 엘프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런 얼굴로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었다.
또한 모든 사내들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얼굴을 보는 것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데 여기는 떼거리로 모여 있었다.
퍼퍽! 커어억!
일부러 얼굴만 때리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죽탱이를 한 방 갈긴 후 다가오는 엘프의 턱을 아래서 위로 쳐올렸다. 위로 솟구쳐 오르는 엘프의 다리를 잡아서 반대쪽 엘프에게 집어 던져 버렸다.
휘이이이이잉! 쿠다다당!
가르딘의 신형이 바람처럼 회전했다.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번개 같은 뒤 돌려차기에 얼굴을 맞은 엘프가 한 바퀴를 회전하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가르딘의 주먹 한 방 한 방에 엘프들은 반 실신해 버렸다. 10명의 엘프를 쓰러뜨리는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그... 만!"
정령을 사용한 엘프가 가르딘을 향해 애절하게 소리쳤다. 비참하게 쓰러진 엘프들을 보자 더 이상은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엉망이 된 얼굴이 더욱더 안쓰럽게 보였다.
스필언과 미토스를 공격했던 엘프들도 모두 당하고 쓰러져 있었다. 쉴라가 죽이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이미 모두 죽었을 것이다.
"우리를 공격한 이유가 무엇이냐, 이유도 없이 공격했다면 죽을 수도 있다!"
가르딘의 말은 진심이었다. 뜻하지 않은 공격에 당황한 것은 둘째치고 계속 공격하는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
"당신들이 먼저 마법진을 부서뜨렸잖아요!"
가르딘이 없앤 마법진은 엘프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중요한 방어책이었다.
'음!'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목숨까지 노릴 필요는 없지 않는가! 엘프들의 행태가 내심 괘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목숨을 노렸나.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오래전부터 인간들을 피해 이곳까지 왔어요! 수 만 년의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엘프들이 인간들의 손에 죽거나 노예로 팔렸는지 알아요! 그런 잔악한 인간이 마법진을 부수고 침입하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인간에 대한 엄청난 적대심이 느껴졌다. 수만 년의 세월이라면 그녀가 직접 겪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적대심은 쌓여만 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가르딘은 이해하지 않았다. 다른 인간들이 죄악을 저지르든 말든 그건 그런 인간의 책임일 뿐 가르딘의 책임은 아니다. 가르딘은 다른 인간의 책임까지 질 생각이 전혀없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내가 그런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책임을 지기 바라나! 너는 그게 타당하다 생각하는 건가!"
"당신도 인간이잖아요!"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여기서 나가주세요!"
"그럴 수 없다."
가르딘은 단호하게 대처했다. 엘프들의 요구조건은 들어 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신기를 찾으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라는 소리나 진배없었다. 개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한 도가 있었다.
가르딘의 시선이 엘프여인을 지나 그 뒤를 바라보았다. 이 곳을 지키는 엘프들 말고 다른 엘프들이 오고 있었다. 족히 250명은 되어 보였다. 대륙에서 찾아보기도 힘든 엘프들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을 끌고 있었군."
"당신들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 모두를 이길 수 는 없어요!"
엘프여인은 명백한 적의를 불태웠다.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의였다. 설득을 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가르딘은 귀찮음과 짜증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끝까지 대항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엘프들의 안위보다는 신기를 찾는 게 먼저였다. 방해거리를 일일이 설득하는 것도 체질상 맞지 않았다.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움찔!
엘프여인은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다.
가르딘의 기질이 변했다. 차갑게 식은 기운을 맞은 엘프여인은 극도의 불안감이 들었다.
가르딘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려고 하자 스필언과 미토스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가르딘이 한다면 신성들도 할 것이다.
"아저씨 잠깐만요. 제가 한번 말해 볼게요."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쉴라가 가르딘에게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위험하니 물러서라."
"대화를 한번 해봐야죠. 무턱대고 다 죽이실 건가요."
"타협이 없다면 그래야지."
가르딘이 작정하고 검을 쓰면 엘프들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이길 수 없다. 그것은 쉴라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쉴라가 보기에 엘프들은 그저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것이 조금 변질이 되어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지언정, 그 터전을 함부로 침입하는 것을 올바르다고 보지는 않았다.
250명의 엘프들이 가르딘과 일행을 완벽하게 포위했다. 쓰러져 있는 엘프들을 보자 적의가 더욱더 분명해졌다.
대화로 풀어가기 힘든 상황이기에 쉴라는 신성력을 사용하였다. 만물을 주관하는 라이니언의 신성력을 보여준다면 엘프들도 타협을 해줄 것이라 판단을 하였다. 쉴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이 주변을 감쌌다.
"주신의 기운을 풍기는 그대는 성녀 인가요?"
"그래요."
엘프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입을 열었다. 엘프들이 믿고 따르는 자연의 신이자 정령의 신인 그린피스도 라이니언을 보필하는 4대신에 불과했다.
"숲의 일족을 다스리는 멤피스라고 합니다."
"주신을 모시는 쉴라라고 해요."
"무슨 이유로 우리의 안식처를 찾아온 겁니까?"
"신기를 찾기 위해서예요."
쉴라는 신탁에 내려오는 신언을 엘프들에게 알려주었다. 엘프들도 마왕의 강림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놀라는 눈빛이 었다. 마왕의 강림은 단순히 인간만의 위험이라고 할 수 없다. 엘프들에게도 중대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이 꾸미는 거짓된 사실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엘프들이었다. 인간에 대한 경계심으로 인해 상당히 삐뚤어져 있는 엘프들이었다.
"저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무턱대고 공격한 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저들은 인간입니다. 인간은 잔인하고 간악한 존재입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마왕이 강림하면 세상이 멸망을 할 수 있어요. 그 원인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건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될 겁니다."
맴피스도 인간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상의 멸망이 엘프들로 인해 벌어진다면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상대는 성녀였다. 주신을 믿는 성녀가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가르딘은 엘프들이 저희들끼리 엘프어로 떠들자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엿들으려고 해도 고음이 섞인 특이한 미성만이 들렸다.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멤피스는 엘프들의 수장이자 하이 엘프였다. 그가 결정을 하자 엘프들은 어쩔 수 없이 뜻을 따랐다.
"우리를 따라오십시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가르딘과 일행은 맴피스의 뒤를 따라 엘프마을로 향했다.
가르딘의 주변을 엘프들이 적대감을 가진 채 감싸고 있었다.
신기가 이끄는 기운을 따라 가니 엘프마을이 보였다. 엘프들은 나무와 숲을 사랑하는 종족답게 완전한 집을 만드는 대신에 나무 자체적으로 만들어지는 집을 사용하고 았었다.
나무가 집의 형태로 자란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었다. 나무와 집의 오묘한 조화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주변에 흐르는 물소리마저 시원하게 느껴졌다.
쉴라는 신기가 느껴지는 곳이 엘프마을의 북쪽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에서 강렬한 파동이 전해지고 있었다.
엘프마을의 북쪽으로 향해 쉴라가 걸어가려고 하자 멤피스가 막아섰다. 이제까지 순순히 안내를 해주던 맴피스가 돌연 앞을 가로막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엘프들의 적대감이 훨씬 더 높아졌다.
"왜 그러세요?"
"이곳은 안됩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맴피스는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이곳의 존재를 인간들에게 말을 해주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알고 온 것인가! 아니면 모르는 것인가!'
1만 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엘프들의 존재는 희미하게 사라졌다. 이 앞에 무엇이 있는지를 인간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곳에 있는 것은 엘프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인간들이 자칫 위험한 짓을 하게 될 경우 엘프들은 치명적인 상처를 받을 수 있었다.
"이곳은 우리 엘프들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곳입니다. 당장 허락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잠시 시간을주세요."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 확고한 엘프들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시원하게 말을 해주지 않았기에 답답했다.
가르딘은 또다시 시간을 끄는 엘프들이 미심쩍었다. 그다지 신뢰를 주지 않는 엘프들이 아닐 수 없었다.
'누가 엘프들이 의심 없는 순수한 종족이 라고 한 거야!'
가르딘이 보기에 가장 의심이 많은 종족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가르딘의 오해일 수 있었다. 엘프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수만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인간들이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태초의 엘프들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가르딘과 엘프들 모두 누가 틀렸다고 단정하기 힘들었다.
가르딘이 쉴라에게 전음을 사용했다. 쉴라도 신언을 사용해서 말을 건넸다.
'쉴라야 그냥 뚫고 들어갈까.'
'그러지 마세요.'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잖아.'
'그래도 여기는 엘프들의 땅이에요. 주인이 시간을 달라는데 기다려 주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어요.'
'마왕이 강림할지 모르는데 예의는 무슨.'
'아직 부활한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은 네 말을 듣겠지만 계속 시간을 끌면 힘으로 돌파 할 거다.'
'그땐 아저씨 말대로 할게요.'
신기를 찾는 일이 아니라면 엘프들의 뜻을 존중해 주겠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었다. 오래 기다려 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