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78/93)

    @@[제3장 세븐핸드-자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여인이 영지의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예전에 왔을 때와는 또다시 달라진 영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새로 마련된 저택은 무척이나 세련 되었다. 황궁에 비견하기는 손색이 있지만 공작의 저택으로서 손색이 없는 저택이었다. 저택 주변의 영지민들도 활력이 넘쳐 보였다. 가르딘의 신망이 생각보다 더 두터웠다. 영지민들에게 가르딘은 삶을 살아가게 만들어준 고귀한 존재였다.

  "공주님! 제발 사람을 데리고 좀 움직이세요."

  "괜찮아. 이곳을 봐봐!"

  저택 주변의 경계가 대단히 철저했다. 단순히 아이시런 공주가 이곳에 왔기에 철통 경계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공주가 오기 전부터도 경계 태세가 살벌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시런 공주는 저택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확인을 했다. 발키리 영지의 기사들이 저택 주변을 삼중으로 방어를 한데다, 투르의 창기병이 저택의 외곽지역을 맡고 있었다. 또한 마법사들이 마법진을 형성하여 저택의 방어시스템을 최강으로 만들고 있었다.

  "엘리언, 이상하지 않아! 이곳의 방어수준이 황궁에 비견 돼."

  "에이,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제국의 황궁과 이곳을 비교해요."

  엘리언은 아이시런 공주가 겉만 보고 판단을 한다고 여겼다. 카이로만 제국의 황궁은 현재 최강의 방어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어떤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이 곳은 일개 영지에 불과했다. 상식적으로 비교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상해!"

  아이시런 공주는 엉뚱하기는 해도 멍청한 편은 아니다. 또한 감이 대단히 뛰어났다. 그래서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발키리 영지의 방어체제가 익숙하지 않았다.

  사실 발키리 영지의 방어는 황궁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비교가 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황궁의 방어가 아무리 견고해도 발키리 영지의 방어시스템을 따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시런 공주가 본 것만 해도 실상은 엄청나다. 오러마스터 3명, 그에 버금가는 괴물, 고서클 마법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들이 방어하는 지역을 뚫고 들어올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더군다나 그 뒤에는 드래곤들 중에서도 최고령을 자랑하는 노안 라이젠이 버티고 있었다.

  대륙 전체가 덤벼들어도 뚫지 못히는 철옹성이었다. 다만 그 사실을 아는 자가 없을 뿐이다. 드래곤이 고작 집 지키는 개 역할을 한다면 믿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그 사실을 떠버 리는 놈이 있다면 라이젠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 다.

  "그런데 엘리언! 또 당했다며."

  "크윽! 제발 그만 하세요."

  "어린아이를 이기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 아냐!"

  "개는 애가 아니라니까요."

  엘리언이 보기에 브리안은 어린아이를 가장한 드래곤이었다. 알면 알수록 괴물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가르딘 공작에 게 어떻게 그런 아이가 태어났는지 그게 더 미스터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더 벌어졌다. 반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서 다시 봤을 때 브리안은 이전과는 다른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엘리언의 지식은 브리안에게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능글맞은 아저씨가 어디 갔는지 확인해 봤어."

  "목적지를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다만 여러 정황을 살펴 보니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뭔데?"

  "쉴라 성녀께서 오시지 않았을까 추측이 돼요."

  쉴라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엘리언의 뜻밖의 말에 놀라서 되묻는 아이시런 공주였다.

  "쉴라가! 확실한 거야?"

  "제 짐작으로는 확실한 거 같아요."

  가르딘이 여행을 떠날 당시에 있었던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넌지시 물어나 보았다. 물론 확실한 대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대답을 했을 뿐이다.

  엘리언은 좀더 정확하게 확인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황증거들을 수집했었다. 저택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었다면 쉴라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보 안이 철저하게 유지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잖아."

  "증거는 있어요."

  "뭔데?"

  정황상 증거는 될 수 있지만 쉴라가 왔다는 확실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따져서 물을 수도 없는 일이다. 영지 내부의 일을 공주가 참견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반역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물어볼 수 있겠지만 고작 영주의 외출을 가지고 위협을 가할 수는 없다. 또한 지금 아이시런 공주는 심심해서 놀러온 것에 불과했다.

  아이시런 공주가 미심쩍어하는 것과는 다르게 엘리언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가르딘 공작이 어떤 분인지 아시잖아요."

  "그게 쉴라와 무슨 상관이야."

  "가르딘 공작이 라이나 공작부인을 놔두고 다른 여인과 여행을 떠났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잖아요."

  "아! 그렇지."

  아이시런 공주는 그제야 탄성을 내질렀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가르딘을 대입하니 말이 되고 있었다.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여성과 같이 여행을 떠났다는 것부터가 이상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나는 그다지 불안해하지 않는다.

  여인과 여행을 떠나는데 저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을 무척이나 위하는 가르딘이 부인을 놔두고 간다는 것도 이해불 가였다.

  "얼마 전에 쉴라가 출관을 했다고 했었지."

  "맞아요. 그리고 몇 번 공식적인 행사를 하고 다시 수행을 한다고 했어요."

  "사실이면 억울한데!"

  "왜요?"

  "쉴라가 날 놔두고 능글맞은 아저씨를 먼저 보러오다니, 그게 말이 돼!"

  "그건 그러네요."

  "돌아오기만 해봐, 절대 가만히 안 둬!"

  "이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은데요."

  "됐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아이시런 공주의 벼린 날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쉴라와 언니 동생의 관계를 맺은 아이시런 공주였다. 그런 관계에 가르딘이 끼어들었다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는 짜증으로 다가왔다. 기필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감히 나만 두고 둘이서만 놀러 가!'

   사실은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둘이서만 재밌게 여행한다 는 것 자체가 불만이었다. 둘이서 풍치구경하며 맛있는 것 사먹는 것이 눈에 선했다.

  '쉽게 넘어가지 못할 줄 알아! 아저씨!'

  자칼과 일급요원들은 사냥꾼의 안내에 따라서 가르딘의 뒤를 쫓았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눈바람을 뚫고 가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요원들이 아무리 강해도 추위 자체를 막아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브라나도 대륙 북방은 인간이 상상하는 그 무엇도 능가하는 추위를 선사했다.

 추위가 극에 다다를 때 자칼은 가르딘이 경험한 것처럼 바람의 중심점에 들어섰다.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한 지대에 들어서자 자칼과 요원은 잠시 동안 한시름을 놓았다. 그 이상 으로 바람이 불었다가는 싸워보기는 전에 모두 얼어 죽을 수도 있었다.

  앞서 가던 사냥꾼이 난처한 기색을 드러냈다.

  "왜 그러지?"

  "이 일대는 빙판의 형태가 불안정합니다. 잘못 발을 들였다가는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습니다. 쫓는 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이 일대를 건너갔는지 이 해가 되지 않습니다."

  "놈들이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어서 길이나 안내해라."

  자칼에게는 포기는 없었다. 반드시 찾아서 원하는 것을 얻어야만 했다. 길드의 신망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기에는 잃은 것이 너 무 많았다. 놈들을 쫓다가 죽은 요원들만 생각하면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자칼의 위협에 사냥꾼은 어쩔 수 없이 빙판을 건너야 했다. 사냥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다지 없는 편이었다. 그저 위험을 경고했을 뿐이다.

  사냥꾼은 개를 이용해서 조심스럽게 건녔다. 그 뒤로 요원들이 천천히 따랐다. 개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발달해 있었다. 주인의 위험을 감지하고 위험지대를 피해서 움직였다.

  하지만 이 일대 자체가 미세한 진동에 의해서 부서지고 갈라지는 지대였다. 가르딘의 기감은 개의 기감보다 훨씬 더 발달이 되어 안전할 수 있었다. 사냥꾼이 위험하다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진동으로 인해 다른 곳이 무너지면 그 지점을 시작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다. 또한 아무런 이유 없이도 기후의 영향에 의해서 무너질 수 있는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30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자 파탄이 일어났다. 소수 정예로 움직였다면 여차하면 빠져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30명은 너무 많았다.

  쩌저저저적!

  빙판의 지표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진동의 끝점에 다다른 곳에서 시작한 균열은 점차적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바닥 전체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작았을지 몰라도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쿠쿠쿠쿵! 쩌저저적! 쿠쿠쿠쿵!

  삽시간에 부서져 내려간 지점은 끝을 알 수 없는 절애였다. 떨어졌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앞서가던 사냥꾼이 개와 함께 재빨리 안전지대를 향해 필사적으로 뛰 었다.

  하지만 그 옆으로 서 있던 일급요원들은 미처 피할 시간이 없었다. 바닥이 꺼지는 시간이 너무 빨랐다. 일순간 공중에 붕 떠버린 상태였다.

  "저기로 피해라!"

  자칼은 사냥꾼이 피하는 지점으로 황급히 피하도록 명령을 했다. 자칼의 외침이 있기도 전에 일급요원들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갈라지던 균열이 종착점에 부딪쳐서 멈추었다.

  자칼과 일급요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빙판지대의 절반 이상이 바닥으로 푹 꺼져버렸다.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에서 있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바닥이 꺼지는 바람에 또다시 요원 5명을 잃고 말았다. 추락하는 요원들은 날개가 존재하지 않았다. 떨어지는 빙판의 조각들을 딛고 날아올랐지만 다시 디딜 곳이 없었다.

  자칼에게 브라나도 대륙은 혈사의 대지였다. 피를 뿌려야 하는 곳이 되었다. 앞길을 막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빌어먹을!"

  "아직도 너무 많습니다. 소수로 움직여야 할 겁니다!"

  사냥꾼은 소수로 움직여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도 허무하게 떨어져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자칼은 대답을 망설였다. 추적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상대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요원들이 겪은 위험을 그들은 잘도 피해갔다. 쉽사리 상대할 수 없는 자들이기에 요원들을 분산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판단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3명씩 조를 이룬다."

  사냥꾼과 조를 이루어서 3명씩 움직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표식을 해두어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 진동을 최소한 줄이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간격을 갖추었다.

  돌아가는 길이 망망대해를 걷는 것보다 더 멀어 보인다. 쉴라의 느낌이 전하는 곳이 어딘지 듣고 나서부터는 가르딘의 짜증은 극에 달해 있었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다만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있다. 가르딘의 표정이 걸리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 같았다. 본보기에 세상의 참혹함을 보여줄 각오가 드러나 있었다.

  "그만 화를 좀 푸세요."

  "너 같으면 화가 안 날 수 있냐!"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요!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누가 그걸 몰라."

  "알면 저 좀 이해해 주세요. 아저씨는 왜 이렇게 대범하지 못하세요."

  "나는 원래부터 소심했다. 대범한 척하는 놈치고 오래 사는 놈을 나는 본 적이 없어."

  가르딘이 화를 내는 이유는 마지막 삼신기의 위치가 브라나도 대륙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이런 추운 곳까지 와서 다시 대륙으로 돌아가야 했다.

  또한 너무 멀리 떨어져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것 때문에 화를 돋우고 있었다.

  "스필언, 미토스!"

  "왜 그러십니까?"

  "그렇게 침착해할 필요 없다. 화가 나고 짜증나면 풀어야지:'

  "저희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이것들이 사람이냐!'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을 끌고 와서 개고생시키는 데도 불구 하고 아무런 불만도 없는 스필언과 미토스가 신기하다 못해 이상해 보이는 가르딘이다. 사람이라면 짜증나는 일을 억지로 하게 되면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설상가상으로 또다시 생고생을 해야 할지 모르는데도 태연한 두 신성을 가르딘으로서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겉으로만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속마음에도 티끌만 한 불만이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을 구하는 일이기에 당연히 해야 한다고 여길 뿐이었다. 당연한 일을 하는데 불만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고 여겼다. 가르딘과는 정반대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가르딘만 정말 속 좁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입을 열어봤자 공작의 품위만 깎일 판이다.

  "그래, 가자."

  "그래야 가르딘 오빠죠."

  "너 좋을 때만 오빠냐."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촐싹거리는 쉴라의 모습만 보면 성녀가 아닌 영락없이 귀여운 소녀였다. 그것이 밉지 많은 않은 가르딘이었다. 드러내놓고 싫다고 하기는 했지만 가르딘도 삼신기를 찾아야 한 다는 목적은 잊지 않고 있었다. 그저 귀찮기 때문에 하기 싫은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가르딘이 앞장서서 걸었다. 그 뒤를 쉴라와 스필언, 미토스가 따랐다.

  멈칫!

  가르딘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몇 걸음을 움직이다 멈추자 뒤에 있던 쉴라가 삐죽거렸다.

  "왜요? 또 마음이 변했나요?"

  "아니."

  "그럼 왜요?"

  "이런 곳에 사람이 오는 게 신기해서 그렇지."

  "예? 그게 무슨?"

  "앞에 수상한 놈들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도 정확하게 우리가 온 곳을 따라서 오고 있어."

  가르딘의 기감을 자극하는 놈들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강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혹한의 대지까지 따라온 것 자체가 수상한 일이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공력을 운용하여 기감의 영역을 확대하였다. 가르딘이 느낀 기운을 신성들은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가르딘의 실력이 그들의 상상을 초월한 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놀라는 모습에 가르딘은 아차 하는 심정이었다.

  '이런 대놓고 실력을 까발리는 짓을 하다니!'

  실수는 이미 해버렸다. 여기서 구차한 답변을 해봤자 먹히지도 않을 것 같았다.

  요즘 가르딘은 가르딘답지 않게 잦은 실수를 계속하고 있었다. 힘에 도취되지 않으려고 가르딘은 무던히도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힘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강한 힘은 그에 대한 통제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철저한 자기통제를 통해 완벽한 억제를 해놓아야 했었다.

  "놈들이 정말 우리를 쫓아온 것인지 확인하는 게 순서겠지."

  원래대로라면 왔던 길로 돌아가야 했지만 방향을 틀었다. 가르딘이 가리키는 곳은 왔던 방향과 반대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놈들이 계속 쫓아온다면 목적이 확실해진다.

  "우선은 저곳으로 가지."

  "예."

  가르딘과 일행은 방향을 틀어 빙벽의 끝자락으로 이동을 했다. 시선이 보이지 않는 지역으로 돌아서 멈추었다. 놈들의 행동을 관찰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킁! 킁! 킁!

  사냥개가 냄새를 맡으며 위치를 추적해 나가고 있었다. 이제까지는 직선으로 계속 움직여 나갔다.

  그런데 개가 방향을 틀며 반대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는 이제까지의 냄새 중에서 가장 최근의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개가 방향을 바꾸자 자칼이 사냥꾼에게 다가갔다.

  "방향을 왜 바꾸지? 수작을 부리는 것이냐!"

  "여기까지 와서 제가 왜 수작을 부립니까!"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거다."

  자칼의 심기는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어차피 사냥꾼은 용도가 다 되면 폐기 처분할 존재였다. 수틀리면 바로 죽일 것이다. 말투는 공손하지만 사냥꾼은 여전히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사냥꾼은 자칼이 자신을 절대로 살려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도 안내를 계속하는 것은 가족과 동료들 때문이었다.

  사냥개는 빙벽으로 이루어진 지대로 냄새를 맡으며 걸어갔다. 그 뒤를 자칼과 요원들이 조심스럽게 걸었다.

  '음!'

  "역시 목표는 우리군."

  빙벽의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가르딘은 놈들의 목적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간파했다. 혹한의 대지 중에서도 최악의 조건을 가진 여기까지 따라온 것만 봐도 통상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으로 판단이 되었다.

  "풍기는 기운과 복장을 봐서는 이곳 사람은 아니야. 그렇다면 미드라이언 대륙에서부터 쫓아왔을 가능성이 있겠어."

  "저를 따라온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지."

  기를 쓰고 따라온 것 같았다. 놈들의 목표가 고대 삼신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놈들을 잡아서 목적을 정확하게 물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놈들의 목적이 정말 그렇다면 마왕부활을 계획한 놈들일 수도 있겠지.'

  가르딘은 두 신성에게 놈들을 제압하라고 명령했다. 특별히 위험한 놈들은 없는 것 같았다. 한 놈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대단한 정도는 아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라면 충분히 제압을 하고도 남았다.

  자칼은 앞을 가로막는 두 청년을 보자 들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여건상 좋지 않았다.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자칼은 홀가분한 감정을 느꼈다. 누군가를 추적 하는 것은 자칼의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차라리 검을 맞대는 것이 속 편했다. 추적만 하다가 요원들을 잃은 것이 더 억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성녀를 잡아 신기를 찾는 게 나았을 것이다.

  "성녀는 어디 있나?"

  "왜 쫓아왔지?"

  스필언과 자칼은 동문서답을 하고 있었다. 서로가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자칼의 얼굴에 살기가 감돌았다. 제법 실력은 있어 보이지만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건방진 놈들에게는 지옥을 보여 주어야 세상물정 모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라 보았다.

  "쓴맛을 보고 싶다는 말이지."

  "말을 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건방진 놈들이 정말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럴 수 있을까."

  "놈들을 반쯤 죽여라."

  "어리석군."

  서로의 뜻은 존중받지 못했다. 그저 이긴 자의 뜻에 의해서 결정이 될 뿐이다. 자칼의 명령에 따라 4명의 일급요원들이 스필언과 미토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신속하고 정확하며 빠른 움직임이었다. 미끄러운 빙판은 일급요원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가르딘과 성녀는 환영진 안에 있었다. 지척의 거리에서 보고 있는데도 놈들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가르딘은 두 신성의 응수에 고개를 끄덕 였다.

  "말솜씨가 제법 늘었는데."

  "못된 것만 가르치지 마세요."

  "고도의 심리전이 라고 해라."

  "심리전이 다 얼어 죽었나요"

  "하긴 여기가 얼어 죽기 딱 좋은 지대이긴 하지."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됐어. 싹수없는 놈들에겐 매가 약이야."

  악당은 어떤 말을 해도 악당이다. 개과천선, 다 웃기는 말이다. 악당이 갑자기 착해지면 일찍 죽기 딱 좋다. 이유는 주변 놈들이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악당은 영원한 악당인 것이다. 딱 하나 반성 할 계기를 만들어 주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바로 죽도록 맞는 것뿐이다. 죽을 때까지 맞다가 죽어버리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죽어도 싼 놈들이니 양심의 가책 따위는 느낄 필요도 없다.

  푸욱!

  서걱!

  스필언과 미토스를 향해 달려들던 4명의 요원들이 그 자리에서 심장이 뚫리고 반 토막이 되어 잘려져 나갔다. 일순 간에 오러가 뿜어져 나와 일급요원들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다.

  "아니!"

  자칼의 눈빛이 달라졌다. 좀 전에 보인 검법은 보통수준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완벽한 검로가 아닐 수 없었다. 기사로서의 수련이 정점에 이른 자만이 걸을 수 있는 검의 길 이었다.

  '이놈들 최소한 오러마스터다. 그렇다면 정보대로 신성이 확실하구나!'

 모습이 다르기에 제국의 신성이라고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신성과 함께 있기에 성녀가 무사히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상대가 신성이 라면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주어야 했다.

  "어둠의 방진을 펼쳐라! 암흑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마!"

  10명이 조를 이루어서 2개의 조를 만들어낸 일급요원들이 4개의 지점을 거점으로 잡고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접근했다. 다크소드디펜스로 불리는 어둠의 방진은 다크오러(암흑 기)를 이용하여 적의 시선을 어둠 속에 헤매게 만드는 진이었다. 일급요원들 간의 다크오러는 중첩이 가능했다. 오러의 중첩을 통해 오러블레이드도 튕겨낼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

  20명의 일급요원들이 스필언과 미토스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 순간 스필언이 좌에서 우로 빠르게 전진하며 검을 휘둘렸다. 스필언의 등 뒤를 쫓아 미토스가 뒤를 따라 날아 올랐다. 방향을 잡고 한쪽을 뚫어버리려는 것이었다. 검이 출수됨과 동시에 오러블레이드가 대기를 갈라 버렸다.

  카아아앙! 출렁!

  응축된 오러의 결정체인 오러블레이드가 다크오러와 충돌을 일으키자 불빛이 번쩍였다. 결집된 다크오러는 오러블레이드의 기운을 퉁겨내면서 일부는 전체로 흡수를 했다. 스필 언과 미토스는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표정이 굳었다. 절기를 출수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오러블레이드였다. 폭발적인 파괴력을 오러블레이드가 아닌 다른 힘으로 막아 낸 것은 예삿일이라고 볼 수 없었다.

  환영진 안에서 보고 있던 가르딘은 놈들의 맛깔난 반항을 보자.

  '제법인데.'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굳이 도움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낼 것이라 보았다. 지금은 스필언과 미토스가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실력이 상승했는지 가르딘도 궁 금했었다.

  꿈틀!

  예상 밖의 위력이었다. 다크오러의 중첩된 힘으로도 두 신성의 검력을 완벽하게 받아낸 것이라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급요원들은 어느새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한계를 넘어서는 다크오러를 끌어올렸다. 일급요원들에게 두려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응축된 다크오러의 기운이 스필언과 미토스의 시야를 완벽하게 가렸다. 20명이 융합하여 1개의 진이 되어 있었다. 서로의 손발이 극에 가깝도록 잘 짜여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역량의 수위를 조절하며 다크오러의 속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검의 궤도를 다 방면으로 찔러 넣었다.

  슈슈슝! 카아앙!

  일급요원들에게 사각지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크오러를 이용하여 스필언과 미토스의 광속에 가까운 검속을 파악해내고 있었다. 신성과 일급요원들의 대결은 치밀하면서도 굉 장한 위력을 보였다.

  자칼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일급요원들 20명이 펼치는 다크소드디펜스는 무적에 가까웠다. 이제 막 오러마스터에 오른 녀석들이 쉽게 막아낼 수 없는 위력을 가졌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신성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일급요원들의 연수합격술을 막아내고 있었다. 두 신성의 능력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신성이 왜 신성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제국의 신성이 이 정도란 말인가!'

  자칼은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을 끌어봤자 좋지 않았다. 신성의 움직임 속에서 다크소드디펜스의 약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사라져 버린 일급요원들이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자칼이 일급요원들과 합세하려고 움직일 때 였다.

  멈칫!

  자칼의 신형이 누군가의 등장으로 가로막혔다. 언제 그곳에 나타났는지 자칼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돌아서 보니 능글맞은 그림자가 나타나 있었다. 빛에 반사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누구냐?"

  "그러는 너희들은 누구냐?"

  "죽고 싶은 것이냐!"

  "순순히 대답할래, 아니면 죽도록 맞고 대답할래. 양자택일해라."

  "감히!"

  "역시 그냥은 대답을 하지 않겠지."

  "죽어랏!"

  자칼의 검이 가르딘을 향해 뻗어왔다. 지옥의 섬광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속도의 쾌검이었다.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검의 궤적에 군더더기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칼이 자랑하는 다크썬더였다. 어둠의 번개는 모든 것을 꿰뚫어 버릴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 낌새조차 느낄 수 없는 상대이기에 절초부터 사용했다. 적의 강함에 대한 본능 적인 경고를 느꼈기 때문이다.

  슈웅!

  자칼의 신형을 막으며 나타난 가르딘은 불의의 일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놀라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뻗어 나오는 궤적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가볍게 피해내었을 뿐이다. 자 칼이 사용한 어둠의 일격은 가르딘에게 한없이 느렸다. 피함과 동시에 한 걸음 앞으로 내 디뎠다.

  1미터의 공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가르딘의 신형이 자칼의 검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바로 코앞으로 전진한 가르딘은 주먹을 뻗었다. 짧은 간격이기에 그다지 큰 충격을 받을 거리는 아니었지만 가르딘은 달랐다. 발에서 시작한 역동적인 힘이 허리를 타고 올라 단전을 두드리고, 두드린 단전의 용솟음치는 힘이 경이 되어 어깨를 타고 팔로 전해졌다.

  전해진 힘은 보통의 힘이 아니다. 천룡의 기운을 받아 형성된 무상의 기운이었다.

  고작 3센티밖에 되지 않는 간격 안에서 터진 주먹이지만 그 안에 서린 거력이 소리로 드러났다.

  퍼어어억!

  가죽공이 터지는 경쾌한 타격음이 들렸다. 자칼의 몸이 직각으로 꺾였다. 꺾인 신형을 유지하지도 못한 채 3미터나 붕 떠 날아갔다. 허공에 뜬 상태로 찰나에 기억이 끊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자칼이었다. 무엇을 맞았는지 느낄 새도 없는 상태였다.

  쿠다다당!

  "크으으윽!"

  바닥에 떨어지며 착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자칼은 격한 신음성을 터뜨렸다.

  주먹에 실린 힘도 문제지만 내부로 침투해 들어오는 침투경 역시 만만치 않았다. 배로부터 전해지는 기운을 억제하기 위해 비지땀을 쏟아내야 했다. 단 한 방에 전신의 모든 근육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내질렀다. 상상을 불허하는 위력에 경악과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누가 이런 엄청난 능력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허억!"

  터져 나오는 고통을 억제하고 간신히 일어선 자칼이 가르딘을 찾았다. 가르딘이 있어야 할 장소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공격을 받고 일어선 시간은 순간에 불과했다. 그 짧은 시간 허허 빙판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야."

  휙!

  가르딘의 목소리가 자칼의 사각지대에서 들렸다. 자칼이 곧바로 고개를 돌리자 가르딘의 발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피한다는 생각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발의 궤도가 피하는 공간까지도 차단해 버리고 있었다. 궤적의 변화를 느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었다.

  가르딘이 구사하는 각법은 천룡각으로 불리며, 용이 승천하는 역동적인 모습에서 착안한 각법이다. 어디로 움직일지 알 수 없는 무수한 변화를 다리의 궤적에 담고 있었다. 보고 있다고 해도 막아낼 수 있는 성질의 공격이 아니었다.

  빠아악!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짝짝 달라붙는 경쾌한 타격음이 아닐 수 없었다. 자칼의 고개가 좌에서 우로 돌아가고, 몸 역시도 360도를 회전해 버렸다.

  가르딘은 공중에 뜬 자칼의 신형을 따라붙어 팔꿈치고 배때기를 내리찍었다. 허공에서 회전하는 자칼은 방어할 틈조차 찾지 못했다. 가르딘의 공격이 시작되고 일방적인 몸빵을 하고 있는 자칼이었다.

  철퍼덕!

  "크윽! 주르륵!"

  명치를 정확하게 맞은 자칼은 숨이 덜컥 멎는 것 같은 고통을 받았다. 내장기관이 충격을 받았는지 목구멍을 타고 핏물이 흘러나왔다. 가슴뼈와 목뼈가 금이 가거나 부러졌을 수도 있었다. 자칼은 기가 막혔다. 반항을 할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맞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섬광이 번쩍하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인식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날아오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자칼의 생애에 이토록 일방적으로 당한 적은 맹세코 처음이었다.

  하지만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가르딘이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자칼에게는 가르딘의 공격을 방어할 시간적 여유와 능력이 되지 못했다. 숨 쉴 틈 없는 연속 공격이 아닐 수 없었다.

  가르딘이 넝마처럼 쓰러진 자칼의 발목을 잡고 들어 올려 빙판에 내리찍었다. 발버둥을 쳐보려고 했지만 이미 다리로 전해지는 가르딘의 압도적인 힘에 제압당해 버린 상태였다.

  속수무책으로 들어 올려 바닥에 처참하게 박혔다.

  쿠우우웅! 쿠우우웅!

  "으으윽! 커어어억!"

  얼굴과 빙판이 서로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가르딘은 수차례 자칼을 바닥에 찍고 난 후 위로 던졌다.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자칼은 신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바닥에 찍히는 충격으로 몸의 통제력을 잠시 잃어버린 것이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자 허공에 몸이 떠올랐다. 공중에 뜬 자칼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허억!

  가르딘이 어느새 솟구쳐 올라 있었다. 가르딘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맺혔다. 마치 상대를 오래 기다렸다는 표정이었다. 북해의 추운 지방까지 여행을 오며 쌓인 화를 자칼에게 풀고 있는 것 같았다. 자칼은 심기 불편한 가르딘을 괜히 건드린 꼴이었다. 자칼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려왔다.

  가르딘의 팔꿈치가 자칼의 배때기에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퍼어어억!

  살을 파고드는 팔꿈치의 격타음이 들리고 난 후 자칼의 신형이 바닥에 추락했다. 빙판에 박혀버린 자칼은 꼼지락거리고 있었지만 심각한 타격을 받았는지 곧장 일어서지 못했다.

  사실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가르딘의 일격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을 것이다. 자칼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강하다는 반증이다.

  자칼이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급요원들은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태였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공세가 일급요원들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다크소드디펜스의 다 크일루전(암흑환영)이 전혀 통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고 공격하는 두 신성의 파괴적인 공격을 막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크일루전은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환영공격이다. 정신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신성의 정신력이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 져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통해 성장한 스필언과 미토스를 만난 것이 일급요원들에게는 불운이 었다.

  저벅! 저벅!

  자칼을 내리꽂고 가볍게 착지한 가르딘이 빙판을 걸었다. 천천히 걸어오는 소리에 자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는 전처럼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자칼이었다. 놈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봉인된 힘을 모두 풀어서 사용해야 할 판이다.

  "어때 이제 말하고 싶어졌냐?"

  "닥쳐랏!"

  "이거 생각보다 단단한데."

  "산채로 껍질을 벗겨주마!"

  가르딘은 예상보다 강한 자칼의 맷집에 경탄했다. 보통 녀석들이라면 다시 일어서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자칼은 일어섰다. 가르딘을 향해 지독한 적의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성정마저 지독한놈이다.

  이런 놈들의 경우 부러질지언정 절대 굽히지 않는다. 제압하려고 한마음을 싹 가시게 만들었다. 지독한 놈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삭초제근해 버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씨익!

  가르딘은 자칼의 살기를 대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가르딘의 여유에 지독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자칼이었다. 가르딘의 얼굴을 찢어발기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너 정도로 내 미소를 꺾을 수는 없겠지."

  ''건... 방진 놈!"

  "상황을 봐라. 누가 더 건방진지."

  압도적으로 계속 처 맞은 놈이 할 말은 아니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가르딘이다. 어디에 이처럼 친절한 사람이 있겠냐는 표정 역시 압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대의 염장을 확실하게 뒤집어버리는 완벽한 연기력을 보여 주었다.

  부르르르!

  가르딘과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자칼의 실수다. 계속 대화를 나눠봤자 속에서 열불만 터질 것이다. 자칼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러나 쉽사리 달려들지는 못했다. 좀 전처럼 허무하게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자칼은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칼의 기운은 일급요원들과 마찬가지로 다크오러를 기반으로 둔다. 다크오러를 형상화한 강력한 힘으로 표출시킬 수 있는 것이 다크오러컨트롤(암흑심법)이었다. 다크오러컨트롤을 극한으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몸의 근육이 변화를 일으켰다. 다크오러뿐만 아니라 자칼의 몸은 인간의 몸과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전신으로 퍼져 나간 다크오러에 자극을 받은 몸이 근육을 변화시켰다. 변화된 자칼은 좀더 커지고 어두워졌다. 피부에 검은 각질이 두껍게 형성이 되어 비늘갑옷처럼 변했다. 얼굴까지 검게 변하면서 비늘갑옷이 형성되자 조금은 징그럽게 보였다.

  가르딘은 변신하는 자칼을 보니 기가 막혔다. 공력을 끌어 올리는 것은 그렇다치고 몸이 저런 식으로 변화하는 것은 가르딘도 처음 보았다. 나중에는 3단 콤보로 변화할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세상 살다 보니 별의별 꼴을 다 보는군."

  "죽여주마!"

  "그 소리는 아까도 했잖아. 독창성이 그렇게 부족해서 어디다 써먹겠냐! 그래서 대접이나 제대로 받겠어."

  빠직!

   가뜩이나 실세에서 멀어진 자칼이었다. 가르딘의 말이 심기를 극도로 자극했다. 미간을 뚫고 나오는 힘줄이 여실히 드러났다. 다크오러로 변화하는 자칼의 바디체인지는 변할 때마다 성정이 난폭해진다. 또한 성미마저 약간은 더 급해진다. 가르딘의 말을 참고 견딜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성급해진 만큼 사납고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분노가 원천 적인 어둠의 힘으로 분출되었다.

  "죽인다!"

  파앙!

  자칼의 신형이 바닥을 박찼다. 빙판의 조각들이 뒤로 튀어 나갔다. 발바닥조차 변화를 일으켜 미끄럽지 않게 되었다. 빙판이라는 조건은 자칼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공기를 압축해 놓은 듯한 소리가 들리자 자칼의 신형이 공간을 잘라내었다. 일순간에 가르딘의 눈앞으로 전진했다.

  -다크소드-다크스피어(암흑참격).

  다크오러를 받은 자칼의 검 역시 어두웠다. 어둠 속을 뚫고 들어오는 일격이 굉장한 위력을 뿜어내었다. 다크오러가 완벽한 형상을 갖추자 다크블레이드가 되었다. 어둠의 검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칼의 실력이 오러마스터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둠을 휘젓는 놀라운 검력이 가르딘의 전신을 자극했다.

  '생각보다 더 강한데.'

  변신이라는 방법을 통해 강해지는 것을 직접적으로 본 적은 없지만 대단한 것만은 분명했다. 요즘 들어서 오러마스터를 능가하는 놈들을 계속 보고 있는 가르딘이다.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카앙!

  가르딘의 상념은 검이 부딪치자 멈추었다.

  우선은 자칼을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 가지고서는 가르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가르딘은 잠시간 탐색을 해보았다. 이놈들이 다가 아닌 것 같기에 무슨 짓을 하는지 파악을 해보기로 했다.

  채채채챙! 타타타탕!

  순식간에 10초의 검격이 부딪쳤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며 열기가 주변을 휘감았다. 다크블레이드를 상대로 가르딘은 오러블레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의 기운만 사용하여 자칼을 상대해 나갔다.

  자칼은 있는 힘을 다 쏟고 있었다. 가르딘의 시야를 어지럽히면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검을 뻗었다.

  10초가 지나고 20초가 지나가도 가르딘의 부동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자칼의 검을 여유롭게 막아내었다. 자칼은 당혹감에 젖었다. 아무리 강하게 휘둘러도 가르딘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다크소드는 어둠의 길드 내 5대 검법에 속하는 고급검술이었다. 다크소드를 극성으로 수련하여 세븐핸드의 자리까지 오른 자칼이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변신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오러마스터라고 해도 쉽사리 막아낼 수 없는 공격을 가르딘이 너무 쉽게 막아내자 자존심이 상했다. 놈의 여유로운 얼굴만 봐도 분노가 치솟았다.

  가르딘은 자칼의 공격을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흘렸다. 공격하는 최적의 타격점에서 한 발 물러서서 방어하고 있으니 자칼의 공격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자칼은 마치 허공을 가격하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검에서 어떤 느낌도 받지 못했다. 공격 후에 허무한 느낌과 극심한 체력소모가 자칼을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비겁한 놈! 네놈이 기사라면 정면으로 부딪쳐라"

   "난 원래 비겁했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네놈도 그다지 정당한 놈이 아니잖아. 안 그래."

  이익!

  머릿속까지 솟구치는 분노가 자칼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가르딘과 말만 섞으면 이성을 잃어버렸다. 자칼은 가르딘이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약 올릴 수 있는 철저히 연 구하고 있는 놈처럼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봐주지 않는다!"

  "언제는 봐줬나."

  "이제 알게 될 거다! 내 본래의 힘을 보여 주마!"

  "그럼 볼썽사납게 얻어맞기 전에 보여줬어야지."

  "닥쳐!"

  말을 섞을수록 자칼은 냉정함을 잃었다. 자칼은 공간을 벌이고 또다시 준비를 했다. 변신은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또다시 변신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자칼의 몸은 인간의 몸을 변형시켜 탄생시킨 강화인간이었다. 인간 자체의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수한 실험을 통해 이룩해 놓은 흑마법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힘을 일순간에 끌어올려 한계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변신을 할수록 이성적인 판단력이 떨어져 전투력만 남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다만 그런 단점을 무시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확실했다.

  다크오러가 전신을 자극하자 자칼의 몸이 빠르게 변화를 일으켰다. 몸집은 더 커지고, 흉악해지고 있었다.

  가르딘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이번에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예상대로 3단 콤보 변신을 하기는 하는구나!'

  사사삭!

  자칼이 완벽한 변신을 하기 전에 가르딘은 근접거리까지 접근했다. 섬전보가 펼쳐지자 자칼은 가르딘의 신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시야에서 사라진 가르딘이 자칼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르딘의 검이 자칼의 다리를 노렸다. 모든 힘의 축은 다리에서 나온다. 팔이 하나 없더라도 움직 일 수 있다.

 하지만 다리는 힘을 지탱하는 축의 역할을 한다. 다리를 잃어버리면 전투력을 상실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칼의 움직임을 봉쇄하려는 가르딘의 의도였다.

  탕!

  자칼의 다리를 노린 가르딘의 검이 퉁겨져나왔다. 전과 비슷한 위력으로 검을 휘둘렸는데 충격을 받지 않고 버틴 자칼이었다. 가르딘은 검에 오러를 사용하고 있었다.

  좀 전에는 막아내지 못한 것을 이번에는 막아내고 있었다. 자칼의 실력이 가일층했다는 반증이었다.

  "이거 제법인데."

  가르딘은 자칼이 보통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상대가 가르딘이 아니었다면 무척이나 당혹감에 젖었을지도 몰랐다. 철통에 검을 들이대는 느낌을 받았을 테니 말이다.

  "그럼 이건 어떠냐."

  가르딘은 마치 실험물이 생긴 것처럼 다양한 공격을 가했다. 변신중이기에 시간이 필요한 자칼은 속수무책으로 가르딘의 검격을 맞았다.

  팅! 팅! 터텅! 터텅!

  몸의 어느 곳을 찔러도 검이 퉁겨져나왔다. 전신을 소드아머로 감싼 것 같은 형태였다.

  좀 전과 같은 위력으로는 자칼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없다는 것을 파악했다. 몇 번의 실험을 한 가르딘은 전력을 조금 더 높였다. 검에 맺혀진 천룡무상강기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형상화되어 날카로운 빛을 토해냈다. 검에 서린 한기가 대기의 기운을 한층 더 낮추었다.

  "안됐지만 그만 죽어라!"

  물어본다고 대답할 놈도 아닌 것 같다. 조금은 놀아주려고 했지만 예상외로 귀찮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변신을 마치기 전에 위기감을 느낀 자칼이 거리를 벌이며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이제부터는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가르딘은 쉽사리 거리를 벌려주지 않았다. 가르딘이 한 발을 내딛자 자칼의 눈앞에 다가왔다. 미처 피하기도 전에 가르딘의 검이 자칼의 심장을 꿰뚫었다.

  푸욱!

  커억!

  제아무리 굉장하고 이상한 능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모든 생명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심장에 검이 박히면 죽는 것이 당연했다. 가르딘의 검은 인정사정없었다. 가슴을 뚫고 들어간 검이 자칼의 등을 뚫고 나왔다. 자칼의 눈동자가 풀리고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던 자칼은 가르딘이 검을 빼자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털썩!

  가르딘은 생명력이 떨어져 나가는 자칼을 뒤로하고 나머지 놈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응?'

  꺼져가던 생명력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가르딘이다. 놀란 가르딘이 돌아섰다. 쓰러져 있던 자칼이 다시 살아서 일어난 것이다.

  좀 전보다 더 팔팔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뭐야? 이것들은?"

  가르딘은 좀비처럼 다시 일어난 자칼을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변신하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심장에 검을 맞으면 죽어야 할 것 아닌가! 요즘 들어 나타나는 것들은 모두 제대도 된 것들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인간으로 여기면 절대로 안 되었다. 가르딘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수고를 해야 했다. 변신이 완벽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을 다시 뻗었다.

  휘이익!

  "어쭈! 피해!"

  가르딘의 검격이 전보다 더 빨라졌는데도 자칼이 기괴한 움직임을 보이며 피했다.

  좀 전보다 더욱더 기민해지고, 날렵했다. 가르딘의 검을 몇 번 피하자 자칼의 표정이 기고만장해졌다. 이제는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자칼이었다.

  "이 모습으로 변한 나는 천하무적이다! 네놈이 아무리 강해도 날 이길 수 없다!"

  "그래 너 잘났다."

  가르딘은 한 수 득을 봤다고 그새 자신만만해하는 자칼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가르딘도 확실하게 끝을 내지 않은 실수를 범했지만 자칼도 실수를 한 것이다. 가르딘은 자칼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검사였다. 말을 하기 전에 검을 먼저 휘둘렸어야 했다. 없는 틈도 비집고 들어가는 가르딘에게 틈을 주면 안 되었다.

  "크아아앙!"

  자칼이 사나운 괴성을 지르며 가르딘에게 달려들었다. 변신을 한 자칼의 몸은 완벽한 짐승과 같았다. 입을 통해 삐죽이 튀어나온 송곳니가 날카로웠다. 민첩하게 달려든 자칼의 입이 벌어지며 가르딘의 얼굴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으득!

   가르딘의 신형이 사라졌다. 허공을 물어뜯은 자칼이 시선을 돌리자 그 뒤로 가르딘이 나타나 검을 아래서 위로 들어올렸다. 천룡무상강기로 둘러싸인 검이 직각으로 수직상승 하자 위기감을 느낀 자칼이 몸을 비틀었다.

  댕강!

  간신히 몸을 비틀었지만 어깨 부위까지의 팔이 잘려져 나갔다. 팔이 잘려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자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잘린 어깨 부위에서는 핏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바닥을 뒹굴어서 떨어진 팔을 잡아챈 자칼이 팔을 다시 어깨에 갖다대었다.

  "그게 붙인다고... 붙네?"

  못 볼 것을 계속 보고 있는 가르딘이다. 심장을 찔러도 죽지 않고, 팔을 잘랐더니 다시 붙이는 괴물 같은 놈들이었다. 가루를 내지 않으면 다시 살아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 다.

  뿌드득!

  가르딘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자칼의 이빨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표정만으로 가르딘을 죽일 수 있다면 수천 번을 더 죽였을 것 같은 자칼이다.

  "죽인다!"

  "우리 상식적으로 좀 싸우면 안 될까!"

  "닥쳐!"

  가르딘은 상식적이지 않는 대결을 그다지 달가워하는 편이 아니다. 이전의 흑마법사와의 대결도 그리 탐탁지 않았건만 또다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흥거리로 상대하겠다고 덤볐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성보다는 본능적인 적대감으로 달려드는 자칼이었다. 가르딘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필살의 의지가 느껴졌다.

  "참! 뭐 하는 놈들인지 점점 궁금하게 하네. 어디 끝까지 덤벼봐라!"

  희귀한 광경을 보고 있기는 하지만 가르딘에게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예전의 흑마법사가 가르딘에게는 더 위험했었다. 그에 비하면 자칼은 그리 어려운 존재가 아니 었다. 처음부터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면 충분히 쉽게 끝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가르딘을 향해 자칼이 필살의 절초를 발휘하였다.

  -다크쉐도우스텝(그림자보법)-도플갱어(어둠의 분신).

  쉬리리릭!

  자칼의 신형이 좌우로 벌어지자 환영이 나타났다. 4개의 분신이 생겨나서 가르딘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자칼의 독문스텝이라고 할 수 있는 도플갱어였다.

  '이형환위를 쓸 정도였나.'

  증강한 근력과 다크오러의 힘이 중첩되어 상상 이상의 빠름을 보이고 있었다. 자칼이 조금씩 간격을 좁히며 가르딘의 근접거리로 다가왔다. 자칼은 가르딘의 방위를 차단하며 피할 곳을 빼앗았다.

  "이제까지 여기서 벗어난 놈은 없었다!"

  "그러냐."

  자칼의 분신 4개가 일제히 가르딘을 공격해 왔다. 가르딘의 사각지역에서 공격하고 정면과 뒤에서 검을 뻗어왔다. 다크블레이드가 섬뜩한 빛을 뿜어내었다. 지척의 거리에서 찔러 들어오는 자칼의 공격은 무섭도록 위협적이었다.

  타아아앙!

  휘청!

  공격을 했던 4명의 자칼이 모두 강대한 충격을 받고 뒤로 물러섰다. 흔들리는 신형을 멈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물러난 자칼의 눈빛이 일순간 흔들렸다. 전투만을 위한 괴물이 된 상태에서는 감정의 마비가 와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칼은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자칼은 가르딘이 지닌 거대한 힘의 편린을 잠시나마 본 것이다. 다시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필살의 공격이 막힘과 동시에 심각한 내상을 입고 말았다.

  웬만한 충격은 모두 회복할 수 있지만 이번에 당한 공격은 회복이 더뎠다. 아니 회복자체가 되지 않았다. 몸속 혈관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천룡무상신공의 기운이 회복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가르딘이 자칼을 응시했다. 웃고 있는 것 같은 가르딘의 눈빛을 받은 자칼은 상당한 심적 충격을 받았다.

  주춤!

  가르딘이 걸어오자 자칼은 저절로 뒤로 물러섰다.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할 때 가르딘은 그 누구보다 침착하다. 그것이 가장 큰 무기였다. 명경지수와 같은 평정심을 유지한 가르딘에게서 무척이나 심한 압박을 받고 있는 자칼이었다. 자칼은 그 모습에 잠시나마 압도당하고 말았다.

  "이... 럴 리 없다!"

  가르딘이 자칼의 주인인 다크로드보다 더 크게 보였다.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자칼이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미 심적인 타격이 큰 자칼의 몸은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가르딘이 점점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가르딘을 벗어나기 위해 자칼은 발버둥을 쳤다.

  "천룡안도 버틴단 말이지."

  천룡안의 또 다른 힘인 지배안이 발동되었는데 자칼은 아직 반항을 하고 있었다.

  놈의 심령을 지배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소리였다. 저 정도의 심령금제까지 받은 놈에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가르딘에게 딱히 없었다. 어차피 얻을 수 없다면 위험한 존 재를 없애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가르딘은 위험한 존재를 남겨둘 정도로 아량이 넓은 사람이 아니다. 미리 제거해 버려 위험을 차단해 버리는 것을 효과적이 라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크르릉!

  자칼이 가르딘의 천룡안을 떨쳐내려고 달려들었다. 마치 겁을 먹은 짐승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가르딘은 달려드는 자칼을 향해 검을 휘저었다.

  아래서 위로, 사선에서 사선으로 수만 가닥으로 가르딘의 장이 휘저어졌다. 허공에 수놓아진 검의 궤도가 점점 촘촘하게 변해 갔다. 검의 흔들림이 한순간에 멈추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검은 날카로운 병기가 아닌 무적의 방패가 되었다.

  슈슈슉!

  파앗!

  자칼의 전신이 투명한 막에 부딪쳤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산산이 부서져 나가 버리고 말았다.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희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완벽한 소멸만이 자칼에게 남겨졌을 뿐이다.

  "이... 제... 장!"

  그것이 자칼의 마지막이었다. 목표를 위해 덤벼들었지만 자칼은 가르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자칼의 입장에서는 정말 환장할 일이었다. 만약 어둠의 길드에서 강등 당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가르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죽어서도 승천하지 못할 것이다.

  휘이이잉!

  가루가 되어버린 자칼의 유해는 바람에 흩날리며 차가운 대지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끝을 낸 가르딘은 아직까지 대결을 벌이는 두 신성을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오래 싸우고 있었다.

  일급요원들의 검진이 세밀하면서도 노련했다. 한 명 한 명의 힘은 미토스와 스필언의 힘에 미치지 못하지만 검진을 형성하자 대등한 위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가르딘은 일급요원들과 두 신성의 대결에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에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사냥꾼에게 다가갔다. 그는 운이 좋게도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었다. 가르딘이 다가가자 사냥꾼은 놀라서 뒷걸음을 쳤다.

  주춤!

  본능적으로 물러서던 사냥꾼이 뒷걸음을 멈추었다. 어차피 작정하고 덤비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 전의 대결에서 알 수 있었다. 사냥꾼이 본 자칼과 가르딘의 대결 은 인간의 대결이 아니었다. 눈으로 쫓을 수도 없는 엄청난 실력자들이었다.

  특히 자칼의 변신은 충격적이다 못해 두렵기까지 했다.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괴물을 일검에 죽여버리는 가르딘의 굉장한 실력에 저절로 경탄이 터져 나왔다. 자 신이 생각하는 범위를 한참이나 초월한 존재에게 무력함을 느낄 뿐이다.

  "해치지 않을 테니 두려워하지 마시오."

  "두... 렵지 않소."

  꽤나 강단이 있는 사냥꾼이었다. 복장을 보니 브라나도 대륙 사람이었다. 상황은 뻔히 짐작이 되었다. 추적을 위해 사냥꾼을 억지로 데려온 것이 틀림 없었다. 목숨에 구걸할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아 무언가 약점을 잡혔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름이 어찌되시오?"

  "칼모이라고 하오."

  브라나도 대륙사람들은 특이한 이름을 사용하였다. 칼모이의 뜻은 빙판 위의 늑대라는 뜻이었다. 빙판의 늑대처럼 용맹하라는 뜻이 섞여 있다고 한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칼모 이가 이곳까지 오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가르딘에게 있었다.

  사람인 이상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미안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저 도울 수 있으면 돕고, 그렇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르딘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신은 아니니 말이다.

  "상황을 설명해 주면 되도록 피해가 가지 않도록 도와주겠소."

  "정말이오?"

  "나처럼 선량하게 생긴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 봤소."

  '음!'

  칼모이는 가르딘의 말을 농담으로 들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가르딘의 생김새가 그다지 미덥지 않게 보였던 것이다. 좀 전에 보인 압도적인 실력이 없었다면 믿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사람 참!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시오. 나야 듣지 않아도 상관없소이다."

  가르딘이 돌아서려고 하자 다급해진 칼모이였다. 이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놈들이 동료들을 살려두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복수를 해야 한다. 복수를 하려면 가르딘이 반드시 필요했다. 혼자서는 놈들을 상대조차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죽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 니오! 당신을 믿소."

  "그럼 말해 보시오."

  칼모이는 지금까지 놈들과 있었던 일들을 가르딘에게 설명을 해나갔다. 가르딘을 설명을 들으며 놈들의 정체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단서를 찾기는 힘들었다. 다만, 놈들의 힘이 어디에 근간을 두고 있는지 의심 가는 곳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는 되지 못했다.

   '어둠의 길드일 가능성이 크기는 한데, 아직도 이만한 놈들이 있었나?'

  가르딘과 엮이고 나서 어쌔신길드는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대륙에 활동하는 어쌔신들의 움직임이 급격히 둔화되었다.

  그런데도 어둠의 길드는 아직도 힘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은 칼모이의 말대로 이곳에 파견된 놈들을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놈들의 목적이 삼신기에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앞으로 어떤 위험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가르딘은 무언가 꼬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괜한 일에 나서는 기분이었다. 눈앞에 존재하는 위험을 깡그리 정리하고 난 후 홀가분하게 일정을 마쳐야 한다는 강한 중압감을 느꼈다.

  "이곳까지 오는 중에 2명이 뒤로 돌아갔다고 했소."

  "그렇소이다."

  "이유는 알고 있소?"

  "상황을 전하러 움직인 것 같기는 했소."

  북방 최극단에 오는 중에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던 자칼이었다. 만일을 대비해서 요원들을 돌려보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여서 놈들이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하는 게 상책이었다.

  푸아아앙!

  항마의 기운이 암흑의 기운을 걷어내는 울림이었다. 광포한 어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항마의 기운이 광영을 뿜어내었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신형이 어둠의 방진을 뚫고 성스러운 기운을 분출하였다.

  칼모이는 소리와 동시에 보이는 성스러운 기운에 절로 고개가 돌려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스필언과 미토스를 쳐다보았다. 가르딘은 말하는 도중에 한눈을 파는 칼모이를 보며 투덜거렸다.

  '지금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도둑길드의 일급요원들은 다급했다.

  자칼의 죽음조차 그들은 확인하지 못했다. 스필언과 미토스를 상대하는 것도 벅찬 상황이다. 다른 곳에 한눈을 팔았다가는 뻗쳐 나오는 신비스러운 기운에 잠식당해 버릴 수도 있었다.

  다크소드디펜스를 구축하는 4명의 축 중에 1명인 슈미엘은 진의 구심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스필언의 검격이 흐름의 중심축에서 벗어나는 다크오러의 기운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어둠의 환영 속에서 정확하게 약점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관찰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짧은 사이에 다크소드디펜스의 모든 것을 파악해 내었던 것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스필언과 미토스의 능력에 점점 두려움을 느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디펜스 진의 파악이 끝나는 순간부터 파상공세를 취했다. 항마멸사신공을 6성 이상 끌어올려 적의 약점을 요격해 나갔다.

  슈슈슈숙! 푸아아아앙!

  어둠의 방진 곳곳에 구멍이 생겨났다. 항마의 기운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서 있던 일급요원들이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한순간에 7명의 일급요원들이 목숨을 잃자 다크소드디펜스의 위력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일급요원들은 스필언과 미토스의 능력이 상성상 최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항마의 기운이 어둠의 기운보다 더 강했다. 최악의 적이라는 결론이 금세 나올 수 있었 다.

  슈미엘은 스필언과 미토스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절대로 살려 보낼 수 없는 놈들이었다.

   '이놈들은 길드의 최대 적이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슈미엘의 의지가 요원들에게 전해졌다. 일급요원들 역시 목숨을 건 각오를 다졌다. 13명의 일급요원들이 마지막 필살의 공격을 감행하였다.

  -다크소드디펜스-다크익스플로전(어둠의 공멸).

  동귀어진의 필살공격이 었다. 일급요원들의 몸속에서 솟아 오르는 다크오러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린 다크오러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상승했다. 일순간 폭주를 한 기운이 스필언과 미토스가 뿜어내는 항마의 기운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도 심상치 않음을 간파했는지 기질이 바뀌었다. 위험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이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츠츠츠츠측!

  다크오러와 항마멸사신공의 기운이 부딪치며 물이 증발하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거대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듯이 맞부딪치며 광포한 울음을 터뜨렸다. 신성한 기운과 어둠의 기운은 세상의 종말을 치닫는 광경을 연출하였다.

  쩌저저저적!

  빙판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단단한 얼음 지대조차 폭풍처럼 부딪치는 기운에 영향을 받고 갈라지고 있었다.

  사냥꾼 칼모이의 눈에는 악마와 영웅이 치열한 대결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 가르딘은 두 신성이 위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대결에 뛰어들어서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가늠해 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도움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 같지 않았다. 위험을 겪지 않은 자는 성장할 수 없었다. 신성에게는 위험에 직면해서 해쳐나갈 수 있는 의지가 필요했다.

  '제 실력만 발휘한다면 문제없을 것이다.'

  가르딘은 믿고 기다렸다.

  '응?'

  가르딘의 기감에 엄청난 기운의 폭사가 느껴졌다. 상상할 수 없는 폭발적인 기운의 상승이 었다.

  '이거 대단한데.'

  우우우우우웅!

  푸아아아아아앙!

  어둠이 세상을 뒤엎으려고 하자 성스러운 빛이 다시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고 있었다. 빛의 기운이 어둠을 완벽하게 뒤덮어 버렸다.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이 소용돌이치듯이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어둠의 그림자가 찢기듯이 터져 나가 버리고 있었다. 사방으로 퉁겨져나간 그림자들의 육편덩어리들이 떨어져 내리며 꿈틀거렸다. 어둠은 다시 회생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해 버렸다.

  가르딘의 시선이 쉴라에게 향했다. 환영진 안에 있던 쉴라 였지만 가르딘에게는 상관없었다. 환영진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쉴라에게서 순백색의 기운이 형성되어 두 신성의 기운을 자극하고 있었다. 신성력과 항마멸사신공의 기운이 공조를 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굉장한 기운을 뿜어내었던 것이다.

  가르딘은 신성과 성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서로의 공조만 확실하다면 그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위기가 오면 기연이 당연하게 찾아온다는 말인가!'

  영웅에게 위기는 기회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쉴라와 신성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기연을 찾기 위해 수도 없이 노력을 해도 헛수고에 불과한 반 면 영웅에게는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 더 흔하게 찾아 오고 있었다.

  '불공평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평범한 사람들에게 스필언과 미토스는 재수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검법이 가장 쉬웠어요!]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휘이이이잉!

  일급요원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어둠의 방진이 사라지자 항마멸사신공의 기운을 끌어내고 있는 스필언과 미토스가 드러났다. 신비스러운 기운은 보는 이로 하여금 범접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칼모이조차 성스러운 기운에 감응하였는지 바닥에 엎드려 연방 라이니언을 외쳤다. 가르딘은 그 모습을 보며.

  '바닥 찬데.'

  고개를 가로저 었다.

  가르딘은 스필언과 미토스가 항마멸사신공을 갈무리한다는 것을 알았다.

  '10성을 넘어서려고 한다.'

  쉴라의 신성력이 항마멸사신공의 경지를 한층 더 상승시켜준 것이다. 고작 3년 만에 그랜드마스터 초급에 들어선 스필언과 미토스가 또다시 일보 진보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성장하고 있었다. 마치 다가올 재앙의 시기에 완벽한 영웅이 되기라도 할 것처럼 보였다. 마왕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기에 가르딘은 깨달음을 방해하고 싶은 극심한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평소라면 소리를 내서 방해했을지도 몰랐다.

  '내가 싸우는 것보다야 낫지.'

  결코 마왕과는 싸우고 싶지 않다. 그것이 가르딘의 솔직한 심정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대결은 사양이었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항마멸사신공의 새로운 깨달음을 모두 갈무리할 때까지 가르딘은 호법까지 서 주었다. 칼모이가 주신 라이니언을 영창하며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가르딘은 점혈을 해 버렸다.

  콕!

  털썩!

  칼모이는 무언가 찌르는 느낌을 받자마자 엎드린 채로 잠이 들어 버렸다. 손바닥이 위로 보이는 자세라서 그런지 한 푼 달라는 완벽한 자세가 나왔다.

  가르딘은 조용한 가운데 극상승의 경지에 다다르는 신성의 모습을 지켜봤다. 20분 정도가 지나가 스필언과 미토스는 감은 눈을 떴다. 신비스러운 기운은 스필언과 미토스의 내부로 스며들어가 안착했다. 스필언과 미토스에게서 후광이 비쳐왔다.

  "깨달음을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이전까지의 스필언과 미토스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범접 못 할 신비스러움이 주변을 맴돌았다. 가르딘이 아니라면 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였다. 가르딘은 성장하는 신성을 보면서 쓴 입맛을 다셨다.

  가르딘은 환영진을 제거하고 쉴라를 꺼내주었다. 쉴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영웅들의 성장에 만족한 듯한 미소였다. 또한 스스로도 새로운 능력을 발견한 것이다.

  환하게 비추는 빛의 중심점에 로브를 입고 앉아 있는 자의 눈빛에서 붉은 기운이 섬뜩하게 일렁였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암광을 뿜어내고 있던 수정구가 어둠을 잃고 회색이 되어 버렸다.

   로브를 쓰고 있는 자는 다크로드의 프레인이 었다. 검붉은 기운을 뿜어내는 그의 얼굴은 정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암흑 속에 번뜩이는 붉은 기운만 거세질 뿐이다. 수정구를 본 프레인은 어둠의 기운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발산되는 기운이 방안을 거세게 요동쳤다.

  "자칼이 죽었단 말인가!"

  원인은 알 수 없다. 다만 수정구가 꺼졌다는 것은 생명력이 사라졌다는 뜻을 의미했다. 7개의 수정구 중 마지막에 위치한 자칼의 수정구가 어둠을 잃고 사라졌다. 프레인은 쉽사 리 믿을 수가 없었다. 자칼은 그가 손수 만든 강화인간이었다. 보통의 능력으로는 죽일 수도 없는 초인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 일아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직감이 들 었다.

  "신성의 실력이 그 정도로 대단하단 말인가?"

  프레인은 통신마법구에 빛을 밝혔다.

  "알베이다."

  -예! 주군!

  마법구를 통해 알베이다의 음성이 들려왔다. 알베이다는 북해의 최극단에 있는 카스틴 항구의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자칼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르딘 일행이 삼신기를 모두 찾았다면 빼앗을 준비를 해야 했다.

  ''자칼이 죽었다."

  -그럼 제가 브라나도 대륙으로 가겠습니다.

  "아니다. 아직은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대기해라."

  -예, 주군.

  "자칼이 죽을 정도면 놈들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뜻이다. 만일이 사태에 대비를 하도록."

  -알겠습니다.

  "신성 말고도 조력자가 1명 더 있는 것 같은데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을 했나?"

  -여러 정황상 가르딘 공작이 아닐까 짐작이 갑니다.

  "또 가르딘이란 말이냐!"

  프레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계속 가르딘 공작이 거론되고 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프레인에게 자극을 주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처리해야 할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놈이 자꾸 거슬린다.'

  이대로 가만히 놔두기에는 꺼림칙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만약 이 모든 일의 배후에 가르딘 공작이 있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놈의 발을 묶어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

  "미하엘, 쏘렌토."

  프레인의 입에서 이름이 거론되자 또 다른 세븐핸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안으로 그림자처럼 스며든 그들은 완벽한 무의 형태를 유지했다.

  척!

  그들은 프레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명령을 내린다면 목숨조차 서슴없이 버릴 수 있었다. 그들에게 프레인은 주군이자 생명을 준 지배자였다. 지배자의 명령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너희들은 가르딘 공작의 뒤를 캐라. 그리고 놈의 반드시 약점을 찾아라."

  "알겠습니다."

  휙! 휙!

  명령을 받은 즉시 미하엘과 쏘렌토는 유령처럼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프레인의 붉은 눈빛은 여전히 강렬했다.

   툭! 툭!

  누군가 건드리자 칼모이가 정신을 차렸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잠에서 깬 칼모이는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생각나는 것이 꿈결에 본 장면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고 있었다. 완벽하게 정신이 몸에 안착을 했을 때 칼모이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눈앞에 가르딘이 앉아 있었다.

  "정신이 들었소."

  "그... 렇습니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신위를 본 후부터 칼모이는 무척이나 공손해져 있었다. 가르딘의 물음에도 적극적으로 답해 주었다.

  사냥꾼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코른 항구에 있는 놈들의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제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하지만 정체를 밝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놈들에게 걸려 있는 금제 못지않게 성정이 대단히 독한 놈들이었다. 목숨조차 도외시하며 동귀어진을 강행하는 놈들에게 목적을 듣기란 결코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제 출발하지."

  눈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칼모이는 하루 종일 잠을 잤다는 것에 놀라는 눈치였다. 자칼과의 대결이 있은 직후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 이동하는 것보다는 낮에 이동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집을 짓고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눈집에서 나온 가르딘과 일행은 곧바로 코른 항구를 향해 걸었다. 칼모이가 길을 안내하며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사냥개가 냄새를 맡을 수 있기에 돌아가는 길은 수월했다. 그렇지만 바람의 중심점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가르딘이 직접 앞길을 잡았다. 불안정한 지대가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쌔애애애앵! 휘이이이이잉!

  바람의 중심점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쳤다. 눈보라까지 날리자 바로 앞조차 보이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장벽으로 막아놓은 것도 아닌데 바람의 경계가 확실 했다. 대신에 등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걸어가는 것인지 날아가는 것인지 구분은 되지 않았다.

  3일 동안 꼬박 걸어서야 중간지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가르딘의 시야에 거대한 빙곡이 보였다. 수만 년 동안 눈과 바람으로 형성된 계곡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보다 훨씬 더 날카로웠다.

  "해가 지기 전에 넘어가야 한다."

  빙곡을 가로지르고 난 후 밤을 지새우기로 결정을 했다. 칼모이와 가르딘이 앞장을 서고 그 뒤로 쉴라와 스필언, 미토스가 뒤를 이었다. 빙곡의 입구와 끝의 거리는 족히 1천 미터는 되었다. 계곡치고는 상당히 먼 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찌릿!

  계곡의 중간지점에 다다랐을 때 가르딘은 불안감을 느꼈다. 누군가 빙곡 위에 있었다면 가르딘이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닌데도 위기감이 느껴졌다. 중앙으로 들어 갈수록 위험신호가 가르딘의 뇌리를 심하게 자극했다.

  '이상한데.'

  가르딘은 그 즉시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래요?"

   "이상해."

  "뭐가요?''

  "나도 잘 모르겠어. 누군가 있다면 알아챘을 텐데 그것도 아니야."

  쉴라의 물음에 답하면서도 가르딘은 주변을 두리번거렸 다. 무언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수상한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빙곡은 수만 년의 세월을 버틴 만큼 단단했다. 충격에 쉽게 부서질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불안감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스필언, 미토스 너희들은 먼저 앞으로 가라."

  "예."

  가르딘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쉴라의 옆에 자리했다. 돌발 사태가 발생했을 시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이 쉴라였다. 쉴라는 세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어차피 악운에 강했다. 쉽게 죽을 리 없었다. 칼모이가 불쌍하기는 하지만 최악의 경우 칼모이는 포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거리를 벌이며 스필언과 미토스가 앞서 갔다. 가르딘이 쉴라의 옆을 지키며 천천히 움직였다.

  그때였다.

  투과과과과광!

  천지를 무너뜨리는 굉음이 빙곡 안을 진동시켰다. 빙곡의 중앙에 다다르자 발생한 일이었다. 꼭대기에서 마력탄이 터지면서 빙곡의 단단한 지대를 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1개도 아닌 6개의 마력탄이 일시에 터지자 빙벽에 균열이 가며 무너져 내려갔다.

  가르딘과 일행은 갑작스러운 폭발과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들로 인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가르딘이 애초에 느낀 불안감이 바로 저것이었다.

  '시간차 마력탄인가!'

  아무래도 빙곡의 들어오는 입구에 무언가를 설치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마력탄이 터지도록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사람이 아닌 마력장치를 이용하여 만들어 놓았기에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마력탄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것도 놀랍지만 그러한 장치를 만들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놈들의 정체가 정말 궁금해졌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했다.

  슈우웅! 쿠구구쿵!

  빙벽이 무너지면서 떨어지는 날카로운 얼음 덩어리들은 살인무기에 가까웠다. 가르딘은 자신의 옆에 있는 쉴라와 사냥꾼을 함께 보호하면서 빠져나가야 했다.

  "스필언! 미토스! 뒤로 오지 말고 전속력으로 달려 가!"

  가르딘이 공력을 이용하여 전방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앞으로 나가 있기에 뒤로 돌아올 경우 더 위험해질 수 있었다.

  초를 다투는 급박한 순간에 가르딘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리고 계산을 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와 조각들이 가르딘의 시야에 순차적으로 보였 다.

  꾸욱!

  가르딘은 쉴라와 사냥꾼을 양 허리에 꿰찼다. 칼모이가 식구와 같은 개를 잡고 있기에 무게는 더 나가고 있었다.

  천롱안을 발동했다. 떨어져 내려오는 무수히 많은 얼음 덩어리들의 시간차를 순식간에 계산해 내었다. 미세한 틈과 틈의 시간 싸움 안으로 가르딘의 몸이 튀어 올랐다.

  퓨융!

  상상을 초월하는 도약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번의 발구름으로 30미터 이상을 튀어 오른 가르딘은 떨어져 내려오는 얼음 덩어리들을 발판 삼아 지속적인 도약을 실시했다. 좌에서 튀어 오른 즉시 우측으로 다시 움직이고, 일발의 위기 상황 속에서 다시 솟구쳐 올랐다. 자잘한 얼음 조각들은 가르딘의 몸에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뛰어오름과 동시에 호신강 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쉴라와 칼모이를 동시에 보호를 하고 있었다. 쉴라와 칼모이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일순간 튀어 올라 사방으로 움직이는 순간이 너무 빠르기에 정신이 따라와 주지 못하고 있었다.

  파팟! 슈우우웅!

  끝도 없이 솟구쳐 오른 가르딘은 마침내 빙곡의 정상으로 올라섰다. 바늘구멍도 통과하기 어려운 곳에서 상처 하나 없이 나온 가르딘이 대단하기까지 했다.

  가르딘은 공중에서 다시 발을 굴렸다. 섬전행이 극에 이르면 어기비행술에 가능했다. 불어오는 바람의 결을 타고 가르딘은 몸을 실었다. 흔들리는 바람은 무수히 많은 결을 포함하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 서린 미세한 틈을 타고 날아서 전진했다.

 시린 바람에 정신을 차린 쉴라가 탄성을 내질렀다.

  "와우! 경치 좋다!"

  "지금 그런 말이 나오느냐!"

  간신히 죽을 뻔한 상황에서 빠져나와서 저런 말을 하다니, 대범한 것인지 모자란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말소리에 깨어난 칼모이는 놀라서 개를 놓칠 뻔했다. 사람이 나는 것을 구경조차 해보지 않은 칼모이는 가르딘이 사람 처럼 보이지 않았다. 또한 쏟아지는 빙벽 속을 빠져나오는 신출귀몰함은 상상을 초월했었다.

  가르딘이 스필언과 미토스를 찾았다.

  녀석들은 폭발과 동시에 가르딘의 목소리를 듣고 곧장 빠져나갈 수 있었다. 가르딘은 모두가 무사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정을 찾자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에 대해 화가 났다.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사람 고생시키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놈들이었다. 그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어야 했다.

  빠득!

  가르딘은 이를 갈았다.

  건실한 중년 남이 화가 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해줄 계획이다. 웃으면서 이를 가는 가르딘이 무섭게 느껴지는 칼모이 였다.

  '이 사람 건드리면 큰일 나겠다.'

  코른 항구에서 자칼을 기다리고 있었던 일급요원들은 알베이다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자칼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일급요원들은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자칼의 강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요원들 전체가 덤벼들어서 제압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자칼의 강인함이 었다.

  "사실입니까?"

  -네깟놈이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

  "아... 닙니다."

  -네놈들은 지금부터 내 명령을 따른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자칼의 일급요원들은 분하지만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다. 알베이다의 명령은 다크로드 직속명령이었다. 길드의 명을 어기게 되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경험하다가 죽어야 한다.

  "명령을 내리십시오."

  -자칼보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군. 성녀가 돌아오면 삼신기를 찾았는지 확인만 해라.

  "공격은 하지 않습니까?"

  -너희들로는 무리다. 주제를 알아야지. 그러니 경거망동 하지 마라.

  알베이다는 그저 삼신기의 존재 자체를 확인하라는 명령만 내렸다. 자칼의 죽음에 대한 원한은 갚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5명의 요원으로는 성녀를 공격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칼의 심복인 케이브는 화가 나지만 순순히 현실을 인정했다.

  "놈들이 오기 전에 영상구를 설치한다."

  "알겠습니다."

  직접적인 탐색도 어려운 상황이니 마법구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전환하였다. 때마침 자칼을 따라갔던 길드요원 2명이 돌아왔다. 복귀한 일급요원들은 케이브의 설명에 당황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자칼의 명령을 수행하고 돌아온 게 얼마 전이었다.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자칼 님 이 죽었다고!"

  "그렇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성녀 일행을 감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돌아온 요원 중에 1명인 반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은 자칼의 명령에 따라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마력탄 6개를 빙곡의 꼭대기에 설치를 했다. 놈들이 빙곡을 건너는 즉 시 산 매장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수만 킬로에 달하는 눈덩어리와 얼음 덩어리를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 죽었을 거다."

  "네 말대로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어차피 명령은 떨어졌다. 명령을 이행하고 난 후에 결과를 두고 보면 될 일이다."

  케이브의 뜻대로 가르딘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마법영상구를 하면 주어진 임무는 끝이 었다. 요원들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문을 열었다. 문을 연 요원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그 순간 문을 뚫고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빛의 그림자는 빠르고 날렵했다. 낌새도 느끼지 못한 일급요원들은 무방비상태로 제압을 당해 버렸다.

  슈슈숙! 퍼퍽! 쿠다다당!

  시원하게 1대 맞은 케이브의 신형이 방안의 탁자 위로 날아가서 처박혔다. 탁자가 박살나며 사방으로 조각들이 튀었다. 단 한 방에 의식을 잃은 케이브가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때 이미 상황은 종료된 직후였다. 제압된 일급요원들은 벗어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몸은 그들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가르딘이 비공을 눌러 점혈을 해버렸기에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 버렸다. 입만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방안의 한쪽에는 사냥꾼들이 죽어 있었다. 필요가 없어진 사냥꾼들은 용도를 다하고 죽음을 당했다.

  동료사냥꾼들의 죽음을 본 칼모이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놈들을 다 죽이지 않고서는 솟구치는 분노를 다독일 수 없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 약속도 지키지 않는 것이냐!"

  "약속은 네놈이 먼저 어겼지."

  "닥쳐, 죽은지 시간이 꽤 지났다. 나는 네놈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케이브는 사냥꾼들의 죽음 따위는 애초부터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사냥꾼에게 공격을 당한 것이 분할뿐이다.

  "자자! 그만. 당신도 잠시 화를 푸시오. 우선은 이놈들의 정체를 밝혀야 하니 말이오."

  "우리가 말할 것 같으냐!"

  "말을 하는 게 고통스럽지 않을 거다."

  "네놈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케이브는 악에 바친 듯이 가르딘을 노려보았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독기 가득했다. 그에 반해 가르딘은 서두르지 않았다. 조급해 봤자 이놈들이 원하는 것만 보여 주게 되어 있었다.

  "이미 네놈들의 정체는 밝혀졌다."

  "닥쳐 랏!"

  "어둠의 길드가 아닌가."

  "그따위 허접한술책에 넘어갈 것 같나!"

  케이브는 흔들리지 않았다. 은근슬쩍 떠보려는 가르딘의 계획은 통용되지 않았다. 놈들은 이 정도로 파악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니었다.

  '쉽지 않네.'

  약간의 흔들림이라도 있다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건만 놈들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의 길드를 전혀 모르는 놈들이거나 혹독한 수련을 받은 놈들일 가능성이 컸다. 가르딘은 후자에 힘을 실었다. 어둠의 길드와 관련이 있던 없건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정체를 밝힐 수 없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상대는 가르딘을 알고 있는데, 가르딘은 상대를 모른다는 뜻이 된다. 앞으로 수없이 많은 변수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많은 변수를 추리고 가리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였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모두 나가 있어라."

  가르딘이 스필언과 미토스 ,칼모이에게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순순히 가르딘의 뜻에 따르는 신성과 다르게 칼모이는 남겠다고 박박 우겨댔다. 절대로 이놈들을 살려두지 않겠다는 뜻이 내비쳐졌다. 쇠심 줄 같은 고집은 대륙의 사냥꾼다웠다.

  "정말 나가지 않겠소."

  "나는 이곳에서 놈들의 최후를 볼 겁니다!"

  "그럼 그러시오."

  비위가 약한 사람은 바닥에 토악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지금부터 발생할 것이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가르딘은 밖에 나가 있으라고 배려를 한 것뿐이다. 굳이 강요는 하지 않았다.

  '우선 기막을 설치하고.'

  무형의 기운으로 방안을 철저하게 보안 처리했다. 그다음 가르딘은 한 명씩 심문을 해나갔다.

  "소속은?"

  "모른다."

  "말해야 좋을 텐데."

  가르딘은 놈의 손톱과 발톱의 중간을 칼로 갈랐다. 갈라진 발톱과 손톱을 좌우로 벌리 면서 뽑아내었다. 살을 가르는 고통보다 더 심한 고통이 번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악!"

  미세한 반응에도 가장 고통스러운 곳을 지속적으로 고문하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을 듣는 것은 포기하고 있었다. 무고한 사람을 목적을 위해서 쓰고 버리는 버리지 같은 놈들에게 편안한 죽음은 사치였다. 놈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가르딘도 똑같이 할 수 있었다.

  고문은 시작에 불과했다.

  "크아아아아아악!"

  1시간 이상 지속되는 고문을 지켜본 칼모이는 가르딘이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칼모이도 놈들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저 정도로 잔인하게 난도질을 할 줄은 몰랐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는 가르딘이 새삼 무섭게 다가왔다.

  고통은 생생하게 다가왔다. 눈조차 감지 못하도록 눈꺼풀을 찢었다.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길드의 요원들은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마지막까지 발악을 하던 케이브도 가르딘을 악마로 치부했다.

  "네... 놈은... 사람... 아니다! 어... 서 죽여... 라! 크아아아아악!"

  "어때, 힘줄 하나하나가 잘려나가는 통증이 제법 아프지."

  제법 아픈 정도가 아니다. 생살이 베어지는 고통은 차라리 나았다. 뜬눈으로 망가지는 몸을 보는 정신적 고통이 더 컸다. 기절하고 싶어도 가르딘은 허용하지 않았다.

  요원들은 마지막까지 몸부림을 치며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비명성이 방안을 시끄럽게 울렸다. 가르딘의 시선이 칼모이에게 향했다.

  움찔!

  "당연히 죽어야 하는 놈들이오. 이 정도의 고통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나... 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가르딘은 칼모이에게 다가가 단검을 쥐어줬다. 이 순간 그가 어떻게 할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렸다.

  이 정도로 놈들은 죽지 않을 것이다. 확실하게 끝을 내야 하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칼모이뿐이었다. 단검을 받자 칼모이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는 수십 년간 얼음의 대지에서 사냥을 해온 철혈의 사냥꾼이다.

  이 정도로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칼모이는 망설이지 않고 놈들의 심장에 검을 꽂았다.

  푸욱! 큭!

  동료의 죽음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에 반해 만신창이가 된 요원들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칼모이는 놈들을 죽이고,가르딘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얼음의 부족으로서 은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 립니다."

  "동료의 죽음 앞에 초연하기 힘들 것이오. 하지만 동료들은 당신이 살아서 굳세게 살기를 바랄 것이오."

  일급요원들의 죽음을 확인한 후 가르딘은 마지막 정리를 하고 방을 나왔다. 밖에는 쉴라와 스필언, 미토스가 서 있었다.

  가르딘에게 다가온 쉴라는 마음이 아픈 듯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어요?"

  눈앞에서 보지는 않았지만 쉴라는 일급요원들의 죽음을 훤히 알고 있는 듯했다. 잔인하게 죽어갔을 것이다. 죽어 마땅한 이들이지만 가르딘이 그와 같은 일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난 소심하지. 대범하게 죄를 용서하는 이들과는 달라."

  "그래도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날 위해서 하는 말이란 건 안다. 그래도 나는 받은 만큼은 반드시 돌려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대의를 위해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묻어둔다. 오래전부터 영웅들의 일대기를 보면 꼭 나와 있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건 개나 줘 버리라고 가르딘은 말할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잊으라는 말도 듣고 싶지 않다. 죽기 전에 지켜야 할 것이 아닌가! 그토록 소중한 사람이라면 세상이 무너져도 지켜야 했다.

  차라리 자신이 죽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지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도 없다. 그것이 가르딘이 생각하는 방식이다.

  '가족보다 대의라고 그런 건 모두 다 헛소리에 불과해.'

  가르딘에게는 가족이 대의였다. 거창한 대의를 거들먹거리는 놈들은 가족과 동료의 죽음을 직접 당해 보지 않은 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뿐이다. 당해 보면 대의라는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칼모이에게 동료사냥꾼들은 가족이나 마찬가지 다. 그래서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준 가르딘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직접 손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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