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5/93)

   @@[ 제6장 브라나도 대륙으로@@]

  다음 날 아침에 가르딘은 맥시멈 상단이 운영하는 상선에 찾아갔다. 쉴라와 스필언, 미토스는 가르딘의 지시대로 브라나도 대륙에 도착했을 때 필요한 것들을 사러 나갔다.

  가르딘은 돈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 여관 주인에게 품목과 가격정찰을 물어서 적었다. 외지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는 족속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전에 미리 조사를 해서 상술에 당하지 않아야 한다.

  맥시멈 상단의 상선이 가르딘의 눈에 들어왔다. 총 세 대의 상선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이번에 출항하는 배는 한 척이었다. 두 척의 배는 2일 전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가르딘이 상선의 책임자를 만났다.

  맥시멈 상선의 책임자는 하이킨이라는 자였다. 세 대의 상선을 관리하며 책임을 지는 총책임자였다.

  “브라나도 대륙에 가고 싶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알고 있겠지만 외지인은 태우지 않습니다.”

  가르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하이킨에게 실버 급 표식을 보여주었다. 실버 급 표식을 받은 하이킨이 표식의 진위를 확인해 보았다. 분명히 맥시멈 상단에서 발행하는 표식이었다. 실버 급 표식은 지점장급 인물의 생명을 구해주었거나 그에 준하는 도움을 준 이에게 주는 것이다.

  대륙인들에게 상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족속들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용을 제일 척도로 본다. 신용을 한 번 잃게 되면 상단의 존립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킨은 그 즉시 허락을 해주었다.

  “상단의 은인이었군요. 당연히 태워드리겠습니다.”

  “얼마면 되겠습니까?”

  “돈은 필요 없습니다. 은인에게 돈을 받을 정도로 맥시멈 상단은 궁핍하지 않습니다.”

  “역시 대륙 10대 상단의 수좌답습니다.”

  “과찬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대륙 10대 상단 중에 가장 뛰어난 상단은 맥시멈 상단일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가르딘은 일부러 맥시멈 상단을 추켜세우고 있었다. 칭찬은 두루뭉술하게 하는 게 좋다. 알지도 못하면서 자세히 들어가면 괜히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칭찬을 한 이유는 돈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돈을 내겠다고 말을 한 것도 형식에 불과했다. 진짜로 돈을 받으면 가르딘은 실망했을 것이다. 역시나 돈이 많은 상단다웠다. 돈에 그다지 인색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가르딘이 맥시멈 상단을 좋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이킨은 가르딘이 어떻게 해서 표식을 받게 되었는지를 간단하게 물었다. 일단은 확인을 한 후에 본부에 보고를 해야 한다. 그래서 들어온 정보와 확인해서 일치되는지를 봐야 했다.

  “언제 출발하는 겁니까?”

  “내일 출발할 겁니다.”

  “그럼 내일 찾아오겠습니다.”

  “그때 뵙지요.”

   가르딘은 당장 여관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맥시멈 상단의 상선에서 벗어나서 어선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새벽나절에 나간 배들이 아침이 되자 돌아온 것이다. 북해에 부는 바닷바람은 살을 에는 수준을 넘어선다. 낮에 출항한 것도 아니고 밤에 나갔다 돌아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힘들다. 하지만 인근 해역에 출몰하는 어류 중에 밤에 잡히는 것들이 따로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르딘이 지금 막 어선에 당도한 선장에게 다가갔다. 선장은 낯선 이가 다가오는 것을 거북해하는 눈치였다.

  “말 좀 물읍시다.”

  “뭘 말이오?”

  선장은 50대는 되어 보였다. 바닷바람을 많이 맞아서 그런지 주름이 상당히 많았다. 투박하면서도 고집이 있어 보이는 완고한 선장의 모습이었다.

  가르딘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러자 선장이 뒷걸음을 쳤다. 외간 사내가 너무 접근했기 때문에 당황한 것이다.

  “무슨 짓이오? 나는 그런 사람 아니오!”

  “어허! 서로 위험한 생각은 하지 맙시다. 긴히 물을 게 있어서 그런 것이오.”

  가르딘은 선장의 태도에 조금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선장도 알겠다는 듯이 표정을 바꾸었다. 괜히 오버한 것이 부끄럽기까지 한 상황이다.

  “물어보시오.”

  선장도 미안한지 선선히 대꾸해 주었다.

  가르딘은 선장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귓속에 속삭였다.

  “정력에 좋은 그거 있소이까?”

  “그건......!”

  잠시 대답을 망설이는 선장이었다. 가르딘이 말하는 것은 씨라이언(바다사자)이라는 것으로 바다에 살고 있는 육식 동물이다. 이놈들은 한 마리의 수컷이 20마리의 암컷을 데리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정력이 좋기로 소문이 났다.

  특히 씨라이언의 쓸개는 사내의 정력을 증진시키는 보양식으로 평가를 받는다.

  또한 씨라이언은 지방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추운 겨울에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어부들 대부분이 그 사실을 알기에 씨라이언을 잡기 위해서 애를 쓰는 편이지만 팔지는 않는다. 대륙인들이 씨라이언의 육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지인 같은데 어떻게 알았소?”

  “소문은 듣고 있었소이다.”

  “솔직히 파는 물건은 아니오.”

  선장은 파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씨라이언은 잡기 쉬운 종이 아니다. 바다의 라이언답게 무척이나 빠르고, 몰려다니는 암컷이 수컷을 보호하기에 가끔씩밖에 잡지 못한다. 더군다나 선장도 쓸개를 욕심내고 있었던 것이다.

  “부탁이오.”

  가르딘이 사정조로 부탁해 보았다. 그러면서 2골드를 선장의 호주머니에 슬쩍 넣어주었다. 선장 이외의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선장은 주머니에 들어온 누런빛의 황금을 살짝 보더니 손가락을 한 개 더 흔들었다.

  빠직!

  가르딘의 이마에서 힘줄이 튀어나왔다.

  ‘이런 망할!’

  2골드도 대단히 큰 출혈이었다. 여관 주인이 정력보강제 중에서도 최강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결단코 사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완고하게 생긴 선장을 택한 것도 돈에 대해서 야박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욕심이 장난 아니었다.

  가르딘은 최대한 표정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주도권은 선장 놈이 쥐고 있었다. 돈을 먼저 넣어준 것이 화근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서 가르딘이 아니다.

  “이거 내 입으로 말하기는 무안하지만 어쩔 수 없구려.”

  이미 말은 하고 있는 가르딘이다. 무안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인간이 바로 가르딘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어제 톰슨 파가 어떻게 됐는지 들어는 봤소.”

  밤에 출항을 하고 돌아온 선장은 돌아오자마자 톰슨 파가 박살 난 것을 들었다. 40명이나 되는 톰슨 파가 외지인들에 의해서 박살이 났다는 것이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속이 다 후련한 일이었다. 그놈들에게 당한 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리고 있었던 선장이다. 

  “그럼 설마?”

  “설마가 바로 나요.”

  선장이 반색을 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르딘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선장은 그 즉시 돈을 도로 돌려주고, 쓸개까지 주었다. 톰슨 파가 그동안 어떻게 행동을 하고 다녔는지 능히 짐작이 가는 상황이었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도움을 다 줄 때가 있군.’

  가르딘은 돌려주는 돈을 받지 않았다. 간밤에 고생한 선원들과 함께 술이라도 한잔 마시라며 사양했다. 가르딘도 그 정도의 양심은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먹으면 되는 것이오?”

  “술에 타서 한 번에 먹는 게 좋소. 씹어 먹는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시오! 이놈이 작아도 씹다가 터지면 쓴맛이 장난 아니오.”

  생각만 해도 쓰다는 선장이다. 가르딘은 선장과 거래를 끝낸 후 바로 여관으로 돌아갔다. 여관에 돌아온 가르딘은 주인을 불렀다. 쉴라, 스필언, 미토스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어제 마셨던 술을 한잔 주시오.”

  “오오! 정말 사오셨군요. 운이 좋으십니다.”

  여관 주인도 가르딘을 친절히 대하고 있었다. 톰슨 파를 쓰러뜨림으로써 호감이 상승한 것이다.

  ‘쉴라가 오기 전에 먹어야지.’

  생 쓸개를 먹는 모습을 쉴라가 보면 야만인이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왜 먹냐고 물어보면 곤란했다.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젊은 놈들은 아직 필요 없지.’

  가르딘은 술잔에다가 씨라이언의 쓸개를 넣었다. 확실히 흉해 보이기는 했다. 씹을 맛이 절대 나지 않았다. 솔직히 가르딘도 이런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라이나와의 뜨거운 밤을 위해 마다하지 않았다. 사내라면 응당 이 정도의 시련을 견뎌낼 줄 알아야 했다.

  ‘라이나를 위해!’

  라이나를 위해 건배하며 한 번에 마셔버렸다. 몸 안으로 들어간 씨라이언의 쓸개는 피가 되고 정력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몇 명의 일당이 누군가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단번에 잡혔다. 실력도 문제지만 힘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도망치다가 잡힌 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남김없이 토해내야 해야 했다. 말을 떨다가 이미 한 놈의 목이 잘려 나가 있었다.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절대 거짓말이 아닙니다!”

  톰슨의 일생에서 가장 최악의 순간이었다. 자칼은 톰슨과 일당들을 사로잡아서 가르딘 일행의 실력을 확인해 보았다. 이놈들의 실력이 워낙 형편없기에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일행의 실력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었다.

  ‘예상대로 신성들일 가능성이 크군.’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해야 했다.

  성녀가 북해 최극단인 브라나도 대륙에 가려고 하고 있었다. 자칼도 움직이기 위해서는 배가 필요했다.

  ‘그곳이 네놈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자칼의 시선이 톰슨 파에게 향했다. 쓸모가 있는 도구는 계속 사용하지만 쓸모가 없어진 도구는 폐기처분하기 마련이다. 자칼의 눈짓을 받은 수하들이 톰슨과 일당을 서슴없이 죽여버렸다.

  하이킨의 지시에 의해서 가르딘은 맥시멈 상단의 상선에 탈 수 있었다. 기온이 차고 바람이 시렸지만 출항하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은 날씨였다. 이 정도만 해도 굉장히 좋은 날씨에 해당된다고 하는 선장이었다. 상선의 선장은 게르반이라는 사람이었다. 현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맥시멈 상단이 포섭했다. 

   “바다 몬스터가 나온다고 하던데 괜찮은 것입니까?”

  “파쵸아 향을 뿌리기에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파쵸아는 북해 인근에서 나는 나무열매였다. 파쵸아 열매에서 나는 특유의 향이 바다 몬스터들의 접근을 막아주었다. 그래서 상선의 표면 곳곳에 파쵸아 열매를 즙으로 내어 발라놓는다.

  “물론 모든 바다 몬스터를 다 막아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가끔가다 파쵸아 향기를 무시하고 접근하는 몬스터가 있기는 합니다.”

  선장은 그다지 걱정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에 반해 가르딘은 조금 께름칙했다. 육지 몬스터와는 다르게 바다 몬스터는 대형종이 많았다. 육지의 미노타우로스나 오우거는 상대도 되지 않는 엄청난 크기의 몬스터들이었다. 그렇기에 바다가 무서운 것이다. 또한 싸우기도 난감하다. 배라는 한정된 공간을 지키면서 싸워야 한다. 배가 부서지면 몬스터를 이겨도 이긴 게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가르딘의 불길한 느낌과는 다르게 선장의 말대로 배는 순항을 했다. 곳곳에 떠내려 오는 얼음 조각들이 배에 부딪치기는 했지만 정해진 선로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상단의 배는 예상보다 더 튼튼하게 지어진 것 같았다.

  “며칠이나 걸립니까?”

  “10일 정도 걸릴 겁니다.”

  “오래 걸리는군요.”

  “배를 처음 타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멀미를 조심해야 할 겁니다.”

  10일 동안 꼬박 운행을 해야 도착하는 곳이다. 상선의 속도가 제법 빠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먼 곳이다. 배를 처음 타는 사람들 대부분이 멀미 때문에 고생을 한다. 이곳처럼 파도가 제법 높은 지역에서는 그 강도가 더 심하다.

  선장의 예상과는 다르게 가르딘과 신성, 쉴라는 멀미를 하지 않았다. 쉴라는 신성력이 보호를 해주고, 가르딘과 두 신성은 타고난 균형감각으로 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멀미를 하지 않았다. 

  배를 타고 8일 정도가 흘렀을 때 선장이 말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파쵸아 향을 무시한 바다 몬스터가 가르딘의 눈앞에 나타났다.

  ‘저게 뭐야?’

  큰 것도 정도가 있어야 했다. 일반 배보다 큰 상선의 몇 배는 되어 보이는 바다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선장과 선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저렇게 큰 바다 몬스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브라나도 대륙에 가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뀌이이이이잉!

  귀를 찢는 듯한 괴상한 포효를 내지르는 바다 몬스터 빅트라이거였다. 생김새가 상당히 이상한 종이다. 사자와 호랑이를 섞어놓은 얼굴에다가 지느러미에 발이 달려 있었다.

  빅트라이거가 상선을 향해 거대한 입을 벌렸다. 한꺼번에 삼켜버리려는 것 같았다.

  ‘떠...그럴!’

  욕이 튀어나오는 가르딘이다. 그에 반해 벌써부터 전투태세를 갖추는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승부에 관해서는 물러서지 않는 영웅 특유의 기질이 발휘되었다.

  한편, 발키리 영지에 도착한 아이시런 공주는 가르딘이 없자 무척이나 실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구 욕을 해댔다.

  “도대체 어디를 간 거야! 이놈의 아저씨는! 틀림없이 놀러간 것이 확실해!”

  한 달 동안 기다렸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가르딘 때문에 심심해서 미칠 것 같은 아이시런 공주였다. 이날을 기대하면서 온 보람이 전혀 없었다. 돌아오면 반드시 그에 대한 보답을 해주겠다며 이를 갈았다.

  <가르딘 전기> 1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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