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4/93)

   @@[ 제5장 북해여정@@]

  가르딘은 북해로 떠나기 전에 준비를 철저히 했다. 저택의 방어 시스템을 최고로 높였다. 저택 주변의 진법을 다시 설치하고, 기사단의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투르의 창기병도 수련에 참여시켜 저택 방어에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 필리언, 갈라, 유타의 3중 방어선을 가동하고, 그에 따라 기사단의 배치를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하도록 체제를 잡아놓았다. 또한 저택에 보유하고 있는 발리스타의 개수를 다섯 대로 늘렸다.

  저택의 진법을 맡고 있는 파멜라와 안젤리카를 불렀다.

  “마진법의 효율성은 얼마나 되지?”

  “전보다 세 배는 더 강해요.”

  “아직 부족해.”

  7서클 마법진을 세 배나 뛰어넘는 마진법이었다. 진법과 마법의 조화를 통해 효율성과 위력을 몇 배로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딘은 만족하지 않았다. 저택의 방어 시스템은 최고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가르딘은 역천무한진에 대해 설명했다. 신마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역천무한진의 효능을 파멜라에게 알려주었다.

  물론 진법의 원리를 모두 알지는 못한다. 가르딘은 밝혀내지 못했지만 파멜라라면 충분히 완성해 낼 수 있다고 보았다. 신마조차 뚫지 못한 진법이라면 그 어떤 존재도 뚫기 힘들 것이다. 가르딘이 원하는 진법은 드래곤도 가둘 수 있는 진법이었다.

  파멜라는 역천무한진의 내용을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진법에 대해서는 파멜라가 가르딘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천무한진은 그녀가 쉽게 풀지 못할 미지의 영역이었다.

  “굉장한 진법이에요. 구궁의 위치와 오행의 묘리, 삼재의 원리까지 모두 비틀어 버린 진법이에요. 구현한다면 차원마저 비틀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진법을 만들 수 가 있지요?”

  “그건 나도 모른다. 나는 그저 현상을 알 뿐이다.”

  진법의 설명을 끝내자 파멜라는 그 즉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진법에 대한 무궁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파멜라가 진법 연구실로 돌아간 후 안젤리카를 따로 부탁했다.

  “저택 안에서 마법사들과 같이 머물러줬으면 한다.”

  “알겠어요.”

  가르딘의 극성은 알아주어야 했다.

  마진법만 해도 저택을 침입하는 자들에게는 재앙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돌파했다고 해도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과 발키리 기사단을 넘어야 한다. 다름으로 필리언, 갈라, 유타, 투르를 무너뜨려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을 무너뜨려도 나중에는 고룡급 드래곤 라이젠과 안젤리카를 이겨야만 한다. 초극의 방어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이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자가 나올지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딘은 안주하지 않았다.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가르딘은 라이나와 브리안의 능력을 상승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우선의 라이나의 몸에 쌓인 기운을 활성화시켰다. 이것은 부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음양화합신공을 이용하여 라이나의 몸에 쌓인 탁기를 제거하고, 생사현관을 타통시켰다.

  음양화합신공은 신마를 공격했다. 음양쌍마의 독문내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는 채양보음을 위한 마공이지만 신마는 음과 양의 화합에 주목해서 새롭게 창안을 해내었다. 무공을 창안해 내는 데에는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신마였다. 어떤 무공이든 한 번 보면 새롭게 구성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또한 음과 양은 무극의 기본 토대였다. 기본이 비슷하기에 변화가 가능했었다.

  가르딘은 라이나의 생사현관을 타통시키기 위해서 무려 6갑자의 내공을 소모하였다. 물론 공령의 지체에 올라선 가르딘에게 내공의 소모는 그다지 우려될 일은 아니었다.

   반면에 생사현관을 타통시키는 일은 상당히 위험하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건너 새로운 관문에 들어서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무인들이라면 바라마지 않는 최고의 신체 조건을 갖추게 되는 일이다.

  라이나에게도 고통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가르딘은 라이나에게 고통을 주기 싫어서 그동안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라이나 반로환동 대작전’과, 실력상승을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절차였다.

  생사현관이 타통되는 날 라이나는 극심한 고통을 사랑으로 참아내었다. 가르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라이나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가르딘을 위해 참고 또 참았다.

  “여보!”

  꾸욱!

  라이나가 가르딘의 등을 있는 힘껏 끌어 안았다. 터질 듯한 고통은 내부의 근원에서 시작되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가닥가닥 끊어질 듯한 고통은 그녀의 생각보다 더 생생해서 참기 힘들었다. 

  “조금만 참아! 거의 다 됐어!”

  가르딘은 굉장히 신중했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초절한 집중력을 발휘하여 라이나의 전신을 개조해 나갔다. 하룻밤이 다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을 시켰다.

  생사현관이 타통되자 라이나는 새로운 기분을 맛보았다. 그녀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만큼 상쾌했다. 전신의 모공으로 숨을 들이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 거울을 봐.”

  “어머! 이게 내 얼굴이에요?”

  “그럼 당신이지.”

  라이나의 모습은 20살 때로 되돌아가 있었다. 탱탱한 피부는 말할 것도 없고, 주름 하나 없는 완벽한 아가씨의 얼굴이었다.

  라이나는 뛸 뜻이 기뻐했다. 여인의 생명은 뭐니 뭐니 해도 피부였다. 탱탱하고 잡티 없는 피부야말로 여인들의 로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본판불변의 법칙은 외면할 수 없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고마워요!”

  흑! 흑

  “울긴.”

  스윽!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르딘이 손으로 닦아주었다. 기쁨에 겨워 흘러나오는 라이나의 눈물이 가르딘의 심금을 울렸다. 보고만 있자니 참을 수 없는 욕망이 느껴졌다. 결국 입을 들이대고 말았다. 라이나도 거절하지 않았다. 부부는 역시 일심동체였다.

  “우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고.”

  “당연한 소리 하지 마요.”

  가르딘은 라이나의 생사현관을 타통시키고, 본격적으로 무공을 수련시켰다.

  천룡무상신공은 안타깝게도 여인이 익히기에는 부적절했다. 그래서 라이나와 브리안에게는 다른 무공을 가르쳤다. 여인들이 익히기에 적절한 대정신공을 전수했다.

  대정신공은 정을 보호하고 기운을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정의 기운을 극대화시키는 것만은 아니었다. 대정신공의 화후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늙지 않게 해주는 공능이 있었다.

  대정신공의 전수는 혈과 혈을 짚어주는 방식으로 가르쳤다. 20일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대정신공의 오의를 모두 전수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마침내 북해로 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보,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

  “당연하지.”

  “아빠! 올 때 선물 사오는 것 알지.”

  “물론이지. 우리 딸을 위해서 가장 멋지고 훌륭한 선물을 가져오마.” 

  가르딘은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북해를 갈 준비를 마쳤다.

  쉴라는 발키리 영지까지 따라 온 성기사들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안 됩니다. 어찌 성녀님을 모시지 않고 돌아갈 수 있단 말씀입니까!”

  “이제 됐어요. 여기에 저를 지켜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요.”

  “그래도 안 됩니다.”

   “제 주위에 오러마스터가 세 명이나 있어요. 그런데도 안심이 안 되나요.”

  그란테는 끝까지 성녀를 보필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쉴라의 뜻이 완강했다. 또한 인원이 많을수록 눈에 잘 띄고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그란테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제가 말한 대로 어둠의 길드에 대해서 조사를 해주세요.”

  “물론입니다.”

  가르딘은 쉴라에게도 어둠의 길드가 수상하다고 말했다. 이제까지의 일에 그들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악마의 눈물과 흑마법사라는 것만 해도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부단장님은 제가 돌아갈 때까지 대신관님을 잘 보필해 주세요.”

  “성녀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북해까지 이동을 위해서 마차를 준비했다. 마차는 가르딘의 마차를 사용하기로 했다. 쉴라의 마차는 너무 고급스러웠다.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스필언과 미토스도 얼굴 변환 환영 아이템을 착용해서 평범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에 반해 가르딘은 평상복을 착용하자 평민 그 자체였다. 옷을 갈아입었을 뿐인데 공작의 품위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을 대비해서 천변만환술로 얼굴 모양에 약간만 변형을 주었다.

  “이제 가지.”

  북해로의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발키리 영지 내에 머물고 있던 알베이다는 가르딘의 저택에서 마차가 떠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성기사단이 이끌고 있는 마차가 신성제국으로 향하고, 또 다른 마차가 서북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신성제국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는 여인이 타고 있지 않았다.

  “마차에 성녀가 없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성기사만 신성제국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성녀는 다른 마차에 타고 있을 가능성이 크군.”

  알베이다는 성녀가 환영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가르딘 공작의 저택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나?”

  “경비가 너무 철저합니다. 진입을 시도했다가는 발각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 정도란 말인가!”

  전시체제도 아닌 상황에서 저택의 경비가 너무 탄탄했다. 도둑 길드의 최정예 요원들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성녀가 탔을 것이라 예상되는 마차를 따라가는 것이 먼저였다. 그녀가 어디로 갈지 파악해야 했다. 

  “마차를 따라간다.”

  “알겠습니다.”

  “너무 근접하지는 마라. 제국의 신성이 보호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오러마스터는 기감이 뛰어나기에 들킬 수도 있었다. 대륙에 퍼져 있는 도둑 길드의 정보력을 모두 동원하면 미행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위험을 무릅쓰고 근접할 필요는 없었다.

  알베이다는 우선 성녀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작전을 구상했다.

  ‘성녀라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북해로의 여정은 순조로웠다.

  가르딘은 인포메드를 통해서 북해로 가는 최적의 길을 확보해 놓았다. 최적 루트를 이용하기 위해서 해역으로 빠지는 길을 찾았다. 각 영지와 영지, 왕국과 왕국을 지나기 위한 신분증도 새로이 만들었다. 그로 인해 들어가는 돈을 가르딘이 지불했다는 것이 쓰릴 뿐이다. 성녀의 신분과 신성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마부는 스필언과 미토스가 번갈아 가면서 했기 때문에 가르딘은 마차 안에 편안히 앉아 있으면 되었다.

  “성녀의 수련은 어땠니?”

  “별거 없어요. 하루의 절반은 기도하고, 나머지 시간은 신학에 대한 수양을 쌓았어요.”

   “반나절 동안 기도를 한단 말이냐.”

  “예.”

  “대...단하구나!”

  말이 쉽지 절대 쉽지 않다. 무릎 꿇고 두 손을 합장한 상태로 열두 시간 동안 기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가르딘이다. 차라리 검을 열두 시간 동안 휘두르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열두 시간 동안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것이다. 이것은 면벽수련보다 더한 것 같았다. 라이니언이 곁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할 짓이 못 되었다.

  “도와주는 사람은 있었니?”

  “혼자 해야 해요.”

  “식사는?”

  “신성력이 충만해서 배가 고프지 않았어요.”

  “뭐? 3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예.”

  “굉...장하구나!”

  할 말이 없어지게 만드는 수련이다. 쉴라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무나 성녀를 시키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수련을 견딜 수 있는 정신력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쉴라는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녀도 할 짓이 아니구나.’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것 같지만 성녀는 고된 길을 가는 수도자였다. 인간의 모든 고통을 신을 대신해서 인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타인을 위해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을 한다는 것이 쉬울 것 같은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틀림없다.

  가르딘은 쉴라의 지난 3년간의 삶을 계속 물었다. 이유는 쉴라가 말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녀도 성녀이기 전에 사람이었다. 3년 동안 다른 것은 힘들지 않아도 그리운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은 고통이었다.

  가르딘과 쉴라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성스테인 공국으로 넘어가려면 반드시 불스 산을 지나야 한다. 불스 산은 작은 능선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그다지 험한 지형도 아니었고, 길도 제법 컸다. 대규모 상단이 지나가기에는 충분한 길이었다.

  대륙 10대 상단에 속하는 맥시멈 상단이 성스테인 공국으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맥시멈 상단은 특산물을 팔아 이득을 취하는 상단으로 성스테인 공국에서 생산되는 말린 해산물을 값싸게 사와서 대륙에 비싸게 팔고 있었다.

  해산물의 경우 바다와 인접하지 않는 이상 구하기 힘든 고가품이다. 특히 성스테인 공국의 비더만 해역에서만 잡히는 씨컴버는 최고의 보양식으로 꼽힌다. 생긴 것은 잘 싸놓은 변처럼 생겼지만, 말려놓으면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하며 다시 물에 불리면 원래의 맛과 영양을 찾을 수 있다. 귀족들 사이에서 씨컴버를 먹지 않으면 귀족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오늘 안에 불스 산을 넘어야 한다. 어서 움직여라!”

  “예!”

  맥시멈 상단의 지점장인 조스틴이 발길을 재촉했다. 그는 50명의 상단 인원과 30명의 용병을 대동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상행의 경우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 날씨와 같은 천재지변도 문제지만 인위적인 습격에도 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상단은 꼭 용병을 호위로 쓴다.

  맥시멈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들은 모두 B급 이상의 실력자들이었다. A급 용병이 세 명이나 포함이 되었다. 웬만한 산적들은 맥시멈 상단을 건드리지도 못할 정도의 규모였다. 

  맥시멈 상단이 막 불스 산의 입구를 넘어 산의 중턱에 다다랐을 때였다. 길의 입구를 막아서는 장애물이 있었다. 통나무를 길의 정중앙에 옮겨놓은 것이다.

  “멈춰라.”

  조스틴은 갈 길을 멈췄다. 상행의 경우 사소한 것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작은 실수로 인해 상행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45살의 조스틴은 상행을 20년 가까이 해온 배테랑이었다. 그의 오랜 경험이 불길한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길을 막아놓은 주변에서 20명 정도의 산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스틴은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상행의 인원이 100명에 육박하는데도 불구하고 20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숨겨둔 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왜 길을 막아선 것이오?”

  조스틴은 우선 대화를 해보았다. 20명 중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대답을 했다.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내놓아라. 그러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태연하게 하고 있었다. 조스틴은 되도록 대화로 풀어가려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들어줄 수 없다!”

  “어쩔 수 없군.” 

  20명의 산적들이 맥시멈 상단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비장의 수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정면대결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조스틴의 표정에 어이없음이 드러났다.

  “미쳤구나!”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으니 상인들은 뒤로 빠져야 했다. 이제부터는 용병들이 나서야 했다.

  A급 용병인 킬링턴이 정면에 나섰다. 그는 용병들 중에서도 가장 성미가 급하고 호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특히 그가 휘두르는 트윈배틀엑스는 무시 못할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좌우 양손으로 일정한 법칙없이 휘두르는 도끼술임에도 불구하고 무지막지한 힘과 스피드로 인해 낭패를 당한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엑스머더러(도끼살인마)라고 불리는 것도 그의 잔인한 도끼질 때문이다.

  “죽고 싶다면 환영이다!”

  “죽는 건 너다.”

  휘이익! 카아아앙!

  주르륵!

  배틀엑스를 받아낸 상대의 전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킬링컨의 표정이 급변했다. 첫 수에서 밀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고민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어느새 상대의 검이 킬링턴의 옆구리를 관통해 버렸다.

  푸욱!

  커억!

  앞을 통해 찔러 들어온 검이 뒤로 빠져나갔다. 상대는 검으로 찌르고 난 후 킬링턴의 상체를 사선으로 그었다.

  사아악!

  가슴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핏물이 사방으로 튀어나왔다. 킬링턴이 별다른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쓰러지자 용병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킬링턴의 무서움을 아는 용병들의 놀람은 더했다. 킬링턴은 그렇게 쉽게 쓰러질 용병이 아니었던 것이다.

  용병들은 한눈팔 시간도 없었다. 20명은 빛살처럼 빠르고 날렵했다. 용병들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속도의 차이를 보였다. 적은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검을 찔러대는 암살자와 같았다.

  푸욱! 헉!

  배때기에 검을 받은 용병이 헛바람을 내다가 쓰러졌다. 30명이나 되는 용병들이 쓰러지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배가 뚫리고, 팔이 잘려 나가고, 살이 베어졌다. 핏물이 주변을 모두 적시고 있었다. 목불인견의 참상이 따로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지만 죽지는 않았는지 용병들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남겨진 상인들은 두려움에 젖었다. 조스틴 지점장 역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여태껏 상행을 하면서 이처럼 엄청난 실력의 산적들은 처음 보았다.

  산적들은 멈추지 않았다. 겁먹고 있는 상인들을 하나씩 검으로 베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산적들의 포위하듯이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인들 중 절반 이상이 쓰러졌을 때 조스틴이 소리쳤다.

  “돈을 주겠소!”

  그제야 산적들은 검을 멈추었다. 사람을 잔인하게 베어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처음과 같은 표정이었다. 많은 사람을 죽여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살인자들의 눈빛이었다. 조스틴은 처음에 들었던 불길한 감정이 들어맞았음을 직감했다.

  “처음부터 시키는 대로 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겠지.”

   “맥시멈 상단을 건드리고 무사할 줄 아시오!”

  슈욱! 크윽!

  주르륵!

  검은 눈빛의 사내가 검을 뻗었다. 조스틴의 뺨의 스치고 검이 지나갔다. 뺨을 타고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같잖은 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아. 다 죽는 수가 있으니.”

  움찔!

  조스틴은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자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이다. 서투른 말로 인해 남아 있는 상인들마저 위험할 수 있었다. 조스틴은 하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그들에게 주었다. 조스틴이 지니고 있는 몇 개 안 되는 포션과 치료제까지 모두 빼앗아 갔다. 

  돈을 받은 산적들은 미련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무사한 조스틴과 상인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포션과 치료제를 모두 빼앗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친 부위를 감싸는 것뿐이었다.

  따그닥! 따그닥!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마차가 불스 산의 입구를 넘어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여행을 하려면 빠르게 달리는 것은 좋지 않다. 말이 지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수가 있었다. 마차는 불스 산의 입구를 지나 중턱을 지나게 되었다.

  가르딘은 불스 산의 입구를 지나 중턱에 다다르기 전부터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숨이 불규칙하군.’

  누군가 싸워서 다쳤다는 뜻이다. 또한 그들의 움직임이 멈춰 있었다. 괜한 일에 끼어들기는 싫지만 불스 산을 넘지 않으면 한참을 다른 길로 돌아가야 했다. 더군다나 별로 위협적인 존재들도 아니었다.

  마차 위에 있던 스필언이 쓰러진 자들에게 가려고 할 때 가르딘이 만류했다. 이런 일은 가르딘이 나서는 게 나았다. 스필언이 비록 뛰어난 녀석이기는 하지만 경험은 많지 않다. 또한 정의감에 불타서 관여하면 그것도 골치 아팠다. 우선은 정황을 살펴보는 게 먼저였다. 그 후에 적당히 벗어나면 되었다.

  “쉴라는 마차에서 내리지 마.”

  “부상자가 있는 것 아니에요?”

  “혹시 모르니까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가서 확인해 보고 올게.”

  “알았어요.”

  맥시멈 상단의 조스틴은 또다시 누군가 나타나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스틴은 가르딘을 자세히 살폈다. 그다지 특별하게 생기지 않은 자였다. 허리에 검이 있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긴장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가르딘이 먼저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일이오?”

  “산적들을 만났소!”

  가르딘의 시선이 부상자들에게 갔다. 쓰러진 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신기하게도 모두 살아 있었다. 반면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자들이 많았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출혈과다로 사망하는 수가 있었다.

  “이만한 상단이 치료제도 없이 다닌단 말이오.”

  “산적들이 모두 빼앗아 갔소이다!”

  쓸데없이 자꾸 물어오는 가르딘에게 신경질을 내는 조스틴이었다. 부상자들을 돌보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말을 시키니 짜증이 난 것이다. 오랜 경험을 지닌 조스틴도 결국에는 성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상황이었다.

  가르딘은 우선 부상자들의 출혈을 막는 게 시급하다고 보았다.

  ‘실력이 고만하기는 해도 30명이나 되는 용병들이 모두 당할 정도란 말인가!’

  가르딘이 나서서 용병들과 상인들의 출혈을 막아주었다. 피를 일시적으로 멈출 수 있도록 점혈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가르딘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다 피가 멈추는 것을 보자 놀라워했다. 손을 몇 번 찍은 것뿐인데 신기하게도 피가 멈췄다.

  가르딘의 호의에 조스틴이 미안함을 나타내었다.

  “화를 내어서 미안했소.”

  “괜찮소. 하지만 응급처치에 불과하오.”

   조스틴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이들을 데리고 성스테인 공국으로 가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곳에 놓아두고 사람을 불러올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르딘은 이쯤하고 돌아가려고 했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마차에서 기다리라고 했던 쉴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마차에 있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부상자를 두고 어떻게 가요.”

  쉴라는 가르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다친 사람들을 두고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가르딘은 되도록 쉴라가 신성력을 쓰지 않기를 바랐다. 일단 이번 여정은 비밀이었다. 이 많은 부상자들을 혼자서 치료한 사실이 드러나면 수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려고 한 것이다.

  가르딘은 쉴라의 옆에 가서 조용히 얘기했다.

  “완벽하게 치료는 하지 마라. 적당히 상처 부위만 치료해.”

  “왜요?”

  “상처들이 너무 심해. 이런 상처를 말끔하게 치료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럴 수 없어요.”

  “우리의 흔적이 노출될 수도 있다. 그래도 좋은 거니?”

  “알...았어요.”

  가르딘의 말이 틀지 않기에 쉴라는 불평하지 않고 따랐다. 적당히 신성력을 사용하더라도 성녀의 신성력이었다. 일반 신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쉴라가 손을 대자 부상자들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가르딘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놀라운 신성력이었다. 성스러운 빛이 잠깐 물결을 쳤을 뿐인데 상처 부위의 대부분이 회복되었다.

  수상한 사람들인 줄 알고 만류하려던 조스틴도 신성력을 사용하는 쉴라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상자들의 상처를 모두 손본 쉴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60명에 육박하는 인원을 치료하고도 쉴라는 멀쩡했다. 신성력이 남아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에요. 사람을 돕는 일인데 마다할 수 있나요.”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대신에 다른 불쌍한 사람들에게 한 번은 도움을 주세요.”

  ‘아!’

  조스틴은 쉴라의 말에 감격하고 말았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신관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그제야 진정한 신관을 봤다며 연방 인사를 올리는 조스틴이었다. 상인들 모두 쉴라와 가르딘에게 인사를 올렸다.

  “이걸 받아주십시오.”

  “이게 뭐지요?”

  은으로 조각된 작은 동전이었다. 세밀하게 조각된 것으로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맥시멈 상단에게 발급하는 실버 급 표식으로 지점장의 고유 권한 중에 하나였다. 각 지점의 지점장들에게 일정 수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맥시멈 상단의 은인에게 주는 증표입니다. 어느 곳을 가든 맥시멈 상단에 이것을 보이면 약간의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줘도 괜찮겠어요?”

  “제가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입니다. 목숨을 구해준 분에게 이만한 것도 해주지 않는다면 사람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어요.”

  가르딘은 길을 재촉했다. 조스틴과 노닥거리는 시간만큼 라이나와 재회할 순간이 멀어진다.

  “이제 그만 가지.”

  “예.”

  가르딘과 쉴라가 다시 마차에 올랐다. 스필언이 마차를 다시 몰았다.

  조스틴은 떠나가는 마차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가르딘과 쉴라는 본명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중에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르딘이 떠나고 난 후 한참 후에 나타난 누군가가 맥시멈 상단을 은밀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맥시멈 상단을 공격했던 우두머리였다. 번들거리는 눈빛은 야수의 눈빛을 연상시켰다.

  “예상대로군.”

   맥시멈 상단은 마차에 탄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들을 죽이지 않고 심각한 부상을 입힌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는 통신구를 꺼내 확인된 사실을 알렸다.

  “성녀가 확실하다.”

  -역시 그렇군.

  “이번에는 반드시 성녀를 죽이겠다.”

  -다크로드께서 아직은 지켜만 보라 하셨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미행이나 똑바로 하도록, 자칼!

  “알베이다, 나를 네 수하로 보지 마라.”

  -실수나 하는 주제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주제를 아는 게 신상에 좋을 거다.

  통신구의 불이 꺼졌다.

  자칼의 눈빛은 더욱더 어두워졌다. 성녀가 된 쉴라는 자칼이 담당한 지역에서 탄생하였다. 고든이 쉴라를 잡아오지 못하는 바람에 자칼은 다크로드의 질책을 받고 강등을 당했다. 그로 인해 다른 세븐핸드에게 굴욕적인 대접을 받게 되었다. 도둑 길드의 수장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세븐핸드의 자칼이 하급 길드원들이 하는 일을 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뿌득!

  “빌어먹을!”

  자칼은 지금까지 받은 치욕을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신기를 찾고, 성녀를 죽여야 한다. 알베이다가 나서기 전에 먼저 처리를 해야 원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간다.”

  “예.”

  자칼이 수하들을 데리고 가르딘의 뒤를 미행했다.

  자칼의 통신을 받은 알베이다는 소식을 바로 프레인에게 전했다. 프레인은 여전히 신중히 지켜보라고 했다. 

  현재 도둑 길드의 움직임은 멈춰 있었다. 각 지부를 숨기고, 새로운 장소에 잠적해 있는 상태다. 신성제국과 의문의 세력이 어둠의 길드를 조사하고 있었다. 단서를 잡은 것은 아닐지 몰라도 의문은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의 행동이 너무 빠르고 은밀하기에 도둑 길드는 가지를 칠 수밖에 없었다.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도둑 길드의 하부조직을 잘라내고, 중앙조직은 자취를 감추었다.

  “놈들이 냄새를 맡은 것인가?”

  “아직은 아닐 것이다.”

  프레인의 옆으로 또 다른 존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짙은 어둠, 그 자체였다. 검은 로브와 함께 비추어지는 눈빛이 섬뜩했다. 프레인의 화려한 로브와는 상반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비슷했다.

  “삼신기를 찾기 전에 성녀를 죽일 생각이 아니었나?”

  “성녀가 죽는다고 삼신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긴 그렇군.”

  성녀의 존재보다도 삼신기의 존재가 더 껄끄러웠다. 스스로 부활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선택된 존재가 얻기 전에 삼신기를 찾아서 없애버려야 했다. 어둠의 지배자에게 해가 되는 존재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알케인이 아쉽게 됐군.”

  “놈의 과욕이 불러온 대가다.”

  “그래도 오랜 시간 같이한 녀석이 아닌가. 어떻게 된 일인지 밝혀냈나?”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못했다.”

  “의문이라, 좋지 않군.”

  프레인과 그는 알케인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수많은 세월 동안 같은 목표를 위해 일을 해온 친구였다. 서로 자존심이 강하기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알케인은 9서클 마법사였다. 이유도 없이 죽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수상한 일이 계속 벌어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번에 들어가서 다시 나올 때는 세상이 어둠 속에 묻히게 될 거다.”

  “잘되길 빌겠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북해로 가는 여정은 계속되었다. 잠시 지체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북방을 넘어 북해로 들어선 가르딘 일행은 날씨가 상당히 춥다는 것을 느꼈다. 카이로만 제국이 여름인 것과는 정반대로 이곳은 쌀쌀했다. 무지막지한 혹한은 아닐지라도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바람이 불었다. 

  마차를 모는 미토스는 시린 바람에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바람 따위는 미토스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는 정면을 가로막고 있는 적들을 보았다. 미토스는 왕국과 영지를 넘어갈 때마다 가끔씩 산에서 영업을 하는 놈들을 만나야 했다. 물론 미토스와 스필언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고작 1분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쓰러졌다.

  미토스는 또다시 나타난 산적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마다 산적들이 있었다. 그들은 적당한 목표물을 골라서 털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 중 대부분은 영주의 폭정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지만 절반 이상이 그러했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산적이 된 자들이 너무 많았다. 이제까지 미토스가 알고 있던 것보다 세상은 더 험하고 잔인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얻은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 만난 산적들은 전문가들이었다. 능숙한 움직임만큼이나 많은 경험을 쌓고 있는 것 같았다.

  미토스는 전과 같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놈들의 기세에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여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산적이 된 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저런 자들까지 용서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는다.

  타앙!

  쇳소리를 울리며 마차에서 튀어나간 미토스가 순식간에 허공을 격하고 산적들 앞에 나타났다.

  “화가 났나 보군.”

  “저도 화가 납니다.”

  “태어나면서 많은 것을 가진 너희들과는 다른 사람이 많다는 것에 말이냐.”

  “그렇습니다.”

  “산적들이 불운하군.”

  하필이면 화가 난 신성을 만나게 되었다. 살아남기 힘들 것이 자명했다. 어차피 태어난 이상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스스로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의 생애는 처절한 고통의 연속이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떤 세상이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비참한 자는 있기 마련이다.

  가르딘은 두 신성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검은 절대경지에 들어섰는지 몰라도 인간적인 심성은 아직도 성장 중이었다. 그것이 가르딘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힘들군.’

  스쳐 지나가도 되는 일에 스필언과 미토스는 마음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달랐다. 전쟁 시에는 냉철함을 유지했던 녀석들이 흔들렸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옆에 쉴라가 있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성녀와 영웅의 본질적인 일체감이 발휘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새 미토스가 산적들을 처리하고 마차로 돌아왔다. 마차로 돌아온 미토스의 기운은 고요하게 변해 있었다. 금세 감정을 다스리는 것도 두 신성의 공통점이었다. 빠르게 배우고 참아내고 있었다.

  “공작님은 아무렇지 않습니까?”

  스필언이 물었다.

  가르딘이 미소를 지었다. 

  “자만하고 있구나.”

  “무엇이 말씀입니까?”

  이제까지 자만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는 스필언이었다. 그것을 말한 자가 가르딘이라는 것에 의문이 생겼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지킬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냐. 그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범위를 벗어난 일에까지 마음 졸이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들의 삶이 비록 초라하고 볼품없다 하나 주어진 삶이다. 너희들이 모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밀어 붙이는 것만 생각해도 된다.”

  두 신성에게 주어진 일도 막중했다. 가르딘은 지금 할 수 있는 일만 신경을 써도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마왕이 부활하면 영웅들이 나서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지금 영웅들이 흔들리고 있다. 잡아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나중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마왕강림이 장난인 줄 알아!’

  가르딘은 역시나 깨달음을 얻는 스필언과 미토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얼 주든 깨달음을 얻는다. 이것이 스필언과 미토스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깨닫는 독특한 존재다.

  “역시 아저씨는 말발이 장난 아니라니까.”

  “말발이라니! 현명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저씨 속이 무언지 저는 다 보이는데요.”

  ‘끄응!’

  성녀가 된 쉴라는 상대의 마음을 관조하는 능력이 생겼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직관이 생긴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눈빛과 마음의 파장을 읽어내는 것이다.

  가르딘의 파장은 조용했지만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쉴라가 파악했다.

  ‘얘가 바자바인 공작 닮아가나! 그럼 위험한데.’

  발키리 영지에서 두 달 동안 꼬박 마차를 몰아서 겨우 북해의 최극단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직도 얼음이 녹지 않았다. 해역에는 얼음 조각들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기운부터가 대륙의 기운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가르딘은 피부를 찌르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느끼자 고생길이 훤히 보였다. 여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북해 최극단에서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이곳은 지그단 왕국에 속해 있는 카스틴 항구였다. 지그단 왕국은 대륙의 끝에 있는 작은 왕국으로 천지가 얼음으로 덮여 있어 얼음왕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사람이 살기에 척박한 왕궁이라 탐내는 나라도 많지 않다. 혹한의 추위를 버티고 인내하는 것은 대륙인들에게 무리였다. 여름이라 이정도지 가을만 되어도 이곳은 살을 찢는 추위가 지속된다.

  “배를 구해야겠네요.”

  “브라나도 대륙에 가는 배는 많지 않아.”

  “그래도 구해야 해요.”

  “우선은 말을 해보지.”

  브라나도 대륙으로 출항하는 배는 가르딘의 예상대로 많지 않았다. 브라나도 대륙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얼음 조각이 많아서 배를 띄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은 여름이라 가끔씩 배가 움직일 수 있었다. 이곳에 항구가 있는 이유는 인근 해역에 질 좋은 물고기가 많기 때문이다. 곳곳에 어선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르딘은 배를 구하기 위해서 항구의 집합장으로 가보았다. 어선들 중간 중간에 가끔씩 상선이 자리하고 있었다.

  “브라나도 대륙으로 가는 배요?”

  “그렇소.”

  “원하는 대로 돈을 낼 테니 우리도 좀 태워주실 수 있소?”

  “미안하지만 외지인을 태우지는 않소.”

  상선의 경우 상단 소유의 배다. 상인들과 필요한 인원만 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곳에 상선이 있는 이유는 브라나도 대륙에서만 나오는 아이스 트롤의 가죽 때문이었다. 아이스 트롤의 통가죽 하나만 해도 몇백 골드에 해당하는 고가품이다. 평소에 알지 못하는 외지인들을 태우다가 해적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불상사가 발생하면 많은 손실이 발생한다. 아이스 트롤로 인한 금전적 손실보다도 배가 더 소중했다. 브라나도 대륙에 가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배보다도 훨씬 튼튼해야 한다. 빙하에 부딪쳐도 견딜 수 있는 특수한 나무와 철판을 이어서 만들기에 가격이 만만치 않다.

  또한 조타수 역할을 하는 선원들 역시 오랜 경험을 지닌 배테랑들이다. 이들을 잃게 되면 아이스 트롤의 교역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브라나도 대륙 해역에서 가끔씩 출몰하는 바다 몬스터는 육지의 몬스터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그들이 서식하는 장소를 피하면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다. 그래서 되도록 외지인을 태우지 않는다.

  “쉽지 않네요.”

  “정 뭐하면 신분을 밝히는 수밖에 없지.”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어선을 타고 가기에는 무리였다. 어선은 인근 해역만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선을 타고 브라나도 대륙으로 향했다가는 고기밥이 되기 딱 좋았다.

  “우선은 숙소를 정하지.”

  “그러는 게 좋겠네요.”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에 카스틴 항구에 도착했기에 여관을 잡아야 했다. 대륙의 끝에 있는 항구라 배가 금방 지고 있었다. 잠시 돌아보는 시간에 해가 벌써 수면 아래로 넘어가버렸다.

  가르딘 일행은 항구의 근처에 있는 여관을 잡았다. 항구에서 일하는 자들 대부분이 현지 사람들이라 여관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가끔씩 상인들이 머무는 정도라 현지인들이 방을 내주는 정도였다.

  얼음의 축제.

  추운 겨울을 상징하는 얼음 조각 모양의 팻말이 있는 여관이 눈에 들어왔다. 가르딘 일행은 그곳에 짐을 풀었다. 여관은 그리 크지 않지만 방한이 잘되어 있었다. 건물 자체적으로 추위를 막고, 내부의 온도를 높일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다.

  “밖이랑 다르네요.”

  “집 자체가 난로 역할을 하는 것 같구나.”

  겉으로 보면 초라하지만 내부는 잘 정돈이 되어 있었다. 여관의 주인은 펑퍼짐하게 생겨서 인상이 후덕해 보였다.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라 대부분이 모두 뚱뚱해 보였다.

  가르딘이 여관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난 후 필요한 것들을 물었다.

  “브라나도 대륙에 갈 배를 구할 수 있겠소?”

  “음!”

  여관 주인은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표정이 어두웠다. 손님이 물어보기에 그저 고민해 보는 것 같은 모습이다.

  “죄송합니다. 브라나도 대륙에 가는 배들 모두가 대륙 10대 상단에 속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이나 상단 내 인원이 아니면 태워주지 않습니다.”

  “음.”

  선원이 한 말과 다르지 않았다. 구하기가 대단히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되었다. 되도록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했건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르딘은 잠시 고민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대륙 10대 상단이라는 말에 여관 주인에게 다시 물었다.

  “이곳에 와 있는 대륙 10대 상단은 어디요?”

  “세 곳이 이곳에 와 있습니다. 텐버린 상단과 비스테인 상단, 맥시멈 상단입니다.”

  일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의외로 쉬운 방법이 있었다. 맥시멈 상단을 치료해 준 것이 기회가 되었다.

  가르딘의 시선이 쉴라에게 향했다. 밝고 투명한 미소를 짓고 있는 쉴라를 보자 문뜩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예상한 건가?’

  지금의 상황을 예상했다고 하면, 미래를 볼 수 있거나 예언을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가르딘은 무시하고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쉴라가 기어코 맥시멈 상단을 치료했다. 그로 인해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심해야겠다.’

  자칫 예언을 잘못하는 날에는 가르딘의 일생이 암흑에 잠길 수 있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했다.

  “배는 내가 구할 테니 쉴라와 너희들은 필요한 물품을 사오도록.”

  “알겠어요.”

  오늘 하루는 여관에서 머물고, 내일 움직이기로 했다. 브라나도 대륙에 도착하고 난 후에도 필요한 물품들이 있다. 무엇이 필요한지는 대충 알고 있겠지만 이곳 사람들보다는 부족한 지식일 것이다. 여관 주인에게 물어서 물품을 충분히 확보해야 불편하지 않다.

  가르딘은 아공간 주머니를 스필언에게 주었다.

  몸을 녹일 겸 여관 주인에게 식사와 함께 술을 주문했다. 여관 주인의 식구들이 분주하게 움직여서 식사를 가져왔다. 식사는 이곳에서 가장 잘나가는 생선국물 요리였다. 물에 생선을 넣고 맑게 우려내어 맛을 내는 간단한 조리법이었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었다.

  “맑은 스프 같은데 맛이 괜찮네요.”

   “그러게. 생선이 이런 맛을 내다니.”

  이런 식의 요리를 접해 보지 않았지만 맛은 정말 괜찮았다. 우러나는 맛이 입맛을 사로잡았다. 여관에서 내준 술을 한 잔 해보았다.

  “아악!”

  스필언과 미토스가 인상을 쓴 것에 반해 쉴라는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가르딘도 한 잔 마셔보았는데 상당히 독했다. 마이어 공작이 준 아이스카치보다 10도는 더 높은 도수인 것 같았다. 마시는 즉시 입 안에서 불을 뿜어도 될 정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한 잔 마실 때는 뜨거웠는데 한 잔을 더 마시자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이 술 이름이 뭐요?”

  “헬븐이라고 합니다.”

  “헬븐?”

  “지옥을 건너 천국에 간다는 뜻입니다.”

  그럴듯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지옥 같은 뜨거움을 맛보게 한 후 시원하고 달콤한 맛을 내니 말이다. 헬(지옥)과 헤븐(천국)을 합한 단어였다.

  반주 삼아 술 한 잔씩 하니 피로가 풀리면서 노곤해지고 있었다.

  끼이익!

  여관의 문을 열고 덩치가 큰 사내 열 명이 들어왔다. 큰 덩치에 험악한 얼굴을 가진 전형적인 건달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을 보자 여관 주인의 안색이 변했다.

  탁자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가르딘 일행에게 열 명 중에서 한 명이 걸어왔다. 건들거리는 것이 주먹깨나 써본 놈들로 추정되었다.

  “브라나도 대륙으로 가는 배를 구한다며.”

  “그렇소.”

  “내가 구해줄 수 있는데 말이지.”

  “어떻게 구해주겠다는 것이오?”

  “내가 말만 하면 되거든, 대신에 돈을 좀 내야지.”

  그러면서 사내는 50골드를 요구했다. 엄청난 액수였다. 고작 배를 태워주는데 50골드를 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다.

  가르딘은 이들이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갔다. 어딜 가나 사람이 사는 곳에는 무리를 지어 행패를 부리는 놈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처음 오는 외지인이 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자 접근을 한 것이다.

  배를 구하고 다니는 외지인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가르딘의 실수였다. 돈을 소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말았어야 했다.

  초보적인 실수를 한 가르딘은 멋쩍은 듯한 표정이었다.

  가만히 있는 가르딘과는 다르게 스필언과 미토스가 일어서려고 했다.

  ‘어떻게 하나 우선은 구경해 보지.’

  되도록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정도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가만히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만한 돈이 없으며 부탁하고 싶지 않소이다.”

  가르딘이 명백한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사내가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를 협박하기 위한 준비 자세였다. 거절이라는 단어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놈들이었던 것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나 본데, 카스틴 항구에서는 우리의 말이 법이야. 거절하면 흉한 꼴을 당하게 될 거야!”

  “협박하는 것이오?”

  “협박이 아니라 현실을 말하는 거지.”

  열 명의 사내들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었다. 저마다 무기를 들고서 가르딘 일행을 겁박하고 있었다. 여관 주인은 두려워서 방 안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들은 카스틴 항구의 뒷골목 패거리인 톰슨 파였다. 톰슨 파는 항구 내의 어선들 사이에서 자릿세를 받으며 온갖 더러운 일을 하는 놈들이다. 카스틴 항구의 치안이 좋지 못한 점을 파고들어서 자라난 독버섯 같은 놈들이었다.

  가르딘은 내심 혀를 찼다. 대륙 10대 상단은 톰슨 파 따위가 건드릴 수 없다. 결국은 약자의 고혈을 빼먹는 놈들이었다. 

   ‘하긴 사람 사는 세상에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이런 놈들이겠지.’

  스필언과 미토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산적들에 이어 이제는 뒷골목 패거리들이었다. 평상시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신분을 숨기자 보이게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공작의 아들이며 기사에게 어느 미친놈들이 달려들 수 있겠는가! 놈들 스스로 알아서 피했을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평범한 복장에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을 당하고 있었다.

  “원하는 것이 뭐요?”

  “마차와 말이 제법 좋더군.”

  이놈들이 원하는 것은 마차와 말이었다. 또한 쉴라를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쉴라의 외모는 변환 아이템을 통해 평범해 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성스러웠다. 더군다나 펑퍼짐한 북부의 여인들과는 다르게 날씬했다. 그것이 놈들의 욕정을 자극하고 있었다. 말과 마차만 원했다면, 훔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거절한다.”

  “어차피 그럴 줄 알았다! 애들아!”

  입구를 막아서던 놈들이 가르딘 일행을 둘러쌌다. 어떻게 보면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이놈들은 겉모습만 보고 덤벼든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 해봤어야 했다. 이런 외지까지 네 명이서 움직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놈들의 머리는 그 정도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변방의 뒷골목 패거리에게 뛰어난 안목은 무리였던 것이다.

  “실수하는 건데.”

  “실수는 네놈들이 했다!”

  그들은 가르딘의 말투가 변한 것을 여전히 눈치 채지 못했다. 흉흉한 기세를 흘리며 다가섰음에도 불구하고 가르딘 일행의 표정은 전과 같았다. 쉴라 역시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이 톰슨의 화를 자극했다.

  “겁이 없구나! 언제까지 여유 부릴 수 있는지 보겠다!”

  “나 같으면 그만 하겠다.”

  “닥쳐랏!”

  “조금 있으면 너희들 모두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빌게 될 거야.”

  “이런 미친놈이!”

  그 말에 톰슨은 화가 나다 못해 어이없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한 점이 느껴지기는 했다. 위화감이 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물러서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그냥 물러서면 물렁한 놈들로 소문이 나버린다. 결국 지옥행 마차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가르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살길을 터주는데도 차버리고 있었다.

  ‘눈치가 정말 더럽게 없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게 더 신기하다.’

  “쳐랏!”

  슈슉!

  놈들이 달려들기가 무섭게 스필언과 미토스의 신형이 바람을 갈랐다. 앉아 있던 의자에서 언제 일어났는지 톰슨은 보지 못했다. 그림자가 좁은 여관 안을 휘저었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일방적인 구타가 시작되었다. 둘은 검조차 뽑지 않았다. 검이 놈들에게는 아까울 지경이었다. 주먹 한 방을 맞고 나가떨어진 놈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기절한 것이다.

  쿠다다당!

  퍼퍽! 커억!

  멍하니 있다가 턱을 맞은 놈이 위로 솟구쳐 천장에 부딪쳤다 바닥에 떨어졌다. 주먹이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여섯 번 정도의 주먹질이 끝나고 난 후 일어서 있는 것은 톰슨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어야 했던 톰슨이다. 이 근방에서 주먹 좀 쓴다고 하는 톰슨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바람이 휙! 휙! 지나갔을 뿐인데 수하들이 모두 쓰러졌다. 이런 솜씨는 톰슨이 꿈도 꿔보지 못한 것이었다. 

  털썩!

  사삭! 사삭! 사삭!

  “살려주십시오!”

  톰슨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싹싹 빌었다. 가르딘의 예언대로 되었다. 사실은 예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였다. 그저 당연한 현실이었다. 오러마스터 앞에서 깝죽거리고 살아남는 게 이상한 일이다.

   “쉴라야, 잠시 들어가 있어라.”

  “왜요?”

  “좀 잔인해질 것 같다.”

  “심하게 하지 마세요.”

  쉴라가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쉴라가 사라지자 톰슨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르딘 타임이었다. 가르딘의 표정이 전형적인 악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살려주면 어떻게 할 건데.”

  “뭐든지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우리가 가면 바로 뒤통수 칠 생각 했지.”

  뜨끔!

  속마음을 들킨 톰슨은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지상과제였다. 모든 것은 살아 있어야만 후일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톰슨은 여기서 벗어나는 즉시 남아 있는 애들을 모두 데려올 생각이었다. 아무리 강해도 숫자에는 장사 없다는 덜떨어진 판단을 내린 것이다.

  “남아 있는 애들을 데려올 생각이었지.”

  “허헙!”

  순간 헛바람을 들킨 톰슨이다. 가르딘이 톰슨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어냈기 때문이다. 가르딘이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톰슨이다.

  ‘마...법사!’

  마법사가 생각을 읽는 마법을 사용하기도 한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많아 가지고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가르딘이 톰슨을 가지고 놀고 있을 때 스필언과 미토스는 기절해 있는 놈들을 깨워서 꿇려놓았다. 쇠망치로 맞은 것처럼 모두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나쁜 짓 안 하고 살겠습니다.”

  “누가 그러지 말래.”

  “예?”

  순간 잘못 들은 것 같은 착각이 든 톰슨이다. 가르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가 보기에 내가 정의의 용사처럼 보이냐.”

  가르딘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미소를 짓기가 무섭게 가르딘의 손가락이 톰슨의 혈을 훑고 지나갔다.

  “이게 무슨?”

  ‘허억!’

  톰슨의 손바닥이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 혈과 혈에 기운을 불어넣어 피의 이동을 한곳으로 쏠리게 만들은 것이다. 신마의 비공술인 절맥파혈술이다. 일정 시간이 지날 동안 풀어주지 않으면 절맥파혈술에 걸린 부분이 점차적으로 고사되어 버린다. 그 시간 동안 전신이 바늘에 찔리는 것 같은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 

  “어...어...어...떻게?”

  “별거 아니야. 그렇게 부풀다가 팔이 썩어갈 거야. 그리고 나중에는 잘라야겠지.”

  가르딘은 정말 별거 아닌 투로 말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톰슨에게는 악마 중에 악마처럼 보였다. 사람의 몸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대하고 있었다.

  톰슨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버렸다. 보고 있던 톰슨 파 일당도 하얗게 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보기에 가르딘은 생살을 가르고, 인체를 해부하는 사악한 흑마법사가 틀림없었다. 죽어도 곱게 죽지 않을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파팟!

  가르딘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톰슨의 가슴 부위를 가볍게 눌렀다. 톰슨은 물러서려고 했지만 가르딘의 손속을 피하지 못했다.

  “이 부분이 썩어가면 파버려야 하나.”

  톰슨은 가슴 부위에서 통증을 느꼈다. 가르딘의 말마따나 팔은 잘라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심장을 파낸 후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톰슨은 아무렇지 않게 심장을 파버리라는 가르딘의 말에 두려운 나머지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오줌을 싸거나 말거나 사는 게 먼저인 톰슨이었다. 창피함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살려...주십시오! 무슨 짓이든 하겠습니다!”

  “네깟 놈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죽는 것도?”

  “그...그...것만 빼고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톰슨이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가르딘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기사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다른 모습까지도 갖추고 있었다. 사람의 심리를 파악해서 가지고 노는 것이 정말 능숙했다.

  가르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며 배우는 두 신성이었다. 이것마저도 훈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악을 상대할 때는 악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정확히 한 시간이다.”

  “무슨 뜻인지?”

  “한 시간 후에 심장이 썩어갈 거야.”

  “안 됩니다.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눈물, 콧물, 오줌까지 모두 싸며 애원을 하는 톰슨의 모습이 처량하기까지 했다.

  “기회를 주지. 네가 가진 전 재산을 이리로 가져와. 그럼 풀어주지.”

  “그건......!”

  “왜? 못 하겠어? 그럼 죽어야지.”

  가르딘은 톰슨의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표정이다. 실상 가르딘은 정말 그러했다. 버러지 같은 놈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많은 아량을 베푼 것이다. 죽고 싶지 않다면 재산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타협은 절대 없다.

  북해까지 오는 데 필요한 모든 경비를 가르딘이 제공해야 했었다. 그에 따라 가르딘은 본전을 찾아야 한다는 극심한 금전욕에 시달리고 있었다.

  때마침 돈 덩어리들이 굴러 들어왔다. 물러설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달려든 놈들에게 세상이 험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가...져오겠습니다!”

  “한 시간이야. 그리고 성의가 부족하면 사족이 모두 잘리게 될 거야.”

  “모두 드리겠습니다!”

  “뭐 해, 움직이지 않고.”

  “반드시 다 가지고 오겠습니다!”

  두서없는 말을 남기고 난 후 톰슨은 여관 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저런 놈들일수록 자신의 몸은 귀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되도록 많은 재산을 가지고 올 것이 눈에 선했다.

  “이제 너희들만 남았구나.”

  가르딘이 다가오자 톰슨의 수하들은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자 어김없이 스필언과 미토스의 주먹이 날아왔다. 한 방만 맞아도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매에는 버티는 자가 극히 드물었다. 주구장창 맞다 보면 없는 말도 지어내게 되어 있었다.

  “은근한 고통도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지.”

  가르딘은 놈들에게 절맥파괴술을 사용했다. 심하게 사용하면 혈맥이 끊어져서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병신이 되어버리지만 적당히 사용하면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정도로만 만들 수 있다.

  절맥파괴술에 당한 놈들은 힘이 빠져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힘을 쓰려고 해도 팔과 다리는 예전만 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온몸을 옥죄는 잔잔한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하게 아프지는 않지만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나는 나를 건드린 놈들은 그냥 두지 않아.”

  못된 짓을 하지 말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개과천선할 놈들이 절대 아니다. 차라리 끝까지 냉정하고 잔인하게 대하는 것이 이런 놈들에게는 효율적이다. 그래야 다시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톰슨이라는 놈이 한 시간이 넘어도 오지 않으면 15분마다 목을 잘라주겠다.”

  ‘허억!’

  힘을 쓰지도 못하는데 죽이기까지 한다는 말에 소름이 돋는 톰슨 일당이었다. 악마를 건드렸다는 후회는 늦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들은 고통을 겪더라도 살고 싶었다. 톰슨이 도망가지 않기를 바랐다.

  55분이 흘렀을 때까지 톰슨이 오지 않자 수하들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르딘이 가끔씩 검을 만지작거릴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였다. 저 검이 언제 자신들의 목을 노릴지 몰랐기 때문이다. 한 시간이 1분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조여오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들은 이제껏 남에게 공포를 주었으면 주었지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은 처음이었다.

  “역시 검은 오래 묵혀놓으면 안 된다니까.”

  검을 사용하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듯한 가르딘의 표정이다. 차라리 오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처럼 보였다.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가르딘의 모습을 본 톰슨 일당들에게는 마계의 대마왕처럼 느껴졌다.

  끼이익!

  한 시간이 되기 2분 전에 톰슨이 돌아왔다. 몸에 들고 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가르딘도 제법 놀라는 눈치였다.

  ‘이런 조그만 데서 어떻게 저렇게 많이 모았냐?’

  신기할 지경이다.

  족히 1천 골드는 되어 보였다. 얼마나 지독하게 돈을 긁어모았는지 뻔히 예상이 갔다. 여관 주인이 두려움에 떨어 방으로 도망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가져왔습니다. 이제 풀어주십시오!”

  “숨기는 건 없고?”

  “없습니다.”

  톰슨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왔다. 가르딘의 시선이 문 쪽을 향했다가 다시 톰슨을 보았다. 톰슨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수작을 부린 티가 너무 많이 났다. 가르딘은 톰슨의 절맥파혈술을 풀어주었다.

  부풀었던 톰슨의 손과 팔이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왔다 터져버릴 듯이 부풀어 오르면서 벌겋게 변한 팔이 원래대로 되었다. 심장에서 느껴지던 통증도 사라졌다. 고통이 사라지자 한숨이 놓인 톰슨이었다.

  “난 약속을 어기는 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저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떨거지들을 데려왔나!”

  ‘헉!’

  “그걸 어떻게?”

  파팟!

  가르딘의 손가락이 톰슨의 혈을 짚었다. 절맥파괴술을 수하들보다는 강하게 적용했다. 그러자 톰슨의 몸이 추욱 처졌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작은 돌멩이조차 들 힘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고통스러웠다. 

  가르딘이 눈짓을 보내자 스필언과 미토스가 밖으로 나갔다.

  퍼퍼퍼퍼퍼퍽! 쿠다다당!

  “크아아아악!”

  여관의 문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3분 정도 지나고 난 후 비명 소리와 구타 소리가 사라졌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멀쩡하게 여관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톰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톰슨은 돈을 가지러 가면서 패거리를 모두 불러모았다. 30명이 일제히 공격하면 어쩔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돈도 모두 가져왔다. 그런데 고작 3분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당해버린 것이다. 톰슨은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존재들을 건드렸는지 이제야 실감을 했다.

  “돈은 잘 쓰지.”

  가르딘이 아공간 주머니에 톰슨의 돈을 모두 집어넣었다. 졸지에 빈털터리에 힘도 없는 평범한 것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톰슨은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얼이 나가 있었다.

  “셋을 세기 전에 꺼지는 게 좋을 거야.”

  가르딘이 검을 들자 그제야 정신이 든 톰슨과 일당들은 바로 일어나서 여관을 나왔다. 여과 밖은 초토화였다.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톰슨 일당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떤 놈들은 일층 담벼락에 걸려 있기까지 했다. 톰슨과 나머지 일당은 벗어나기 위해서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들 간의 의리는 그 정도가 다였다.

  여관에 남은 가르딘에게 스필언과 미토스가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서 그런 것을 배우신 겁니까?”

  “오랜 기간 전쟁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들을 보게 되지. 씁쓸하지만 현실이 이렇다. 같잖은 정의심보다는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보다 돈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움찔!

  가르딘은 두 신성이 잊어먹고 있기를 바랐지만 역시나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돈은 카스틴 항구에서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르딘은 돌려줄 생각 따위는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공으로 그냥 먹어치우려던 계획이었다. 톰슨이 약속을 지키든 말든 애초부터 지킬 생각이 없었던 가르딘이다. 약속은 어기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내가 신중하게 처리할 것이다. 설마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

  짐짓 위엄이 가득한 기세를 보여주는 가르딘이다. 양심에 찔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당당한 것이다. 괜히 꿀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의심을 사기 좋다. 물론 적당히 해야 한다. 너무 오버하면 그것도 좋지 않다.

  “아닙니다. 알아서 올바르게 처리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럼 내일을 위해 잠이나 자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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