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6/93)

   @@[제3장 역습@@]

  “일은 어찌 됐나?”

  “원하던 대로 간신히 끝이 났습니다.”

  “잘됐군.”

  펠칸 성이 무사하다는 것을 안 발리스타 공작은 마린 성에서 나와 마이어 공작군이 이동하는 동선을 따라 추격하고 있었다. 마린 성의 주력 부대 중에서 대부분을 끌고 나왔다.

  하지만 의외의 일이다. 북방대군의 단병접전 능력은 가히 발군이라고 할 수 있다. 추격한다고 해도 쉽사리 무너뜨리지 못한다. 마린 성 공략을 위해 마이어 공작이 소모한 병력이 6만 정도다. 그렇다 해도 44만이나 되는 대군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북방대군의 군세는 배 이상으로 많다고 해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강군이었다. 정면대결을 한다면 발리스타 공작이 아무리 뛰어난 전략을 세워도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놈들의 척후병은 어디쯤 있지?”

  “예상대로 후방에 척후병을 배치하여 우리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마이어 공작군의 기동성은 제국에서도 알아주니 섣불리 다가가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발리스타 공작의 전략은 의외성이 강했다.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쯤 파스트론 공작이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겠지.”

  전략대로만 된다면 원하던 목적을 이룰 수가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내전은 최소한의 희생으로 이겨야만 한다. 희생이 클수록 향후 제국의 향방이 어려워질 수 있었다.

  * * *

  북방대군을 이끌고 있는 카론 마이어 공작은 뜻밖의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인폴트 성으로 돌아가는 최적의 루트가 막혔기 때문이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다리를 끊어 진입을 방 해하였다.

  발리스타 공작령과 황도를 관통하는 지점에 제국의 식수원을 담당하는 트레주어 강이 자리한다. 비교적 길고 강폭이 큰 편이지만 강폭이 좁은 지점에 거대한 다리를 개설하여 이 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카이로만 제국의 7대 황제가 거국적인 공사라고 하여 지어놓은 것으로 대단히 넓고 긴 다리였다. 길이와 폭이 커서 대군이 지나가도 무리가 없는 곳이다.

  문제는 인폴트 성으로 빨리 가기 위해서는 여기를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트레주어 강이 꺾이는 지점까지 돌아서 가야 한다.

  “무너진 흔적을 보니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마법사들을 이용했나 보구나. 제법 귀찮게 하는군.”

  소수라면 강을 건널 수도 있다. 그러나 대군이 건너가려면 마법으로도 소용없는 짓이다.

  마린 성에서의 전투는 고려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의 작전을 펼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마이어 공작은 그 즉시 우회로를 선택했다. 어차피 그리 멀리 돌아가는 길도 아니었다. 병사들의 이동 속도라면 충분히 제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때마침 후방을 책임지던 척후병이 돌아왔다. 다급하게 돌아온 척후병이 마이어 공작에게 후방의 상황을 전했다.

  “흠, 뒤를 치겠다 이 말인가?”

  “아버지, 놈들이 성에서 나왔다면 우리에게 유리한 것 아닙니까! 차라리 이 기회에 단병전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잠시만 생각을 해보자꾸나. 발리스타 공작은 그리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다. 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쫓아왔을 리는 없을 것 같다. 우선은 함정이 없는지 신중히 조사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잠시 병력의 이동을 멈췄다.

  적들이 정말 평야 전투를 원한다면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마이어 공작도 체이슨의 의견에 동조하는 뜻을 보였다. 전투라면 이골이 난 존재들이다.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마이어 공작의 명령에 의해 정찰병이 대거 파견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정찰병이 소식을 전해 왔다.

  “함정은 없습니다.”

  “병력의 수는?”

  “저희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훗!’

  마이어 공작이 가볍게 웃었다. 같은 병력으로 감히 자신과 맞대결을 생각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터져 나온 웃음이었다.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뒤에 거치적거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성격이 아닌 마이어 공작이었다. 어차피 뒤에서 그만한 수가 기습이라도 하는 날에는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이럴 바에는 방향을 돌려 정면 대결을 하는 것이 나았다.

  “말머리를 뒤로 돌려라! 적에게 우리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크아아앙!

  병사들의 사나운 포효 소리가 대지를 삼켰다.

  * * *

  가르딘은 펠칸 성이 정리되고 난 후 러쉬 황자에게 명령을 전달받았다. 다마트 황자 진영은 러쉬 황자가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할 것이라 여길 것이다. 그렇기에 병력을 빼지 않을 것이라 판단할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전쟁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시기에 러쉬 황자가 중대한 결정을 하였다.

  바로 역공을 취하자는 것이다.

  “황자님의 안전이 걱정되옵니다!”

  “나는 걱정 말게. 이미 파스트론 공작, 발리스타 공작이 모두 허락을 했네.”

  “뜻이 확고하다면 반드시 명을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네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명심하게.”

  “최선을 다해 황자님의 뜻에 부합하겠습니다."

  “그럼 자네만 믿겠네.”

  펠칸 성 내부의 일이 정리가 되기가 무섭게 또다시 바쁘게 움직여야 했던 가르딘은 불평하지 않았다. 이번 일은 그다지 어려운 임무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황자가 죽든 말든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 황자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후일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계획대로만 된다면 러쉬 황자가 황제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필리언과 카니발 백작, 투르, 사이론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출전이다.”

  “이번에는 어딘데?”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다."

  필리언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이다. 눈빛을 보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나는 너랑 친군데, 카니발 백작은 나보다 계급이 높잖아.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딨냐!”

  “편하게 지내."

  “안 되니까 그렇지.”

  벌써 카니발 백작과 필리언이 신경전을 벌였던 것 같다. 포로의 신분이었을 때는 막말해도 상관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가르딘이 카니발 백작을 정식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카니발 백작은 친구는 친구고, 작위는 작위라는 철칙을 내세우고 있었다. 딱히 반박할 말이 없는 필리언은 당연히 궁색해질 수밖에 없는 위기에 몰렸다.

  “후작님께 감히 막말을 하다니! 무엄하다!”

  ‘커억!’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로 인해 주화입마에 빠질 뻔한 필리언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고 있을 때는 예의를 지키겠지만 카니발 백작 때문에 평소 하던 말을 높여야 한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절대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았다. 필리언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나 마찬가지다. 후작의 지위를 가진 가르딘은 오히려 이 상황이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이렇게 나올 거냐?]

  [어쩔 수 없잖아. 딱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계속 이렇게 나오면 나도 막나간다.]

  [어떻게 할 건데.]

  [영지의 비밀을 모두 까발리고, 나도 오러마스터라고 광고하고 다닐 거다! 그리고 네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했는지 황자와 공작에게 다 말할 테다!]

  ‘허억!’

  전음을 주고받던 가르딘이 이번에는 주화입마에 빠질 뻔했다. 사실 필리언의 경우 오러마스터라는 것만 알려지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자작의 작위에서 단숨에 백작의 작위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국의 검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까지 얻게 된다. 가르딘의 치부를 대부분 알고 있는 필리언이 입이라도 뻥끗하면 정말 큰일이었다.

  가르딘이 정색하며 카니발 백작을 응시했다.

  “왜 그러십니까?”

  “필리언은 내 오랜 친구네, 그러니 자네도 너무 몰아세우지 말게. 나중에 알게 될 테지만 사실을 알면 자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걸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사이가 전보다 좋아지긴 했어도 오랜 기간 알고 지낸 것이 아니지 않나. 그러니 때가 되면 가르쳐주겠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카니발 백작은 가르딘의 말투에서 어떤 비밀이 있음을 직감했다. 그런데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됐을 때 카니발 백작은 기가 차다 못해 어이를 상실할 뻔하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후일 가르딘의 마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 도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됐냐! 이 징그러운 협박범아!]

  [나도 자존심이 있다고! 그리고 협박은 네놈이 먼저 했잖아!]

  필리언과 가르딘 모두 겉으로는 조용했다. 반면에 전음은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고 천박했다.

  러쉬 황자가 전한 작전의 일부를 필리언과 카니발 백작에게 설명해 주었다.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걱정 마라. 나와 투르가 창기병을 이끌고 먼저 출발 할 거다. 너희 둘은 병사들을 이끌고 파스트론 공작님과 합류해."

  “파스트론 공작님이 직접 지시를 하는 겁니까?”

  “그렇지.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너무 설치지 마라!”

  “물론입니다."

  “특히 필리언 너 말이야.”

  “내가 뭘?”

  “네가 제일 걱정돼.”

  “꼭 말을 해도.”

  다크호스가 있는 이상 시간싸움에서 승산이 있었다. 창기병의 속도는 대륙 제일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각자 맡은 임무를 잊지 마."

  펠칸 성에서 죽은 1천 명의 병사들에 마음이 쓰이는 가르딘이었다. 또다시 그러한 희생이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되도록 병사들을 뒤로 물리면서 희생을 줄이는 것이 나았다. 말투는 농담이 섞여 있지만 눈빛과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한 가르딘이다. 필리언과 카니발 백작, 투르, 사이론 모두 느낄 수 있었다.

  * * *

  쫓아오는 발리스타 공작군과 백병전을 치르기 위해서 돌아선 마이어 공작군은 또다시 곤란한 상황을 겪었다. 발리스타 공작군이 전투를 벌이는 대신에 뒤로 후퇴를 했기 때문이다.

  일정거리를 두고 도망치고 있기에 따라잡을 수 없는 간격은 계속 유지됐다. 계속 쫓아가다 보면 결국 마린 성에 당도하게 된다. 그럼 역으로 마이어 공작이 당할 수도 있었다.

  두 번의 역추격전이 벌어지고 나서야 마이어 공작은 깨달았다. 한 번이라면 우연이겠지만 두 번은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적의 전략임을 알아챘다.

  “이런, 당했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놈들은 우리를 노리는 게 아니다. 인폴트 성을 노리는 게 분명하다. 어서 출발해야겠다!”

  발리스타 공작이 시간을 끌기 위해서 유인했다는 것을 눈치 챈 마이어 공작은 그 즉시 방향을 인폴트 성으로 다시 돌렸다. 괜한 시간을 낭비하는 바람에 인폴트 성이 위험하게 되었다.

  현재 인폴트 성은 비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펠칸 성 점령 작전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적군을 속여야 했다. 1황자 진영을 속이기 위해서 인폴트 성의 모든 병력을 3황자가 이끌고 황도로 진격한 상태였다.

  작전이 성공했다면 모르겠지만 실패한 이상 거꾸로 성이 비어버리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완벽한 전세역전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상 한 방 치고 열 방을 맞은 것과 같았다.

  “시급하니 서둘러라!”

  인폴트 성으로 급히 회군하는 마이어 공작군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발리스타 공작은 약간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일찍 작전을 알아챈 것이다. 확실히 마이어 공작은 전략에도 밝았다. 상대의 수를 읽는 능력이 탁월했다.

  “우리는 다시 추격한다."

  적군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계속 뒤따라 붙어야 했다. 만일 마이어 공작이 아예 결판을 내기 위해서 펠칸 성으로 가게 되면 그것 또한 곤란할 수 있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적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했다.

  * * *

  다마트 황자는 현재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황도를 지키고 있던 바자바인 후작이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다.

  다마트 황자의 경우 황도의 경계에서 인폴트 성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좀더 멀리 돌아가야 한다. 그에 반해 바자바인 후작은 황도의 서북쪽 일직선 루트를 확보하고 있었다.

  우선은 소수 정예군으로 기동성을 유지했다. 소수 정예군으로 기병대와 피닉스 기사단이 먼저 움직였다. 그 뒤를 대군이 따르도록 지시를 내려놓았다. 다마트 황자의 기동성을 떨어뜨리고 조급하게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다마트 황자에게는 불리하게 진행이 될 것이다.

  채채채챙! 사사삭!

  꽈아아아앙!

  피닉스 기사단은 인간병기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일반 기사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적의 규모가 많다 하나 그것은 숫자에 불과했다. 좁은 지역을 거점으로 잡고 막아서자 도저히 뚫을 수가 없는 철벽이었다. 물론 인간인 이상 체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어느새 지원군이 도착하여 보완을 해주고 있었다.

  병력이 비슷해지자 다마트 황자가 이끄는 군대가 불리하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3황자를 따르는 대다수의 귀족들이 네벨리언 공작의 수하들이기에 전투가 일사불란하게 치러지지 않았다. 속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는 다마트 황자였다.

  뿌드득!

  “어서 길을 뚫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조용하던 다마트 황자의 입에서 거친 노성이 터져 나왔다. 광포한 기세가 뿜어져 나가자 귀족들과 기사들이 움찔거렸다. 붉게 일렁이는 눈빛이 일순간 형성되었다가 사라졌다. 자신도 모르게 힘을 사용할 뻔한 다마트 황자였다. 반존대하던 말투도 변했다. 원래의 성정이 조금씩 드러난 것이다.

  ‘놈들이 노리는 게 뭔지 알면서도 당하다니!’

  한 번 어긋난 톱니바퀴는 점점 더 어긋날 뿐이었다. 애초에 세웠던 전략이 무너진 여파가 너무 컸다. 다시 되돌리기 에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갔다.

  능선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바자바인 후작은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전황을 살피던 그의 시선이 두 신성에게 향했다. 오랜만에 봤는데 이제는 경지를 짐작하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성장이었다.

  ‘천재라고 하도 시끄럽기에 어느 정도인가 했더니 이건 숫제 괴물이 되어버렸구나! 도대체 누가 저런 괴물로 만든 거야!’

  명색이 피닉스 기사단의 부단장이었다. 5대 공작이 아니라면 어떤 누가 와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막 20살이 넘은 두 신성에게는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사실은 쪽이 팔렸다. 괜히 나대다가 실력이 뽀록나면 그 망신을 감당할 자신이 없을 정도다. 괴물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가르딘이라는 것을 알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지도 몰랐다.

  “마력포는 언제 오는 거냐?”

  “이제 곧 도착할 것입니다!”

  전투가 유리하게 진행되는 가운데도 바자바인 후작은 방심하지 않았다. 황궁에 있는 마력포를 이동시켜 이곳에서 다시 사용할 계획이었다. 필사적으로 뚫어 오는 적에는 마력포만큼 효용성 있는 무기도 없었다. 일단 사정거리를 계산할 필요성이 적었다. 적당한 지점에 쏴서 병력을 일시에 몰살시키면 되었다. 쏘다 보면 맞는다.

  울창한 숲에 도착한 가르딘과 창기병은 한창 벌목에 열중하고 있었다. 가르딘의 오러블레이드가 휘둘러지자 어른 몸통보다 더 큰 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가르딘이 깔끔하게 나무를 쓰러뜨리는 반면에 투르는 두 개의 배틀엑스를 들고 나무를 사정없이 찍고 다녔다. 수백 그루의 나무를 모두 쓰러뜨린 가르딘은 그제야 벌목을 멈추었다.

  “투르야, 모두 저쪽으로 집어 던져라.”

  “예. 영주님!”

  나무 크기는 사람이 들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크다. 하지만 투르는 그따위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체력과 내공이 있기에 지치지도 않는다.

  “으차!”

  가벼운 기합 소리에 부응하며 30미터에 달하는 나무가 들렸다. 나뭇가지는 이미 다 쳐놓은 상태였다. 마치 큰 창을 연상케 만들었다. 투르가 광천패황신공을 운용하여 있는 힘을 모두 쏟아 나무를 던졌다.

  슈우웅!

  100미터는 우습게 날아갔다. 쏘아지듯 날아간 거대한 통나무가 원하던 목적지에 안착하자 대지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창기병들 모두 기가 막힌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괴력도 괴력 나름이었다. 상상을 불허하는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가르딘은 투르의 힘과 내공이 또 한 번 성장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스필언과 미토스만큼이나 성장이 빨랐다.

  투르가 또다시 나무를 던졌다. 그러나 수백 그루나 되는 나무를 혼자서 모두 던지는 것은 힘들었다. 가르딘도 힘을 보탰다. 천룡무상신공을 운용하여 나무를 들어 올렸다. 아직 적군이 보이지 않았지만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나무들을 던져놓아야 했다.

  “너희들은 기름을 가지고 가서 대기하고 있어."

  “예, 영주님!”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는 마라, 나무에 맞아 사망하는 수가 있다.”

  투르의 투창 능력이 대단하다 해도 거리가 100미터나 되었다. 반경 10미터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했다. 괜히 나무에 맞기라도 하면 부상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사망이었다.

  창기병을 이동시키고 나서도 가르딘과 투르는 부지런히 투척했다. 한참을 투척하고 난 후에야 수백 그루의 나무를 모두 던질 수 있었다.

  투르의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나왔다. 호흡이 가쁜 것을 보니 상당히 무리한 모양이었다.

  “신공을 운용하여 힘을 비축해 놓아라.”

  가르딘이 투르의 혈에 진기의 유입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광천패황신공의 공능은 대단했다. 운기행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금세 원래의 신색을 회복할 수 있었다.

  가르딘은 나무를 던진 지점으로 가서 그 반대편에 기름을 붓도록 창기병들에게 명령했다.

  “이만하면 어느 정도의 시간은 확보할 수 있겠지.”

  이곳은 인폴트 성으로 가는 최적 진입로로 길이 제법 넓은 편에 속한다. 대군을 막아서기 위해서 통나무로 막아서기는 했으나 나무장벽이 목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통나무는 기폭제에 불과했다.

  이 주변은 숲이 울창하다. 울창한 숲에 불이 붙으려면 도화선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나무를 일직선으로 세워놓았다.

  “이제 오는군.”

  북방대군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박력이 느껴졌다.

  가르딘은 그들이 오기 전에 불을 먼저 놓았다. 아무래도 나무가 타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큰불이 되기 전에 마법사들이 불을 꺼버리면 곤란했다. 기름을 부었기에 불은 금세 나무를 태우기 시작했다. 매캐한 냄새와 더불어 연기가 피어올랐다.

  “주인공이 왔으니 조연은 빠져주어야겠지.”

  가르딘이 창기병을 이끌고 다음 지점으로 이동했다.

  연기가 번져 올라오는 것을 본 마이어 공작은 수상함을 느꼈다. 바라보는 지점은 협곡이 아니었다. 매복하거나 장애물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점이다. 적도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만한 넓이의 길에 장애물을 만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방해물이 있다면 치워주지."

  여기서 또다시 우회하면 시간이 더 걸렸다. 놈들의 목적이 드러난 이상 뜻대로 움직여줄 이유가 없었다. 또한 어설픈 장애물 따위에 물러설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다. 마법사와 병력을 이용하면 장애물 정도는 삽시간에 치워버릴 수 있었다.

  마이어 공작은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갈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막상 다다르니 예상 밖의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수천 명의 인원이 동원돼야 하는 장애물이 턱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불이 가장 잘 타오르는 시점이었다. 통나무가 모두 타는 것을 기다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다.

  “누가 저런 짓을 했을까요?”

   “마법사들이겠지.”

  고서클 마법사들이라고 해도 마력이 넘쳐나지는 않는다. 저 정도 규모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마이어 공작이 데리고 있는 마법사들이 불을 끄기 위해서 나섰다. 물 계열 마법을 사용하여 불을 천천히 잡아가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수풀에 불이 붙어서 더 큰불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숲과 길 사이의 거리를 거대한 통나무들이 메웠다. 불길이 통나무를 타고 수풀까지 번진 것이다. 전소하는 불길은 살벌할 정도의 기세를 뿜어내었다. 마치 모든 것을 태우려는 듯한 기세를 보였다.

  마법사들도 최선을 다해 불길을 잡는 데 노력했다. 고서클 물 계열 마법을 연방 사용하여 불길을 잡아갔다. 하지만 그로 인한 매캐한 연기가 사방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불길은 잠시 숨을 죽이고 있다 다시 번질 수도 있다. 또한 연기는 쉽게 사라지지도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많이 피어올랐다.

  마이어 공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놈들은 통나무 더미를 이용해서 숲 전체를 태우려고 했던 것 같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제법 오랜 시간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해야 했다.

  “큰일이군!”

  두 번의 회군과 장애물로 인한 시간 지체는 마이어 공작의 속내를 시커멓게 태웠다.

  조급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냉정하게 시간을 계산해 보는 마이어 공작이었다. 지금쯤이면 인폴트 성이 함락되었을 수 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마트 황자에게 온 연락에 의하면 바자바인 후작의 작전에 휘말려 인폴트 성으로 가지 못 하고 있다고 한다.

  후방에서 쫓아오는 적군에 파스트론 공작이 없었다. 그가 인폴트 성으로 병력을 이끌고 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인폴트 성이 견고하다고 하나 파스트론 공작을 막아낼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인폴트 성이 함락되어 양 쪽으로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제아무리 마이어 공작군이 강하다고 하나, 배 이상의 병력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회군하게 되면 다마트 황자와의 연계가 어려워진다. 즉, 병력이 반으로 분산되어 버린다. 하나로 뭉쳐도 쉽지 않은 전쟁에서 절반의 병력으로는 이길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전진한다!”

  마이어 공작은 돌아서지 않았다.

  인폴트 성이 점령당했을 수도 있으나 아닐 수도 있다. 만약을 가정하기에는 배를 강에 띄운 지 오래였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마이어 공작은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그를 따르는 귀족들과 기사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 * *

  인폴트 성을 수비하고 있는 지단 백작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다마트 황자가 모든 병력을 이끌고 움직였기에 인폴트 성에 남아 있는 병력은 1만도 되지 않았다. 이 정도 병력으로 인폴트 성을 에워싸고 있는 파스트론 공작의 병력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인폴트 성 주변이 병력으로 인해 발을 디딜 자리도 없어 보였다. 적어도 20만 이상의 병력은 될 것이다.

  공성전에서 수비하는 쪽이 유리하다고 하나 그것도 정도가 있었다. 병력의 차이가 무려 20배 이상이었다. 더군다나 적군을 지휘하는 자는 제국 제1의 기사인 파스트론 공작이었다. 지략대결에서도 승부를 점치기 힘들었다.

  ‘왜 아직도 3황자님과 마이어 공작님은 오시지 않는단 말인가!’

  계속 통신을 보냈다.

  몇 번의 연락이 오고 나사 통신이 끊겼다. 적들이 통신방해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제는 소식을 전할 길도 막막해졌다.

  지단 백작은 우선 공성전을 준비하도록 명령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인폴트 성을 파스트론 공작에게 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3황자와 마이어 공작이 올 때까지 버터야 했다.

  한편, 인폴트 성에 접근하고 있는 파스트론 공작은 시간을 끌지 않았다. 어차피 수적인 열세가 명확했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공성무기를 제대로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빠른 시간 안에 인폴트 성을 점령하고, 마이어 공작을 맞이해야 했다.

  “전원 공격하라!”

   파스트론 공작은 마이어 공작과의 대결에서 당한 부상이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움직이는 데 무리는 없어 보였다. 파스트론 공작은 3만의 궁수대를 전면으로 배치시켜 성을 사수하는 병사들을 견제했다. 그사이에 성문을 부수기 위해 기사단을 출전시켰다.

  파스트론 공작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귀족들과 기사들이 성을 함락하기 위해 돌진했다. 눈앞에 공을 취할 기회가 찾아왔다. 인폴트 성을 점령하기만 한다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반면에 필리언은 아직 서두르지 않았다.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병사들을 움직였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성을 점령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카니발 백작 역시도 필리언의 태도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움직여 봤자 주목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슈슈슈슈슉!

  푸욱! 푸욱!

  “컥! 커억!”

  3만의 궁수대가 쏜 화살이 인폴트 성 위로 빗물처럼 쏟아져 내려갔다. 활은 보통 일직선으로 쏘지 않는다. 낙하 하는 지점을 겨냥하여 위로 쏘는 것이 정석이다. 성 위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화살에 맞고 추락하거나 죽어 나갔다.

  지단 백작의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처음부터 파상 공세를 취하기에 방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성안에 있는 투석기를 사용하여 막아내고는 있지만 한계가 보였다. 일정 거리 내에 접근을 하면 투석기의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너무 많구나!”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다. 지단 백작은 적군의 기사단이 성문에 접근한 것을 보았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서 화살과 창, 돌을 던졌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화살과 창을 던지기도 전에 적군의 집중포화에 당하기 일쑤였다. 또한 어찌어찌 화살과 창을 던졌다 하더라도 기사단을 죽이지는 못했다.

  쿠쿠쿵!

  기사단이 마침내 인폴트 성의 문을 부쉈다. 마법 공격이라면 막을 수 있겠지만 오러는 막기 힘들었다. 견고하게 지켜 주던 성문이 부서지자 속수무책이 되었다. 파스트론 공작군이 거침없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지단 백작은 허무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너지는 인폴트 성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청명하고 맑았다.

  “빌어먹을!”

  가르딘이 창기병을 이끌고 인폴트 성으로 왔을 때, 전투는 이미 종료가 되어 있었다. 전후 처리라고 할 것도 별로 없는 상황이 되었다. 대군의 이점을 효과적으로 발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낸 파스트론 공작이었다.

  ‘나이가 60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화끈하네.’

  신중할 때는 누구보다 신중하지만 일단 공격을 할 때의 파스트론 공작은 대단히 열정적이었다. 병력 피해도 많은 편이 아니었다. 좀더 시간을 끌었다면 피해 없이 공략도 가능하겠지만 시간싸움에서 그런 짓은 사치였다. 우선은 인폴트 성을 함락하고 성문을 다시 걸어 잠그는 것이 중요했다. 성문을 대신할 것을 마련해서 임시로 장애물을 설치했다.

  가르딘은 말에서 내려 파스트론 공작에게 갔다.

  파스트론 공작은 성의 집무실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어서 오게."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가 시간을 끌어주어서 제때에 성을 함락할 수 있었네."

  “제가 한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작전대로 했을 뿐입니다."

  가르딘은 마이어 공작이 한 시간 후에 인폴트 성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렸다. 파스트론 공작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라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역시 북방으로 가지 않았군.”

  “워낙 대쪽 같은 성품을 가진 분입니다. 일단 마음을 정하면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검을 맞대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더군.”

  “우선은 마이어 공작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당연하지.”

  마이어 공작도 속전속결로 전투를 치를 것이 분명했다. 뒤에서 추격하는 발리스타 공작이 합세하기 전에 끝을 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는 것은 마이어 공작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진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가르딘은 전투 준비를 하기 위해서 먼저 집무실을 나섰다. 회포는 전투가 끝난 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마이어 공작의 공세를 무리 없이 막아내는 것뿐이다.

  ‘그보다 부상을 당한 것 같은데.’

  파스트론 공작과 마이어 공작이 기사대결을 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둘 다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엄청난 대결을 펼쳤다고 했다. 둘의 수준이 엇비슷한 것으로 보아 기세싸움에서 마이어 공작이 더 강했던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

  * * *

  북방의 대군이 인폴트 성 앞에 당도했다.

  40만 대군이 사나운 기세를 분출하며 인폴트 성을 노려보았다. 마이어 공작의 시선이 인폴트 성의 깃발에 향했다. 깃발의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 파스트론 공작을 상징하는 피닉스가 펄럭였다.

  “역시 점령당했구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는데, 현실로 다가왔다. 다마트 황자는 여전히 바자바인 후작과의 전투로 인해 인폴트 성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이어 공작 혼자서 인폴트 성을 탈환해야 했다.

  문제는 뒤에서 추격하는 발리스타 공작이었다. 그가 후방에서 공격을 하게 되면 양쪽으로 공격을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마린 성 전투는 장기전미 아닌 단기전이었다. 또한 속도전이었기에 그에 대비한 식량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식량이 인폴트 성에 저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발리스타 공작이 보유한 병력과 정면 전투를 벌인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후퇴를 하게 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아직까지도 발리스타 공작은 공격사정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인폴트 성을 공격하는 순간에 발리스타 공작이 움직일 것이다.

  “속전속결이다!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고 공격을 시작하라!”

  상대가 누가 됐건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마트 황자가 인폴트 성에 오기를 기다리며, 먼저 공격하기로 마음을 정한 마이어 공작이었다.

  인폴트 성에서 마이어 공작군의 공격 준비를 지켜보고 있던 가르딘은 인상을 굳혔다. 북방대군이 왜 북쪽의 거친 부족들을 모두 굴복시켰는지 이해가 되었다. 위치와 시간상으로 유리한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전투가 예상되었다.

  ‘헥토르 왕국과 정면대결을 펼쳐도 이길 수 있는 전력이겠어.’

  헥토르 왕국의 30만 대군도 북방대군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헥토르 왕국과 정면대결로 이길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았다. 가르딘의 전략에 휘말려 패배해 사라지긴 했어도 결코 약한 전력이라고 할 수 없었다.

  가르딘의 곁으로 필리언과 카니발 백작이 다가왔다.

  “카니발, 어떻게 될 것 같나?”

  “이깁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하지만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병력의 수도 많지만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패배가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사나운 기세가 여전하다니! 대단하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필리언, 병력은 뒤로 잘 빼뒀지?”

  “물론, 병참지원을 하고 있다.”

  피해가 뻔히 예상되는 전투에 발키리 영지군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 영지군의 전력은 현재 9천이다. 20만이 넘는 대군이 있는 이상 무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영지군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르딘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카니발 백작은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한다고 오해했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자기 것에 연연하는 가르딘이 그럴 리는 절대 없었다.

  슈우웅! 쿠쿠쿵!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마이어 공작은 처음부터 대병력을 투입하여 공성전에 박차를 가했다. 성벽을 넘기 위한 사다리가 올라가고 그를 보조하기 위한 화살과 투석기 가 발사되었다.

  파스트론 공작도 성벽 위에 올라서 아군을 독려하여 필사적으로 성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죽어 나가는 병사들의 수가 상상 이상이었다.

   첫 교전이 시작되고 난 후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몇만의 병력이 죽어 나갔다. 성 위를 지키다 죽거나 추락한 병사들과, 성을 올라가다 떨어져 죽은 병사들이 지천에 쌓여 갔다. 인폴트 성과 주변을 병사들의 피로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기사는 기사대로, 마법사는 마법사대로, 병사들은 병사대로 죽고 죽이는 지옥의 전장이었다.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코카 왕국과의 대전보다 더 지독했다. 근래에 펼쳐진 전투 중에서도 최악의 전투로 불리게 될 인폴트 성 전투였다.

  가르딘도 병사들을 지원하며 적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지독하군!’

  마이어 공작군의 병력이 두 배 이상 더 많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어 들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이만 포기해야만 하건만, 전쟁은 이성을 마비시키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다. 불굴의 의지가 느껴졌다. 상대하는 아군 병사들조차 질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죽어도 같이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퍼억!

  “크아아악!”

  사다리를 타고 넘어오는 병사를 막아선 가르딘이었다. 가볍게 검을 피하고 가슴을 베어내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사다리가 지지대를 잃고 뒤로 넘어가 버렸다. 가르딘 주변으로 필리언, 카니발 백작, 투르, 창기병이 마이어 공작군을 맞아 물리치고 있었다.

  지옥 같은 전투가 시작되고 세 시간이 넘어갔다. 사방이 시체들로 산을 이루어갔다.

  마이어 공작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웬만한 성이라면 이 정도의 병력을 투입하면 순식간에 점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 역시 필사적이었다.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양쪽의 소모전만 계속될 뿐이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벌써 10만의 병력을 소모하고 말았다. 그 이상의 병력 소모가 지속될 경우 발리스타 공작군을 막아내지 못한다.

  꽈악!

  검의 그립을 쥐는 마이어 공작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더 이상의 희생은 가치가 없는 일이 될 수 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병사들을 허무하게 희생시킬 수도 없다. 기다린 다마트 황자의 병력은 오지 않고 발리스타 공작군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양쪽으로 협공을 받는 것보다 북방으로 후퇴를 해서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 현명했다.

  “모두 철수한다.”

  마이어 공작이 철수를 명령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분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린 성에서의 전략적 후퇴와는 다르게 인폴트 성 전투는 패배로 인한 후퇴였다. 분한 것이 당연했다. 수많은 전투를 치른 마이어 공작의 일생에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물러난 최초의 전투가 되었다.

  후퇴 신호가 울리자 병사들이 썰물 빠지듯이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폭풍이 휘몰아치다 급격하게 사라지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후퇴하는 마이어 공작군을 보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인폴트 성의 병사들이었다.

  “내 생애 저런 악마들은 처음 본다!”

  “말도 마!”

  “놈들의 표정 봤어? 지옥으로 달려드는 마귀들이라니까!”

  파스트론 공작의 병사들도 산전수전 다 겪은 강병이다. 그런 이들이 질렸다는 듯이 말을 하는 것만 봐도 마이어 공작군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었다. 마이어 공작군이 12만의 사상자를 냈고, 파스트론 공작군은 7만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수성하는 입장에서 이 정도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드물다 할 수 있었다.

  인폴트 성의 전투가 끝난 직후에 발리스타 공작군이 도착했다. 그들은 전투가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섣불리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적군이 방향을 돌려 평지에서 전투를 치르게 되면 훨씬 많은 사상자를 냈을 것이다.

  “피해가 상상 이상이군.”

  “마이어 공작의 의지를 볼 수 있는 전투였소.”

  발리스타 공작과 파스트론 공작은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 때문에 씁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병력이 죽어 나갔기에 한 말이었다. 두 공작은 잠시 동안 말이 없다가 지금부터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이어 공작이 북방으로 물러서기는 했다지만 그가 가진 병력은 아직도 많소. 정면대결은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나을 것 같소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우선은 펠칸 성, 마린 성, 인폴트 성 을 지키면서 다마트 황자의 군대를 제압하는 게 적합할 것이오.”

  발리스타 공작은 북방으로 후퇴하는 마이어 공작군의 동선을 면밀히 주시하기 위해서 정찰병을 대거 파견해 놓은 상태였다.

  만약 북방으로 가지 않고 펠칸 성이나 마린 성을 노린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다각도로 적군의 움직임에 주시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평야에서 정면 전투를 벌이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은 야수몰이 작전을 계획했다.

  야수는 궁지에 몰렸어도 야수였다. 거친 반격이 예상된다. 그렇기에 우리에 가둬놓으면서 점차적으로 야성을 제거해야 한다. 북방이라는 야수 우리에 몰아넣은 후 압도적인 병력으로 점진적 압박을 가하자는 것이다.

  이 작전을 구사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 다마트 황자의 제압이었다.

  현재 다마트 황자가 보유한 병력의 대부분은 네벨리언 공작의 소속이다. 네벨리언 공작이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태다. 더군다나 황도 공격 이후에 받은 기습공격에 많은 피해를 보고 있었다. 마이어 공작군보다 수월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다마트 황자가 잡히면 마이어 공작은 원동력이 없어진다. 이후에 전쟁의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그때 적절한 회유책을 사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발리스타 공작과 파스트론 공작이 작전을 구상하고 있을 때 가르딘은 인폴트 성을 정리하고 있었다. 정리가 끝이 나고 난 후에 필리언, 카니발 백작을 불러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의했다.

  가르딘이 카니발 백작에게 뜻을 물었다.

  “마이어 공작군은 아직도 강합니다. 현재 우리의 전력이 수적으로는 앞선다고 하지만 북방의 모든 지역은 마이어 공작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정면 전투를 벌이지는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겠지.”

  북방은 마이어 공작의 손아귀에 있는 지역이다. 지형적인 유리함이 있었다. 또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북방으로 함부로 쳐들어갔다가는 겨울의 혹독함을 겪을 수도 있다.

  추위를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다가는 큰코다친다. 카이로만 제국의 3대 황제가 북방지역을 정벌하기 위해서 출전을 했다가 추위로 인해 대부분의 병사들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동사한 전투는 아직까지도 회자될 정도다.

  웬만하면 전쟁은 겨울에 하지 않는 것이 현명했다. 만약 전쟁을 치른다고 하면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한다.

  “3황자의 군대와 마이어 공작군의 거리를 떨어뜨리고, 3황자를 먼저 제압해야 합니다.”

  “그럼 3황자를 제압하기 위해서 병력을 투입할 거라는 말인가."

  마린 성, 펠칸 성, 인폴트 성에 일정 병력을 남겨두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병력을 투입하지는 않을 겁니다."

  가르딘은 이번에도 전투에 참여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까지 파스트론 공작은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다. 발리스타 공작은 1황자를 지키면서, 펠칸 성과 마린 성, 인폴트 성을 모두 수성해야 한다. 가르딘만이 유일하게 전력에서 남아도는 존재가 된다.

  “출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이제 막 전투가 끝났는데 우리가 또 출전한다는 거야!”

  “그래."

  “왜?”

  필리언이 이유를 물었다.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이 모두 있는데 굳이 가르딘이 앞장서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가르딘이 나대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의문이 더 컸다. 카니발 백작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파스트론 공작님이 부상 중이거든."

  “뭐? 난 그런 느낌 받지 못했는데.”

  “마이어 공작과의 대결에서 입은 부상이 아직 낫지 않으신 것 같다.”

  “그럴 수가!”

   필리언은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파스트론 공작의 신위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최강의 기사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은 실력이다. 마이어 공작의 실력이 설마 파스트론 공작을 넘어설 줄은 몰랐다.

  “그보다 단장님 성격에 부상을 떠벌리지는 않았을 텐데 넌 어떻게 알았냐?”

  뜨끔!

  순간 가르딘은 필리언의 날카로운 질문에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고수는 하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파스트론 공작이 하수는 아니니 말이다.

  ‘작전회의 때는 한마디도 없던 놈이 이럴 때는 예리해 가지고 사람 곤란하게 만들어!’

  “내가 그래도 오러마스터다. 근처에서 보는데 그 정도도 모르겠냐?”

  “그런가. 난 잘 모르겠던데."

  “지금 그게 중요해? 전투를 어떻게 치를지가 중요하지.”

  가르딘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말 돌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가르딘이다. 파스트론 공작의 부상이야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문제다. 현재 중요한 것은 다마트 황자를 제압하기 위 한 출전 준비였다.

  “바자바인 후작을 만날 생각을 하니 머리가 다시 아파온다."

  “하긴, 예전부터 부단장과 너는 상극이었으니까!”

  “그 인간은 매번 내가 하는 일에는 꼬박꼬박 나타나서 훼방 놓았지!”

  가르딘은 바자바인 후작을 만나기 꺼려했다. 그 인간 만나고 나서부터 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번에도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이제 난 후작이다. 꿀릴 것 없어. 당당하면 된다.’

  마음을 다잡는 가르딘이었다.

  * * *

  인폴트 성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다마트 황자는 아직까지도 바자바인 후작의 견고한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단병전에서 바자바인 후작과 스필언, 미토스의 능력을 따라가기도 힘들었으며, 병력이 밀집된 지역에 쏘아지는 마력포로 인해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병력 손해만 해도 10만을 훌쩍 넘어 15만에 이르고 있었다. 적의 피해보다 세 배는 더 많은 손실이었다. 이대로 이긴다는 보장도 없는 지경에 처해 있었다.

  다마트 황자는 전황이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어떻게 해서든 인폴트 성으로 가려고 했다. 인폴트 성에만 도착하면 재정비가 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때 마이어 공작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통신방해 마법이 쳐진 지역을 통과할 수 없기에 통신을 곧장 보내지 않고, 우회하여 보냈다. 우회한 만큼 전달 시간이 늦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인폴트 성이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다마트 황자는 허탈한 심정을 느꼈다. 기를 쓰고 가려던 목적지가 사라진 것이다.

  마이어 공작이 패전을 한 것까지 전해지자 귀족들의 동요가 눈에 띄게 커졌다. 마이어 공작군과 합류할 길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바자바인 후작의 방어선을 뚫어도 목적지가 없으니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빌링턴 백작이 이곳에서 벗어나자고 다마트 황자에게 고했다.

  “의미 없는 전투에 병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우선은 쿠베론 성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쿠베론 성은 네벨리언 공작령의 주력 성 중에 하나였다. 인폴트 성과 비견되는 성이기는 하지만 네벨리언 공작령 내의 성일 뿐이다. 인폴트 성처럼 대륙의 모든 지점과 연결이 되는 곳은 아니었다.

  다마트 황자는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쿠베론 성에서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계속되는 패배로 인해 병력의 사기가 많이 꺾여 있었다. 주요 수뇌부들도 불안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놈들이 그냥 놓아주겠나.”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합니다. 여기에 있다가 인폴트 성의 병력이 합류라도 하는 날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뿌득!

  저절로 이가 갈리는 다마트 황자였다. 애초의 전략이 무너지지만 않았어도 이런 타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기에 다마트 황자는 빌링턴 백작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귀족들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쿠베론 성으로 가기 위해서 일부 병력을 남겨두어 바자바인 후작의 추격을 뿌리치도록 했다.

  * * *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서 코워드 공작은 발버둥을 쳤다. 헥토르 공국의 남아 있는 모든 전력을 전쟁 준비에 쏟아 부었다. 풍족한 재정이 바닥나는 상황에서도 코워드 공작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전투에 패배하고 가르딘에게 받은 상처는 아직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가르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코워드 공작의 눈에 다른 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가르딘에 대한 복수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것밖에 준비하지 못한 것이냐!”

  “무리한 군사비로 인해 재정이 흔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조금 시간을 두고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시끄럽다! 재정 따위야 발키리 영지를 점령하고 나면 금방 충당할 수 있다!”

  비린스 자작은 코워드 공작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 보았다. 12만 정예군을 쏟아 붓고도 이기지 못했는데, 그의 반도 안 되는 전력으로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사실상 죽겠다고 발버둥치는 것밖에는 되지 않았다.

  ‘젠장! 그렇다고 반대할 수도 없고!’

  버루거 자작의 경우 입을 잘못 놀리는 바람에 좌천되어 시골 촌구석으로 쫓겨나 버리고 말았다. 그 뒤 버루거 자작은 죽지 않기 위해서 숨죽이며 지내고 있었다.

  방에서 벌벌 떨고 있을 버루거 자작을 떠올렸다. 비린스 자작은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코워드 공작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어야 했다.

  “어서 빨리 군사비를 더 충당하고, 군수물자를 확보해!”

  “알겠습니다, 공작님!”

  “쓸모없는 것들! 어서 나가라!”

  코워드 공작의 눈에 모든 수하들이 꼴불견이었다. 가르딘 앞에서 보였던 추태를 떠올리면 아직도 이가 갈렸다.

  파파팡! 퍼어엉!

  코워드 공작이 집무실에 있는 상황에서 건물이 터지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코워드 공작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사에게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누군가 침입했습니다!”

  “뭐야! 어떤 놈들이 감히 내 집까지 침입한단 말이냐! 당장 잡아서 내 앞에 데려와라!”

  기사들과 병사들이 침입자를 막기 위해서 대거 투입이 되었다. 반면에 마법사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발키리 영지에 모두 버려놓고 온 상태라 마법사들이 없었다. 마법사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또다시 코워드 공작에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막아랏!”

  사아악! 푸아앙!

  침입자는 단 두 명에 불과하지만 막아내기 쉽지 않았다. 빛살 같은 검기와 상상할 수 없는 마법력을 가지고 있는 검사와 마법사였다. 단숨에 코워드 공작가로 침입한 두 사람은 유감없이 위력을 발휘해 나갔다. 삽시간에 방어선을 뚫고 코워드 공작의 집무실에 당도한 두 사람이었다.

  코워드 공작은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침입자로 인해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이처럼 대놓고 침입할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팔이 하나 없는 마법사가 여유롭게 코워드 공작에게 말을 건넸다. 그 뒤를 검사가 자연스럽게 버티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

  “공공의 적을 함께 쳐부수자는 뜻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감히 내 집에 침입하고 이상한 말을 지껄이다니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스윽!

   검사의 검이 어느새 코워드 공작의 목을 겨냥했다. 놀란 코워드 공작이 식은땀을 흘리며 두려운 듯 소리쳤다.

  “도대체 누군데 이러는 것이오?”

  “가딩스타 후작이라고 한다."

  허억!

  코워드 공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름을 듣고 나니 누군지 기억이 났다. 심장이 덜컥 내려 않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코카 왕국과 카이로만 제국의 결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자부하는 코워드 공작이었다.

  “설마 날 죽이려고!”

  오해도 적당해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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