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딘전기 10 건드리고고 @@[Title [email protected]@]
@@[제1장 신위@@]
휘이이이잉! 쿠쿠쿵!
사람 몸집보다 큰 바윗돌이 공깃돌처럼 날아가서 성벽에 부딪쳤다. 견고한 성임에도 불구하고 충격을 받은 성벽이 조금씩 부서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부서진 파편과 충격의 여파는 병사들에게까지 미쳤다. 파편을 맞은 병사들이 쓰러져서 고통을 호소하였다.
밤의 어둠이 찾아오는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오히려 전장은 더욱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어둠을 격하고 날아가는 100여 발의 불덩어리가 서로의 진영을 유린하였다. 불구덩이의 여파는 굉장했다. 반경 3미터에 해당하는 지점이 모두 불타 버리고 있었다.
마린 성의 동쪽을 맡고 있는 발리스타 공작과 서쪽을 맡고 있는 파스트론 공작은 쉼 없이 전장을 지휘하였다. 적들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절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톱니바퀴처럼 병사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전장의 지휘자가 차분하게 적을 맞아 대응하자 병사들 역시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적을 맞이하였다.
“적의 공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방어하라!”
“마법사들은 적군의 마법을 방어하고, 아군을 도와라!”
공성전은 뚫리느냐, 막느냐의 싸움이다. 누가 더 단단한가를 시험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죽기로 뚫으려는 자와 죽기로 막으려는 자. 물러설 수 없는 혈전이 펼쳐졌다.
마이어 공작은 적군의 대응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역시 대단하군!’
이제까지 싸워왔던 적들과는 다른 대응이었다. 대부분의 적들은 마이어 공작군이 뿜어내는 기세조차 버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반면에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이 이끄는 부대 는 침착했다. 치열하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적절한 대 응을 하고 있었다. 병력 손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성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이 치사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이어 공작은 전쟁에 치사한 것은 없다고 보는 인물 이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기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작전대로 다른 곳에 한눈팔 생각은 하지 못하게 해야겠지!’
마이어 공작의 목적은 적들의 시선 분산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지금쯤 놈들이 소식을 들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함부로 병력을 빼기는 힘들 것이다. 만약을 위해 병력을 따로 빼두었던 마이어 공작이었다. 걸려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두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짰다.
“공격을 늦추지 마라!”
마이어 공작의 공격 명령은 그칠 줄 몰랐다. 파상적인 공세를 계속 취해 성을 점령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병사들은 마이어 공작의 명령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보였다. 불구덩이 속에 뛰어드는 광전사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 * *
마이어 공작의 예상대로 발리스타 공작과 파스트론 공작 에게 통신이 당도했다. 현재 펠칸 성이 공격받고 있다는 정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심각한 상황에 발리스타 공작과 파스트론 공작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3황자가 보유하고 있는 병력을 대부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따로 숨겨둔 병력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펠칸 성의 견고함은 두 공작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문이 열렸다는 것은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뜻이 되었다. 1황자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전쟁은 명분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에 이겼어도 황제가 될 수 있는 1황자가 죽어버린다면 이겼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당했군.”
“설마 양동작전 이면에 숨겨 진 전략이 또 있었다는 말인가!”
“타이가라 공작을 과소평가한 대가가 크군.”
황궁에 침입했던 병력도 타이가라 공작이 보유한 병력이었다. 방어하기는 했지만 오랜 실전을 거친 강병들이었다. 발리스타 공작의 정보력으로도 밝혀내지 못한 병력들이다. 그 정도 규모의 병력이 또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전쟁은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 적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 실책으로 다가왔다.
“어찌할 텐가?”
“상당히 난처하군.”
쉽사리 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마이어 공작의 공세가 대단히 거셌다. 대규모의 병력을 빼기에는 너무 위험 했다. 그렇다고 병력을 보내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러쉬 황자가 죽기라도 하는 날에는 3황자의 의도대로 흘러가게 된다. 그런 일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당장 뺄 수 있는 병력은 3만 정도다. 그 이상을 빼면 마린 성이 위험해져.”
“그렇겠지. 하지만 놈들이 눈치 챈다면 병력을 이동시키기도 쉽지 않을 텐데.”
“최대한 숨겨야겠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다. 통신이 들어온 후 적들이 통신 교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이어 공작군의 마법사들이 통신이 들어오는 지점에 마법진을 설치한 것이 분명 했다. 마린 성으로 들어오는 통신을 차단하겠다는 수작이었다.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통신이 되지 않았다. 펠칸 성의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 * *
마린 성이 공격받는 시각에 황도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황도의 서쪽 지역을 무대로 평지에서 병력과 병력의 대결이 이루어졌다. 병력은 서로 팽팽했다. 어느 한 쪽이 딱히 유리하다고 평가할 수 없을 정도였다.
차차창! 채채채챙!
병사들 사이로 기사들과 기사들이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다. 이번 전투에 네벨리언 공작의 비스트 기사단이 참여하였다. 비스트 기사단은 네벨리언 공작이 심혈을 다해 키운 최정예 기사단으로 평가를 받는다. 피닉스 기사단과 비교해서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자부했다.
그와 더불어 타이가라 공작의 버닝 기사단이 전면에 배치가 되었다.
기사단은 일반 병사들에게는 학살병기나 마찬가지였다. 두 기사단이 병사들을 썩은 짚단처럼 베어 넘겼다.
치열한 전장의 열기와는 다르게 다마트 황자는 얼음 같은 표정을 유지했다. 다마트 황자를 보필하고 있던 빌링턴 백작은 황자의 모습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다마트 황자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그곳에 간단하게 기사단을 베어 넘기고 있는 두 신성이 자리했다. 제국의 신성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검이 나아가는 궤적마다 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깔끔하면서도 효율적인 움직임이었다. 저만한 나이 때에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숙련된 경지였다.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끝을 알 수 없는 저력이 느껴졌다.
“짧은 시간에 이토록 빠르게 성장하다니 대단하군요.”
“그러나 아직 어립니다! 전쟁은 실력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어디 그럼 변수에 얼마나 강한지 볼까요.”
“예?”
무슨 말을 하는지 선뜻 이해하지 못한 빌링턴 백작이 머뭇거렸다.
다마트 황자가 손짓을 보내자 어두운 그림자가 뒤에서 튀어나왔다. 이제까지 그림자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자들이었다. 다마트 황자가 대기시켰던 또 다른 비장의 수였다.
그들은 병사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빨랐다. 순식간에 전장의 병사들 사이로 스며들어 갔다. 마치 물이 모래 속에 흡수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다마트 황자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지어졌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업에 방해되는 존재는 사라져야지.’
다마트 황자가 보기에 스필언과 미토스는 위험한 존재였다. 그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만 봐도 결코 우습게볼 수 없는 놈들이다. 이대로 성장하게 되면 앞으로의 일을 그르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위험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는 녀석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싹은 자라기 전에 잘라버리는 것이 나았다.
두 신성을 죽이기 위해 나아간 병사들은 길드에서도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존재들이었다. 킬링섀도라고 불리는 이들은 열 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합공을 하면 세븐다크라고 해도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했다.
킬링섀도는 적을 말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목적을 위해 목숨도 망설임 없이 버릴 수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오러마스터라고 해도 병사들 사이에 숨어서 암습하는 킬링섀도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차아악!
커억!
스필언과 미토스가 비스트 기사단 네 명을 일검에 베어 쓰러트렸다. 합공하는 비스트 기사단은 기가 질릴 정도였다. 오러마스터라는 것을 알기에 비스트 기사단은 처음부터 합격진을 사용하였다. 20명이 돌아가면서 차륜전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스필언과 미토스에게는 소용없는 짓이 되었다.
“이럴 수가!”
비스트 기사단의 단장, 다니엘은 두 신성의 놀라운 실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스트 기사단의 합격진은 네벨리언 공작도 인정하는 최강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자랑했다. 오러마스터라도 합격진에 갇히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자부심이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엄청난 실력도 무섭지만 두 신성이 보여주는 침착함에 소름이 돋았다. 기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노련한 기사도 사람을 죽이게 되면 약간이나마 흥분하기 마련이건만 두 신성은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왜 제국에 떠오르는 신성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다니엘은 이대로 기사들이 죽는 것을 방관할 수 없기에 앞으로 나섰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냉정하게 전투를 관조했다. 적의 움직임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었다. 마음이 흔들리면 검끝이 흔들리며,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 최대한 냉정하게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평정심을 유지한 두 천재의 검은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다.
‘아군이 조금 더 유리하다!’
‘후작님의 병력 운용이 정말 효과적이군!’
바자바인 후작은 전투를 아는 기사였다. 병력을 정말 효율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마음 놓고 적의 기사단을 상대할 수 있는 것도 바자바인 후작이 뒤에 있기 때문이었다. 가르딘의 롤모델다운 능력을 보여주는 바자바인 후작이었다. 괜히 피닉스 기사단의 부단장이 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가르딘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비스트 기사단을 상대하면서 병력의 운용과 전술을 체득하고 있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배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독한 존재들이었다.
둔재는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하는 천재를 이길 수 없기 마련이었다. 천재가 노력하지 않아야 둔재가 어느 정도 희망을 갖고 살 수 있겠지만 두 신성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찌릿!
감각을 예리하게 찌르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시선에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위험한 느낌을 받자 전음을 주고받았다.
[전방 왼쪽에 둘, 오른쪽에 셋.]
[뒤로 좌우, 다섯!]
초감각의 반열에 든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저절로 운용되는 항마멸사신공의 영향으로 인해 마기나 사기에 대한 반응이 대단히 빨랐다.
적은 비스트 기사단과 병사들 사이에 교묘히 숨어 있었다. 일반 병사들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스필언과 미토스가 아니었다면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카카캉!
검과 검이 충돌하는 시점에.
사사삭!
파팟!
스필언과 미토스를 향해 무언가가 쏘아져 왔다. 빠르면서도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눈치를 채지 못하면 순식간에 당할 수도 있었다.
대기의 미세한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스필언과 미토스는 감각을 최대한으로 날카롭게 만들었다. 감각의 사정권 내에 이질적이고 적의가 담긴 기운이 뚫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순간적으로 검을 사선으로 틀었다.
타탕! 타탕!
푸욱! 푸욱!
스필언과 미토스는 검면을 사선으로 틀어 비스듬히 각도를 만들어낸 후 날아오는 암기를 떨쳐내 버렸다. 암기가 튕겨 나가 공격하던 비스트 기사단의 목과 얼굴에 꽂혔다. 아주 작고 미세한 침이었다.
하지만 위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목과 얼굴에 맞은 기사단은 그 즉시 바닥에 쓰러져 즉사해 버렸다. 오우거도 한 방에 쓰러뜨리는 무서운 독이 발라져 있었던 것이다.
킬링섀도의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일시에 사방에서 독침을 날렸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섣불리 먼저 공격하지 않고 킬링섀도의 공격을 방어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숨어 있는 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비스트 기사단을 이용하여 킬링섀도를 점점 드러나게 만들었다.
털썩!
쓰러진 비스트 기사단 뒤에 숨어 있던 킬링섀도가 스필언과 미토스를 향해 돌진했다. 네 명이 돌진하여 무섭도록 빠른 검격을 출수하였다. 생각지도 않은 빠른 기습이었다. 옆에 있던 비스트 기사단은 일반 병사의 놀라운 움직임에 기겁했다.
“뭐야?”
합격진을 형성하는 상황에서 전혀 다른 존재들이 나타난 것이다. 비스트 기사단장인 다니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전면에서 갑작스럽게 그들의 몸이 터지는 것이 아닌가! 몸에 마력탄을 심어놓은 것 같았다. 마력탄이 터지면서 살과 뼛조각들이 모두 무기가 되었다.
퍼어어엉! 파파파팟!
사방으로 튀는 육편조각은 살인무기나 마찬가지였다. 오러블레이드와 맞먹은 위력을 가졌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덮쳐오는 킬링섀도의 육탄공세를 뒤로 물러서면서 대응해 나갔다. 스필언의 검에서 실타래가 형성 되어 정면을 감쌌다. 검이 한순간에 쉴 새 없이 휘둘러졌다. 감싼 기운은 망을 형성하다가 막이 되었다. 촘촘한 망은 얇지만 결코 약하지 않았다. 검의 절대경지에 해당하는 검막이 자연스럽게 구현된 것이다.
타타아아앙!
육편덩어리가 부딪치면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육편은 검막에 부딪치자마자 가루처럼 분쇄되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미토스가 뒤로 몸을 돌려 남아 있는 킬링섀도를 도륙해 버렸다. 감각에 걸린 이상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시간을 재면서 기다린 이유가 있었다.
멍!
지켜보던 다니엘은 순간 멍을 때렸다. 킬링섀도가 터졌을 때 생성된 기운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그런데 그것을 오러막을 형성해서 막아내었던 것이다. 오러마스터 상급의 기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막 오러마스터가 된 신성이 만들어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벌떡!
전장의 외곽에서 지켜보던 다마트 황자가 갑자기 일어났다. 킬링섀도의 자폭 공격은 오러마스터도 막기 힘든 기술이었다. 더군다나 나머지 킬링섀도들까지 처리하는 신성의 능력은 다마트 황자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저놈들의 실력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반드시 죽여야 할 놈들이다!’
다마트 황자가 느낀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두 신성을 일생일대의 숙적으로 생각했다.
그때였다.
슈유유융! 푸아아앙!
“으아아아악!”
황궁의 비밀무기 중에 하나가 바로 마력포다. 마도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황궁에 숨겨져 있었다. 단 한 대밖에 남아 있지 않으며, 몇 발 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위력은 대단했다. 마력포의 위력에 의해 반경 15미터가 초토화되었다. 마력탄의 근처에 있던 병사들은 산산이 조각이 나서 사라졌다.
바자바인 후작은 적군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일부러 접전을 벌였다. 마력포의 단점은 유효사거리가 그다지 멀리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정 거리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위력은 분산되어 버린다. 또한 적이 알면 대처하기 마련이다. 불의의 일격으로 사용하기 위해 참고 기다렸다.
바자바인 후작은 병사들 뒤에서 여유만만하게 전장을 바라보았다.
“흠! 괜찮네.”
후비적! 후비적!
“그래도 소리가 너무 커.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다.”
마력포의 굉장한 위력만큼이나 소리도 컸다. 멋모르고 근처에 있다가 귀가 먹먹해진 바자바인 후작이었다.
마력포 몇 방으로 단숨에 승기를 잡아낼 수 있었다. 혼란한 적들을 처리하는 것은 기사들 과 병사들의 몫이었다. 바자바인 후작은 뒤에서 기다리면 되었다. 과연 그다웠다.
‘펠칸 성은 어찌 됐을지 모르겠군.’
전투가 한창 벌어지는 와중에 펠칸 성이 공격받고 있다는 통신을 받았다. 당장 병력을 뒤로 빼기에는 적군이 너무 많았다. 이대로 황성에서 물러서기도 힘들뿐더러 함부로 병력을 뺐다가는 전멸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바자바인 후작은 과감하게 황궁을 사수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황궁보다는 마린 성이 펠칸 성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안전이다. 이곳이 훨씬 안전한 곳이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바자바인 후작이다. 안전제일주의를 최우선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못 미덥지만 너라면 잘 해내리라 믿는다.’
가르딘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자바인 후작 이라고 할 수 있다. 실실 쪼개는 자가 화나면 굉장히 무섭다는 것을 말이다.
‘뭐 아닐 수도 있겠지.’
부들! 부들!
다마트 황자는 전투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에 화가 났다. 두 신성의 놀라운 실력도 그렇고, 갑자기 등장한 마력포는 예상 밖이었다. 공격하는 시늉만 하려던 애초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적군의 유인책을 파악하지 못한 다마트 황자의 실수였다.
“확실하게 한 방 먹었군요.”
화는 나지만 끝까지 전투를 치를 수는 없었다. 원래의 목적은 황궁 점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적군의 유인책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유인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승패는 누가 더 확실한 목적을 이룰 수 있는가에 달렸다. 우선은 병력을 뒤로 물리고, 펠칸 성의 소식을 기다려야 했다.
“오늘은 이만 하지요.”
“알겠습니다.”
다마트 황자의 명령에 따라 병력을 철수시켰다. 다마트 황자는 화를 삭이는 대신에 눈빛은 더욱더 불타올랐다. 다음에는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였다.
* * *
좁은 통로를 두고 대치가 되었다.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살벌한 기운이 좁은 통로를 더 숨 막히게 만들었다. 칼날 같은 예리한 기운이 형성되어 대치하는 중간 부근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타이가라 공작과 네벨리언 공작이 가르딘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이제까지 모든 일을 실패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가르딘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가르딘은 반드시 죽여야 하는 존재였다. 이제야 만난 것이 아쉽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겁도 없이 먼저 나타나다니 배짱 한번 두둑하구나!”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는지 봐야겠구나!”
“아까부터 보고 있었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가르딘은 차가운 눈빛으로 타이가라 공작과 네벨리언 공작을 응시했다. 예상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난 일로 인해 예기치 않은 결전을 벌여야 한다.
‘작전은 대단했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펠칸 성을 공략하고, 황자를 사로잡거나 죽일 계획이었을 것이다.
만약 러쉬 황자가 적에게 죽는다면 가르딘은 무사할 수 있을까!
답은 없다.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이번 펠칸 성 공략으로 인해 발키리 영지군도 병력 피해가 속출하고 있었다. 가르딘의 화를 돋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절대 놈들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게 놔두지 않을 생각이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괴롭혀줄 것이다.
까딱!
가르딘의 손가락 염장질이 다시 한 번 기염을 토했다. 보고 있던 네벨리언 공작이 화를 참지 못하고 나서려고 했다. 그때에 타이가라 공작이 먼저 나서며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쳐라!”
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가르딘을 향해 달려들었다. 세 명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 속으로 빠르게 쇄도하였다.
공간이 좁은 것은 가르딘도 마찬가지였다.
타이가라 공작은 일단 가르딘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네벨리언 공작이 나서려고 하는 것을 일부러 막았다. 우선은 실력을 확인하고 나서 공격을 하면 되었다. 굳이 가르딘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필요가 없었다.
사아악!
댕강!
달려드는 기사의 몸을 반토막으로 깔끔하게 잘라내 버린 가르딘이었다. 처음부터 오러블레이드를 사용하여 검과 동시에 갑옷까지 절단 내었다.
일검을 사용하고 난 후 빈틈을 파고드는 두 명의 기사가 가르딘의 왼쪽과 오른쪽을 공격하였다. 날이 예리하게 선 검이 가르딘의 갈비뼈 사이를 찔러 들어왔다. 가르딘은 그 즉시 한 걸음 내디뎠다.
“헛!”
순간적으로 가르딘의 신형이 앞으로 나아가자 목표물을 잃은 검은 허공을 찔렸다. 가르딘의 검이 좌에서 우로 빠르게 휘둘러졌다. 가슴과 가슴 사이가 베어지면서 시뻘건 핏물이 터져 나왔다. 피 한 방울이 가르딘의 뺨에 튀었다. 핏물이 묻은 가르딘의 시리도록 차가운 얼굴은 보는 이를 소름 돋게 만들기 충분했다.
커억!
마지막으로 가르딘의 검이 위로 솟아올랐다. 공중에서 공격하던 기사의 명치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이 모든 것이 한 호흡에 이루어졌다. 삽시간에 기사 네 명 이 목숨을 잃었다. 처음에 공격했던 기사들까지 일곱 명이 가르딘의 검에 죽었다. 너무 간결하고 쉬운 죽음이라 허무하기까지 했다.
“이놈!”
파팟!
네벨리언 공작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지면을 박찼다. 한 순간에 공간을 가르며 날아온 네벨리언 공작의 오러블레이드가 가르딘을 치고 들어왔다. 기사들을 처리하고 난 후 곧 바로 이어진 광속 같은 기습공격이었다.
차아아앙!
오러블레이드와 오러블레이드가 부딪쳤다. 막지 못할 것 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가르딘의 검이 어느새 네벨리언 공작의 검을 막아내었다. 순간적인 반응속도가 네벨리언 공작의 감각을 벗어나고 있었다.
주르륵!
오히려 반탄력을 느낀 네벨리언 공작이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났다. 기습공격을 하면서 아이언 검법의 절초인 아이언 임팩트(철격)를 사용하였다. 힘의 비중을 8할 이상 사용하고 나서도 뒤로 밀렸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네벨리언 공작의 시선이 다시 가르딘을 향했다.
씨익!
가르딘은 웃고 있었다.
네벨리언 공작은 가르딘이 비웃는다는 것을 알았다.
“감히 네놈 따위가 나를 비웃어! 갈가리 찢어 죽여주마!”
“말로는 뭘 못 해.”
가르딘의 이죽거림은 계속되었다. 어서 덤비라고 네벨리언 공작을 자극하고 있었다.
성질을 이기지 못한 네벨리언 공작의 얼굴은 흉신악살로 변해갔다. 이제까지 가르딘에게 당한 모든 것들이 네벨리언 공작의 심기를 자극했다.
“죽어랏!”
슈슈슈슉!
네벨리언 공작의 폭발적인 검격이 가르딘의 머리, 가슴, 배, 양어깨를 노리며 뻗어나갔다. 아이언 검법에 일렉트릭 검법의 빠름을 접목시킨 것이다. 무섭도록 빠른 검격에 피할 공간 따위는 없어 보였다.
가르딘의 신형이 좌에서 우로 반복적으로 몇 번 흔들렸다. 검격이 가르딘의 신형을 통과해 버리는 것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허공을 찌른 검격이 애꿎은 통로의 벽면을 강타했다.
꽈과과광!
단단한 벽면이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다. 네벨리언 공작은 가르딘의 속도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봤다. 순간 움직였던 모습이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가르딘이 아닌 것 같았다.
이번에는 가르딘이 먼저 움직였다. 바닥을 가볍게 차서 날아온 가르딘이 네벨리언 공작을 향해 검을 뻗었다.
네벨리언 공작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공격을 한 후임에도 불구하고 대처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과연 오러마스터다운 대응 속도였다.
‘응?’
팟!
가르딘이 날아오는 중간에 왼발로 옆 벽면을 차서 방향을 바꾸었다. 통로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공격이었다. 가르딘은 그 짧은 시간에 주변 환경을 이용하고 있었다.
“아니!”
미리 방어 자세를 취한 것이 실수였다. 가르딘이 왼손으로 검을 돌려 잡더니 네벨리언 공작의 목을 베어 들어왔다. 일반적인 기사들은 보통 주로 쓰는 손이 더 익숙하기 마련이건 만 가르딘은 그런 차이가 없었다.
“이얍!”
카캉!
있는 힘을 다해 몸을 틀어 가르딘의 공격을 막아낸 네벨리언 공작이었다. 순간 아찔한 광경을 경험했다. 검이 자신의 목 근처에까지 와본 경험은 이번의 거의 처음이었다. 잠깐 방심했다가 목이 잘릴 뻔했다. 아직 방심할 때는 아니었다.
가르딘의 신형이 어느새 네벨리언 공작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네벨리언 공작은 이어지는 공격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
“방심하면 쓰나.”
퍼퍽!
짧은 간격을 뚫고 가르딘의 주먹이 네벨리언 공작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한 대 맞은 순간 덜컥하는 충격을 받은 네벨리언 공작의 몸이 역으로 꺾였다. 주먹에 실린 오러가 네벨리언 공작의 내부를 흔들어놓았다.
“큭! 이런!”
가르딘이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렸다. 네벨리언 공작은 권격에 의한 충격으로 인해 검격을 방어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대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 판이다.
그때였다.
가르딘의 공격이 이어지는 찰나의 간격을 뚫고 누군가의 검이 뻗어 나왔다. 타이가라 공작이 다급하게 공격에 나선 것이다.
타이가라 공작은 설마 네벨리언 공작이 가르딘에게 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가르딘의 실력에 놀랄 틈이 없었다.
우선은 네벨리언 공작을 구하는 것이 먼저였다. 만약 네벨리언 공작이 어이 없이 죽게 되면 당장 가르딘을 상대하기 어렵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이 실패할 수도 있었다.
가르딘이 신형을 틀어 타이가라 공작의 오러블레이드를 비스듬히 쳐내었다.
카카카캉!
파팟!
그와 동시에 가르딘은 지면을 박차고 떠올라 반대편으로 착지했다. 타이가라 공작의 뒤에 서게 된 가르딘은 그 즉시 검을 출수하여 남아 있는 기사단을 몰살시켰다. 오러마스터의 굉장한 대결에 정신이 팔려 있는 상황이라 가르딘이 공격 할 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방비조차 하지 못하고 가르딘의 냉정한 검참에 베어져 나갔다.
덜! 덜! 덜!
기사들이 죽고 홀로 남겨진 베르사채가 몸을 떨었다. 도저히 상대할 엄두가 나지 많았다. 오금이 저려 다리가 풀려버렸다.
“살려... 커억!”
가르딘은 배신자를 살려두는 맘 좋은 기사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절대 외부로 흘러가서는 안 되었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살인멸구였다.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이 이끄는 기사 20명이 모두 죽어버렸다. 가르딘이 돌아서 남아 있는 두 공작을 보았다. 가르딘의 무표정한 눈빛이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의 기세를 위축시켰다.
두 공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가르딘을 노려보았다. 자신들의 공세를 피한 것도 부족해서 그 짧은 시간에 기사들까지 죽이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이제까지 알고 있는 가르딘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이 아는 한 가르딘은 이처럼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결론은 가르딘이 이제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실력을 숨겼구나!”
“그럼 멍청하게 실력을 다 까발려야 하나. 공작쯤 되면 그 정도 머리는 있어야지.”
실력을 숨기는 것은 당연하다. 제 실력을 누군가가 고스란히 알고 있다면 불리한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가르딘의 빈정거림이 비수처럼 날아가 두 공작의 가슴에 꽂혔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니 반박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화가 날 뿐이다.
자신들이 누구인가! 대륙 최강국 카이로만 제국의 5대 공작이다. 이제 막 후작이 된 놈이 수십 년간 제국의 기둥 역할을 한 자신들을 놀리고 있었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잠깐의 방심으로 기가 살았구나!”
네벨리언 공작은 가르딘의 실력을 인정했다. 그러나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방심해서 죽으면 죽는 게 아닌가.”
“이놈이 감히!”
“했던 말 또 하면 입만 아프지.”
부글! 부글!
가르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네벨리언 공작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제국의 공작 반열에 들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많은 업적과 공적을 쌓아야 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네벨리언 공작의 심기를 이토록 어지럽힐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가르딘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침착하시오! 네벨리언 공작! 놈이 우리를 격분시키기 위해 하는 수작이오!”
타이가라 공작은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지금까지 가르딘을 암살하기 위해 세븐다크를 보냈다. 세븐다크라면 당연히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지금 본 가르딘의 실력은 그저 운이 좋은 놈이 아니었다. 일이 계속 실패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 되었다. 적게 잡아도 동수, 아니면 그 이상일지 모른다. 이런 음흉한 놈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만만히 보지 맙시다. 우리의 목표는 1황자지 저놈이 아니지 않소!”
“끄응!”
네벨리언 공작이 흥분을 가라앉혔다. 타이가라 공작의 말이 맞았다. 이대로 놈의 수작에 계속 말려들어 봤자 손해였다.
“단숨에 죽여주마!”
“멧돼지처럼 흥분해서 더 날뛸 줄 알았건만 제법인데.”
“닥쳐랏!”
상대에 대한 예의 따위는 던져버린 지 오래인 가르딘이다. 공작이건 뭐건 간에 방해되는 존재에게 예의를 차려줄 가르딘이 아니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예의 차리는 놈이 있다면 그건 병신이었다.
타이가라 공작과 네벨리언 공작이 오러블레이드를 형성하여 가르딘을 포위하며 움직였다. 그들의 눈빛이 진지해 졌다.
그에 반해 가르딘은 처음과 같았다. 아직 그들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오러마스터 두 명이 합공하는데도 가르딘이 침착하다는 것을 말이다.
펠칸 성에 난입한 정체 모를 병사들의 공격에 당황하던 수비병들이 이제는 오히려 공격에 나서고 있었다. 이유는 성문을 두고 전투를 벌이는 전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엄청났다. 창과 검을 마음먹은 대로 휘둘러 적을 죽이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전투에 미친 전사들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 그 중심에 거대한 덩치를 가진 존재는 사위를 압도하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폭발적이고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그 앞에 선 적군은 불쌍할 따름이다.
푸아아앙! 크어어억!
투르의 창이 뻗어나갔다. 광천패황신공의 기운이 창끝에 서려 무서운 위력을 내었다. 폭풍처럼 회전하는 창의 거력은 집채만 한 바위도 단숨에 부숴버리는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창이 꿰뚫고 지나간 곳은 마력탄이 터진 것처럼 박살이 났다.
투르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던 병사 다섯 명이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창이 뻗어 나가는 곳마다 사람의 신체를 구분하기 힘들게 되었다. 삽시간에 40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잘 잘라 놓은 육편 덩어리로 화했다. 믿지 못할 괴력이었다. 전투에 이골이 난 병사들조차 그 모습에 흠칫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크하하하하! 다 죽인다!”
투르의 광포함과 즐거워하는 모습은 제정신처럼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투르를 따르는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들조차 즐겁다는 듯이 적을 도륙해 나가고 있었다. 전투를 위해 태어난 괴물들이었다.
그와 더불어 뒤를 받치고 있는 발키리 기사단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날카롭게 벼린 검은 정확하게 적의 심장을 갈라놓았다.
광포함과 냉정함이 적절하게 운용이 되고 있는 크레이지 드래곤 창기병과 발키리 기사단이었다. 그들의 활약이 펼쳐지자 전투가 유리하게 진행이 되었다.
펠칸 성 공략을 이끌고 있는 일급 어쌔신 사이몬은 전투가 힘겹게 돌아가는 것을 직감했다. 적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강했다. 일반 병사들의 실력도 너무 높았다. 우 선은 적들의 사기를 꺾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놈이다!’
사이본의 시야에 투르가 들어왔다. 아니, 들어올 수밖에 없다. 거대한 덩치는 물론 악마를 방불케 압도적인 괴력으로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사이몬이 동료에게 눈짓을 보냈다. 열 명의 어쌔신이 사이몬의 신호를 보고 투르를 향해 서서히 접근했다. 전투에 신경을 팔고 있는 놈이 어쌔신의 보이지 않는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합공하면 그 이상의 존재도 죽일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살며시 다가가 투르의 등에 검을 꽂아주면 되었다.
사사삭!
병사들 사이로 숨어 들어가 투르의 주위를 원으로 포진했다. 사이몬이 신호를 보내자 어쌔신이 투르의 시선을 끌었다. 투르의 창이 시선을 끄는 놈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퓨우웅!
바람을 뚫고 뻗어나간 창을 피할 수 없었던 어쌔신이었다. 순식간에 세 명의 어쌔신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검으로 막기는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검하고 같이 뚫려버리고 말았다. 시선을 끌기 위해 움직이다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사이몬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투르의 등 뒤로 다가가 검을 찔렸다. 동료의 죽음 따위는 사이몬에게 아무런 감흥도 없다. 다른 어쌔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탕! 부르르르!
필생의 여력을 담아 있는 힘껏 검을 찔렸다.
사이몬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일그러졌다. 인간인 이상 검을 찌르면 살을 파고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쇳소리가 나면서 오히려 검이 튕겨 나왔다. 함께 검을 찔렸던 어쌔신들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씨익!
“멍청하긴.”
누구보고 멍청하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투르가 광포한 미소를 짓더니 거침없이 주먹을 뒤로 휘둘렀다. 풍차가 회오리를 만들어내는 듯한 폭풍 같은 휘두름이었다.
퍼어억! 빠각!
사이몬의 안면이 투르의 주먹을 맞고 함몰되어 버렸다.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굴이 부서져 죽어버렸다.
투르의 시선이 남겨진 어쌔신들에게 향했다. 큰 덩치에는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빠른 투르였다. 어느새 투르의 큼지막한 손에 어쌔신의 머리가 잡혔다. 웬만한 장정보다 큰 어쌔신이 한 손에 머리가 잡혀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어쌔신은 빠져나가기 위해 버둥거렸다.
버둥! 버둥!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투르의 아귀힘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손아귀에 힘이 가해지자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머리통이 으그러져 갔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한 장면이었다.
우드드득!
“아아아아악!”
살벌함의 극치가 벌어졌다. 인간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바스러트리다니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어쌔신은 머리통이 부서지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성안이 떠나가라 질러대는 비명이었다. 곁에 있던 병사들의 표정이 시퍼렇게 질려가고 있었다.
“괴물이다!”
과연 인간괴물이라고 불릴 만한 괴력을 보여준 투르였다. 하지만 그 말을 한 병사는 실수를 한 것이다. 투르가 듣기 싫어하는 단어 중에 하나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투르는 손아귀에 쥐고 있던 어쌔신을 있는 힘껏 던져버렸다.
휘이익! 투다다다당!
멍청하게 보고 있던 병사들 열 명이 서 있다가 무섭게 날아오는 어쌔신으로 인해 사방으로 쓰러져 버렸다. 삽시간에 열 명이 바닥에 쓰러졌고, 그 중심에 있던 병사는 어쌔신과 같이 엎어져서 다시 세상 불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투르는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라이크!’
원하던 목표물과 함께 열 명을 쓰러뜨렸다. 점수는 10점이고, 다음번에 또다시 열 명을 쓰러뜨리면 30점이 된다.
펠칸 성의 성벽 위를 사수하고 있는 필리언 역시 병력을 적절하게 통제하여 적군이 성문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지원공격을 해나갔다. 성벽 위로 거칠게 올라오는 놈들을 단숨에 베어 넘기는 필리언의 놀라운 실력은 병사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성문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마구 쏴라!”
슈슈슈슝! 슈슈슈슝!
“돌을 던져라! 지렛대를 이용해서 사다리를 밀어버려!”
필리언은 되도록 마법사들을 보호하면서 적군이 성벽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 적군이 모두 펠칸 성에 들어오면 곤란했다. 우선은 병력이 집중하지 못하도록 혼전상태로 유도하는 것이 먼저였다. 이미 들어온 병력은 투르와 발키리 기사단에게 온전히 맡겼다.
‘응?’
필리언의 감각에 희미한 기운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암중에 흘러나오는 기세가 생각 이상으로 강렬했다. 어둠을 투영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은신술을 보여주었다.
팟!
바람을 차는 소리가 들리자 필리언의 가슴을 노리며 검이 날아왔다. 검은 검게 칠해져 있어 제대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필리언의 검이 번개처럼 두 번 출수 되었다.
타탕!
단검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 단검을 던짐과 동시에 뒤를 이어 또다시 단검을 던진 것이다. 날아오는 단검을 막고 안심하는 찰나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암수였다.
필리언이 침착하게 대응하자 공간을 뚫고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는 예상보다 뛰어난 필리언의 실력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제법이군. 그러... 헛!”
그림자가 미처 말하기도 전에 필리언이 떨어져 있는 단검을 집어서 날렸다. 필리언은 적과 말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시답지 않은 말을 하기 전에 검을 날리는 것이 필리언과 동기들의 습성이다.
단검을 던지고 나서 돌진한 필리언이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적을 죽이기 위한 살검을 마구 뿌렸다.
휘이잉! 카카캉!
검음이 세 번 울렸다.
그림자가 다급하게 대응하며 필리언의 검을 간신히 막아 내었다. 어찌나 빠른지 한순간 긴장이 풀리면 죽을 수도 있었다.
‘제법 센데.’
필리언은 생각을 하기 전에 검을 먼저 뻗었다. 그림자 역시도 예상보다 강했다. 단검을 던지고 나서 휘두른 검격을 어찌 되었건 막아낸 것이다. 잠깐이지만 필리언도 강력한 일검을 발휘하였다.
필리언을 암습한 그림자는 뒤로 하염없이 밀리고 있었다. 필리언의 파상공세가 그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일단 승기를 잡은 이상 놓치지 않고 밀어붙이는 필리언이었다. 만만치 않은 공격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았다.
‘뭐냐? 이놈은?’
보통 기사가 아니었다.
그림자 역시 보통 어쌔신이 아니다. 그는 어쌔신 길드의 세븐다크 중에 서열 2위인 샤이닝다크 오브레임이었다.
그는 펠칸 성의 공략이 어렵게 흘러가자 그 중심에 있는 놈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성문에서 전투를 벌이는 투르도 신경이 쓰이지만 성벽 위에서 진입을 가로막는 필리언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암습을 가하였다.
그러나 이제까지 실패한 적 없는 2연격의 암격이 너무 쉽게 막혔다. 대응한 즉시 공격해 오는 필리언의 실력은 그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까딱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검격이었다.
차차창!
계속 밀리다 보면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브레임은 어쩔 수 없이 절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샤이닝다크라는 별호가 붙은 이유 중에 하나인 그만의 절기였다.
-다크섀도 라이트닝(암영광).
화아악!
번쩍이는 섬광이 일시에 필리언의 시야를 가렸다. 섬광을 능가하는 빛의 세기였다. 일시적으로 시야를 가리기에 충분한 효과를 가졌다. 강렬한 빛은 시력에 문제를 일으켜 새하얀 것만 보이게 만든다. 그렇기에 대처하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고수들 간의 대결에서 잠깐의 흔들림은 목숨과 직결된다.
오브레임이 빛으로 만든 그림자 속에 스며들어 필리언의 사각지역으로 이동했다.
사사사삭!
어둠을 가르며 이동한 오브레임의 다크소드가 필리언의 등 뒤 가슴 부분을 노리며 뻗어나갔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필리언이 방어할 것이라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푸우욱!
“허억!”
오브레임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졌다. 분명 다크섀도 라이트닝에 당한 것을 확인했다.
“어떻게......?”
필리언이 등을 돌린 채 오브레임의 복부를 검으로 찔러 넣었다. 검을 찌른 상태에서 비스듬히 돌려 적의 허리를 반 이상 잘라내었다. 어쌔신들은 방심하는 순간에 또다시 공격할 수 있었다. 확실하게 목숨을 끊어놓아야 안심이었다.
허리가 잘려 죽은 오브레임은 여전히 믿을 수 없기에 눈을 감지 못했다.
주르륵!
필리언의 이마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위험했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공세를 펼치는 와중에 갑자기 빛이 번쩍였다. 그렇다고 눈을 감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삽시간에 눈에 들어온 빛으로 인해 시야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만약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휘청거렸다면 죽는 것은 오브레임이 아니라 필리언이었을 것이다. 가르딘과 함께한 감각수련이 정말 도움이 되었다.
뜻하지 않는 일에 도움을 받은 필리언은 감사보다는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이걸 말하면 어찌 나올지 뻔하겠지.’
가르딘에게는 죽어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녀석이 우쭐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싫었다. 이건 진심이다.
“그보다 이놈은 도대체 뭐야?”
어쌔신 중 정면 대결에서 이토록 강한 놈은 처음 보았다. 일대일 대결이라고 해도 승부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 한 실력을 보유하였다. 필리언은 오브레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몸을 뒤졌다.
각종 무기가산더미처럼 나왔다. 몸에 뭐가 그렇게 많은지 걸어 다니는 무기창고였다.
“호오!”
마법 아이템 같은 것을 발견했다. 필리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득템한 것을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다. 나중에 쓸모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필리언이 습득한 물건이 샤이닝다크 오브레임의 가장 중요한 무기다. 바로 조금 전에 빛을 뿜어 낸 장치였다. 오러를 주입하고, 주문을 영창하면 순간적으로 빛이 뿜어져 나 가 상대방의 시야를 멀게 만든다.
투과과광!
좁은 통로의 중간 부분이 움푹 들어갔다. 오러가 휘날리며 부딪치자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나가고 있었다. 폭음과 폭음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살벌한 검격 속에 목숨을 건 대결이 벌어졌다.
타아앙!
가르딘의 매서운 검강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가 타이가라 공작의 옆구리를 노렸다. 타이가라 공작이 최선을 다해 오러블레이드를 휘둘러야 간신히 막을 수가 있었다. 네벨리언 공작과의 혈전 중에 벌어진 기습적인 공격이었다. 타이 가라 공작이 한눈을 팔았다면 그 자리에서 허리가 잘려 나갔을 것이다.
네벨리언 공작이 그 틈에 가르딘의 왼쪽을 노리며 검을 찔렀다. 가르딘이 여유롭게 옆으로 물러서며 네벨리언 공작의 오러블레이드를 아래서 위로 쳐올렸다.
카아앙!
충격을 받은 네벨리언 공작이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서야 했다.
합공을 시작하고 30합이 넘어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승기를 잡지 못한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도무지 뚫을 수가 없는 철벽을 마주한 것 같았다. 간간이 터져 나오는 가르딘의 벼락같은 검강에 역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있었다.
네벨리언 공작의 실력은 제국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다. 더군다나 타이가라 공작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이제까지 알려진 실력보다 더한 실력을 발휘하는 타이가라 공작이었지만 승기를 잡기는커녕 밀리고 있었다.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땀이 흐르는 두 공작과는 다르게 가르딘은 땀 한 방울 흐르지 않고 있었다.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가르딘의 안정된 모습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말도 안 된다!”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몰라서 묻는 거냐.”
“너는 가르딘이 아니다! 그놈이 이토록 강할 리 없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
“네놈은 절대 가르딘이 아니다!”
네벨리언 공작은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가르딘의 비아냥거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왜, 그전까지는 만만해서 자꾸 건드리셨나. 가만히 있는 사람 계속 건드리니까 일이 이 지경까지 되는 거야! 옛말에 얌전하고 선량한 사람 건드리면 벌 받는다는 좋은 말도 있지. 오늘 날 건드린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주지.”
누가 얌전하고 선량한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웃기지 마라! 아직 우리는 지지 않았다! 네놈이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보느냐!”
“훗!”
가르딘은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제까지 봐줬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겠지.”
“우리를 농락하지 마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지 마라!”
“그래, 그래. 그렇게 마음먹는 게 정신건강에는 좋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치부해 버리는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이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봐주면서 자신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는 것을 어찌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없었다. 최강의 기사라고 불리는 파스트론 공작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알게 될 거야. 조금 강하게 나갈 테니 막 을 수 있으면 막아봐라.”
“자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나는 좀 찔러도 돼. 곧 너희들도 인정하게 될 테니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더 듣는 것도 여기까지다!”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도 숨겨놓은 최강의 절초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그렇게 되면 가르딘이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움찔!
가르딘의 기세가 바뀌었다.
살벌한 기세와는 다른 압도적인 위압감에 뿜어져 나갔다. 기세를 받은 두 공작은 가르딘의 말이 사실일지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가르딘은 일부러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을 농락하며 가지고 놀았다. 지금까지 당한 것이 분해서 분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한 것을 인정하고 용서하는 대인배하고는 거리가 먼 가르딘이다. 지금부터는 비참함 끝에 몸부림치다 죽는 일만 남았다.
척!
가르딘이 검을 집어넣었다. 발검을 위한 자세를 취했다. 일검에 승부를 내겠다는 의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그저 한 번 보여줄 작정이었다. 가르딘의 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겪어봐야 한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다 죽게 될 자들을 위해서 보여주었다.
가르딘의 자세에 두 공작이 방어 자세를 취했다. 발검은 일단 막고 나면 그 뒤로 반격하기 쉽다. 두 공작은 뻔히 보이는 수작에 당할 리 없다고 믿었다.
“그따위 발검이 통하리라 생각하는가!”
“발검이 막히고 나서 너는 죽을 것이다!”
“예상대로 할 테니 어디 막아보시지.”
휘이잉!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가르딘의 검이 뽑혀 나가 휘둘러진 상태다. 언제 검을 뽑았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검이 휘둘러져서 형성된 엄청난 풍압에 기운이 서려 있었다. 바람의 기운이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의 신형을 훑고 지나갔다. 윈드커터(풍인)와는 본질적으로 위력이 달랐다.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막을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커억!”
주르르륵!
네벨리언 공작은 가르딘의 발검이 시작되는 순간 아이언 윌(철벽)을 형성시켰다. 타이가라 공작도 네벨리언 공작의 오러막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눈앞에서 빛이 번쩍하며 벼락같은 기운과 부딪치자 아이언윌은 산산조각 났다. 수만 개의 칼날이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입고 있던 갑옷들이 잘게 잘려 나가면서 조각조각 부서졌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핏물이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압도적인 위력을 실감한 두 공작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전신에 핏물이 흘러 붉게 물들었다. 겉으로 보면 상처가 심한 것 같지만 실상은 살이 조금 베인 것뿐이었다.
문제는 가르딘이 보인 압도적인 위력의 검격을 다시 막아 낼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사실 당하고 나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건 인간의 검술이 아닌 것 같았다. 어찌 인간이 오러막을 종잇장 찢듯이 잘라버릴 수 있단 말인가!
상식 밖의 검술에 두 공작은 절망감을 느꼈다. 생애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것을 맛보아야 했다.
“말도 안 돼!”
“안 되긴. 말했잖아.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라고.”
“너...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이럴 수는 없다!”
“멀쩡한 사람을 괴물 취급하면 안 되지. 어때, 지금도 날 죽이고 싶나?”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은 가르딘을 죽일 수 있다는 마음이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였다. 저런 괴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괜히 건드려서 모든 것이 허물어졌다. 이번 계획은 완벽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가르딘이었다.
덜! 덜! 덜!
명색이 오러마스터가 가르딘의 신위에 몸을 떨었다.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이 먼저 들었다. 단 일검조차 막지 못하다니 상식적으로 이해불가였다.
저벅! 저벅!
가르딘이 검집에 검을 넣고 두 공작에게 걸어갔다. 주춤거리며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이었다.
네벨리언 공작은 이를 악물었다. 상대가 괴물이건 아니건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얍!”
“반항해도 좋아.”
가르딘은 상관하지 않았다.
네벨리언 공작이 혼신의 힘을 실은 검을 출수하였다. 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오러를 검에 담았다. 검에 오러블레이드가 솟아 나와 가르딘의 가슴을 노렸다. 가르딘은 오러블레이드가 다가옴에도 피하지 않았다.
착!
잡았다.
가르딘이 오러블레이드를 맨손으로 잡았다. 네벨리언 공작이 있는 힘을 다해도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무 어이가 없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가르딘은 오러블레이드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네벨리언 공작이 맥없이 딸려 들어왔다. 가르딘의 주먹이 네벨리언 공작의 배를 치고, 다시 위로 솟구쳐 턱을 강타했다.
퍼억! 철퍼덕!
네벨리언 공작의 신형이 위로 솟구치다 통로의 천장에 맞고 바닥에 꼴사납게 쓰러졌다. 가르딘의 주먹에 실린 힘은 바위도 산산조각 낼 수 있었다. 천룡무상진기가 운용이 된 이상 맞는 순간 전신의 뼈가 으스러졌을 것이다.
꿈틀! 꿈틀!
네벨리언 공작은 숨이 붙어 있는지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가르딘이 죽지 않을 정도로 주먹을 날렸기 때문이다.
‘모두가 속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타이가라 공작은 도주해야겠다는 욕망을 느꼈다.
가르딘의 정체를 다마트 황자에게 알려야 한다. 이자는 인간의 능력으로 막아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만약 대업이 실패한다면 가르딘 때문일 것이라 직감했다. 대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가르딘의 존재를 반드시 알려야 한다.
“왜? 도망치게?”
가르딘은 타이가라 공작의 마음이 보였다.
“이놈! 죽어랏!”
타이가라 공작이 가슴에 숨겨둔 마력탄을 집어 던졌다. 통로의 비좁은 거리라면 가르딘이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꽈아아앙!
통로 안을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력탄이 터지면서 굉장한 위력을 분출시켰다. 그 틈에 타이가라 공작이 도주하기 위해 지면을 박찼다. 잘못하면 통로에 같이 파묻힐 수도 있었다.
꽈악!
마력탄이 터지면서 일어난 먼지 사이로 손이 뻗어 나와 도주하려 던 타이가라 공작의 발목을 잡아챘다.
“아니?”
뿌드득!
“으으윽!”
쥐어진 손아귀 힘에 발목이 부스러져 나갔다. 타이가라 공작은 달려 나가다가 갑작스럽게 뒤로 끌려가면서 벽면에 후려쳐졌다. 채찍이 휘둘러지는 것과 같이 몸이 벽면에 쿵! 부딪혔다.
“크으으!”
그 상태로 아무렇게나 던져져 네벨리언 공작의 옆으로 날아갔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네벨리언 공작이었다. 마력탄이 터지면서 가르딘과 같이 죽었어야 할 네벨리언 공작이 살아 있고, 통로 역시 멀쩡했다.
먼지 속에 가려진 가르딘의 신형이 드러났다.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가르딘이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타이가라 공작은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마력탄의 위력을 정면으로 맞고 멀쩡한 존재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었다.
“어떻게......?”
고통보다 이유가 더 궁금한 타이가라 공작이었다. 가르딘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럴 때는 누구보다 친절했다.
마력탄이 터지는 순간 가르딘은 기운을 뿜어내어 공간을 차단해 버렸다. 마력탄은 가르딘이 형성한 둥그런 기운에 휩싸여 폭발하고 말았다. 결국 마력탄의 위력은 가르딘이 만들어놓은 기운 안에 갇혀 소멸해 버렸다.
“말...도 안 돼?”
“했던 말 또 하면 지겹다고 했지.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가르딘은 두 공작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없이 밟았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이 개자식들아! 네놈들 때문에 개고생한 걸 생각하면! 으득!”
하면 할수록 열 받는 성격을 가진 가르딘이었다. 화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쌓여가고 있었다. 제국의 공작이 가르딘의 발길질에 맞아서 죽어가고 있었다.
한참을 맞은 두 공작은 기력이 거의 다해 갔다.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가르딘을 원독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토록 맞았으면서도 굴복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독종들이었다. 아니면 마지막 남은 공작으로서의 자존심일지 몰랐다.
가르딘이 끝으로 물었다.
“하고 싶은 말 있나?”
“황...자 전하께서 네놈을 응...징할 것이다!”
“이걸 어쩌지? 그것도 네놈들이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나는 너희들이 이곳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리지 않을 생각이거든. 그럼 누가 너희들을 죽였을지 어떻게 알지. 내가 왜 아무도 모르게 이곳까지 왔을지 생각해 봤어야지. 안 그래!”
“그...런”
“악...독한!”
살아 있는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겠다는 가르딘의 선언이었다.
다마트 황자가 명령을 내렸으니 그는 알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이 사라지면 원인을 따지기 힘들어진다. 가르딘이 일부러 인적이 드문 이곳까지 유인한 것은 앞으로의 일까지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기에 가르딘이 한 일이 영원히 묻힐 수 있었다.
죽어가는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은 가르딘의 지독한 심계에 소름이 돋았다. 왜 지금까지 가르딘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는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를 건드리고 만 것이다.
“내 행복의 근원을 건드리는 놈들은 절대 가만두지 않아! 이제 그만 죽어줘야겠다.”
가르딘의 검이 가차 없이 휘둘러졌다.
휙! 휙!
털썩!
타이가라 공작과 네벨리언 공작의 목을 잘라내었다. 가르딘은 한순간 망설여 일을 귀찮게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제국의 5대 공작 중에 두 명이 가르딘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참으로 허망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괜히 괴물을 건드리는 바람에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말았다.
가르딘은 죽은 두 공작을 삼매진화를 사용하여 태웠다.
사람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기 위해서는 보통의 불로는 어림도 없다. 천룡무상신공의 초열기공을 운용하여 삼매진화에 힘을 보탰다.
불길의 세기는 붉은색이 가장 낮고, 푸른색이 그다음, 가장 높은 온도가 바로 백색이다.
불길은 헬 파이어(지옥의 불길)와 맞먹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초열지옥과 같은 열기가 통로 안을 뜨겁게 달구었다. 삽시간에 통로 안에 있던 시체들이 모두 타올라서 가루가 되어버리고 있었다. 핏물과 수분은 한순간에 모두 다 증발되었다.
남은 것은 가루뿐이다. 가르딘이 손으로 획 흔들자 바람이 형성되어 가루들이 날아가 버렸다.
“통로도 지워야겠지.”
통로에 남겨진 흔적으로 인해 귀찮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한 톨의 의심도 남기지 않고 모든 증거를 소멸시켜 버렸다. 완전범죄를 지향하는 가르딘이었다. 범죄수사에서 가르딘은 가장 잡기 힘든 사람일지 몰랐다.
뭐, 잡혀도 그랜드마스터를 지들이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다.
펠칸 성의 심처에 있던 러쉬 황자는 갑작스러운 소란에 잠이 깼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일어서기가 무섭게 기사들이 들어왔다. 발키리 기사단이 러쉬 황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달려온 것이다. 사이론과 고트가 가르딘의 명령에 따라 기사단을 이끌고 왔다.
“무슨 일인가?”
“적이 침입했습니다. 황자님은 우선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셔야 합니다.”
“그럴 수 없다. 적이 침입했다 하여 나 혼자 피할 수는 없느니라!”
“적은 가르딘 후작이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장은 황자님의 안위가 중요합니다.”
가르딘은 최우선으로 황자를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도록 명령했다. 펠칸 성에 침입한 놈들이 노리는 것이 러쉬 황자였다. 황자가 죽는다면 이번 전쟁의 책임을 가르딘이 물어야 할 것이다. 펠칸 성의 사수보다 중요한 것이 러쉬 황자의 목숨이었다.
러쉬 황자의 심처에는 당연히 비밀 방이 있다. 방은 견고 한 철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법 방어진까지 설치가 되어 있다. 더군다나 안에서 잠근 것을 풀지 않는 이상 절대 열 수 없게 되어 있다.
드르륵!
벽면의 장식된 장식 중에 하나를 잡자 철문이 열렸다. 기관장치로 이루어진 문이었다. 열린 문으로 러쉬 황자가 들어갔다.
“저희들은 여기서 문을 지키겠습니다.”
“펠칸 성을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사수할 것입니다.”
러쉬 황자는 침통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이곳을 공략할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 적의 숨겨진 병력을 계산하지 못 한 실수였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병사들이 희생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러쉬 황자로서는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곳에서 죽게 되면 전쟁은 명분을 잃게 된다. 작은 것에 연연하다 큰 것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가르딘 후작을 믿어야만 했다.
러쉬 황자가 방으로 들어가고 난 후 고트와 사이론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펠칸 성 침입이 있은 후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도 전투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주님이 명하신 일이네. 우리는 그저 믿고 따르면 되네.”
고트는 가르딘을 믿고 있었다. 가르딘의 말이라면 어떤 말이든 따를 것이다. 사이론도 가르딘의 못 미더운 부분을 알지만 믿고는 있었다. 가끔씩 보여주는 가공할 능력은 사이론조차도 떨리게 만들었다. 과연 어떤 모습이 진실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가르딘이 막지 못한 적을 자신들이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보지 않는다. 만약 패한다면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한다. 물론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적과 함께 죽을 수 있다면 만족했다.
사이론과 고트가 얘기를 주고받을 때 소리가 들려왔다.
쩌저저적!
문짝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은 한 개뿐이다.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문에 새하얀 서리가 생기더니 급속하게 얼어버렸다. 극한의 냉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냉기를 버티지 못한 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냉각된 문이 부서지기 무섭게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문이 부서지고 난 후 안으로 누군가 걸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선이 가늘고 창백한 안색에 푸른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청년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다만 서늘한 눈빛은 북해의 추운 겨울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침입 한 것이냐?”
“곧 죽을 놈들이 말이 많군.”
침중하게 가라앉은 낮은 톤의 목소리가 고트와 사이론은 물론 기사들까지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평범한 놈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고트와 사이론이 눈짓을 보내자 기사단이 방어진형을 구축했다.
“러쉬 황자는 어디 있나?”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제법 강단이 있어 보이지만 곧 울며불며 매달리게 될 거다.”
신경을 거슬리는 말에도 불구하고 사이론과 고트는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자를 상대할 때 도발에 반응하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 된다.
발키리 기사단은 모두 현운심법을 운용하여 만반의 준비를 했다. 언제 어떻게 덤벼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푸른 머리카락을 지닌 청년은 세븐다크의 수장인 아이스다크 슬로쳐였다. 여린 얼굴과는 다르게 그는 잔인한 본성을 지닌 학살자였다. 타이가라 공작과 네벨리언 공작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러쉬 황자를 잡기 위해 나타났다.
꿈틀거리는 살인에 대한 본성이 슬로쳐의 뇌리를 장악하자 기운이 다시 한 번 변했다. 파괴적인 속성을 가진 얼음의 살인자로 돌아왔다. 오랜만의 전율이라 슬로쳐는 약간 흥분한 기색이었다.
찌릿! 찌릿!
슬로쳐의 몸에서 뻗어나가는 살기가 사이론과 고트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한두 명 죽여본 자의 살기가 아니었다. 수많은 목숨을 죽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살기였다.
‘이자는 위험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죽는다!’
고트와 사이론, 기사단은 검의 그립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슬로쳐가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그 순간 얼음으로 된 50여 발의 창이 날아왔다. 슬로쳐의 비기 중에 하나인 아이스 랜스(얼음창)였다. 대기 중에 분포 되어 있는 미세한 수분을 급속하게 얼려 얼음창을 만들어 날 릴 수 있었다.
얼음창은 보통 얼음과는 차원이 달랐다. 얼음을 중첩하고 압력을 가하여 단단함과 예리함이 명검을 능가했다.
슈슈슈슈슉!
날아오는 아이스 랜스는 굉장히 빨랐다. 고트와 사이론을 비롯한 기사들 대부분이 익스퍼트 중급에 다다라 있었다. 그런데도 방심할 수 없을 정도였다.
타타타타타탕!
사이론과 고트가 오러를 형성하여 아이스 랜스를 막아내었다. 이 정도에 당할 정도로 만만하지 않았다. 발키리 기사단도 침착하게 대응하며 아이스 랜스를 검으로 쳐냈다. 아이스 랜스와 부딪치자 충격이 상당했다.
슬로쳐의 신형이 빙판을 미끄러지듯이 유령처럼 이동했다. 기사단이 구축한 방어진형의 왼쪽 사각지역에서 공격의 물고를 트고 있었다. 슬로쳐의 몸에서 스산한 한기가 순식간에 퍼져 나왔다.
-아이스 스페이스 홀드(공간장악).
반경 5미터 안을 냉기로 가득 메울 수 있는 슬로쳐의 비기였다. 사람은 몸이 춥게 되면 활동량이 줄어들고, 행동반경이 좁아진다.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게 되어 반사신경을 마비시킨다.
한기는 생각 이상으로 차가웠다. 현운심공을 운용하여 한기를 몰아내려고 해도 쉽사리 극복하지 못했다. 손발의 감각이 급속도로 무뎌지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공간을 장악한 슬로쳐가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이스 임팩트(빙격).
극한의 한기가 휘몰아치는 공격이었다. 슬로쳐는 한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발키리 기사단을 괴롭혔다. 슬로쳐의 정면에 서 있던 키드가 둔해진 몸으로 인해 방어를 하지 못하고 충격을 받았다.
쿠쿵!
방어진형이 흐트러지면서 키드를 도와주기 위해 움직였던 샤이나크가 슬로쳐의 날카로운 아이스 핑거(얼음손톱)에 등판이 찢겨져 나갔다. 단단한 갑옷을 예리하게 베어내었다.
샤이나크가 핏물을 흘리며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기에는 상처가 너무 컸다. 슬로쳐의 신형을 따라가기에 무척이나 버거운 상황이 되었다. 특히 슬로쳐가 뿜어내는 한기에 다가갈수록 추위는 더 혹독했다.
슬로쳐가 덤벼드는 고트와 사이론에게 아이스 소드(얼음 칼)를 마구 날렸다. 10여 개의 얼음 칼날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는 거침없이 잘려 나갔다.
사이론과 고트의 행동을 저지시키고 난 후 바로 발키리 기사단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발키리 기사단도 안간힘을 다 쓰고 있기에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상처를 입은 기사는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고 있어야 했다.
“젠장!”
-패스트검법-극한오의-일루젼 스트라이크(환영검).
사이론이 참지 못하고 최강의 절초를 사용하였다. 그동안 성취가 높아져 이제는 25개의 환영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눈앞을 어지럽히는 환검이 슬로쳐의 시야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에 타격을 받을 슬로쳐가 아니었다. 그 즉시 아이스 실드(빙막)을 만들어 사이론의 공격을 방어하고 뒤로 빠졌다.
그때였다. 사이론이 슬로쳐를 공격하는 사이에 고트가 슬로쳐의 동선을 파악하고 검을 뻗었다. 이제까지 벼리고 벼린 날카로운 검격이 슬로쳐를 노리고 들어갔다.
타아아앙!
주르르륵!
고트의 신형이 흔들리며 뒤로 밀려 나갔다. 슬로쳐가 형성한 공간장악 능력이 예상보다 더 강했다. 고트의 검격이 흔들리면서 제대로 된 위력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슬로쳐의 눈빛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기습공격에 방비하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단단한 얼음벽을 형성하여 막기는 했지만 손바닥 언저리에 작은 상흔이 생겼다. 핏물이 손바닥을 타고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피를 보자 슬로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조무래기들을 상대하는데 피를 본 것에 화가 난 것이다.
“곱게 죽이지 않겠다!”
화가 난 슬로쳐의 맹공이 펼쳐졌다. 인정사정없는 파괴적인 공격에 발키리 기사단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열 명 중에 멀쩡히 서 있는 것은 고트와 사이론, 그리고 두 명의 기사들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쓰러져서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고트와 사이론마저 쓰러지면 슬로쳐가 어찌 나올지 뻔했다.
[죽겠다]
[허억! 허억! 그건 내가 할 말이네.]
승산이 없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사이론과 고트였다. 상대는 최소한 마스터 급의 존재였다. 어디서 이런 자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여겼다.
퍼퍼펑!
슬로쳐가 날린 얼음구체가 검과 부딪치자 폭발을 일으키며 얼음조각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슬로쳐의 아이스붐(빙폭)이었다. 얼음에 충격이 닿으면 터지도록 되어 있었다. 터지면서 일어난 가속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으윽!”
얼음조각이 몸에 박혔다.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사이론과 고트는 슬로쳐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슬로쳐가 잔인한 혈성을 드러내었다. 입가에 저미는 웃음이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황자는 어딨나?”
“모...른다!”
“상관없다. 어차피 이곳 어딘가에 있을 테니 말이냐! 하지만 날 화나게 했으니 얼려 죽여주겠다.”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기에 노출이 되어버린 사이론과 고트였다. 슬로쳐는 얼어가는 사이론과 고트를 보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살인에 대한 변태적인 쾌감을 즐기고 있었다.
고트와 사이론은 죽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추운 것이 도가 넘어가자 미칠 것 같은 고통이 전신을 지배했다. 전신이 모조리 갈라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크으으윽!”
신음성을 참으려고 해도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고트와 사이론이었다.
“더욱더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러라! 크하하하하!”
휘이잉!
바람이 불었다. 주변을 장악하던 한기가 바람으로 인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슬로쳐는 황당한 듯이 정문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모습을 드러낸 것 같은데 보이지 않았다. 한순간에 공간장악을 소멸해 버린 것이 이상할 따름이었다.
“뭐냐?”
“어딜 보지?”
휙!
어느새 등 뒤를 점령한 누군가가 있었다.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다만, 고통에 몸부림치던 고트와 사이론이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마치 슬로쳐를 보며 ‘넌 죽었다!’ 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든든한 후원군이 등장 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슬로쳐는 믿을 수가 없는 표정이었다.
‘언제?’
어쌔신은 기운에 민감한 존재였다. 어쌔신 마스터라고 불리는 자신이 등 뒤를 점령당하는 동안 느끼지도 못했다는 것이 어떻게 말이 될 수 있는가!
돌아서기에는 너무 늦었다. 놈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돌아서는 순간 놈이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다.
‘공간장악을 시용하는 즉시 거리를 벌리며 떨어뜨려야 한다.’
슬로쳐가 신중하게 생각을 정리하더니 순간적으로 한기를 발산했다. 그 즉시 놈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이스 스텝을 사용하였다. 한순간에 놈과의 거리를 벌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까지 놈은 공격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을 것이라 슬로쳐는 단정했다. 혹한의 냉기는 일시적으로 몸을 마비시키는 효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권에서 벗어난 슬로쳐가 놈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돌아서는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놈은 공격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가르딘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슬로쳐를 쳐다보았다. 마치 혼자서 꼴값 떠는 것처럼 보았다.
“뭐 하냐.”
“이...놈!”
혼자서 헛지랄한 것으로 전락해 버린 슬로쳐는 자존심이 상했다.
가르딘은 화가 난 슬로쳐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공간에서 치료 포션을 꺼냈다. 때마침 안젤리카가 치료 포션을 개발한 것이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쓰러진 기사단 모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그나마 고트와 사이론이 제일 멀쩡했다. 얼기 직전이라 조금만 녹여주면 되었다. 가르딘이 치료 포션과 함께 열기를 제공하자 금세 활력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 둘에게 나머지 기사를 치료하라고 했다.
“이놈! 감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스윽!
주춤!
가르딘의 무심한 눈이 슬로쳐의 심령을 건드렸다. 슬로쳐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치며 물러서야 했다. 이 정도의 압박을 받은 적은 슬로쳐를 키워낸 다크로드를 마주했을 때뿐이었다.
슬로쳐는 애써 부정했다. 다크로드는 그의 주인이자 암흑의 지배자였다. 가르딘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가르딘이 기사들을 치료하는 동안 가만히 있었던 슬로쳐였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감지했었던 것이다. 마치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 같았다.
“넌... 누구냐?”
“알 것 없고, 그보다 어째서 3황자 진영에 어쌔신들이 이렇게 많이 있지? 지금까지 나를 공격한 것이 모두 어쌔신들이었는데 말이야.”
슬로쳐는 눈앞의 존재가 가르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어쌔신 길드에서 실패한 의뢰는 가르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살아 있는 존재라면 당연히 가르딘 후작뿐이다.
가르딘은 의문이 들었다. 어쌔신은 소수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대규모 병력 단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모든 어쌔신들이 펠칸 성을 공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의문은 들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이들의 존재가 어쌔신이라고 해도 3황자와 연관이 됐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그저 의뢰를 했다는 것 정도다.
‘이것들이 머리 복잡하게 만드네.’
가르딘을 죽이기 위해서 세븐다크 중 다섯 명 이 투입되었다. 결과는 세븐다크의 죽음이었다.
슬로쳐는 그로 인해 다크로드의 분노를 받아야 했다. 이번 일에 직접 참여한 것도 다크로드에게 다시 신임을 얻기 위해 서였다. 슬로쳐로서는 가르딘을 반드시 죽여야 했다. 어떤 방법을 쓰든 죽여야 하는 숙적이었다.
“죽인다!”
“뭐? 잘 못 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해 봐라!”
“죽여버리겠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게 맘대로 될까.”
슬로쳐의 내공심법은 냉기를 기반으로 둔다. 오랜 시간 혹한의 기운을 흡입해서 이루어낸 것이다. 혹한은 인간이 버티기 어려운 조건을 형성한다. 극악한 환경에서 얻어낸 것이니 만큼 자부심이 대단했다. 슬로쳐는 결코 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스 스페이스 홀드를 최대한으로 뿜어내었다. 한 걸음만 공간 안으로 들어와도 모든 것은 얼려버릴 수 있을 정도다. 7서클 빙계 최고 마법 중에 하나인 블리자드를 연상케 하였다.
“자신 있으면 들어와 봐라!”
가르딘이 마스터라는 걸 알기에 자존심을 긁었다.
슬로쳐가 내딛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5미터가 그대로 얼어붙어 갔다. 전과는 다르게 한기를 엄청나게 압축해 놓았다. 사람을 일순간에 얼려버릴 수 있었다.
씨익!
훌쩍!
“들어왔다. 어쩔래.”
미소를 지으며 거리낌 없이 슬로쳐의 공간으로 들어와 버린 가르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딘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한기도 삼라만상의 기운 중에 하나다. 모든 기운을 포용하는 천룡무상신공이 가르딘을 지켜 주는 이상 그 어떤 한기도 소용없다.
‘헛!’
슬로쳐는 가르딘이 들어서자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치고 말았다. 너무나 쉽게 파고들자 놀라서 물러선 것이다. 말한다고 그대로 들어오는 경우는 처음 당해 보았다. 상식 밖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는 가르딘으로 인해 슬로쳐는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사이론이 슬로쳐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다! 괴물을 건드렸으니 어디 고생 좀 해봐라!’
슬로쳐는 물러섰다는 것에 수치심을 느꼈다.
“개...자식!”
“그럼 내 부모님이 개라는 소리냐. 이거 미친놈 아냐!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웃는 네놈을 보며 정상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닥...쳐!”
듣고 있을수록 짜증이 나는 슬로쳐였다. 가르딘과 말을 섞다 보니 자신도 이상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말려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저벅! 저벅!
가르딘이 계속 다가왔다. 슬로쳐도 이제는 물러서지 않았다. 얼음공간은 슬로쳐에게 유리한 공간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도 반응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슬로쳐가 다가서는 가르딘을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사사삭!
착!
가르딘의 두 팔을 잡았다. 슬로쳐가 이제야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팔을 잡은 이상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프로즌 데스(동사).
슬로쳐의 손바닥을 타고 엄청난 냉기가 가르딘의 팔에 주입되었다. 냉기를 주입하자 주변에 서리가 급속도로 생겨났다. 그렇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가르딘은 반응하지 않았다. 슬로쳐는 가르딘의 팔이 얼어붙어 가는 것을 보자 이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슬로쳐는 가르딘의 표정을 보았다. 고통으로 인해 비명을 내지를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비웃고 있는 가르딘이 보였다.
‘웃어?'
“미쳤구나!”
“아니.”
츠츠츠츠측!
그 순간 가르딘의 팔에서 수증기가 발생했다. 강렬한 열기가 퍼져 나와 얼어붙어 가는 기운을 한순간에 몰아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천룡무상신공에서 발현되는 초열의 기운이 슬로쳐의 손바닥을 타고 흘러가기 시작했다.
“허억!”
놀란 슬로쳐가 벗어나기 위해서 손을 놓았지만 가르딘의 손이 다시 슬로쳐를 잡았다.
“순결의 상징인 나의 손목을 잡았으면 책임을 져야지. 안 그래?”
순결의 상징이 손목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슬로쳐는 말도 안 되는 억지스러운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발버둥을 치며 가르딘의 손아귀를 탈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마지막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슬로쳐가 가르딘을 향해 머리를 박았다.
쿠쿵!
비틀!
있는 힘껏 머리를 박은 슬로쳐가 어지러움을 느꼈다. 순도 100퍼센트의 짱돌을 자랑하는 가르딘의 머리에 스스로 머리를 박다니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브리안이 크레이지헤드(미친대갈빡)라고 불리는 것은 모두 가르딘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원조 크레이지헤드의 무서움이 다시 한 번 발휘되었다.
슬로쳐의 이마가 붉게 멍이 들어갔다. 여린 피부에 흔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돌...머리가!”
“어디 그 돌에 한 번 더 맞아봐라!”
빠박!
비틀! 비틀!
가르딘이 손을 놓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쓰러 질 뻔한 슬로쳐였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엄청난 돌머리에 슬로쳐는 정신이 반쯤 나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가르딘이 잡고 있던 손을 통해 강력한 화기가 침투해 들어오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든 슬로쳐가 아이스 심법을 극성으로 운용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으아아아악!”
“얼어 죽는 고통도 대단하지만 타 죽는 고통도 그에 못지않지.”
가르딘의 심기가 좋지 못했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쓰레기에게 편한 죽음은 사치였다. 더군다나 자신의 수하들을 망가뜨린 것에 대한 처절한 복수였다. 가만히 둘 수 없음은 당연했다. 지옥에 가서도 두 번 다시 기어 올라오지 못하도록 말살시켜 버릴 생각이다.
부글! 부글!
슬로쳐의 몸에 기포가 생기면서 터지기를 반복했다. 살이 터지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자는 알 수 없는 극악한 고통이었다. 슬로쳐가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쳐도 가르딘은 요지부동이었다.
“크아아아악!”
남의 고통을 지켜본 적은 있어도 자신이 그와 같은 고통을 겪을 줄은 몰랐던 슬로쳐였다.
가르딘은 냉정하게 천룡무상신공을 더욱더 끌어 올렸다. 고통이 극에 달하자 서서히 불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불은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길과 비슷했다. 타오르는 불길은 슬로쳐의 몸을 천천히 태워나갔다. 팔에서 시작한 불은 몸으로 옮겨 가며 지독한 고통을 주었다.
지켜보고 있던 사이론과 고트마저 두려운 듯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알고 있는 가르딘의 모습과는 천양지차였다. 압도적인 포식자의 모습과 같았다.
활! 활! 활!
마침내 전신이 불타오른 슬로쳐는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가르딘과 어쌔신 길드와의 악연이 여기서 모두 끝나 버렸다. 세븐다크 모두가 가르딘에게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와!
주르르륵!
의식이 있는 고트와 사이론은 입을 쩌억 벌린 채 감탄을 터뜨렸다. 입에서 침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슬로쳐의 무서움은 그들이 겪어봐서 알고 있었다. 가르딘이 이길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저토록 압도적으로 이길 줄은 몰랐다. 도대체 실력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마지막에 보여준 상상할 수 없는 열기는 마치 태양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몸에서 저 정도의 열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가르딘이 고트와 사이론을 돌아봤다.
“흉하다. 침 닦아라.”
“아! 예!”
그제야 멍하니 있었다는 것을 감지한 고트와 사이론이 입에서 흐르는 침을 닦았다. 가르딘이 유독 사이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쳐다보자 민망해진 사이론이 고개를 돌렸다.
“고작 어쌔신 따위에게 고전을 하다니, 요새 훈련이 너무 편했지.”
허억!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였다. 훈련이 언제 편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상대는 어쌔신 마스터였다. 죽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사이론은 부당함을 항소하기 위해 발악했다.
“영주님 ! 상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 죽지 않은 기념으로 스페셜 지옥훈련을 시켜주마! 너의 실력이 금세 익스퍼트 상급에 다다르게 될 거다. 어때? 땡기지.”
훈련은 지금까지도 스페셜했다. 더 했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는다. 지옥 플러스 지옥 해봤자 거기는 지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지옥이다. 그 이상으로 수련하면 수련이 아니라 고문이 되었다.
“익스퍼트 상급이 되고 싶기는 한데, 그걸 받았다가는 제가 죽습니다!”
“농담이다.”
“그...런 농담하지 마십시오! 심장마비 걸리겠습니다!”
가르딘이 고트를 보며 쓰러져 있는 발키리 기사단과 함께 여기 있으라고 명령했다. 부상당한 기사들은 휴식이 필 요했다. 또한 아직 위험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서둘러 성 안에 들어온 적들을 처리해야 모든 것이 끝이 났다 할 수 있다.
가르딘의 시선이 벽을 투영하여 러쉬 황자의 존재를 확인했다. 아직은 비밀 방에 있는 것이 안전했다. 전투가 끝이 난 후 정리가 됐을 때 나오는 게 나았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가르딘은 곧장 성문으로 향했다.
아비규환의 지옥을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성문을 중심으로 지키고 있던 적군의 병력이 대부분 괴멸되었다. 투르와 창기병의 활약이 대단했다는 반증이었다. 들어오는 적들을 막아내며 서서히 성문까지 다가간 투르가 필살의 공력을 운용했다. 밀고 들어오는 병력을 막아야 성문을 닫을 수 있었다.
-광룡창법-극강패력-광룡폭살.
우우우웅!
투르의 손아귀에 잡힌 광룡창이 풍차처럼 회전했다. 속도가 점점 가일층하여 뻗어나갔다.
광천패황신공의 극강공력이 광룡창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패력지왕이라고 불리는 광룡창법의 최강 초식이 펼쳐졌다. 광룡포와 광격살을 합쳐 놓은 것과 같은 위력이었다.
나선의 회오리가 폭풍처럼 뻗어나가 성문으로 돌진하는 적들을 향해 폭사되었다.
푸아아아앙! 꽈과과과광!
천둥번개가 치는 것과 같은 굉음이 울리며, 문을 막 들어서는 병력들이 한순간에 뚫려 나가버리고 말았다. 찢기는 것도 아니었다. 헬 버스터(지옥의 광선)에 맞은 것처럼 다 뚫려 버렸다. 그 주변에 있던 것들까지 모조리 다 터져버리고 말았다.
남아 있는 병사들은 신체의 반 이상이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밀고 들어오던 병력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했다.
투르의 뒤에 서 있던 병사들조차 놀라서 멍하니 있어야 했다. 지금까지도 무서웠지만 방금 보여준 것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었다.
투르가 멍하니 있는 병사에게 말했다.
“뭐 해, 어서 문 닫지 않고.”
“아! 예! 알겠습니다!”
황급히 병사들이 문을 닫기 위해 움직였다. 펠칸 성의 견고한 성문이 마법기관에 의해 서서히 닫혔다. 적들이 다시 들어오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 투르의 광포함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장면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쓸어버려!”
“악!”
성안에 남겨진 적군에게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은 재앙덩어리들이었다. 마치 드래곤 앞에 먹잇감으로 던져진 것 같은 형상이었다.
펠칸 성의 성문이 닫히자 필리언으로서는 한시름 놓게 되었다. 적들의 수가 제법 되는 것 같지만 펠칸 성은 견고함으로 이름 높은 성이다. 제아무리 많은 병력이 와도 걸어 잠그고 공성전을 펼치면 뚫을 수 없는 철벽이었다.
“저놈은 항상 봐왔지만 확실히 무식해.”
투르에 대한 필리언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전쟁이 아니라 전투에서의 무식함은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투르의 역량으로 인해 아군의 사기가 살아 올랐다.
“뭐 해! 다 죽여!”
필리언도 투르 못지않아 보였다.
적들이 넘어오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인해 혼란했던 상황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적의 병력 운용이 공성전에는 취약해 보였다. 빠르고 날렵한 반면에 대규모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펠칸 성의 심처에서 나온 가르딘은 성안이 정리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곳곳에 쓰러진 병사들이 보였다.
물론 적군이 얼마나 죽었든 그건 상관하지 않았다. 아군의 피해, 즉 발키리 영지군만 가르딘의 눈에 보일 뿐이다. 대략 1천 명 정도가 죽었다. 그들의 죽음은 결코 작지 않았다. 발키리 영지의 영주가 되고 난 후 치른 전투 중에서 가장 많은 피해였다.
‘빌어먹을!’
내부에 배신자만 아니었다면 이런 피해는 입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죽은 베르사채에 대한 증오가 불타올랐다. 생각 같아서는 침입해 온 놈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해 버리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 할 능력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없기에 가르딘은 답답했다.
가르딘은 화를 누그러뜨리며 성벽 위로 올라섰다.
필리언은 가르딘이 무사한 것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르딘이 무사하다는 것은 일이 원만히 해결됐다는 뜻이 되었다.
“왜 갑자기 사라진 거야?”
“황자님이 위험할 뻔했다.”
“뭐? 침입자 중에 실력자들이 있었나?”
“마스터 급 어쌔신이 숨어들어 왔었다.”
“어쌔신이 마스터 급이라고!”
필리언이 매우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지금 놀랐으니 알아 달라는 숨은 뜻도 있었다.
어쌔신은 숨어서 암습을 하는 데 특화된 놈들이라 마스터 급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마스터 급이 되기 위해서는 상급의 오러 심법과 더불어 재능과 노력이 결부되어야 한다. 암살이 나 일삼는 놈들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일단 마스터 급의 어쌔신이 나타나면 오러마스터라고 해도 쉽사리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오러마스터가 죽음을 당한다. 제아무리 오러마스터라고 해도 기습에는 장사 없다. 더군다나 마스터 급 어쌔신이 기습하는 데 방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놀라는 필리언에게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의 얘기까지 하면 뻥이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 말은 숨기는 게 나았다. 진실은 알고 있는 자가 적을수록 안전하다.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덤 벼온 놈들을 다 죽여야지!”
“그렇지.”
적들은 공선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덤벼들어 왔다. 성안 에서 벌어진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성안에 적들의 수장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계속 공격 하고 있었다. 죽음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보였다. 가르딘은 적군의 도전을 봐주는 성격이 아니다.
가르딘은 검을 치켜들어 아군의 힘을 끌어 올렸다.
“적의 비겁한 기습 따위에 굴할 우리가 아니다! 제국의 정의가 살아 있음을 놈들에게 보여주어라!”
가르딘의 우렁찬 말소리가 아군의 힘을 몇 배 이상 끌어 올렸다. 힘이 솟은 병사들이 적군을 맞이하여 용맹하게 결전 하였다. 물론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기에 위력은 더욱더 강력 했다.
펠칸 성에 있는 공성병기를 모두 동원하였다. 적군이 기습하면서 공성병기를 꺼낼 시간이 없었다. 여유가 생기자 차근차근 공성전에 쓰이는 전략대로 적들을 유린하였다.
펠칸 성을 공략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공격하던 타이가라 공작군이 성벽에 다가가기도 전에 죽어 나가고 있었다. 피해는 삽시간에 엄청난 숫자로 누적이 되었다. 펠칸 성 밖에서 아무리 공격해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타이가라 공작군의 부대장 리베이라 백작은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여기서 공격을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펠칸 성에 타이가라 공작과 네벨리언 공작이 잠입해 있었다. 공격을 멈추는 즉시 두 공작의 생사를 장담 할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 성문을 열고 펠칸 성을 점령해야 했다.
‘두 분이 당했을 리는 없을 텐데, 어찌 된 일이지?’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이 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펠칸 성에는 오러마스터를 감당할 사람이 부족했다. 가르딘 후작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막 오러마스터에 든 인물이었다. 그런 자가 제국의 5대 공작을 상대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또한 두 공작뿐만 아니라 비밀리에 세븐다크의 수장이 출동했다. 슬로쳐의 실력은 리베이라 백작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어쌔신 마스터라고 불리는 슬로쳐까지 쳐들어가서 실패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두 공작을 돕기 위해서는 계속 공격해야 했다.
“모두 공격하라!”
리베이라 백작의 명령에 따라 타이가라 공작군이 끊임없이 공성전을 벌였다. 참담한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아직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