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2/93)

   @@[제5장 네킨 성 공략@@]

 발키리 영지가 출병하는 하는 날짜가 다가왔다. 이제까지 준비한 것들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드디어 가르딘이 출전명령을 내렸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최대한 주변 영지들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이 이상 지체하게 되면 의심을 피할 수 없다.

 가르딘은 영지를 떠나기 전 마지막 확인을 했다.

 집무실에서 일을 모두 마친 가르딘은 연병장으로 향했다. 연병장에는 1만의 병력이 줄을 맞추어 도열해 있었다. 그 앞으로 발키리기사단이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었다.

 암운이 드리우는 제국의 내전과는 다르게 날씨는 미치도록 푸르렸다. 가르딘은 날씨가 좋은 것에 인상을 찌푸렸다. 세상이 저처럼 푸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때 묻은 인간들의 치열한 권력다툼에 의해 자신도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못내 짜증이 났다.

  하늘을 올려다보다 웅대한 기운을 발산하는 1만의 정예병을 응시했다. 그들 모두 상당한 훈련을 이겨낸 발키리 영지의 정예 병사들이다. 지금까지야 가르딘의 의지에 의해서 최 소한의 희생을 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이들 중에 반수 이상이 죽을 수도 있고, 그 이 상의 희생이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르딘은 반드시 출전 해야 한다. 희생이 따르지만 무시하면 더 큰 희생이 따른다. 이율배반적 인 현실의 상황을 뒤로한 채 가르딘은 영주로서 의 책임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오늘 우리는 출전한다! 내전은 결국 제 살을 파먹는 더러운 짓이다. 하지만 우리는 물러설 수 없다. 영지의 안정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 반드시 출전하여 이겨야 한다. 자신이 쥐고 있는 확고한 의지와 믿음이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전쟁이라 할지라도 이겨낼 수 있다. 끝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다. 모두 살아남아 발키리 영지로 돌아와야 한다! 내 말을 어기 는 자는 하늘 끝까지 쫓아가서 볼기짝을 차주겠다!”

 “충! 충! 충! 충!”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살아 돌아오겠다는 필사의 의지를 다시 한 번 새겨주는 것뿐이었다.

 가르딘은 준비된 백마에 올라탔다. 말에 오른 가르딘의 시선이 병사들을 지나쳐 라이나와 브리안에게 향했다. 말은 이미 할 만큼 했다. 눈빛으로 믿음을 보내주었다.

 가르딘이 길을 나서자 그 뒤로 기사단과 병사들이 줄을 이었다. 출병소식을 들은 영지 민들이 길가에 나와 가르딘과 병사들을 배웅했다. 열렬한 환호와 더불어 무사귀환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가르딘이 발키리 영지를 떠나갈 때까지 라이나와 브리안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 옆으로 오브라이언 남작과 두 형제가 조용히 떠나가는 가르딘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무사히 돌아오너라.’

 아직은 가르딘과 서먹서먹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족이 될 것이다.

 가르딘은 진군 속력을 냈다. 파스트론 공작의 서신에는 전승에 대한 것만 거론된 것이 아니었다. 펠칸 성까지 가기 위해서는 여러 영지를 둘러가야 한다. 영지를 거치면서 각 영지에서 파견된 병사들의 수가 적정한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한마디로 빼돌리는 병력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모조리 긁어서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많은 시간을 할애받은 것이 아닌 상황이기에 가르딘으로서는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펠칸 성까지 가는 시간이 총 30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 따라서 각 영지에 둘러 가는 시간을 하루로 계산하면 빠르게 진군해야 한다.

 발키리 영지를 떠나온 지 꼭 20일이 되었을 때 발키리 영지군을 제외한 5천의 추가병력을 징집할 수 있었다. 영지를 떠나오기 전에 테이란에게 부탁하여 각 영지에 숨겨진 병력을 찾아내도록 부탁했었다. 그와 더불어 파멜라에게 영지의 정보력도 이용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말로 살살 달래다가 끝까지 반항하면 서슬 퍼런 기세로 제압한 후 병력을 차출했다. 영지들은 제법 많은 병력을 숨겨 놓고 있었다. 세상 어딜 가나 꽁수를 부리는 놈들 이 있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꽁수 부리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가르딘이다. 어설픈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우루파나 영지를 지나가기 전 뎀벨 산에서 잠시 멈추고 야행을 지시했다. 뎀벨 산은 5개의 큰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두 개의 봉우리 아래 계곡 사이로 큰 길이 나 있다. 각각 다른 영지로 들어가는 갈래 길이다.

 저녁이 되기 전에 멈춘 가르딘은 지금부터 병사들을 쉬게 하였다. 충분한 식사와 더불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내일 바로 전투가 벌어질 거야.”

 “단장님도 너무하시지 출병하자마자 전투를 하라고 하냐!”

 “단장님 빡빡한 것 이제 알았냐.”

 “그래도 그렇지 너무하잖아.”

 필리언이 파스트론 공작의 지시에 불만을 터뜨렸다. 가르딘의 경우 발키리 영지에서 직선거리로 오지 않고 돌아서 온 상황이었다. 겉으로는 추가 병력을 징집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주목적은 3황자의 의심을 피하면서 적의 주요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징집된 병력은 거점을 확보한 후 주둔시키기 위한 병력이었던 것이다.

 “필리언 너는 우선 네킨 성에서 멀지 않은 버로스 영지로 쳐들어가! 5천의 병력으로 최대한 많은 병력이 공격하는 것으로 알게 만들어 ! 할 수 있겠지.”

 “나만 믿어라! 확실하게 분탕질해주마.”

 “고트는 여기서 대기해. 최대한 병력이동이 보이지 않도록 연막작전을 펴야 할 거야. 통신을 보내면 그때 움직이면 된다.”

 “예, 영주님!”

 불빛으로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우선 중요한 것은 적들에게 움직임을 들키지 않는 게 먼저였다. 가르딘은 한밤중에 몰래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기사단과 정예 특수병 1천을 이끌고 먼저 움직였다.

 다음 날까지 발키리 영지군의 움직임은 전해지지 않았다. 네킨 성에서 보고 받고 있는 카니발 백작은 적의 움직임이 네킨 성에 있지 않다는 것에 다소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네 킨 성은 3황자의 주요 거점 중에서도 중하의 거점에 해당한다. 거점 간의 길목에 위치하여 침략당하면 병참의 이동에 약간의 지장이 발생한다. 2만의 병력이 네킨 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적의 병력이 1만이 조금 넘는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 다만 상대가 가르딘 후작이라는 것 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만의 코워드 공작군을 막아낸 것을 감안하면 보통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위험한 전투를 굳이 벌일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성을 공략하려면 최소한 5만의 병력은 있어야 할 겁니다. 1만의 병력으로 공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무리하지 않을 겁니다.”

 “펠칸 성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해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성 주변을 철저히 감시하도록 하게.”

 성 주변만 경계를 확실히 한다면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네킨 성 주변으로 평야와 물길이 나있어서 쉽사리 뚫고 들어올 수 없는 지형을 갖추고 있었다. 모든 공격이 시야에 보였다. 그렇기에 돌아서 후방을 공략하기도 어려웠다. 단단한 성벽을 중심으로 공성전을 벌인다면 제아무리 강군이라고 해도 별 수 없을 것이다.

 카니발 백작과 귀족들이 전략회의를 하는 사이에 다급한 전령이 또다시 들어왔다. 버로스 영지에 파견되어 있던 전령이었다.

 “무슨 일인가?”

 “버로스 영지에 가르딘 후작의 병력이 들이닥쳤습니다.”

 “뭐라? 병력은 얼마나 되는가?”

 “순식간에 영지군을 격파하고 있어 자세히는 알 수 없으니 족히 1만은 되어 보였습니다!”

 “기습 작전인가!”

 가르딘 후작이 네킨 성을 치는 것보다 주변 영지를 격파하여 네킨 성을 고립시키는 작전을 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고립된 상황에서 적의 지원 병력이 나타나게 되면 네킨 성은 외딴 섬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네킨 성은 천혜의 요새였다. 적의 수가 많다고 해 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전력이 되었다. 섣불리 출전하는 것 보다는 여기서 3황자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카니발 백작이 성에 머물기로 결정하자 주변 귀족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특히 버로스 영지의 영주인 루벨 자작과 데우스 남작 등 주변 영주들이 출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로 영지가 망가져 버리면 어떻게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고립되어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에는 적의 진입로를 막는 것이 먼저였다. 그 이후에 지 원 병력과 함께 적의 퇴로를 막고 역으로 고립시키는 작전을 쓸 수 있었다.

 “네킨 성을 중심으로 공성전을 하는 것이 더 안전하네!”

 “그럴 경우 저희들의 영지는 어떻게 됩니까! 또한 이후에 적의 지원 병력이 아군의 지원 병력보다 빠를 경우 네킨 성 에서 고립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 바에는 적을 먼저 막고 퇴로를 차단하여 우리가 먼저 고립작전을 쓰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상대는 가르딘 후작이네! 오러 마스터라는 말일세.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니네. 만약 이번 일이 적의 교란작전이면 어떻게 할 건가!”

 “1황자 진영에서 만들어낸 교묘한 수작일 수도 있습니다. 영웅을 만들기 위해서 전공을 부풀리는 것은 예전부터 해온 일입니다. 가르딘 후작이 오러 마스터라고는 하나 병력 차이 를 극복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이곳은 우리들의 영지입니다. 지리적인 이점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잘만하면 적을 함정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끄응!”

 카니발 백작은 상급귀족이지만 그다지 힘이 있는 자는 아니었다. 주변 귀족들의 힘이 강성하다 보니 힘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내전이 벌어지기 전에 1황자 진영에 서 벗어난 이유가 이와 같은 상황 때문이다. 1황자 진영에 있다가는 힘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았다. 머물러 있기보다는 모험을 선택한 것이 3황자였다.

 그런데 막상 귀족들의 반응을 보니 결론은 같았다. 어딜 가나 우선은 자신의 힘이 강해야 한다. 네킨 성에 모인 병력의 대부분이 루벨 자작과 데우스 남작 등 귀족들의 병력들이 었다. 이들의 의견을 계속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그대들의 의견을 따르겠소!”

 “그럼 지금 당장 출병준비를 서두르겠습니다!”

  루벨 자작과 데우스 남작은 영지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전공을 세우려는 욕심을 드러내었다. 전쟁에서 가르딘 후작 을 죽이거나 사로잡을 수 있다면 단숨에 큰 전공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전쟁 후 논공행상에서 상급귀족이 될 수 있는 발판을 얻을 수 있다. 욕심이 상황판단을 흐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모양이다. 때론 소문보다 실제가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카니발 백작은 2만의 병력 중 2천만 남기고 1만 8천의 병력을 데리고 성을 나섰다. 출병하기를 망설이는 카니발 백작 에게 루벨 자작과 귀족들이 단합하여 성에 남으라고 권유를 했었다.

 하지만 성에서 차출한 병력이 너무 많았다. 일이 자칫 잘못됐을 경우 피해가 만만치 않을 수 있었다. 책임이 막중한 일을 루벨 자작과 귀족들에게 맡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루벨 자작과 귀족들에게는 공적을 탐하는 모습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기동성을 활용하여 치고 빠지고 있는 필리언이었다. 발키리 영지군의 가장 큰 장점이 빠르다는 것이다. 일반 병사들 보다 속도전에 더 강했다. 일단 급습을 하여 적을 혼란시키 고 빠져나오는데 적군은 따라오지 못했다. 따라오는 적들을 향해 화살을 날려 속력을 늦추고, 2백의 창기병이 쏜살같이 달려가 적군을 주살했다. 가르딘이 붙여준 투르의 능력이 여 실히 발휘되었다. 광포한 창술을 겸비한 크레이지 드래곤 창기병은 전장의 사신을 방불케 했다. 반나절 사이에 주변 영지 대부분이 쑥대밭이 되어 갔다.

 필리언이 버로스 영지를 비롯한 네킨 성 주변의 영지를 혼란스럽게 만들 때 고트와 사이론은 뎀벨 산에서 진영을 정리하고 움직였다. 적군의 주요병력이 움직였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차례가 다가왔다. 9천의 병력을 고트와 사이론이 다스려야 했다. 일단 가르딘이 지시한 대로만 움직이면 되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았다.

 “적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가서 매복해야 하니 빨리 움직여!”

 적들이 거쳐야 하는 지점과 뎀벨 산과의 거리가 중간에 위치했다. 먼저 선점하지 않으면 필리언이 이끄는 병력이 위험 하게 된다. 그전에 미리 가서 자리를 선점하고 기다려야 했 다.

 네킨 성에서 병력이 빠지는 것을 평야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1천의 날랜 병시를 이끌고 있는 가르딘은 병력의 이동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작전은 반드시 라는 명확한 과제가 없었다. 다만 적의 주변을 어지럽히고, 네킨 성에서 움직이는 동향을 파악한 후 반응할 생각이었다. 적의 주력 병력이 나오지 않는다면 네킨 성의 주변 영지를 공략한 후 빠지면 되었다. 적 병력이 절반만 나올 경우 필리언이 공격방향을 바꾸어 본군과 합쳐 합공하는 작전이었다. 같은 병력수라면 가르딘에게 절대적으로 승산이 있는 작전 이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적의 주력 병력이 대거 출병하고 있었다. 설마 저런 무식한 작전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측 하지 못했다. 솔직히 가장 원하는 결과로 작전의 향방이 진 행되고 있었다.

 “카니발 백작의 성정이 무척이나 신중하다고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아닌가 보군.”

 “정보에 의하면 하급귀족들의 세력이 카니발 백작보다 크다고 합니다.”

 “통제력이 없는 권한은 있으나 마나 한 거겠지.”

 카니발 백작에 대한 자료를 보았다. 데론 백작가의 차남으로 장남이 아니기에 홀로 나와 백작의 자리에 올라선 입지전 적인 인물이다. 가진 바 능력에 비해 배경이 약해 더 이상 올 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받았다.

 가르딘은 병력이 빠지고 시간이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 시간적으로 오전에 벌어진 전투가 지금쯤이면 오후가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해질녘까지 기다리다가 본격적으로 공략작전을 벌일 계획이다.

 해가 조금씩 수평선 아래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리며 땅거미가 길게 늘어서는 시각이라 시야를 구분하기 어려운 때다. 때마침 석양이 네킨 성 주변에 흐르는 물길을 비 추었다.

 가르딘은 정면보다 물길이 흐르는 곳을 넘을 생각이었다. 일단 가르딘을 비롯한 기사들만 성을 넘어 문을 열면 성을 점령하는데 위험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사삭!

 어둠 속에 일렁이는 그림자 속에 신형을 감춘 가르딘과 30명의 기사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여 나갔다. 적의 보초병들이 돌아서는 시기에 맞추어 행동했기에 성벽까지 도착하는데 무리는 없었다. 성벽 앞에 흐르는 물길을 조심스럽게 헤 엄치고 성벽에 다가갔다. 물길을 건너기 위해서 갑옷은 벗어 둔 상태였다. 가벼운 경장차림으로 조용히 쾌속하게 나아갔다.

 “내 뒤를 따라서 올라와라!”

 “예!”

 기사들의 악력이라면 성을 올라가는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가르딘은 수강을 사용하여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부분을 뚫어 주었다. 받침대를 만들면서 위로 올라가는 가르딘이었 다.

 서걱!

 성벽이 손쉽게 잘려 나갔다. 손으로 성벽을 뚫어내는 가르딘의 놀라운 능력에 기사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돌이 돌 같지 않았다. 진흙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물렁해 보였다.

 ‘저런 수법은 처음 보는데.’

 ‘영주님의 신위가 더 강해지셨구나!’

 검이 아닌 손으로도 강력한 오러를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오러 마스터가 되면 신기한 재주를 마음껏 부릴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르딘이 마음만 먹으면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성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알면 놀라서 뒤로 자빠질 것이다.

 성벽을 타고 가르딘과 기사들이 조용히 올라갔다. 맨 위로 올라설 때 가르딘은 성벽 위를 감시하는 3명의 병사들을 보았다. 수강으로 만들은 벽면을 발판 삼아 번개같이 튀어 오른 가르딘은 그 즉시 검을 휘둘렸다.

 슈슈슈슉!

 어둠 속에서 뿌려지는 가르딘의 바람 같은 검참에 사혈이 베인 병사들은 부지불식간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가르딘은 쓰러지는 병사들을 조용히 잡아서 바닥에 뉘었다. 병사들을 처리하고 난 후에 기사들이 모두 올라왔다.

 가르딘이 방향을 가리켰다.

 “성벽 위의 경비병들을 조용히 처리하고, 난 후 적병이 성벽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아선다. 성문은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영주님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난 오러 마스터다. 내가 위험할 것 같은가.”

 늦은 저녁시간, 밤이 되기 일보직전의 시간이지만 성문은 경비가 가장 삼엄하다. 누군가 침입했을 때 가장 위험한 곳 이 성문이었다. 그렇기에 성문을 감시하기 위한 경비병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성벽 위의 병사들을 제거하고 난 후 병사 들이 올라오는 길목을 막도록 한 이유는 아군이 무리 없이 성안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다.

 사사사삭!

 둘로 나뉜 기사들이 성벽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성벽 위를 감시하는 경비병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제거해 나갔다. 어차피 이쯤 되면 소리가 나기 마련이었다. 소리를 차 단하기 보다는 죽이는 게 먼저였다.

 “적...이 커억!”

 털썩!

 기사의 검이 적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러나 부산한 소리에 성안의 병사들이 알아채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성벽 위의 병사들을 정리하는 동안에 가르딘은 성문으로 내려갔다. 30명의 경비병과 기사 3명이 가르딘을 막아섰다.

 “네... 놈은 누구냐?”

 성문을 지키던 기사가 가르딘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가르딘은 말없이 검을 뽑아 적을 향해 돌진했다.

 “적이다! 죽여랏!”

 병사들이 가르딘을 막기 위해 검과 창을 들이대었다. 찔러 오는 창을 검으로 쳐내었다. 병사들의 창이 힘없이 잘려 나갔다. 오러가 깃든 검에 병사들의 창이 상대가 될 리 만무했 다 가르딘은 병사들을 거침없이 베어 넘겼다. 바람같이 움직여 간결한 검격으로 10명의 병사들을 베어내었다. 그러자 기사들과 병사들이 가르딘의 놀라운 실력에 주춤거렸다. 가르 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가오지 않는다고 하여 망설이는 짓은 애송이나 하는 짓이다. 적이 당황할 때 하나라도 더 죽여야 한다. 그것이 가르딘이 이제까지 배운 전쟁의 기본이 었다.

 5명이 더 죽고 나서야 기사들이 가르딘에게 덤벼들었다.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처음부터 오러 소드를 사용하였다.

 가르딘의 눈에는 병사들이나 기사들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덤벼드는 3개의 오러 소드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가르딘의 검에는 강력한 순백의 기운이 뭉쳐져 있었다. 가르딘의 검에 실린 강력한 기운이 기사들의 오러 소드를 반 토막으로 잘라내었다.

 댕강!

 “이 ... 럴 수가!”

 “오... 러 마스터... 커억!”

 3명의 기사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가르딘의 오러 블레이드였다. 그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반으로 잘려진 오러 소드를 멍하니 볼 때가 아니었었다. 가르딘이 찰나의 간격을 뚫고 들어와 기사들의 가슴과 목을 단숨에 베어 내었다. 별다른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죽어나간 기사들 을 본 병사들이 하얗게 질렸다. 기사들이 마지막에 한말을 들었다.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덤벼드는 간 큰 병사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뒷걸음치다 도망치고 말았다.

 가르딘은 성문을 들어 올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거대한 쇠사슬을 풀었다. 공성전이 끝나고 난 후 다시 전투를 벌어야 할지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서 쇠사슬을 자르지는 않았다.

 쩌저저척! 철거덩!

 가로막고 있던 제재가 사라진 성문이 쇠가 긁히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만개하듯 성문이 활짝 열렸다.

 쿠구쿵!

 굉음과 동시에 성안이 소란스럽게 변했다. 성안에 있던 기사들과 병사들이 뛰어 나와 가르딘과 기사단을 상대하였다. 주력 병력이 사라진 이상 가르딘에게 거칠 것은 없었다.

 성문 밖에 대기한 가르딘의 특전정예병이 성문이 열리자 성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성벽 위를 감시하고 있는 병력을 모두 제거했기에 피해는 전무했다. 안으로 무혈입성한 병사들이 성안의 병사들과 전투를 벌였다.

 채채챙! 차차창!

 “서걱! 커어어억!”

 전투는 거의 일방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기사들의 수가 가르딘이 훨씬 많았다. 더군다나 가르딘은 오러 마스터다. 오러 블레이드가 번쩍이자 수명의 기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적의 기세가 순식간에 꺾여 나갔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허둥대던 성안의 병사들은 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려운 듯 상황을 지켜본 데이브 남작은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침입을 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삽시간에 네킨 성은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있었다. 데이브 남작은 자리를 피할 틈도 없었다. 어느새 가르딘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데이브 남작을 보호하던 10명의 기사들이 가르딘을 향해 덤벼들었다.

 타아아앙!

 꽈다다당!

 가르딘은 덤벼드는 기사들을 향해 매서운 기운을 발휘하였다. 검에 실린 육중한 기운에 부딪친 기사들은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다시 일어서려고 해도 내상을 당 한 상태라 움직이지 못했다.

 저벅! 저벅!

 가르딘은 천천히 걸어서 데이브 남작의 앞에 섰다. 데이브 남작은 두려움에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도망치는 것도 포기 한 지 오래였다. 상대는 오러 마스터였다. 도망쳐봐야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르딘은 검을 들이대지 않았다. 이미 전투는 끝이 나 있었다. 대부분의 기사들과 병사들도 항복한 상태였다. 데이브 남작의 결정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항복할 텐가.”

 “항... 복하겠습니다!”

 “패자에 대한 예우는 해주겠다.”

 “감사합니다! 가르딘 후작님 !”

 죽지 않는다는 것에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가르딘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데이브 남작이었다. 그 모습에 항복한 기사들과 병사들은 실망하고 말았다.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 이 보기 좋을 리는 없었다.

 가르딘은 포로들을 정리하고 난 후 성문을 다시 걸어 잠갔다. 아직 전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전투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는 후일 벌어지는 전투에 달렸다.

 때마침 가르딘에게 통신이 왔다. 할리칸 협곡에서 카니발 백작을 기습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가르딘은 부상자를 최대한 많이 속출시키라고 명령했다.

 슈슝!슈슝!슈슝!

 “아아악! 살려줘!”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오고 있었다. 협곡을 중간 이상 지나자마자 돌이 굴러 떨어지고, 화살이 날아왔다. 병력 피해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삽시간에 3천에 달하는 병사들이 죽어 나갔고, 지금도 죽고 있었다.

 카니발 백작은 적의 기습에 답답함을 느꼈다. 루벨 자작이 서두르는 바람에 병력 이동에 대한 정찰이 허술했었다. 귀족들의 탓도 있지만 자신이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것을 자책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적의 교란작전에 걸린 것 같구나!’

 협곡 위로 올라가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적군이 족히 1만이 되었다. 1만 5천의 병력으로 위로 올라가서 전투를 벌이게 될 경우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승리한다 고 해도 승리한 전투가 아니게 된다.

 ‘버로스 영지를 유린한 병력까지 합세하면 이기기 힘들다. 상대는 오러 마스터를 보유한 강군이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어!’

 카니발 백작의 눈에 허둥대는 귀족들과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병사들을 통제해도 부족한 판국에 혼란을 더 부추기고 있었다. 머뭇거리다가 병력 피해를 더 보고 있었다.

 “마법사와 궁수대는 협곡 위로 마법과 활을 쏴서 퇴로를 확보하라! 기사들은 병력을 이끌고 뒤로 후퇴한다.”

 카니발 백작은 후퇴를 서둘렸다. 이대로 적군을 향해 공격해 봤자 이긴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빨리 철수하는 게 병력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라고 판단했다.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고 궁수대가 활을 쏘자 발키 리 영지군의 공격이 처음보다 약해졌다. 그 틈에 카니발 백작이 기사들을 이끌고 병사들을 뒤로 후퇴시켰다.

 협곡 위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고트와 사이론은 적의 움직임이 기민해졌다는 것을 파악했다.

 “저놈이 수장인가 보구나!”

 “그런가 보네요.”

  "다른 놈들과는 확실히 달라! 공격하기에는 거리도 어중간한데.”

 제법 실력도 있고, 공격할 간격도 벌여 놓았다. 어차피 더 이상 공격해 봤자 카니발 백작을 죽이지는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최대한 많은 피해와 부상자를 속출시키는 것이 나았다.

 “협곡의 병사들을 처리하고, 적의 후미를 화살로 쏴서 부상자를 속출시켜라!”

 고트와 사이론의 명령에 의해 협곡에 남아 있는 병력을 향해 집중적으로 화살을 쏘아대 었다.

 협곡 위의 공격은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누가 먼저 협곡에 도착하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카니발 백작보다 가르딘에게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보냈 다.

 하지만 이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준비된 전투를 치르는 자와 주변의 세력에 등 떠밀려 전투를 치르는 자. 누가 과연 유리한가! 답은 명확하게 나와 있었다.

 매복에 걸려 피해를 보았지만 카니발 백작의 발 빠른 대처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결국 발길을 돌려 네킨 성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카니발 백작의 의견에 루벨 자 작과 데우스 남작은 입을 열지 못했다. 카니발 백작이 할리 칸 협곡을 정찰하고 나가자는 말을 무시하고 서두르는 바람에 피해를 보고 말았다.

 카니발 백작은 귀족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귀족들을 다그쳐봐야 불만만 커질 수 있었다. 그것보다는 작금의 피해를 정확히 파악하고 난 후 서둘러 네킨 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병력피해는 어느 정도나 되지?”

 “5천이 죽고 3천이 부상당했습니다.”

 1만 8천의 총병력 중에 절반에 가까운 병력이 타격을 받았다. 적의 주력 병력이 1만을 넘는 것으로 보였다. 정면대 결은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돌아가는 길도 만만 치 않을 것 같았다. 3천의 부상병을 이끌고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버리고 갈 수도 없었다.

 “병사들은 부상자를 부축하여 이동한다.”

 카니발 백작이 부상자를 이끌고 돌아가려고 하자 잠자코 있던 귀족들이 들고 일어섰다. 잘못은 둘째치고 지금은 살아야 한다. 부상자를 데리고 가다가 적들이 합공해 오면 막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부상자들까지 데리고 가서는 성까지 도착하는데 너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카니발 백작은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다. 그들의 죄를 치죄하지 않는 것만 해도 많이 참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귀족들이 자신들만 살기 위해서 부상자들을 버리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루벨 자작! 한 번 실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실수로 인 해 부상을 당한 병사들까지 버 리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부상자들로 인해 네킨 성이 위험하게 된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입니까! 지금 당장은 네킨 성으로 돌아가서 성을 사수는 게 급선무입니다!”

  “성을 사수하자고 할 때 기어이 출병한 그대의 말치고는 너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때가 아닙니다! 과거지사를 들추어봤자 백작님만 불리할 뿐입니다!”

 루벨 자작의 뜻에 귀족들이 동의를 표하는 듯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개를 들지 못하던 귀족들의 만행에 카니발 백작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 되었다. 끌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할 것 같은 카니발 백작은 애써 화를 누그러 뜨렸다. 루벨 자작의 말이 얼토당토아니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전쟁은 냉정하게 판단을 내려야 한다. 지금 당장 부상자들을 이끌고 후퇴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하지만 일의 원인을 제공한 자들이 이처럼 대놓고 뻔뻔하게 행동하니 답답하기만 했다. 부상자들을 버리고 간다 해도 그들이 모두 죽지는 않을 것이다. 내전에서 항거불능의 병사 들까지 잔인하게 도륙하게 되면 평판이 좋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병사들을 버린 자들은 더 큰 비판을 받는다. 병사들의 신뢰를 잃을 뿐만 아니라 사기도 저하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귀족은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건다. 그런데 명예를 던져 버리는 짓을 해야 한다. 카니발 백작에게는 결코 쉬운 결정이 될 수 없었다.

 ‘가르딘 후작 진정 무서운 자다!’

 협곡 전에서 마지막에 적들이 일부러 부상자들을 속출시키도록 공격을 가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공격한 것이 틀림없었다.

 카니발 백작은 결정을 해야만 한다. 고개를 돌려 부상당한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모두 귀족들의 명령에 의해 전쟁을 치렀을 뿐이다.

 “6천을 주겠네. 먼저 가서 성을 지키게. 나는 부상자들과 함께 가겠네.”

 마음을 굳힌 카니발 백작이 결정을 했다. 그러나 루벨 자작과 귀족들은 선뜻 호응하지 않았다. 1만의 병력을 모두 데리고 가야 안심이 되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병력을 모두 데리고 가야 네킨 성을 굳건히 사수할 수 있습니다!”

 “정말 끝까지 날 실망시키는군.”

 카니발 백작의 말투가 차갑게 식었다. 루벨 자작은 순간 소름이 돋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아야 했다. 움찔거리다가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루벨 자작이 카니발 백작을 노려보았다. 상급 귀족을 향해 노골적인 반항을 하였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희도 참지 않을 겁니... 헉!”

 스르렁!

 카니발 백작의 검이 뽑힘과 동시에 루벨 자작의 목에 와 닿았다. 검 끝에 맺혀진 선명한 오러 소드가 루벨 자작의 머리를 잘라내 버릴 것만 같은 기세였다. 루벨 자작은 오싹한 느낌과 함께 등 뒤로 식은땀이 샘솟았다. 심장이 기세를 참지 못해 두방망이질 쳤다.

 “이... 게 무슨 짓입니까!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십니까!” 주변에 귀족들과 기사들이 모두 루벨 자작의 편이었다. 카니발 백작의 힘은 고작해야 3분지 1도 되지 않는다. 전투를 벌인다면 루벨 자작과 귀족들이 이길 것이다.

 스옥!

 주르르륵!

 루벨 자작의 목에 핏물이 흘렀다. 카니발 백작의 오러 소드가 더 길어졌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뻗어나가면 꿰뚫릴 수 있었다. 귀족들과 기사들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카니발 백작의 행동도 놀랍지만 그가 보여주는 익스퍼트 상급의 오러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카니발 백작이 전략 전술만 능한 줄로 알고 있었던 귀족들이었다. 그가 가진 검의 재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다시 한 번 말해 보게.”

 “절 죽이면 백작님... 도 무사치 못할 것입니다.”

 “나는 내부분열을 원치 않네. 하지만 상관의 명령을 무시 하고 계속적으로 반항한다면 군율의 의거해서 자네를 죽일 수도 있네.”

 찔끔!

 놀란 루벨 자작이 입을 닫았다. 카니발 백작의 시선이 루 벨 자작의 뒤로 서 있는 귀족들에게 향했다.

 “여기서 내 편은 얼마 없겠지.”

 귀족들 모두 수긍하는 눈치였다. 카니발 백작은 이방인이었다. 이곳에 오랫동안 정착하여 굳어 진 토착세력이 아니다. 카니발 백작에 대한 적개심이 분명히 있었다. 위를 노리고 있는 귀족들에게 카니발 백작은 걸림돌이었다. 루벨 자작을 죽이는 즉시 공격할 듯한 반응을 보이는 귀족들이었다.

 카니발 백작은 귀족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루벨 자작의 죽음 따위는 애초부터 그들의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들만 아니라면 그 누가 죽든지 신경 쓰는 자들이 아니었다. 카니발 백작의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번져갔다. 전쟁을 승리하는데 전투력과 병력의 우위보다 중요한계 위계질서다. 이처럼 무질서한 상태로 어떻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가! 타이가라 공작이 아무런 배경도 없는 자신을 왜 네킨 성으로 보냈는지 짐작이 갔다. 네킨 성이 비록 중요한 요지이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은 아니 다. 그저 주요 거점 중에 하나로 병참의 요지 정도였다. 명목상 허울뿐인 책임자로 보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카니발 백작은 포기하지 않았다. 명목상이라고 해도 공을 세우면 책임자의 공적이 가장 크다. 그 책임을 다해야 했다.

 “나를 지지하는 세력이 없다 해도 지금 나와 검을 맞대는 순간 우리는 공멸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자네들도 알 것이 네.” 

 카니발 백작이 할리칸 협곡을 가리켰다. 서로 자중지란을 벌이게 될 경우 시간을 더 지체하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네킨 성에 도달하기는커녕 이곳에서 뼈를 묻을 수도 있다. 귀 족들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6천의 병력이라면 네킨 성을 수성하고도 남네. 그 정도 도 하지 못하면 무능하다는 뜻이 되겠지.”

 카니발 백작의 검이 어느새 검 집에 다시 들어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루벨 자작은 여전히 카니발 백작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도 카니발 백작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았다.

  ‘두고 보자.’

 우선은 네킨 성으로 돌아가고 난 후 생각을 해보기로 결정을 한 루벨 자작이었다. 그는 곧 귀족들과 6천의 병사들을 이끌고 빠르게 후퇴했다. 이동하는 병력을 지켜본 카니발 백 작은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이곳으로 간다.”

 “백작님 이곳은 우회로입니다. 그렇게 되면 너무 늦습니다.”

 네킨 성으로 오기 전부터 카니발 백작을 따르던 베르칸트가 의아해서 물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곳으로 가게 되면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베르칸트는 충직한 신하였다. 카니발 백작이 걱정되기에 물어본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늦을 수밖에 없네. 우리가 이곳에서 방향을 튼 것을 적들도 알 것이야.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 보다는 네킨 성으로 향하겠지.”

 “아! 그렇군요! 백작님을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인간이 땅을 밟게 되면 족적이 남게 된다. 족적은 때론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사람의 심리상태와 몸의 상태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부상자들을 이끌고 가는 병사들의 걸음걸이는 무겁고 느리다. 그에 비해 멀쩡한 병사들은 빠르고 가볍다. 가르딘 후작이라면 부상자들보다는 주력을 노릴 것이 분명하다 판단했다. 또한 병력을 분리하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 병력을 빼서 추격한다고 해도 그 수는 한정적이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카니발 백작은 우회로를 택했다. 이 작전은 적 을 망설이게 하고,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카니발 백작은 최선의 선택을 

 카니발 백작이 출발하고 난 후 얼마 뒤에 필리언이 이끄는 발키리 영지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지군은 총 1만 4천이나 되었다. 고트와 사이론은 필리언의 부대가 올 때까지 할리칸 협곡 아래서 기다리다가 합세하였다.

 필리언은 이곳에서 잠시 동안 병력이 멈추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리고 방향이 둘로 갈렸다. 한곳은 네킨 성으로 향했고, 다른 한쪽은 부상자들을 이끌고 다른 방향으로 갔다. 정확하게 그곳이 어딘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카니발 백작, 만만치 않은 자군.”

 부상자들을 따로 빼고 수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병력만 이 동시키는 과감한 선택을 하였다.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 냉철한 판단이었다.

 “쫓아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군.”

 적들이 머문 이유를 생각하느라 필리언은 조금 망설였다. 결과적으로 카니발 백작의 의도대로 되었다.

 “우리도 네킨 성으로 간다.”

 “예!”

 필리언은 고민을 중단하고 적을 쫓기 위해 움직였다. 지금쯤 네킨 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쉬지 않고 도주할 것이 눈에 선했다.

  ‘아무튼 성이 함락된 걸 알면 놀라 자빠지겠군.’

 가르딘이 성을 수성하며 최대한 시간을 질질 끌 것이 분명 하다. 그전까지 네킨 성에 당도하면 되는 필리언으로서는 조급할 필요가 없었다.

 루벨 자작을 비롯한 진군속력을 높였다. 한시라도 빨리 네킨 성에 도착해야 했다. 그래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들 생애 이토록 숨이 차도록 움직인 경우도 드물 것이다. 꼭 움직이라고 할 때 굼뜬 것들이 이럴 때는 빠르다.

 “성이 코앞이다! 빨리 움직여라!”

 루벨 자작의 말이 떨어지자 기사들이 병사들을 재촉했다. 수평선 위로 네킨 성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루벨 자작과 귀족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까지 뒤에서 추격하는 적군을 맞을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성으로 들어간다.”

 병사들을 이끌고 네킨 성으로 다가갔다. 새벽이 다가오기 직전의 늦은 밤, 네킨 성은 고요했다. 불빛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불빛을 따라 네킨 성에 근접 해 갔다.

 성문까지 거의 다 왔을 때였다.

 피융! 피융! 피융!

 성벽 위에서 갑자기 화살이 날아왔다. 어둠 속에서 쏘아지 는 바람 같은 화살은 보이지도 않았다.

 푸욱! 푸욱!

 화살을 맞은 병사들이 무방비상태로 죽어나갔다. 네킨 성 에서 화살을 쏠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화살은 연속적으로 수천 발이 쏘아졌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에 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루벨 자작과 귀족들은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또다시 놀 라서 우왕좌왕하고 말았다.

 “이... 게 어떻게 된 일이냐?”

 “모두 물러서라!”

 네킨 성에 접근하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우선은 병력을 뒤로 물리는 것이 먼저였다. 혼란을 수습하며 뒤로 물러서려는 루벨 자작과 귀족들에게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슈우우응! 쿠아아아앙!

 “크아아아악!”

 불덩어리는 기름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불덩어리가 터지면서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불이 붙은 병사들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죽어갔다. 불덩어리는 계속 날아왔다.

 “수성용 병기가 왜 우리를 공격한단 말이냐?”

 “어떻게 이런 일이?”

 네킨 성에는 수성용 대인살상병기인 투석기가 6대가 있었다. 날아오는 불덩어리는 투석기로 날리는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왜 갑자기 적으로 돌변해서 자신들을 공격하느냐에 있었다.

 -어이! 잘 받았나!

 공격을 하는 와중에 들려오는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루벨 자작과 귀족들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아무튼 화살과 불덩어리를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상대는 그에 대한 답변이었다. 루벨 자작과 귀족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루벨 자작이 마법사를 불러 확성마법을 사용하라고 했다.

 “네놈은 누구냐?”

 우웅!

 루벨 자작의 목소리가 마법력을 타고 네킨 성까지 전달이 되어졌다. 성벽 위에서 적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가르딘이 대응해 주었다.

 “나 모르냐?”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보냈다. 적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가르딘의 대응에 점점 더 화가 나는 루벨 자작 이었다. 성을 점령한 놈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으로 느껴졌 다.

 “네놈이 누군지 정체를 밝혀라!”

 “허허! 나 같은 유명인을 모르다니, 그러니 네놈들이 시골 촌놈들이 라고 무시당하는 거다!”

 “닥쳐랏! 어서 정체를 밝혀라.”

 “가르딘 카이로스다.”

 “거...짓말!”

 “사실이다.”

 “증거가 있느냐?”

 부웅!

 담담히 정체를 밝히며 오러 블레이드를 보여준 가르딘이었다. 차분한 목소리에 실린 진실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가르딘이 오러 블레이드를 보여주자 루벨 자작과 귀족들은 얼이 빠져 버렸다. 어떻게 가르딘 후작이 네킨 성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들보다 먼저 와서 성을 차지하고 있는 것부터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뒤에서 추격하는 적군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 떻게?”

 “알고 싶나?”

 끄덕! 끄덕!

 루벨 자작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곧 자신의 실수를 눈치 채고 얼굴을 붉혔다.

 가르딘과 루벨 자작의 거리는 제법 떨어졌다. 거리가 멀어 져서 화살 공격과 투석기 공격도 멈춘 지 오래였다. 거리를 확보했지만 이미 루벨 자작이 이끄는 병사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족히 2천에 달하는 병사들이 죽고, 부상당했다. 4천의 병사들도 허둥대다가 경미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대부분의 병력이 피해를 본 상황에서 루벨 자작과 귀족들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이거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아둔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왜 성을 사수하지 않고 무리하게 출전해서 일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누가 보면 내가 대단한 작전을 세운 줄 알겠네.”

 적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작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조리 있게 말해 주는 친절한 가르딘이었다. 과연 이게 친절인지 의심을 해봐야 했다. 적에 대한 명백 한 조롱이었다. 별 시답지 않은 전략에 휘말리는 귀족들의 오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들! 부들!

 전공에 대한 욕심으로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는 것을 병사들 모두가 들었다. 루벨 자작을 비롯한 귀족들 모두 수치심에 분노를 느꼈다. 이들보다 더 분노하고 허탈한 이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귀족들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얻은 것은 하나도 없고, 피해만 고스란히 다 보았다. 이렇게 된 이유가 모두 귀 족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 원망과 분노가 교차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연히 사기가 저하되었다.

 병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족들에게 들려왔다. 루벨 자작이 병사들을 향해 화를 토해냈다.

 닥쳐랏! 감히 병졸 따위가 우리를 깔보는 것이냐! 죽고 싶은 녀석은 입을 더 놀려 봐라!”

 위압감을 주고, 검을 들이대도 상황이 따라 주어야 한다.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었다. 루벨 자작은 최악의 악수를 두고 있었다. 당장은 조용할지 몰라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 태가 되었다.

 휙!

 루벨 자작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병력이 진격해 오는 것이 느껴졌다. 네킨 성에 가르딘이 있는데 또다시 추격군이 온다는 것이 이상했다. 상황판단을 제대로 내리지 못 하고 있을 때, 추격군이 어느새 사방을 포위하듯이 공격 진영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침내 필리언이 병력을 이끌고 네킨 성에 도착하였다. 상당히 느긋하게 추격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병사들의 체력손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상황을 보니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어 보이네.”

 지금쯤 네킨 성을 한참 공략하고 있을 줄 알았던 필리언이었다. 성안에 있는 병력도 살피지 못하고 허둥댄 흔적이 보였다. 방심하다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 분명했다.

 “쳐라!”

 “와아아아!”

 필리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발키리 영지군이 함성과 함께 돌격해 나갔다. 기세를 탄 병사들이 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네킨 성을 뒤에 두고 어디에도 빠져나갈 수 없는 루벨 자작군은 공포로 인해 몸이 굳어 있었다.

 루벨 자작과 귀족들 모두 사색이 되어갔다.

 처처저적! 콰아앙!

  네킨 성의 문이 열렸다.

 안에 머물고 있던 가르딘이 성문을 열고 나왔다. 제법 반항을 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의 반응이 었다.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휘관이 없어서 벌어진 사태였다. 카니발 백작이 있었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지도 몰랐 다.

 가르딘이 선두에 서서 적군을 베어 넘겼다. 적의 중앙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막아서는 존재들은 모조리 다 숨통 을 끊어 놓았다. 가르딘의 목표는 정해져 있었다. 적군의 중앙에 웅크리고 있는 귀족들이었다. 적군은 효과적인 전투를 하지 못했다. 귀족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려고 하는데 병사들이 효율적인 전투를 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삽시간에 중앙까지 뚫고 들어온 가르딘이 루벨 자작과 데우스 남작을 비롯한 귀족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가르딘과는 다르게 두려움에 질려 떨고 있는 루벨 자작과 귀족들이었다. 그들이 가진 능력이 이것뿐이었다.

 발키리 영지군이 포위하자 더 이상의 반항이 무의미하다 는 것을 안 루벨 자작군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 버렸다. 별 다른 피해 없이 일구어낸 값진 승리 였다.

 포위당한 루벨 자작과 귀족들이 사정조가 되었다. 여기서 죽고 싶은 귀족들은 아무도 없었다. 비굴한 표정으로 가르딘에게 부탁했다.

 “살려... 주십시오! 한 번만 살려 주신다면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흥!’

 그따위 마음에도 없는 항복은 듣고 싶지도 않은 가르딘이다. 지금이야 발 앞에 조아리며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만 기회를 잡기만 하면 살쾡이처럼 달려드는 족속들이 이들이 었다. 가르딘은 귀족들의 목숨구걸보다 알고 싶은 게 있었다.

 “카니발 백작은 어디 있지?”

 “네킨... 성으로 오기 전에 해어... 졌습니다.”

 “수장의 위치도 모른단 말인가. 어이가 없군.”

 “그자는 살기 위해 혼자 도주했습니... 다!”

 떨면서 궁색한 변명을 하는 루벨 자작이었다. 카니발 백작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있기에 거짓으로 꾸며대고 있었다.

 가르딘이 귀족들의 눈빛과 얼굴을 살펴보았다. 짱돌 굴리는 소리가 다 들렸다.

 “확실한가?”

 “그... 렇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도망쳤습니다!”

 “참! 웃기지도 않는 말을 잘도 하는군. 필리언! 말해 봐.” 지금까지 루벨 자작군을 추격해 온 자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거짓말을 하다니 어이가 없는 가르딘이었다. 거짓말을 해도 앞뒤가 맞아야 할 것이 아닌가!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면 매를 벌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상자를 이끌고 다른 방향으로 가던데.”

 “아마 우회로를 선택했겠지.”

  가르딘은 대충 짐작이 갔다. 카니발 백작이라면 그 방법을 선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가르딘이 다시 루벨 자작을 쳐다보았다. 바로 뽀록날 거짓말을 한 루벨 자작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너 때문에 네킨 성을 공략할 수 있어 좋기는 하다만, 너는 생각이 있기는 하냐? 그리고 부상자들도 아군일진대 버리고 온 거야! 이거 진짜 몹쓸 놈들이구먼.”

 “어... 쩔 수 없는 상황... 이었습니다!”

 “그럼 네놈이 부상당하면 어쩔 수 없다고 버려도 되는 거냐.”

 “병졸과 저...는 다릅니다! 저는 귀족이고 그들은 평 민......!”

 퍼억!

 대굴! 대굴!

 신분이 다름을 강조하려던 루벨 자작의 턱을 주먹으로 후려쳐버린 가르딘이었다. 더 이상 듣고 있다가는 검으로 찔러 죽일 것 같았다. 포로로 잡힌 병사들은 순간 탄성을 내질렀다. 꽉 막힌 10년 묵은 대변이 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했다. 듣고 있을수록 열불 터지는 것은 병사들이었다.

 “넌 좀 맞아야겠다.”

 ‘항... 복... 한 자에게 이럴 수는... 없습니다!”

 “시끄러! 주둥이 더 나불대면 목을 쳐버리겠다.”

 ‘웁!’

 그 즉시 루벨 자작은 입을 싹 닫았다. 그때부터 가르딘의 일방적인 구타가 진행되었다. 주먹의 방향이 바뀌는 대로 루벨 자작의 몸이 휘말려갔다. 배때기에 한 대 맞자 숨이 턱 막 힌 루벨 자작이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가르딘은 일말의 자비심도 없이 루벨 자작을 지근자근 밟아 주었다.

 퍼퍼퍼퍼퍽!

 꼴사납게 흙바닥을 나뒹군 루벨 자작은 엉망이 되어갔다. 고통이 뼛속 깊이 파고 들어왔다. 충격은 고스란히 다 받고 있는데 기절은 하지 못했다. 가르딘이 교묘하게 위력을 조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한 가르딘이 그제야 멈추었다.

 숨넘어갈 듯한 루벨 자작은 살려 달라고 빌었다.

 “살... 려 주십... 시오!”

 “자기 목숨 귀한 줄 알면 남의 목숨도 귀한 줄 알아야지. 오늘은 이만 끝내지만 다음부터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감... 사합니... 다!”

 철퍼 덕!

 이제야 비로소 기절해 버린 루벨 자작이었다. 그의 생애에 이토록 많이 맞아본 적도 없을 것이다.

 가르딘의 시선이 우물쭈물하고 있는 귀족들에게 향했다. 귀족들은 설마 하는 심정이 었다.

  루벨 자작처럼 무식하게 때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가르딘이다. 그냥 넘어갈 위인이 아니었다. 강자에게는 자비롭고 약자에는 한없이 강해진다.

 “밟아!”

 “충!”

 “살... 려 주십시오!”

 가르딘의 지시에 의해 기사들이 나서서 귀족들을 잘게 썰어 주었다. 다시는 못된 짓 못 하도록 있는 힘껏 밟았다. 개 중에 죽는다면 그것도 지 팔자였다. 형편없는 귀족들의 행태 에 기사들은 감정이 실려 있었다.

 퍼퍼퍼퍼퍼퍽!

 시끄러운 격타음이 들리며 귀족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가르딘은 포로로 잡은 병사들을 성안으로 데려가도록 하고, 귀족들과 기사들은 특별히 지하 감옥에 가둬두도록 명령했다. 선동하는 귀족들과 기사들만 없다면 병사들이야 언제든지 회유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 즉시 전력에 보템이 될 수 있기에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너는 성안에서 대기하고 있어. 내가 병사들을 이끌고 능선에서 매복하고 있을게.”

 능선이라고 해봐야 간신히 사람을 감출 수 있을 정도의 높이다. 또한 대부분이 평지이기에 기습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가르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습은 수가 적거나 전투력이 떨어질 때나 하는 것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그런 방법을 펼칠 이유는 없었다.

 “변복하고, 카니발 백작을 기다려! 그는 신중한 인물이니 쉽게 다가오지는 않을 거야.”

 “그가 어떻게 나올 것 같냐?”

 “현명하다면 피를 보지는 않겠지.”

 “아니라면.”

 “다 죽는 거지.”

 투항하지 않는 자를 생포하는 것은 죽이는 것보다 더 많은 희생이 따른다. 가르딘은 적을 생포하기 위해 발키리 영지군을 희생시킬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가르딘은 적을 위해 아군을 희생시키는 자가 아니다. 굳이 죽겠다는 자를 설득하고픈 마음도 없다. 특히 카니발 백작은 나중에 귀찮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컸다. 이 기회에 싹을 잘라 버리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다만 최악의 선택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젯밤의 싱거운 전투가 끝이 나고 날이 밝아왔다. 수평선 아래에 숨어 있던 태양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평야를 비추는 태양의 그림자 길게 늘어섰다. 푸른 평야가 일순간 붉게 보였다. 밤에 내린 차가운 이슬이 반사되어 옥처럼 청아한 빛을 내었다. 시끄러운 밤과는 다른 차분함이 느껴지는 아침의 상쾌함이 느껴진다.

 저벅! 저벅!

 전진하는 발걸음 소리가 조용한 평야를 조금씩 흔들어 놓았다. 7천의 병력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잠을 자지 못한 병사들은 체력적으로 많이 피곤해 보였 다. 그들을 이끄는 카니발 백작은 말을 타지 않고 병사들과 같이 걸었다. 부상병을 힘겹게 부축하는 병사들에게 편한 모 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과 같이 간다는 모습 을 보여주어야 한다, 단결력은 말만 해서 생기지 않는다. 행동이 받쳐주어야 마음에서 우러나는 단결력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카니발 백작은 병사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제 네킨 성에 다 왔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다. 목적이 있어야 병사들도 힘을 낼 것이다. 평야에 우뚝 솟아 있는 네킨 성의 장대한 풍경이 드러났다. 태양을 등지고 서 있어서 그런지 광휘가 비취는 것 같았다.

 처억!

 선두에서 병력을 이끌던 카니발 백작이 정지신호를 보냈다. 어딘지 모르게 너무 조용했다. 언뜻 느껴지는 일말의 불안감이 카니발 백작의 발목을 잡았다. 예전부터 이런 느낌이 들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었다.

 카니발 백작이 눈에 힘을 주어 네킨 성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붉은색.’

 네킨 성 꼭대기에는 깃발이 꽂혀 있는데, 하루를 기준으로 시간마다 깃발의 색이 바뀌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카니발 백작이 직접 지시한 일로 귀족들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깃발의 색이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었다. 깃발을 관리하는 병력을 따로 빼서 확실하게 명령을 해놓았다. 깃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엄중 처벌하겠다고 하였다.

 ‘시간이 지나도 색이 바뀌지 않았다는 말은 변고가 있다는 뜻인데.’

 의심이 들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언가 이상한 감각이 카니발 백작의 뇌리를 강타했다. 한번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자 성 주위를 꼼꼼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전투의 흔적이 지워지기는 했어도 남아 있는 흔적들이 보였다. 밤중에 정리하였기에 모든 것을 다 지울 수는 없었다. 전투가 벌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주변을 정리해서 눈치 채지 못하게 하였다. 카니발 백작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모두 후퇴하라!”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적이 네킨 성을 점령하고 자신을 기다린 것이다. 적의 함정이라는 것을 알자 다급해졌다. 너무 깊숙이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부상자를 이끌고 도망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네킨 성에서 주변을 관찰하던 필리언은 적이 눈치 챘음을 발견했다. 병력을 급히 뒤로 물리는 것을 봐서는 확실했다.

 “제법 빠르게 눈치를 챘는데.”

 생각보다 빨리 카니발 백작이 눈치를 챘다. 솔직히 더 가까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성안에 뭔가 표시를 해놓았을지도 모르겠군.”

 자신만 아는 신호체계를 만들어 놔서 알아냈을지 모른다고 판단한 필리언이었다. 필리언은 그 즉시 성문을 열라고 했다. 적이 알았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적을 추격해서 잡아 들이면 되었다.

  성문이 열리는 것을 본 카니발 백작은 다급해졌다. 평야지대로 피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밤새 행군으로 지친 병사들이 적의 정예병을 막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한 부상자들을 이끌고 평야로 피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카니발 백작이 능선으로 방향을 정했다. 능선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늦춘다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능선으로 이동해라!”

 기사들과 병사들이 부상자를 이끌고 능선으로 진군했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 앞뒤를 모두 파악하기가 불가능했다. 카니발 백작은 지금 선택한 방법이 최선이라고 보았다.

 평야에 하나밖에 없는 능선에 다다를 때였다. 능선 위에서 뜻하지 않은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일당백의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날카롭게 벼린 칼날 같은 기세가 카니발 백작군의 기세를 꺾어 놓았다.

 카니발 백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역시!”

 적은 가르딘 후작이다. 그라면 자신이 능선으로 도주하려 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가르딘 후작이라 고 해도 능선에 병력을 배치하여 적을 포위했을 것이 분명했다.

 능선 위에서 중년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중년인은 날개를 활짝 펼친 피닉스가 그려진 은백색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만면에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소풍날 산보를 즐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찌 보면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이 기도 하고, 때론 능글맞아 보이기도 했다. 전쟁이라는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카니발 백작 은 그가 바로 가르딘 후작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소름끼치도 록 무서운 전략을 짠 사람 같지는 않지만 은근히 퍼져 나오 는 아우라가 장내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자네라면 이곳으로 올 것이라 예상했지.”

 “가르딘 후작님이시군요!”

 “그래도 다른 귀족들보다는 낫군. 그놈들은 내 인기를 모르는 촌놈들이었어.”

 “그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자네 사정도 좋지 못한데 그런 놈들을 챙기는 것인가!” 사방이 포위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카니발 백작은 최대한 차분함을 유지 했다. 냉정하지 못한 판단으로 인해 병사들이 모두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냉정함을 유지한다고 해도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싫든 좋든 제가 책임자입니다! 그들의 생사를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겠군. 그 답례로 알려 주지. 그놈들 모두 잘 지내고 있네.”

 가르딘의 말은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었다. 죽지 않고 모두 살아 있다는 것은 항복했다는 뜻이 되었다. 귀족들이 저항했다면 모두 살아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카니발 백작도 예상은 했다. 그러나 막상 진짜로 항복했다는 것을 알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냥 죽이시지 그랬습니까!”

 “나는 포로에 대한 예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네. 나처럼 교양 있는 귀족이 그런 몰상식한 짓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가르딘의 뒤에서 듣고 있던 사이론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거렸다.

  ‘교양이 그렇게 높아서 절 개 잡듯이 갈굽니까!’

 가르딘에게 당한 것아 많은 사이론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가르딘이 교양 높은 귀족이라면 자신은 신의 마음에 근접했다고 보아야 했다.

 가르딘 후작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권고를 해주었다.

 ‘항복하게. 그럼 자네를 비롯한 병사들의 목숨을 보장해 주겠네.”

 “제가 신의를 배반하는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아니, 자네는 현명하고 강직하네. 또한 병사들을 무척이 나아끼지.”

 오싹!

 카니발 백작은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한 번도 보지못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을 거울처럼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말을 해도 가르딘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아야 했다. 이런 기분은 생애 처음이었다.

 "항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알면서 묻는 건가. 그럼 답해 주지. 모두 죽는다.”

 “부상자들까지 죽이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어찌 그런 잔인한 짓을!”

 “난 시간 질질 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는 확실한 인질이 있는데 구태여 돌아가는 방법을 선택하는 게 현명한 지휘관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 가! 난 가끔은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전장에서는 현실적인 사람이 되지. 선택은 자네가 하게. 충의를 지키다 병사들을 모두 죽일지, 아니면 항복해서 병사들을 살릴지 그 건 전적으로 자네의 몫이네.”

 “하아!”

 카니발 백작은 저절로 탄성을 터뜨렸다. 상대는 그가 생각 하는 것 이상의 무서운 인물이 었다. 철저하게 냉철하며 일말의 자비심도 없었다. 가르딘 후작의 웃는 모습이 웃는 것처 럼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결사 항전하면 반드시 죽일 것이다.

 “후작님은 무서운 분이십 니다.”

 “그런가, 난 평소에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군. 팔불출이라는 소리는 자주 듣기는 하네.”

 “시간을 달라고 하면 주지 않겠지요!”

 ‘당연하지. 자네 같은 여우에게 시간을 줘봤자 나만 손해지.”

 가르딘과 카니발 백작의 간격이 20보 정도였다. 가르딘은 말을 하면서도 조금씩 걸어서 간격을 좁히고 있었다.

 “거절하면 저부터 죽이실 작정이었군요.”

 “알아챘나. 자네만 죽이면 나머지야 오합지졸이지. 더군다나 만일에 자네가 살아서 도망치기라도 하면 내가 조금 위험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카니발 백작이 죽어버리면 지휘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가뜩이나 지쳐 있는 병사들은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선택이라는 기로에 선 카니발 백작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굴레에서 벗어나 웅지를 펴보려고 했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막혀 버린 상황이 되었다. 3황자에 대한 충성심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자에 대한 의리와 자존심이 쉽게 항복을 허락하지 못하게 했다.

 “권력이 그렇게 갖고 싶은가.”

 뜬금없는 가르딘의 말에 상념을 깨운 카니발 백작이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권력을 쫓아 이곳으로 오지 않았는가. 그깟 권력이 뭐라고 그렇게 쫓아다니는지 나는 이해를 못하겠군.”

 “일개 남작가에서 후작의 반열에 오르신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브라이언 남작가의 가출한 막내에서 후작위까지 오른 가르딘이다. 한마디로 개천에서 드래곤 탄생한 격이다.

 “자네는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나?”

 “솔직히 말을 하길 바라는 겁니까?”

 “그렇다네.”

 “귀족으로서 끝의 반열에 올라서고 싶습니다.”

 귀족이라면 당연히 품고 있는 마음이다. 카니발 백작은 자 신을 속이지 않았다. 물론 가르딘 같은 별종도 가끔가다 태어나기도 한다.

 “솔직하군. 그래서 자네가 마음에 들어. 하지만 여기서 자네가 항전을 선택하면 목표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겠지.”

 “이도저도 할 수 없게 만드신 분이 제 신념까지 흔들어 놓으시는군요.”

 가르딘은 되도록 카니발 백작이 항복하기를 권유하고 있었다. 물론 항전한다면 마음 아프지만 단숨에 숨통을 끊어 놓아 줄 생각이다. 대신 한순간에 끝을 내주는 자비를 베풀 어 줄 것이다.

 타탕!

 카니발 백작이 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의 뒤에서 베르 칸트가 분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카니발 백작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혼자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분전했을 것이다. 병사들 때문에 검을 내려놓고 항복을 선택하는 카니발 백작 의 분한 마음이 느껴졌다.

 “항복하겠습니다.”

 “역시 현명해.”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비참하게 전투에 패한 저는 패전지장에 불과합니다.”

 “그렇겠군. 그리고 미안하지만 자네는 포로교환이 안되네.”

 “알고 있습니다.”

  카니발 백작 같은 인재를 그냥 놔줄 수는 없다. 적에게 보내느니 죽이는 게 나은 존재다. 가르딘은 교전이 있기는 했지만 별 다른 피해 없이 네킨 성을 점령할 수 있었다. 이로써 제국의 서북부지역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르딘의 네킨 성 점령소식은 1황자와 3황자에게 전달되었다. 소모적인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 네킨 성 공략의 성공 은 1황자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그와 반대로 3황자 진영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갑게 얼어가고 있었다.

 러쉬 황자는 이번 작전을 지시한 파스트론 공작을 치하했다. 작전은 비밀리에 이루어졌고, 가르딘 후작이 적절한 공략을 해주었다. 파스트론 공작과 가르딘 후작이 아니 라면 쉽지 않은 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파스트론 공작의 선견지명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저는 그저 지시를 내렸을 뿐입니다. 일을 성사시킨 사람은 가르딘 후작입니다.”

 “가르딘 후작이 벌써 2번이나 제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군요. 피닉스기사단의 기 사다운 능력입니다.”

 “황공하옵니다.”

 가르딘은 네킨 성을 정리한 후 안정이 되면 펠칸 성으로 이동하겠다고 소식을 전했다. 그와 함께 네킨 성에서 잡아들인 귀족들에 대한 처분 권리를 부여해 달라고 하였다. 승전 을 올린 전공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들어주어도 무방했다.

 “가르딘 후작의 뜻을 존중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빨리 보았으면 좋겠군요.”

 서북부에 대한 통제력 하나를 잃어버린 다마트 황자 진영 은 조용했다. 마치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귀족들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 당장 네킨 성을 다시 공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 타 공작이 지속적으로 주요 거점을 공격하기에 병력을 따로 밸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어설픈 병력을 파견했다가 또 다시 패배를 하면 내전의 향방이 급격하게 변할 수 있었다.

 네킨 성 공략으로 인해 가장 크게 분노한 사람은 네벨리 언 공작이었다. 그는 가르딘 후작이 전공을 올렸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로 인해 네벨리언 공작의 화가 풀릴 때까지 빌링 턴 백작이 숨을 죽여야 했다.

 그에 반해 다마트 황자는 침착하게 대응할 것을 귀족들에 게 당부했다. 어설픈 도발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자고 설득하였다. 네킨 성보다는 적의 주요거점을 공략하는 방법을 찾도록 했다.

 “던져준 것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지만 이처럼 빠르게 공략할 줄은 몰랐군요.”

 “죄송합니다.”

 “카니발 백작이라면 제법 뛰어난 자인 줄 알았는데.”

 “토착세력을 규합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했었던 것 같습니다.”

 “가르딘 후작의 능력이 생각 이상이군요. 그를 너무 얕보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니 그리 초조해할 것 없습니다. 제가 그리는 전 쟁의 향방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씨익!

 코워드 공작과 카니발 백작 모두 3황자에게는 주력이라고 할 수 없다. 주력은 아직 보존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주력과 주력이 정면충돌을 하게 되면 어찌될지 행방을 알 수 없으나 지금부터 전략대로 움직인다면 승부는 이긴 것이나 마찬가 지였다.

 “그럼 계획대로 진행을 하세요.”

 “마이어 공작에게 뜻을 전하겠습니다.”

 “마이어 공작이라면 알아서 잘 하겠지요.”

 북방의 거친 호랑이 카론 마이어 공작. 그의 진정한 실력은 전쟁에서 나온다. 기본적인 검술 실력 이외에도 병력을 이끌고 적을 광폭하게 유린하는 능력은 제국 제일의 공작이 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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