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1/93)

   @@[제4장 드래곤 나이트와의 재회@@]

 카이로만 제국의 본격적인 내전이 진행되었다.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제국을 반으로 가르며 전쟁에 참여하였다. 내전의 양상은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제압하는 형상이 아니었다. 팽팽하게 진행이 되며, 밀고 밀리는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러쉬 황자는 발리스타 공작, 파스트론 공작과 함께 펠칸 성에서 전장을 지휘하였다. 펠칸 성은 제국의 주요거점을 통과하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요지로써 이곳이 뚫리게 되면 병력지원과 병참지원이 힘들어지게 된다. 군사적으로나 지형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곳이기에 매우 견고한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중으로 된 성벽 곳곳에 마법방어진이 설치되어 침투 자체가 어렵게 되어 있다.

 러쉬 황자는 펠칸 성을 주변으로 병력을 분포시켰으며, 적군과 부딪치는 거점으로 빠르게 이동하여 전투를 벌일 수 있게 하였다. 적의 중요지점을 빼앗는 것이 선결과제이기에 빠른 이동이 필수였다. 한 개의 성을 점령하여 그 성을 중심으로 다시 전투를 벌이며, 적의 거점을 차례차례 선점하여 전체적인 힘을 소모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한순간에 적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러쉬 황자는 다마트 황자를 비겁하게 죽일 수가 없다. 만 약 암살이나 독살에 의해 다마트 황자가 죽게 되면 이제까지 러쉬 황자가 의심받고 있던 모든 것들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제국의 황제가 되어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본인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왕 내전이 벌어졌다면 정정당당하게 전략을 구사하여 다마트 황자를 이기고 싶었다.

 “황자님의 마음은 알지만 전쟁에 정정당당함은 없습니다. 이번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굳이 일부러 암살자를 보낼 필요는 없다고 해도 기회가 된다면 냉정한 판단을 내릴 필요는 있습니다. 이점을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두 분 공작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 저도 형제간의 정에 끌려서 여러분의 의견을 무시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혈육을 죽여야 한다는 말을 하는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도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달라도 같은 핏줄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러쉬 황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은 이해와는 별개로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승자에게는 영광을 패자에는 비참함만이 남을 것이다. 전쟁에서 지게 되면 둘 중 어느 황자라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가르딘 후작이 대승을 거뒀다니 다행이군요.”

 “그렇습니다. 내전의 시작을 알리는 승리입니다. 무엇보다 값진 일을 해냈습니다.”

 파스트론 공작은 대승에 대한 축하서신을 가르딘에게 보냈다. 또한 그와는 별개로 출병에 관한 지시를 내렸다. 내전은 이제 막 시작이 되었다. 서전을 알렸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결국 최후의 승자가 모든 영광과 명예를 가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팽팽한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전력이 보강되어야 한다. 가르딘의 출전이 한시라도 빨리 요구되었다. 내전이 오래될수록 국력의 소모는 당연한 일이다. 지루한 소모전이 계속되면 카이로만 제국의 기틀이 흔들릴 수 도 있었다.

 “그런데 가르딘 후작이 보내온 기사와 병력이 예상보다 적군요.”

 “코워드 공작이 아직 살아 있는 상황입니다. 영지의 모든 병력을 다 출전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가르딘 후작으로서도 최선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아쉽군요. 코워드 공작을 사로잡거나 죽였다면 일이 더 쉬워졌을 텐데.”

 “너무 많을 것을 원하게 되면 큰일을 도모하지 못합니다. 이번 전투는 이 정도로 만족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가르딘 후작의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그저 아쉬워서 해본 말입니다.”

 “황자님의 마음을 안다면 가르딘 후작도 황자님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러쉬 황자와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이 대승을 축하한다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가르딘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일의 핵심에 다가갈수록 위험은 더 많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제쯤 가르딘 후작이 도착하나요?"

 “거리가 멀어서 제법 오래 걸릴 겁니다.”

 -빨리 왔으면 좋겠군요.”

 “곧 출병한다고 연락이 올 것입니다.”

 가르딘은 출병 준비로 인해 한창 바쁜 상태였다. 영지의 경영이야 파멜라가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 분명하기에 상관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고 떠나야 했다. 무엇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밤에 라이나와 불타는 시간을 오래 보내기 위해서 낮 시간 동안 모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파멜라, 루인돌프 장로가 진법 설계에 도음을 주겠다고 하니 영지의 주요 길목에 진법과 함정을 설치해.”

 “알겠어요.”

 “그리고 저택 주변에도 진법을 만들고,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알려 주었으면 해.”

  “알았다니까요!”

 파멜라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언성이 높아진 파멜라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할 말을 하는 가르딘이었다. 그런 사소한 일에 관심 가져줄 시간이 없다는 듯했다.

 “유타는 저택 주변을 삼중으로 방어하고 그 주변에 얼쩡거리는 위험한 놈들을 모두 잡아다가 감옥에 처넣어!”

 “알겠다, 이놈아! 그만 좀 해라! 벌써 몇 번째인 줄 알아!”

 “안 돼! 기사들과 병사들의 훈련도 철저하게 확인해야 돼!”

 필리언, 유타. 갈라, 파멜라는 가르딘 때문에 엄청나게 바빴다. 영지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라이나와 브리안을 지키기 위해서 가르딘은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확인을 하고 난 후에야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사람이 한두 번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겠지만 그 이상이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가르딘으로 인해 필리언, 갈라, 유타, 파멜라가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출전 병력과 무기, 식량상태를 체크했겠지.”

 "당연히 했지. 벌써 5번이나 확인했다. 그만 좀 하면 안 되냐!”

 “알았으니 이만들 나가 봐. 나가면서 안젤리카 좀 불러 줘.”

 그제야 동기들과 파멜라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동기들과 파멜라가 나가고 난 후 조금 있다가 안젤리카가 공간이동 해왔다. 집무실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가르딘이 안젤리카를 유난히 반갑게 맞이했다.

 “무슨 일이세요?”

 “영지에 마법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너도 알고 있을 거야.”

 “그런데요.”

 “이번에 마법물품이 개발되었다면서.”

 “공간이동 스크롤과 치료 포션을 만들었어요.”

 “몇 개만 줬으면 하는데, 무리한 부탁인가.”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만드는 것 모두 영주님이 사용해도 저는 괜찮아요.”

 마법물품은 상당히 비싸다. 만들기도 어려울뿐더러 시중에 나오는 제품도 그다지 많지 않다. 한정수량의 마법아이템을 공짜로 달라는 것이 조금 미안했던 가르딘이었다.

 그런데 안젤리카가 흔쾌히 허락하자 입이 귀에 걸렸다. 공짜로 마법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특히 치료포션은 전투 시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다. 부상당한 기사를 치료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특급포션은 일부 귀족들만 사용하는 귀중한 마법아이템으로 평가 받는다.

 “그럼 기사단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이동 스크롤과 치료포션을 가져와 줘.”

 “알겠어요.”

 “그리고 말이야. 네가 데리고 있는 마법사들 수준이 어느 정도나 되지?”

 “6서클에 이르렀어요.”

  별로 대단하지 않다는 듯한 안젤리카였다. 드래곤 입장에 서야 6서클 마법사가 대단하게 보이지 않겠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6서클 마법사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힘의 차이가 현격해지기 때문이다.

 “몇 명이나 6서클인데?”

 “모두요. 그중에 1명은 7서클 유저예요.”

 가르딘은 뜻하지 않게 보물을 얻은 듯한 표정이었다. 가르딘은 자신이 떠나기 전에 마법사들을 저택에 살게 해서 라이나와 브리안에게 벌어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려고 했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은 가르딘은 그제야 라이젠의 안부를 물었다. 별로 알고 싶어 하는 듯한 말투는 아니었다.

 “요즘에 라이젠 님은 뭐 하시니?”

 “별다른 것은 없어요. 그저 노멀 급 타이탄을 만들었다고 하시네요. 지금쯤 완성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냐.”

 별거 아닌 듯한 대답이었다. 사실은 속으로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돈 좀 빌려 보겠다고 라이젠을 찾아간 후 오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었다. 그사이에 벌써 타이탄을 완성시킨 것이다. 정말 대단한 집중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승리 아니, 드래곤의 승리였다.

 ‘이거 구미가 당기네.’

 타이탄을 대외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일단 영지에 있다면 안심이 되었다. 만일의 사태에 사용할 수 있는 전략적 병기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타이탄을 소유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출병 전에 안부나 전해야겠다.”

 “가시게요?”

 “같이 가자꾸나.”

 “그러세요.”

 안젤리카는 별 뜻이 없이 가르딘과 같이 라이젠의 레어로 공간이동했다. 레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으로 공간이 동한 안젤리카였다. 가르딘은 레어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이전보다 꽤나 까다롭게 마법진 과 가디언을 배치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 쉽지 않은데’

 몰래 들어가기 위해서는 몇 곳을 통과해야 하는데 보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방법이 있다면 부숴 버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 침입한 것을 알 수 있을 것 이다. 드래곤 레어를 일족 드래곤들이 건드리는 것은 금기였다. 있다면 다른 존재들뿐이다. 그중에서도 라이젠의 레어를 알면서, 레어의 마법진을 강제로 부술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다. 있다면 가르딘뿐이다. 범인이 한 명으로 압축이 된다. 딱 걸릴 범행을 저지를 정도로 가르딘은 멍청하지 않다.

 ‘나중에 금 좀 더 떼어 가려고 했는데, 어렵겠어.’

  몰래 가서 금을 조금 떼어 가려고 했건만 어렵다는 것을 파악했다.

 “들어가요.”

 “그러자.”

 안젤리카가 기운을 발산하자 마법진이 저절로 열렸다. 라이젠이 안젤리카의 기운에 반응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대기 중에도 마력진이 설치되었다는 뜻이 된다. 이중 삼중으로 방어를 해놓은 것이다. 가르딘이 판단한 것보다 더 대단한 고단위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양반이 아주 작정하고 만들었나 보군.’

 가르딘이 다시는 몰래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통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타이탄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 된다.

 '그래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설마 안젤리카를 대동하고 들어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가르딘은 안젤리카의 뒤에 착 달라붙어서 기척을 죽였다. 전신의 기운으로 안으로 갈무리하여 발산되는 기운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오오!’

 두 사람이 타이탄을 보며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오랜 시간 노력한 연구의 산물이 드디어 완성이 되었다. 타이탄의 크기는 8미터에 좌우 폭은 4미터였다. 거대한 기체를 실험하기 위해서 동굴 내부에 마련된 광장에 이동했다.

 하지만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핵토르 공국 타이탄의 원형기체는 기사만 태울 수 있는 나이트형 타이탄이 었다. 가이안의 핵심구동장치를 연구하여 만들어 냈기에 아직은 마법사들이 탈 수 있는 매직형 타이탄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것은 더 연구를 해봐야 하는 일이었다. 우선은 나이트형 타이탄을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해하는 라이젠이었다. 멜버른 후작은 감격적안 표정을 지으면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후작이라는 체면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역시 라이젠 님이십니다! 드래곤 역사상 라이젠 님처럼 현명하신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라이젠 님을 모실 수 있는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방정맞은 칭찬이기는 하지만 라이젠은 기분이 좋았다. 칭찬 싫어하는 인간 없듯이 칭찬 싫어하는 드래곤도 없었다.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라 이젠이었다.

 “이제 시동을 걸어봐야 하는데, 기사가 필요하단 말이야.”

 기사도 보통 기사로는 만족할 수 없다. 최소한 익스퍼트 최상급에서 마스터 급은 되어야 한다. 완벽한 구동과 활용을 위해서는 권장사양이 마스터였다.

 그런데 마스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존재도 아니고 구하기가 어려울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렇다고 마스터를 함부로 잡아오기는 쉽지 않았다. 현재 마스터는 각 제국과 왕국의 주요한 위치에 있다. 잡아들이게 되면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가 뒤틀릴 수도 있는 일이 된다. 가급적이면 아무도 모르게 마스터를 데리고 와야 한다.

 우웅!

  마법진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라이젠의 기감에 레어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기운을 확인해 본 라이젠은 안심 했다.

 “안젤리카가 왔구나! 나의 놀라운 업적을 보면 안젤리카도 분명 놀라겠지!”

 “라이젠 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아가씨도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그렇겠지.”

 때마침 딸이 들어 왔다는 것에 기분이 들뜨기 시작한 라이젠이었다. 그는 속으로 안젤리카가 왔을 때 어떤 말을 해야 아버지의 기풍이 살아날지 고민해 보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 좋아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딸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라이젠이었다.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은 라이젠이 안젤리카가 올 때를 기 다렸다. 조금만 기다리다 보면 저 앞 코너에서 안젤리카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어서 와서 아비의 위대한 업적을 보아라!’

 저벅! 저벅!

 사뿐히 걷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젠은 안젤리카가 실험장 입구 코너로 다가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타이탄을 볼 수 있도록 배치가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안젤리카가 코너를 돌아 실험장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라이젠이 자랑스럽게 타이 탄을 가리켰다.

 “드디어 내가 노멀 급 타이탄을 만들어내었다!”

 “그 짧은 시기에 다 만들어내다니 정말 대단해요!”

 노멀 급 타이탄은 연습용 타이탄인 엑서스 급을 넘어서는 타이탄으로 진정한 타이탄 기술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타이탄 연구의 실마리를 잡은 단계에 들어선 라이젠이었다. 그는 딸이 기뻐하는 모습에 덩달아 흐뭇해졌다.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때였다.

 ‘호오!’

 안젤리카를 제외하고 코너를 돌아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이 있었다. 라이젠의 표정이 급격히 경직되어 갔다. 모습을 드러낸 가르딘은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타이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라이젠의 심기가 언짢아졌다.

 ‘너 보라고 만든 것 아니다!’

 가르딘이 타이탄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치미는 라이젠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르딘이 어떻게 마법진과 가디언을 피해 이곳까지 왔느냐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번에 침입이 있은 후 오랜 고심 끝에 모든 마법지식과 마법력을 동원하여 레어에 마법진을 만들어내었다. 이제는 어떤 존재도 침입이 불가능할 것으로 확신했다. 그런데 버젓이 가르딘이 나타났다. 그것도 자신의 기감에 잡히지 않은 채로 말이다.

 기감에 잡히지 않아?’

 갑자기 놀랐다. 라이젠이 유심히 가르딘을 살펴보았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보유하고 있어야 할 기척과 오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은밀히 디텍트 마법을 사용해 보았다. 그런데도 잡혀야 할 기운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가르딘의 기척을 놓쳤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라이젠은 고도의 집중을 했다.

 가르딘은 라이젠이 자신을 노려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기척을 죽이는 방법은 아직 이 세상에 보급이 되어 있지 않다. 특히 자신처럼 완벽하게 기척을 죽이는 것은 결코 쉬운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을 중심으로 예민하게 파고드는 라이젠의 기운을 느끼자마자 가르딘은 기운을 풀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무형의 기운을 조금 더 강하게 운용했다.

 휘익!

 움찔!

 기운이 갑작스럽게 강하게 퍼지자 집중하고 있던 라이젠이 놀라 뒷걸음을 쳤다. 너무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가르딘의 무형지기에 약간의 타격을 받았다. 놀라서 뒤로 물러선 라이젠은 웃고 있는 가르딘을 보자 이가 갈렸다.

 ‘젠장! 또 당했다.’

 일부러 기운을 발산했다는 것을 안 것이다. 분하기 짝이 없었다. 매번 당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이번 에도 어김없이 한 방 먹었다.

 라이젠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기척을 죽이더라도 마법진은 안젤리카의 기운에만 반응이 되도록 되어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들어왔는지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들어왔냐?”

 “안젤리카 뒤를 따라 왔습니다.”

 “그... 렇구나.”

 듣고 나니 의외로 답이 쉽게 나왔다. 안젤리카의 기본적인 영역 안에 파고들어 따라왔다는 것이다. 쉽지는 않지만 기척 을 숨기는 재주로 봐서는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대답을 듣자 라이젠은 허탈한 심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안젤리카마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법진을 설치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런데 대단하군요. 그사이에 타이탄을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흥! 이 정도는 기본이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잔뜩 거만한 표정을 짓는 라이젠이었다. 타이탄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가르딘의 말은 라이젠의 들뜬 기분에 찬물을 부었다.

 “가이안이 플레틈 급으로 알고 있는데, 노멀 급인가요? 뭐 그 정도도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최고룡 드래곤의 수준을 알 수 있는 날이 됐군요. 아주 대단하군요!”

 빠직!

 얼핏 들으면 칭찬 같지만 빈정거린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플레툼 급 타이탄으로 고작 노멀 급을 만들었다는 비아냥거림이었다. 듣고 있던 라이젠의 이마에 붉은 힘줄이 굵 게 튀어나왔다. 기분 잡치게 만드는 단어 사용이 능수능란해 진 가르딘이었다. 라이젠의 심기를 충분히 어지럽힐 수 있었다. 슈피리어 급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 과거의 일도 있으니 두말하지 못하게 된 라이젠이었다. 화는 나지만 뚜렷하게 화를 낼 명분이 없어진 라이젠의 말은 두서없고, 엉성해졌다.

 “이... 건 그저 연습용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그저 움직이는지를 확인하려고 했을 뿐이야! 내가 이런 고철 수준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

 “역시 라이젠 님이십니다. 저는 이미 그런 줄 알았습니다. 라이젠 님이 이 정도에 만족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당... 연하지! 난 슈피리어 급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긴 그 정도로 대단하신 분이 노멀 급이 눈에 들어오겠 습니까! 하지만 저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르딘이 다시 대단하다는 듯이 오버하고 있었다. 말에서 느껴지는 어감이 어째 이상해진다는 것을 파악한 라이젠이었다.

 “너 설마!”

 “왜 그러십니까! 설마 이런 고철덩어리가 아까워서 그렇습니까?”

 “그... 건 아니지만!”

 라이젠은 그제야 또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부터 약 올리는 것을 발견했으면 입에 담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내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라이젠의 입장이 엄 청나게 난처해졌다.

 ‘이놈이 타이탄을 노리고 왔구나!’

 어찐지 오늘 같은 날 찾아온 것부터서 수상했었다.

 “그래도 타이탄인데!”

 “고철이라고 평가받은 타이탄이 서럽게 우는 것 같습니다.”

 ‘뭐 이런 개 같은 자식이 다 있어!’

 하는 말마다 반박하기 궁색해지는 라이젠이었다. 말을 꺼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때마침 멜버른 후작이 나섰다.

 “네 이놈! 감히 라이젠 님에게 무슨 망발이냐! 네놈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구나!”

 “넌 뭔데 자꾸 나서냐. 가만히 좀 있으면 안 되냐.”

 이전에도 그렇고 매번 나대는 것이 별로 좋게 보이지 않는다. 충성도 정도 것 해야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주제도 모르고 나서다가 제일 먼저 골로 가는 수가 있다. 멜버른 후작 이 바로 그와 같았다.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는 악마가 따로 없구나! 내가 직접 네놈의 악행을 단죄해 주겠다!”

 “주저 리주저 리 떠들지 말고 그냥 덤벼라. 상대해 주마.” 귀찮으니 빨리 해결하고 다음 일을 진행시키려는 가르딘 이었다. 시급한 것은 만들어진 타이탄의 확보였다. 다된 빵 에 재 뿌리는 짓을 하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멜버른 후작 따위야 한 방이면 해결이 난다.

 멜버른 후작이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마력을 모았다. 이 전처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라이젠과 안젤리카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멜버른 후작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가르딘의 상대가 되지 못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드래곤도 가볍게 상대하는 가르딘 이 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당할 줄 알면서도 대드는 멜버튼 후작의 굳은 심지는 칭찬해 줄 만했다.

 -윈드커터(바람의 칼날).

 쌔애앵!

 작은 공간에서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윈드커터 마법을 사용하였다. 8서클 마력으로 압축한 바람의 칼날은 오러 소드 에 맞먹는 위력을 가졌다. 한순간에 50여 개의 바람의 칼날 이 가르딘을 향해 날아갔다.

 빠르게 날아오는 윈드커터를 향해 가르딘은 주먹을 내질 렀다. 일권에 만권의 변화가 펼쳐졌다. 무영신권 의 절기 중에 하나인 일수만권의 초식이었다. 수만의 권영이 날아오는 윈드커터를 박살내 버렸다.

 파파팡! 파파파팡!

 일수에 펼쳐지는 권격의 궁극 필살기인 권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검으로 펼쳐지는 검막보다 훨씬 어려운 상급의 기술이었다. 주먹에 실린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얇고 투명한 푸른 장막을 만들어 냈다. 얇은 막에 불과하지만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일수만권에 이어 가르딘의 주먹에서 푸른 기운이 형성되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탄강기의 일종이 무영탄 이었다.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기운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멜버른 후작이 다급하게 이중삼중으로 배리어(방 어)를 형성시켰다.

 쿠구구궁! 쩌저저적!

 한 방 맞은 배리어가 순식간에 금이 가며 부서져 나갔다.

 무영탄을 맞을 때마다 고스란히 충격을 다 받고 있는 멜버른 후작이었다. 다른 마법을 사용할 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 영탄을 막는 것만으로도 모든 마력을 다 소모하고 있었다.

 “크윽!”

 결국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마나역류를 경험한 멜버른 후 작은 뒷걸음치고 말았다.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 오러탄을 1발도 아니고 수십 발씩 계속 날리는 경우는 처음 당해 보았다.

 “질... 수 없다!”

 전번에 어이없이 당하고 나서 고단한 노력으로 절치부심 했다. 이대로 허무하게 또다시 당한다면 라이젠이 베풀어준 은혜(?)를 배반하는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마력을 끌어올 려 가르딘을 노려보았다.

 ‘응?’

 “없다!”

 오러탄이 발사되고 난 후 가르딘의 신형도 쓴살같이 움직였다. 거의 같은 시간대에 이동이 되었다. 그러니 마법사인 멜버른 후작이 보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가르딘의 신형이 좌에서 우로, 뒤에서 앞으로 빠르게 움직여 나갔다. 마치 공간이동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간신히 가르딘의 신형을 발견한 멜버른 후작이 마법을 난사했다. 간단한 마법에서 시작해서 고단위의 마법까지 가리지 않았다. 날리다 보면 하나라도 막겠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제발 좀 맞았으면 하는 심정도 한몫 했다.

 -블리자드(빙설폭풍).

 -볼케이노(용암승천).

 -인페르노(초열지옥).

 8서클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마법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졌다. 가르딘의 신형을 잡아 두기 위해서 볼케이노를 사용한 즉시 윈드커터를 펼쳤다. 두세 가지의 마법을 효율적으로 사 용하고 있었다. 상대하는 자가 가르딘만 아니라면 충분히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가르딘은 멜버른 후작의 마법을 간단한 회피동작으로 피하면서 간격을 유지해 나갔다. 어느 순간 가 르딘의 신형이 멈추었다. 마치 멜버른 후작의 마법에 의해 당혹해하는 모습이었다.

 “이놈! 죽어탓!”

 -익스플로전(화염구).

 멜버른 후작은 연속적으로 3개의 익스플로전을 발사하였다. 고서클 대단위 공격마법을 정면으로 받아내야 하는 절체절명에 처한 가르딘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때와 표정이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씨익!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가르딘이 뒤를 보라고 했다. 어느새 가르딘의 신형이 옆으로 빠져나가 있었다. 익스플로전이 발사되어 나가는 곳에 타이탄이 턱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막 만들어진 타이탄에 8서클 마력이 담긴 익스플로전이 날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멜버른 후작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쏟아내었던 마력을 다시 회수하고, 마법을 디스펠(해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 안... 돼!’’

 급하게 마법을 회수하려고 하니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마법 역작용에 의해 반탄력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멜버른 후작은 최선을 다해서 마법을 다시 회수했다. 하마터면 라이젠이 만들어 놓은 필생의 역작을 망가뜨릴 뻔하였다.

 “클릭!”

 예상보다 심한 반탄력에 정신이 아찔해진 멜버른 후작이 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전신에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려 옷을 적셨다. 순간적인 힘의 과부화와 역류가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비겁한 놈!”

 “원래 세상이 다 그렇지.”

 어느새 뒤를 점령한 가르딘은 멜버른 후작의 목을 가차 없이 내리쳤다. 다시 한 번 목을 맞은 멜버른 후작은 별다른 반 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

 가르딘은 실실 쪼개며 라이젠에게 다가갔다.

 “좋겠어요. 이렇게 훌륭한 수하를 두어서.”

 “빈정거리는 거냐.”

 “아닙니다. 정말 부러워서 그런 겁니다. 당할 줄 알면서도 이처럼 나대는 놈은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흥!’

 저게 뭐가 부러운 녀석의 말투인가. 아무리 봐도 비아냥거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라이젠의 심기가 무척이나 다운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타이탄은 안 돼. 내가 왜 네놈한테 타이탄을 주냐.”

 전에 무슨 말을 했건 타이탄을 만든 존재는 라이젠이었다. 가르딘의 말을 절대로 들어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싫은 것은 싫은 거다. 주인이 싫다는데 어쩔 것 인가! 라이젠도 가르딘이 힘으로 빼앗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르딘은 라이젠이 정공법을 쓰자 곤란함을 느꼈다. 이렇게 되면 달라고 하기가 힘들어진다. 주인이 싫다는데 객이 된 입장에서 떼를 쓰는 것도 보기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 로 물러서기에는 타이탄의 매력이 너무 컸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된다. 밑져야 본전이니 말이다.

 “어차피 노멀 급 아닙니까. 그리고 타이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난 이해를 못 하겠다. 네놈이 왜 타이탄을 노리는지.”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가르딘이 타이탄이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있으나 없으나 강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타이탄이 가르딘에 비해 손색이 있다고 볼 수 있 었다.

 “솔직히 저야 필요 없지만 제 동기들은 필요할지 모릅니다. 영지에 타이탄 하나 있으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아까 도 말했지만 제 동기들은 마스터 입니다. 타이탄의 성능시험 도 확실하게 할 수 있고, 서로 좋지 않습니까.”

 ‘음!, 

 가르딘의 말이 틀리지 않다. 라이젠은 노멀 급에 만족할 생각이 전혀 없다. 성능을 테스트 해보고 타이탄의 능력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스터 급 기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다. 타이탄의 기본적인 수치와 능력을 파악해 야 개선이 가능하다. 라이젠이 흔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빠! 영주님의 말도 틀리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렇기는 하다만.”

 안젤리카가 가르딘에게 힘을 싣자 라이젠의 마음이 급격 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가르딘은 전음을 사용하여 안젤리카 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중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 줄 테니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는 뜻을 전했다. 안젤리카도 유희를 위해서는 가르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선뜻 호응을 해주었다.

 “알겠다. 단, 네가 그것을 움직일 수 있다면 타이탄을 무상으로 주지.”

 “정말입니까?”

 “드래곤은 거짓말을 하지 않네.”

 “저는 항상 라이젠 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게 믿는 자의 눈빛인가.”

 “제 진실한 눈빛을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얄미운 놈에게 한 방 먹이고 싶은 라이젠은 회심의 일격을 준비했다. 라이젠이 내건 조건은 2천 년 동안 한 번도 움직이지 못한 것이었다. 가르딘이 용빼는 재주가 없는 이상 불가능했다.

 ‘내가 타이탄을 줄 것 같아!’

 결국 주기 싫어서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었다.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닌가! 미운 놈에게 빵 하나 더 준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미운 놈에게 왜 빵을 주는가! 주먹을 날려도 부족할 판에.

 “조건이 뭡니까?”

 “자네도 한 번 본 적이 있네.”

 “제가 말입니까.”

 “보면 아니까. 따라오게.”

 라이젠이 데리고 간 곳은 가르딘이 이전에 레어를 구경할 때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장소였다. 가르딘은 이곳에 왜 데려 오는지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무언가 조건을 내세울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짐작만 할 뿐이다.

 가르딘의 시야에 녹슨 고철덩어리가 보이긴 했다.

 '움직여 보라는 게 그 고철덩어리인가!’

 만년석균의 옆에 자리한 오래된 골램을 본 기억이 났다. 가르딘의 짐작대로 라이젠이 골램을 가리켰다.

 “이걸 움직이라고요! 다 낡은 고철 골램을 어떻게 움직입니까?”

 “어허! 이건 자네가 생각하는 골램이 아니네 드래곤 나이 트라고 불리는 마도시대의 타이탄이네.”

 “와’ 정말입니까.”

 놀라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별로 흥미가 동하지도 않는 가르딘이다. 저처럼 낡은 것이 골램이든 타이탄이든 무슨 상관인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썩혀 놔둔 것으로 봐서는 움 직이지 않는 게 분명했다. 괜히 주기 싫어서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하십시오. 이걸 제가 어떻게 움직입니까!’’

 “약속은 약속이네.”

 라이젠은 오랜만에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가르딘이 대단 한 인간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드래곤 나이트를 가동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드래곤도 움직이지 못한 드래곤 나이트였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내건 조건이다. 라이젠의 사악함이 가르딘 못지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가르딘은 라이젠의 표정을 보자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이 대로 포기할 바에는 망가뜨려 버리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지금나 건드린 거지.’

 가르딘이나 브리안이나 성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남이 건드리면 그에 걸맞은 복수를 해주는 성격이었다.

  “아빠! 그래도 저건 조금 심한데.”

 “사나이에게 약속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안젤리카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라이젠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쯤 되면 항복한다는 말이 흘러나와야 했다. 사실 항복하고, 못 하겠다고 하면 타이탄을 줄 용의도 있다. 그러기 전까지는 절대 불가였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자존심 싸움이 시작됐다. 유치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 한 발 물러서면 패배감에 젖어 헤어나오기 힘들다. 누가 이기나 끝까지 가야 한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가르딘은 이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천천히 드래곤 나이트 앞까지 다가갔다. 라이젠은 오기를 부리는 가르딘 에게 빈정거렸다.

 “오기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닐 텐데.”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물론 그렇네.”

 “흐흐!”

 ‘음?,

 가르딘이 웃었다. 그것도 그냥 웃는 것이 아니라 사악한 웃음이었다.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거북한 웃음으로 들렸다. 라이젠은 불길한 예감이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2천 년 동안 신주단지 모시듯이 놓아둔 것을 보니 거짓말은 아니겠지 . 그럼 어디 반응을 한 번 볼까.’

 가르딘이 호흡을 가다듬고, 몸 안에 내재된 힘을 발산했다. 무형의 기운이 가르딘을 중심으로 회오리가 되어 회전하였다. 기운은 점점 폭발적으로 커졌다. 일순간 공터 안을 가득 메우는 매서운 기운이 시위를 장악해 나갔다.

 휘이이잉!

 가르딘이 작정하고 일으킨 기운은 엄청났다. 라이젠조차 그 기운에 움찔거릴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저놈이 뭐 하려는 거야? 서 ... 설마!’

 라이젠의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그에 반해 시위를 장악했던 기운이 점차적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기운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저 가르딘의 몸 안 으로 다시 갈무리가 되었을 뿐이다.

 차갑게 가라앉은 가르딘의 눈빛이 일순간 빛을 뿜어내었다. 그러자 가르딘의 머리 위로 거대한 검이 형상화되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 오른 것이다. 심검보다는 한 단계 낮은 형태의 어검강이었다. 경지가 낮다는 것이 위력과 꼭 상관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파괴력 면에서는 어검강이 훨씬 강력할 수 있었다.

 어 검강에 서린 가르딘의 서릿발 같은 기운이 주변을 압도 했다. 상상 이상의 강렬한 기운이 어검강에서 느껴졌다. 천룡무상신공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자태를 뽐내었다.

 불길함을 느낀 라이젠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자네... 뭐 하려는 건가!”

 “작동시키려면 우선 분해해 봐야 할 것 아닙니까!”

 “뭐?”

 순간 얼음이 되어 버린 라이젠이었다.

 가르딘의 어검강이 드래곤 나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라이젠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가르딘을 말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어검강과 드래곤 나이트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안... 돼!”

 파아아아앙!

 상상 이상의 폭발음이 공터 안을 시끄럽게 울렸다. 드래곤 나이트의 겉면을 뒤덮고 있는 2천 년 동안 쌓인 먼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먼지는 시야를 가리기에 충분했다.

 먼지가 가라앉자 시위는 조용해졌다.

 가르딘은 믿을 수가 없는 표정으로 정 면을 응시 했다. 일부러 조금 과하도록 천룡무상신공을 운용하였다. 그런데도 천 룡무상강기가 실려 있는 어검강이 드래곤 나 이트를 잘라내지 못한 것이다. 일전에 가이안을 부숴버렸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다. 놀라서 일순간 몸이 굳어 버린 가르딘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다.

 “뭐... 야 이건?”

 그보다 놀라운 것은 드래곤 나이트가 천룡무상강기의 기운을 흡수했다는 것에 있었다. 부딪칠 때 일정량의 기운은 흡수하고 나머지 기운은 튕겨버렸다. 자체적으로 기운을 흡 수하고 대항했다는 뜻이 아닌가! 탑승자가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그와 같은 일을 벌이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놀라기는 라이젠과 안젤리카도 마찬가지였다. 가르딘이 사용한 어검강은 드래곤이라도 직접 맞으면 골로 갈 수 있는 위력이었다. 그런 엄청난 위력의 어검강을 드래곤 나이트가 맨몸으로 받아내었다. 오히려 먼지가 털리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깨끗하게 닦인 드래곤 나이트의 외부갑판이 찬란한 빛을 머금었다.

 “후우!”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라이젠이었다. 오랜 시간 지켜온 드래곤의 보고인 드래곤 나이트다. 그것이 한순간에 쓸모없는 고철덩어리가 될 뻔했다.

 ‘저놈 때문에 드래곤 하트 떨어지는 줄 알았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렸다. 가르딘에게는 아직 최대의 무기가 남아 있었다. 전날 황금을 잘라내었던 기술을 사용하 게 되면 드래곤 나이트가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전에 막아야 할 사명감을 느꼈다. 괜한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일 족의 보물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보게! 이건 일족의 보물이네. 좀 소중하게 대하시게!”

 “역... 시 보물이라 단단하군요!”

 가르딘은 심검을 사용할까 고민해 보았다. 만약 심검도 부수지 못하면 완전 개망신이었다. 라이젠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봤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더 이상 해봐야 좋은 소리 듣지 못한다.

  번쩍!

 가르딘과 라이젠이 대화하는 동안에 드래곤 나이트의 감았던 눈이 떠졌다. 붉은 안광을 번쩍이는 드래곤 나이트의 시선이 가르딘을 향했다. 같잖은 인간이 깨웠다는 사실에 언뜻 불편한 심기가 들어 있었다. 물론 표정이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계약을 원하는가?

 가르딘에게 말을 거는 드래곤 나이트였다. 가르딘은 라이젠과 대화를 하다가 깜짝 놀라서 드래곤 나이트를 쳐다보았다. 설마 타이탄을 말을 걸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계약을 원하는가?

 그런데 또다시 말소리가 들렸다. 한 번이라면 헛소리가 들린 것으로 치부하겠지만 두 번이라면 달랐다. 분명히 드래곤 나이트가 말을 거는 것이 확실했다. 이런 일이 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거짓은 아니다.

 “저놈이 제게 말을 거는데요.”

 “뭐라고?”

 “계약을 원하냐고 하는데요.”

 “그럴 리가!”

 “정말이라니까요.”

 “그리고 보니 눈을 떴잖아! 어찌 이런 일이!”

 라이젠은 드래곤 나이트가 작동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랜 시간 잠자던 드래곤 나이트가 드디어 기지개를 핀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왜? 라는 의문이 들었다. 가르딘 같은 얄미운 놈에게 반응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건 사기야!’

 안젤리카는 대단하다는 듯이 가르딘을 바라보았다.

 “드래곤 나이트가 먼저 반응하다니! 영주님! 정말 대단하네요!”

 “뭐, 이쯤이야.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지. 계약해야 하는건가?”

 ‘당연하죠. 어서 하세요.”

 가르딘은 조금 망설여졌다. 드래곤 나이트가 고대마도시 대 타이탄이라면 분명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한 드래곤이 오랜 시간 간직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순간 의문이 든 가르딘은 계약에 뜸을 들였다. 앞뒤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드래곤 나이트가 뭐 하는 타이탄이냐?”

 “우리 일족의 조상님이 남겨준 재산이네. 움직이지 못한 다고해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또한 오래되긴 했지만 가드너 급 타이탄이다. 웬만한 타이탄은 상 대도 되지 않지.”

 안젤리카 대신에 라이젠이 먼저 끼어들어 말을 가로챘다. 가르딘은 드래곤 나이트가 대단한 타이탄이라는 것을 알았 지만 무언가 꺼림칙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계약하면 무 언가 큰 짐을 짊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움직이지 못하면 타이탄은 없다.”

 고민을 하던 가르딘에게 강요하는 듯한 라이젠이었다. 지금까지의 라이젠과는 다른 표정이었다. 무척이나 진지했다. 마치 가르딘의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가르딘은 타이탄을 얻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계약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타이탄 2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계약하지, 어떻게 하면 되냐?”

 -나의 이름과 너의 이름에 영혼의 맹약을 하면 된다. 내 이름은 바자바인이다.

 ‘다른 이름은 없냐? 하필이면 그런 재수없는 이름을 사용하냐.”

 -3천 년 동안 이어져온 이름이다. 다른 이름은 없다.

 바자바인 후작의 이름과 같다는 것 때문에 더 꺼림칙해졌지만 이름 같은 거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나 가르딘 카이로스는 영혼의 맹약에 의거하여 드래곤 나이트 바자바인과 정식으로 계약을 원한다!”

 -계약이 접수되었다. 이제부터 나는 때가 되었을 때 너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슈슝!

 드래곤 나이트가 제 할 말만 하고 아공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남겨진 가르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뭔가 한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다.

 “때는 무슨 때 ! 결국 지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온다는 말 아냐! 뭐 이런 개 같은 타이탄이 다 있어!”

 타이탄이 무엇인가! 인간의 무력으로 불가능한 압도적인 전투력을 가진 전투병기를 뜻한다. 원하는 시기에 사용하지 못하는 전투병기가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있으나 마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불길한 느낌을 받을 때부터 계약하는 게 아니었다. 이상한 말을 지낄이는 타이탄을 얻었다는 것에 심기가 불편해진 가르딘이었다.

 “축하하네. 일족의 보물을 이렇게 쉽게 얻다니 대단하네.”

 “뭐가 대단합니까! 타이탄이 지 나오고 싶을 때 나오는 게 말이 됩니까!”

 라이젠은 가르딘의 투덜거림에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어 넘겨주었다.

 “그래도 위험할 때 나올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공짜로 얻는데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게. 한꺼번에 너무 많은 공짜를 원하면 대머리 될 수도 있네.”

 “그래도 조금 꺼림칙한데.”

 “내가 타이탄을 1대 줄 텐데. 그 정도면 만족할 만한 성과가 아닌가.”

 “그렇기는 하군요.”

 가르딘은 갑자기 친절해진 라이젠을 보자 의심이 피어올랐다. 라이젠이 이처럼 친절할 드래곤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알 수가 있어야지.’ 상대방의 친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르딘의 질 나쁜 성정이었다. 언제나 의심하며 그 이면에 숨겨진 뜻 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드래곤 나이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없으니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이 인간은 어떻게 믿을 생각도 없이 의심부터 하냐!’

 라이젠도 가르딘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부터 서로 비슷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그러다가 서로의 눈빛이 교차했다.

 어정쩡한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감돌았다.

 “하하하... 하하!”

 “하하하하!”

 어색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르딘은 의심이 되지만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잊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이런 일에 계속 고민해 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이 머리만 아프다. 일단 의심하고, 해결이 되지 않으며 잊어버리는 것이 가르딘의 성격이다. 지랄 같은 타이탄은 그렇다치고, 라이젠이 만든 타이탄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라이젠 님이 만드신 타이탄도 계약을 해야 합니까?”

 “물론이네, 아무나 타게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나중에 계약파기도 가능한 겁니까?”

 “주인이 죽거나 계약을 해지하면 가능하지.”

 “3명 이 계약할 수 있게 하면 안 됩니까.”

 “뭐, 불가능하지는 않네.”

 “그럼 그렇게 해주십시오.”

 가르딘이 보기에 동기들 중에 선택된 한 명에게 타이탄을 주면 분명 싸움이 일어난다. 왜 저놈만 주냐고 징징거릴 것이 분명하다. 괜히 분란만 조장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 자식 들이 욕심이 많은 것은 아닌데, 남이 가진 것을 그냥 두고 보는 성격들이 아니다. 평소에는 친구가 잘되어야 된다는 생각 을 하지만 막상 잘되면 배가 아픈 족속들이다. 수준이 비슷 해야 같이 놀 수 있다는 옛 명언이 틀리지 않았다.

 “일단 한번 녀석들을 데려오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저는 이만 일이 바빠서 먼저 가겠습니다. 안젤리카, 가자.”

 “잠깐, 공간이동은 내가 해줄 테니 자네 먼저 가게. 딸과 함께 대화 좀 해야지 않겠나.”

 “그렇게 하시죠.”

 가르딘은 흔쾌히 허락했다.

 라이젠이 공간을 열어 가르딘을 저택의 집무실로 날려 버렸다. 남겨진 라이젠의 표정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고 굳어있었다. 라이젠이 가르딘을 먼저 보낸 이유는 안젤리카에게 할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족 대대로 내려오는 전언이기에 반드시 전해야 한다. 안젤리카도 성룡이 되어 이제는 자기 본분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아빠! 할 말 있어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드래곤 나이트에 대한 설명이었다. 드래곤 나이트는 특수 한 오러 심법에 의해서만 작동이 되게 되어 있었다. 가르딘의 기운에 반응한 것은 분명히 비슷한 기운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검강과 부딪치면서 가르딘의 기운을 흡수하여 드래곤 나이트가 깨어난 것이었다. 가르딘이 특수한 오러 심법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설마 드래곤 나이트의 기운과 비슷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드래곤 나이트는 마왕을 죽이기 위해 탄생한 전투마법병 기라고 할 수 있다. 고단위 마법은 물론 탑승자의 오러까지도 증폭시켜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

 드래곤 나이트의 뛰어난 점은 9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검사와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대단하네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할 것이다. 가르딘의 경우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은 초인의 반열에 들었다. 그 녀석이 드래곤 나이트를 마음먹은 대로 조종했을 경우 어느 정도의 위력을 보일지 나조차도 상상하기 힘들다. 아마 대륙역사상 가장 무서운 존재의 탄생 일지도 모른다.”

 “위험하다는 뜻인가요?”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드래곤 나이트는 일반적인 타이탄이 아니야. 때가 되어야 비로소 힘을 발휘하는 타이탄이다. 가르딘이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일족의 전설에 의하면 드래곤 나이트가 봉인을 깼을 때 마왕의 부활에 대한 전조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었거든.”

 “그럼 마왕이 부활한다는 건가요?”

 안젤리카가 두렵다는 듯이 목소리가 떨렸다. 과거 마왕의 등장으로 인해 드래곤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마왕의 부 활로 인해 어머니까지 희생을 당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마왕에 대한 두려움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안젤리카였다.

 “확실한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미 중간계는 확고한 차원의 틀을 갖춘 지 오래야. 예전처럼 불완전한 시대는 지나갔다는 뜻이지. 우려대로의 결과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불완전한 기운의 발산이 가능한 시대가 마도시대였다. 불완전하기에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일정한 틀이 정해지면 그 안에서 더 이상의 발전이 어렵게 된다. 굳어진 기운과 굳 어진 발상으로 중간계, 특히 인간계의 능력이 반감되어 버렸다. 인간의 능력이 강력해졌을 때 생겨나는 파생적인 특성, 공격적인 성향이 모든 중간계의 존재들을 위협하게 만들었 었다.

 “다행이네요.”

 차원의 틀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면 다른 차원의 공간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인위적으로 차원의 틈을 열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또한 각 차원의 연계가 가능해야만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다. 단일 차원의 노력만으로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존재는 신과 대마왕 정도뿐이다. 그들도 힘을 모조리 다 소모해야만 가능하다. 인간계에서 마계를 열려고 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마왕의 무서음은 중간계 전체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미련한 짓을 하는 존재는 있다손 치더라도 드래곤 급의 능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네가 그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더라도 너도 이제 성인이다. 중 간계의 조율자로서의 의무를 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놈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떤 말을 하겠느냐! 아마 길길이 날뛸 것이 분명할 것이다. 아마 드래곤 나이트가 나오는 즉시 갖다 버리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사실을 절대 가르딘이 알아서는 안된다.”

 “확실히 영주님이라면 그러고도 남겠네요.”

 가르딘 모르게 두 부녀의 작당 모의는 계속되었다. 중간계의 의무보다는 가르딘을 단속 잘하고, 옆에서 감시하라는 뜻이었다. 만약 사실을 알면 드래곤이건 말건 앞뒤 안 재고 달 려들지도 모른다. 솔직히 라이젠의 입장에서 그게 더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가르딘은 영지로 돌아와서 남겨진 일을 마무리하고 난 후 동기들을 따로 불렀다. 라이젠이 주기로 한 타이탄과 계약하기 위해서였다. 안젤리카를 대동하고 다크랜드의 중부평야 지대로 공간이동을 했다. 중부평야는 인적이 없을뿐더러 외부와는 완벽하게 격리가 된 지역이다. 타이탄의 성능 시험을 펼치는데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이유도 모르고 따라온 동기들은 바쁜 시기에 불러온 것을 짜증냈다.

 “야, 출병준비하기도 바쁜 시기에 왜 갑자기 다크랜드로 데려온 거야?”

 “지금 영주한테 짜증내는 거냐.”

 “상황이 그렇잖아. 바빠 죽겠는데 소풍 가자는 것도 아니고 뭐냐!”

 일을 미뤄봤자 누가 대신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가르딘이 시킨 일이 만만치가 않았다.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이 규모가 크고, 계획이 필요한 일은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그런 일보다 소소하면서도 끝내 도 끝나지 않는 일이 더 짜증이 난다.

 “지금이라도 가고 싶은 녀석은 보내주지. 단 기회는 한 번 뿐이라는 것을 명심하는 게 좋아.”

 “별로 우린 그냥 갈란다.”

 “후회할걸.”

 “후회는 무슨.”

 가르딘의 의미심장한 말에도 불구하고 동기들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았다. 모두 가려고 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안젤리카 꺼내 봐.”

 “예, 영주님!”

 안젤리카가 공간을 열어 거대한 기체를 꺼냈다: 햇살에 반사되어 광채를 빛내는 기체는 라이젠이 만들어 놓은 타이탄이다. 역시 새로 만들어선지 몰라도 반질반질했다. 뭐니 뭐니 해도 기계는 새것이었다. 낡고 헐어서 명품이라는 말도 옛말이다.

 멍!

 골램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 거대 기체를 보자 동기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필리언이 언뜻 생각이 난듯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정말 굉장한 것이었다.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다.

 “저거 설마 타이탄?”

 “제법인데.”

 “뭐? 진짜야!”

 “내가 왜, 할 일 없이 거짓말을 하냐.”

 타이탄을 처음 본 동기들은 신기한 듯 이리저리 구경해 보았다. 타이탄의 위력은 전설로만 들어보았다. 일 검에 산을 부수고, 삽시간에 적군을 전멸시켜 버린다는 최종병기라고 할 수 있었다.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기사들이 타이탄에 대한 로망이 존재했다.

 하지만 들어나 보았을 뿐 실제로 본 기사는 거의 없었다.

 “겉보기에는 진짜 같은데?”

 솔직히 미심쩍기는 했다. 겉만 타이탄일 가능성도 있을지 몰랐다. 역시 가르딘의 동기들다웠다. 일단 먼저 의심부터 해보았다. 의심하는 동기들을 위해서 안젤리카에게 타이탄 에 대해서 설명해 보라고 했다.

 “노멀 급 타이탄으로 발키리 영지의 이름 따서 발키리라고 해요. 타이탄의 등급 중에서는 최하위라고 해도 작은 소왕국의 전투력과 거의 맞먹는 위력을 가지고 있어요. 발키리의 가장 뛰어난 점은 기동성이에요. 자체적으로 그래비티(중력) 마법이 걸려 있어 실제 무게가 예상보다 덜 나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요. 또한 대마법 방어진이 쳐져 있어 웬만한 마법은 모두 튕겨 버릴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설명을 들을수록 동기들의 표정이 멍해지고 있었다. 가짜라고 하기에는 안젤리카의 설명이 그럴 듯했다. 물론 타이탄 발키리의 위력도 전해지는 전설과 거의 일치하는 수준이었다.

 “이래도 믿음이 안 가냐.”

 “너 이거어디서 났냐?”

 “오다 주웠다.”

 “뭐? 자꾸 거짓말할래, 사실대로 말하시지.”

 “알잖아. 더 알고 싶다면 내가 말해 주지.”

 라이젠과 안젤리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은 이미 말을 해서 동기들도 알고 있었다. 끝까지 물어 온다면 말해 줄 용의도 있다고 하자 동기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드래곤의 유희를 망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렇기에 믿는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드래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면 타이탄이 확실했다.

 “이걸 너희들에게 주려고 했는데, 뭐 다들 돌아가겠다니 안타깝구나!”

 “헛!”

 동기들이 헛바람을 삼켰다.

 타이탄을 준다는 말에 경직되어 버린 동기들이었다. 그 순 간에 필리 언, 갈라, 유타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할 위인들이 절대 아니 었다.

 “아까부터 필리언은 돌아가고 싶은 눈치였어!”

 “무슨 소리! 유타가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지!”

  “지랄하네! 아까 네가 가르딘이 개소리하기 전에 가자고 했잖아!”

 “웃기시네! 네놈은 전부터 가르딘이 영주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닥쳐! 난 항상 가르딘을 영주님으로 깍듯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라!”

 동기들의 신경전이 장난 아니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태연하게 다른 동기를 밟고 갈 수 있는 성정을 가졌다.

 실룩!

 ‘이것들이 날 뭐로 생각한 거야!’

 가르딘은 듣다 보니 자신까지 엮어서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파악했다. 아무래도 정신교육이 필요할 거 같았다. 영주의 위대한 권위가 무너지는 이 처참한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3명 중에 1명에게만 주려니 내 마음이 무척이나 쓰리고 아프다. 물론 나는 너희들을 위해 양보할 거다. 그런데 누가 좋으려나.”

 가르딘이 셋 중에 한 명을 고르려고 하자 동기들이 자기를 찍으려고 간곡한 눈빛을 보냈다. 거짓 존경의 염이 담겨 있었다.

 “가르딘, 나 기사단장이다! 명색이 단장이 되어서 부단장 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겠냐!”

 “흥! 바람둥이 주제에 무슨 기사단장! 네놈에게는 일개 기사직도 과분해!”

 필리언, 갈라가 신경전을 벌일 때 한 발 앞서 나간 유타가 가르딘에게 군주의 예를 청했다.

 “영주님 ! 저런 시러베자식 같은 놈들은 가치가 없습니다. 저야말로 타이탄을 탈 자격이 있는 기사라고 생각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저... 게 설레발치네!”

 “이 자식은 하는 짓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도리! 도리!

 고민을 해봐도 결정하기 힘들어하는 듯한 가르딘은 어쩔 수 없으니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내세웠다. 그러자 동기들은 그런 허접한 결정방식에 따를 수 없다고 반박했다. 타이탄이 걸린 중차대한 일을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크크! 걸렸다!’

 일부러 가위바위보를 제시한 가르딘이다. 동기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결국 대련이 될 수밖에 없다. 기사들의 정식대련과는 다르게 3명 중에 누가 이기든 지 마지막까지 서 있는 녀석을 승리자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필리언, 갈라, 유타가 서로 눈치를 보아야 했다. 먼저 덤비는 놈이 불리하다. 이럴 때는 최대 한 체력을 비축해서 마지막까지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유리했다.

 신경전이 지속되자 가르딘이 한마디 툭 던졌다. 시간 끄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가르딘이다.

 “이거 사이론에게나 줘버려야겠다.”

 아주 작게 말했다. 너무 작아서 집중하지 않으면 들을 수 도 없을 정도로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기들의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사이론 따위가 타이탄을 가진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눈빛을 읽은 갈라와 유타가 필리언을 합공하기 시작했다.

 “이런 치사한 자식들!”

 “너 먼저 가라.”

 11한숨 자고 일어나면 고단함이 풀릴 거다!”

 결국 갈라와 유타의 치사한 합공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땅 바닥에 눕게 되었다. 필리 언이 눕기가 무섭데 유타가 갈라의 옆구리를 발로 차 버렸다. 1분 전의 동료가 적이 되었다. 배신이 상당히 빨랐다.

 퍼억!

 휴전은 잠시간이었을 뿐. 곧 이어 피 터지는 대결이 진행 되었다. 필리언의 공격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갈라는 체력적으로 유타에 비해 많이 소모가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기습공격까지 받았으니 유타가 유리한 것은 자명했다. 유타의 치사한 수법에 휘말린 두 동기들은 결국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내가 이... 겼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유타에게 가르딘이 축하 인사와 함께 사실을 말해 주었다.

 “사실은 원래 3명 모두 탑승이 가능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거든.”

 “뭐라고!”

 “크하하하하!”

 가르딘은 웃겨서 죽으려고 했다.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필리언, 갈라, 유타가 분노에 몸을 떨었다. 가르딘의 개수작에 걸려들어서 피 터지게 싸우고, 우정만 상한 꼴이 되었다. 이제 와서 의리를 회복하기에는 늦었다.

 유타가 분을 못 이기고 덤벼들었지만 이미 지친 상태다. 가르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가르딘의 일격을 허용하고 땅 바닥에 쓰러져야 했다. 최후의 승자는 가르딘이 되었다.

 “안젤리카. 여기 덜 떨어진 놈들에게 회복마법을 걸어줘.”

 “알겠어요!”

 -힐링 (치료).

 체력과 상처를 회복했지만 분한 마음은 참기 힘들었다. 가르딘의 농간으로 인해 우정이 박살나 버렸다. 물론 쥐똥 만 한 우정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살벌한 기세로 가르딘을 압박하는 동기들이었다. 오러 마스터의 기세는 살벌하다. 그렇지만 가르딘은 기세를 묵묵히 버티며, 히죽 거렸다.

 “타이탄 타기 싫은가 보네.”

 ‘젠장!’

 ‘치사한 놈!’

 ‘똥통에 빠져 뒈질 놈!’

 기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기들도 자존심보다는 타이탄에 대한 욕심이 더 강했다. 타이탄을 타 보고 싶은 생각에 가르딘의 비위를 맞추었다. 속으로는 용암이 끓고 있어도 겉 으로는 산들바람이 불었다.

 “그럼 유타, 갈라, 필리언 순으로 탑승해.”

 “왜 난 마지막이야!”

 “넌 맨 처음에 쓰러졌잖아.”

 “그건 이놈들이......”

 필리언이 입을 다물었다. 이대로 싸워봤자 소용없는 저항 에 불과했다. 둘 중 누구든지 합공하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몸은 피곤하지 않다.

 필리언, 갈라, 유타가 타이탄 발키리와 계약을 했다. 계약은 피로써 이어진 맹약에 의거하여 이루어졌다. 발키리는 드래곤 나이트처럼 사고가 가능한 에고 타이탄이 아니다. 그저 시전자의 능력에 의하여 작동될 뿐이다.

 기본적인 구동방법과 동작을 간단하게 숙지한 후 본격적인 실습을 진행했다. 육중한 크기의 타이탄이 움직일 때마다 지표면이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유타는 처음이지만 제법 감각이 있었다. 세밀한 부분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이 탁월했다. 갈라도 비슷했지만 운동능력이 유타보다 떨어졌다. 필리언의 경우 모든 수치가 평균 정도로 나왔는데 유독 오러 전이에 대해서만은 싱크로율(일체화)이 좋은 편이었다. 각각의 장단점이 나타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두 오러 마스터이기에 적응력이 상당히 빨랐다. 금세 타이탄의 모든 기능을 활용하게 되었다. 타이탄의 성능을 테스트하는데 이만한 존재들이 없었다.

 가르딘은 동기들에게 타본 소감과 움직임에 대한 보완할 점을 말해 보라고 했다. 옆에서 안젤리카가 그에 대한 보완 사항을 영상으로 남겼다. 이후에 발키리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타이탄의 성능 시험은 3일 정도가 더 걸렸다. 가르딘이 마지막으로 영지를 지킬 수단을 만들어 놓았다. 타이탄이 있다면 어떤 적이 와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제 갈 때가 됐군.’

 파스트론 공작이 내린 지령에 의해 시간을 조금 벌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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