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6/93)

   @@[제6장 화해@@]

 소문이 퍼지고 한참 후에 가르딘은 발키리 영지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오브라이언 남작의 식솔들은 이제야 안심을 하는 분위기였다. 그동안 네벨리언 공작이 쫓아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었다.

 가르딘은 도착하고 난 후 피곤해하는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방을 내주었다. 새로 지을 집은 거의 다 지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금 더 지나면 완벽한 저택이 될 것이다. 가족이 살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되었다.

  가르딘은 라이나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할 말이 많았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사랑을 불태우기에는 상황이 따라주지 못해 아쉬웠다.

 “아버지는 영지 안에 따로 집을 지어줄 생각인데.”

 “여보, 그냥 같이 살아요.”

 “하지만 당신이 불편하지 않을까. 어색한데 굳이 힘들게 같이 살 필요 없어!”

 라이나에게 어려운 일을 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 가르딘의 마음이다. 라이나에게 오브라이언 남작과 소니아는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된다. 어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이제까지 만나지 않고서도 잘 지내왔다. 굳이 지금에 와서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당신이 날 생각하는 것은 알겠는데, 브리안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 하잖아요.”

 “화목하지 않은 가정을 보여줄 필요는 없잖아!”

 “그래도 가족이에요. 제가 잘할게요.”

 “당신이 정 그렇다면 알았어. 하지만 불편하다면 바로 내보낼 거야. 당신이 힘들어하는 것은 절대 볼 수 없으니까!”

 라이나에게 한없이 다정다감하지만 반대의 일에는 냉정했다. 그것이 설혹 아버지와 형들이라도 예외는 없다. 어차피 영지 내에 기거한다면 큰 위험은 없다. 오브라이언 남작가에서 지내는 것보다 훨씬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 그 정도만 해도 가르딘은 할 일을 다한 셈이다.

 “저녁때에 같이 보겠어?”

 “좋아요.”

 가르딘은 라이나와 약속을 하고 난 후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 고생하고 있을 누군가가 이제야 생각이 났다. 지금쯤 골머리 꽤나 썩고 있을 것이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또 다른 가르딘이 초췌한 모습으로 서류를 보고 있었다. 검토하지 않은 서류가 옆에 아직도 많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 가르딘이 집무실에 들어오자 또 다른 가르딘 필리언이 화색을 띠었다.

 “가르딘! 이제야 온 거냐?”

 “그래.”

 “그럼 이 모습 좀 어떻게 해봐! 답답해 죽겠다!”

 “왜 멋있기만 한데. 평생 그렇게 살래?”

 부들! 부들!

 “나 이제부터 기사단장 열심히 할 테니 좀 봐줘라!”

 “네가 그렇게까지 사정하니 들어주마.”

 파팟!

 가르딘은 필리언의 얼굴과 골격을 감싸고 있던 천룡무상 진기를 다시 회수했다. 골격을 유지하는 기운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꽤 많이 흡수가 된 상태였다. 피곤한 듯 보여도 필리언은 기운이 제법 상승된 상태였다. 피곤에 절어 스스로만 모를 뿐이었다.

 “이제야 나의 위대함을 알았냐!”

 “그래, 알았다. 뭔 서류가 이렇게 많냐! 나 속 터져 죽는 줄 알았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겠냐.”

 “네 심정이제는 알겠다!”

 “너도 수고했다.”

 “그보다 가족은 무사히 구한 거냐?”

 “뭐 별로 어렵지는 않았어.”

 “그런데 정말 계획대로 되기는 한 것 같다. 지금쯤 네벨리언 공작의 속이 뒤집어졌을 것 아니냐!”

 “그렇겠지. 너도 알다시피 내가 당하고만 살 위인은 아니잖아!”

 “어련하겠어!”

 크크크크크!

 가르딘과 필리언 둘 다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들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네벨리언 공작도 확실하게 알았을 것이다.

 “수고했으니 가서 쉬어. 3일 휴가 줄게.”

 “정말!”

 “그래, 가서 푹 쉬어라.”

 “고맙다, 친구!”

 집무실을 나가는 필리언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다. 그동안 파멜라가 준비한 서류를 확인하느라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영지를 관리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사실 가르딘이 가기 전에 일부러 파멜라에게 미리 말을 해두었다. 서류를 빼곡하고 어렵게 작성하라고 말이다. 처음 하는 일이라 필리언으로서는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나만 혼자 고생할 수는 없잖아! 그럼 밀린 서류를 처리해 볼까!”

 서류 한 장을 가볍게 들었다.

 “응?”

 책상에 쌓여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책상 아래에 수북이 쌓인 서류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처리한 서류가 옆에 별로 없었다.

 “잠깐! 이 자식 뭐한 거야?”

 필리언이 처리한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 되었다. 결국 가르딘이 자기 덫에 자기가 걸린 꼴이었다.

 “그놈 머리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젠장!”

 괜히 휴가를 준 것이 후회가 되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은 결국 파멜라를 불렀다. 다행히도 파멜라가 처리할 서류를 요약 정리하여 중요한 것들을 간추려 놓았었다. 필리언의 처리 능력을 감안한 것이다. 만약 파멜라가 아니었다면 가르딘도 머리 꽤나 아팠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 없는 관계로 밀린 일은 내일 처리하기로 했다. 오늘은 라이나와 브리안을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날이다.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가르딘이 라이나에게 갔을 때 라이나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시녀들이 보조를 하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후작 부인이 주방 일을 직접 할 필요는 없었다. 라이나는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가르딘의 가족을 대접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르딘도 그 마음을 알기에 말하지 않았다.

 ‘고마워, 당신!’

 가르딘이 시녀를 시켜 아버지를 식당으로 모셔오도록 했다. 가족들은 아직 발키리 영지가 어색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두 형을 제외하고 가르딘을 처음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택 안의 식당에 차려진 음식이 다른 때보다 훨씬 정성이 들어가 있었다. 길게 뻗어 있는 식탁에 아버지와 형들이 차례로 앉았다. 큰어머니 소니아와 형들의 부인과 자식들 모두 어색한 기색이 역력했다.

 식탁에 음식이 모두 차려지자 가르딘이 라이나와 브리안을 데리고 왔다. 긴장돼서 그런지 라이나의 손을 잡으니 땀이 조금 배여 있었다.

 가르딘은 라이나와 브리안의 손을 잡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제 부인인 라이나입니다. 얘는 제 딸 브리안입니다.”

 가르딘의 소개가 딱딱했다. 라이나가 긴장한 만큼 가르딘도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서 앉아라.”

 오브라이언 남작이 먼저 인자하게 웃으며 라이나와 브리안을 보았다. 그러자 라이나와 브리안도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르딘은 소니아를 보며 착잡한 심경이었다. 소니아도 그동안 가르딘을 괴롭힌 일을 알기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막내 녀석의 손녀를 이제야 보게 되다니! 이리 와보아라!”

 “할아버지!”

 “그래! 할아비다! 괜찮으니 와보아라!”

 아버지가 브리안을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아주었다. 가르딘은 아버지가 라이나와 브리안을 인정한 것 같아 울컥한 기분을 맛보았다. 가르딘도 그렇고 오브라이언 남작도 서로를 외면했었다. 그렇기에 서로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만났음에도 가족이라서 그럴까! 금세 정으로 이끌리고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어색함은 아직도 존재했다. 하루아침에 서로의 앙금을 모두 털어버리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한 걸음씩 천천히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라이나와 브리안은 식솔들과 차를 마셨다. 가족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다가 가르딘은 아버지와 두 형을 이끌고 서재로 들어갔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가 어색했던 것이다.

 “며늘아기가 참하더구나!”

 만약 그때 아버지가 인정해 주셨더라면 25년이나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하구나!”

 오브라이언 남작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가르딘은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서로가 조금씩 이해를 했다면 이렇게 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말은 가벼우면서도 무겁다. 당시에는 어려운 말이 돌아보면 쉬운 말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당시가 되면 또다시 반복할 것이다.

 “우리도 미안했다. 사실 우리는 네가 부러웠던 것 같다. 우리 중에 재능이 가장 뛰어났던 것도 너였으니 말이야! 네가 집을 나갔을 때 솔직히 후련했었다. 하지만 네가 킹덤나이트를 졸업하고 피닉스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을 때 우리는 초라함을 느꼈었다. 그래서 너를 더욱 멀리했을지도 모른다.”

 라이벨과 류카이젠은 솔직하게 마음속에 들어 있는 감정을 털어놓았다. 가르딘이 성공할수록 초라해지는 자신들과 비교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영지를 가지고 경쟁에 열을 올린 것도 가르딘보다 잘되고 싶은 미련한 욕망 때문이었다.

 “알았으니 그만 하세요.”

 “용서해 주는 것이냐?”

 “솔직히 말했다고 과거가 쉽게 용서될 것이라고 봅니까. 세상은 그처럼 관용이 넘치고 만만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부터 노력하신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노력하겠다! 최선을 다할 테니 너무 다그치지는 마라!”

 가르딘은 아버지와 두 형들의 감정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였다. 물론 없던 감정이 하루아침에 절실해지지는 않았다. 이제부터는 살 방도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하는 말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괜찮으니 말해 보아라.”

 “형님들의 시대는 이미 끝이 났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라이벨과 류카이젠은 가르딘의 냉혹한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가진 것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잃었다. 기사대결의 보상금인 6만 골드가 있다고 해도 그걸 가지고 일어서기도 힘들었다. 능력이 되지 않는 것을 절감했다.

 “대신 조카들의 미래를 위해 바탕을 마련해 주겠습니다.”

 “정말이냐?”

 “능력에 따라 검술과 마법, 행정 능력을 배울 수 있도록 마련해 주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오러마스터입니다. 또한 제 주변에는 고서클 마법사와 뛰어난 행정관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능력을 배운다면 자기 앞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특별혜택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뿐입니다.”

 오브라이언 남작은 가르딘의 제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해 주었다. 라이벨과 류카이젠도 가르딘의 뜻을 받아 들였다. 사실 가르딘은 많은 혜택을 준 것이다. 오러마스터에게 검술을 배우며, 드래곤에게 마법을 사사받는 것이다. 또한 파멜라는 발키리 영지 제일의 두뇌를 소유한 시종장이었다.

 두 형은 가르딘의 배려에 고마워하면서도 할 말은 했다.

 “우리가 늦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아직 할 수 있는 것은 있다. 발키리 영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우리가 영지를 이끌어 갔던 경험이 있으니 지방 행정관이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니냐. 아니, 조그만 일이라도 하면서 배우고 싶다. 기회를 줄 수 있니?”

 가르딘은 두 형이 욕심을 많이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그 정도 배려는 해줄 수 있었다. 발키리 영지는 아직 행정관이 많이 부족했다. 영지를 경영하는 일이 서투르기는 했어도 작은 마을 정도는 충분히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형님들이 하시는 것을 봐서 역량에 따라 배치해 드리겠습니다. 단, 실력이 부족하다면 가차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라! 바닥까지 떨어져 봤던 우리다!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그럼 기대해 보겠습니다.”

 가르딘과 아버지, 두 형들, 그리고 가족 간의 화해는 일정부분 이루어졌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두의 노력만이 알게 해줄 것이다.

 “그전에 값은 치러야겠습니다.”

 “뭘 말이냐?"

 가르딘이 꺼낸 말을 또다시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도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아시면서 발뺌합니까? 용병 의뢰비를 줘야 할 것 아닙니까!”

 “큭! 잊지 않았구나!”

 “당연하지요.”

 6만 골드 중에 2만 골드는 가르딘의 몫이다. 말하지 않았으면 그냥 넘어가려던 라이벨과 류카이젠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가르딘이다. 돈을 잊어버릴 리 없지 않은가!

 가르딘과 형들 모두 욕심을 완벽히 버리지는 못했다. 역시 혈통은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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