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습격@@]
음습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이 모여 있었다.
어둠에 익숙한 이들은 자리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어둠이 그들에게는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3명이었다. 한 명은 어둠 속에서는 지옥의 불길 같은 기운을 뿜어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약을 섞은 듯한 지독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어둠 속에 동화되어 기척을 감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들 모두 대단히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지옥의 불길을 품고 있는 듯한 인물이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크!”
“드디어 길로틴의 복수를 할 수 있겠구나! 뿌드득!”
동료의 복수를 하지 못했던 그는 원한이 쌓여 있었다. 살의가 치솟다 못해 무서운 기운으로 분출되었다.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만.”
“냉정해라. 이번 임무는 다른 때보다 중요하다. 실패하는 날에는 우리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어.”
열기를 뿜어내던 인물이 기운을 가라앉혔다. 살의를 갈무리할수록 눈빛은 점차적으로 붉어 졌다.
“언제 할 거냐?”
“놈들이 황도를 벗어나는 날.”
“그날이 놈의 마지막 날이 될 거다.”
“침착해야 한다.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야.”
어둠에 동화되어 있는 인물은 신중하게 움직이기를 당부 했다. 일전의 실패로 인해 길로틴이 죽었으니 망정이지 살아서 사실을 털어 놨다면 문제가 커졌을 것이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끝을 내야 했다.
“조치를 취해 두었으니 기다리면 된다.”
비릿한 향을 품은 인물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미리 만들어 놓은 덫에 걸리게 되면 아무리 강해도 소용없었다.
“갈 준비 다했냐?”
“다했다.”
“이제 가자.”
공주에게 시달린 황도에서의 생활이 마무리가 된 가르딘은 곧바로 여관을 떠나기로 했다. 황도의 생활은 따분한 데 다가 무척 고단하고 힘들었다. 주변 귀족의 분위기를 맞추어야 하는 일이 결코 쉬울 리 없었다. 자유로운 생활을 좋아하는 가르딘과 필리언, 투르, 사이론 모두에게 고역이었다.
가르딘이 투르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그러면서 사이론을 노려보았다.
움찔!
놀란 사이론이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가르딘이 이러는 이유는 투르가 먹은 음식 값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50인분을 혼자서 먹었다. 20일 가까이 황도에 있는 동안 나간 식대가 장난 아니었다. 가르딘은 자신이 데려왔지만 감당이 되지 않음을 실감했다. 사이론을 탓하는 것은 왜 말리지 않았냐는 질책성 눈빛이었다. 그에 반해 사이론은 억울했다. 자신이 어떻게 투르를 말린단 말인가! 먹을 때 건드리면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무식한 투르 앞에서 감히 먹는 것 가지고 그만 먹으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만약 황제로부터 황금을 받지 않았다면 발키리 영지까지 손가락 빨며 가야 했을지도 몰랐다.
‘젤 괜히 데려온 건가.’
투르를 혼자 내버려두고 오는 것이 불안해서 데려온 것이다. 발키리 영지 내에서 투르를 감당할 수 있는 녀석들이 없었다. 유타와 갈라가 적극적으로 떠미는 바람에 데려왔는데 곤란함을 가중시킨다.
‘그렇다고 먹는 것 가지고 뭐라 할 수도 없고.’
백작이 되어서 쪼잔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나중에 식사량을 줄일 수 있도록 단식수련을 시켜보는 것도 방법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단식수련을 투르에게 시킨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며칠 굶다가는 사람도 잡아먹을지 모른다.
가르딘의 지시에 따라 짐을 챙긴 필리언, 투르, 사이론이 여관 밖으로 나왔다. 가르딘은 아직도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귀찮고, 거북했다. 다마트 황자와 러쉬 황자 진영에서 가르딘의 행동을 파악하기 위해 감시자를 붙인 것이다.
“황도를 벗어나기 전까지 계속 감시할 것 같은데.”
“그렇겠지.”
“내가 믿음이 부족하게 생겼냐. 왜 내가 한 말을 안 믿고 저렇게 죽치고 있는 거냐.”
“동기들 사이에서 너 뭐라고 불렸는지 아냐.”
“뭔데.”
“간신의 대가.”
“뭐? 내가 왜 간신이야, 이만하면 충신이지.”
“강한 쪽에 달라붙어 아부하는 놈이 충신이면, 나는 애국자다, 인마!”
필리언의 말에 할 말 없어지는 가르딘이었다. 듣고 보니 필리언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원래 세상이 그런 것아닌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강한 자에게 붙는 건데 그게 뭐가 잘못된 것인가! 그렇다고 죽을죄를 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만 하고 가자. 여기서 오래 있어 봐야 좋지 않아.”
“그건 그래.”
미리 준비한 말을 타고 가르딘과 일행은 움직였다. 황도에 온 귀족치고는 무척이나 조촐한 모습이었다. 가르딘의 모습만 보면 귀족처럼 보이지 않았다. 전공 수여식에서 보여주었던 옷들을 모두 마법주머니에 넣어 두었고, 다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히 움직이려고 했다.
황도의 대로로 벗어나지 않고, 좁은 길을 이용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을 통해서 이동했다. 가르딘과 필리언 모두 피닉스기사단 시절에 황도 주변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해서 골목길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예전 방탕한 사총사 시절 뒷골목을 주름잡은 적도 있었다. 그 당시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치게 만들 정도로 악명이 자자했다.
황도의 좁은 길을 따라 이동해도 어차피 큰 대로변으로 나와야 할 때가 있다. 황도를 벗어나기 위한 성문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르딘은 말에서 내려서 사람들 사이에 끼려고 했다. 그런데 황도에 들어올 당시에 검문을 했던 왈슨이 다가와서 인사를 올리는 것이 아닌가!
“가르딘 후작님! 이곳으로 오십시오!”
“그럴 필요는 없네.”
“아닙니다. 제국의 검을 기다리게 하면 제가 큰일납니다.”
당시에 가르딘 후작을 기다리게 했다는 것 때문에 왈슨은 잠을 못 잤다. 행여나 후작의 심기가 뒤틀려 자신에게 피해가 갈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왈슨과 경비병들이 가르딘에게 인사를 올리며, 바로 통과시켜 주었다. 카이로만 광장에서 본 가르딘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수고를 끼쳤군. 고맙네.”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 수고하게.”
“안녕히 가십시오! 가르딘 후작님!”
가르딘이 갈 때까지 직각으로 인사를 올리는 왈슨과 경비병들이었다. 오러 마스터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무척 소탈하신 분이네.”
“역시 오러 마스터시구나!”
가르딘의 소탈한 모습에 감동한 왈슨과 동료들이었다. 보통의 귀족과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끝까지 멋있고, 쿨한 척을 하는 가르딘이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멋있게 퇴장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가르딘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다시 한 번 눈살을 찌푸리는 필리언이었다. 사이론도 도대체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중인격자!’
충분히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발키리 영지로 돌아오는 여정은 무난했다. 황도에서 관찰하던 감시자들도 사라지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가르딘은 가증스러운 연기는 황도를 벗어나자마자 벗어던져 버렸다.
가르딘은 이동하면서 필리언과 투르, 사이론의 검술을 봐 주었다. 필리언도 오러 마스터가 되면서 오의를 점검하고, 오러 블레이드의 사용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오러의 운용 면에서 아직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을 발견한 것이다. 마스터와 익스퍼트의 차이점을 찾아냈다. 스스로 알아냈으니 고쳐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옆에 먼저 오러 마스터가 된 가르딘이 있었으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수련은 모두 노숙할 때 이루어 졌다. 사람들이 없는 장소를 찾아서 수련을 했다. 마을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는 이론적인 수련이 이루어졌다. 특히 필리언의 오러 사용을 누군가가 보아서는 안 되었다.
사이론은 필리언이 오러 마스터인 줄 몰랐었다. 블러드 용병대를 상대할 때 놀라운 솜씨를 보였지만 설마 오러 마스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투르의 실력은 자신이 본 것보다 더 강했다. 무지막지한 위력은 오러 마스터조차 막아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이 사람들 도대체 정체가 뭐야?’
한 명 한 명이 모두 범상치 않았다. 사이론은 무언가 거대 하고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자신의 성격이 이처럼 소심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소심해지고 있었다. 가르딘에게 계속 갈금을 당하다 보니 소심해져 버린 것이다.
“너 정신 안 차려!”
“정신 차립니다.”
“검을 잡을 때는 강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잡아야 한다. 너무 강해도 안 되고, 너무 약해도 안 되는 것이 검을 잡을 때의 방식이다.”
부드럽고, 강하게 잡으라니 말처럼 쉽지 않다. 부드럽게 잡으면 검을 잡는 손아귀에 힘이 빠지고, 강하게 잡으며 부드러움과는 멀어 진다.
가르딘은 답답하다는 듯이 계속 갈궜다.
“내 말은 유연성을 가지라는 말이야! 언제나 강하게 잡고 있어서는 빠른 검속을 낼 수 없어. 또한 너무 약하게 잡아도 검을 놓칠 수 있지. 대결에서는 모든 것이 직선적이지 않다는 것을 용병생활을 했으니 알 거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가르딘은 검술의 오의뿐만 아니라 검의 자세와, 잡는 방법 까지 모두 다시 가르쳐 나갔다. 사이론에게 필요한 것은 정통적인 검술이론이었다.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홀로 익혀 왔으니 이론이 부족했다. 사이론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 나갈 수가 있었다.
“검이 빨라지기 위해서는 육체가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모든 검술이 그렇듯이 하체가 강해야 힘을 받는 받침대 역할을 할 수가 있어. 너는 큰 신체를 가졌지만 그에 비례해서 하체가 부실한 편이다. 검을 날릴 때 검 끝이 흔들리는 것은 쾌속을 받쳐주는 받침대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전에 가르딘이 가르친 것과 같은 이론이다. 그에 대한 중점적인 수련을 시켰다. 황도에 있을 동안 사이론은 하체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가르딘이 가르친 것은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발뒤꿈치를 세우는 방식이었다. 자세가 엉성해 보여도, 하체의 모든 근육을 수련하는 최적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힘들다. 마치 벌을 서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주르르륵!
15분만 수련을 해도 사이론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고단하고 힘든 수련임에도 가르딘의 지도를 따르는 이유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체와 상체가 균형을 이루어가자 검속이 전보다 반 배는 더 빨라졌다.
사이론은 반드시 패스트 검법을 대성하고 싶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 따위는 감내할 수 있었다.
“조바심은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검끝을 흐리게 만든다. 서두를 필요 없다. 검을 수련하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고 곧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수련하는 것뿐이다. 물론 재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재능보다 중요한 것이 곧은 정신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예, 영주님!”
‘오오올!’
필리언이 놀랍다는 듯이 가르딘을 보았다. 저런 말을 할 놈이 아니기에 더욱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네가 그런 바른 말을 하다니!”
“언제는 내가 바른 말을 안 했냐!”
대놓고 그런 적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필리언이었다. 열 받은 가르딘도 빈정상하는 말을 서슴없이 날려 주었다.
“안 했잖아.”
“뭐야! 너는 오러나 빨리 자연스럽게 만들어, 투르보다 못 한 게 어디서 끼어들어!”
“너 말 다했냐!”
“다했다, 이놈아!”
“이게!”
필리언이 덤벼들자 가르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주먹과 주먹이 교차하고, 난전이 벌어진다. 기사와 기사의 싸움이 아닌 뒷골목 패거리의 싸움보다 더 더러웠다.
“윽! 눈에 흙 들어갔어!”
“앗! 이 자식 어딜 차는 거야!”
“거길 물면 어떡해!”
“내 코!”
“머리카락 안 놔!”
“너나 놔라!”
양손으로 서로의 머리카락을 잡은 필리언과 가르딘이었다. 머리카락을 잡으니 산발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로의 추한 모습을 보자 가르딘이 제의했다.
“하나, 둘, 셋 하면 서로 놓는 거다!”
“좋아!”
“하나! 둘! 셋!”
멈칫!
손을 놓기는커녕 머리카락을 더 움켜쥐는 가르딘과 필리언이었다. 가르딘은 필리언이 손을 놓는 순간 머리카락을 계속 잡고 있으려고 했지만, 가르딘의 노림수를 필리언도 알고 있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들이 아니었다.
“치사하게!”
“사돈 남 말하네!”
사이론은 얼이 빠졌다. 저게 어떻게 오러 마스터들의 싸움인가! 마치 뒷골목 건달들의 싸움 같지 않은가! 치사함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싸움을 보고 나자 사이론은 웃음보다 소름이 돋았다. 저런 싸움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치사한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소름 돋아 있는 사이론에 비해 투르는 재밌다는 듯이 구경하고 있었다. 언제 잡아왔는지 산짐승 한 마리를 잡아서 구워 먹은 투르였다. 사람 몸체 3배만 한 짐승이 이제는 다리 밖에 안 남았다.
이곳에서 정상적인 사람은 사이론뿐이었다. 그래서 더 괴롭다.
“놈들이 어디쯤 왔지.”
“조금만 있으면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어 있어.”
“기다려지는군.”
“나티안이 먼저 가서 조치를 취해 놨으니 우리는 목적지에서 기다리면 될 거다.”
숨죽이며 먹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야수들 같았다. 살을 에이는 듯한 차가운 살기가 공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뜨거움과 어둠이라는 이질적인 기운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다.
“길드의 용병대가 박살 난 것이 그놈 짓이라고 하더군.”
“어이가 없군.”
“이번에 지시가 내려온 것도 놈과는 길드가 상극이기 때문이겠지.”
매번 계획을 방해하고, 이제는 적으로 돌아섰다.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자에게 세상의 무서움을 보여주어야 했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르딘과 일행이 작은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부터 펠칸 산맥을 넘어야 했다. 펠칸 산맥은 소머즈 영지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소머즈 영지를 넘어서 갈파인 영지에 다다르게 되면 발키리 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가르딘이 머무는 곳은 펠링턴이라는 마을이었다. 산맥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산맥에서 내려오는 물을 식수로 하여 작은 능지를 개척하여 살아가는 곳이다. 사람 수가 적고, 펠칸 산맥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적기에 여관은 마을에서 하나밖에 없었다.
유니콘 여관
작은 팻말에는 여관 이름과 순백의 유니콘이 그려져 있었다. 유니콘을 제대로 그려 놓은 것이 아니라 말에 날개를 붙여 놓은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정이 가는 것 같았다.
가르딘이 들어가자 주인이 반갑게 맞았다. 손님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오랜만에 오는 손님을 반겼다.
“방 1개 주시오.”
4명이서 자는데 1개를 달라고 하다니 무척이나 짠돌이인 가르딘이었다. 노숙도 마다하지 않는 가르딘의 성격을 알기에 일행은 아무런 불만도 표현하지 않았다.
가르딘과 일행은 주인이 안내한 방으로 들어갔다. 여관에서도 그나마 가장 큰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르딘이 여관에 방을 잡을 때가 되자 금세 어두워졌다.
산맥이 옆에 있어서 그런지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뭐가 있소?”
“되는 게 별로 없어요. 빵하고, 우유, 그리고 고기를 약간 넣은 수프가 있어요.”
“되는대로 갖다 주시오.”
시골 여관이라서 그런지 많은 것을 바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방은 1개를 잡는 대신에 먹는 것은 확실하게 시켜주는 가르딘이었다. 빵하고 우유, 수프가 아무리 비싸봐야 1골드도 되지 않는다. 그 정도는 시켜줄 수 있는 배포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 여기서 쉬고 펠칸 산맥을 넘을 거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가르딘은 라이나와 오랜 시간 떨어졌기에 가장 최단 거리로 가려고 애를 썼다. 노숙도 마다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라이나에 대한 가르딘의 열정 때문이었다. 누가 보면 생사가 급한 일이 있어서 빠르게 가는 줄 오해를 할 수 있었다.
다음 날이 밝아 왔다.
산맥의 위로 해가 올라가기 위해 걸쳤다. 눈부신 햇살이 여관을 비추었다.
가르딘과 일행은 서둘러 일어나서 말에 물과 식량을 챙겼다. 필요한 것들은 여관 주인이 알아서 챙겨 주었다. 가르딘은 특히 물주머니를 신경 써서 챙겼다.
“어제는 잘 쉬었소.”
“아니에요.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요!”
가르딘은 정성을 다해준 여관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난 후 인사를 하고 여관을 출발했다. 가르딘의 표정은 전날과 별반 차이가 없는 반면에 투르는 입술이 한 주먹은 튀어 나와 있었다. 무엇이 불만인지 사람 잡아 먹을 듯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또 한 필리언과 사이론도 그다지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가지.”
가르딘이 먼저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를 따라 필리언, 투르, 사이론이 움직였다.
산맥이 다 그렇듯이 험하다. 계곡과 협곡이 있고, 우거진 숲으로 인해 지나가기 힘들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인적이 드물어서 길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어두워지기 전에 넘어야 된다.”
“알았어.”
가르딘과 필리언의 말이 무척이나 형식적으로 들렸다. 마치 누군가가 듣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펠칸 산맥의 가장 큰 산인 란탄 산을 넘어야 한다. 이곳이 가장 험하기에 빨리 넘는 것이 다음 산을 넘는데 지장을 주 지 않는다. 가르딘은 말이 쉴 수 있도록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움직였다. 또한 숲이 우거진 곳은 길을 터서 말이 지나 갈수 있도록 했다.
란탄 산을 빠져나가자 앞으로 공터 가 보였다. 공터의 주변은 나무들이 자라지 않았다. 바위와 암석으로 이루어 져 있어 자랄 수 없게 된 천연공터였다.
휘이이잉!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공터의 위치가 제법 높아서 그런지 바람이 아래서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가르딘과 필리언, 투르, 사이론은 쉬기 위해 말에서 내렸다. 공터의 앞으로 뜨거운 태양이 서서히 식어서 내려가고 있었다. 지평선을 내려가는 태양으로 인해 노을이 붉게 물들 어갔다. 검붉은 노을은 금세 사라졌다. 곧 어둠이 짙게 주변을 감쌌다.
“여기서 노숙해야겠다.”
“그러지.”
“난 잠시 공터 주변을 돌아보고 돌아올게.”
“그래.”
무척이나 딱딱한 가르딘과 필리언이었다. 평소의 그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가르딘은 공터를 삥 돌며, 간단하게 주변을 관찰했다. 위험이 있는지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무언가를 던져 놓았다.
가르딘이 주변을 관찰하고 돌아오자 일행은 불을 피워놓고, 노숙준비를 모두 마쳤다. 노숙하는 동안 물과 식량을 풀어 가볍게 식사를 하고 난 후 모두 잠이 들었다.
이상한 것은 한 명도 깨어 있지 않고 잔다는 것이다.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것이다. 술에 취한 듯 잠에 빠져들어 버렸다.
휘이이잉!
바람만 간간이 불뿐 조용했다. 짐승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용한 밤이 다가왔다.
사사삭!
그때에 수풀을 해치고 검은 복장을 한 인영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모두 50명에 달하는 인물들이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는지 숫자가 제법 많았다.
“오러 마스터도 별 수 없군.”
“내 독에 걸리면 어쩔 수 없지.”
비릿하고 역겨운 향을 뿜어내는 인물이 자신감 있는 투로 말을 했다. 열기를 뿜어내는 인영이 너무 쉽게 끝이 난 것을 아쉬워했다. 별로 손쓸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고작 저런 놈에게 길로틴이 죽다니!”
“방심한 거겠지.”
“어서 놈들을 처리해라.”
열기를 품은 인물이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50명의 복면인 중에서 5명이 잠들어 있는 가르딘 일행을 향해 접근했다. 조용히 접근하는 그들의 손에는 날카로운 단검이 들려 있었다. 가르딘과 일행은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쥐 죽은 듯이 고요하게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사아악!
복면의 괴인들이 가르딘과 일행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목표물이 너무 쉬웠다. 아무리 강해도 완벽한 준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푸욱!
털썩! 털썩! 털썩! 털썩! 털썩!
썩은 고목처럼 쓰러졌다.
자고 있던 자가 쓰러질 리 만무했다. 공격을 가하려던 복면인 5명이 오히려 당해서 바닥에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이제까지 자고 있던 4명이 동시에 눈을 번쩍이며 일어났다. 술에 취한 듯 자고 있었던 것이 모두 거짓처럼 느껴졌다. 처음부터 자고 있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가르딘과 일행이 일어나자 놀라는 복면인들이었다.
“아니! 어떻게?”
가장 놀란 사람은 복면인 중에서 독을 사용했던 인물이었다. 철저한 계획 속에 눈치 채지 못하도록 완벽한 준비를 했다. 놈들이 가고 난 후 독이 사용되었는지까지 철저하게 확인한 나티안이었다. 독에 완벽하게 당한 존재들이 버젓이 일어났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또 당할 줄 알았냐.”
가르딘이 빈정거리듯이 말을 이었다. 놈들의 수법은 이미 한번 경험을 했다. 그 당시에 당한 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가르딘이다. 이번에 사용한 독은 전의 독과 거의 비슷했다. 아니 조금 더 연구가 되어 발전한 독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음식에 그따위 장난을 하면 안 되지.”
“어제 음식을 다 먹었을 텐데.”
나티안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일단 복용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게 자신의 독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독이 이처럼 쉽게 풀리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다.
어제 저녁 일이었다.
가르딘은 여관 주인이 음식을 가져오자 바로 식사를 하기 위해 둘러앉았다. 빵과 우유, 수프밖에 되지 않지만 여관 주인의 정성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구수한 냄새와 갓 구워낸 듯한 빵의 탄력과 졸깃함. 차린 것은 없어도 먹을 만은 해보였다. 가장 먼저 손을 댄 사람은 투르였다. 투르가 빵과 우유를 마시고, 수프를 먹었다. 가르딘도 수프를 한 번 떠먹어 보았다.
‘응?’
예전에 느꼈던 위화감이 느껴진다. 음식은 맛이 좋게 생겼지만 먹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가르딘은 그 즉시 필리언, 사이론, 투르에게 먹지 말라고 했다. 필리언과 사이론은 거의 먹지 않은 상태라 왜 그러냐고 가르딘을 바라보았다. 그에 반해 투르는 일단 들어간 것을 멈출 수 없었는지 계속 먹으려고 했다. 가르딘이 갑자기 달려들어 투르의 복부를 거세게 두들겼다. 그러자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려던 음식물이 입으로 다시 토해졌다.
“그만 처먹으라고, 인마!”
“죄... 송합니다.”
“꼭 매를 벌어.”
가르딘은 다시 한 번 빵과 우유, 수프를 입에 대어 보았다. 아주 미량을 입에 대는 순간 예전에 먹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독특한 맛과 향이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랜드 마스터의 직감이었다. 가르딘은 순간적으로 오러를 사용해 보았다. 너무 미세해서 쉽사리 파악할 수 없었지만 오러의 기운을 잠식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악마의 눈물!’
거의 확실했다. 오러를 수련한 자가 먹게 되면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악마의 눈물보다 더 강해졌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여러 가지 약이 더 섞여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음식은 모두 버린다.”
“왜 그러는데.”
“독이다.”
“뭐? 갑자기 무슨 독이야!”
필리언과 사이론도 어리둥절했다. 자신들도 조금 먹었는 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가르딘이 독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지 못했다.
“소량이라도 이 독은 상당히 위험해!”
“뭔 소린지!”
“우선은 빨리 배출시 켜야 하니까! 내 말대로 해!”
가르딘은 천룡무상신공을 일으켜 필리언과 사이론, 투르의 몸속에 잠입한 독을 끄집어내었다.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다. 어쌔신 길드에서 사용하는 독이라서 그런지 끈질겼다.
‘전보다 더 힘드네!’
악마의 눈물을 더욱 보강한 것 같았다.
가르딘은 독을 분출시켜 한곳에 모았다. 한줌도 되지 않는 작은 양이었다. 독이라고 말했지만 검지도, 붉지도 않았다. 그저 물방울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이게 뭔데?”
“악마의 눈물.”
“설마!”
필리언도 언뜻 기억이 났다. 오러를 사용하는 자의 능력을 완벽하게 소멸시켜 버리는 무서운 독이었다. 대륙에서 흑마법사가 사라지면서 없어졌다고 알려졌다. 가르딘의 말이 맞다면 무서운 일이었다.
“아무래도 어쌔신 길드에서 우리를 노리는 것 같은데.”
“뭐야? 왜 갑자기 우리를 노리는데?”
“그건 모르지.”
“그럼 여관 주인도 한패 아닌가! 한번 족쳐볼까!”
“아니, 그런 어쭙잖은 수를 쓰지는 않을 거야! 여관 주인은 자신이 한 행위를 모를 가능성이 커.”
“그럼 위험한 것 아니냐! 차라리 피하는 게 어때!”
“안돼!”
가르딘은 여기서 피한다고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어째신 길드에서 왜 공격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전번에 실패한 것을 만회하려는 것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황궁에서 벌어지는 암투로 인한 것일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유는 많았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여기서 피하면, 발키리 영지에서 대결을 벌어야 한다. 대외적으로 보는 눈이 많아진 발키리 영지다. 어째신의 공격으로 인해 가르딘의 존재가 밝혀지면 무척이나 곤란했다. 차라리 놈들이 기다리는 곳에서 은밀하게 처리하는 것이 나았다. 놈들도 공개적으로 처리하기 곤란하기에 지금까지 기다린 것으로 보였다.
“놈들의 수는 많지 않을 거야.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을 거다.”
가르딘은 작전을 설명해 나갔다. 어차피 기습작전은 역기습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놈들의 수법에 걸려드는 척하면서, 적을 드러나게 만들고 그 이후에 처리하면 되었다. 독에 당했다면 모를까 오러 마스터가 2명이나 되는데 질 리 없었다.
“우선은 음식을 모두 자루에 담아.”
“그러지.”
먹고 잔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가르딘은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유를 알게 된 포이즌 다크 나티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자신감 있게 내세운 계획이 모두 실패한 것이다. 무척이나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까지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수행한 자신의 행적에 오역을 남긴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자는 한번 무너졌을 때 참을 수 없는 수치감을 느낀다.
“그전에 하나 물어보자. 왜 우리를 공격한 거지?”
“말해 줄 것 같으냐.”
“그럴 것 같긴 해.”
“크하하하하!”
나티안의 옆에서 열기를 뿜어내는 인물이 즐겁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너무 싱거운 상대라 맥이 빠지던 차에 차라리 잘됐다고 여겼다. 그는 계획보다는 실제로 전투를 치르는 것을 선호하였다.
“나는 세븐 다크의 파이어 다크 더블이다.”
자신의 정체를 서슴없이 밝히는 더블이었다. 어차피 가르딘도 그 정도는 유추하고 있었다. 전번에 겪었던 블러드 다크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어쌔신 길드의 놈들이라는 것만 알던 필리언과 사이론은 놀라고 말았다. 세븐 다크는 어쌔신 길드를 이끄는 7명의 특급 어쌔신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각자의 실력이 오러 마스터에 비견된다는 말까지 전해질 정도로 엄청난 암살자들이었다.
“거 이름이 더블이 뭐냐? 두 개라는 소리냐. 전번의 놈도 길로틴이라고 하더니! 차라리 단두대라고 하는 게 낫지 않냐.”
가르딘의 구시렁거림은 작지 않았다. 모두에게 다 들렸다. 사실 더블이라는 이름은 가명이다. 어쌔신이 본명을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가르딘이 이름 가지고 놀리고 있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화를 어떻게 하면 자극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더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뿜어지는 열기 또한 강렬해졌다. 더블의 열기를 가속시키는 기운은 다크 파이어 심법이라고 불리는 암흑의 불길이다. 몸 안에 암흑의 불길을 가다듬어 전신을 불의 신체로 만들어낸다. 실제적으로 헬 파이어(지옥의 불길)라는 9서클 화염계 최고마법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불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크크크크크”
“두 개 그거 되게 웃긴다! 그럼 나는 쓰리다! 그럼 내가 윈 가!”
“저는 포입니다. 두 개는 더 윌 겁니다!”
더블의 신경을 더 자극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르딘의 뒤에서 필리언과 사이론, 투르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직접 놀리는 놈보다 뒤에서 반응하는 놈들이 더 얄미운 상황이었다. 더블은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앞에서 이토록 건방진 놈들은 처음이었다. 죽고 싶다고 발악하는 놈들처럼 보였다.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그냥 죽이지 않겠다! 지옥의 고통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겠다!”
“그렇게 흥분할 필요 없어. 차분하게 말을 해도 다 알아들으니까! 밤에 떠들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라는 것도 모르나! 예의가 정말 없군.”
“뭐... 뭐라고! 네놈이! 감히!”
가르딘의 어조는 차분했다. 다음부터 그렇게 떠들지 말라는 조언까지 덧붙였다. 듣고 있는 더블의 심기는 더 이상 참을 수 있는 아량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고작 어쌔신 주제에 제국의 백작에게 감히라는 말을 하다니! 넌 근본도 배우지 못한 녀석이구나! 어린 시절 마구잡이로 자란 티를 내고 있다니! 그래서 부모님을 뵐 면목이 서겠어.”
가르딘도 부모에 관해서는 남 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남을 놀린다.
부들! 부들!
가르딘의 말이 차분할수록 더블의 화는 더욱 커졌다. 더블은 고아다. 그에게 부모라는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버려진 아이에게 부모의 존재는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었다. 누구도 더블에게 저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하기도 전에 모두 암흑의 불길에 재가 되어 버렸다.
“처참하게 타면서 울부짖게 만들어 주마!”
더블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와 동시에 암흑의 불길은 거세게 타올랐다. 전신이 불덩어리처럼 보인다.
“이거 고기 구워먹기 딱 좋은 불길인데, 어허! 거기서 더 세지면 고기 타니까, 조절 좀 잘하는 게 좋을 거다.”
“이놈이! 죽어랏!”
가르딘은 끝까지 말장난을 걸었다. 더블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더블도 일반 사람보다 훨씬 컸다.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속도는 빨랐다. 오른 주먹에 불길을 형상화시킨 후 가르딘을 향해 쏘아내었다.
- 다크 피스트 버스터(암흑의 광선)!
“산채로 타 버려라!”
더블의 주먹에서 나선의 회오리가 형성되어 뻗어나갔다. 뻗어나가면서 바람을 탄 불길이 거세게 요동쳤다. 대기가 타는 듯한 뜨거운 열기가 발산되었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화상을 입을 정도의 열기였다. 직접 부딪친다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다크 피스트 버스터가 날아오는 상황에서도 가르딘은 여유만만했다. 피할 생각도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늦어서 하품이 나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더블은 두려워서 실성했다고 생각했다.
“미쳤구나!”
푸아아앙!
불길이 무언가에 부딪쳤다. 활활 타오르는 열기가 육중한 몸체에 닿았다. 거대한 신체를 지닌 인물이 한 팔로 불길이 휘저었다. 그러자 불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꺼져 버렸다.
가르딘의 앞을 가린 녀석은 투르였다. 투르는 금강지체를 가지고 있었다. 지옥의 불길이 아닌 이상 흠조차 낼 수 없는 단단한 신체를 가졌다. 그의 몸에 흐르는 광천패황신공은 투르의 몸을 이전보다 더욱 단련했기에 어지간한 충격은 모두 튕겨 버릴 수 있다.
불길을 튕겨 버린 투르가 지옥의 광기를 발산했다. 광기와 패기, 투기가 뒤섞여 있는 무서운 기운이 폭사되자 어쌔신들 모두 움찔거렸다. 공격을 했던 더블조차 움츠려들게 만드는 광폭한 기운이었다.
크르르르롱!
맹수의 울부짖음과 같은 소리가 투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한 걸음만 움직여도 먹이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은 분위기였다. 뒤에 있는 가르딘은 야수를 다스리는 조련사처럼 보였다.
“투르야, 안 보인다! 옆으로 좀 비켜라.”
“예.”
가르딘은 거대한 신체 뒤에서 안전하게 머물렀다. 불길은 가르딘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막혔다. 여전히 여유만만하게 더블을 바라보았다. 더블은 가르딘의 면상을 보자 신경질이 났다. 그럼에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좀 전에 보여준 투르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내 공격을 그처럼 쉽게 막다니!’
맨몸으로 암흑의 불길을 막는 놈은 세븐 다크의 아이스 다크 슬로처를 제외하고 보지 못했다. 슬로처조차도 암흑의 불길을 막기 위해서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였다. 순수한 육체적인 능력만으로 막아내는 경우는 없었다. 더블은 암흑의 불길이 막혔다는데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다.
가르딘은 더블이 화가 나든 말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덤벼들다니! 성질은 무지하게 급하구나!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니까.”
“닥... 쳐랏!”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는 더블이었다. 나머지 어쌔신들도 가르딘의 말은 듣기 싫었다. 남이 듣기 싫어하는 말만 골라 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난 가르딘이었다.
“이독제독이라는 말이 있다.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설명을 해주지, 독은 독으로 제압이 가능하며, 독한 놈은 더 독한 놈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더 쉬운 말로 설명 하면, 성질 급한 놈은 더 성질 급한 놈으로 제압할 수 있으며, 멍청한 놈은 더 멍청한 놈으로 아! 이건 아니군. 미안하다, 투르야. 저놈은 멍청해도 너는 안 멍청하니 그렇게 노려 볼 필요 없다.”
투르가 뒤돌아서 자신은 멍청하지 않다고 어필했다. 그 말에 보답하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의 말을 듣고 있는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저놈의 입을 닥치게 만들어야만 했다. 더블은 수하들에게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더 이상 가르딘의 말을 듣다 보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쳐랏!”
“어허! 아직 우리는 순서를 정하지 않았는데 마구잡이로 움직이다니!”
가르딘에게 덤벼드는 5명의 어쌔신이 있었다. 좀 전에 당한 것이 있어서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무척이나 빠르고, 은밀했다. 어둠으로 타고 움직였기에 바로 앞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달그림자조차 구름에 가려 있었다.
“그럼 안 되지.”
가르딘의 검이 교묘하게 다섯 번 튕겼다. 어둠을 투영하는 가르딘의 안광이었다. 그 어떤 움직임도 가르딘의 기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벼운 수법처럼 보이지만 절대 가벼이 볼 수 없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슈슈슈슈슉!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갔다. 다섯줄기로 뻗어나간 빛은 섬광을 뛰어넘는 속도를 지녔다. 빛은 너무 빨랐다. 빠르게 접근하던 5명의 어쌔신은 속수무책으로 머리에 검탄을 맞고 정지했다. 머리가 매끄럽게 꿰뚫려 버렸다. 대응하기에는 어쌔신의 능력이 모자랐다. 가르딘의 실력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했다. 가르딘의 무섭도록 강력한 실력을 보자 어쌔신들이 긴장했다. 쉬운 상대가 아님을 직감한 것이다.
더블도 순간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입가에 미소 짓는 가르딘의 모습이 달라 보였다. 내면에 숨죽이는 기운은 어쌔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강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이 아니다!’
말만 많은 놈이 아니었다. 이제야 상대가 오러 마스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제국에도 10명을 넘지 않는 것이 오러 마스터였다. 그런 상대가 쉽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상대를 가벼이 본 것을 후회했다.
“투르야, 너는 저 성질 급한 놈을 상대해 주어라!”
“예, 영주님!”
“네놈들 때문에 식사를 하지 못한 투르다. 하루를 굶은 투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나조차도 감당이 되지 않으니 조심해야 할 거다.”
어제 식사를 하다가 독 때문에 먹지를 못했다. 하루가 아니라 반나절을 굶었음에도 불구하고 투르는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다른 것은 다 참아도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은 절대 참아줄 수 없었다.
가르딘은 필리언, 사이론에게 남아 있는 어쌔신을 맡도록 눈치를 주었다. 아직 미숙한 사이론의 옆에는 필리언이 있어야 했다. 어쌔신들의 공격은 날카롭다. 언제 어디서 비수와 암수가 날아올지 모른다. 잠깐의 방심이 화를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이기에 조심해야 한다.
흐읍!
퉤!
가르딘이 길게 호흡을 한 후 침을 뱉었다. 뱉어진 침은 검은 액체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검은 침이 바위를 녹여 들어갔다. 일반적인 침이 산성을 띠지는 않을 것이다. 더블과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가르딘에게 독을 푼 나티안이었다. 나티안이 푼 것은 산성의 기운을 응축시킨 킹액시드였다. 흡입 즉시 몸 안의 장기가 모두 녹아 버리는 무서운 독이다. 그런 독을 흡입하고 바로 뱉어 버렸다. 킹액시드는 흡착력이 상당히 강했다. 일단 흡입하면 다시 나오지 않는다. 오러를 운용할수록 킹액시드의 기운이 퍼져나가야 마땅하건만 상황은 나티안의 바람을 외면했다.
“어떻게?”
“뭘, 설마 이 정도에 당할 것이라 생각한 건가.”
가르딘의 싱겁다는 투는 나티안의 심경을 자극했다.
가르딘이 나티안을 상대하는 이유는 독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녀석들보다 까다로운 놈이다. 투르는 상관없다고 해도 필리언과 사이론에게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위험한 상황을 동료와 제자에게 맡길 수는 없다.
“누가 시켰지?”
“아까도 말했을 텐데.”
“죽겠다는 뜻인가.”
가르딘의 말투가 바뀌었다. 서릿발 같은 기세가 폭사되었다. 무척이나 차갑고, 소름끼쳤다. 죽고 싶다면 얼마든지 죽여줄 수 있다는 듯했다. 너희 따위는 어차피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나티안도 지지 않으려고 악을 썼다.
“네가 죽겠지!”
“네놈들은 악마의 눈물을 사용했다. 한번은 우연이라고 해도 두 번은 아니겠지. 이 사실이 밝혀지면 어쌔신 길드가 남아날지 궁금하군.”
흑마법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악마의 눈물이었다. 악마의 눈물을 사용했다는 뜻은 어떻게든 흑마법사와 연관이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신성제국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흑마법사들이었다. 사실이 밝혀지면 어쌔신 길드로서는 상당히 큰 타격을 받아야 한다. 포이즌 다크 나티안은 가르딘을 반드시 죽여야 했다.
“여기서 살아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냐?”
“물론.”
“검만이 최고인 줄 아는구나! 하지만 네놈이 나의 독을 막아낼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럼 보여줄까.”
가르딘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한 발이 앞으로 나아갈 때 신형이 급속도로 빨라졌다. 순간 가르딘이 두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다. 공간을 건너뛴 것 같은 가르딘의 신형이었다.
휘이익! 사아악!
“헛!”
나티안이 헛바람을 삼켰다. 위기감을 느낀 나티안이 뒤로 허둥지둥 물러섰다. 공간이 갈라지는 것을 본 것이 전부였다. 물러선 나티안은 죽지 않았다는 것에 잠시 안도했다. 너무 빨랐다. 언제 검이 출수되었는지 보지도 못했다. 독을 사용할 틈조차 없었던 것이다. 독은 주변에 계속 살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통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털썩!
나티안의 몸에서 무언가 떨어져 나갔다. 아픔을 느끼지 못 한 찰나에 오른팔이 맥없이 잘려나갔다. 어깨까지 잘려나간 곳은 단면이 잘벼려진 검처럼 매끄러웠다. 가르딘의 검이 어느새 나티안의 팔을 잘라낸 것이다. 피했다고 생각한 나티안은 잘못 알고 있었다. 가르딘의 검이 노린 것은 나티안의 팔이었다.
“어때, 다시 생각해 보니 검이 무섭지!”
“크으윽!”
“다... 닥쳐!”
나티안이 고통을 느낄 때 가르딘이 또다시 다가왔다. 발그림자조차 생성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나티안이 또다시 뒤로 솟구쳐 올랐다. 도망가기 위해 뒤로 점프를 했는데, 그게 말처럼 되지 않았다. 솟아오른 순간 무언가가 나티안을 잡았다.
착!
어느새 뒤로 뛰어오른 나티안의 발목을 잡은 가르딘이었다. 온몸이 독으로 이루어진 나티안이었다. 일반 사람이 자신을 잡게 되면 독을 이기지 못해 중독이 되게 되어 있었다. 나티안은 화심을 일격을 준비했다. 어깨 부근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을 가르딘에게 던졌다. 온몸이 독으로 되어 있는 나티안의 피는 가장 강력한 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휘익!
지글! 지글!
핏물은 가르딘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가르딘의 주변으로 호신강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독은 호신강기의 뜨거운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모두 증발해 버렸다. 나티안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네... 놈은 누구냐?”
오러 마스터가 이런 수법까지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자가 아닌 것 같았다.
가르딘은 이죽거렸다.
“너희들은 말해 주지 않으면서 내가 말할 것 같으냐.”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으냐!”
“당연.”
“네놈은 무사해도 네놈과 연관된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어쌔신 길드의 무서움을 알게 해주려는 나티안이었다. 여기서 살아나도 절대로 무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비겁한 놈이 하는 그런 흔한 말 중에 하나였다. 상대에게 허세를 보여 겁을 주려는 것이다. 그런데 방법이 잘못되었다.
“우드득! 크아아악!”
가르딘은 잡고 있던 나티안의 발목에 힘을 가했다. 저놈들은 지 죽을지 모르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말았다. 가르딘과 연관된 사람이 누군가! 바로 라이나와 브리안이었다. 가르딘은 다른 것은 다 참아도 가족과 연관되면 절대 참지 않는다. 가르딘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맥없이 부러져 나가는 나티안의 발목이었다.
“돈을 받고 사람이나 죽이는 놈들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렇게 나온다면 네놈들이 원하는 대로 죽여주지.”
살인자들에게는 살인자에 걸맞은 최후를 주면 되었다. 가르딘은 발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나티안의 몸이 가볍게 들어 올려졌다. 가르딘은 암석으로 이루진 부분에 나티안을 채찍처럼 휘둘렸다. 가볍게 휘두르는 것 같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파파파파팟!
바닥에 부딪친 나티안의 몸이 힘없이 부서져 나갔다. 가르딘의 기운이 나티안의 몸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고통을 느끼면서도 죽지는 않았다. 처참하게 무너지는 나티안이었다. 온몸의 살결이 찢겨져 나가고 있었다. 뼈가 부서지면서 살 속을 파고들었다. 얼굴은 형체조차 제대로 남겨지지 않았다.
쿠과과광!
화르르륵!
충돌과 함께 불길이 거세게 일었다. 바위마저 붉게 만드는 더블의 능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칠수록 밀리는 더블이었다. 투르의 무지막지한 육체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옷이 녹기는 해도 몸은 멀쩡했다. 피부를 검게 그을린 게 전부였다. 말도 안 되는 단단함에 더블이 질릴 지경이다.
투르는 단단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투르가 휘두르는 창술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힘과 속도, 파괴력에 있어 투르의 능력은 일취월장 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광룡창법의 능력은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광룡창법-제 5식-광룡포
슈우우응! 콰과과과광!
광룡포는 말 그대로였다. 광기에 휩싸인 용이 브레스를 발사하는 것과 같았다. 광천패황신공이 스며든 광룡창은 닥치는 대로 부숴버리고 있었다. 광룡포가 난사된 곳은 바위든 암석이든 남아나지 않았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공격을 쉴 새 없이 휘두르는 투르였다. 한번 걸리면 뒈진다 식의 공격이었다.
더블은 암흑의 불길을 이용해서 몸을 보호하고 있지만 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스치기만 해도 다크 파이어 심법의 운용이 흔들렸다. 투르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공격한다. 그러기에 상대하기 무척이나 까다롭다. 더블이 간혹 파이어 스트라이크를 사용하여 반격했지만 소용없었다. 밀고 들어오는 투르는 더블의 공격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블도 광폭하기로는 둘째가라며 서러웠다. 그렇지만 투르는 광폭 하다 못해 무식해 보였다. 무식한 공격이 이처럼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더블이었다. 한 방 잘못 걸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
계속 밀리자 자존심이 상하는 더블이었다. 투르는 상대방이 악을 쓰든 말든 자신의 공격을 감행할 뿐이었다. 적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광전사였다.
더블은 찔러 들어오는 광룡창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뒷발에 힘을 주어 앞으로 튀어 오른 더블은 최강의 일격을 뻗었다.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부은 권격이 투르의 얼굴을 가격했다.
타아앙!
더블은 뻗은 주먹에서 반탄력을 느꼈다. 뒤로 주춤하며 물러선 더블은 믿을 수가 없었다. 더블은 주먹에 초열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는 열기였다. 까닥!
투르는 가볍게 고개를 젖히더니 별거 아닌 것처럼 다시 공격을 했다. 공격했던 더블은 기가 막히다 못해 뭐 저런 놈이 있냐는 표정이 되었다.
더블은 물러서서 멍하니 있을 시간이 없었다. 투르의 공격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광천패황신공의 공능이었다. 공격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강해진다. 다만, 광천패황신공이 강해질수록 흉포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경험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투르가 더블의 신형을 쫓아 광룡창을 뻗었다. 공격범위에서 벗어난 더블이 피할 공간을 확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창이 길게 뻗어 나왔다.
“아니!”
창을 뻗은 게 아니라 날린 것이었다. 투르의 힘은 짧은 거리에서도 가속이 가능했다.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온 광룡창이 더블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광룡창에는 광천패황신공의 광폭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스쳤음에도 불구하고 신음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나왔다.
“크윽!”
비틀거 리는 더블의 정면으로 투르가 어느새 다가왔다. 투르는 달려들어 더블을 잡았다. 더블의 몸체를 잡은 순간 위로 들어 올렸다. 더블의 큰 신체도 투르의 힘 앞에서는 부질없었다. 바동거리는 신체를 들어 올림과 동시에 투르도 몸을 날렸다. 더블의 몸이 위에서 아래를 향하는데, 투르가 그 뒤에서 체중을 가중시켰다. 더블은 그 순간이 느릿하게 보였다. 바닥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피할 수가 없었다. 몸을 단단하게 부여잡은 투르를 떨쳐낼 수 없었던 것이다.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요지부동이었다.
“안... 돼!”
푸우우욱!
돌바닥에 깔린 더블은 전신이 모두 부서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간신히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투르는 화풀이를 하려는 듯이 더블을 들어서 바닥에 패대기치고 있었다.
크르르릉!
폭발하는 화를 주체 못하는 투르였다. 그에 따라 더블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전신이 모두 가루가 될 때까지 두들겼다.
가르딘과 투르가 화를 폭발시킬 때 필리언과 사이론은 빠르고, 예리하게 어쌔신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40명이나 되었던 어쌔신들이었지만 이제는 절반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필리언과 사이론은 어쌔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특히 필리언은 사람 같지 않았다. 뇌전을 방불케하는 위력적인 검격은 막아낼 수 있는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났다.
사이론은 필리언의 검법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패스트 검법도 더 빠른 것 같았다. 같은 검법이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사이론조차 혀를 내둘렸다.
뇌전폭풍도법의 천뢰섬이 어쌔신들의 미간과 심장을 여지없이 뚫어버렸다. 필리언은 노련하게 어쌔신들의 약점을 공격해 나갔다.
슈슈숙! 파팟!
소리는 크게 나지 않았다. 그저 번개가 일직선으로 그어지자 쓰러질 뿐이었다. 어쌔신들은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암수를 사용하기도 쉽지 않았다. 사이론 혼자라면 사용해 볼 수 있겠지만 노련한 필리언이 암수를 날릴 틈과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남아 있는 어쌔신들이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10명이 동시에 달려드는 것이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공격을 하였다. 동귀어진을 노리는 수법이었다. 특히 사이론을 노리며 들어 갔다. 필리언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런!”
필리언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일급 어쌔신들의 동귀어진은 무서웠다. 사이론 혼자서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안 필리언이 방향을 바꾸어 움직여 나갔다. 사이론도 위기감을 느끼자 최선을 다해 벗어나려고 했다. 패스트 검법으로 2명을 처치하는 순간에 필리언이 다가와서 나머지 어쌔신들을 상대하였다.
그때였다.
휘이익!
공격하는 어쌔신들의 뒤에서 나머지 어쌔신들이 무언가를 던졌다.
어쌔신들과 근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에서 위험한 것을 던졌을 리 없다고 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같은 편도 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필리언의 오판이었다. 동료들을 발판 삼아 마력탄을 던진 것이다. 마력을 봉인하여, 반발력이 가해지는 순간에 폭발하는 마력탄이다.
푸아아아앙!
거친 소리와 함께 터진 마력탄이 위력을 발하자 어쌔신들이 터져 나갔다. 터져 나간 육편과 마력탄의 폭발력이 한꺼번에 필리언과 사이론을 덮쳤다. 이대로 있다가는 당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필리언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가르딘이 웬만하면 쓰지 말라고 했는데!’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으려던 필리언이 기운을 발산했다. 위험한 상황이라 쓰는 것을 주저할 틈이 없었다. 필리언의 검에서 검의 절대지경에 이른 오러 블레이드가 발산되었다.
-뇌 전폭풍도법-제 3식 -폭풍뇌.
휘이이이잉! 파파파팡!
바람 같은 기운이 폭사되어 나아갔다. 필리언과 사이론을 덮치는 마력탄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폭풍뇌가 마력탄의 위력을 분쇄시켜 버렸다.
“오... 러 마스터!”
남아 있는 어쌔신들은 필리언의 검에 형성된 오러 블레이드를 보자 뒷걸음을 쳤다. 상대가 오러 마스터일 줄은 예상 하지못했다. 정보에 의하면 가르딘만이 오러 마스터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 오러 마스터가 한 명 더 있었다. 승산이 없어 보였다. 어쌔신들이 자신들의 수장인 더블과 나티안을 보았다.
“이... 럴 수가!”
더블과 나티안도 처참하게 당하고 있었다. 애초에 승산이 없는 전투였다. 상대할 적에 대한 정보가 너무 미진했다. 여기서 벌어진 일을 어쌔신 길드에 알려야 했다. 어쎄신들은 물러서기로 마음먹었다. 수장이 모두 당한 마당에 계속 여기에 있다가는 의미 없는 죽음만 될 뿐이었다.
어쌔신들이 사방으로 퍼져 도망가기 위해서 움직였다.
“잡아야죠.”
“나둬. 도망칠 수 없으니까.”
“예?”
사이론이 쫓아야 한다는 말에 필리언이 제지했다. 어차피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르딘이 여기에 오고 난 후 주변을 돌아본 것은 진법을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행여나 한 명이라도 도망치면 곤란할지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간단한 진법이지만 처음 당하는 어쌔신들이 빠져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필리언의 생각대로 어쌔신들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
어쌔신들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아간 것 같은데 다시 돌아와 있었다. 몇 번을 해봐도 같았다. 일급 어쌔신들이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일이 우연일 리 없었다. 이런 경우는 마법진이 주변에 펼쳐졌을 때뿐이다.
“설마 마법진!”
“언제?”
어쌔신들에게는 환장할 일이었다. 마법 진이 설치되었다면 이곳에 오기 전에 알고 있어야 했다. 더군다나 이곳에 마법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쌔신들은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다.
“그렇게 멍하니 있을 틈이 있겠어!”
사이론과 필리언이 다가와서 어쌔신들을 베어 넘겼다. 필요한 몇 명을 제압하고 난 후 나머지는 모두 죽여 버렸다. 인간살인마들에게 인정은 과분했다. 깨끗하게 죽여주는 것이 나았다. 절망감을 맛본 어쌔신들은 제대로 된 반항을 하지 못했다.
가르딘에게 잡힌 나티안의 전신은 엉망이었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르딘의 행동은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가족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크으으윽!”
신음이 작게 흘러나왔다. 호흡을 할 힘조차 없는 나티안이었다. 그럼에도 가르딘은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다. 고통을 가하는 행동을 계속하였다.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는 나티안이었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사삭!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작은 공간의 뒤틀림이 있은 후 빠르게 그림자가 튀어 나왔다. 너무 빨랐다. 촌각의 거리에서 피할 틈이 없어 보였다.
날카로운 검이 가르딘의 가슴을 노렸다. 이제까지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그림자였다. 동료들이 모두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마지막 기회를 노린 쉐도우 다크 보리스였다. 보리스는 설마하는 심정으로 숨어 있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최종목표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만 죽인다면 이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정면대결로 가르딘을 이기기는 어렵다고 판단을 내렸다. 호흡과 기척을 모두 숨기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가르딘이 나티안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다가가 암수를 가했다. 가르딘이 아무리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척!
회심의 일격이 성공했다고 믿은 보리스였다.
그런데 가르딘이 쓰러지기는커녕 보리스를 향해 조소를 보내고 있었다. 가르딘은 보리스의 일격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가볍게 잡아내었다. 쾌속한 공격을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막아낸 것이다.
“이제 나왔냐.”
“어떻게?”
“설마 내가 너 정도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 럴 리가 없다.”
“현실은 냉정한 거니까.”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내 공격을 막을 수 없다!”
“네가 남았으니 이놈은 필요 없겠지.”
가르딘은 망설임 없이 나티안의 목을 검으로 그어 버렸다. 이제까지 보리스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가르딘이었다. 보리스는 가르딘에 대한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간파했다. 가르딘은 보리스가 아는 정보보다 훨씬 무서운 인물이었다. 이 정도의 인물이 그저 변방의 영지로 머물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왜 길드의 모든 일이 가르딘에게 의해서 방해받았는지 말이다.
‘길드에 알려야 한다!’
보리스는 생각이 정리되자 바로 도주했다. 이곳에서 벗어나서 길드에 알려야 했다. 빠져나가는 보리스를 무심히 바라보는 가르딘이었다.
쉐도우 다크 보리스는 누구보다 빠르다고 자부했다. 작정하고 도주하면 아무도 잡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휘익!
“아니!”
“왜 놀랐나.”
가르딘이 어느새 보리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보리스의 스텝은 쉐도우 스텝이다. 그림자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모두 쉐도우 스텝을 익혔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빠름에서 자신을 따라올 수 없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데 지금 자부심이 무너지고 있었다.
보리스는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다가 급작스럽게 방향을 틀어 오른 쪽으로 도주했다. 한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면 몸이 앞으로 쏠리기에 다시 방향을 잡으려면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 점을 노린 것이다.
‘허억!’
또다시 가르딘의 신형이 보리스의 앞에 나타났다. 아무리 움직여도 가르딘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보리스는 유령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가르딘의 신법이자 보법은 섬전보다. 보리스의 신형이 아무리 빨라도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가르딘의 보법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보리스는 다시 움직여 보았다. 여전히 가르딘이 앞에서 진로를 차단했다. 보리스는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는 누구냐?”
“알면서 묻는 건가.”
“너는 가르딘 후작이 아니다!”
“본인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어떤 심정일 것 같나.”
“이럴 리가 없다!”
보리스는 미칠 것 같았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르딘을 해치워야 했다. 기습적인 암격을 무리 없이 받아낸 가르딘에게 다시 한 번 공격하여 성공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내가 물어보면 대답하지 않겠지..”
“죽어랏!”
슈슈슈슉!
보리스의 팔목 부근에 숨겨진 날카로운 바늘이 쏟아져 나갔다. 소리조차 나지 않는 작은 바늘에는 치명적인 극독이 발라져 있었다. 한 번에 300발이 쏘아지게 설계되었다.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기에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비밀무기였다. 방심하는 순간에 날리는 일격에 가르딘이 당할 것이라고 보았다.
티티티티팅!
바늘이 검과 부딪쳐서 튕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가르딘이 어느새 검을 뽑아 찔렸다. 한번의 찌름에 혼을 실어 날리는 극한의 찌르기였다.
- 무극칠검식-제 3절초-무극혼섬
300개의 바늘을 정확하게 검격으로 모두 부딪쳤다. 말도 안 되는 찌르기였다. 어떻게 인간이 이처럼 빠른 찌르기를 구사할 수 있는가!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경지였다. 바로 앞에서 지켜본 보리스는 전신이 떨려 왔다. 순간 느껴진 기세는 보리스가 감당할 수준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세븐 다크의 수장인 슬로처에게서조차 느껴보지 못한 기운이었다.
“말... 도 안 돼!”
“말이 되지.”
가르딘이 보리스의 마혈을 가격했다.
찌릿한 기운을 느낀 보리스는 그 자리에서 몸이 정지해 버렸다. 의식은 멀쩡한 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혈은 사람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는 하는 혈을 뜻한다. 기운이 흘러가서 집약되는 부분에 충격을 가해 기가 순환되지 못하게 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가르딘은 최대한 미세하게 조절하여 사용하였다. 세밀한 기의 운용이 되지 못하면, 마혈을 치는 순간 죽을 수도 있다.
“어쌔신은 보통 인내력이 강하다고 하던데, 그런지 좀 볼까.”
가르딘의 무심한 눈을 보는 순간 극렬한 공포를 느낀 보리스였다. 적의를 가지고, 기세를 뿜어내었다면, 덜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가르딘은 보리스를 사람이 아닌 그저 물건처럼 대하고 있었다.
철퍼덕!
팔과 다리가 기이하게 꺾인 채로 바닥에 던져진 인영. 사람의 몰골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블의 전신의 뼈가 대부분 부서진 채로 간신히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았다.
“차...라...리 죽...여...라!”
살아 있는 것이 고통이었다. 부서진 뼛조각이 살 속을 파고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있었다.
더블은 죽음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마구잡이로 때렸는데도 숨만 붙어 있게 한 투르의 능력이 대단할 뿐이다.
때마침 필리언과 사이론도 어쌔신들을 모두 정리했다. 어쌔신들 중에 살아 있는 수는 고작 5명이 전부였다. 나머지 어쌔신들은 모두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가르딘은 보리스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왜 우리를 죽이려 했지?”
“내... 가 말할... 것 같... 으냐!”
보리스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르딘이 자결을 우려하여 턱관절의 힘을 빼놓았다. 겨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힘만 남았다.
‘씨익!’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그럼 어떤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너도 알겠지.”
가르딘은 손가락에 내기를 모았다. 모아진 기운을 보리스의 사혈 부근에 투입하였다. 투입된 기운은 사혈을 통해 보리스의 근육과 뼈를 바늘로 찌르듯이 움직인다. 기운은 점차적으로 강해지고 뒤틀림은 심해진다. 가르딘의 사용한 수법은 내가중수법에 속하는 기술로, 다른 말로는 분골착근이라고 한다. 몸 안에서 뼈가 갈리고, 근육이 역으로 뒤틀리게 되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준다. 한번 겪어본 자는 정신이 이상해지거나 광인이 될 수 있는 수법이다.
따다다다닥!
보리스는 이가 저절로 부딪쳤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받지만 몸부림칠 수 없다. 마혈을 제압당한 보리스는 선 채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켰다.
“어때, 몸 안에서 뼈가 갈리고, 살점이 뜯겨나가는 것 같지. 하지만 이건 시작이야! 내가 사용한 수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거든. 얼마나 버티는지 보지. 그리고 마혈을 제압한 이상 정신을 잃을 수도 없다. 또한 죽을 수도 없다.”
“으... 아아악!”
비명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인간이 버틸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보리스는 눈은 붉게 충혈이 되고, 전신의 힘줄이 터질 듯이 튀어나왔다.
가르딘은 보리스를 놔두고, 이번에는 더블에게 다가갔다. 더블은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파이어 다크라고, 불을 아주 좋아 하나 보지.”
“끄으응!”
신음을 낸 더블이었다. 죽고 싶어도 몸을 움직일 여력이 되지 못했다. 더블은 가르딘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이었다.
“사람을 많이 태워 죽였겠지. 죽는 순간까지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이 화형이라고 하더군. 안타까운 것은 본인은 그걸 모른다는 것이지, 네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가르딘은 냉정하고, 철저하게 어쌔신을 유린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놈들에게 사람다운 대접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당하는 자들의 입장을 놈들에게도 알려 줄 필요성이 있었다.
“투르, 땔감 좀 구해와라.”
“예, 영주님!”
가르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변에 있는 땔감을 구해서 더블의 주변에 쌓아 놓았다. 가르딘은 나뭇가지 하나에 불을 붙여 더블의 주변에 놓았다. 마른 가지와 마른 잎이라 불이 금세 타올랐다. 타오른 불은 더블의 옷에 옮겨 붙었고, 살을 태우기 시작했다. 다크 파이어 심법을 운용하지 않는 이상 더블의 몸은 일반 사람의 몸과 같았다.
“으으으아아악!”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더블은 미칠 것 같았다.
타는 고통이 얼마나 잔인한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람이 타는 모습을 보며 쾌락을 느낀 더블이 오히려 불에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제압당한 5명의 어쌔신들은 공포에 젖어들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사람을 고통스럽게 죽이는데 도가 튼 자신들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 같은 가르딘이 나머지 어쌔신들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걸어오는데도 불구하고 어쌔신들은 심장이 쿵광거리고 있었다.
“너는 말하고 싶은가?”
공포에 떠는 어쌔신의 모습은 생소하기까지 했다. 어쌔신 길드의 일급 어쌔신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르딘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미건조했다. 높낮이의 고저가 없는 목소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되는 어쌔신들이었다.
“우... 리는 말할 수 없다!”
떨리는 가운데 어쌔신 1명이 용기를 내어 말을 했다. 가르딘은 어쌔신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말을 한 어쌔신의 마혈을 제압하고, 보리스와 같은 분골착근을 선사했다.
“크아아아악!”
말할 입은 하나면 되거든. 편하게 죽고 싶은 놈은 말을 해라.”
가르딘은 어쌔신들을 살려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죽인다고 말했다. 다만 편안하게 죽고 싶다면 말을 하라는 뜻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이론은 가르딘의 행동이 무서웠다. 원래 이처럼 무서운 사람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쌔신도 사람이었다. 사이론이 나서려는데, 필리언이 제지했다.
“그만.”
“하지만 너무 심합니다.”
“세상은 비정하지. 설마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진행될 거라 생각했냐.”
가르딘과 필리언은 피닉스기사단에서 수없이 많은 전장을 경험했다. 전장은 깨끗하지 않다. 기사라고 해도 고문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대의와 명예를 중시하지만 뒤로는 인간으로 해서는 안되는 짓까지 서슴없이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전쟁을 이길 수 없다. 전쟁에서 패전은 죽음이다. 모든 것을 잃는다. 명예와 권력도 승자만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패자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비정하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가르딘은 4명째 분골착근을 시행했다. 남아 있는 어쌔신은 동료가 거품을 물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기겁했다.
“말... 하겠습니다!”
“누구지?”
“그것은......!”
부들! 부들!
말을 하려던 어쌔신이 몸을 떨더니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어쌔신들 자체적으로 독단 이외에 금제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릿속에 금제를 당해 있는 상태라 말을 하지 못 하게 되어 있었다.
“곤란하군.”
어떤 금제를 당했는지 알 수가 없다. 가르딘이라고 해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지독하고 사악한 놈들이었다. 수하들을 그저 목표를 위한 도구 정도로 여기는 집단이었다.
“생각보다 더 지독한 놈들이야.”
“어떡하지?”
“어쩔 수 없지.”
방법이 없으니 이곳을 처리하는 일만 남았다.
보리스를 비롯한 어쌔신들은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더블은 이미 죽었다. 화형의 고통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어 버린 것이다. 스스로 강하다고 여긴 더블은 작은 불길조차 참지 못했다.
“주머니에 채운 기름을 주변에다 부어.”
“알았어.”
가르딘이 여관에서 떠나기 전에 채운 것은 물이 아닌 기름이었다. 만일의 사태를 위해서 가져온 것이다. 흔적을 지우거나 증거를 없애는데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불이었다.
가르딘은 어쌔신들의 품에 들어 있는 마력탄을 한곳에 모았다. 필리언과 사이론에게 사용한 것 말고도 20개 정도가 더 있었다. 이 정도의 마력탄을 구하려면 최소한 7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3명 이상 필요하다.
“투르와 사이론은 시체를 한곳에 모아놔.”
가르딘은 자신이 알 수 없다면 적도 알 수 없게 만들 생각이었다. 놈들에게 자신의 정보를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최대한 알려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했다.
보리스와 어째신들을 정리한 가르딘은 화력이 최대한 퍼질 수 있도록 형태를 유지했다. 바람마저 위에서 아래로 부는 상황이라 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르딘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빈 공터이면서 바람이 부는 곳이기 때문이다.
“죄를 반성하고 다시 태어나면 착한 놈들로 태어나라.”
가르딘이 마지막 말을 하고 마력탄을 집어던졌다. 마력탄은 모아진 마력탄과 부딪치며 폭발을 일으켰다. 마력탄이 시발점이 되어서 기름에 불길이 옮겨 붙었다. 기름과 마른 나무, 수풀이 만나자 불길은 거침없이 타올랐다.
가르딘은 마지막으로 주변에 설치한 진법을 해체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바람을 타자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응?’
가르딘은 요 부근만 태우려고 했다. 잘못하다가는 같이 통구이 될 판이었다. 마력탄의 위력과, 바람의 위력을 잘못 계산한 가르딘이었다. 성급하게 불을 놓는 바람에 상상도 못할 일이 발생했다.
‘이런!’
가르딘은 짐짓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게 되면 뒤탈이 너무 크다. 필리언, 사이론, 투르가 보는 가운데 실수는 죽어도 인정하기 싫다. 말만 안 하면 누구도 모른다.
“어서 서둘러 가자.”
“너, 실수했지.”
“크흠!”
“무슨 다 계산한 거다.”
“아닌 것 같은데.”
말할 시간이 없었다. 불길은 예상보다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이대로 말다툼하다가는 어쌔신들과 같이 지옥으로 갈 수 있었다.
“튀... 어!”
쌔앵!
“이런 젠장! 너 하는 일이 다 그렇지.”
가르딘이 가장 먼저 도망쳤다. 필리언, 투르, 사이론은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간파하고 허겁지겁 가르딘의 뒤를 따라 도망쳤다. 불길이 따라오는 속도가 장난 아니다.
가르딘의 도망치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동료들이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이 치사한 놈아! 너 혼자 살겠다고 먼저 가냐!”
“난 라이나가 있잖아!”
“나는 부인 없냐!”
“괜찮아, 네 부인은 너 없어도 혼자서 잘 살 수 있어!”
“닥쳐!”
사실이니 인정하기 싫은 필리언이었다. 밖에 싸돌아다니다 보니 집안에 소홀히 했다. 필리언의 부인도 포기한 것처럼 혼자 잘 산다. 이것저것 여가 활동을 보내면서 여자들과 수다 떨며 지내니 말이다.
사이론은 가르딘과 필리언의 모습이 어떤 것이 진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잔인하고 냉혹한 것 같으면서도 어찌 보면 정신이 나간 사람들 같았다.
‘나... 도 저렇게 되는 건가!’
소름이 돋는 사이론이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저렇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식이 전달되었다.
보고된 내용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담고 있었다. 내용을 전달받은 세븐 다크의 수장 아이스 다크 슬로처는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기운이 주변으로 발산되자 소식을 전하던 수하가 몸을 떨어야 했다.
이번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세븐 다크 3명을 보냈다. 또한 일급 어쌔신을 50명이나 차출하여 최강의 구성을 만들었다. 제국의 황제라도 암살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구성이다. 그런데 그들의 소식이 끊겨 버렸다.
“다시 한 번 말해 봐라.”
“펠칸 산맥을 들어가기 직전에 연락을 한 후 사라져 버렸습니다. 흔적을 찾아 조사를 하기는 했는데 이유를 찾지 못 했습니다.”
“왜지? 소식은 왜 그렇게 늦은 거냐?”
“그게......”
말을 하기에 어려운 듯이 머뭇거리는 수하였다.
“죽고 싶으냐? 어서 말을 해라.”
“펠칸 산맥에 불이 났습니다. 5일 동안 지속적으로 불길이 거세게 일어 펠칸 산맥의 사분지 일이 손실되었습니다. 특히 저희가 조사할 곳이 모두 타버려서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슬로처도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갑자기 불이 날 이유는 없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일이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세븐 다크와 어쌔신들이 사라질 리 없었다. 사라졌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계획에도 없는 일이 터지는 바람에 어쌔신 길드의 손실이 너무 컸다. 특급 어쌔신과 일급 어쌔신이 한꺼번에 동원하고도 실패했다는 문제도 있었다. 어쎄신 길드의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이었다.
“우리가 했다는 증거는?”
“증거는 없습니다. 포이즌 다크께서 쓰는 독은 악마의 눈물과 비슷하지만 다른 독입니다. 안다고 해도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그렇겠지.”
포이즌 다크가 개량한 악마의 눈물은 일반적인 신성력으로 걸리지 않는다. 성녀가 아닌 이상 구분하기 어렵다. 포이즌 다크만이 사용할 수 있는 독이라 다음에도 사용하기가 어려워졌다. 앞으로의 일에 차질은 불가피했다.
명령을 보내온 로드에게 보고가 올라갔을 것이다. 슬로처가 말하지 않아도 로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때마침 슬로처 앞에 놓인 통신구에 불이 들어왔다. 영상통신구에 로브를 뒤집어쓴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로... 드!”
“실패했다지.”
“죄송합니다.”
“요새 매번 나를 실망시키는군.”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다면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멍청하긴.”
“으윽!”
구속되어진 것처럼 슬로처가 신음을 내며 전신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로드의 눈에서 뿜어지는 붉은 기운이 강해질수록 슬로처는 고통스러웠다.
“또다시 암습을 했다가는 어쎄신 길드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도 다시 하겠다고 하다니, 네가 날 끝까지 실망시키는구나!”
“죄... 송합니다!”
가르딘을 암습하는데 들어간 인원을 다시 보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실패한다면 카이로만 제국의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제국에서 벌이는 일을 수행하기도 전에 일이 틀어질 수 있었다. 암습은 한 번이면 되었다. 실패했다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이번 한 번만이다. 당분간은 자중하고 기다려라.”
“예! 로... 드!”
구속을 벗어난 슬로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빌... 어먹을!”